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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57사 正直(정직)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57사 正直(정직)

柏道 2019. 3. 14. 17:56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68 
 
갑자기 예상치 못한 감동을
몇회에 걸쳐 쏟아졌다.
핵심은 간단하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자들이다'는
아주 분명하고 간단한 진리에서
모든 것을 검토하면
모든 것들이 다 풀리게 된다.
아무리 많은 가르침이 있어도
결국 이것으로 돌아가는데
사실 긴 설명 없이 이를 깨닫는 자가
복된 자요, 성숙한 자다.
이렇게 길게 설명하고
분량이 큰 경전을 풀이하는 것은
그 하나를 더 분명하게 하려는
노력일 뿐..
속히 깨닫고 그 진리에 입각한
삶을 체험하는 것이 각자가
서둘러야 할 일이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열매를
자신이 먼저 누리고 나누는 것에
힘써야 한다.
한마디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자의
당연하고 합당한 삶의 증거를
내어 놓자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품고 보면 안 풀릴 경전이 없다.
다음 구절로 넘어가자.
이번에는 제 57事 信 1團 義 중에서
첫번째 부분(1團 1部) 正直(정직)에 대한 말씀이다.
 
信 1 團 1 部 (신 1 단 1 부)
제 57사 正直(정직) 
 
正則無私(정즉무사)요
直則無曲也(직즉무곡야)라
夫義以正秉志(부의이정병지)하고
以直處事(이직처사)하여
無私曲於基間(무사곡어기간)이라
故寧事不成(고영사불성)
未有失信於人(미유실신어인)이라 
 
'정(正)은 사사로움이 없음이요
직(直)은 굽음이 없음이라
무릇 의로움이란 바름으로 뜻을 잡고
곧음으로 일을 처리하여
그 사이에 사사로움과 굽음이
없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차라리 일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사람들에게 믿음을 잃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의식 속에 들어있는 정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워왔고,
그것이 정직의 본 뜻인 줄 알았다.
아마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정직해야 한다'고 하면
'거짓말 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한다.
그러니 참 많이 왜곡된 정의를 가지고
그럭저럭 잘도 살아왔다.
성경에도 '정직'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특히 이스라엘 열왕들에 대한 기록에는
꼭 '정직하다'는 표현이 등장한다(열왕기서).
'...여호와 보시기에 적직히 행하여...'
성경에서 쓰인 정직(히브리어, 야살)은
참전계경의 풀이와 같다.
'곧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굽지 않음을 의미한다.
물론 거짓말이 굽은 것이니, 거짓말 하지 말라는
말이 정직하라는 말과 같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수준이 낮다.
부모는 실컷 거짓말 잘 하면서 아이들에게
정직을 거짓말 하지 않는 것으로 가르치니
자기 모순에 빠진다.
정직하다는 것은 '바르고 곧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기준'이 전제가 된다.
무엇에 대해 바른가, 무엇에 대해서 곧은가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은 바르다, 곧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기준이 자기 기준이다.
그러다 보니 싸우면서 서로를 향해 거짓말장이라고 한다.
그러니 정치판이든, 종교든 자기들 마음대로다.
사사기 시대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정직을 사사로움이 없고,
굽음이 없이 곧은 것이라 정의한다.
그런데 그 기준은 '의'이다.
의의 특징이 바로 정직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믿음은 의를 위한 힘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그렇게 보면 정직은 의의 열매이다.
그렇다면 믿음이나 정직은 '의'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의'에 대한 규정 없이는 이 둘에 대한 설명이 의미가 없다.
'의'는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옳은 것'이다.
다른 말로 '하나님이 정하신 법에 합하는 것'이다.
사람이 정한 것도 하나님의 법에 일치하면 의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주장해도 의가 되지 않는다.
세상은 상대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여기서 따지는
거짓과 참은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
세상 법 바뀌는 것을 보라.
그 이유는 인간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의 법, 하나님이 정한 법은 바뀌지 않는다.
바꾸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따라서 합리화 시키고, 인간에 맞게 바꾸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짓이며, 하늘의 법은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공익을 위한 일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도 인간의 기준이다.
여기서 사사로움이 없다는 것은
하늘의 법에 인간적인 해석이나, 자기 편리적 적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없거니와 그런 시도자체가 어리석다.
절대로 그런 시도가 안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필귀정'이라고,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길, 하늘이 정한 이치대로 된다는 것이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근본지혜이다.
따라서 정직을 논하려면 하늘의 법을 아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을 모르면서 정직을 논하면
아이들끼리 말 장난과 편가르기 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정직의 기준은 간단하다.
아무리 나무 가지가 무성해도
둥치만 잡으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법, 하늘의 이치도 그렇다.
무수히 복잡한 이치가 산재해 있는 것 같아도
뜬 눈, 깨달은 눈으로 보면 하나가 보인다.
그리고 그 하나에 맞추면 정직과 부정직이 분별이 된다.
바로 그 하나가 다름 아닌 '하나'다.
즉 '모든 우주만물은 하나에서 나왔다'는 말
다른 말로, '모든 우주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그 한마디가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 의식 없는 말과 행동, 삶은 다 거짓이 되고,
이 의식 속에서 행하는 삶은 모두 정직한 것이 된다.
사사로움이 있을 수 없고, 굽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동안 사람들이 너무 많은 물건과, 이론을 만들어 내고,
또 몸 감각에 익혀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공허하게 들린다.
말이 안된다고 여기게 되어 있다.
'어떻게 사람과 짐승, 식물, 곤충, 심지어 나무와 돌
등등이 다 한 근원에서 나온 형제요 자매라는 말이냐?
사람만 해도 천차만별이요,
계와 과가 다 다른데 말도 안되는 소리 하고 있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도에 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늘 보이는 현상에 휘둘리게 되어 있다.
깨달았다고 해도 실제 삶 속에 적용하며 사는 것은
정말 어렵고,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이를 알고 사는 자와
모르고 사는 자는 하늘과 땅차이다.
아는 자는 다름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고 살지만
그 의식은 계속해서 '하나다'는 의식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는 점점 다름이 강해져서
하나라는 의식은 영원히 찾지 못할 지경으로 가고 만다.
우주가 팽창하듯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점점 분화되어가고, 멀어져가며,
대립되는 현실을 살고 있다.
그래서 서로 죽이려 하고, 뺏으려 하고,
짓밟으려 하는 시도들이 크고 작게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평화를 외치고, 협력을 외치는 것은
무의미하다.
소망은 한가지 뿐이다.
하나의식이 강한 자들이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일깨워 그 잃어버린 의식을 되새겨 찾게 하는 것이다.
집 떠난 탕자가 깨닫고 집으로 돌아오듯이,
부도지에서 인간들로 본성을 회복하고
마고성으로 돌아오게 깨우치는 사명을
맹세하듯이 나부터 그런 의식으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팽창과 분화의 시기가 지났다고 한다.
우주의 역수가 이제는 다시 회귀하여 하나로 돌아오는
시대를 맞았다고들 한다.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마지막 분화의 한 그림자일 수 있다.
이제부터 돌아가는 일이 가속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됨의 진리 앞에서
모두가 정직함의 시험을 받아, 의로움을 얻게 될 것이다.
바울의 선언을 기억해야 한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그 다음을 주의하라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이제 모든 정직과 거짓의 기준은 이 구절이 될 것이다.
하나, 하나님 외에 둘로 나뉜 것을 주장하는 자들...
특히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 장사를 하던 자들은
속히 이 말씀 앞에 돌아와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직한 자로 판명되고 말 것이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늘의 도수를 따라 팽창할 때는
그에 맞게 분화에 힘을 쓰게 되어 있다.
그 때는 일이 저절로 된다.
어리석고 교만한 자는 자기가 잘해서 그런줄 안다.
여름이 오면 곡식과 열매가 잘 자라는 것일 뿐이다.
이제 하늘의 도수가 바뀌었다.
하나로 급속히 돌아가는 중이다.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