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50사 順志(순지)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58
효도는 그리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다.
부모든 자녀든 더 깊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하늘의 뜻을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당연하다고, 듣기 좋다고
마구 할 이야기가 아니다.
다음 가르침으로 가보자.
이번에는 제 50事 誠의 6체 大孝(대효) 중
두번째 쓰임(6체 3용) 順志(순지)에 대한 말씀이다.
誠 6體 3用 (성 6체 3용) 제 50사 順志(순지)
順平也(순평야)요
志氣也(지기야)라
父母之志氣(부모지지기)가
各自不同(각자부동)하니
子不知(자불지)
父母之志氣則(부모지지기즉)
父母不得志(부모부득지)니라
雖窮身家之好娛(수궁신가지호오)라도
常有不平之氣(상유불평지기)하나니
故爲大孝子(고위대효자)는
能順父母之志(능순부모지지)하느니라
'순(順)은 평안함이요
지(志)는 깊은 뜻이라
부모의 깊은 뜻이 자식과 서로 달라
자식이 부모의 깊은 뜻을 몰라주면
부모는 그 뜻을 펴지 못하느니라
비록 옴 몸을 다바쳐
집안을 좋고 즐겁게 해 드려도
항상 불편한 기운이 감돌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큰 효도를 하는 자식은
능히 부모의 뜻을 따라야 하느니라'
마찬가지로 상식이며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또 마찬가지로 피상적인 차원에서
머물게 되면 본래 의도를 찾지 못하게 된다.
부모나 자식이나 사람이면 누구든지
무언가 뜻을 펴고 싶어 하게 마련이다.
갈등은 그 뜻을 서로 몰라주고 대립이 될 때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 같으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선택의 문제 같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모는 서원하여 목사가 되기를 바라고,
자식은 그럴 의사가 전혀 없이 세속적 사업가가
되려고 한다든지, 부모는 의사를 원하는데
자식은 음악을 하겠다는 식으로...
누가 옳고 그름이 없이 그 추구하는 바가 다르면
그 문제를 풀기란 매우 어렵다.
자식도 성장하여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뜻을 펴고자 하는데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을 위하는 마음으로
좋게 여기지는 뜻을 원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 지는 것이다.
아무리 다른 일로 부모를 기쁘게 하고
잘 섬기려 노력을 해도 부모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참전계경은 이런 경우에
큰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뜻을 접고
부모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참 곤란하다.
요즘은 오히려 다른 지혜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부모의 뜻에 무조건 따르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대개 이것이 맞다고 인정하는 흐름이 대세다.
또 다시 말씀에 대한 회의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성경에서도 이런 내용들이 많다.
특히 여성들에 대한 초대교회의 가르침은
상당히 불편하게 여기지는 내용들이 많다.
효에 대한 말씀도 이 말씀과 맥이 같고,
체벌이나 결혼, 사형제도 등 여러가지 제도적인 문제들도
오늘날 받아들이기 힘들 뿐 아니라
성경대로 했다가는 학대로 벌까기 받을 수 있다.
아이를 매로 때리거나 짐승을 발로 차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잘 안다.
그러면 이런 변화가 타락이요, 거역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 의식이 깬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를 발전으로, 성숙으로 보고 있다.
효에 대한 가르침도 지금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 말씀처럼 자식은 부모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일률적으로 강조하게 되면
이 경전은 시대역행적 사고를 고수하는
케케묶은 고전으로 전락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경전의 정신, 혼을 이해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그토록 강조하며 세밀하게 지시한
제사제도가 한 순간 사라져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본질을 꿰뚫는 지혜는 문자의 한계를
능히 뛰어 넘을 수 있다.
이 가르침에서 중요한 것은
의식의 한계를 넘어서라는 것이다.
만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자식을 통하여
이루고자 한다면 그것은 부모의 뜻이 문제이다.
아무리 부모라고 하더라도 그런식으로
자기 뜻을 고집하게 되면 순리가 아니라 역행이다.
부모의 뜻은 깊은 지혜와 사랑에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뜻이 옳고 높다면
자식으로 하여금 감동하도록 설득과
인내의 방법이 동원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식의 입장에서도 그런 반응을
나타내야 한다.
과연 자신의 생각이 부모와 대립하면서까지
밀고 나갈만한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만일 그렇게 확신이 선다면 마찬가지로
부모를 설득하며, 그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게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을 소비하는 어려운 과정이다.
그래서 다시 진리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부모든, 자식이든 먼저 자기 뜻이 천리에 합한지를
서로를 보면서 진지하게 점검하도록
하는 관계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부모 자식간이든, 부부간이든, 동업자 관계든
모두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성경에는 바울을 위해 서로 목숨까지 내어 놓을
동료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인격이나 성품에 감동해서,
혹은 그 뜻이 합리적이고 좋아서 그런 관계를
형성한 것이 아니다.
바울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을 아낌없이 바치고자 하였고,
바울을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자들도
바울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긴 자들이기
때문에 이런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위대한 부모 자식 관계는 바로 이런 모습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따르고자 하는 모습에
기꺼이 자신이 양보하고 희생하는 관계...
거기에 효도가 있고, 거기에 자식사랑이 있다.
내 과거를 돌아보면 나의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여주셨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심하게 반대하셨다.
공부도 할 만큼 하고, 형편도 안되며
어린 자식과 갓난 애까지 있는 형편에
유학을 한다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셨는지
야단까지 치시며 역정을 내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기도를 해 보시고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하시며 기도와
물질의 후원에 힘을 다하셨다.
막내 아들을 곁에 두고 싶어하시는 마음이야
오죽하셨겠는가 마는 평소에 늘 그렇게 해오신 것처럼
자신의 뜻을 접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을
나도 본받기로 했다.
그 어떤 어려움, 어떤 유혹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을 묻고 행하는 습관을 길렀다.
지나고 보면 항상 그 선택이 옳았다.
그렇게 어머니는 지금도 나의 수호령으로,
나의 스승으로 내 삶에 영향을 주고 계신다.
인간적인 효도에는 실패자이지만
이러한 마음가짐과 노력하는 모습을
어머니는 흐뭇하게 보고 계시리라 믿는다.
제사 밥 거창하게 차리고,
세상에 출세하여 이름 떨치는 것보다
본인이 하신 그대로
지독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을 따라 가려고 하는 모습이
가장 큰 효도라고 확신한다.
아버지도 나의 효도를 받으시려면
생각과 자세부터 바꾸셔야 한다.
아무리 자식의 효도를 바라신다 해도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모습은
도저히 용납이 안된다.
어머니는 용서하라고 하시지만
어디서 이상한 여자를 새로 들여
아주 대놓고 무당짓거리를 하는 것이 보이는데
거기에는 결코 동참할 수 없다.
'천지인 공부 > 참전계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52사 養口(양구) (0) | 2019.03.13 |
---|---|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51사養體(양체) (0) | 2019.03.13 |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49사 鎖憂(쇄우) (0) | 2019.03.13 |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48사 安衷(안충) (0) | 2019.03.13 |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47사 大孝(대효) (0) | 2019.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