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48사 安衷(안충)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56
효도에 대한 말씀이 계속된다.
이번에는 제 48事 誠의 6체 大孝(대효) 중
첫번째 쓰임(6체 1용) 安衷(안충)에 대한 말씀이다.
誠 6體 1用 (성 6체 1용) 제 48사 安衷(안충)
安和之也(안화지야)요
衷心曲也(충심곡야)라
爲人子而(위인자이)
安父母之心(안부모지심)하고
悅父母之心(열부모지심)하며
定父母之心(정부모지심)하며
先父母之心則(선부모지심즉)
祥雲擁室(상운온실)하고
瑞氣亘霄(서기긍소)니라
'안(安)은 화평함이요
衷(충)는 극진한 마음이라
사람이 자식이 되어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부모의 마음을 안정되게 하고
부모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드리면
상서로운 구름이 집안을 감싸고
성서러운 기운이 하늘까지 뻗치느니라'
하나님이 내게 효도 공부를 많이 시키셨다.
본의 아니게 고국을 떠나
오랜기간 미국에 살게 되면서
혈육의 부모를 모시는 일에는
어쩔 수 없이 소홀할 수 밖에 없게 되었지만
목회를 하면서 남들이 안하는
'노인목회'를 주창하고 나섰다.
다들 성인과 청년, 그리고 2세 중심으로
방향을 정하고 있을 때 시작부터
노인 사역에 초점을 맞추니 이상하게 보았다.
심지어 노인분들 조차도 마뜩찮게 여기신다.
교회가 미래가 있으려면
젊은이들 중심, 자녀교육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무슨 경로사역에 초점을 맞추느냐며
본인들이 혜택의 당사자들이면서도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이다.
내가 노인 사역에 초점을 맞추게 된 이유는 단 한가지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고,
내게 맡기신 사명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철이 없어도 예쁘고 귀엽기라도 하다.
그런데 노인들은 나이들이 늙고 병이들면
특히 치매나 노인병에 걸리게 되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미국의 양로원 시설이야 탁월하다.
노인 한 사람당 드는 비용이 한달에
약 7000불 정도라 한다.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하려니 풀타임
셋이 붙어야 한다. 그러니 그만큼 들 수 밖에 없다.
돈 있는 노인들은 한 달에 10,000불
혹은 전 재산을 다 넣고 서비스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좋아보이고,
노인문제가 잘 해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고독하고, 우울하며, 불안하다.
시설이 좋고, 서비스와 프로그램이 탁월한 것과
편안하고 안락한 노후와는 전혀 별개다.
노인사역에 관심을 두면서 인근 양로원을
정기적으로 심방을 했다.
미국 양로원에 한국인 할머니들이 몇 분 계셨는데
우리 교회 권사님 어머니가 계셔서 매주 들러 문안을 했다.
그 때마다 그분들의 눈에서 깊은 고독과
불안을 볼 수 있었다.
교회에서도 경로대학을 열어서 운영하고,
일년에 여러번 노인들을 모시고 관광도 시켜 드리고 했다.
그러나 늘 불안하고 염려하는 모습이 어른거린다.
하지만 노인사역이 내게 주신 사명이라 생각하고
나름 열심히 했고, 마침내 큰 집을 마련하여 모시고 사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여기에는 나만의 특별한 계기가 있다.
옛날 할아버지 방에 연탄 불을 갈다가
하나 밖에 없는 잠바를 태운 적이 있었다.
옷이 귀할 땐데 큰 실수를 한 것이다.
그 때 어머니가 해 주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할아버지를 위해 좋은 일 하다
그런 것이니 괜찮다. 너는 할아버지께 잘 해드리니
하나님이 복을 주실거다'
왜 그 말이 그렇게 마음에 남았는지 모른다.
우리 할아버지는 심한 나병환자셨다.
소록도에서도 사셨고, 거기서 나와서 우리 가족과
함께 지내실 때는 방안에 감금되다시피 갇혀 지내셨다.
다행히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할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이 그렇게 없었다.
눈도 보이지 않으시고 얼굴을 일그러졌으며
손가락 발가락 하나도 없는 모습이
어린 나이에도 불쌍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특히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목 뒤에 난 큰 혹이다.
그야말로 대추만한 혹이 있어서 보기에 이상했다.
거기에 자주 고름이 차고 했는데
종종 그 혹을 짜 드리기도 했다.
언젠가 고름이 물총 쏠때 뿜어지는 물처럼
벽에까지 뻗는 것을 본 것이 지금도 생각난다.
학교 갔다 오면 냄새나는 방에 들어가
할아버지께 옛날 이야기 해 달라하고,
같이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받기도 했다.
할아버지 18번 곡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었고,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엎어지시고 자빠지시고...'하셨다.
당시 어린 나이에 마음이 아팠던 것은
부모님을 비롯하여 가족들이 아무도
할아버지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참 외롭게 지내시다가 결국은 안동 나병환자
수용소로 가시게 되었다.
그 때 장면을 잊지 못한다.
아마 중학교 저학년 때였던 것 같다.
택시를 대절하여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내가
함께 안동으로 갔다.
왜 나를 데리고 가셨는지 정확히는 모르나
그래도 할아버지가 제일 아끼는 손자였기에
아버지가 데리고 가신 것 같다.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 할아버지가
차 안에서 멀미를 하셨다.
틀니가 토사물 속에 섞여 있고,
그 때문에 택시기사가 아주 난감해 하면서
치우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떠나셨고,
그 뒤 한 번인가, 두 번인가 안동을 방문한 후 돌아가셨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떠나셨지만
내 마음에는 남아계셨는지 가족들로부터
꾸지람과 왕따를 당하면 혼자 옥상에 올라가
귀퉁이 굴뚝 옆에 앉아서 할아버지를 부르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아버지께 많이 실망을 했다.
할아버지를 그런 곳에 모셔다 놓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바쁘게 다니는 모습이
내게는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에 드는 느낌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이렇게 하셨으니
아버지도 나중에 이런 대우를 받으실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 아버지가 80을 훨씬 넘기셨다.
안타깝게도 자식이 다섯이나 있어도
다들 아버지를 가까이 하기 어려워한다.
집안에 얽힌 사연이 많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풀어가야 할 문제인데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사실 올해 한국을 가서 아버지 모시고
고향과 산천을 두루 한 번 다닐까 생각도 들었는데
아직 때가 아닌지 산티아고로 방향이 돌려졌다.
약 20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가 재혼을 하셨다.
기도원 원장에 목사까지 한다고 한다.
그런데 완전히 무당같은 스타일이다.
아버지가 새어머니 따라 완전히 변해버렸다.
그래서 가까이를 갈 수가 없다.
지금도 내 마음에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하나님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열심이 있었는데..
지식도 없고, 가진 것도 없으며,
건강도 좋지 않으셨지만
정말 지독, 지독하게 하나님 한 분을 섬기셨는데..
그만 그 가족의 전통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못내 아쉽다.
미국에 있으면서 친부모에게 못한 효를
여기계신 노인분들을 부모처럼
모시려고 애를 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택에 공동체 센터를
만들어 노인분들 여러분을 모시고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깨닫고 보니 그저 그렇게 노인분들에게
잘 대접하고 위로하는 것이 효도의 본질이 아니다.
아무리 연세가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어린아이와 같다.
그래서 때로는 선생이 되어서 다그치기도 하고, 꾸지람도 한다.
왜냐하면 곧 세상을 떠나야 할텐데
아직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그 정성이 약한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식의 대접은 더 이상 안하고
진리로 깨우쳐서 더 늦지 않은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고, 동행하도록 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56
효도에 대한 말씀이 계속된다.
이번에는 제 48事 誠의 6체 大孝(대효) 중
첫번째 쓰임(6체 1용) 安衷(안충)에 대한 말씀이다.
誠 6體 1用 (성 6체 1용) 제 48사 安衷(안충)
安和之也(안화지야)요
衷心曲也(충심곡야)라
爲人子而(위인자이)
安父母之心(안부모지심)하고
悅父母之心(열부모지심)하며
定父母之心(정부모지심)하며
先父母之心則(선부모지심즉)
祥雲擁室(상운온실)하고
瑞氣亘霄(서기긍소)니라
'안(安)은 화평함이요
衷(충)는 극진한 마음이라
사람이 자식이 되어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부모의 마음을 안정되게 하고
부모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드리면
상서로운 구름이 집안을 감싸고
성서러운 기운이 하늘까지 뻗치느니라'
하나님이 내게 효도 공부를 많이 시키셨다.
본의 아니게 고국을 떠나
오랜기간 미국에 살게 되면서
혈육의 부모를 모시는 일에는
어쩔 수 없이 소홀할 수 밖에 없게 되었지만
목회를 하면서 남들이 안하는
'노인목회'를 주창하고 나섰다.
다들 성인과 청년, 그리고 2세 중심으로
방향을 정하고 있을 때 시작부터
노인 사역에 초점을 맞추니 이상하게 보았다.
심지어 노인분들 조차도 마뜩찮게 여기신다.
교회가 미래가 있으려면
젊은이들 중심, 자녀교육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무슨 경로사역에 초점을 맞추느냐며
본인들이 혜택의 당사자들이면서도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이다.
내가 노인 사역에 초점을 맞추게 된 이유는 단 한가지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고,
내게 맡기신 사명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철이 없어도 예쁘고 귀엽기라도 하다.
그런데 노인들은 나이들이 늙고 병이들면
특히 치매나 노인병에 걸리게 되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미국의 양로원 시설이야 탁월하다.
노인 한 사람당 드는 비용이 한달에
약 7000불 정도라 한다.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하려니 풀타임
셋이 붙어야 한다. 그러니 그만큼 들 수 밖에 없다.
돈 있는 노인들은 한 달에 10,000불
혹은 전 재산을 다 넣고 서비스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좋아보이고,
노인문제가 잘 해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고독하고, 우울하며, 불안하다.
시설이 좋고, 서비스와 프로그램이 탁월한 것과
편안하고 안락한 노후와는 전혀 별개다.
노인사역에 관심을 두면서 인근 양로원을
정기적으로 심방을 했다.
미국 양로원에 한국인 할머니들이 몇 분 계셨는데
우리 교회 권사님 어머니가 계셔서 매주 들러 문안을 했다.
그 때마다 그분들의 눈에서 깊은 고독과
불안을 볼 수 있었다.
교회에서도 경로대학을 열어서 운영하고,
일년에 여러번 노인들을 모시고 관광도 시켜 드리고 했다.
그러나 늘 불안하고 염려하는 모습이 어른거린다.
하지만 노인사역이 내게 주신 사명이라 생각하고
나름 열심히 했고, 마침내 큰 집을 마련하여 모시고 사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여기에는 나만의 특별한 계기가 있다.
옛날 할아버지 방에 연탄 불을 갈다가
하나 밖에 없는 잠바를 태운 적이 있었다.
옷이 귀할 땐데 큰 실수를 한 것이다.
그 때 어머니가 해 주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할아버지를 위해 좋은 일 하다
그런 것이니 괜찮다. 너는 할아버지께 잘 해드리니
하나님이 복을 주실거다'
왜 그 말이 그렇게 마음에 남았는지 모른다.
우리 할아버지는 심한 나병환자셨다.
소록도에서도 사셨고, 거기서 나와서 우리 가족과
함께 지내실 때는 방안에 감금되다시피 갇혀 지내셨다.
다행히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할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이 그렇게 없었다.
눈도 보이지 않으시고 얼굴을 일그러졌으며
손가락 발가락 하나도 없는 모습이
어린 나이에도 불쌍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특히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목 뒤에 난 큰 혹이다.
그야말로 대추만한 혹이 있어서 보기에 이상했다.
거기에 자주 고름이 차고 했는데
종종 그 혹을 짜 드리기도 했다.
언젠가 고름이 물총 쏠때 뿜어지는 물처럼
벽에까지 뻗는 것을 본 것이 지금도 생각난다.
학교 갔다 오면 냄새나는 방에 들어가
할아버지께 옛날 이야기 해 달라하고,
같이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받기도 했다.
할아버지 18번 곡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었고,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엎어지시고 자빠지시고...'하셨다.
당시 어린 나이에 마음이 아팠던 것은
부모님을 비롯하여 가족들이 아무도
할아버지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참 외롭게 지내시다가 결국은 안동 나병환자
수용소로 가시게 되었다.
그 때 장면을 잊지 못한다.
아마 중학교 저학년 때였던 것 같다.
택시를 대절하여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내가
함께 안동으로 갔다.
왜 나를 데리고 가셨는지 정확히는 모르나
그래도 할아버지가 제일 아끼는 손자였기에
아버지가 데리고 가신 것 같다.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 할아버지가
차 안에서 멀미를 하셨다.
틀니가 토사물 속에 섞여 있고,
그 때문에 택시기사가 아주 난감해 하면서
치우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떠나셨고,
그 뒤 한 번인가, 두 번인가 안동을 방문한 후 돌아가셨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떠나셨지만
내 마음에는 남아계셨는지 가족들로부터
꾸지람과 왕따를 당하면 혼자 옥상에 올라가
귀퉁이 굴뚝 옆에 앉아서 할아버지를 부르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아버지께 많이 실망을 했다.
할아버지를 그런 곳에 모셔다 놓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바쁘게 다니는 모습이
내게는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에 드는 느낌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이렇게 하셨으니
아버지도 나중에 이런 대우를 받으실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 아버지가 80을 훨씬 넘기셨다.
안타깝게도 자식이 다섯이나 있어도
다들 아버지를 가까이 하기 어려워한다.
집안에 얽힌 사연이 많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풀어가야 할 문제인데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사실 올해 한국을 가서 아버지 모시고
고향과 산천을 두루 한 번 다닐까 생각도 들었는데
아직 때가 아닌지 산티아고로 방향이 돌려졌다.
약 20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가 재혼을 하셨다.
기도원 원장에 목사까지 한다고 한다.
그런데 완전히 무당같은 스타일이다.
아버지가 새어머니 따라 완전히 변해버렸다.
그래서 가까이를 갈 수가 없다.
지금도 내 마음에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하나님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열심이 있었는데..
지식도 없고, 가진 것도 없으며,
건강도 좋지 않으셨지만
정말 지독, 지독하게 하나님 한 분을 섬기셨는데..
그만 그 가족의 전통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못내 아쉽다.
미국에 있으면서 친부모에게 못한 효를
여기계신 노인분들을 부모처럼
모시려고 애를 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택에 공동체 센터를
만들어 노인분들 여러분을 모시고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깨닫고 보니 그저 그렇게 노인분들에게
잘 대접하고 위로하는 것이 효도의 본질이 아니다.
아무리 연세가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어린아이와 같다.
그래서 때로는 선생이 되어서 다그치기도 하고, 꾸지람도 한다.
왜냐하면 곧 세상을 떠나야 할텐데
아직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그 정성이 약한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식의 대접은 더 이상 안하고
진리로 깨우쳐서 더 늦지 않은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고, 동행하도록 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요,
노인을 공경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왔기 때문이다.
위의 말씀들은 다 듣기에 좋은 말씀들이다.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기쁘게 하고, 안정되게 하고, 우선을 챙기면
하늘도 감동한다고 하는데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람이 무슨 재주로 그렇게 하겠는가?
물론 큰 효자가 있어서
그렇게 부모를 잘 봉양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인간의 본질을 알면 그것은 틀렸다..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고, 안정감과 기쁨은
절대로 외부에서, 자식에게서 오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죽을 때까지 그 정성을 다함으로 주어지는 열매인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효도는 직접 자기 힘으로
부모를 편안하고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하나님 앞에 모셔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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