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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성誠 5체 제37사 至感(지감) (중요)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參佺戒經),성誠 5체 제37사 至感(지감) (중요)

柏道 2019. 3. 13. 13:03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45
 
몸의 순례를 결정했다.
Camino de Santiago
10년 전 처음 이 순례길을 접하고
마음에 품어 두었는데
자주 울림이 일어나다가 마침내 때가 왔다.
366사의 1/10을 통과하는 시점에,
몸의 순례지시가 내린 것이다.
하늘의 명이라 믿고 진지함과 설렘으로
도전한다.
영적인 지혜와 몸의 수행이 함께 가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이끄는 것은 영적 지혜다.
7 쓰임을 끝으로 4체 '불식'을 마무리했다.
이제 제 37事 誠의 5체로 넘어간다.
5체의 주제는 '至感(지감)'이며 9가지 쓰임이 있다. 
 
성誠 5체
至感(지감) : 감동에 도달함 
 
9용
1. 順天(순천) : 하나님께 순종함
2. 應天(응천) : 하나님께 응함
3. 聽天(청천) : 하나님의 명령을 들음
4. 樂天(낙천) : 하나님을 즐거워 함
5. 待天(대천) : 하나님을 기다림
6. 戴天(대천) : 하나님을 받듦
7. 禱天(도천) : 하나님께 기도함
8. 恃天(시천) : 하나님을 의뢰함
9. 講天(강천) : 하늘의 도를 익힘
 
일단 5체 '至感(지감)'부터 시작하자. 
 
至感者(지감자)는
以至誠至於感應也(이지성지어감응)이라
感應者(감응자)는
天感人而應之也(천감인이응지야)니
人無可感之誠(인무가감지성)이면
天何感之(천하감지)이며
人無可應之誠(인무가응지성)이면
天何應之哉(천하응지재)랴
誠而不克(성이불극)이면
與無誠同(여무성동)하고
感而不應(감이불응)이면
與不感無異(여불감무이)니라 
 
'지감이라는 것은
지극한 정성을 다함으로써
감동과 응함이 일어나는 것을 이르느니라
감동으로 응한다는 것은
하늘이 사람에게 감동하여 응하는 것이니
사람이 응할만한 정성이 없으면서
어찌 하늘의 응함을 자랄 수 있으리요
정성이 지극하지 아니하면
정성이 없는 것과 같으며
감동으로 응함을 얻지 못한다면
감동이 없음과 다름이 없느니라' 
 
대단한 도전이다.
all or nothing!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어정쩡 적당히 하려면 아예 하지도 말라.
그래서 하는 것은 철저히 하고,
안할 것은 아예 시작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하는 것이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늘이 주신 사명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오래 가지 못하고
결과도 좋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셔서 가는 길은 지치지 않고
허무하지 않으며, 갈수록 신나고 힘이난다.
매일 아침 성경을 묵상하고 강론하는 일이 그랬는데
다시 민족경전을 만나면서 그 불꽃이 타오른다.
내가 할 일은 이렇게 분명하다.
그 외에는 관심도 없고, 시작도 할 마음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만 두드리며 글을 쓰는 일만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상생활과 취미, 가꾸기, 배우기 등을 다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진리의 깨우침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속히 접는다.
제법 강렬한 끄는 것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미혹하는 것이 있다면
진위 여부와 위력을 테스트하기 이해 도전을 해 본다.
진리에 닻을 깊이 내린 후
확신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도전해 나가면
예외 없이 그 실체를 드러내고 물러간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생각에 확신을 심어주는 말씀이다.
하늘을 감동시킬 만한 정성...
그럼으로 마침내 하늘의 응함이 나와 가족,
그리고 이 땅에 강력하게 나타나는 역사,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셔서 불타오르는 소명이다.
그래서 자주 엘리야를 생각한다.


바알에 짓밟히고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과
부패와 타락으로 종노릇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 상황을 보고 엘리야는
목숨을 걸고 도전했고,
그 간절함과 지극한 정성에
하늘이 3년 6개월을 문을 닫아 비를 그쳤으며,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생명 건 대결에서
하늘이 불을 내려 응하였으니
그 얼마나 멋지고 통쾌한 역사인가?
물론 그 후로 좌절과 낙담도 겪었지만
결국은 세미한 음성을 듣고난 후
전무후무한 일로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였으니 참으로 멋진 인생이다.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데
글쎄 그것이 단순한 야심이 아니라
하늘이 주신 천명이 되어
엘리야 같은 기상과 용기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나설 수 있기를 늘 소망하고 있다.
그 과정 중에 이렇게 민족 삼대경전을 만나
한 구절, 한 구절 힘을 다해 풀어나가고 있으니
하나님이 감동하실 것으로 기대된다.
그 전에 사람이 먼저 감동을 해야 하는데
아직 그 점에서부터 낙제점수다.
아내가 상당히 날카로운 영성을 가지고
매의 눈처럼 항상 나를 살피는데
영 엉터리로 보였나 보다.
물론 성경 풀이하고 글 쓰는 것 하나는
인정하는데 다른 면에서는 전부 엉터리라서
속을 많이 썩였다.
나도 고집을 부리면서 '자유'를 주장했지만
그것으로는 도무지 감동이 없다.
그래서 늘 못마땅하고, 유치해 보였나 보다.
그러다 최근 민족경전을 풀이하면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지극한 정성을 쌓아가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기 시작했다.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말투가 다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 행에 대해서도
흔쾌히 동의하고, 준비까지 손수 도와준단다.
아마 막내로 늘 약하고 움츠린 모습을
보이는 나를 잘 알고 있으니
이런 도전이 큰 변화를 일으킬 기대를 하는것 같다.
말로는 해병대 장교 출신이라고
큰소리 치기도 하지만 나와 아내는 잘 안다.
내 안에는 작은 아이가 늘 눈치보고
불안해 하는 것을 말이다.
이번 기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처리하도록 순례길을 보내시는 감동이 온다.
아내와 자식들을 먼저 감동을 시켜야
하나님이 감동을 하실 모양이다.
확실히 이 말씀이 맞다.


어정쩡하게 드리는 정성은 정성이 아니다.
그런 정성에는 감동이 없기 때문에
하늘의 응함도 기대할 수 없다.
응함이 없는 감동은 감동도 아니다.
결국 하늘의 응함이 일어나지 않는
정성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지극한 정성...
이것만이 나와 가족, 그리고 우리 민족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