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符都誌(부도지) 해설 5 본문
律呂(율려)의 創世記(창세기)를 풀다.
符都誌(부도지) 해설 5
부도지에 나오는 천지창조 이야기는
이해와 풀이가 쉽지 않다.
성경의 창세기 내용은 용어나 서술이
간단한 편이다. 먼저 하나님이 등장하고
말씀으로 차례차례 천지를 창조한다.
첫째 날, 둘째 날... 이렇게 순서를
따라 창조해 나가니 이해하기도 쉽다.
인간 창조에 대해서도 명료하고,
타락에 대한 이야기도 그리 어렵지
않게 머리에 그려볼 수 있다.
이처럼 성경의 창세기 서술이 비교적
명료한 만큼 의문도 많이 들게 마련이다.
일단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말씀창조에 포함되지
않은 어둠, 물(창세기 1:2), 혼돈, 공허
등은 어디서 나왔는지, 하나님의 신은
또 누구이며, 하나님과 어떻게 구별되는지,
최초의 빛은 태양빛인지, 아니면 빛의
근원인지, 넷째날 창조된 해와 달과
별들은 지구보다 늦게 창조되었다는
말인지, 지구의 하루는 태양과 관련해서
발생한 날인데 태양이 넷째날 지음을
받았다면 그 전의 하루는 무엇을
기준하였는지, 하루(히브리어, 욤)의
기간은 오늘날 같은 24시간인지,
아니면 긴 시간대인지..
특히 인간의 타락과 관련해서 하나님이
타락을 알고 계셨는지 등등 무수한
신학적인 질문들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것들을 다 몰라도 구원을
받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구원이 도대체 무엇인가?
천국에 가서 편하게 지내는 것이 구원인가?
오히려 구원이라는 것의 본질은
무지에서 벗어나 진리의 지식에 이르는
것이고, 의심과 궁금증이 풀려서 시원한
깨우침을 얻어 마음이 밝아지고, 삶이
변화되는 것이 구원의 본질이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궁금증은 다 뒤로 제쳐두고
천국가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제대로 된 종교이며, 진리를
증거한다고 큰소리 하겠는가?
물론 우리의 이성과 지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게으름이나 포기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도리어 우리가 완전한 지혜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고민하고, 연구하고, 찾아
들어가는 일을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 아닌가?
그러한 탐구와 성장의 과정이 영원한
생명의 증거이며, 또한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조금씩 더 깨달아가고,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 복된 삶의 본질이
아닌가?
도리어 이러한 축복과 기회를 마다하고
단순한 교리 하나, 주문 한마디로 천국에
가서 편안하게 살겠다는 생각자체가
하나님의 자녀됨의 영광과 권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심각한 무지와 게으름의 악이
아니겠는가?
부도지의 창세기는 일단 용어도 어렵고,
내용이 매우 복잡하다. 그리고 선천, 후천,
짐세 등 우주의 시대 구분이 등장하고,
마고대성과 창조신으로 여겨지는 마고보다
앞선 '율려'가 나온다. 그러니까 인격적
창조주 마고 이전에, 그런 인격을 존재하게
한 율려라는 '소리' 혹' 음'이 등장을 하는
것이다. 또 마고의 소생으로 나오는 황궁,
청궁, 백소, 흑소등도 그 존재근거를
설명하기 어렵고, 다시 그들로부터
태어나는 3남3녀의 출생으로 12쌍,
24명의 수에 대해서도 무언가 비유적
의미가 엿보인다.
특히 타락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자세한
편인데 창세기의 내용과 일면 흡사하면서도
상당한 차이를 나타낸다.
그래서 이런 공통점과 차이점이 우리의
흥미와 관심을 끈다.
성령과 진리의 인도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한 번 이 엄청난 비밀해독에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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