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32사 休算(휴산)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40
40번째 글이다.
사실 오늘 공부가 계산하지 않음에
대한 것인데 늘 이렇게 수를 세고
얼마나 했는지 의식을 한다.
수십년 동안 교인 수 세는 일을
해오신 우리 교회 90세 은퇴 여전도사님이
늘 사람 수에 민감하셔서
제발 세는 일 좀 그만하시라고
신신당부를 드렸다.
그래도 늘 수를 세시던 습관이
몸에 배여 그게 잘 안되신단다.
오늘 공부가 그런 사람 수 세는 것도
금하는 것인지 한 번 살펴보자.
제 32事 誠의 4체 가운데
세번째 쓰임(4체 3용) 休算(휴산)에
대한 말씀을 공부한다.
誠 4體 3用 (성 4체 3용)
제 32사 休算(휴산)
休歇也(휴헐야)요
算計也(산계야)라
有欲而爲誠者(유욕이위성자)는
輒計自起日(첩계자기일)
曰迄于幾時(왈흘우기시)하여
抑未有感歟(억미유감여)하니
此與不誠同(차여불성동)이라
夫誠之不息者(부성지불식자)는
不算誠之起年(불산성지기년)하며
又不算誠之終年(우불산성지종년)이니라
'휴(休)는 쉬는 것이요
산(算)은 계산하는 것이라
바라는 바가 있어서
정성을 드리는 사람은
시작하는 날과 마치는 시간을
얼른 계산을 하여
그동안 무슨 감응이 있을까를 생각하니
이는 정성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무릇 정성다하기를 쉬지 않는다는 것은
정성을 시작한 해도 계산하지 않고
정성을 마치는 해도
또한 계산하지 않느니라'
상당히 어려운 말씀이다.
물론 내용상으로는 공감과 이해가 간다.
그러나 실제 생활까지 끌어 들이기는
쉽지 않은 경지이다.
사람은 늘 계산을 하고 산다.
그리고 그런 계산을 잘 하는 사람을
똑똑하다고 하고, 인생을 잘 사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수능 시험에서도 수학이 주요 과목으로
포함되고, 계획을 짤 때도 치밀하게
시간사용계획과 손익계산을 해 보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상식이다.
사실 모세도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다(시편90:12).
그게 지혜의 마음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성경에는 아예 수를 세는 '민수기'(Numbers)라는
책이 토라 속에 들어있다.
복음서도 보면 달란트 비유, 드라크마,
잃은 양, 병든 햇수, 치유 받은 자의 수,
오병이어 기적에 참가한 사람 수와
남은 광주리 수....
온통 수를 세는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성경만큼 수를 많이 말하는 경전도
잘 없을 것이다.
그럼 오늘 이 말씀과 성경의 가르침이
상반된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런 식으로 갖다 붙이고, 대립을 시키는 것은
바른 해석법이 아니다.
사실 참전계경의 구성 자체가 얼마나
치밀한 수를 통한 조직인지
우리는 늘 보고 있다.
8리로 나누고, 또 그 밑에 하부 제목과
그에 딸린 소제목의 가르침들...
이 모두가 일목요연하게 앞 뒤를 보고
비교를 해 가면서 공부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이 세상의 삶은 온통 수와 관련되어 있고,
수학에 밝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되는 것이
이세상 삶이다.
따라서 지혜로 손익도 계산하고,
인생살이도 계수하면서
그 때에 맞는 공부와 일을 해야 한다.
여기서 어긋나게 되면 엄청난 문제가 발생한다.
수에 밝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비슷한 강조를 본 것처럼
모든 것에 그렇게 수를 적용해서는 안된다.
특히 정성이나, 하나님에 관련한 일에는
수를 세는 것이 들어가는 것은
본질과 중심을 이탈한 일이 되고 만다.
바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거나,
정성을 올리는데
시간을 본다든지, 앞 뒤를 계산함으로
그 마음과 정신이 이탈하게 되면
바로 그것이 중심을 잃은 것이요,
본질을 잃은 것이 되기 때문에
엄하게 금하는 것이다.
물론 하지 말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더 신경쓰여서 거기에 매이게 된다.
본문의 핵심은 그만큼 정성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도 잊고, 장소와
자신도 잊어버리는 경지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과 연합되는
체험을 하기 때문이다.
찬송가에도 이런 경지를 나타낸
구절이 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정말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것을 잊는다.
시간 가는 것, 어디에 있는 것,
심지어 무엇을 하는지 조차 다 잊는다.
진리와 관련해서는,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이런 경지로 들어가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는 이유가
자기의 바라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 자체가 계산이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하다.
그런 사람은 계속해서 계산을 한다.
얼마 동안 했는데, 얼마나 헌금을 했는데,
몇 년을 봉사했는데..하면서
손익분기점을 찾는다.
그러니 온 마음을 싣지 못한다.
자기가 예상한 결과가 올 것 같지 않으면
발을 빼야 하기 때문에
온전한 헌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그런 태도가 틀렸기 때문에
바라는 바도 얻지 못한다.
그러면 '봐라, 공연한 헛수고 했네'하면서
탓을 하며 다른 길을 찾는다.
계산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게 살아왔고, 또 두려움과 욕심이 그를
조장하기 때문에 싸워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답은 한가지다.
사랑하면 된다.
진리, 하나님이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은
사람이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그것부터 계산하는 사람은 이미 틀렸다.
이런 보편적인 의식을 가로 막는 것이
두려움이요, 욕심이다.
따라서 이 두려움과 욕심과 직접 대결해서
이길 사람은 없다.
이제껏 공부한 것처럼 정성을 드리는 것이다.
진리에 쉬지 않고 정성을 드리고,
하나님을 향해 끊임없이 정성을 드리는 가운데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체험...
오직 하나님만 남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체험을 한 자는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진다.
그럴 때 막는 것이 계산이라는 것을 깨닫고
계산이 들어오는 것을 금하는 것이다.
본문을 보면 바른 정성을 드리는 사람은
날과 시간이 아니라 시작과 끝의 '해'까지 잊는다고 한다.
사실 날과 시간은 기억이 어려워 잊을 수 있다.
그러나 햇수를 잊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오랜 기간 정성에만 집중했다는 증거다.
나도 모르게 자꾸 햇수가 나오고,
언제 무엇을 했는지 쉽게 의식이 된다.
그만큼 정성에 소홀했다는 의미다.
바울은 그런 고백을 했다.
'..뒤에 한 일은 다 잊어 버리고
앞만 보고 달려간다'고...
아마도 이런 경지에 이른 자인가 보다.
나도 계산을 멈추는 훈련을 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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