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25사 貼膺(첩응)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3
밥보다 더 자주 먹는다.
그만큼 맛나고 재미있다.
또 무슨 말씀이 이어질까?
이번에는 제 25事 誠의 3체 가운데
세번째 쓰임(3체 3용) 貼膺(첩응)에 대한 말씀이다.
생소한 말이지만 좋은 말씀일테니
두렵지 않다.
誠 3體 3用 (성 3체 3용)
제 25사 貼膺(첩응)
貼膺者(첩응자)는
貼乎膺而不離也(첩호응이불이야)라
夫天然之誠(부천연지성)은
神於之(신어지)하고
靈包之(영포지)라
身載之(신재지)하여
牢牷於膺(뇌전어응)이면
體寒而膺熱(체한이응열)하니라
'첩응(貼膺)이란
가슴에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아니함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타고난 그대로의 정성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성령께서 감싸주시느니라
몸에 정성을 담아
가슴속에 온전히 잘 간직하게 되면
몸은 추워도 가슴은 뜨거워지느니라'
역시 그렇다.
마지막 문구처럼 가슴이 뜨거워진다.
아름다운 진리를 들으면 그냥 행복해진다.
오랫동안 체험하면서, 그 즐거움과 힘으로 살아왔다.
성경을 연구하면서 얻었던 즐거움이 재현되니
행복하고 감사하다.
첩응, 처음 듣는 용어다.
의미를 보니 아름답다.
가슴에 꼭 품는다는 의미다.
밖에서 받아서 품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주셔서 있게 하신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고이 간직하며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 한다.
이런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게 되면
말씀 그대로 믿게 된다.
내 느낌이나 이성은 동의를 하지 않아도
그것들에 끌려가지 않는다.
말씀이 진리요, 진리가 실체이기 때문에
이성과 감정을 넘어선다.
느낌이 전혀 오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다.
굳이 그 이유를 말하자면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
느낌이나 감정은 뒤로 물러세우고,
진리의 말씀을 중심으로 받아 새기게 되면
이런 말씀들이 다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안 믿어진다면 믿으려고, 알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떠한지 살펴야 한다.
사랑함이 약하면 말씀도 믿을만 하지 않게 된다.
사랑하면 믿음은 저절로 생긴다.
우리에게 심겨진 정성은
이미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고 계신다.
성령께서 지키고 보호하시며 감싸신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이를 믿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몸에까지 임하도록
가슴으로 꼬옥 끌어안아야 한다.
마음은, 미혹된 자아는 끊임없이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마음에 맡기면 안된다.
우리 몸에 싣고, 가슴에 꼬옥 간직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몸보다 더 중시한다.
'비록 몸은 가지 못해도 마음은 함께 있다'
'마음만은 변치 않는다'는 식의 말을 많이 한다.
이런 말들은 다 거짓말이다.
정말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면
몸이 간다.
그러니까 몸이 가 있는 곳이 진짜 마음이 있는 곳이다.
가고는 싶은데 다른 일로 바빠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서 라고 변명을 한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일이면 몸이 가있다.
혹 재물이 몸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것이다.
성경이 이를 정확하게 지적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느니라'
그래서 돈을 따라가 보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고,
몸이 어디에 있는지 보면 마찬가지로
그의 중심이 어디에 놓였는지 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몸이
가 있지 않으면 거짓말이요,
가장 귀한 것으로 내어 놓지 못하면
마찬가지로 최고가 아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대하니
당연히 하나님의 사랑이나
은혜에 대해서도 머뭇거리며 의심한다.
자기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에 목숨을 맡긴 자는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두려움 없이 그 말씀을 실천에 옮긴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을 존경한다.
사자굴의 다니엘, 풀무불에 던져진 세친구,
골리앗 앞에 선 다윗, 특히 십자가 지신 예수...
매우 존경하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막상 너도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면
주저하거나 뒷걸음친다.
부자 청년에게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했더니
많은 재물 때문에 물러갔다.
목회를 하면서 다들 여기서 걸리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단호하게 선포했다.
'그 딴 식으로 믿으려면 그만두라'고..
그랬더니 거의 다 떨어져 나갔다.
하나님은 그렇게 대우받으실 분이 아니다.
물론 어려운 것, 힘든 것 왜 모르겠는가?
먹고 사는 문제, 자식들, 명예...
누구든 똑 같다.
다 걱정되고, 다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진리를 버리고,
하나님을 부정한다면 그 삶은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항상 내 품에 칼을 품고 산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약해지면
내가 내 목을 칠 작정으로 산다.
그래서 혹시 주위에 그런 자들이 있는지
진지하게 살펴본다.
참 찾아보기 어렵다.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너무 행복하단다.
하지만 아무도 없으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한다.
참 멋있는 말로 마음에 새겨두고 있다.
바울의 고백을 자주 사용한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역설적이다. 저주를 선언하면서까지
사랑의 당위성을 증거한다.
진리는 이렇게 품어야
그 빛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나님이 가자고 하면 주저없이
북극이라도 가야 한다.
얼음덩이 속에서 죽을만큼 추워도
그 가슴은 뜨거운 사랑 때문에
몸의 추위도 잊을 것이다.
마지막 구절이 바로 그 이야기다.
'몸은 추워도 가슴은 뜨거워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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