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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52사 養口(양구)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52사 養口(양구)

柏道 2019. 3. 13. 18:43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60
 
산티아고 순례를 앞두고
더 마음을 단단히 다지도록 하는
역사가 밤낮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내 마음과 발도 길이 정해졌다.
참전계경 공부는 영적인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감사한 마음과 기대하는 심정으로
또 한걸음 나아간다.
이번에는 제 52事 誠의 6체 大孝(대효) 중
다섯번째 쓰임(6체 5용) 養口(양구)에 대한 말씀이다.
 
誠 6體 5用 (성 6체 5용) 제 52사 養口(양구) 
 
養口者(양구자)는
養父母之甘毳也(양부모지감취야)라
富而供珍羞之味(부이공진수지미)라도
任人非養也(임인비양야)며
貧而盡漁採之勞(빈이진어채지로)라도
自執養也(자집양야)니
不養則(불양즉)
不知父母之食性(부지부모지식성)하여
捨其所嗜(사기소기)하며
違基所調和之變(위기소조화지변)하여
雖進水陸萬種(수진수육만종)이라도
食猶不滿足也(식유불만족야)니라
大孝者知養(대효자지양)하여
五味隨性(오미수성)하고
四時致非時物者(사시치비시물자)는
實天感之(실천감지)니라 
 
'양구란 부모에게 맛나고 부드러운
음식으로 봉양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살림이 넉넉하여 진귀한 음식을
차려드린다 해도
남의 손에 맡겨서 하는 것은
진정한 봉양이 아니니라
가난하여 물고기를 잡고 나물을 캐는
수고를 하더라도
손수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참된 봉양이니
그렇게 봉양하지 않으면
부모의 식성을 알지 못하여
입맛을 잃게 하고
식성의 조화로운 변화를 어기게 되니
아무리 산해진미를 차려 드려도
오히려 불만족을 드리게 되느니라
큰 효도를 하는 자는
봉양을 제대로 알아서
다섯가지 입맛을 식성에 맞게 차려서
어느계절이든지 철에 맞지 않는 음식까지
올려 드리니 실로 하늘까지 감동하느니라' 
 
이제까지 살펴본 말씀 중에 가장 긴 내용이다.
역시 사람은 먹어야 살고,
음식은 제일 중요한 생명유지의 기본이다.
노인들은 밥힘으로 사신다고 하고,
입맛이 떨어지면 위험신호라고 한다.
특히 신체기능이 저하되면 배고픈 것도
잘 모르게 되고, 혼자 외롭게 식사를 하게 되면
식욕이 저하되어 급속히 약해진다.
그래서 노인이 될수록 입맛을 돋을 수 있도록
잘 챙겨드려야 하고,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주 마다 이런 공동체 식사가 있다.
90넘은 할아버지 한 분은 이날 한끼 점심을 위해
교회를 오신다.
귀도 잘 안들리시고 하셔서 설교는 별로다.
그러나 약 2시간의 시간을 잘 견디시는 것은
따뜻하고 정성스럽게 차려지는 점심과
함께 나누는 정겨운 대화 때문이다.
노인분들 잘 드시는 것을 보면 든든하다.
일단 많이 잘 드시면 건강하다는 증거다.
근심이 있거나, 병이 들며, 외로움과 좌절을
겪으면 식사량이 줄어들고
체력이 떨어지니 더 마음도 약해지고 불안해 진다.
그래서 노인 공동체 센터를 만들어
따뜻한 음식과 함께 외롭지 않도록
배려하려고 애를 썼다.
매일 그렇게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항상 그렇듯이 단기간은 문제가 없다.
시간이 가면서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결국 지금은 모시던 노인분들이
흩어지고 젊은 가정만 세가정이 따로
식사를 하고, 생활을 한다.
실패하거나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국 우리로 하여금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를 향하여 진일보 하게 하는 기회를 얻은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육신의 양식보다
마음, 그리고 영혼의 양식이다.
영혼의 양식을 기쁘게 나누는 모임이 되지 못하면
결국 그 한계를 금방 드러내고 만다.
오늘의 가르침처럼 일단 정성을 다하여
손수 식성을 알아 음식봉양을 잘해야 한다.
일차적인 의미는 맞다.
그러나 계속 확인한 것처럼 이러한 일은
무한 지속될 수 없다.
여러가지 상황이 발생하고 결국은 이런 봉양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되는 때를 만나게 된다.
그 전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고
칭찬을 받을지 모르나 결과는 같으니
그리 큰 의미가 없다.
식사 대접도 정성껏 잘하고,
외롭지 않게 여러가지 프로그램으로 배려도 해 드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숙하지 못한 의식은
모든 조화를 깨뜨린다.
따로 살 때는 몰랐을 일들이 같이 지내면서 다 나타난다.
음식에 욕심을 부리거나, 유난히 자기것만 챙기고
이런 저런 불평을 해대고.. 결국 서로 지치고 만다.
감사할 줄 모르고, 배려할 줄 모르는 미숙함이
결국은 혜택과 즐거움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이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뒷사람 위해 남은 음식을 먼저 싸가려고 챙기는
노인을 보는 것은 참 보기 안쓰럽다.
그것도 신앙생활을 오래한 권사들이 그런다.
없는 시절 지내서 습관이 된 것이라 하지만
아직까지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는가?
결국 문제의 근본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근본은 다른데 있지 않다.
영적인 결핍이 채워지지 않은 것이 그 근원이다.
배고픔은 단순한 배고픔이 아니고,
욕구는 단순한 본능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40일 금식을 해도 음식을 거부할 수 있고,
먹지 않아 배가 고플 것이 분명한데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진리를 전하고,
마리아에게 하늘나라 복음을 전하면서
식사하는 것도 잊어버린 예수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모하는 자는 음식보다 말씀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아무리 배고파도 '먹고 합시다'
'금강산도 식후경입니다'는 식으로
진리의 현장에서 떠드는 것은 스스로를
천한 존재로 취급하는 망언이다.
파격적으로 돌아가면서 설교를 하는 시도를 했다.
무슨 훈련이나 고생을 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준비한 영적요리로 하나님 앞에 내보이고
서로를 봉양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살면서 말씀을 깨닫고 실천한 것,
하나님을 체험한 일들 등
사소하든, 크든 그런 말씀들을 발표하게 한 것이다.
놀랍게도 그런 준비가 너무 안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평생을 예수 믿고 살았다 하면서
은혜 나누는 것을 그렇게 부담스러워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모습이
슬프기까지 했다.
그래도 약 1년간을 훈련하면서 엄청난 변화와
성숙을 보인 사람들도 보게 되었다.
그들의 설교는 시시한 목사보다 더 은혜롭고 깊었다.
그 기간이 지나고 이제는 매일 스스로 하나님께
힘을 다하여 예배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새벽예배를 폐지했다.
남의 것 얻어먹는 것에 익숙해질까
우려한 나머지 세운 대책이다.
지금도 기대해 본다.
젊은이들과 자녀들에게 효도를 강조하며
잘 섬길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제까지 인생경험과 깨우침을 통하여
말씀을 잘 요리하여 젊은이들에게 공급하는
멋진 노인의 출현을 말이다.
만일 그런 노인을 만나게 되면
아낌없이, 정성을 다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정성과 음식으로 봉양할 것이다.
항상 진리는 이런 식으로 마무리 된다.
음식은 우리가 소와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최고의 것을 공급하시는 것이 먼저다.
그 은혜를 받아 감격한 자들이
자신의 삶 전체를 요리해서 하나님께
감사로 올려드리는 것이다.
누구를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도 곧 노인이 된다.
앞으로 10년, 20년 혹시 더 산다면
그 때 내 입에서 말이 나올 때마다
젊은이들이 감탄을 하고, 감격을 하여
미치도록 진리와 하나님 사랑으로
뛰어들도록 이끄는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