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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66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66

柏道 2019. 3. 14. 17:33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66 
 
계속 달린다.
하나에서 분화된 셋,
사실 천지인 셋 중 땅도 중요하고
그 자체로 생명성을 가지고 있지만
땅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다음 일이다.
일단 우리 문제가 크기 때문에
이 문제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인 셋으로 분화되어
나타나셨는데 그 중 하나인 '인간'에게
소위 문제가 생겼다.
사실은 문제가 아니지만 우리는 문제로 체험한다.
근원인 하나로 돌아가버리면
선과 악도, 의와 불의도 없어지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가 생생하게 나뉘어진 이원론
세계에 살다 보니 그런 원론적이야기로는
용납이 잘 안된다.
사실 이게 제일 좋은 답이지만 아니라고 하니
차선을 택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딜레마도 사실은 없지만
우리 입장에서 그렇게 보는 것이다.
우리 문제를 풀기 위해서 말이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셋으로 분화하셨다.
그 중 하나인 인간에 문제가 발생했고
우주의 이치와 상반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신이 인간이 되셨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하나님이다.
인간 예수로 오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부여된 일을 하셔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지으신 인간의 온전함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 온전한 순종은 인간으로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과 괴로움, 배신, 두려움 등을 극복하고
하늘의 뜻, 자신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사실 십자가는 누구를 위하거나 대신하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퍼진 것이지, 진리의 본질을 알면 다르다.
예수의 고통과 십자가는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증거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뜻에
완벽하게 순종하는 증거를 예수를 통해
보이신 것이다.
이로써 만족이 이루어졌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율법과 순종의 완성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근원으로서의
온전함과 함께 인간으로서도 온전함을 증거하셨다.
이제 우리 사람의 순서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다른 모습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본 모습이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가 우리와 하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예수가 되셔서
하늘의 뜻을 완성하신 것이,
우리가 예수와 하나가 됨으로
우리의 성취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안에 있는 우리,
예수를 믿는 우리를 다르게 보시지 않으신다.
하나님 자신이 예수로 이루신 일이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신 일이 되기에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 자신의 성취를
우리의 것으로 믿는 일이 첫번째로
요구되는 것임과 동시에 마지막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인가?
맞다. 이게 다다.
그러면 또 이런 질문이 나올 것이다.
'아니 그러면 믿기만 하고 아무 것도 안해도 된다는 말이요?
죄를 지어도 상관 없고, 마음대로 살아도 된단 거요?'
만일 이런 질문이 나온다면
이제껏 설명이 통하지 않았다는 뜻이니 그만하는 게 좋다.
그게 아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이야기 해 봐야
입만 아프고 감정만 상하게 된다.
굳이 힘을 써서 한 번 더 설명해 본다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안에 있음을 의식하고 살면 된다.
그러면 거기에는 죄도 의도 없고, 하늘도 땅도 인간도
그런 구분이 없다. 그 자체로 온전한 구원이다.
거기에는 내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만 남으니 나는 사라진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면 이런 사라짐을 원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면 이건 끔찍한 말이다.
자기가 없어진다는 말은
지옥 간다는 말보다 더 무섭다.
지옥을 가더라도 자기는 남고 싶은 것이 자아다.
그래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라 해도
절대 안들어가고 인간으로 남아 있고 싶어 한다.
'거름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식이다.
그러면 간단하다.
분리된 상태에서 맞이하게 되는 모든 현상들을
받아들이면 된다. 하나님 안에 있음으로 자기가 사라진
자들은 이게 재미있어서 하고 싶어한다.
이 세상에서 당하는 이원론적 대립...
이것 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천사들도 이것 체험하려고 줄을 서 있다고 한다.
마치 놀이 기구 타려고 엄청난게 긴 줄을
그 땡볕을 무릅쓰고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놀이기구를 왜 타는가?
위험이 있으니 스릴이 있고,
그래서 재미있기 때문이 아닌가?
위험이 없는데 무슨 재미가 있는가?
그래서 도박이 제일 재미있어서 환장들을 하지 않는가?
도를 통한 사람들은 심심해서
이 땅에 내려와 고생을 자처한다.
그래서 어려운 자들, 무지한 자들, 고민하는 자들을
도와 주면서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제일 어렵고 보람된 일이 다시금
율법을 지키는 일이 된다.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됨을 아는 사람은
인간으로 온 자신을 통해
가장 장애가 많고 성취하기 어려운 사랑의 법,
그 율법을 열심히 지켜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이 사람의 노력은 구원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하는 노력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온 자로서
제일 재미있고 신나며, 보람되고 멋진 일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하는 것이다.
천사들이 부러워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인데
그것을 모르니 우리가 천사들을 부러워한다.
이런 경우는 천사로 바꿔 놓으면
심심하다고 난리를 부리며 다시 인간으로 오겠다고
졸라댈 것이 분명하다.
이 쯤하고 다음 회에 믿음과 의의 문제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으로 들어가보자. 


푸른 오솔길 블로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