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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5 -천궁편(천국) 본문

천지인 공부/삼일신고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5 -천궁편(천국)

柏道 2019. 3. 13. 02:45

性通功完(성통공완)을 꿈꾸며...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5 

 천궁편(천국)

제 3 장은 천궁 편이다.
40자로 되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천국에 대한 내용이다.
어떤 장소이며, 누가 거주하고,
또 앞으로 거기에 들어갈 자들과
그들이 누릴 혜택에 대해 밝힌다.
기독교의 천국이나
불교의 극락, 다른 종교의 내세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 궁금하다. 
 
天 神國 (천 신국)
有天宮 階萬善(유천궁 계만선)
門萬德 一神攸居 (문만덕 일신유거)
群靈諸哲 護時 (군령제철 호시)
大吉祥 大光明處 (대길상 대광명처)
惟性通功完者 (유성통공완자)
朝 永得快樂(조 영득쾌락) 
 
하늘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늘 궁전이 있어
모든 좋은 것으로 계단을 삼고
모든 덕으로 문을 삼으니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요
천군천사들과 신령한 자들,
그리고 지혜로운 자들이 옹위하고 있다.
이는 너무나 아름답고 밝은 곳이라
오직 본성을 통하고
공덕을 완성한 자라야만이
그 안에서 영원한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기가 막히다.
읽고 듣기만 해도 마음이 황홀해진다.
성경에서 밝히는 천국과 완전 일치하며
다른 종교나 철학에서 말하는 극락이나 천당,
파라다이스, 낙원, 이상향 등과도 다를 바 없다.
물론 용어나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동서양의 사고방식이나 문화 차이로
생소한 용어들이 보이지만 조금만 설명을
덧붙이면 하등의 문제가 될 것 없다.
천국의 신장들은 천군천사로 보면 될 것이요,
선한 영적인 존재들과 지혜로운 자들은
성인들과 믿음의 승리자들, 선지자들,
사도들, 순교자들 등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선의 계단이나, 덕의 문은
유리바다, 열두 진주문 등으로 바꾸면 된다.
물론 표현의 상세함과 수려함은
성경의 묘사가 탁월하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전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유치하게 그런 문제로 다툴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거기 들어갈 존재들이다.

그러니까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기독교와는 판이하게 달라 보인다.
기독교에서는 오직 예수를 믿어
죄사함을 받은 자들만이 이러한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린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오직 性通功完(성통공완)한 자라야
여기서 영생복락을 누린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본성을 통하고,
공덕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로 갈 곳이 다르다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다른 종교에 구원이 없다고 단정하고,
다른 종교에서는 그렇게 들어가는 천국이라면
그게 무슨 천국이냐고 따진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극렬한 대립과 투쟁은
계속 될 것이고, 결국은 모두 탈락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식으로 서로 싸우고 다투는
모습 자체가 예수를 믿는 증거가 아니고,
성통공완의 증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나는 오직 성경진리를 믿고, 그 말씀을 따랐기
때문에 반드시 천국에 들어간다'고...

그럼 한 번 잘 들어가 보시라.
나는 안다.
지금 그런 얄팍한 수로 천국 간다고
줄 선 자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솔직히 나는 그 줄에 서고 싶지 않다.
만일 그런 자들을 쉽게 받아주는 천국이라면
초청장이 오더라도 거기 들어가는 것을 사양하고 싶다.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은가?
구역질 나게 역겨운 자들이 교회 안에
득실거리고 가운 입고, 명찰 달고 거들먹 거리는
자들의 입에서 이 딴 소리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게 무슨 천국인가?
그러면 또 무슨 변명을 하겠지.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가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면 자기 모순 아닌가?
다른 조건 없이 오직 '믿기만 하면'된다더니
그러면 나의 공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사함을 다 받아 천국에 들어가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더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결국 나의 공로, 적어도 착하고 진실된 마음이나
선한 삶의 증거 등이 있어야 된다면 완전
자가당착, 자기모순 아닌가?
그래서 지금 교인들의 표정을 보면 어둡다.
목사, 장로들... 오래 믿은 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그들은 안다.
스스로 잘 못 알고, 잘 못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이 문제를 가지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이 어디로 가는가 보라.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하고, 전도하고,
교회 짓고, 사람모으고...
고스란히 선행구원 쪽으로 가고 있다.
다시 바닷물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라는 구호가 499년 전에
울려 퍼졌는데 그 때는 달랐다.
그게 성통공완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외치는 '오직 믿음으로'는
알맹이 빠진 껍데기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법궤를 빼앗긴 상황이 지금 교회에서 발생하고 있다.
본질 빠진 구호에 목을 매고 있다가
영혼의 목을 매는 자들이 무수하게 나오고 있는데
여전히 자기 목을 매면서 남의 목도 매는 자들이 있다.
과연 이 일을 그대로 두고 볼 것인가?
그럴 수 없다.
종교개혁 500년을 거짓 후예들이 기념할 일 없다.
진정한 기념을 하려면 이 문제를 제대로 풀어야 한다. 
 
물론 성경에서도 이미 그 답을 다 말하였고
거짓에 속지 말라고 경고를 해 두었다.
그런데 너무 익숙해서 들리지 않는 자들에게
새로운 용어 '성통공완'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