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40사 聽天(청천)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48
좋다는 것이 항상 밝고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마음은 그랬으면 하지만
실제로는 좋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아프기 쉽다.
그것이 무지와 두려움, 욕심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자아의 껍질을 벗겨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엄청난 저항을
각오해야 한다.
그것도 외부의 저항보다
더 강하고 무서운 내면의 저항...
그러니까 나 자신의 저항이다 보니
내가 어떻게 통제할 수 없다.
그래서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그 인도함을 받는 비결이 정성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앞두고
마음이 비장해 진다.
말씀으로 힘을 얻어야겠다.
이번 순서는 제 40事 誠의 5체
세번째 쓰임(5체 3용) 聽天(청천)에 대한 말씀이다.
誠 5體 3用 (성 5체 3용)
제 40사 聽天(청천)
聽天者(청천자)는
聽天命而不以誠(청천명이부이성)
待感應也(대감응야)라
謂吾之誠(위오지성)이
必不至於感矣(필부지어감의)라
有何所應哉(유하소응재)야
愈久愈淡(유구유담)하며
愈動愈寂(유동유적)하여
還不知誠在何邊(환부지설재하변)이니라
'청천이라는 것은
하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만
정성을 다함으로 감응을 받으리라고
기대하지 아니함을 이르느니라
나의 정성이 아직 감동에도 이르지
못했는데 어찌 응함이 있을 것을
기대하겠는가?
정성을 더 오래할수록 오히려 가벼워지고
정성에 더 부지런할수록 더 고요해지니
돌아보아도 정성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도 알지 못하게 되느니라'
정말 깊고 깊다.
역설적이면서도 강력한 힘이 들어있다.
하늘의 명령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명령에 정성을 다하면
무언가 응답을 받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듣고 행함이 어떤 조건이 되거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미 스스로 엉뚱한 기대에 빠져
정성이 흐트러질 것이요,
자기 자신도 감동을 시킬 수 없다.
그러니 당연히 하늘의 응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어려운 수준을 말한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는 수준이다.
자기를 잊어버리는 차원, 열반의 경지다.
그러니까 아직 무언가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정성에 구멍이 난 것이기
때문에 자기자신도 감동이나 확신이 없다.
연기나 연주, 무용 등을 할 때
청중이 의식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제대로 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연주자나 연기자는
청중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까지 잊어 버린다.
배트맨 '다크나이트' 편에서 조커 역할을 한
히쓰 레져라는 배우는 너무 역할에 몰입한
나머지 자기를 자주 망각하는 일이 생겨서
결국은 자살을 하고 말았다 한다.
방향은 잘못 잡았으나 무언가 주는 교훈이 크다.
연기를 해도 저정도까지 몰입이 되고,
연주나, 춤 등에서도 종종 저런 몰입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향하며,
하나님과 교제한다면서 이런 몰입이 없다면
그게 어떻게 진정한 정성이라 하겠는가?
바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칭찬에 목말라 있고,
그 칭찬이 자기를 세워주어 지탱하게 한다.
도를 닦고, 수행을 하며, 종교적 열정을 지닌 자들도
이런 수준을 잘 넘어서지 못한다.
결국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은 마음이
속에서 들끓고 있다.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도
결국은 같은 목적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자신이 최고가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열정을 쏟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이런 수준을 다 가짜라고 한다.
그런 정성은 결국 자기도 감동시킬 수 없는 수준이라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자기의 속은
자신의 양심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한다,
진리를 수호한다고 떠들지만 마음 속에는
이러한 열정과 수고를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꿈틀거리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열정적 쇼를 하고 나면
한없이 허탈해지게 되고 그 허무감을 견디지 못한다.
방향을 잘못 잡고 수행을 엉터리로 한 결과이다.
제대로 방향을 잡아 오직 하나님만
향하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사라짐을
갈망하게 되면 시간이 오래갈수록
더 마음이 비워지고,
열정을 더할수록 더 고요해지게 된다.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정성을 오래할 수록 커지고 두터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가벼워지고 묽어질 뿐 아니라
열정을 내면 더 시끄럽고 바빠져야 하는데
반대로 고요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럼으로 정성을 찾을래도 찾을 수 없는
경지... 바로 이것이 하늘이 응하는 수준이다.
참 기가 막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수준에 도달한단 말인가?
어느 누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기도 잊고, 시간도 장소도 다 잊어 버려서
사라짐을 체험하는 자가 있을까?
예수가 그랬을까?
바울이 그랬을까?
참 무서운 것이 만일 '내가 그런 경지를 안다,'
' 그런 체험을 했다'고 주장한다면
그 말로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나와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지금 나와 있다는 소리고, 옛날을 이야기 하는 것은
지금은 안그렇다는 것 밖에 무엇이냐는 것이다.
만일 지금 그 정성에 들어가 있으면
이런 의식조차 없다.
그러니까 나처럼 정성에 대하여
글을 쓰고, 풀이를 하고, 수준을 이야기 하는 자체가
밖에 있다는 소리, 즉 정성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니 참 허무한 일이다.
아마 제대로 정성에 몰입하면
이런 말도, 글도 없겠지...
언젠가 이런 짓거리도 사라져야 할
허튼 수작일 뿐이다.
이 말씀에서 '돌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사실 돌아보면 안된다.
돌아 보는 것 자체가 이미 흐트러진 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에 의하면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수준 때문에 이해를 시키고자
어쩔 수 없이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다.
실제로는 돌아보는 일도 없다.
<제40조> 청천(聽天)
聽天者 聽天命而 不以誠待感應也 謂吾之誠 必不至於感矣 有何所應哉 愈久愈淡 愈動愈寂 還不知誠在何邊 |
| 청천자 청천명이 부이성대감응야 위오지성 필불지어감의 유하소응재 유구유담 유동유적 환부지성재하변. |
| 청천(聽天:천명天命을 듣는다)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듣되 정성으로써 느끼고 응함이 있을 것을 기대하지 않음이다. 나의 정성이 반드시 하나님을 느끼게 함에 이르지 못했는데 어찌 응함이 있을 것인가 생각하여 더욱 오래하고 더욱 맑게하며 더욱 부지런히 하고 더욱 고요히 하며 도리어 정성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해야 한다.. |
청천(聽天)은
한울의 감응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더욱더 하는 것이다
한울에 듣는다 함은 한울의 명령을 듣되,
감응을 정성스레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이르되 나의 정성이 반드시 감동에 이르지 않고서야
그 어찌 응할 바 있으리오.
더욱 오래 하고 더욱 맑게 하며
더욱 부지런히 하고 더욱 고요히 하여
오히려 정성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제34用 청천(聽天)
聽天者 聽天命而不以誠待感應也 謂吾之誠必不至於感矣 有何所應哉
愈久愈淡 愈動愈寂 還不知誠在何邊
청천자 청천명이부이성대감응야
위오지성필불지어감의 유하소응재
유구유담 유동유적 환부지성재하변
청천(聽天 : 천명天命을 듣는다)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듣되 정성으로써 느끼고 응함이 있을 것을 기대하지 않음이라.
나의 정성이 반드시 하나님을 느끼게 함에 이르지 못했는데 어찌 응함이 있을 것인가 생각하여, 더욱 오래하고 더욱 맑게 하며, 더욱 부지런히 하고 더욱 고요히 하며, 도리어 정성이 닿는 끝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해야 하느니라.
제40조 제5체 34용 청천聽天
청천聽天이란 하늘의 명을 받들되,
정성을 다할 뿐 하늘의 감응을 기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나의 정성이 필시 하늘을 감응시키지 못했는데 어찌 하늘의 응답이 있겠는가.
하늘의 명을 받들어 정성을 다함에 있어 오래 하면 할 수록 더욱 맑아지고,
부지런히 하면 할수록 더욱 고요해져서 도리어 그 정성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된다.
聽天者는 聽天命而不以誠待感應也라.
謂吾之誠이 必不至於感矣라 有何所應哉아.
愈久愈淡하며 愈勤愈寂하여 還不知誠在何邊이니라.
청전자는 청천명이불이성대감응야라.
위오지성이 필부지어감의라 유하소응재아.
유구유담하며 유근유적하여 환부지성재하변이니라.
[출처] 참전계경 40事 - 청천(聽天)|작성자 어이무사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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