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8 본문
性通功完(성통공완)을 꿈꾸며...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8
한 번 더 천궁, 혹 천국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삼일신고에 나오는 천궁은 그냥 신궁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옥의 반대되는 개념이나 장소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천궁은 말 그대로 신이 거하는 장소요,
각 신장들과 천상의 존재들, 그리고 성통공완을
이룬 사람들이 행복하게 거하는 곳이다.
지옥에 갈 존재들이 죄사함을 받거나,
구세주의 도움을 받아 은혜나 축복으로
들어가는 곳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나중에 자세히 연구해 보겠지만
삼일신고에는 '죄'의 개념이 없다.
죄를 지어 천국이 아닌 지옥을 간다든지,
죄로 인하여 신을 노하게 한다든지,
형벌을 받아야 한다든지 하는 내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율법이 따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울의 말대로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다'(로마서 4:15)
그래서 삼일신고에는 죄가 나오지 않는다.
율법이 없는데 무슨 죄가 있겠는가?
물론 5장 인간에 대해 설명하면서
선과 악의 구분은 있고,
上哲, 中哲, 下哲 등으로 구분하거나
성통공완을 이룬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등을 나눈다.
그러나 그것은 정죄가 아니라 수준의 차이를
나타낼 뿐이다.
어리고 약하여 악한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지
죄를 지어 죄인이라는 개념은 아니다.
지혜로 깨달아 복을 누리고
맑게 되며, 두텁게 되라는 권면은 있어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으니
꼭 지켜야 하는 율법이나 신의 명령 등은 없는 것이다.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8
한 번 더 천궁, 혹 천국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삼일신고에 나오는 천궁은 그냥 신궁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옥의 반대되는 개념이나 장소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천궁은 말 그대로 신이 거하는 장소요,
각 신장들과 천상의 존재들, 그리고 성통공완을
이룬 사람들이 행복하게 거하는 곳이다.
지옥에 갈 존재들이 죄사함을 받거나,
구세주의 도움을 받아 은혜나 축복으로
들어가는 곳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나중에 자세히 연구해 보겠지만
삼일신고에는 '죄'의 개념이 없다.
죄를 지어 천국이 아닌 지옥을 간다든지,
죄로 인하여 신을 노하게 한다든지,
형벌을 받아야 한다든지 하는 내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율법이 따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울의 말대로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다'(로마서 4:15)
그래서 삼일신고에는 죄가 나오지 않는다.
율법이 없는데 무슨 죄가 있겠는가?
물론 5장 인간에 대해 설명하면서
선과 악의 구분은 있고,
上哲, 中哲, 下哲 등으로 구분하거나
성통공완을 이룬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등을 나눈다.
그러나 그것은 정죄가 아니라 수준의 차이를
나타낼 뿐이다.
어리고 약하여 악한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지
죄를 지어 죄인이라는 개념은 아니다.
지혜로 깨달아 복을 누리고
맑게 되며, 두텁게 되라는 권면은 있어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으니
꼭 지켜야 하는 율법이나 신의 명령 등은 없는 것이다.
신은 그저 지혜와 능력과 사랑이 크고,
만물을 지을 뿐 아니라 다스리는 존재로서
존재하고 있을 뿐 인간에게 형벌을 내리거나
자연에 재해 등을 가져오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인간에 대해서도 가장 지혜로운 자(上哲)와
지혜로운 자(中哲), 지혜가 부족한 자(下哲)로
나눌 뿐 죄인과 의인으로 나누지 않는다.
특히 인간은 성통공완을 통해 신과 같은 수준으로
올라가도록 도전을 받는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삼일신고에 등장하는 신은
그냥 절대자로 존재하거나 생겨난 그런 신이 아니다.
인간 수준을 넘어, 신의 자리에 오르고
더 높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
근본에 이른 자를 신이라 한다.
그러니까 신은 만물의 근본이지만
활동하고 성취한 근본이다.
시작이라고 할 수 없는 시작,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만물의 근본이라면,
그 근본에 도달하여 근원 자체의 표상이 된 자가
바로 삼일신고의 신이며,
인간에 대해서도 이에 도전하고 있다.
성통공완을 통하여 이러한 존재로까지 올라가라는 것이다.
신을 초월한 절대자로 보지 않고,
인간완성의 결과로 보아 신과 인간은
연속성에 놓이게 된다.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되는 것과 같이 인간이 신이 되고,
신은 근원이 된다.
그래서 환인이나 환웅, 환검(단군)은
다른 인격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환인이 환웅이 되고, 환웅이 환검이 되며
이런 식으로 점점 그 계보가 내려가며
그 이후 수많은 후손들은 역으로
단군으로, 환웅으로, 환인으로
그 근원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인 것이다.
기독교의 구원관과는 완전히 다르다.
절대자 하나님이 존재하고
그 하나님과 피조물은 철저히 분리된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
순종을 해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거기서 영원한 복락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하늘의 뜻이요, 질서인데
이를 범함으로 인하여 죄인이 되고,
심판과 형벌을 받아야 할 존재로 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러한 인간을 긍휼히 여기사
자신과 동등한 아들을 보내어
인간 대신 심판과 형벌을 받게 함으로
면죄의 길, 회복의 길을 열어주셨고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그 믿음을 의로 여겨 의롭다 함을 받게 된다.
이처럼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은
다시 하나님의 법을 존중하여 지키나
이제는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해야 하는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당연한 자질이요 성품이기 때문에
즐겁게 지키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 땅에서도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다가 죽어서는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복을 누리며 산다.
이 둘을 자세히 비교해 보면
구원에 대해 비슷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린다는 점은 같다.
그런데 기독교의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은 영원한 개별자이다.
아무리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아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요, 사람은 사람이다.
절대로 이 선을 넘을 수 없다.
만일 이 선을 넘으려는 마음을 먹거나
시도를 하는 자체가 죄요,
심판과 파멸을 초래하게 된다.
아담과 하와가 바로 이 길을 걸었다.
그런데 삼일신고와 천부경 등에 나타난
신과 구원은 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람이 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신도 사람을 자기 자리로 이끌려고 한다.
신 자신이 무언가 좋은 것이나 장소를 마련하고
인간을 손님으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 자신의 경험을 인간에게 전수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길, 자신의 수준에
이르도록 이끌려 하는 것이다.
둘로 분리된 것은 이원론이다.
신과 인간이 영원히 분리된다면
그것은 이원론의 산물로 완전한 진리가 될 수 없다.
신이 가장 신답기 위해서는
자신을 우리 안에, 혹은 우리를 자신 안에 포함시켜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진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요한 복음과 로마서 등에서
강력하면서도 분명하게 증거 되었다.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모두가 다 돌아가며,
하나님은 우리 안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함으로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과 분리된 존재로 남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니 여전히 자기 안에서도
둘로 나뉜 갈등을 체험하고,
다른 사람들, 특히 자기 생각이나 사상,
종교가 다른 자들과는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러면서 구원을 말하고 있으니
그 한계가 너무 아프다.
우리의 목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 우리 자신이 사라져
하나님만이 남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나의 생각이나 노력은 무의미하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즉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것을 바로 '성통공완'이라 한다.
나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감히 신의 자리를 넘보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아버지요, 근원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안에 거하는 것,
그래서 나 자신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만이 남는 그런 구원을 향하여 가고 싶다.
물론 그 과정 속에 얼마동안
천년이 될런지, 만년이 될런지 모르나
천궁, 혹은 천국(메시야 왕국, 신천신지, 극락,
파라다이스, 이상향, 천상세계 등 뭐라고 하든지)에서
사랑하는 자들과 함께
지고한 복락을 누리는 혜택도 누리고 싶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그런데서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다.
나와 하나님이 따로 존재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출처] 삼일신고 풀이 28|작성자 푸른 오솔길
'천지인 공부 > 삼일신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30 -중요 (0) | 2019.03.13 |
---|---|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9 -세계편 (0) | 2019.03.13 |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7 -性通功完(성통공완)의 뜻(중요) (0) | 2019.03.13 |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6 (0) | 2019.03.13 |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5 -천궁편(천국) (0) | 2019.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