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제 38사 順天(순천)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46
말씀을 통해 얻는 즐거움은
그 어떤 것보다 크다.
그래서 복있는 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 했다.
억지로는 안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저절로 되지도 않는다.
뜻을 세우고 정성을 드리면
어느 시점부터인가 진리가 이끄는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그 궤도에 올라 달려간다.
이번에 주시는 말씀은 제 38事 誠의 5체
至感(지감)의 첫번째 쓰임(5체 1용)
順天(순천)에 대한 말씀이다.
誠 5體 1用 (성 5체 1용)
제 38사 順天(순천)
順天者(순천자)는
順天理而爲誠也(순천리이위성야)라
知天理而(지천리이)
逆禱者或有之(역도자혹유지)하며
難天理而(난천리이)
速禱者亦有之(속도자역유지)하니
此皆止感而(차개지감이)
不受應也(불수응야)라
若受應者(약수응자)는
順天理而不逆(순천리이불역)하며
順天理而不速(순천리이불속)이니라
'하늘에 순종한다는 말은
하늘의 섭리를 따라 정성을
다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의 섭리를 알면서도
혹 그 섭리에 어긋나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거나
혹 섭리를 잘 모르면서 조급하게
기도하는 자들이 있으니
이는 모두 감동을 일으키지 못하여
응답을 받지 못하느니라
만일 하늘의 응답을 받으려면
하늘의 섭리를 따름에
어긋나지 말아야 하며
하늘의 섭리를 따름에
조급해서도 안되느니라'
아무리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잘못된 기도를 하거나, 방법이 잘못되면
응답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잘못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명백하여
알고 있으면서도 욕심에 끌려서 고집하는 것으로
이는 거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46
말씀을 통해 얻는 즐거움은
그 어떤 것보다 크다.
그래서 복있는 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 했다.
억지로는 안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저절로 되지도 않는다.
뜻을 세우고 정성을 드리면
어느 시점부터인가 진리가 이끄는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그 궤도에 올라 달려간다.
이번에 주시는 말씀은 제 38事 誠의 5체
至感(지감)의 첫번째 쓰임(5체 1용)
順天(순천)에 대한 말씀이다.
誠 5體 1用 (성 5체 1용)
제 38사 順天(순천)
順天者(순천자)는
順天理而爲誠也(순천리이위성야)라
知天理而(지천리이)
逆禱者或有之(역도자혹유지)하며
難天理而(난천리이)
速禱者亦有之(속도자역유지)하니
此皆止感而(차개지감이)
不受應也(불수응야)라
若受應者(약수응자)는
順天理而不逆(순천리이불역)하며
順天理而不速(순천리이불속)이니라
'하늘에 순종한다는 말은
하늘의 섭리를 따라 정성을
다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의 섭리를 알면서도
혹 그 섭리에 어긋나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거나
혹 섭리를 잘 모르면서 조급하게
기도하는 자들이 있으니
이는 모두 감동을 일으키지 못하여
응답을 받지 못하느니라
만일 하늘의 응답을 받으려면
하늘의 섭리를 따름에
어긋나지 말아야 하며
하늘의 섭리를 따름에
조급해서도 안되느니라'
아무리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잘못된 기도를 하거나, 방법이 잘못되면
응답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잘못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명백하여
알고 있으면서도 욕심에 끌려서 고집하는 것으로
이는 거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을 보면 발람이라는 선지자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재물의 욕심 때문에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예언을
하려고 하자 급기야는 나귀가 입을 열어
책망하는 내용이 나온다.
결국 그 발람에 대해 '삯을 위하여 어그러진 길로 간 자'의
모본으로 평가한다(유다서 1:11).
하나님의 선지자로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유혹에 끌려 어긋나고 거역하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은 비극의 선지가가 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조급하여 함부로 행하다가
버림을 받은 사울의 예도 나온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아무리 급하고
중요하다고 해도 맡은 자가 있는데
어리석게 급한 것만 생각한 나머지
자기가 직접 드리다가 버림을 받은 것이다.
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야고보서 4:2하-3)고 하여
기도도 중요하지만 그 동기와 목적도
결코 소홀해서는 안됨을 경고한다.
그런데 보면 이런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고, 자기가 급하다고
무조건 조르기 기도를 드리거나
그런 기도를 조장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래서 실컷 기도하고 오히려 책망과
화를 당하는 경우들이 발생하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 교인들에게 기도개혁을
강조해 왔다.
나 자신부터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한지
10년이 넘으니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는데
아직 교인들 중에 습관을 버리지 못하여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제일 안고치고 고집하는 자들을 보면
목사와 장로들, 오래된 권사들이다.
천편일률적으로 '주시옵소서'다.
이미 하나님의 뜻이 말씀을 통해 밝혀졌음에도
그를 신뢰하고 나아가기 보다
자기 감정과 기분을 더 믿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부정적인 말,
졸라대는 말을 하면서 그것을 기도라 한다.
나는 그에 대해서 거역하는 죄라 한다.
불신과 불순종의 죄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약속이
성경의 핵심이요, 복음의 본질인데
실감이 잘 안나고, 자기가 안느껴 진다고
'함께 하여 주옵소서'기도를 한다.
그러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불신이며,
거역이 되고 만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죄용서 하셨으며, 성령을 주시고, 지혜와 능력을
주셨다는 말씀을 받으면 그것을 믿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지도자들부터 끝까지
'나는 부족합니다. 죄인입니다. 연약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 도와 주옵소서. 성령충만하게 해 주옵소서'
하고 있다.
하나님이 안도와 주시면 아무것도 못한단다.
그러면서 그것이 신앙이 좋고 겸손한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교회에서는 그런 기도 하면 혼난다.
그것은 하나님도, 말씀도 믿는 것이 아니다.
자기 감정과 느낌의 노예를 증거할 뿐이다.
내가 안 믿어지고, 느낌이 없어도
진리를 담대하게 선포하고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시니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주와 함께 승리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을 드리는 것이
멋진 기도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다.
아직 한국교회는 이 수준, 이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점점 이 장벽이 무너지고 있음을 본다.
의식이 깨어나고, 진리가 무엇인지 분변하는
능력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평신도, 젊은이, 처음 믿는 자들로부터
즉 아래서 위로 치솟아 오르는 그런 혁명이다.
목사, 장로들과 오래 교회를 다닌 자들은
부족하다, 연약하다, 죄인이다 해야
자기 지위나 공로가 올라가고 대접을 받기 때문에
절대로 이를 포기 하지 않고
자기 뿐 아니라 교인들에게도 이를 요구할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복음, 십자가와 부활의 공로를 헛되게 만드는
가장 악한 거역인줄도 모른다.
그러니 하나님의 응답은 있을리 없고
교회는 극도의 침체와 쇠퇴로 접어들고 있다.
과거에는 그런 기도가 겸손의 상징이고,
하나님에 대한 정성의 표시였다.
'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는
호소의 기도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는
참회의 기도가 통하는 때가 있었다.
그 때는 그것이 정성이었고,
하나님의 감동을 이끌어 내어 응답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말씀이 밝히 열렸고, 복음이 강력하게 울려퍼져서
이이상 그런 부정적이고 약한 기도나
자세는 합당치 않다. 아니 도리어 그런 기도는 이제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거나 어지럽히는 거역이 된다.
한 20년 이 복음을 강조하면서
끊임없이 두드렸는데도 여전히
'그래도.. 우리는 인간이고, 부족하니까...'하고 있다.
탓하는 것도 한 두번이다.
말로 해도 안되고, 악을 써도 안된다.
다른 길이 없다.
성령의 보증으로 부인할 수 없는 강력한 증거,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남으로 증명할 길 밖에 없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더 큰 정성이 필요하다고
참전계경은 나를 일깨운다.
멈추지 말고, 지극한 정성으로
사람과 하늘이 감동하도록 힘쓰라고 하신다.
그게 내가 관심을 두고 행할 일이다.
조급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때를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때에 맡기고 내가 할 일은
더 가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더 명확하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길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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