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39사 應天(응천)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47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비슷한 말이 반복된다고 지루해 하는
것은 교만과 나태의 증거다.
천 번, 만 번이라도 반복하여
우리 마음을 진리에 굴복시켜야 한다.
이번에는 제 39事 誠의 5체의
두번째 쓰임(5체 2용) 應天(응천)에 대한 말씀이다.
誠 5體 2用 (성 5체 2용)
제 39사 應天(응천)
應天者(응천자)는
應天理而養誠也(응천리이양성야)라
天授患難(천수환난)이라도
甘受而誠不違(감수이성불위)하며
天遺吉祥(천유길상)에
反懼而誠不怠(반구이성불태)하나니
歸患難於無誠(귀환난어무성)이거나
屬吉祥於非誠(속길상어비성)이리요
'하늘에 응한다 함은
하늘의 섭리를 따라 정성을 키워나가는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이 근심과 어려움을 주더라도
달게 받고 정성을 떠나지 않으며
하늘이 길하고 상서러운 것을 줄 때에도
도리어 두려워 함으로 정성에 게으르지
않아야 하느니라
근심과 어려움 때문에 되돌아가는 것은
정성이 없기 때문이요
길하고 상서로운 것에 매이는 것도
정성이 아니니라'
하늘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은
정성을 다하는 것이요,
하늘의 섭리에 응한다는 것은
정성을 키워나간다는 것을 말한다.
참 오묘한 언어의 활용이다.
순종은 대상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면,
응함은 주체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니까 주도적으로 내가 정성을 함양하고,
보호하며, 관리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여기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부분이 있다.
그것은 '하늘이 환란도 주고 복도 준다'는 말씀이다.
우리 인생이 고달픈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환란이 어디서 오는지 몰라서이다.
보통 사람들은 환란은 자연의 흐름 정도로
생각하고 애를 써 면하고, 안되면 굴복하라고 한다.
투쟁과 강함을 추구하는 자들은
환란의 기원을 마귀나 악령으로 보고 대적하려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실수나 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며 수용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기 진리의 요소를 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진리의 요소를 담고 있다는 것이
온전한 진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이론들은 장점과 함께 단점을 가진다.
자칫 오해와 왜곡의 소지가 크고,
도리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적절한 상황에, 적절하게 적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가 나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가장 좋은 입장의 해석은
오늘 말씀처럼 환난도 하늘이 주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다만 이처럼 너무 간단하게 말을 하면
지혜가 부족한 자는 섣불리 하나님을 오해하려 든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고 벌 주기를
좋아하는 분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근기가 부족하고, 이해력이 떨어지는 자에게는
차라리 '마귀 탓, 네 잘못 때문'이나
'그냥 일어나는 일'로 설명하는 것이 낫다.
그나마 부작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준을 넘어서서
단단한 식물을 소화시킬 수 있는 성숙과
건강이 있는 사람에게는 비로소 깊은 차원의
본질을 밝혀 깨달음을 얻게 할 수 있다.
바로 환란도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인간에게 허락하시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성경도 이를 말씀한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란도 창조하나니..'(이사야 45:7)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는 반드시 부연설명이 따라야 한다.
그 목적이 우리의 고통이나 괴로움이 아니라는
설명 말이다.
이를 이해할 수준이 안되면 차라리 마귀 탓,
우연 탓으로 돌리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때로는 진리가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에
지혜롭게 잘 조절해야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어두움도 짓고, 환란도 지으신
목적이 우리를 연단하여 빛의 영광과, 평안의 즐거움을
맛보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원론 상대세계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공부를 위함이요, 즐거움과 영광을 위함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어두움과 환란의 의미를 알고
그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이 의도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말씀처럼 환란과 시련이 와도
정성이 손상받아서 안된다.
오히려 하늘의 뜻을 알기에 그것조차 감사히 받고
인내와 정성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은
평안과 안일함의 유혹이다.
사람이 이것에 더 잘 넘어진다.
유명한 다윗도 평안할 때 넘어졌고,
오늘날 큰 지도자들도 잘 나갈 때
그만 방심하고 교만하여 추락하고 만다.
환란에 넘어져도 정성이라 할 수 없거니와
평안에 끌려가도 정성이라 할 수 없다.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성을 다하는 자는
환란 때는 물론이고,
평안할 때 더 신중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힘쓴다.
그러나 더 근원적인 답은
이 둘을 의식하여 두려워하거나 경계하는 것보다
하나님 자신에 초점을 맞추어
오직 정성 하나만 남게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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