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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제 36사 慢他(만타)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제 36사 慢他(만타)

柏道 2019. 3. 12. 19:00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44
 
한 구절의 지혜,
길이도 아주 적당하다.
한 구절 풀이하고 좀 쉬었다가
다시 도전하여 한 구절 풀고...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이번에 주시는 말씀은 제 36事 誠의 4체
不息의 마지막 일곱번째 쓰임(4체 7용)
慢他(만타)에 대한 말씀이다.
 
誠 4體 7用 (성 4체 7용)
제 36사 慢他(만타) 
 
慢不存乎心也(만부존호심야)요
他念外事(타염외사)라
心一念在乎誠(심일념재호성)하고
誠一念(성일념)이
在乎不息則(재호불식적)하면
念外事安能萌動乎(염외사안능맹동호)리요
是以貧賤(시이빈천)이
不能倦基誠(불능권기성)하고
富貴不能亂基誠(부귀불능란기성)이니라 
 
'만(慢)은 마음에 있지 아니함이요
타(他)는 생각 밖에 있는 일이라
마음 속 생각이 오직 정성에 있고
정성을 담은 생각이 오직 쉬지 않음에 있으면
생각 밖의 일이 어찌 싹을 틔어
움직일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가난과 비천함이
정성을 게으르게 하지 못하며
부유함과 귀함이라도 그 정성을
어지럽히지 못하느니라' 
 
정말 집요하고 끈질기다.
한 주제를 두고 반복, 또 반복해서
그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기도록 하고 있다.
'不息,' 즉 쉬지 아니함의 주제가 또다시 강조된다.
이번까지 일곱 번인데 이것으로
不息에 대한 말씀이 마무리된다.
이처럼 다양한 내용으로 반복하니
공부를 하면서 저절로 마음에 새겨지는 느낌이다.
慢他, 원래 '慢'자는 교만, 태만, 오만 등에
쓰이는 글자로 배타적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풀이가 적절하다.
'他'는 타인, 타향 등 나 밖에 있는 것,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慢他'라는 말은
'나하고 상관 없는 외부의 것에는
배타적'이라는 뜻으로
오직 한가지에만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좀 더 확실하게 짚어 들어가는데
마음에 한가지 생각, 즉 정성만 있고,
그리고 그 정성에 대한 생각이 쉼이 없이 계속된다면 다른 것이 감히 우리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싹을 틔울 수 없다는 것이다.
지당하면서도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면 '생기이멸'의
순환원리를 따라 끊임없이 생각이
나고, 일어나 커지며, 흩어져 사라진다.
때로는 짧은 시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만,
때로는 제법 오랜 시간을 두고 마음에 자리를 잡고
떠나지 않아 애를 써야 쫓아 낼 경우도 있다.
큰 일이나, 걱정, 사고나 우환 등은
그 자체가 실체가 아니다.
그것에 대한 생각이 실재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데 많은 사람들이
외부적인 사건이 직접 영향을 주는 것으로 오해한다.
만일 외부 사건 자체가 힘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같은 영향을 받아야 할 것이다.
못에 찔리면 같은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처럼 몸에 직접 가해지는 고통이 아닌
사건들은 사람마다 그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고,
반응이 다르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심각하게 받아들여
오랜 시간을 고통을 당하거나 눌려 지내지만
어떤 사람은 그냥 툴툴 털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평상심으로 돌아간다.
몸이 겪는 문제는 어쩔 수 없다.
그에 맞게 조처를 해야 한다.
고통을 줄이는 약을 쓰든지, 아니면 치료를 해서
통증의 근원을 제거하든지... 이는 과학적인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 공통적인 처방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자주, 그리고 더 심각한 상황은
항상 우리 마음에서, 생각에서 일어난다.
거기서 사람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그로 인해 몸까지 상하며,
오랜 불행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래서 진리의 깨우침이 필요하고,
말씀을 따라 꾸준하게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전계경은 아주 효과적인 길을 제시하는데
이제까지 잘 따라와서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있다.
마음을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 집중한 정성을 쉬지 않고 지속하면
놀라운 일을 체험하게 되는데
쓸데없는 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생각 등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 불러서 싹을내고
자라게 해 놓고서는 또 그것을 제거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러면서 고통은 있는대로 다 당한다.
진리는 우리로 지혜롭게 살도록 이끈다.
그 지혜가 불필요한 고통과
번민을 근원적으로 예방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예방보다
뒤늦은 고통스런 수술을 선택한다.
얼마나 멋지고 지혜로운 말씀인가?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여, 진리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가득채우게 되면
가난과 비천, 부요와 귀함 등 자체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내 마음에 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상황은 아무 문제가 안된다.
남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그저 관심은 진리에,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더 가까이 갈까 하는 생각 뿐이니
그런 잡다한 것들, 의미없는 생각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바울의 유명한 고백을 우리는 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 4:12)
캬 기가 막힌 고백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 다음 구절을 좋아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
그러나 이 구절의 기초는 12절이다.
오늘 말씀과 같이 가난과 비천, 부유와 귀함 등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는
이유는 이것들이 무의미해서가 아니라
그 마음이 이들을 밖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진리와 하나님께 쉬지 않고 집중하는 정성을 드리면
자신이 부자인지, 거지인지도 신경쓰지 않게 된다.
이미 내 안에 성령이 계심을 아는데
그리고 그가 주시는 생명과 은혜가 너무나 풍성한데
쓸데없이 있다가 없어지고, 마음만 어지럽히는
재물이나 명예등에 관심을 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