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26사 在目(재목)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26사 在目(재목)

柏道 2019. 3. 12. 18:39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4
 
완전 날개 달았다.
신나게 잘 나간다.
내친 김에 하나 더 묵상한다.
제 26事 誠의 3체 가운데
네번째 쓰임(3체 4용) 在目(재목)에
대한 말씀이다.
 
誠 3體 4用 (성 3체 4용)
제 26사  在目(재목) 
 
在目者(재목자)는
不思誠之所在而(불사성지소재이)고
常在於目也(상재어목야)라
目之於視物(목지어시물)에
萬物不見(만물불견)하나니
但誠意在目則(단성의재목즉)이면
近物不知名(근물부지명)이나
遠物如畫圖(원물여화도)니라 
 
'눈에 있다는 것은
정성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할 것 없이
항상 눈 앞에 어려있음을 이르느니라
눈이 사물을 볼 때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으되
다만 정성에 대한 의지가 눈에 어려 있으면
가까이 있는 것은 이름도 모르나
멀리 있는 것을 그림같이 볼 수 있느니라' 
 
이 느낌 안다.
최백호의 '보고싶은 얼굴' 노래처럼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사랑하게 되면 항상 눈 앞에 어른거린다.
치울 수가 없고, 비켜갈 수가 없다.
박인환 시 '세월이 가면'에도
멋진 시가 나온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입술 그 눈동자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참 멋있는 표현들이다.
젊을 때야 이런 뜨거운 사랑도 해보고,
그 때문에 몸살도 앓아 볼만하다.
그런 기회를 주셨는데 못해보고 지나면 딱하다.
나이가 좀 들어서
불혹도 넘고, 지천명의 나이가 되면
이제 그 뜨거운 열정을 진리로, 하나님으로
향해야 한다.
오늘 카스토리에 올라온 글 하나를 보고
댓글을 달았다.
글 제목이 '두려움이 오면 하나님을
찾으라는 신호다'였는데
좋은 글이라며 아는 사모님 한분이 올렸다.
아멘, 좋다는 댓글이 여럿 달려 있었다.
거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두려울 때 하나님을 찾지 마시고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시면
두려움이 없어진답니다.
사모님, 이제 수준을 좀 올리셔야지요'
이런 말 해도 될 만큼 잘 아니 괜찮을 거라 믿는다.
한국교회 수준이 이렇다.
실컷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두려움이 오면
그제야 허둥지둥 하나님을 찾는다.
물론 나쁠 것은 없다.
그래도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주시니 말이다.
그럼 잘 나가면 하나님 잊고 잘 살려고?
이게 답답한 거다.
참전계경을 통해 각성이 일어나길 바란다.
하나님이 항상 내 눈앞에 있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편 16:8)
항상 내 앞에 모신다는 의미가
오늘 주신 말씀과 같은 의미이다.
어떤 시인은 이런 멋진 표현도 했다.
'네가 내 곁에 있어도 나는 그립다'
참 멋지다.
너무 사랑하고 좋은 나머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강아지들을 보면 너무 귀여워서
학대(?)수준까지 나간다.
꼭 끌어안고, 뒤집고, 던지고,
누르고, 비비고 난리다.
얘들도 좋아서 오줌까지 지릴 정도다.
하나님을 앞에, 위에, 뒤에, 옆에 늘 모시는 것으로
양이 차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결국은 나를 하나님 안으로,
하나님을 내 안으로 뛰어 들게 한 것이
성령께서 하신 일이다.
하나님도 우리를 너무 좋아하셔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한다.
그런데 엉뚱한 일로 바빠서
잊고 살다가, 급할 때나 찾는다면
아마 많이 섭섭하실거다.
정말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맛보아 알게 되면
눈에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무엇을 보아도 거기서 하나님이 보인다.
본문에서 '가까이 있는 것은 이름을 모르나,
멀리 있는 것이라도 그림처럼 본다'는 의미도
이와 같다.
이름이 뭔지 몰라도 상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보는 것이 목적이지
이름 알아서 뭐하겠냐는 뜻이다.
동시에 멀리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도
환하게 볼 수 있게 되는데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정성이
육신의 시력한계까지 극복한다는 것이다.
즉 눈이 못보는 곳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무슨 신통력을 얻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는 자,
하나님을 극진히 정성을 다해 섬기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말한다.
그의 눈 앞에는 항상 하나님이 계신다.
잠시라도 잊을 수가 없다.
하나님도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신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시137:5)
'여인이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5)
하나님과 우리는 이런 사랑을 주고 받는 사이다.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