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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라. 팔괘론 본문

천지인 공부/천부경

라. 팔괘론

柏道 2019. 3. 5. 04:48


라.  팔괘론

1) 간추림
<천부경>의 수체계는 오행 다음에 팔괘가 나오도록 되어있다. 지금까지 설명된 오행이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대삼합육"의 과정, 즉 삼원 육률의 과정에 해당한다면, 팔괘는 "육생칠팔구운 삼사성환 오칠일묘연"의 단락에 해당하는 역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구절 중에서 "여섯이 일곱 . 여덟 . 아홉을 낳아 운행한다"는 부분을 오행론에서 설명된 부분을 이용하여 설명하자면, "오행이 구궁을 이루어 운행한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서 [구궁(九宮)에 일곱 . 여덟 . 아홉의 이치가 모두 들어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부분의 마지막 글자인 [운(運)]은 뒤의 "삼사성환 오칠일묘연"에도 걸리는 글자이므로, 구궁이 실제로 담고있는 내용은 <천부경>의 역리 전체이다. 이점은 구궁도에 사상오행의 깊은 이치까지가 들어있음을 알고나면 수긍할 수 있게된다.
아무튼 이 단락에서 핵심은 [七八九]이다. 이 [일곱 . 여덟 . 아홉]은 다른 말로 바꾸면 [하늘 . 땅 . 사람]이 된다. 기존의 역학에서는 [七八九]가 [天地人]을 상징하는 경우가 별로 없으나, 천부역에서는 삼극이 세 번의 꼴바꿈을 거치는 것으로 이해되며, 그 완성형이 구궁팔괘로 나타나는 것이다. 
기존의 역학은 지금까지 설명한 천부역의 내용은 대부분이 상실되고, 이 구궁팔괘만이 남아 사용된 것으로 보아도 될 정도이다. 지금까지 설명된 내용에서 지금의 역학체계와 현저히 다른 부분이 육률오행이었으니, 상실된 부분도 그 부분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아무튼 구궁팔괘는 육률에서 생성된다. [6]이 태극의 지위에서 삼극을 종합하여 완벽한 통일체계를 이룬 후, 그곳에서 다시 팔괘구궁의 형식이 출발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귀장역(龜藏易)이다.
귀장역에 의해 형성된 구궁팔괘는 완벽한 시공통합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어렵긴 하지만 일단 알아두면 저승에 가서까지도 써먹을 수 있는 최고급 진리이다. 어렵다고 너무 불평하지 말고 꼭 이해하고 넘어갈 것을 권하는 바이다.

2) 소성괘론

① 팔괘의 공간론
이 단락에서 본래 다루어야 될 대상은 소성괘이다. 소성괘(小成卦)란 세 개의 효로 구성되어진 여덟 개의 괘, 즉 일반적으로 말하는 팔괘이다.
그 생성원리와 대략적인 뜻은 이미 여러 곳에서 나누어 설명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런 내용들을 다루는 것은 중복되고 재미도 없으므로, 지금부터는 기존 역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역리를 소개하려 한다.
팔괘도의 핵심의미는 <천부경>이 제시하는 '한'의 공간론이다. 공간은 아무래도 시간과 정신에 비해 형이하학적이다. 이 형이하학적인 공간의 의미를 우리 조상들은 한복바지에 담아 두었는데, 바지는 허리 아래에 걸치는 의복이다. 따라서 형이하학은 허리하학과 통한다고 하겠다.
한복바지에 '한'의 공간론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학자는 김상일 선생이다. 선생은 <한철학>에서 복희팔괘도와 뫼비우스 고리를, 그리고 정역팔괘와 클라인 원통을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 사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복바지가 클라인 원통을 재단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 까지도 밝혀 내었다. 역학 수천년사에 이보다 장한 쾌거는 다시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선생의 이론을 요약하여 소개하고, 나아가 선생이 해명치 않은 문왕팔괘의 의미까지를 해설해 보려 한다.  이책에 소개되는 내용은 김상일 선생의 <한철학> 제3장 [한철학의 틀]에서 임의로 발췌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글쓴이가 고친 것이다. 원문을 소개하고 고친 부분과 대조할 수 있게 하여야 옳지만, 그러지 못한 점을 사죄드린다.
이 설명들을 모두 읽고 나면 지금까지 역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이유를 확실히 알게된다. 그 이유가 역학의 상부구조인 <천부경>의 진리를 역학이 온전히 이어받지 못한데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② 복희팔괘와 뫼비우스 고리
선생은 먼저 복희팔괘가 뫼비우스 고리의 절단면에 나타나는 평면의 결합방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먼저 하나의 사각띠를 준비하여 네 모서리의 위치를 부호로 바꾸어 주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부호로 나타내는 위치는 전후 . 좌우 . 상하인데, 이는 현대의 수학이나 과학에서 사용하는 삼차원 좌표계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요소 중에서 전(앞) . 좌(왼쪽) . 상(윗쪽)을 양효로 나타내고, 후(뒤) . 우(오른쪽) . 하(아래쪽)을 음효로 나타낸다. 이렇게 하면 사각띠의 앞에 있는 네 개의 꼭지점과 뒤에 있는 네 개의 꼭지점이 모두 팔괘로 바뀌게 된다.
다음 그림은 조각띠를 앞면과 뒷면으로 분리하여, 꼭지점을 팔괘로 나타낸 것이다. 이 그림의 조각띠를 그대로 둥글게 오므려 붙여보자. 그러면 [A]는 [C]와 붙고, [B]는 [D], [c]는 [a], [d]는 [b]와 각각 만나게 된다.
이렇게 서로 만나는 팔괘(꼭지점)를 복희팔괘도처럼 배치하면 옆의 그림처럼 된다. 이 그림에서 건(乾)은 리(離)와 만나고, 태(兌)는 진(震)과 만나는 것을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복희팔괘는 이렇게 만나지 않고 있으니, 이 사실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 김상일 선생 이전에는 없었다는 뜻이 되는 셈이다.
복희팔괘는 뒷면에 해당하는 [손 . 감 . 간 . 곤]이 서로 마주보게 배치되어 있으며, 이는 이 사각띠를 한바퀴 비틀어서 붙인 것을 나타낸다. 즉 평면인 띠를 가지고 뫼비우스 고리를 만든 것이 바로 복희팔괘인 것이다.

③ 정역팔괘와 클라인 원통
복희팔괘는 뫼비우스 고리의 형상으로 된 우주를 나타내고 있음을 보았다. 그런데 김상일 선생의 연구는, 한국의 역학자로서 정역을 만든 김일부 선생이 그린 정역팔괘가 바로 클라인 원통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에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클라인 원통이라는 물건이 워낙 까다로운 물건이라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면 상당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필요로 한다. 먼저 사각형에서 클라인 원통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이 그림에서 관심을 집중해야 할 부분은 화살표이다. 먼저 사각형, 즉 사각띠가 여기 제시된 모든 모양을 만드는 기준모양이다. 그 사각형에서 한쪽을 구부려서 만든 것이 원통모양이다. 감은 쪽으로 화살표를 나타내었다. 
다음으로 뫼비우스 고리는 원기둥과 같은 방식으로 구부려 만들되, 한쪽을 비틀어 주었다. 한쪽을 비틀어 주었으므로 비튼 쪽은 반대방향을 향해 굽힌 셈이 되고, 이것을 나타낸 것이 방향의 사각형에 반대방향의 화살표이다. 
토러스는 가락지 또는 튜브와 같은 모양이다. 이는 원기둥을 구부려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원기둥의 방향을 나타낸 그림에 화살표만 추가하였다.
마지막으로 클라인 원통은 좀 복잡하다. 원기둥을 나타내는 화살표를 일단 가로변에 표시하고, 세로변에는 원기둥을 비틀어 만들었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뫼비우스 고리의 화살표를 나타내었다. 이렇게 하므로써 원기둥과는 달리 안쪽면과 바깥면이 만나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당분간 이 그림은 젖혀두고, 앞에서 각 꼭지점에 팔괘를 배정했던 사각띠로 되돌아 가서 복희팔괘와 정역팔괘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우선 위의 사각띠를 구부려 붙인 것은 원통모양이 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원통의 수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이 그림에서는 서로 만나는 곳을 한쪽으로 모아서 그렸다. 즉 건은 리와 만나고, 곤은 감과 만나며, 간은 손과 만나는 식이다. 그리고 팔괘에 부여된 숫자는 복희팔괘의 숫자이다.
마지막으로 화살표는 이 숫자들을 단순한 서수(序數)로 보고, 작은 쪽에서 큰쪽으로 붙인 것이다. 이 그림에 그려진 화살표가 앞의 원통 그림과 같음을 일단 확인해 두자. 
다음으로는 복희팔괘의 차례이다. 복희팔괘는 뫼비우스 고리 모양으로 꼬여서 만나게 한 것이라고 하였다. 위의 그림과 같은 방식으로 배치하여 숫자에 따라 화살표를 그리면, 오른쪽 그림에서 보듯이 뫼비우스 고리 형태가 나오는 것이 확인된다.

 
마지막으로 정역은 이미 배치되어 있는 괘도를 복희팔괘의 수로 바꾸어 주어야 일관성있게 비교검토를 할 수 있다. 위의 두 그림은 본래의 정역팔괘도와 숫자를 바꾸어 준 정역팔괘도이다.
  이 그림에서 보듯이 정역팔괘도의 숫자를 복희팔괘도의 숫자로 바꾸어주면, 클라인 원통을 만들 때와 꼭 같은 화살표 형태가 관찰된다. 이 그림의 의미는 분명히 정역팔괘도가 복희팔괘의 뫼비우스 고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클라인 원통구조를 나타내는 것이다.

④ 문왕팔괘와 정역
지금부터 살펴볼 내용은 여기서 설명된 것과 같은 수준높은 진리가 <천부경>의 내용 속에도 들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당연히 "그렇다"로 나온다.
<천부경>은 구조 자체에 벌써 클라인 원통의 모습이 담겨 있음은 [삼한부] 해설에서 이미 설명하였었다. 그리고 <천부경>의 수리에도 오행체가 만들어내는 오묘한 시공간 통합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용들은 마지막으로 홍범구주, 즉 문왕팔괘의 구조 속에 종합되어 있다.
문왕팔괘도가 오행체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그것이 곧 클라인 원통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소위 낙서라고 알려진 구궁수(九宮數)이다. 구궁수는 본래 팔괘도에 배속된 것이 아니라 팔괘도와는 무관한 어떤 체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팔괘와 구궁수를 합한 것이 홍범구주가 된다. 이 사실은 다음 설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오행의 개념이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오행은 팔괘와 분리시킬 수 없는 개념임이 여기서도 분명히 밝혀진다는 뜻이다. 더욱이 이 그림에는 뫼비우스 고리를 만들 때 나타났던 조합까지도 반영되어 있다. 
그림에서 건으로 표시된 [1]을 복희팔괘도의 [1]로 설정하자. 그렇게 설정할 경우, 오행이 표시된 오른쪽 위의 그림은 그 밑의 그림처럼 팔괘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그 그림을 가지고 앞에서 복희팔괘나 정역팔괘를 살펴본 것과 같이 바꾸어 주면, 다음 그림이 얻어진다.
  이 그림은 정역팔괘를 바꾼 것과도 또 다르다. 정역에서는 그래도 같은 방향이 하나는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마저 없어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그림이 나타내는 모습은 오행체의 이상야릇한 결합임이 분명하다. 
우선 앞면과 뒷면은 수와 괘의 음양으로 확연히 구별된다.  네 개의 꼭지점은 양에서 모인 곳은 음에서 분산시켜 주고, 양에서 분산시킨 경우에는 음에서 모아준다. 밀고 당기는 음양의 작용모습과, 들어온만큼 내보내는 중성의 모습이 각 꼭지점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정역과 이 그림 중에서 어느 것이 옳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역이 '한'의 특수하게 꼬인 모습을 표현하려 했던 그림이라면, 이 그림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 
특히 정역에는 [십오존공(十五尊空)]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뜻은 진손이 축이 되어야 하는데 정륜(正倫)을 밝히기 위해 중심축의 자리를 건곤에게 양보하고 옆으로 물러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 그림(문왕팔괘의 수리도의 오른쪽 아래 그림)은 실제로 진손이 중심축을 차지하고 있으며, 중심축을 차지한 진손이 건곤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면 정역팔괘도와 거의 같은 모습이 된다.
이 두 괘도 사이에는 차이가 많은 것 같으나, 오행체나 클라인 원통과 같은 특이한 형태 위에서 자리바꿈하는 모습임을 고려하면 같은 그림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 사실은 다음 단락의 설명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⑤ 문왕팔괘와 오행체
문왕팔괘, 정확히 말해서 홍범구주에는 팔괘와 오행이 어우러져 있다. 그런 이상 이 팔괘배치와 오행체 사이에도 모종의 관계가 있어야 말이된다. 그리고 그 관계는 다음 그림처럼 체계화할 수 있다.
다음 그림 중에서 왼쪽 그림은 문왕팔괘의 배치상태에 복희팔괘의 수를 배정해 준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 그림은 오행체의 전개도에 같은 오행에서 생겨난 팔괘가 같은 면에 들어가도록 배치해 본 것이다. 그리고 이 배치상태를 통해 오행과 팔괘가 융합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오른쪽 그림은 각 면에 하나씩 팔괘가 배치되지 않은 모서리가 있어서 동그라미로 표시해 두었는데, 이 동그라미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중성이다. 십이지지가 각기 음양으로 나뉘어 팔괘에 배정되고 나면 네 개의 토(土)가 남는데, 그 토가 바로 여기에 남아도는 동그라미인 것이다.
이 그림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부분은, 이 그림이 전개도이기 때문에 무한히 다양한 팔괘배치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면체의 모서리에 팔괘를 실제로 그려넣고 그 사면체를 돌려가면서 보게되면, 팔괘도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짓임을 알 수 있다.
더더구나 <천부경> 수리가 만들어내는 전개도 중에서 칼레이도치클루스가 있었고, 그 전개도는 내외표리가 없이 돌려가며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니, 팔괘도의 실상과 용도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보수준에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하겠다.

⑥ '한'과 한복바지
김상일 선생은 한겨레의 생활문화 중에서 [한복바지]가 '한'의 모습인 클라인 원통과 같은 형태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내기도 했다. 선생의 연구결과는 박용숙 선생에 의해 우리 고대의 역사기록에서 확인되므로써, <천부경>과 한복바지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이 증명되었다.
이런 사실들은 <천부경>을 클라인 원통과 결부시키고, 다시 오행체와 연관시키는 것이 억지가 아니라 정당한 것임을 증명해주는 증거들이다. 그래서 중요한 내용들을 간단히나마 소개하여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먼저 한복바지와 클라인 원통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우선 사각형의 천을 준비한다. 다음 그림의 맨 윗쪽 사각형을 가운데를 접는다. 그러면 아랫쪽 그림과 같이 된다. 

그런 다음 A와 B, A'와 B', C 와 C'가 만나도록 한바퀴 틀어서 접는다. 그러면 오른쪽 그림에 그려진 <1>과 같이 된다. 그런데 이 그림은 사각형을 접은 것이 원통을 만드는 것과 같고, 그것을 다시 뫼비우스 고리를 만들 때 처럼 꼬아 붙였으므로, 실제로는 클라인 원통과 같은 형태라고 할 수 있고, 클라인 원통을 완전히 대칭이 되도록 그린 <2>번 그림과 비슷하다.
 이 클라인 원통의 모양을 다시 펼쳐 한복바지를 만든다. 그렇다고 특별한 모양을 만들어 자르는 것이 아니라, 한복바지의 각 부분이 나오도록 평면상태에서 자르면 된다. 재단하는 방법과 각 부위가 한복바지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위 그림과 같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한복바지가 클라인 원통과 관계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따라서 어딘가에서 클라인 원통의 원리가 발견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실제로 있으며, 그 부분은 사람의 몸에서 가장 신성시 되어 온 부위인 [꽃], 즉 사람의 생식기관인 [좇]과 [씹]을 보호하는 부위인 큰사폭과 작은사폭이다.
큰사폭과 작은사폭에 클라인 원통의 꼬인 부분이 오도록 한 것은 참으로 탁월한 배려이다. 왜냐하면 음양교합이야말로 인간사에서 찾아지는 우주의 꼬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에서 동이족 신전에서 결혼예물로 조복(朝服), 즉 [조선 옷]을 지어 보냈던 참뜻도 이해되는 것이다.
 이 그림은 큰사폭과 작은사폭을 만드는 부분만을 따로 그린 것이다. 그림의 줄친부분은 뒷면, 줄을 치지 않은 부분은 앞면을 나타낸다. 옷감천을 반으로 접었으니, 한쪽은 앞이 나오고 다른쪽은 뒷면이 앞으로 오는 것이다. 
이 옷감을 잘라서 큰사폭과 작은사폭으로 나누고, 둘을 붙여서 바지 가랑이를 만든다. 가랑이는 앞쪽과 뒤쪽의 두 개가 나오게 된다.
그리고 둘을 붙이려면, 앞면에서 잘라진 것은 뒷면 쪽에 가서 붙고, 또 앞면은 뒷면과 만나게 되므로써 꼬임의 모습을 완벽하게 간직하고 있다. 즉 클라인 원통의 원리는 이 바지가랑이에 실현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복바지와 '한'의 형상인 클라인 원통모양과의 관련성을 살펴보았다. 이제 이 한복바지에 대한 역사기록을 살펴보자. 여기에 대해서는 김상일 선생이 충분히 연구해 두었으므로, 해당 부분을 인용하기로 한다.

한복바지가 언제부터 위의 고유한 의상이 되었으며, 누구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졌는지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남자가 하의로 입는 바지를 고(袴)로 표기했는데, <삼국사기>의 신라조에도 고가 보이고, 같은 책의 백제본기 고이왕조에는 청금고(靑錦袴)가 보인다. 또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는 능고(綾袴)가 보인다. 중국의 여러 사서에도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바지에 대한 기록이 있으니, 삼국이 모두 바지를 착용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부여에서도 바지를 입었고, 예에서도 바지를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옷의 재단에 관해서는, <삼국유사> 선도성모 수희불사조(仙挑聖母 隨喜佛事條)에 의하면, 선도성모가 하늘의 군령들 힘을 도움받아 붉은 비단으로 직조해서 그의 남편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또 "매년 봄과 가을 10일간 선남선녀들을 모아서 점찰법회(占察法會)를 열어 여기서 옷을 마는 법을 고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그러면 여기서 점찰법회란 무엇인가? 박용숙 교수는 그의 <한국고대미술문화사론>에서 점찰법회를 역학강설(易學講說), 혹은 입체기하학의 원리 강론을 뜻한다고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박 교수는 필자의 저서 <대(對)>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했다. 
"우리의 袴(고)는 허리 . 마루폭 . 사폭의 세 폭으로 나뉘는데, 허리는 원상(圓象), 마루폭은 방형(方形), 사폭은 삼각형(三角形)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한 개의 袴는 이른바 뫼비우스 고리(Mobius strip)의 삼차원적인 원리에 의해 재단되어, 한치의 허실도 없이 정학하게 袴의 입체형을 가늠해 낸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袴는 결국 입체기하학적 가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때의 입체기하학이란 결국 뫼비우스 고리의 원리에 의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袴를 재단하는 선녀는 뫼비우스 고리의 원리, 이른바 역리(易理)를 요해(了解)하지 않으면 안된다."

박교수는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한국 고대미술에 적용하여 하나하나 고찰해 나가면서, 특히 한국의 복식은 샤마니즘의 삼분법적 원리와 그것의 활용인 이분화를 통하여 만들어진다고 했다. 이는 <천부경>의 원리와 완전히 일치한다. 점찰법회란 다름아닌 <천부경>과 <삼일신고>의 강론이었을 것이다. 

선생의 책에서는 여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도 붙어 있으니, 더 상세한 자료가 필요한 사람은 해당 서적을 찾아보기 바란다.
 
3) 대성괘론

① <천부경>과 64괘
팔괘를 체계적으로 다룬 문헌은 <주역>이다. 그런데 <주역>은 본래체계가 64괘의 해설부분 만으로 되어있었고, 공자에 이르러 비로소 십익(十翼)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이 말은 <주역>의 괘가 음양 . 사상 . 팔괘의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는 해석이 뒤에 붙여진 것이며, 본래의 <주역>은 그런 원리 해석이 없이 64괘의 형식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는 64괘를 다시 부연확장(재분열) 시키지 않고, 64괘에서 중단시킨 이유도 재검토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문제는 왕선산이 제기한 것으로서, 역학계에서는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앞에서 설명된 "육생칠팔구"와 삼태극도를 종합하면 구궁팔괘의 형성원리를 지금까지와 다른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우선 삼태극도는 중성수에서 한쌍, 음에서 한 조(組)와 양에서 한 조가 나오므로 음양을 합하면 다시 한쌍의 팔괘가 나온다.
그런데 중성의 한쌍은 음부의 한조와 양부의 한조를 묶은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삼태극도에서 나오는 팔괘는 한쌍이라고 말해도 된다.
이 한쌍의 팔괘는 각기 음부와 양부에서 나오므로 둘을 결합시키면 음양결합이 되고, 음양결합은 곱하기 형식이므로 여기서 64괘가 나오게 된다. 따라서 두 조의 팔괘가 음양교합하여 만드는 64괘가 <천부경>에서 제시하는 모든 현상사물의 대표수임을 삼태극도가 보여주는 것이다.
"육생칠팔구"는 바로 이런 추리를 지원해 준다. <천부경> 수리해설에서 밝힌 것처럼, 이 구절은 64괘 사이에서 일어나는 63변(變)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8×8 = 64 = 1+63 = 7×9]의 관계가 성립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7+9 = 16 = 8+8]로서, 사상의 다음 분화과정 까지도 이 수리는 완벽히 보여준다.
이 내용을 <천부경> 수리해설에서 그렸던 그림을 이용하여 나타내어보면 역학의 종합체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음 그림은 "대삼합육"이 만든 오행체를 두 번 더 분할하여 얻어지는 그림이다.
이 그림의 분화과정에는 4(사상)→ 16(팔괘의 쌍)→ 64(64괘)의 분화과정이 뚜렷이 관찰된다. 더구나 삼극을 상징하는 각 변에 7개씩의 삼각형이 배정되면서도 여덟칸 아홉눈의 모습을 보여주므로서, "육생칠팔구"의 형태로 되어있다.

여기서 "육생칠팔구"가 팔괘구궁의 형성원리이며, 팔괘구궁은 실제로는 64괘를 나타내는 것이지 구궁에 배치된 팔괘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역술에서 사용하는 방법인 [팔괘를 구궁에 운행시키는 것]이 근거없다는 뜻은 아니다. 구궁은 팔괘의 공간형식으로 생각해야 옳으며, 구궁을 운행하는 팔괘는 구궁이 시간에 따라 변성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구궁에 팔괘를 운행시켜야만 올바른 시공간학으로서의 역이 성립하는 것이다.


② 귀장역
지금까지 설명된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64괘는 그대로 우리 우주의 모습을 반영하는가? <천부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 연산역과 상호보완관계에 있는 귀장역이 만들어주는 괘의 숫자가 64괘의 절반인 34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귀장역이란 무엇인가? 거북의 등껍질 모양으로 만들어진 역이다. 고대에 연산역과 귀장역이 있었으나 전하지 않고 다만 <주역>만이 전한다는 말이 있는데, 다음에 소개되는 특이한 형태의 수체계 그림은 귀장역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므로 글쓴이는 이것을 귀장역이라고 부른다.
이 그림은 우선 생긴 모습이 거북의 등껍질과 꼭 같다. 거북의 등껍질은 거북의 몸을 감추어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귀갑(龜甲)이 곧 귀장(龜藏)인 것이다. 아마도 옛적에 거북의 등껍질에 난 금을 보고 괘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규범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그림과 천부경의 관계는 너무나 밀접하다. 우선 육률을 상징하는 육각형이 기본 형태로 채택되어 있다. 그리고 "육생칠팔구"의 첫 수와 마지막 수가 육각형과 아홉 구역에 반영되어 있으며, 전체 숫자수는 설흔개로 천부경의 조직수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그렇다고 이 그림이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그림은 아니다. 이 그림은 조선조 숙종임금 때, 수학자였던 최석정(崔錫鼎) 선생이 역수의 원리를 이용하여 그린 것으로서, 선생의 저서인 <구수략(九數略)>이라는 책에 전해진다고 한다. 이 그림의 각 궁(宮)에 한자로 쓴 숫자는 낙서구궁과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글쓴이가 삽입한 것이다.
이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각 궁에 소속된 여섯 개의 숫자들의 합이 [93]씩으로 모두 같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도 부분적으로는 불균형이 있고, 그 균형과 불균형이 이웃의 다른 궁과 맞물려 돌아가므로써, 균형 속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 그림의 신비한 점이다.
그리고 이 그림의 모양이 현대 천문학이 밝힌 대우주의 그물모양 구조와, 은하계의 초기형태인 원반형, 그리고 미확인 비행물체(UFO)와 비슷한 것도 흥미있는 부분이며, 역학이 시공간 통합구조와 관련된다는 글쓴이의 주장과 함께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그림은 실질적으로 팔괘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쓰인 숫자들은 자연수(양의 정수)들이므로, 각기 음양으로 구별할 수 있다. 양수에는 양효를, 음수에는 음효를 부여하면 하나의 궁은 하나의 대성괘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출발점을 어느 숫자로 잡느냐에 따라 여섯 가지의 대성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그림이 만들어내는 대성괘의 수는 뜻밖에도 32개밖에 되지 않는다. 다음 표는 이런 방식으로 만든 괘의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위 그림을 보면 우선 같은 괘 끼리는 결합하지 않으며, 또 같은 음성끼리나 같은 양성끼리도 결합하지 않는다. 즉 양괘와 음괘가 결합하는 것이 정상이다. 결국 64괘 중에서 현실화하는 괘가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현실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서 역학이 말하는 길흉(吉凶)의 의미가 구체화된다. 즉 실제로 드러나는 괘를 따라가는 점괘는 길(吉)하다 하고, 현실화하지 않는 괘가 나오면 흉(凶)하다 하는 것이 기본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약간의 융통성은 있다. 현실화 한 괘에서 길흉이 다시 나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기본은 이렇게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32개의 수는 어떻게 되는가? 이 괘들도 현실화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화 하더라도 우리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 중의 [1/8]만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나머지 [7/8]은 신명(神明)의 영역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그 신명의 영역을 동양 천문학에서는 사신(四神)이 관장하는 이십팔숙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 내용은 앞의 <천부경> "삼사성환"에서 그림으로 그렸던 부분이다.


4) 구궁의 역리

① 바둑판과 <천부경>
이 이십팔숙의 형성원리 그림은 모두 64개의 삼각형을 가지고 있다. 즉 삼각형 하나하나가 64괘의 괘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가로 세로 각 여덟칸의 모눈그림, 즉 64괘를 사각형으로 나열한 64괘 방형도의 형식으로 바꿀 수 있다.

이 그림은 특별한 그림이다. 우리나라 바둑계의 정상급 기사들이 세계 바둑계를 완전히 평정하고 있는데, 그 원인을 설명해 주는 그림이 바로 이 그림인 것이다. 무슨 소리냐 하면 이 그림이 고대에 동이족들이 바둑으로 우주의 진리를 가르치고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 썼던 바둑판이라는 말이다.
바둑의 기원에 대해서는 "중국 상고시대, 즉 지금부터 4300여년 전의 성군으로 알려진 요(堯) 또는 순(舜)이 그 아들을 위하여 처음으로 바둑판을 만들어서 가르쳤다는 [바둑 기원설]은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오랫동안 전하여 왔다"고 말해진다.
바둑의 원조로 알려진 요임금이 우리 국조삼신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은 이미 [풍류대도]에서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런 분들이 바둑을 가르쳤다면, 그 내용이 고대 제정일치 시대의 치국평천하에 밀접히 관계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천부경>과 역은 그런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으므로, 바둑은 분명히 천부역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였다. 
예로부터 바둑판에는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진리가 들어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바둑판은 <천부경>의 다른 모습이며, <주역>의 원전이다. 바둑판은 천문도이며, 또한 세계지도이기도 하다. 그 용례는 무궁무진하여 그것들을 찾아내는 데만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고대에 사용되었던 바둑판은 지금 쓰이는 바둑판과는 다르다는 사실부터 먼저 알아두어야 할것같다. 

바둑의 변천에 대하여는 다음에 따로 서술하겠지만, 지금 쓰고있는 19로(路) 361호(戶)는 중국의 한(漢) . 위(魏) 시대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요, 그 이전 전국시대에서는 17로 289호였으며, 또 그 이전의 원시형은 9로 81호 이었다고들 본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전하여 오는 요순시대의 바둑 역시 9로 81호 또는 그보다 간략한 것이었으리라고 볼 수 있으며, 또 이와 유사한 것은 우리가 지금도 가끔가다가 장기판 위에서 장깃말을 이용하여 노는 아홉줄 고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두가지 기사(記事)는 바둑과 세상사를 비교하여 말한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진(晋) 영공조(靈公朝)에서는 당시의 바둑돌이 달걀을 그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는 사실이다. 즉 순식(筍息)이 아무리 신기한 기능이 있다고 할지라도 오늘의 바둑돌을 열 두 알 올려 쌓고 그 위에 계란을 올려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계란을 위에 올려놓을 정도의 바둑돌이라면 아무래도 오늘날의 장깃말 정도의 크기는 되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도의 큰 바둑돌을 사용하는 바둑판이란 오늘날의 [아홉줄 고누], 즉 [9×9 = 81]로 정도로 보아서 과히 틀림없을 것 같다. 

위의 인용문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으며, 따라서 옛날의 바둑판은 <천부경> 글자 하나하나를 한 점으로 하여, 그 점들을 연결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런 바둑판이라면 바둑돌도 흑백을 합해서 64개 정도면 충분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64]는 이 바둑판의 전체 칸수와 같은 것인 동시에, <주역>의 64괘와 같은 것이다.
결국 <천부경>은 28숙과 복희팔괘를 결합시킨 64괘를 결론으로 제시하는 셈이다. 이 육십사괘가 다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재구성되어 오늘날 역술가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학설로 정착한 것으로 보아야 옳다.
 
② 복희팔괘와 이십팔숙
이 고바둑판은 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 하나를 되찾아 준다. 그 연결고리는 바로 복희팔괘와 천문학의 이십팔숙과의 관계이다.
이 그림의 각 궁(칸)은 64괘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그 64괘가 28숙과 복희팔괘로 나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그림은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림의 맨 바깥 줄에 숫자로 표시한 부분은 28숙을 나타낸다. 64괘 중에서 현실화되지 않는 32괘가 바로 이 28숙에 배정되는 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머지 넷은 어디로 가는가? 그 넷은 중궁으로 간다. 중궁은 팔괘에서도 제외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이 중궁은 복희팔괘와 28숙의 양쪽에 모두 포함되면서 둘을 종합해주는 중심혈의 역할을 한다.
아무튼 64궁 중에서 28숙에 배정되는 28궁을 빼고나면 36궁이 남는다. 이 36궁은 복희팔괘에 배정된 숫자를 모두 더해서 얻어지는 값과 같다. 즉 [1+2+3+4+5+6+7+8 = 36]이다. 복희팔괘에 배정된 숫자들은 바로 이 사실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하는 이외에는 다른 합당한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다른 어떤 의미도 역학에서의 팔괘나 오행의 의미와 맞아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역학에 지금까지 없었던 하나의 의미가 추가되어야 한다. 그것은 사상(四象)이 바로 사신도에 그려진 사신(四神)이라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28숙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하므로서 천문도로서의 하도와 복희팔괘를 연결시킬 근거가 확보된다.
그리고 이런 개념의 도입은 팔괘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앞에서 이미 말한대로 팔괘는 단순한 셈법이 아니라 종합적인 시공간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구궁은 36개의 괘가 나타내 보이는 우주의 변화상이므로, 일단 우주적 단위의 자연법칙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궁의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28숙이 은하계의 항성들이고, 따라서 복희팔괘의 구궁이 나타내려는 대상은 최소한 태양계의 범위 이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바둑판 그림에 나타난 28숙과 복희팔괘의 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십이지지이다. 십이지지는 앞의 바둑판 중에서 필요없이 찍혀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장점, 또는 화점(花點)에 의해 표시되는 것이다. 즉 테두리와 화점을 연결하는 선으로 그려지는 모눈이 바로 사계절과 십이월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이 사계절과 십이지를 연결시킨 그림을 보면, 이십팔숙과 복희팔괘(태양계?)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기운을 표상한 것이 바로 십이지지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간지론이 미신이 아니라 완벽한 우주론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③ 도전괘와 우주모형
복희팔괘와 이십팔숙을 연결시켜 주는 역학개념이 바로 중성이다. 중성이란 음양을 결합해 주고 매개해 주는 성질을 말하는데, 여기서 설명된 구궁의 역리에는 바로 이 중성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성은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바로 복희팔괘의 36수에 나타나 있다.
복희팔괘수인 [36]에서 이숩팔숙의 수인 [28]을 빼 보자. 그러면 [36-28 = 8]로서 [8]이 남는다. 역학에서 사용하는 팔괘의 [8]은 바로 이 수인 것이다.
이 중성수가 음양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니, 실제로 역학이 말하는 팔괘는 외부(은하계)의 이십팔숙수(二十八宿數)와 땅의 이십팔일수(二十八日數)가 팔괘를 매개로 음양운동하는 모습을 정리한 것이 된다.
땅의 이십팔일수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십팔숙을 정할 때 기준이 되었던 달의 삭망(朔望)주기이다. 달은 실질적으로는 지구의 절반이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돌아주기 때문에 지축의 경사와 지구의 자전 및 공전주기가 지금의 상태로 결정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그렇다면 지구의 자연현상을 법칙화 하는데에 달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천부경>은 81글자로 되어 있는데, 달은 신기하게도 지구의 1/80 크기이다. 그리고 달이 보이는 기간은 한달 중 28일이지만, 나머지 2일 정도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28일 만으로 달력을 만들면 무리가 생긴다. 그런데 그것을 보완해 줄 체계가 바로 이 구궁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 보완체계는 다름아닌 복희팔괘수인 [36]수이다. [28]이 달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면, [36]수는 태양을 상징하고 있으니, 태양을 나타내는 십간을 취하면 [36×10 = 360]이 되어 일년의 날짜수와 거의 맞아 떨어진다.
이와 관련되는 고사(古事)가 고대신화에 나타난다. 고대에 열 개의 해를 쏘아 떨어뜨렸다는 예( )의 신화가 역법의 개혁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 이전에는 일년을 열달로 나누는 역법이 실제로 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리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날 느닷없이 열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하늘에 나타났다. 그 이변은 수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수년동안 이렇게 한꺼번에 열 개의 태양이 떠오르자 하늘은 온통 태양들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강렬한 태양이 이글거리니 지상의 벼이삭은 모두 말라 죽어 버리고, 심지어 구리와 철 . 바위조차도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중략)
열 개의 태양들은 동방의 상제 제준(帝俊)의 아들들이었다. 제준은 고대 동방의 은(殷) 민족이 섬기는 상제로 ...... 상희(常羲)라는 아내와 희화(羲和)라는 아내가 있었다. 상희는 달의 여신으로 12명의 딸들 달을 낳았고, 희화는 10명의 아들들 태양을 낳았다. 열명의 아들 태양들은 동해 밖의 탕곡(湯谷)이라는 곳에 살았다. ...... 그들은 윤번제로 돌아가면서 태양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하나가 하늘에 출현하여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다음 차례의 태양이 하늘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 태양이 막 하늘에 떠오를 때가 되면, 어머니 희화는 여섯 마리의 교룡이 끄는 수레에 아들 태양을 태우고 질풍처럼 달리기 시작한다. (중략)
열 개의 태양들은 어머니 희화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이렇게 데려다 주었기 때문에 엄격히 정해진 노선과 질서에 따라 차례대로 하늘로 나가 주어진 사명을 다하였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열명의 개구장이 아들들은 정해진 규칙을 갑자기 준수하려 하지 않았다.  ...... 이튿날 새벽에 열명의 태양들은 일제히 하늘에 나타났다. 그리곤 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드넓은 하늘에서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중략)
제준과 희화는 아들들이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 마침내 제준은 활솜씨가 매우 뛰어난 예라는 천신을 인간세계에 내려보내 사람들을 마구 해치는 맹수들을 없애고, 아울러 짖궂게 장난을 치고있는 자기의 아들 태양들을 혼내주려 하였다. (중략)
'아니! 천제의 아들들이 어떻게 이처럼 인간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철없이 굴 수가 있을까! 내가 이 재앙을 반드시 수습하고 말리라.' 예는 광장 한가운데로 나아가 활시위에 화살을 얹고 열 개의 태양들 중 하나를 겨누어 힘껏 당겼다. 잠시 후 하늘에서는 불덩어리가 소리없이 터지고, 불꽃이 사방으로 어지러이 튀었으며, 황금빛 깃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지상에 붉게 빛나는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사람들이 달려가 보니, 그것은 세 발 달린 거대한 황금빛 까마귀였다. ...... 기왕 일은 벌어진 것, 예는 아예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쏘아 떨어뜨리기로 작정한 듯 손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깜짝 놀란 태양들은 이리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 흙으로 쌓은 단 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요임금은 태양이 인간들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그래서 예가 태양을 모조리 떨어뜨릴까봐 걱정한 나머지 사람을 시켜 몰래 예의 화살통에서 열 개의 화살 가운데 한 개를 뽑아오도록 명했다. ...... 이제 하늘에는 태양이 하나 남아있을 뿐이었다. 짖궂게 장난을 일삼았던 불쌍한 태양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어찌할 줄 모르고, 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시원해 졌다고 야단법석이었다. 
 * 이 신화를 자세히 소개한 것은 풍류대도의 내용을 복습하는 의미에서 이 신화속에 담긴 동이족 풍류의 흔적을 확인해 보라는 뜻이다.

고대에는 천문을 인사에 적용시켜 통치의 규범으로 삼았으므로, 역법의 개혁은 실질적으로는 통치체제의 대변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신화의 시대가 탁록의 대전쟁으로 알려진 동이족 천신들의 격동기였음은 풍류대도 해설을 참고하면 알 수 있다.  
즉 이 시기에 그 이전에 사용하던 역법이 폐지되고, 한해를 열두달로만 구별하는 새로운 역법이 성립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태양은 예( )의 각술(角術 . 弓術)에 모두 죽고 하나만 남았지만, 달은 열두개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역법 이전에 쓰이던 양력, 즉 십간력(十干曆)은 복희팔괘에만 그 흔적이 남아있는 채로 지금은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이와같은 역법의 개혁은 삼신산에서 동자와 선녀를 짝지워 나라를 세우게 하던 동이족의 통치체제가 붕괴된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본론으로 되돌아가서 [8]이 복희팔괘수와 이십팔숙을 조절매개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복희팔괘수에서 [8]을 빼면 [28]이 된다는 점을 주목하자. 이는 [8]을 매개로 은하계와 지구(태양계)가 같은 값으로 마주서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팔괘를 클라인 원통에 그려주었던 그림이 <천부경> 역리와도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팔괘를 배정할 수 있는 오행체의 형상,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주를 삼극 오행의 팔괘구조로 인식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인식능력이, 참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중]으로서의 팔괘구조는 우주 전체를 상징하는 [64괘 수]의 [1/8]이 투자되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팔괘의 배치상태의 현실적 의미는 [우주를 어떤 기준에 따라 구별할 때, 서로 성질의 차이가 있는 여덟 구역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뜻하므로, 결국 우주를 지금의 형태로 만드는데 우주 전체 에너지의 [1/8]이 투입 되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형태 자체가 에너지를 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며, 부적이 효험을 나타내는 이유도 여기에서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와같은 관점이 역학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 다시말해 64괘를 [28 : 8 : 28]로 나누는 논리가 기존 역학에서 어떤 근거를 찾아낼 수 있는가?
그렇다. <주역>의 64괘는 그 형태적 특성을 기준으로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그 두가지는 도전괘(到顚卦)와 비도전괘(非到顚卦)이다.
도전괘란 뒤집었을 때 다른 괘로 바뀌는 괘를 말하는 것으로서, 건상곤하의 천지비(天地否)괘는 뒤집으면 곤상건하의 지천태(地天泰)괘가 된다. 비도전괘는 뒤집어도 처음과 같은 괘가 되는 것으로서, 중천건(重天乾) . 중지곤(重地坤) . 중화리(重火離) . 중수감(重水坎) . 산뢰이(山雷 ) . 택풍대과(澤風大過) . 뇌산소과(雷山小過) . 풍택중부(風澤中孚)의 여덟 개가 전부이다.
그런데 비도전괘가 8개이면 도전괘는 모두 합쳐 56개이다. 그리고 56개는 실질적으로는 28개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뒤집어서 같은 괘가 되는 것을 하나로 보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뒤집어도 같은 모습이 되는 8개의 괘가 상징하는 중성은, 뒤집어진 것과 뒤집어지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이 둘을 구별해 낸다. 그렇게하여 28개로 볼수도 있는 것을 56개라고 분별해 내는 것이다. 이것이 중성의 역할이다.
결국 도전괘 56개가 뒤집어진 것과 뒤집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뉘어 안쪽과 바깥쪽에 따로 배치되어 [28 : 8 : 28]의 우주모형 수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64괘도 오행체가 보여주는 음양묘합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진리체계라 말할 수 있겠다.

④ 복희팔괘와 중성의 참여
앞 단락의 설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중성이다. 그리고 그 중성은 음양을 분할하여 우주모형을 만들어내는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설명된 내용 중에서 팔괘의 중성력의 기능은 [중성의 참여]이다.
복희팔괘의 수는 이미 말한대로 [36]이다. 그 [36]은 [28]에 중성의 [8]을 더한 것이다. 여기에서 두가지 사항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음양의 비율이다. 역학에서 중성을 거론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음양이 전제되는 것이며, 따라서 삼원론의 분야가 된다. 그런데 구궁팔괘 수리의[36 : 28]은 약분하면 [9 : 7]이 되어 황금비율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성의 배정이다. 음양의 수치비율은 지금까지 별로 논의된 적이 없는 중요한 이치를 포함하고 있으니, 그것은 양성이 중성을 동반하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음양을 거론할 때 양을 하늘에 배정하고, 땅을 음에 배정하는 것이 동도학의 불문율이다. 이는 중성이 주로 양성과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늘을 나타내는 이십팔숙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음성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왜 이렇게 배정한 것일까?
우선 음양의 비율부터 살펴보자. 음과 양의 대표수는 [2]와 [3]이지만, 현실에서 음양의 비율은 반드시 [2 : 3]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음양의 비율 중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배합을 따로 [황금비율]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황금비율 이외의 음양배합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따져보아야 음양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같이, 음양의 전체수는 [2+3 = 5]가 아니라, [2 × 3 = 6]이 된다. 여기서 음양의 곱인 [6]은 중성수인 [1]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음과 양의 [작용 반작용]은 양쪽이 동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성이 한쪽에 붙어서 통일성과 매개성을 발휘하므로써 양성이 되는 것이다. 즉 [2 : 1 : 2]가 원형이며, 중성인 [1]이 반드시 어느 한쪽에 붙어서 [3]을 만들어 현실화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성의 성질은 한편으로는 고약한 측면이 있다. 그 고약한 성질은 음양이 이미 성립한 상태에도 다시 끼어드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든다면, 부모가 이미 음양으로 짝을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 다시 중성인 자식이 부모 중의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음양의 비율은 [1 : 2 (정확히는 2 : 4)]가 되기도 하고, 또 [2 : 2]가 되기도 하는 것이며, 이런 끼어들기가 많아지면 음양의 비율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같은 중성의 끼어들기를 [중성의 참여]라고 한다.
중성의 참여가 있은 후에는 본래의 종합개념이 변동하게 되므로, 그 상태에서 음양을 따지려면 새로 참여한 중성을 포함하여 음양의 비율을 다시 결정해야 한다. 이를 재분할이라고 하는데, 이 분야는 아예 개념조차 성립되어 있는 것이 없다.
여기서는 이 개념을 학술적으로 제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개념도 만들어 써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하나의 보기를 제시해 본다.
앞에서 들었던 부부와 그 자녀의 관계에서 하나의 요소를 첨가해 보자. 즉 중성인 자식을 둘, 그것도 아들과 딸로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모에게서 [2 : 3]이 나오고, 자식에게서도 [2 : 3]을 얻을 수 있다.
둘을 산술적으로 더한다면 [2+3+2+3 = 10]이다. 그런데 이렇게 얻어진 [10]은 [4 : 6 = 2 : 3]으로 단순히 음양분할하여 약분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두 번째에 참여한 아들딸의 [2 : 3]은 중성이기 때문에 부모의 [2 : 3]과 같은 성질로 취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모와 아들딸이 갖추어진 가정은 부모만 있을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이런 상태의 균형은 단순히 [4 : 6]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찾아지며, 그 과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재분할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그 과정은 먼저 [10]을 [4 : 6]으로 분할한다. 그 다음에는 음양 각각을 음양분할 한다. 이렇게 하면 [4]는 <1.6 : 2.4>로 쪼개지고, [6]은 <2.4 : 3.6>이 된다.
여기서 얻어진 두가지 비율을 서로 엇갈리게 묶는다. 즉 <1.6+3.6 : 2.4+2.4> = <5.2 : 4.8>이다. 이 비율을 본래의 음양비율에 더해준다. <4+5.2 : 6+4.8> = <9.2 : 10.8>으로서 약분하면 <4.6 : 5.4>가 된다.
이렇게 하면 [2 : 3]의 경우보다 중성으로 한단계 더 접근한 새로운 비례가 형성되는 것이며, 이는 부모들이 자녀를 매개로 새로운 화합형식을 이루는 상황을 반영한다.
물론 여기서 재분할된 숫자를 다른 방식으로 재결합할 수도 있다. <4+4.8 : 6+5.2>가 그것이다. 이런 경우 <8.8 : 11.2> = <4.4 : 5.6>이 된다. 이도 또한 중성이 반영되어 음양의 비율이 보다 약해진 모습이지만, 앞의 경우보다 덜한 경우이다.
역학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이 분할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새로 형성된 두가지 비례가 하도와 낙서의 비례를 이루기 때문이다. 즉 [45 : 55]의 낙서와 하도의 숫자 비례가, [44 : 56]과 [46 : 54]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검토해보면 중성수 [1]이 옮겨다닌 결과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음양비율의 다양한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중성의 참여와 재분할 까지 살펴 보았지만, 이 단락의 주제는 이십팔숙과 삼십육궁이다. 그리고 이렇게 배정한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지금까지의 설명 가운데 이미 그 해답이 제시되었다. 
즉 천지를 분간하고 그 변화법칙을 인식할 수 있는 중성존재인 사람이 땅에서 살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중성수 [8]을 땅에다 배정한 것이다. 그리고 중성수가 땅에 배정되었기 때문에 본래의 천지비율이 변동하여 [9 : 7]이라는 보다 균형잡힌 상태가 드러난 것이다.

⑤ 팔괘와 구궁
이제 구궁의 실제 의미를 더듬어 볼수 있게 되었다. 가장 먼저 밝혀야 할 사실은 구궁과 팔괘가 질적으로 다른 체계라는 사실이다. 즉 복희팔괘가 변해서 문왕팔괘가 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는 낙서(洛書)인 구궁이 제외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하여 복희팔괘와 구궁이 전혀 다른 것은 아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복희팔괘의 수를 균등하게 나누어주면 구궁이 형성된다. 따라서 구궁과 팔괘는 같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으니, 같은 [36]수를 팔괘는 여덟 자리에 차례대로 나누고, 구궁은 아홉자리에 똑같이 나누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차이가 팔괘와 구궁의 질을 다른 것으로 만든 것이다.
아무튼 낙서구궁의 수는 복희팔괘의 수에서 나온다. 즉 복희팔괘에서 두 괘가 마주보고 있는 모습에 이미 구궁의 수는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복희팔괘의 중궁이 비어있는 데에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철학적 의미가 숨어있다.
그 의미는 중성으로서의 사람의 위상이다. 즉 중성이 제외된 복희팔괘가 상징하는 천지에 중성인 사람을 참여시킨 것이 낙서구궁이라는 말이다.

 왼쪽의 그림은 복희팔괘로서, 중궁이 비어있다. 중궁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중성이 제외되었다는 뜻이며, 이는 곧 인식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왜냐하면 인식주체가 곧 중성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고바둑판의 64괘를 음양분할하여 얻어진 28숙은, 중성인 인식주체가 땅에 살면서 땅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하늘에서는 중성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하늘만을 생각하는 경우에는 인식의 기준이 하늘에 있게 된다. 이 경우에는 하늘도 중성을 포함하여 36수를 갖추게 된다. 즉 복희팔괘가 상징하는 태양계는 28숙이 상징하는 은하계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오른쪽의 구궁도는 복희팔괘에 다시 중성인 사람을 참여시켜 얻어진 것이다. 즉 하늘의 변화가 사람이 생각하는 우주변화의 영역에 포함되는 경우에는 하늘이 더 이상 사람과 무관할 수 없어지고, 그런 경우에는 하늘도 중성이 포함된 팔괘구궁으로 구조화 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점술과 의술에서는 오래 전에 도입되어 쓰였으나, 그 이외의 분야에서는 실제로 활용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갈릴레오와 케플러를 거쳐 뉴턴에 의해 만유인력의 법칙이 사용되면서부터 하늘의 변화가 더 이상 인간과 무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단계 더 나아가서 상대성이론에 의해 동도학에서 다루어왔던 하늘인 [돌아가는 빛]까지가 자연현상에서 다루어지는 실정이므로, 역학도 이 부분이 활용되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아무튼 낙서구궁은 복희팔괘의 마주선 괘들이 만나서 새롭게 드러내는 중성을 활용하는 역리체계이다. 이때의 중성은 음양통합의 중성으로서, 마주보는 괘들의 수를 더하면 얻어지는 수가 중궁의 [9]이다.
이 중성수 [9]가 천지에 동참하므로써 복희팔괘는 천지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구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구궁은 맞돌이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즉 가운데 수에서 바깥의 수를 빼어주면 거꾸로 도는 팔괘배치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궁구조의 약점은 꼬임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복희팔괘는 뫼비우스 고리의 형상이므로 비틀어 붙인 꼬인 모양이다. 그런데 이 구궁은 맞돌이(왼돌이와 오른돌이)만을 보여준다.
꼬임은 역이 해명하려는 '한'의 모습 중에서도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 모습을 해명하기 위해 [9]의 중성이 천지를 새롭게 개벽시켜 얻어진 새로운 질서가 낙서구궁이다.
이 과정에서 천지의 중성이 꼬여있는 자연질서를 조화시킬수 있는 중심위치로 옮아간 것이 낙서 중궁의 [5]이다. 낙서 중궁의 [5]는 이렇게 형성된 [5]이기 때문에 구멍을 상징하는 태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오행론에서의 오토(五土)와 낙서구궁에서의 오황극(五皇極)은 전혀 다른 수준의 상수(象數)인 것이다.

⑥ 입중과 둔법
이 중궁 오황극의 특성을 보여주는 역학용어가 입중(入中)과 둔법(遁法)이다. 이것들을 알려면 우선 팔괘와 구궁의 관계를 좀더 설명해야 한다. 
구궁이 형성되면 팔괘는 구궁의 위를 운행하게 된다. 팔괘가 단순한 시공간적 이성영역(異性領域)의 의미를 넘어 천변만화하는 현상계의 표상이 될 수 있는 이유도, 팔괘로 표상된 어떤 특정 사물이 구궁으로 표현된 시공간 구역을 넘나들면서 각 궁(宮)이 표상하는 기질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팔괘가 음성이 되고 구궁이 양성이 된다. 그리고 둘의 작용모습은 두 수를 곱해서 얻어지는 [72] 가지가 된다. 이를 [72둔]이라는 말로 나타내는데, [遁]의 글자뜻이 [盾(순)]의 [빙빙돈다]는 뜻과 [ (착)]의 [쉬엄쉬엄 간다]는 뜻을 합친 글자임은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팔괘가 구궁을 돌아 다니는 데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는데, 그 법칙이란 구궁의 수를 단순한 서수로 보았을 경우와 같다. 이는 사람이 수를 차례를 나타내는 데에 쓰는 것도 자연법칙의 일부라는 생각을 반영한 것으로, 역학의 우수성 중의 하나이다. 게다가 그 수는 우주의 구조와 일치하게 배치되어 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무튼 팔괘가 구궁을 돌아다니다 보면, 출발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아홉번에 한 번은 중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를 입중(入中)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입중에 의해 둔법(遁法)이 신비한 술법이라는 생각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팔괘가 입중하면 그 다음의 행로를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신비한 술법의 원리도 지금은 모두 공개되어 있다. 그렇지만 공개되어 있다고 해서 그 이치를 모두 알고있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둔법을 적용하여 만들어진 구궁자백론(九宮紫白論)의 원리는 아직까지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못했던 이유도 <천부경>이 해석되지 않았기 때문이니, 자백론은 '한'의 꼬임을 이해해야만 풀리기 때문이다.

⑦ 구궁자백론
구궁자백론이란 구궁을 오행의 색깔로 나타내어, 그 위에 팔괘를 운행시켜 팔괘와 구궁의 상호작용으로 길흉을 판단하는 점술의 일종이다.
이 또한 <주역>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개념으로서, 풍류의 진리를 전하기 위한 배려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먼저 구궁자백론의 구궁의 자백 설정은 다음 그림과 같다.
 먼저 대각선 <2 - 5 - 8>을 주목하자. 여기에는 세 개의 토(土)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이 토들이 이 그림이 단순한 오행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런 추측은 아랫쪽에서 나란히 나타나는 <8 - 1 - 6> 궁의 세 개의 백색(白色)이 지원한다. 백색은 오행에서 금(金)을 나타내는 색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그림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그림은 '한'의 꼬임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먼저 세 개의 토는 중심본체론에서 설명된 역학의 삼극인 무극 . 태극 . 황극이다. 그러나 구궁에 무극 . 태극 . 황극이 들어올 리는 없으니, 그들의 성질을 이어받은 토라는 뜻으로 무토(無土) . 공토(空土) . 중토(中土)로 부르기로 하자.
먼저 <8>백토(白土)는 무토이다. 백색은 모든 색을 반사한다. 변화에 참여하면서도 자신은 변하지 않는 중심축의 성질을 표상한다. 현상계에서 이런 사물을 찾으면 태양이다. 태양은 빛을 스스로 방출한다는 점에서 반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나, 태양계의 중심축이 되어 전색(全色)인 백색광을 발출하므로 무토의 자격이 있다. 특히 중심축으로서의 위상은 <8>백토의 자리에 배정되는 지지(地支)인 축토(丑土)와도 맞아 떨어진다.
다음으로 <2>흑토(黑土)는 공토이다. 흑색은 모든 색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이런 성질을 가진 현상계의 사물은 아직까지는 이론상의 존재인 블랙홀(Black Hole)이 있다. 자신의 존재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빛까지도 끌어당기는 블랙홀의 힘과 같은 수렴력을 상징하는 지지는 미토(未土)이다. 이 블랙홀의 성질을 이어받은 것이 지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구는 태양빛을 가로막아 완전한 어둠인 까만 색을 만들어내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흑토의 자리는 바로 미토의 자리이다.
마지막으로 <5>황토는 중토이다. 실제로 노란색은 태양에서 나오는 일곱가지 색깔 중에서 가운데에 자리잡은 색이다. 이 중토는 균형과 조화를 상징한다. 초월중성이나 본체중성을 제외한 현실적인 중성은 이 <5>황토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 토의 보다 중요한 역할은 운행방향에서 나타난다. 우선 출발점을 <1>백수(白水)로 잡아서 운행원리를 검토해 보자.
먼저 오행의 수(水)에 흰색을 배정한 것이 파격적이다. 수기는 본래 흑색으로 상징되며, 백색으로 나타내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자백론에서는 <1>수(水)를 흰색으로 설정하였으며, 이는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글쓴이는 그 이유로 여기서의 <1>백수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화이트홀(W-hite Hole)의 뜻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대폭발(Big Bang)과 같은 우주의 출발점을 나타내기 위해 출발점을 흰색으로 표현했다는 뜻이다.
이 출발점 이후의 운행은 태양의 운행으로 지구에 반영된다. 그러므로 <1>백수 다음의 차례는 <8>백토이다. 그런데 이 <8>백토궁은 아주 문제가 많은 곳이다. 다른 모든 궁은 차례를 지키고 있는데, 이 궁은 차례를 지키지 않고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즉 <1 - 2 - 3 - 4 >로 갔다가 <5>에서 반환점을 돌아 <6 - 7 - 8 - 9>로 가야하는데, <8>이 <2>와 자리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배치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8>과 <2>가 '한'의 꼬임에 의해 자리바꿈을 한 것처럼 보일 뿐이지, 실제로는 <8>의 자리에 <2>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오직 오행체에 의해서만 밝혀지는 내용이다.
             <천부경과 구궁도>

왼쪽 그림은 오른쪽 그림의 세 삼각형을 구궁수를 이용하여 복원해 본 것이다. 그러나 왼쪽 그림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다음 그림이다.
이 그림은 앞에서 클라인 원통과 구궁팔괘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그렸던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도 숫자와 팔괘가 뒤섞여 어지러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이 그림을 끌어온 것은 이 그림에 있는 구멍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이다.
여기에 그려진 구멍, 즉 괘가 배치되지 않은 빈자리는 십이지지에서 진술축미의 사토(四土)에 해당한다. 그리고 토는 중성이다. 이 그림에 있는 구멍들은 실제로는 이 전개도가 만드는 오행체의 무게중심으로 자리를 옮겨야 제대로 된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의 인식은 그런 형상을 추상해내지 못한다. 기껏 할 수 있는 정도가 이 전개도를 잘라 구멍을 한데 모아 복희팔괘의 배치도를 만드는 정도이다. 그리고 낙서구궁도가 세모꼴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림 [천부경과 구궁도]에서 그린 것 처럼, 숫자의 차례대로 선을 이으면 마주보는 두 개의 삼각형이 나오도록 배치하여 암시해 두었다. 그런데도 이 모습을 복원하는 데에 5000년이 걸린 것이다.
이제 구궁도로 되돌아가서 <1> 다음에 <8>로 가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본체가 활동을 시작하는 모습이 <1>백수라면, 그것이 분열하는 모습은 두가지로 나타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수평적 분산이요 다른 하나는 수직적 분출이다. 수직적 분출도 결국 수평적 분산으로 되돌아 가므로 분열의 본모습은 수평적 분산이다. 따라서 <2>로 진행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그렇지만 수직적 분출도 현상계에서 수평적 확산에 못지않게 자주 발견되므로 그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면 이 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구궁자백론은 둘 사이의 차이가 중성의 과부족에서 생겨난다고 본다. 중성이 완전히 발휘되면 수평적 분산이 되고, 중성이 어느 한 점에 집중되어 방향성을 띠면 수직적 분출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2>와 <8>에 모두 토를 배정한 것이다. 그리고 <8>은 차례를 따르지 않은 변화이지만 <2>보다 자주 나타난다는 뜻으로 <1> 옆에 배치하였다. 실제로 <2>와 <8>의 한자 모습은 눕고(二) 선(八) 차이는 있지만, 하나가 둘로 쪼개지는 모습을 표상하고 있는 점에서는 같다. 
그리고 <8>이 자연현상에서 더 자주 관찰되고, 또 자연스런 운행이라는 점을 그 다음의 숫자 진행을 통해 암시해 두었다. 즉 <8>이 있는 자리가 태양의 운행방향과 같으며, 그 다음에 이어지는 숫자가 <3>, <4>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음에 살펴볼 곳은 <9>자화궁(紫火宮)이다. 구궁수에서 <9>는 <1>의 짝이다. 구궁수가 상징하는 모습은 복희팔괘의 설명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맞붙음]이기 때문에, 마주보는 두 수가 짝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9>는 <1>의 짝이므로, <1>의 창조원점성에 반대되는 수렴원점성으로 이해된다. 즉 분열의 극한에서 수렴이 시작되는 곳이 <9>자화궁인 것이다.
이 수렴의 방향도 두 갈래로 구별된다. 그 하나는 보자기로 싸는 것과 같은 형식이다. 통째로 덮어서 묻어버리는 경우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방식이 일반적인 모습이며, 이 경우를 표상하는 것이 <2>흑토이다. 분산을 나타내는 <2>에 수렴의 완성을 뜻하는 흑색을 배정한 것은 이런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깔대기 같은 모양 속에다 밀어넣는 것이다. 분명히 수렴의 과정이면서도 부분적으로는 분출의 형태가 관찰된다. 이것을 표상한 것이 <8>백토이다. 이 방향이 순리이지만 현상계에서는 이 모습 보다는 <2>흑토의 수렴방식이 더 자주 나타난다. 그래서 <8>은 멀리 떨어지고 <2>가 <9> 옆에 붙어있는 것이다.
이제 <2>와 <8>을 종합해 보자. 이 둘은 분산의 첫걸음인 동시에 수렴의 첫걸음이 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양면성을 가지는 이유는 이들이 오행체의 꼬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꼬임은 앞뒤가 없는 특이한 형태를 뜻하며, 양쪽이 모두 앞이 될 수도 있고, 뒤가 될 수도 있는 특수한 형태 위의 두 지점이라는 뜻이다.
그런 자리는 중앙이며, 오행체에서의 중앙은 구멍이다. 즉 음양이 통합되는 곳인 동시에 음양이 분할되는 곳이다. 그런 자리는 중앙이며, 그래서 둘을 모두 土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그 중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모든 것이 보기에 달렸다는 진리를 이 구궁자백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3>과 <7>을 살펴보자. 이 둘은 <2>와 <8>의 목적지가 된다. <2>와 <8>이 중앙이기 때문에 어떤 방향이든 마음대로 취할 수 있다. 그래서 <2>가 태양의 운행방향을 따라가면 <7>로 가고, 숫자의 차례를 따라가면 <3>으로 간다. 마찬가지로 <8>이 태양의 운행을 따라가면 <3>으로 가고, 숫자의 차례를 거꾸로 따라가면 <7>로 간다. 바로 가고 돌아 가는 차이는 있을지라도 같은 목적지에 닿게되는 신비가 구궁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3>과 <7>은 갈림길이 없다. <3>은 숫자의 차례를 따라가도, 태양의 운행을 따라가도 <4>에 닿으며, <7>도 마찬가지로 <6>에 도착한다. 그래서 이 둘만이 같은 오행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방해해서는 안되는 과정이다. 자라는 싹을 자르지 않는 것은 <3>에서 <4>로 가는 과정을 존중함이요, 새끼 밴 짐승을 해치지 않는 것은 <7>에서 <6>으로 가는 과정을 방해하지 않음이다.
그러나 <4>와 <6>은 다시 갈림길을 만난다. 하나는 가운데로 들어가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태양의 운행을 계속 따라가는 길이다. 가운데로 들어가면 둘 다 <5>를 만난다. 십이지지에서 <5>는 진술토(辰戌土)에 해당한다. 실제로 진술토의 자리는 <4 . 6>의 자리이다.
가던 길을 계속 가면 <4>는 <9>로 가고, <6>은 <1>로 간다. <9>는 분열의 극한이요, <1>은 수렴의 종결이다. [불꽃]과 [물방울]은 <9>와 <1>의 속성을 아주 잘 나타내어 주는 우리말이다. 아무튼 일단 여기에 닿으면 지금까지 설명된 과정이 반복된다.
지금까지는 구궁의 수에 초점을 맞추어 해설하였는데, 구궁자백론에는 수와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지는 요소가 있으니 그것이 색(色)이다. 이 주제도 자세히 다루려면 상당히 복잡하지만, 여기서는 태양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하여, 구궁의 색깔이 무지개 색깔로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만 밝히고 넘어가기로 한다.
먼저 자백론의 색깔을 구궁수의 차례대로 나열하면 <하양 → 까망 → 파랑 → 초록 → 노랑 → 하양 → 빨강 → 보라>이다. 여기서 대각선 <2 . 5 . 8>의 하양과 까망은 무토(無土)의 전색(全色)과 공토(空土)의 무색(無色)에 해당하므로 뺀다.
나머지 일곱 색은 그대로 무지개의 일곱색깔로 바꾸어 정리할 수 있다. 무지개 색깔로 바꿀 때 기준이 되는 것은 <3 . 4 . 5>의 <파랑 . 초록 . 노랑>이다. <7>의 빨강이 한쪽 끝이므로 노랑<5>과 빨강<7> 사이의 <6>은 주황색, 즉 구릿빛이 된다. 빨강의 반대쪽 끝은 보라색이므로, 보라색(<9>)과 파랑색(<3>) 사이의 <1>은 남색이 된다. 
이렇게 바꾸어 놓고보면 한가지 특이한 점이 발견되는데, 파랑색<3>과 남색<1> 사이에 까망색<2>이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도 어떤 광학적 원리가 숨어있을 것으로 추측은 되지만 글쓴이는 아직 밝히지 못했다. 역학에 뜻을 둔 사람들의 연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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