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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44사 禱天(도천)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44사 禱天(도천)

柏道 2019. 3. 13. 13:57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52
 
하늘을 향한 사람의 정성이
어떻게 삶속에 나타나는지
차근차근, 엄격하게 배우고 있다.
공부를 더할수록 옷 깃을 여미게 된다.
한 걸음 또 나간다.
이번에는 제 44事 誠의 5체 중
일곱번째 쓰임(5체 7용)
禱天(도천)에 대한 말씀이다.
 
誠 5體 7用 (성 5체 7용)
제 44사 禱天(도천) 
 
禱天者(도천자)는
禱于天也(도우천야)라
不知禱者(부지도자)는
謂難者難禱(위난자난도)하고
易者易禱(역자이도)나
知禱者不然(지도자불연)이라
易者知易禱故(이자지이도고)
誠不徹己(성불철기)하고
難者知難禱故(난자지난도고)
誠能徹天(성능철천)이니라 
 
'도천이라는 것은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것이라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는
어렵다 하여 기도도 힘들어 하고
쉬운 일은 기도를 가볍게 여기지만
기도가 그렇지 않다고 아는 이는
쉬운 일은 가볍게 기도할 줄 아는고로
그 정성이 몸을 꿰뚫지 못하나
어려운 것은 어렵게 기도할 줄을 알기에
그 정성이 능히 하늘을 꿰뚫게 되느니라' 
 
난해한 말씀이다.
한참 무슨 말씀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기도에 대해서야 전문이라고 자부할 만한
경력을 쌓았는데 도무지 무슨 소린지
처음에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 번 찬찬히 그 의미를 풀어보아야겠다.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제목이다.
여기서는 기도에 대해 정의를 따로 하지 않는다.
하늘을 꿰뚫는 정성, 그것이 본문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기도 그 자체보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통하고 하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본성을 따라 하나님을 찾고, 도움을 구한다.
사람마다 쉽고, 어려움이 다르겠지만
나름대로 그 경계선이 있다.
기도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은
기도할 내용의 경중에 따라 기도가 조절된다.
어려운 일 같으면 힘들게 기도할 각오를 하고,
비교적 쉬운 일은 간단하게 기도함으로
바라는 바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기도를 삼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도라는 자체가 가지는
위대함을 모르고 지나간다.
기도의 본질을 아는 사람,
그러니까 기도가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정성의 훈련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임을
아는 사람은 다르다.
그에게도 쉬운 일, 어려운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쉽고 어려움은 자기소욕 중심이 아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쉬운 일이고,
매우 중요한 일이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기도할 때는
그 원리에 따라 기도하기 때문에
쉽게 기도하고, 그 정성을 많이 들일 필요가 없음을 안다.
여기서 말하는 쉬운 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이다.
주로 재물이나 건강, 성공 등 그런 종류다.
이런 것들을 중시 여기고, 이것들을 가지고
하늘을 찾는 자들은 기도도 힘이 들고 고생스럽다.


그러나 기도의 본질과 목적을 아는 자들은
이런 기도를 별로 힘 안들이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기도에 넣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미 길이 정해져 있다.
수고하고 열심을 내면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고,
그래도 안되면 그 때 무슨 뜻이 있는지
진지하게 기도를 해 봐야 한다.
그게 어려운 기도이며, 하늘을 꿰뚫을 정성을 다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어차피 재물이나 건강, 명예 등은 한시적인 것이고
그 자체는 목적이 되지 못한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저항을 하고
괴롭게 하면 그 때는 진지하게 그 의미를 찾고 물어야 할 때다.
이것이 어려운 기도이다.
또 어려운 기도는 자기가 찾아야 할 무엇을
물을 때 일어난다.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하늘이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것인지?
이러한 문제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진짜 어려운 기도이다.
그래서 기도의 본질과 목적을 아는 자는
이런 기도를 드릴 때는 어떻게 드려야 할지 알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최대한의 정성을 다한다.
그래서 응답을 얻고 마는 것이다.


오늘날 교인들이 내어 놓는 기도제목들을 들어보면
천편일률적으로 세속적이고, 물질적이다.
물론 그것들도 중요하지 않느냐 하면
맞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자체가 부족하다, 없다고 하여
하나님께 졸라대거나 잘 보이려고 하게 되면
하나님을 왜곡하고, 그릇 대우하는 오류가 된다.
하나님께서 그런 시련과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를 묻지 않고, 그 자체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하게 되면 하나님은 악한 존재, 또는 무능한 존재로
취급하게 되는 것이다.
어려운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쉽게 응답이 오지 않는다.
정성을 다해야 하고, 지성을 키워야 하며,
마음을 넓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짧은 생각을 가지고 순진하게
세상 사람들 다 복받게 해 달라는 식의 기도는
아이들 장난이다.


왜 우리 민족이 이토록 오랜 수난을 겪어야 했는지,
지금까지도 왜 이렇게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는지,
우리 민족의 사명이 무엇이며,
그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기도는 하기도 쉽지 않고,
정성을 들이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는
다른 기도는 다 제쳐둔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고,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기를 기도한다.

어렵고 막연하지만 그런 기도의 중요성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몇 년, 몇 십년을 지치지 않고 기도하여
마침내 하늘을 감동시키게 되고,
하나님의 응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기도가 바로 이랬고,
바울의 기도가 이러했다.
예수와 바울은 존경한다 하면서
그들의 삶은 따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의 기도는 공허하고
지루하며,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죽은 말이 되어 버렸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두고
여호와 하나님과 담판을 짓고,
모세가 민족의 멸망 앞에 막아서서
자기 생명을 걸고 구원을 요구하며,
엘리야가 생명을 걸고 1:850의 대결을
요청하듯이 그렇게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는 자가
어디 있을까?


인류의 죄를 지고 겟세마네에서
끔찍한 십자가를 앞에 두고도
'아버지의 원대로 하소서'
기도했던 예수...
그러니까 그가 세상의 구주로 불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