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7 -性通功完(성통공완)의 뜻(중요) 본문
性通功完(성통공완)을 꿈꾸며...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7
性通功完(성통공완)이 답이라고 했는데...
왜 이것이 답이 되는지 설명을 해야 한다.
도대체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일단 문자 풀이부터 해 보자.
한문의 특성상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적어도 세가지 정도 비슷해 보이나, 차이가 있는 풀이는
1. 性을 通하고, 功을 완성한다
2. 性을 通하면, 功을 완성할 수 있다
3. 性을 通하게 되면, 功은 완성된다
정도로 나눌 수 있다.
1번으로 해석하게 되면 성과 공이 연관성이 없다.
성도 통해야 하고, 공도 완성해야 한다(의무)
2번으로 해석하면 성을 통하는 것이
공을 완성하는데 기초와 근거를 제공한다(가능)
그리고 3번 해석은 성을 통하는 것이 공을 완성하는 것을
보장해 주는 느낌이 든다(결과)
기독교의 믿음과 행함의 관계도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1. 믿음도 있어야 하고, 행함도 나타내야 한다 (의무)
2. 참 믿음을 가지면 행함의 증거를 나타낼 수 있다 (가능)
3. 참 믿음을 가지면 행함은 저절로 나타난다 (결과)
결국 또 논쟁만 발생한다.
모든 해석이 가능하기에
자기 해석이 옳다고 믿어 버리면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단 한가지 해결책은 셋 다 인정하고,
그 정당성을 모두에게서 확보하는 길 뿐이다.
그것이 가능하면 이 명제는 진리성이 증명되고
그렇지 못하면 인간의 이론이나 감추어진 비밀이 되어
싸움만 계속할 수 밖에 없다.
문장해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용어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는 길이 남는다.
물론 용어에 대한 해석도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 접근방식도 보편적 동의를 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 번 시도를 해 볼만 하다.
혹시 그러는 중에 천국에 가는 문제의 답이 나올 수도 있다.
자, 그럼 性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에 내재된 本性(본성)을 말한다.
파자를 하면 마음의 생명이다.
인간의 본질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性은 자연스럽게 그 근원이
하나님임을 말할 수 있다.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7
性通功完(성통공완)이 답이라고 했는데...
왜 이것이 답이 되는지 설명을 해야 한다.
도대체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일단 문자 풀이부터 해 보자.
한문의 특성상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적어도 세가지 정도 비슷해 보이나, 차이가 있는 풀이는
1. 性을 通하고, 功을 완성한다
2. 性을 通하면, 功을 완성할 수 있다
3. 性을 通하게 되면, 功은 완성된다
정도로 나눌 수 있다.
1번으로 해석하게 되면 성과 공이 연관성이 없다.
성도 통해야 하고, 공도 완성해야 한다(의무)
2번으로 해석하면 성을 통하는 것이
공을 완성하는데 기초와 근거를 제공한다(가능)
그리고 3번 해석은 성을 통하는 것이 공을 완성하는 것을
보장해 주는 느낌이 든다(결과)
기독교의 믿음과 행함의 관계도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1. 믿음도 있어야 하고, 행함도 나타내야 한다 (의무)
2. 참 믿음을 가지면 행함의 증거를 나타낼 수 있다 (가능)
3. 참 믿음을 가지면 행함은 저절로 나타난다 (결과)
결국 또 논쟁만 발생한다.
모든 해석이 가능하기에
자기 해석이 옳다고 믿어 버리면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단 한가지 해결책은 셋 다 인정하고,
그 정당성을 모두에게서 확보하는 길 뿐이다.
그것이 가능하면 이 명제는 진리성이 증명되고
그렇지 못하면 인간의 이론이나 감추어진 비밀이 되어
싸움만 계속할 수 밖에 없다.
문장해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용어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는 길이 남는다.
물론 용어에 대한 해석도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 접근방식도 보편적 동의를 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 번 시도를 해 볼만 하다.
혹시 그러는 중에 천국에 가는 문제의 답이 나올 수도 있다.
자, 그럼 性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에 내재된 本性(본성)을 말한다.
파자를 하면 마음의 생명이다.
인간의 본질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性은 자연스럽게 그 근원이
하나님임을 말할 수 있다.
무극 차원으로 들어가면 말이 안되고
만물의 창조주요, 근원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본성이자, 우리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性을 通한다는 말은
'우리의 본성을 안다'
'우리의 본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고,
하나님의 본질 그 자체이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믿는 문제가 아니다.
깨닫고 아는 문제, 이해하는 문제이다.
믿음은 알기 전까지만 필요하다.
앎이 오면 믿음은 필요없다.
믿음 수준에서는 의심과 불안이 따르게 된다.
미혹의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알게 되면 의심과 불안은 사라진다.
미혹할 수도, 당할 수도 없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했다.
믿는 것은 앎으로 나아가도록 여는 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앎으로 나아가지 못한 믿음은 미생이요,
그것은 생명력이 약하다.
性을 通한다는 말은 우리의 본질과 본성이
무엇인지 안다는 말이다.
그러면 세가지 해석이 다 맞게 된다.
반드시 性을 通해야 한다.
즉 우리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를 알게 되면,
공을 완성할 수 있으며
공은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듣고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됨을 알게 되면
행함을 나타낼 수 있고, 행함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다음으로, 功에 대한 해석이다.
이를 공덕으로 해석해도 좋고, 선행노력이라 해도
그러면 세가지 해석이 다 맞게 된다.
반드시 性을 通해야 한다.
즉 우리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를 알게 되면,
공을 완성할 수 있으며
공은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듣고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됨을 알게 되면
행함을 나타낼 수 있고, 행함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다음으로, 功에 대한 해석이다.
이를 공덕으로 해석해도 좋고, 선행노력이라 해도
좋으며, 성공으로 해석해도 좋다.
功을 완성한다 했으니 성공, 즉 인간완성이다.
성을 通하면, 즉 우리의 본성이 하나님으로부터
功을 완성한다 했으니 성공, 즉 인간완성이다.
성을 通하면, 즉 우리의 본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고 하나님의 본질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착하게 살아야 할까? 착하게 살게 될까?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착하게 살아야 할까? 착하게 살게 될까?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노력하게 될까?
눈치 빠른 사람은 이쯤에서 답을 내어 놓을 수 있다.
무엇인가?
그 자체로 공덕의 완성이요, 인간완성의 성취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나의 본성이 하나님의
눈치 빠른 사람은 이쯤에서 답을 내어 놓을 수 있다.
무엇인가?
그 자체로 공덕의 완성이요, 인간완성의 성취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나의 본성이 하나님의
본질과 같다는 것... 그것이 가장 완전한 공덕이요,
인간완성의 극치다.
그러니까 무엇을 할 필요가 없는 존재임을
인간완성의 극치다.
그러니까 무엇을 할 필요가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좋은 일을 하지말라거나,
해도 소용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고 싶으면 하라.
그러나 그것이 좋아서, 혹은 자연스러운
그렇다고 좋은 일을 하지말라거나,
해도 소용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고 싶으면 하라.
그러나 그것이 좋아서, 혹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나타나야지 의무나 책임감에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노자의 '무위자연'이 꼭 맞는 말이다.
공부를 좋아서 하는 사람은
안하는 사람 때문에 속상하지 않는다.
남을 돕는 일이나, 인격을 닦는 일도 마찬가지다.
깨달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행위들은
다 아름답고 완전하다.
자기는 하는데 남들은 안한다고 속이 상하거나
마음이 불편하면 '性'을 '通'하지 못한 증거이다.
남과 비교를 하여 자랑과 열등감에 빠지거나
남의 행동을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불안하여 이렇게 해야 한다,
저러면 안된다는 규정을 자꾸 늘어 놓는 것도
성을 通하지 못한 증거이다.
그러면 이런 비판을 할 것이다.
사람은 그냥두면 악한 일을 하기 때문에
교육과 징계를 통하여 선한 일을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이제까지 이 논리가 전적으로 옳다고 다들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논리의 근거도 자세히 보라.
性을 通하지 못한 자의 말이다.
인간의 본성을 하나님으로부터 찾지 못하니
인간은 법과 형벌로 교화를 하고
교육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性을 通한 자라면 다른 의식을 가지고
다른 말을 할 것이다.
노자의 '무위자연'이 꼭 맞는 말이다.
공부를 좋아서 하는 사람은
안하는 사람 때문에 속상하지 않는다.
남을 돕는 일이나, 인격을 닦는 일도 마찬가지다.
깨달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행위들은
다 아름답고 완전하다.
자기는 하는데 남들은 안한다고 속이 상하거나
마음이 불편하면 '性'을 '通'하지 못한 증거이다.
남과 비교를 하여 자랑과 열등감에 빠지거나
남의 행동을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불안하여 이렇게 해야 한다,
저러면 안된다는 규정을 자꾸 늘어 놓는 것도
성을 通하지 못한 증거이다.
그러면 이런 비판을 할 것이다.
사람은 그냥두면 악한 일을 하기 때문에
교육과 징계를 통하여 선한 일을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이제까지 이 논리가 전적으로 옳다고 다들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논리의 근거도 자세히 보라.
性을 通하지 못한 자의 말이다.
인간의 본성을 하나님으로부터 찾지 못하니
인간은 법과 형벌로 교화를 하고
교육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性을 通한 자라면 다른 의식을 가지고
다른 말을 할 것이다.
각자에게 그 자신의 본성과 근원이
하나님 됨을 깨달으라고 격려하고 도울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만 확실하게 인식이 되고, 주위로 이러한 의식이
퍼져나가면 그 자체로 功이 완성된 것이다.
예수가 이를 증거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이 질문하기를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자 동문서답 같은 답을 한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요한복음 6:29)
그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런 자들이 대다수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다는 말은
바로 性을 通한다는 의미와 같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처럼 우리도 그의 형제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자체로 우리의 구원은 완성된다.
천국 들어가는 것?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 들어 가는 것이 무엇이 이상한가?
본문에서 그처럼 아름답고 영화로운 천궁에
오직 성통공완한 사람만이
거기서 영원한 즐거움을 누린다고 했는데
이제 누구를 말하는지 자명하지 않은가?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사족을 단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자체로 우리의 구원은 완성된다.
천국 들어가는 것?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 들어 가는 것이 무엇이 이상한가?
본문에서 그처럼 아름답고 영화로운 천궁에
오직 성통공완한 사람만이
거기서 영원한 즐거움을 누린다고 했는데
이제 누구를 말하는지 자명하지 않은가?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사족을 단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에서
이 증거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면
무엇을 하든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상관없이 자신의 자각의식이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내게는 하나님이 계신다.
나의 본성은 하나님의 본질과 같다'고
외칠 수만 있다면, 이미 그 자체로 천국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리고, 던져버리라.
오직 이 한가지 의식만 가지고 있으라.
그러면 이승, 저승 구분도 필요 없고,
심지어 천국 간다, 못간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을 것이다.
진리는 이렇게 간단한데, 이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쉽지 않은 이유는
정말 어려워서가 아니라
가장 근본을 붙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출처] 삼일신고 풀이 27|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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