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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41사 樂天(낙천)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41사 樂天(낙천)

柏道 2019. 3. 13. 13:32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49
 
간혹 진리는 우리의
모든 기대와 의욕까지 무너뜨린다.
좋아 보여서 가볼까 했다가
막상 발을 들이밀면 바로 후회가 일어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너무 그 길이 험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며,
도무지 소망을 가질 수 없을만큼
엄청난 좌절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지금은 설레고
기대감이 있을지 모르나
분명히 예언하건대 하루도 안되어
절망감에 빠져 후회할 것이다.
수도 없이 중간에 포기하도록 유혹하는
이런 저런 핑계가 무수히 생길 것이다.
미리 그 순간을 대비해 다짐을 해 둔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금 이 말과 결심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진리는 이렇게 역사한다.
참 귀하면서도 고약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만이 진정한 생명의 삶인 것을...
지금 이순간은 사실 대 호강을 하는 것이다.
그 때는 그 때고...
지금 할일이나 열심히 하자.
이번에는 제 41事 誠의 5체 네번째 쓰임
(5체 4용) 樂天(낙천)에 대한 말씀이다.
 
誠 5體 4用 (성 5체 4용)
제 41사 樂天(낙천) 
 
樂天者(낙천자)는
樂天之意也(낙천지의야)라
天意於人(천의어인)에
至公無私(지공무사)하나니
我之誠深則(아지성심즉)
天之感深(천지감심)하고
我之誠淺則(아지성천즉)
天之感亦淺(천지감역천)하니
自知天感之深淺(자지천감지심천)이
知我誠之深淺(지아성지심천)이라
故漸誠漸楽也(고점성점락야)라 
 
'낙천이란
하늘의 뜻을 즐거워하는 것을 이르느니라
하늘의 뜻은 사람에게
지극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으니
나의 정성이 깊으면
하늘의 감동도 깊고
나의 정성이 얕으면
하늘의 감동도 얕으니라
하늘의 감동이 깊고 얕음을 스스로 알면
자신의 정성의 깊고 얕음을 알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정성이 더할수록
즐거움도 더해 가느니라' 
 
이런 말씀이 깊고 좋으면서,
동시에 실망과 고통을 준다.
우리는 다 편하고, 가볍고, 쉽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
원래 타고난 본성은 도전하고, 창조하는
신성을 소유하고 있는데
본성을 망각하면서 자아의 소욕을 따라
그저 쉽게 살고, 쉽게 얻고 싶어하는 습성을 키워버렸다.
통제하기가 너무 어려워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진리를 통해 깨우침을 받아
결과를 볼 줄 알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가야할 길을 가게 되어 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낙천'의 본질이 '하늘'자체에 있지 않고
'하늘의 뜻'에 있음을 밝힌 것이다.
하늘은 보통 천국, 천당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아름다움과 맛있는 것, 즐거운 것이 가득찬
세계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천국에 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진리를 제대로 보고 들어야 한다.
여기서 즐거워 하는 것은 그런 시설과 음식이 아니다.
'하늘의 뜻'이다.
그러니까 천국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주기도문처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내 감각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 뜻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아마 이런 말씀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대해 실망할 것이다.
하기야 애초부터 그런 천국은 없으니
실망할 것도 없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진리를 말해도
상관없이 자기만의 천국을 또 하나 만들어 거기 들어갈
희망을 품을 것이다.
우리의 자아는 천국은 좋아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그 뜻이 공평무사 하다는 말은 은혜가 안된다.
나만, 우리 가족, 민족만 특별대우를 해 주셔야지
모두에게 똑 같이 대우한다면
섭섭한 마음이 들고 기분이 얹짢다.
다들 제 잘난 맛, 자기 착한 맛에 사는데 말이다.
그러나 진리는 밝히 말한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무엇을 즐거워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한다.
시편 1편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 한다고
하였고, 제일 긴 시편 119편은 이런 말씀의 반복이 176절이나
계속된다.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 한다는 말은
거기에 자신의 당할 고난과 슬픔도
즐거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가 오병이어 기적을 행한 후에
이런 진리를 선포했더니 다들 실망하고 가 버렸다.
예수가 정확하게 진단했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떡에 관심이 있는 자들이라고...
오늘날에도 천국 가서 재미있게 지낼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갈수록 그 기대가 허상임을
깨닫고 불안해 질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고, 그 뜻 행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정성을 다하게 되어 있고,
하늘의 뜻에 따라 그 정성에 하늘이 감동을 하게 되어 있다.
정성이 크면 감동도 크고,
정성이 작으면 감동도 작다.
따라서 감동을 점검해 보면 정성의 무게가 나온다.
하늘의 감동을 전달 받아야 인생이 즐겁다.
그런데 정성이 약한 자들은
하늘의 감동을 받을 일이 없고,
그러다 보니 인생도 재미 없어진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바라는 천국을 만들어 놓고
거기 갈 생각에 빠져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하려는 마음은 거의 없다.
있다고 한다면 자기가 바라는 것,
자기가 원하는 소원과 하나님의 뜻이
들어 맞아야 좋아한다.
그런데 그러면 맞을 확률이 거의 없다.
처음에는 반 정도 맞았을텐데
점점 어리석음과 무지에 빠져 퇴보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바울은 이 둘 관계를 원수라고 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로마서 8:7)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 원수로 살고 있는 자들이 많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자들일수록
천국 들어갈 기대는 엄청나게 크다.
하늘을 즐거워 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새기자.
이 말이 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뜻을 사랑하며,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에 온 힘을 다하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
하늘을 즐거워하는 자들이다.
점검해 보자.
과연 나는 무엇을 즐거워하는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