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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29사 不息(불식)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29사 不息(불식)

柏道 2019. 3. 12. 18:48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7 
 
은혜 가운데 3체를 마쳤다.
이제 誠(성)의 네번째 줄기,
즉 4체 不息(불식)으로 넘어간다.
366事 중에는 29번 째다.
여기에는 7가지 쓰임이 있다. 
 
1. 勉强(면강) : 힘을 다해 애씀
2. 圓轉(원전) : 둥근 공처럼 구름
3. 休算(휴산) : 계산을 멈춤
4. 失始(실시) : 시작을 잊음
5. 塵山(진산) : 티끌모아 산을 이룸
6. 放運(방운) : 넓히고 움직임
7. 慢他(만타) : 딴 생각을 없앰 
 
일단 4체 不息(불식)부터 시작한다.
 
不息者(불식자)는
至誠不息也(지성불식야)라
不息及無息(불식급무식)이니
各自有異(각자유이)하니
基在道力之奮蹲(기재도력지분준)과
人慾之消長(인욕지소장)하여
纖毫之隔(섬호지격)이
相去天壤也(상거천양야)라 
 
'불식(不息)이란
지극한 정성으로 인해 쉬지 않음을 이르느니라
쉬지 않음과 쉼이 없음은
각각 다른 의미니라
이는 도의 힘이 펼침과 거둠을 계속하는 것과
사람의 욕심이 무너져 사라짐이
다른 것과 같이
처음에는 그 차이가 티끌만큼 작지만
나중에는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지느니라' 
 
절묘하기 이를데 없다.
이처럼 명확하게 구분을 해 내다니...
정말 놀라운 지혜다.
일단 새로운 줄기로 시작하는 '불식'의 의미부터
설명한다.
불식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쉬지 않음'이라는 뜻인데
그렇다고 끊임없는 노동을 하는
그런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만일 그렇게 쉼없는 삶이라면 그야말로 지옥일 터...
인간의 삶의 본질이 '쉼'에 있고,
평안과 안식에 있음을 생각하면 이 또한 역설적이다.
그러니까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크게 오해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쉬지 않음'은 매우 긍정적인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지극한 정성에 이르면 쉼을 잊어버리고,
쉴 생각도 없어지는 경지다.
사랑에 지치는 일이 있는가?
기쁨이 무디어지고 그친다면
그것은 참된 기쁨이 아니다.
우리 인생이 이 땅에서 경험하는 것은
모두 상대적이다. 
 
추석 명절이라고 반갑게 맞이하며 환하게 웃던 얼굴이
불과 며칠 만에 서운함과 아쉬움으로 
얼굴로 어두워지는 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이세상의 삶이다.
그래서 노동과 쉼의 반복이 지속되다 보니
진정한 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인생의 무상한 반복을 솔로몬은
'헛되고 허무하다'고 정의했다.
'..해는 떳다가 지며 그 떳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이런 허무함을 깊이 자각하게 되면
영원한 안식과 행복을 찾게 되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참된 안식은
일을 아니하고 영원히 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본문에서 말하듯
'쉬지 아니함'으로 나타난다.
기가막힌 역설이다.
정성이 지극하면 쉬고 싶은 마음이 없다.
쉬는 것이 더 힘들고 괴롭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쉬라니 말이 안된다.
사랑은 더 깊어 가는 것이 행복이요,
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참 안식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이 세상과 우리 자녀들을
너무 사랑하시는 나머지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고 예수는 증거했다.
하나님이 쉬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러며 이미 죽은 신이다.
너무 사랑해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행복한 존재가 없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가고,
하나님을 닮으려 할까?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님보다 행복한 존재,
하나님보다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존재가
없기 때문에 이세상의 허무함을 아는 자들은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본문에서는 '쉬지 아니함'과 '쉼이 없음'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쉬지 아니하는 것은 능동적인 태도다.
쉴 수 있지만 안 쉬는 것이다.
안 쉬는 것이 쉬는 것보다 더 행복할 때 그렇게 한다.
하늘을 향한 정성이 발동하면
이런 현상이 생긴다.
안 쉴 때가 더 행복하다.
다만 쉬는 것은 육신의 한계, 의식의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쉬는 것이다.
쉼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위해 쉬는 것이다.
이게 바로 진정한 인생의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도는 쉬지 않고
펼침과 거둠을 반복하고 있다.
하나님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계신다.
반면, 쉼이 없는 것은 반대다.
이것은 극히 부정적인 상태이다.
본문에서는 인간의 욕심이 끊어져
그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쉼이 없음'으로 정의한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좌절과 절망으로 인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해도 안되고, 얻어 봐야 헛되고
그야말로 인생 팔고에서 말하는
구부득고요, 오음성고의 상태에 빠지다 보니
모든 의욕을 잃고 낙담하여 쳐진 상태...
이 상태가 바로 '쉼이 없음'의 상태이다.
첫 모습은 비슷할 수 있다.
도가 펼쳤다가 움츠려 잠시 조용하니
아무 동작 없이 쉬는 것 같다.
의욕이 끊어져 아무 일 안하고
퍼져 있는 상태도 처음에는 쉬는 것 같다.
그러나 지나면서 그 차이는 천지차이를 낸다.
하나는 끊임없는 움직임 속의 한 동작으로
잠시 멈춘 것이나,
다른 것은 죽음의 정지이니 그 어찌 같다고
하겠는가?
살아있는가 죽었는가의 차이는 간단하게 확인이 된다.
지금 잠을 자는 것은 활동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쉼도 일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죽은 것은 활동의 끝이다.
그 쉼은 쉼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죽음이다.
그런 상태의 의식은 무한한 고통과 번민을
느끼게 되어 있다.
그래서 쉬지 못하며, 그 쉬지 못하는 상태를
지옥이라고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라.
지금 쉼이 활동의 한 단면인가?
아니면 점점 쇠하여 죽음으로 이르는 느려짐인가?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아는 일과 명을 행하는 일에 쉼이 없다.
참고로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자.
그가 이 말씀의 의미를 삶을 통해 잘 드러내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13-14)
멋진 삶을 산 자의 당당하고 아름다운 고백이다.


푸른오솔길마을 블로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