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분화론
가. 분화론의 틀 분화론은 중심본체론에서 설명된 본체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상계의 다양한 사물을 생성해 내는지를 밝히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역학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초월적 본체가 현실적 근원으로 둔갑하는 과정도 어렵지만, 본래 [경계도 없이 한덩어리이고, 한덩어리이기 때문에 어떤 차이도 있을 수 없는 본체]에서 지금 우리가 보는 다양한 사물이 나타났다는 것은 너무도 신비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경우를 예로들면, 에너지가 어떤 과정을 거쳐 대우주와 은하계를 거쳐 태양계 및 우리 지구를 만들고, 다시 대기와 토양을 조성하여 식물과 동물을 창조하여 진화시킬 수 있었던지를 밝혀내는 전체 과정이 분화론에 해당한다. 그리고 과학에서도 이 분화론이 완전히 해명된 것은 아니니, 분화론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먼저 본체론에 해당하는 대통일 이론이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분화론의 뿌리는 본체론과 연결된다. 왜냐하면 분화의 개념은 자연의 본체를 탐구하므로서 얻어진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자연현상을 관찰하면 불교에서 말하듯이 [모든 존재는 항구불변한 것이 없어(諸行無常)]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꼴바꿈을 보면 지금 있는 모든 것들도 그렇게 꼴바꿈을 해 왔을 것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고, 그것을 역추적하여 최초의 모습을 밝히려는 것이 본체에 대한 탐구이다. 이렇게 보면 분화론은 본체와 현상사물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본체론은 본체가 하나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단원소설(單元素說)과, 본체가 둘 이상의 여러 요소들이 뭉친 것이라고 하는 다원소설(多元素說)로 대별된다. 단원소설은 우주를 분화론으로 설명하게 되고, 다원소설은 우주를 화합론으로 설명하게 된다. 그런데 소립자 물리학이 고도로 발전하여 상대성이론이 등장하므로서, 다원소설은 지지기반이 거의 붕괴하다시피 되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요소마저도 에너지라는 개념에 의해 종합되는 판국에, 현상계의 물질들 중에서 불변의 항구성을 인정받을 것들이 남아있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의 우주론은 분화론 쪽으로 가고 있는 셈인데, <천부경>의 입장도 [하나]라는 본체에서 우주가 분화되어 나온 것으로 보는만큼 분화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입장은 동도학의 대부분이 취하는 입장이며, 특히 역학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역학의 분화론은 정밀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전통역학에는 두가지 체계가 전해지고 있으니, 그 하나는 [양의 - 사상 - 팔괘]로 부연확장되는 음양론 또는 팔괘론이고, 다른 하나는 오행론으로서 [삼원 - 오행 - 간지]의 분화체계로 되어있다. 이 둘은 <천부경>의 수리에서 나온 것인데, <천부경>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통합체계가 밝혀지지 않았음은 이미 밝힌 바와 같다. 천부역은 이 두 체계를 통합하여 새로운 체계를 제시하려 한다. 새로운 체계는 <천부경>의 기본진리인 [삼한]의 체계로 구성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새롭게 구성하는 분화론의 삼한체계는 삼원론(三元論) . 오행론(五行論) . 팔괘론(八卦論)의 형태로 틀을 짜려한다. 삼원론은 다시 양의론(兩儀論) . 음양론(陰陽論) . 삼태극론(三太極論)으로 나누기로 한다. 같은 방식으로 오행론은 육률론(六律論) . 사상오행론(四象五行論) . 간지론(干支論)으로 나누고, 팔괘론은 소성론(小成論) . 대성론(大成論) . 구궁론(九宮論)의 세 분야로 나누기로 한다. 이 분화론의 해설초점은 이미 말한바와 같이, <천부경>의 수리체계를 이용하여 역학의 두 계통을 종합시키는 원리를 밝혀내는 데에 두어진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내용이 있더라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며, 역학의 지류(支流)라고 할 수 있는 천문학 . 지리학 . 명리학 . 한의학 등은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그런 내용들을 다루려면 너무 많은 지면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런 지류들은 기존의 역학 만으로도 충분히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또 그 내용들은 역학의 상위체계인 <천부경>에 직접 연결되는 것들이 별로 없고, <천부경>을 연구한 글쓴이가 연구하지 않은 부분이 더 많아서 함부로 취급할 처지도 아니다. 이 책은 역학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개념들을 재조명하여, 역학을 종교 . 철학 . 과학 등의 연구성과들과 접목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 책이 역학의 발전에 기여할 부분이 있다면 역학을 응용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제공하는 측면이 될 것이다. 나. 삼원론 1) 간추림 삼원론(三元論)이란 음(陰) . 양(陽) . 중(中)의 세 측면이 만물의 가장 본질적 존재형식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분화론의 체계 속에서는 본체가 삼원으로 분화하므로서 만상의 다양한 존재와 변화가 있게 된다고 보는 우주론인 것이다. 이 삼원론은 역학에 공통되는 분화론이면서도, 음양론(팔괘론)과 오행론에서는 삼원을 보는 관점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 차이점은 중을 취급하는 자세에서 나타나는데, 음양론은 팔괘 자체에 중을 표현하지 않으므로서 음양이원론의 형태를 띠고, 오행론은 중을 토성(土性)이라는 별개의 요소로 독립시키고 있으므로 삼원론의 형태를 띤다. 이 중에서 오행론이 취하는 삼원론의 입장이 <천부경>의 수리와 일치한다는 사실은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삼원론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그것을 보완한 것이 음양론이라 할 수 있다. 그 부족한 부분이란, 중성은 음성이나 양성과 다른 방식으로 분화하기 때문에 현상계는 음양 . 사상 . 팔괘의 모습으로 분화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인데, 삼원론은 이 부분을 나타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역학은 오행과 팔괘를 융합시켜 실생활에 응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둘이 어떻게 종합되는지가 밝혀지지 않아서 역학을 배우는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들 두가지 관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해설해 보자. 팔괘론(음양론)은 괘를 만들 때 음효와 양효만을 사용하며, 중효라는 것이 없다. 따라서 중성은 [음효와 양효가 결합되는 일 그 자체]로 이해된다. 그리고 하나의 괘에서는 가운데 자리가 중성자리로 취급되어, 그 괘의 전체 성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성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중성이 현실세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숨어있다는 사실을 중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중은 특정한 장소에서 고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 없고, 시간과 공간의 변동에 즉응(卽應)하여 수시로 변하고 있으므로 독립된 요소로 취급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결국 현상계의 사물은 사람이 어떤 기준을 설정하는 중성발현행위(中性發現行爲)에 의해 음양으로 구별되는 것이므로, 중성은 사람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팔괘론이 음양만으로 사물을 구별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합리성이 있지만, 이미 드러난 중성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가 라는 어려운 문제가 남게 된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행론의 중성을 도입해야 했던 것이다. 이에비해 오행론은 오행의 한 요소로 중성에 배정되는 토(土)를 독립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중성의 여러 속성들을 오행의 구조 속에 담아서 표현하고 있으니, 토가 중앙에 배치되어 있고 또 사방의 사상(수화금목)과 특수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오행론의 약점은 오행론의 장점인 중성을 독립시켜 사물에 배정한 바로 그것이다. 중성은 사람의 정신이 기준을 설정하는 행위에 의해 발현되는 것으로서, 본질적으로 고정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드러내어 고정시켰으니, 시공간의 변화에 즉응할 수 있는 융통성이 심각할 정도로 손상된 것이다. 그래서 오행론도 팔괘를 사용하여 사물의 정체(靜體)를 나타내고, 그 사물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설명할 경우에 오행의 상생상극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팔괘 자체가 오행에 도입되면서 문왕팔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행이 배정되었으므로, 팔괘가 정체를 나타내고 오행이 작용을 나타낸다고 단정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이 둘의 정확한 관계는 뒤의 오행론과 팔괘론에서 상세히 다루므로 여기서는 더 설명하지 말기로 하자. 여기서는 오행론이 중을 드러난 것으로 보고 팔괘론이 숨는 것으로 보는 차이는 있지만, 삼원론에 입각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을 알아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 삼원론은 유교에서 다루어온 <주역>의 음양 이원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천부경>을 시원경전으로 삼는 풍류의 삼한론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역학에서 중성이 차지하는 비중을 올바로 평가하면, 역학과 <천부경>의 관계도 저절로 밝혀지게 된다. 다음으로 넘어가서 삼원론을 양의론 . 음양론 . 삼태극론으로 나눈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먼저 양의론은 태극분화론이 된다. 태극이 음양의 합체가 아닌 음양미분의 통일체라면, 태극에는 음양의 개념으로는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또한 음양에도 태극에는 없는 개념이 있게된다. 그런데 기존의 역학에는 이 부분이 없어서 별도로 독립시킨 것이다. 음양론은 기존의 음양론을 요약하여 소개하기 위한 부분이다. 그러나 기존의 음양론에서 소홀히 했던 중성에 대해 설명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기존의 음양론과는 달리 중성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음양론이 된다. 결국 삼원론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양의론과 음양론을 구별한 것은 사실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을 구별한 것은 음양론에서 설명할 인도(人道)가 기존의 음양론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양의론은 음양을 중심으로 중을 이해하는 것으로, 음양론은 중을 중심으로 음양을 이해하면 이렇게 분리시킨 필요성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삼태극론은 <천부경> 수체계에 따른 천부역의 실제 분화론이다. 오행팔괘의 각 개체적 성격을 낳는 근본원리가, [음양배합의 차이]라는 것이 삼태극론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분화과정을 그림으로 나타내어 <천부경>에 의해 음양론(팔괘론)과 오행론이 <천부경>에 의해 종합되는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게 된다. 이 삼태극도가 재구성 되므로 해서, 중(中)과 심(心)을 본체로 삼아 자연을 해설한 '한'의 자연론의 철학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만큼 역학과 도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동시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한 활발한 연구와 응용을 기대한다. 2) 양의론 ① 양의의 뜻 양의(兩儀)란 글자 그대로는 두가지의 기본 법도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역학에서 특별한 용어로 쓰이는 말로서, 태극에서 분화되어 나온 음과 양을 각기 음의(陰儀)와 양의(陽儀)로 부르므로, 이 둘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지금까지 양의론은 역학에서도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던 분야였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양의론을 문제삼기에는 기존의 역학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또는 거꾸로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역학과 관련된 책들을 훑어보면 글쓴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수 있을 것이다. 고대의 역학은 본체론인 태극론에 치중하여 음양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현대의 역학은 팔괘론과 이진법을 과학적으로 해석하기에 바빠서 음양의 참된 의미를 소홀히 하고 있다. 양의론을 제대로 연구한 대표적인 역학자는 중국 명나라 때의 왕선산(王船山; 1619 - 1692)이라고 보여진다. 왕선산은 본명이 왕부지(王夫之)이며, 김용옥 선생이 기철학과 관련하여 그의 학설을 여러 번 소개하였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왕선산의 역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주자(주희)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까지는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다음의 인용문은 왕선산의 역학의 특색을 보여준다. <계사상전>의 "역에 태극이 있다"에 이어지는 문장은 "여기에 양의 생기고, 양의에 사상 생기며, 사상에 팔괘 생긴다"라는 글이다. 이 글을 일반적인 해석처럼 "이것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고 읽지 아니한 까닭은 양의와 사상과 팔괘를 생성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배척하는 왕선산의 사상적 입장에서이다. 이 글에 쓰여져 있는 세 개의 생(生)이라는 글자의 뜻에 대해 왕선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生이란 태어난 자를 아들이라 하고 낳는 자를 아버지라고 하는 뜻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태극과 양의와 사상과 팔괘 사이에 단절이 일어난다. 곧 태극만이 있고 양의가 없을 때, 양의만이 있고 사상이 없을 때, 사상만이 있고 팔괘가 없을 때가 있게 되는 것이다. 生이란 그곳에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얼굴에 눈 . 귀 . 코 . 입이 저절로 갖추어져 있는 것을 나누어 각각 생겼다고 하는 것처럼, 태극에 이어서 양의 . 사상 . 팔괘가 생겼음을 말한 것이다. 태극에 본래 있는 것을 양(兩)이라 말하고 四라 말하고 八이라 말한 것은, 각각의 차원에서 진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태극에서 생겨나는 양의란 무엇인가. 왕선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양의란 태극 속에 갖추어져 있는 음양의 양 측면인데, 그것을 의(儀)라 하는 것은 그것이 상도(常道)를 스스로 간직하고, 규범을 스스로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곧 음양이 엄숙하여 어지럽지 않은 조리(條理)를 각기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양(陽)의 체는 기(氣)와 신(神), 음(陰)의 체는 질(質)과 정(精)이며 양의 용(用)은 청(淸)과 명(明)과 생(生), 음의 용은 탁(濁)과 암(暗)과 살(殺)이다. 그리고 양의 수(數)는 실(實)한 기(奇), 음의 수는 허(虛)한 우(偶)인 것을 말한다. 태극에 양의가 생긴다는 것은, 태극을 아버지로하여 아들인 양의가 생긴다는 뜻이 아니라, 이와같은 음양기우(陰陽奇偶)의 양의가 64괘 전체 속에 감통(感通)하고 혼성(渾成)하는 건곤의 운동으로서 생기(生起)하는 것을 말한다. 왕선산의 역학의 특징은 다른 역학자들과 달리 분화론을 구조적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다. 즉 다른 역학자들은 태극에서 64괘에 이르는 과정을 세포분열과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주역>에 기록되지 않은 다음 단계를 생각하지만, 왕선산은 그 과정을 유기적 구조로 보므로 더 이상의 확장부연은 필요없다고 보는 것이다. 유기적 구조로 본다는 말은 생명체와 같은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사람이 머리와 몸통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양의, 머리가 앞쪽과 뒤쪽으로 나뉘고 몸통이 가슴과 허리(배)로 나뉘는 것이 사상, 다시 머리에 눈 . 귀 . 코 . 입이 박히고 몸통에 사지(四肢)가 달린 것이 팔괘 등으로 배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주자의 <주역본의>에 복희팔괘차서(伏羲八卦次序)라고 이름붙인 도(圖)가 있다. 주자가 거기에서 "소자(邵子)가 말하기를, 一이 나뉘어 二가 되고, 二가 나뉘어 四가 되며, 四가 나뉘어 八이 된다"고 기술한 것처럼, 그것은 소옹(邵雍)의 설을 계승한 것이다. 주자의 <역학계몽>에서는 계사상전의 이 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도(圖)로서 표시하였다. (그림생략)주자는 또한 이 삼효(三爻)의 괘에 의한 팔괘 다음에 "팔괘의 위에 각각 일기일우(一奇一偶)를 낳아 사획(四 )을 만든 것이 십육(十六)이다. 경(經)에서는 볼 수 없으나 소자가 말하는 바의 팔(八)이 나뉘어서 십육(十六)이 된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고, 다음에 오획(五 )의 괘 삼십이(三十二)를 만들며, 이 오획의 괘 위에 일기일우를 낳은 것이 육획(六 )의 괘 육십사(六十四)라고 하여, 복희육십사괘 차서도를 제시하였다(<주역>본의). 이것은 또한 라이프니쯔가 그것을 2진법의 보증으로 삼았던 복희육십사괘도와 같은 것이다. 주자는 또 칠획의 괘 백이십팔에서 시작하여 ...... 이십사획의 괘 천육백칠십칠만칠천이백십육에서부터 무한의 수에 이르는 것이 역도의 무궁함이라 하였다(역학계몽). 이상은 모두 소옹의 설에 바탕을 둔 것이다. 왕선산은 4획, 5획, 그리고 7획 이상 무한히 거듭되는 괘는 원래 <역경>에 없는 것이며, 이는 마음대로 사사로이 그리어 낸 것이라하여 배척하였다. 그리고 그 이분법(二分法) 또는 이배법(二倍法)은 단순한 어린애같은 산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천인(天人)의 이수(理數)를 개시(開示)하는 역에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엄격히 비판한다. 설명이 좀 어려워졌지만, 이 내용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알아둘 내용은 양의가 태극의 두 측면이라는 것이다. 왕선산은 태극을 "실제로는 음양의 혼합이지만 그것을 음양이라 부를 수는 없다"고 하면서, "음양 외에 이수(理數)가 없고, 건곤 외에 태극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음양이 태극의 두 측면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이 책에서는 왕선산이 말하는 양의의 뜻을 받아들이되, 양의를 음양과 다른 개념으로 독립시키려 한다. 양의가 음과 양인데 둘을 분리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짓이다. 그러나 양의와 음양은 분명히 구별해야할 영역이 있기 때문에 이 둘을 구별해 주려는 것이다. 양의와 음양을 구별해야할 영역이란 체용이라는 개념의 부분이다. 역학에는 체용(體用)이라는 개념이 있다. 상대적인 두 요소가 있을 때, 한쪽은 상대방을 쓰는 주체가 되고, 다른 한쪽은 주체에 쓰여지는 입장이 되는 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체용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주체가 되는 쪽을 체라하고 쓰여지는 쪽을 용이라 하는 것이다. 체용이란 말은 <주역>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지만, <정역>에는 "선천은 체방용원하니 이십칠삭으로 윤(달)이 있고, 후천은 체원용방하니 360일로 바르다(先天體方用圓 二十七朔而閏, 後天體圓用方 三百六旬而正)<정역 . 선후천정윤도수>"라는 말로 명기되어 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음양으로 바꿀 수 있는 방(方)과 원(圓)이 둘 다 체나 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음이 체도 될 수있고 용도 될 수 있으며, 양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음양은 이와 같이 자유롭게 자리바꿈이 되지 않는 개념이다. 음은 상대적으로 어둡고 차갑고 부드러운 것이며, 양은 상대적으로 밝고 따뜻하고 굳센 것으로 배정되어 있다. 이와같이 음양이라는 개념의 범주를 벗어난 상대성을, 역학에서는 취급은 하고 있으면서도 별도의 체계로 독립시키지 못했었다. 그러나 현대과학이 다루는 상대성은 음양의 개념과 같이 고정된 성질을 나타내는 용어로 다루기가 어렵다. 역학이 현대학문에 적응하고, 나아가 현대학문을 통합하는 진리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고정되지 않은 상대성]을 다루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상은 태극과 음양의 중간이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말하는 [양의]는 이런 것이다. 따라서 양의는 음양의 상부구조가 되고, 음양이 양의의 하부구조로 이해되는 새로운 체계가 필요하다. 여기서 음양을 반드시 그 구분기준인 중과 함께 다루게 하는 새로운 음양론을 제안하는 것이고, 그런 음양론을 삼원론으로 체계화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양의론이나 음양론에 고유의 탐구영역을 설정해 주면, 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천부역에서는 양의론의 탐구주제를 상대성의 성립원리로 삼고자 한다. 상대성이 성립하면 상호작용이 있게 되는데, 상호작용의 측면은 삼원론에서 다루게 된다. ② 양의론의 기본원리 양의론의 기본원리란 상대성의 성립원리를 말한다. 양의론이 태극론과 구별되고 다시 음양(삼원)론과도 구별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해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양의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첫째 통일체인 태극이 나뉘어야 하고, 둘째 나뉘어서 생긴 두 요소가 따로서야 하고, 셋째 서로 독립한 두 요소가 마주쳐야 하며, 마지막으로 마주친 두 요소 사이에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 중의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그것은 본체론이거나 개체론이 되고만다. 이 네가지 요건의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양의론의 고유영역을 확보해 보자. ㉠ 나뉨의 원리 양의의 개념이 성립하려면 반드시 [하나]에서 둘로 나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하나]는 태극(본체)을 나타내는 [하나]이다. 뒤집어 말하면 하나로서 완전한 개체는 양의의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태극이 양의와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이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여기서 보다 중요한 사실은 양의의 개념이 성립하려면 {반드시 [하나]가 둘로 나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둘을 종합했을 때, 통일성이 발견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둘을 종합했을 때 통일성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뉨이 아니라 공존이다. 공존은 반드시 [하나에서 나뉜 둘]이 같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나뉨의 원리는 그 자체 속에 이미 종합의 원리를 포함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 맞는, 양의의 대표적인 것이 음양인 셈이다. 또 상대성이론처럼 [A = B+C]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면, 굳이 음성과 양성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라도, [B]와 [C]를 양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수학의 곱셈에서 자주 나타난다. [7×7 = 49]나 [2×2 = 4]와 같은 경우, 어느 한쪽을 음이나 양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그러나 곱해지는 두 수는 합해져서 하나의 수를 만들고, 그 나누기도 성립하므로 서로 상대적인 관계에 있다. 사람의 경우에는 [짝]이라는 개념이 그런 경우이다. 남자와 여자가 짝을 이루는 부부와 같은 경우에는 음양이 적용되지만, 남자와 남자 또는 여자와 여자가 짝을 이루는 친구의 경우에는 음양의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가 있기 때문에 양의론을 독립시킨 것이다. ㉡ 따로섬의 원리 둘로 나뉜 요소들은 형태나 방식에는 관계가 없지만, 반드시 독립된 개체 또는 사물로 인식될 수 있어야 양의의 개념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것을 따로섬의 원리라고 한다. 암수 한몸인 원생동물, 예를들어 아메바 같은 것을 두고 암수를 따진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북극이나 남극에서 하루의 밤낮 구별은 거의 의미가 없으며, 적도에서 여름과 겨울은 쓸모없는 단어이고, 중력이 없는 우주공간에서 경중(輕重)을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태극이 음양을 모두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양의의 요소로 거론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태극의 안에 있든, 아니면 태극의 밖에 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둘로 나뉜 두 요소가 분명히 별개의 요소로 구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따로섬의 원리이다. ㉢ 마주침의 원리 양의가 성립되기 위한 또 하나의 조건은 둘이 마주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마주침이란 둘을 비교하여 차이점을 알고, 그것이 온전한 하나의 두 측면임을 확인할 수 있으면 족하며, 두 요소가 반드시 동일한 시공간 좌표상에서 접촉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둘이 같은 때에 같은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둘의 구별을 말하는 사람의 생각 속에서라도] 둘이 함께 있어야 한다. 상대되는 성별로서의 짝을 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자와 여자가 붙어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으면서 짝을 이룬 상태가 그 사람의 생각 속에라도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양의의 상대성은 만남을 전제해야 성립한다. 여기에도 두가지 뜻이 있게된다. 그 하나는 따로 떨어져버리면 양의의 상대성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소와 산소는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물이된다. 물분자를 말할 때는 수소원자와 산소원자는 양의로 파악된다. 그러나 물을 전기분해하여 분리시켜 버리면, 두 종류의 원자들은 다른 분자들과 결합할 수 있다. 다른 원자와 결합한 수소원자와 산소원자 사이에는 물과 연결될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양의의 상대성이 소멸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만남이 상관없는 요소들의 단순한 모임이어서는 안되고, 둘이 모여 하나의 통일적 개념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본래 하나이던 것이 나뉘어 둘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구별가능한 두 요소들이 본래 하나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마주침의 원리도 양의의 필수조건 중의 하나임을 이제는 알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마주침의 원리에서 양의 개념의 본질이 드러난다. 즉 사람의 기준설정 행위가 없으면 양의라는 개념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기준설정 행위가 중성의 발현이므로, 결국 이 원리에서 음 . 양 . 중의 삼원이 도출된다고 할 수 있다. ㉣ 기댐의 원리 어떤 두 요소가 나뉘어 구별 가능한 상태로 독립한 상태에서 다시 만나는 것만으로는 양의의 개념이 완성되지 않는다. 양의의 개념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두 요소가 결합해야 온전한 통일체가 복원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와같은 관계를 상호의존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없이는 다른 쪽도 양의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물이 양의가 되는 것이다. ③ 양의의 범위 양의론을 학술적으로 정립하려면 별도의 연구가 있어야 한다. 본체론이나 음양론과 구별되는 양의의 개념범주에 포함되는 상대성을 선정하려면, 외견상으로 음양과 유사한 것들을 모두 조사하여 그 중에서 양의론의 조건에 맞는 것을 추려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학은 그런 엄격한 관념의 굴레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음양으로 파악되는 사물 중에서 '음양을 고정시키지 않아도 되는 두 요소가 통일체를 이룰 수 있으면 된다'는 개념규정 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개념은 음양의 범주에 포함시키기가 곤란한 개념을 다루기 위해 개발된 것이지,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역학에 까다로운 학설을 덧붙이기 위해 고안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양의의 범위는 우선 음양을 기본으로 한다. 즉 음양으로 이해되는 것들은 자동적으로 양의에 소속된다. 양의와 음양이 구별되는 이유는 음양의 요소 이외에 다른 요소가 더 있기 때문이지, 음양이 제외되기 때문이 아니다. 이점을 분명히하면 양의의 범위에 포함시킬 별도의 요소는 몇가지 되지 않는다. 앞에서 이미 예로 들었던 몇가지 개념, 음성과 음성(양성과 양성)이 짝을 이루는 경우, 음성과 양성으로 구별할 수 없는 속성이 상호보완관계를 이루고 있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 이외에 음양의 개념과 겹치는 부분은 음양론에서 어느정도 설명되므로 그 내용을 참고로하여, 각자가 연구해 보기 바란다. 특히 주관과 객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이 책에 소개된 역학의 이치 전체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큰 이득이 있을 것이다. 주관과 객관은 자아탐구 또는 무인도에서 설명되는 금촉견성법과 연결되는 양의이기 때문이다. 3) 음양론 ① 음양과 삼한 음양은 역학 뿐만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아주 친숙한 말이다. 짝을 지을 수 있는 사물을 음양으로 나누어 부르는 예들은 전기의 양극과 음극, 땅의 음지와 양지, 조각(彫刻) 방법에서의 음각과 양각, 역법(曆法)에서의 음력과 양력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음양의 관념도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역시 풍류에 닿는다.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나 이것은 사실이다. [陰]자는 좌부방( )과 그늘 음(그림 참조)을 합한 글자인데, 이 중에서 좌부방은 [한풀이]에서 설명한대로 산이나 언덕에 굴을 파서 지은 신전이다. 즉 언덕(그림의 A)에 세 굴(그림의 B)을 파서 삼한신을 모셨던 것이 부(그림의 C)인 것이다. 그리고 그늘진 곳 또는 어두운 곳을 나타내는 <그늘 음>은 본래는 덮는다는 뜻의 [금(今)]과 구름을 나타내는 [운(云)]을 합친 글자이다. 구름이 덮어 어두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음을 나타내는 [今(금)]이 신을 나타내는 [ ]과 음이 통하는 것을 볼 때, 이 글자가 상징하는 것은 고모신(古母神)을 모시는 신전인 지하신전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양(陽)은 같은 좌부방에 해뜸을 뜻하는 단(旦)을 변형시킨 모습을 더한 글자로 되어있다. 이 글자가 상징하는 것은 분명히 솟대일 것이다. 따라서 양(陽)의 본래 뜻은 솟대를 세운 언덕인 [솟터]요, 이는 곧 태양신의 신전이다. 음양이 본래 신전을 뜻하였던 글자라면 역학의 본래 용도는 저절로 밝혀지는 셈이다. 두 신전이 표리일체의 한 덩어리를 이루어 태극(太極)에 해당하는 천지의 근본인 삼신신을 형성하고, 그 삼신산에서 [천지가 합덕하여 탄생시킨 으뜸가는 중심인 사람(人中天地一)]이 천하를 운영하는 법도가 역학이었던 것이다. 이 중심인 사람(人中)의 역할 차이가 오행론과 팔괘론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겠다. 즉 [사람]이 천지의 운행에 동참하는 문화권과 [사람]이 없이 천지로만 운영되는 문화권이 구별되었으며, [사람]이 동참하는 문화권에서는 [중]을 드러내었으나 [사람]이 동참하지 않는 문화권에서는 [중]을 숨겨야 했다는 뜻이다. [중]을 숨기는 문화권이 팔괘를 사용하고, [중]을 드러내는 문화권에서는 오행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중]을 숨기는 문화권에서는 [중]이 최고 궁극의 가치로 숭상되었지만, [중]을 드러내는 문화권에서는 [중]이 음이나 양보다 비중이 좀 더 큰 요소 정도로 이해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동참하는 문화권에서는 [중]인 [사람(인황)]이, 존귀하기는 하지만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는 신인(神人)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두 종류의 문화권 중 하나가 동이(東夷)문화권이고, 다른 하나가 동자(童子)문화권 또는 번왕(番王)문화권이다. 동이문화권에서는 [중]이 드러나는 삼원오행론이 사용되었고, 중이 숨는 동자문화권에서는 [중]이 숨는 음양팔괘론이 사용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둘을 종합할 수 있는 비밀의 열쇠가 바로 <천부경>이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천부경>으로 오행론과 팔괘론을 종합해야 하는 이유가 숨어있다. <천부경>을 통해 오행론과 팔괘론이 종합된 완전한 진리체계가 드러나므로써 고대문화의 실상이 밝혀지고, 동이문화의 위상이 제대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밝혀야할 사실이 있으니, 역학의 다른 이름이 바로 [인도(人道)]라는 것이다. [인도]란 그냥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천지음양을 통합한 중성을 상징하는 절대제왕의 칭호가 [人]이며, 그가 천지음양을 관장하여 홍익인간하는 도법이 [인도]인 것이다. 앞에서 양의와 음양이 대부분 중복되는 개념임을 이미 밝힌 바 있고, 그럼에도 양의론과 음양론(삼원론)을 구별한 이유가 이 [인도]에 있다고 말한 뜻이 이것이다. 그런만큼 삼원론은 [인도론]으로 이름붙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러나 [인도]는 음양보다 중에 중점을 두는 수행과 실천의 도법이기 때문에 역학의 일부분을 나타내는 이름으로는 부적당하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음양론으로 이름을 붙였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은 [인도]라는 사실을 기억해 두기 바란다. 왜냐하면 뒤에 다루게 될 [무인도]의 성립원리가 이 음양론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② 음양과 양의 음양론을 해설하려면 음양의 뜻에 대해 먼저 살펴보는 것이 순서이다. 그런데 음양의 개념에 대해서는 앞의 천부역의 기초에서 설명하였다. 기존 역학의 음양 개념 중에서 부족한 부분은 앞에서 설명한 [양의]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인데, 그점을 보완하였으니 음양의 개념과 관련하여 더 설명할 부분은 별로 없다. 그런데 양의론의 설명에서 양의를 음양(삼원)의 상부구조로 설정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그것은 양의가 음양과 구별되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이 구조적 측면에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양의는 둘을 합하면 통일체가 되는 두 요소라고 하였다. 이는 양의의 두 요소는 태극에서 갈라진 그 다음 단계만을 의미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양의에서 다시 음양이 쪼개질 수 있는 것이 역학의 분화원리이다. 양의에서 쪼개진 음양이 양의로 이해될 수 있는가? 역학에서 양의는 태극에서 나뉜 첫단계만을 의미하고, 양의에서 쪼개진 음양은 양의라고 부를 수 없음을 분명히하고 있으니, 양의의 다음 단계를 사상(四象)으로 규정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음양은 중성이 개입하여 상대적인 두 요소로 구별될 수만 있으면 사상 . 팔괘 . 64괘에 이르기까지 모두 음양에 소속된다. 결국 양의와 음양의 구별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이 부분이다. 예를들어 하루를 날짜의 본체 개념인 태극으로 볼 때, 밤과 낮은 양의인 동시에 음양이 되지만, 오전과 오후는 하루의 양의는 되지 못하고 음양관계만 인정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전과 오후도 낮을 본체(태극)로 볼 때에는 양의와 음양의 두 지위를 겸하게 된다. 따라서 음양은 양의보다 하위 개념이기는 하지만 그 범위는 양의보다 훨씬 넓어지게 된다. 음양의 관계에 있으면서 양의가 되지 않는 경우가 양의는 되면서 음양은 되지 않는 경우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는 음양이 양의보다 더 일반적인 자연의 모습이라는 뜻이 된다. ③ 음양의 수리 <천부경> 수리해설에서 밝힌 바와 같이, 수(數)는 사람이 인식한 자연현상이나 사물의 상호관계를 나타내는 부호이다. 그러므로 단 하나, 초월적 절대성인 '한'을 제외한 모든 존재는 수로 나타내어진다. <천부경>은 자연의 기본수로 [1 . 2 . 3]을 제시한다.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의 [天一 地二 人三]이 그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수들이 [음 . 양 . 중]의 수가 되는 과정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1 . 2 . 3]이 [음 . 양 . 중]의 수로 배정되어 있기는 한데, 하나만 맞고 두 개는 틀리게 알고있다는 말이다. <천부경> 수리해설의 [수의 음양] 항목에서 설명한대로, 음의 대표수는 [二]요, 양의 대표수는 [三]이요, 중의 대표수는 [一]이다. 그런데 역학에서는 음의 대표수는 [二]라고하여 <천부경>과 같이 말하고 있지만, 양의 대표수를 [一], 중의 대표수를 [三 또는 五]라고 한다. 중성의 대표수가 [一]이라는 사실이 전해지지 않은 것이다. 역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수리인데, 수리가 이렇게 잘못 전해지는 것만 보더라도 역학이 풍류의 진리를 온전히 이어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천부경>에는 하늘(天)인 [一]이 양, 땅(地)인 [二]가 음, 사람(人)인 [三]이 중으로 생각될 수 있도록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여기의 [一 . 二 . 三]은 음양의 개념이 생겨나기 이전의 본체인 태극의 세 측면을 나타내기 위한 부호이다. 여기서 상수(象數)와 실체수(實體數)의 개념을 구별해 줄 필요가 있다. 상수란 음양천지가 드러내는 현상계의 상징부호라는 뜻이고, 실체수란 음양이 분리되기 이전의 본체 또는 음양개념을 개입시키지 않은 실체를 나타내는 상징부호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체수는 이 중에서도 본체의 뜻이다. 나무에 비유한다면 나무의 줄기와 뿌리가 음양수에 대응한다면, 줄기도 뿌리도 아직 형상을 갖추지 않고 가능성으로 잠재해 있는 상태인 열매(實)가 실체수이며, 이때에는 음양은 아직 말할 수 없고 오직 본체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사정을 나타내기 위해서 <천부경>에서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으로, 쓸데없이 보일 수도 있는 [一]이 끼어들어 있는 것이다. 결국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은 중심본체론의 [무극 . 태극 . 황극]의 뜻이 되는 것이다. 이 추론이 맞다는 것은 <천부경>의 이어지는 구절이 증명한다.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天二三 地二三 人二三)"은 삼극이 각기 음양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즉 [二三]이 그대로 [음양]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하늘(天)도 땅(地)도 사람(人)도 모두 [一 . 中]으로 이해된다. 이 말은 결국 천지인 삼극의 수와 음양중 삼원의 수가 서로 다른 체계를 이루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수체계에서 오행의 원리가 도출된다. 천지음양이 사상(四象)을 이루고, 인중이 [一]로서 사상을 통합주재하는 토(土)가 되어 오행이 갖추어진다는 뜻이다. 다음의 두 그림은 [인중]이 [삼한(三一)]이 되어 천지음양을 주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오른쪽 그림의 [천三]은 [천一]과는 다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음양과 대등한 수준으로 파악된 하늘, 즉 땅과 함께 음양이라는 범주에서 이해한 하늘이므로 [三]이 되었으므로, 무극으로 이해되는 [천一]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중수가 [1]이되고, 양수가 [3]이 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그냥 양수가 [1]이되고, 중수가 [3]이 되어도 크게 틀릴 것도 없으며, 수천년 동안 불편없이 써 왔지 않은가? 아니다. 이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역학에는 없으며, 이 사실이 밝혀지지 못했기에 역학이 현실적 활력을 잃고 추상적 이학(理學)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주역 . 설괘전>에 "하늘을 3으로 하고 땅을 2로 해서 수를 정하였다(參天兩地而倚數)"는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이 중이 된다는 사실을 부각시키지 못했고, 그 결과 중이 [3 . 5 . 10]으로 마음대로 옮아다니게 되어 중성이 현실에 적용되기 어려웠다는 말이다. 그러던 중에 인도철학의 영향을 받게되어 [1]의 역할을 [0]에 넘겨주고 말았고, 이는 우주를 주재하는 기준을 비존재로 보게되는 허무철학의 융성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주의 주재자인 기준중성은 [0], 즉 [무(無)]로 볼수 있는 측면과 꼭 같은 정도로 [1], 즉 [유(有)]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측면이 동도학 전반에서 소홀히 다루어진 이유가 바로 [1]이 [중]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중을 [1]로 보게되면 [0]으로 보는 경우와는 달리 역학의 개념 전체를 형상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된다. 중을 [0]으로 보는 경우에는 좌표로 그리기에는 편리하지만 형상으로 나타내는 과정에서 반드시 모순이 생긴다. 어떤 경우에도 중이 현실에 드러날 수 없는 것이다. [중(中)]은 이미 설명한대로 기준이다. 기준을 표현할 수 없는데 음이나 양을 표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바로 이것이 [0]의 약점인 것이며, 비합리적인 창조론을 내세우게 되는 원인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준을 [1]로 설정하면 음이나 양은 현실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1]이라는 [유(有)]가 있으므로써 그것이 쪼개질 수도 있고 꼴바꿈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쪼개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되었으니, 꼴바꿈의 경우를 설명해보자. 그러려면 [1 . 2 . 3]을 형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 편리하다. 먼저 중심을 잡는다. 땅바닥에 직경 [1]의 원기둥을 박아서 고정시킨다. 그 원기둥에 지름(또는 면적)이 원기둥의 두 배 되는 고리와 세 배 되는 고리를 하나씩 끼운다. 즉 이음삼양(二陰三陽)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세 개의 동그라미를 자유롭게 돌렸을 때 만들어지는 모습 중에서 대표로 삼을 수 있는 형상은 다음 그림의 세 가지이다. 이 그림에서 숫자로 나타낸 것은 지름이다. 그림 (A)의 가장 먼 두 점의 직선거리는 [4]가 되고, (B)의 경우에는 [3]이 된다. 그리고 (C)의 경우에는 그 거리가 [3보다는 크고 4보다는 작은 크기]인데, 여기서는 편의상 [약 3. 5]로 나타내었다. 여기의 세 모습이 음양의 실상이요, 여기에서 현실의 음양상(陰陽相)인 오행이 도출되는 것이다. 이 동그라미들은 음양의 배합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미 여러번 언급한 것처럼 음양은 결국 동정(動靜)으로 바꿀수 있으므로, 위의 그림은 운동에너지(動性)의 강약을 나타내는 그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들이 보는 사물의 색깔도 결국 빛의 운동에너지(파장)의 강약이요, 우리들이 느끼는 온도라는 것도 물체를 구성하는 분자의 활발성의 정도일 뿐이다. 이렇게하여 천부역의 음양론과 현대과학이 종합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 모습을 수식화(數式化)하면 역학의 수식화가 가능할 것이지만, 글쓴이가 물리학이나 수학 중의 어느 하나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전문가의 연구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④ 인도 역학은 인도(人道)이다. 인도는 '한'풀이의 [원화위인(願化爲人)]에서 이미 설명된 내용이다. 그리고 자세한 내용은 뒤에 설명될 [무인도(巫人道)]에서 다루게 된다. 그러니 여기서는 [원화위인]에서 소개된 내용에 음양과 관계된 부분을 조금 덧붙여 설명하고자 한다. 박용숙 선생은 동이가 말하는 [인(人)]은 본질적으로 초인적인 능력자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들은 신의 모습인 탈을 쓴 이인(異人) 즉 이신(異神)들이므로 신인동형(神人同形)이며, 특별한 비법을 통하여 생물학적인 의미의 사람을 영적인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라고 한다. 또 [인(人)]에 대한 고대인의 주요개념으로, [人]은 곧 어짐(仁)이며, 만물의 영장이자 척도인 동시에, 중용(中庸)이면서 우주와 동질적인 완전함임을 제시하고 있다. 선생의 [人]에 대한 연구의 결론은 [人이라는 글자의 원시표상은 손의 모습이며, 보다 정확히 말하면 엄지손가락의 두마디와 집게손가락의 세마디에서 찾아지는 비례치, 즉 {3 : 2의 황금비례}라는 것]이다. 이 황금비례를 배워서 깨달은 사람을 (夫婁 . 仁)이라 부르며, 음양화합시에 일어나는 부풀음을 뜻하는 [ ]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황금비례를 사람과 사물에 응용할 줄 아는 특별한 영적 인간들이 바로 동이의 [人]이라는 것이다. 이 [人]의 두 획이 바로 음과 양이다. 즉 엄지의 두 마디가 음을 표상하고, 검지의 세마디가 양을 표상한다. 이 두 손가락은 손바닥이라는 본체에 붙어 있으므로 결국은 한덩어리 이며, 음과 양이 한덩어리가 되어 다양한 기능을 나타내므로 묘합(妙合)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음양을 하필이면 손가락으로 상징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잼]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잼]이란 뼘의 기능인 척도(尺度)를 뜻한다. [人]에 손등의 모양까지를 나타내면 [尺]이 된다. 우리 풍속에 어린 아기를 어를 때 한쪽 손가락으로 다른 손의 손바닥을 짚으면서 "곤지곤지 잼잼"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여기서 설명된 손의 기능을 가르치기 위한 풍습이기도 하다. 이 척도로서의 기능이 바로 [中]이다. 재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척도는 뼘이다. 이 뼘을 한자로 나타내면 [마디 촌(寸)]이 된다. 위에 그린 손모양을 하고, 앞에서 바라보면 틀림없는 [마디 촌]자가 나온다. 굽혀쥔 손가락이 점으로 보이는 것이다. 결국 고대에는 길이를 이 [마디]로 계측했다고 보여진다. 손에 나타난 음양의 황금비율이라는 기준은 우주자연을 이해하는 최고의 기준이 되었다. 사물에 이 기준(황금률)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으면 일반인이 알 수 없는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그 지식을 활용하면 일반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인도를 체계화한 것이 역(易)이었고, 그 때문에 역을 다루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성직이었다. 동이(東夷)가 <천부경>의 진리를 체득하여 천문지리에 통달한 기술자(과학자)집단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바로 이 인도이니, 결국 인도는 동이족 성인들의 도법이 된다. 그들은 인체를 경전으로 삼아 음양비례를 연구하였고, 그 인체경전은 그들이 신전에 모신 신상(神像)들인 우상(偶像)들이었다. 그들이 인체경전에서 찾아낸 황금비례(중용)의 법칙을 정치를 비롯한 생활 전반에 적용시켜 세계국가와 세계문화를 건설했던 인도가, 바로 <천부경>에서 유래한 역학인 것이다. 4) 삼태극론 ① 삼태극도 지금까지 설명된 음양론을 종합하면 삼태극이 나오는데, 이 삼태극(三太極)이야말로 <천부경> 역리의 정화(精華)이다. 태극에서부터 양의 . 사상 . 오행 . 팔괘는 물론이요, 64괘까지도 완벽한 형태로 종합되어 있는 동도학의 둘째 보물이다. 이 삼태극도를 복원해 낸 학자가 바로 최재충 선생이다. 선생이 밝혀낸 <천부경> 수리를 도표로 나타내면 삼태극도가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글쓴이는 <천부경> 연구의 최고 권위자를 최재충 선생이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선생은 이 그림을 삼태극도라고 이름 붙이지는 않았지만, 이 그림이 삼태극을 나타내는 그림이므로 선생이 삼태극도를 복원했다고 한 것이다. 이 그림은 앞에서 이미 소개했던 그림이다. 이 그림의 설명은 <천부경> 수리해설 부분을 참고하기 바라며,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여기서 설명할 내용은 이 그림 속에 담겨있는 역학의 원리들이다. 우선 이 그림에는 [한]으로 표시된 중심본체, 즉 삼극합일체가 있다. 그 삼극을 나누어 놓은 것이 [+ . -]로 표시한 것들이다. 위쪽에 표시된 [+]가 [天]이요, 아래쪽에 표시된 [-]가 [地]이며, 양쪽 옆에 표시한 [ ]가 [人]이다. [人]은 한덩어리로 나타내어야 하지만, <천부경> 수체계에서 나온대로 그렸기 때문에 둘로 나뉘어 나타난 것이다. 그 바깥쪽에 있는 [1]부터 [6]까지의 숫자가 음 . 양 . 중 삼원(三元)이다. 이책의 입장에서는 이 여섯 숫자가 [2 . 3]으로 바뀌어야 하지만, <천부경> 수체계와 일치시키기 위해 그대로 썼다. 따라서 [天]의 음양이 [1 . 2]요, [地]의 음양이 [4 . 5]요, [人]의 음양이 [3 . 6]가 된다. 그 다음에 그려진 것이 하도에 나오는 오행을 나타내는 자연수이다. 오행론에서 사용되는 생수와 성수의 개념도 이 그림에서 나온 것이다. 땅에 속하는 [6 . 7 . 8 . 9]만이 현실에 드러나므로 이것을 성수(成數)라고 하고, 하늘에 속하여 성수를 낳는 기반이 되면서도 현상계에 드러나지 않는 [1 . 2 . 3 . 4]를 생수(生數)라고 하는 것이다. 그 바깥에 있는 것은 그 전단계인 오행수가 모두 삼원(음양중)을 갖춘 수임을 나타내는 조직수이다. 이 단계에서 <천부경>의 수체계는 완성된다. 따라서 [30]이상의 수는 <천부경>의 체계에서는 없다. 그 이상의 수는 이 숫자들의 결합에 의해 생성되는 수이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64괘이다. 위 그림에 보면 팔괘가 모두 세쌍이 나온다. 한쌍은 [天]에, 또 한쌍은 [地]에 있으며, 나머지 한쌍은 [人]에 절반씩 나뉘어 있다. 이는 [人]에 배정된 수들을 음양의 부호로 바꾸어주면 나오는데, 그것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설명해야할 사실은 [人]이 [天 . 地]에 속한 팔괘가 겹친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겹침은 음양결합인 곱하기 형식이므로, 64괘를 낳는다. 이 삼태극도를 보면, 역학이 처음부터 완성된 형식, 즉 음양(삼원) . 오행 . 팔괘를 종합한 상태로 출발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이어지는 오행론과 팔괘론의 해설을 통해 계속 증명될 것이다. ② 삼태극의 특징 삼태극은 본체(태극)가 아니라 삼원이다. 즉 음양중의 세 요소가 어울려 만들어내는 우주모형이라 하겠다. 이 그림에서 나타나는 동심원과 방사형의 십자도상은 그 옛날 풍류의 세계지배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모든 문명에 어김없이 전승되고 있는 진리의 표상이다. 삼태극의 가장 큰 특징은 이 그림이 곧바로 '한'의 꼴과 연결되는 우주모형이라는 것이다. [천지]가 각각 두 개씩의 구역으로 나뉘므로써 정사면체의 네 면에 배정되고, 중성인 [人]이 [천지]의 모든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그 결합형식까지 담고 있다. 그 결합형식이란 앞에서 소개되었고, 뒤의 팔괘론에서 상세히 설명되는 오행체의 결합형식이다. 삼태극의 둘째 특징은 음양 이원론이 아니라 음양중 삼원론이라는 것이다. 이 삼원론은 지금까지 <주역>에 부족했던 점을 완전히 메워줄 새로운 논리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도 뒤의 팔괘론에서 자세히 설명된다. 아무튼 이 두가지 특징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역학 전반의 성립원리를 통째로 바꾸어야 한다는 문제를 야기시킨다. 지금부터 설명되는 오행론과 팔괘론은 이 새로운 관점에 입각하여 해설해 나가게 된다. 이 내용과 기존 역학이론들과의 비교평가는 독자들의 권한사항일 것이다. 다. 오행론 1) 간추림 오행론은 역학에 있어서 미묘한 지위에 있다. <주역>에는 그 개념조차 언급되지 않으면서도, <주역>에 못지않은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서경>에 이미 그 이름과 내용까지 등장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점술과 함께 고대 제왕의 필수적인 통치술로 일컬어지는 의술서인 <황제내경>도 오행론에 입각하여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동도학의 으뜸경전인 <천부경>에도 오행이란 말이나 오행의 각 요소들의 이름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천부경> 수리를 풀면 오행의 수리가 도출된다. 오행의 수리란 자연수인 [1]부터 [10]까지의 수를 말하는 것이다. 자연수가 오행의 수리가 되는 근거는, 팔괘에 필요한 숫자는 여덟이 되므로, 굳이 열 개의 수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궁까지를 팔괘의 범위에 포함시켜도 한 개의 숫자가 남으므로, 자연수가 팔괘 이외의 체계를 필요로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천부경>의 오행론은 [육률론(六律論)]으로 부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왜냐하면 <천부경>에서 [1]과 동등한 비중으로 사용되는 수는 [5]가 아니라 [6]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천부경> 여든 한자의 정중앙에 배치된 글자가 바로 [六]이라는 숫자이고, [六]이 <천부경>의 중앙에 배치된 것은 <천부경>의 사상적 중심이 바로 [六]이라는 숫자에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천지인 삼극의 수인 [1 . 2 . 3]을 모두 더하면 [6]이되어, <천부경>의 중앙수인 [6]과 같아지는 사실만 보아도 <천부경>은 [6]을 우주의 기본 법도로 삼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런만큼 천부역의 오행론은 [육수(六數)의 규율 아래에서 음양의 수가 운행하는 이치를 밝히는 이론]이고, 이를 줄여서 표현하면 [육률오행]이 될 것이다. 실제로 [6]에서 중성수인 [1]을 빼면 [5]가 되고, 이 [5]는 양수 [3]과 음수 [2]로 나누어지며, 이 둘을 곱하면 다시 [6]으로 돌아오므로 이런 명칭은 아무런 무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이 책에서는 오행론이 역학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육률론]으로 독립시켜 해설하고, 기존의 오행론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오행론]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그리고 기존의 오행론 중에서 핵심요소인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를 따로 떼어 [간지론]으로 해설하려 한다. 간지론은 이미 밝혀진 내용들만 하더라도 팔괘 이상으로 중요한 역학 개념이면서도, 그 설정원리와 현실적 의미들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다. 여기서는 <천부경>과 간지의 관계 및 현실적(과학적) 의미들을 간단히 살펴보려고 한다. 2) 육률론 ① 육률의 뜻 [육률(六律)]이란 앞에서 말한대로, <천부경> 81자의 중앙에 배치된 숫자인 [六]이 <천부경>이 담고있는 진리 전체를 조율(調律)하는 주재(主宰) 역할을 한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이 육률이라는 말은 동양음악에서 사용되는 말로서, 육률(六律)과 육려(六呂)의 통칭인 십이율(十二律)의 양성음(陽性音)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이 뜻이 있기 때문에 이 이름을 쓰는 것이니, 이 천부역이 바로 풍류의 진리중 한 부분이요, 풍류라는 말이 노래가락이라는 뜻으로도 쓰이는 사실을 취한 것이다. 현대 천문학자들이 전파망원경으로 태양계를 관찰하다가 명왕성 쪽에서 날아오는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포착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지적인 생물들이 발사한 전파신호로 생각하여 흥분하였으나, 알고보니 그것이 태양풍(太陽風)이었다고 한다. 태양풍이란 태양에서 방출된 전기를 띤 미립자들의 흐름인데, 그 태양풍이 명왕성의 외곽을 둘러싼 무형의 에너지 장벽에 반사된 것이 전파망원경에 포착되었을 때 음악소리와 같은 규칙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 소리가 규칙성을 보였다는 것은 태양계를 규율하는 질서가 악보와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된다. 육률이란 이름은 바로 이런 뜻을 담고있다. 이 육률을 다른 말로 나타내면 이기(理氣)가 된다. 이기라고 하면 무슨 형이상학적 관념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그 원형은 음률이다. [理]는 글자의 본래 뜻이 [투명한 옥(玉)에 나타난 무늬(里)]라는 뜻이다. [氣]는 여러번 설명하였듯이 [김 또는 숨]이다. [氣]의 대표는 공기(空氣), 즉 바람이다. 호흡(숨)을 조절하여 무늬를 넣어주면 노래가 된다. 이 노래가 공기 중을 통과하는 모습은 나이테와 같다. 따라서 노래야 말로 [기의 무늬]가 되므로 이기(理氣)는 노래인 것이다. 주자학에 정통한 학자들은 사문난적(斯文亂賊) 같은 소리라고 불호령을 내리시겠지만, 주자가 스승으로 모셨던 공자가 가장 중시한 것이 예악(禮樂)이었던 것은 공자 이전에 이와같은 위대한 풍류(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우주의 노래는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듣는 자연의 음악, 새소리 . 바람소리 . 물소리 . 사람의 심장박동과 숨소리에까지 반영되어 있다. 그 속에서 찾은 법칙도 음양의 법도에 어그러질 수가 없다. 이제 육률이 이런 자연질서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아주 적합한 말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그 육률의 구체적인 내용, <천부경>에 담긴 우주의 창조와 변화원리를 살펴보도록 하자. ② 육률의 위상 ㉠ 기본율로서의 위상 천부역에서의 육률의 위상은 첫째, 전체 체계를 일관하는 기본율(基本律)로서의 위상과 둘째, 자연수 체계에서 발견되는 중심율(中心律)로서의 위상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기본율로서의 위상이란 <천부경> 역리 전체의 구조적 질서가 6수에 의해 규율된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천부경> 수리체계에서 발견되는 6수의 구조는 진리상징인 삼극의 수리로 나타난다. 다음 수리도를 보자. 이 단계는 삼극의 고유수인 [1 . 2 . 3]이 상호작용을 통해 융합되므로써 6수를 형성하여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기틀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삼극이 자체 내에 있는 수리를 이용하여 스스로 변화하는 성질을 자화(自化)라고 하는데, 이 과정은 본체가 자화하여 대자(對自)를 만드는 과정이라 한다. 대자(對自)란 스스로를 객체화하여 상호작용의 대상으로 삼은 것인데, 자기암시나 자기최면의 대상으로 삼은 자기자신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육률이 여섯 개의 요소로 구성되면서도 삼원의 특성에 의해 오행사상으로 현실화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삼원의 특성은 말할것도 없이 삼극의 특성이 현실화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아무튼 육률이 오행사상을 형성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이 그림은 앞의 그림을 변형시켜 중성수를 한곳으로 모은 것이다. <천부경> 수리에서는 중인 人에 배정되는 수는 중성이므로 음양묘합이 이미 되어 있는 상태이고, 따라서 둘로 이루어져 있더라도 하나로 취급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에 배정된 [3 . 6]은 두 개의 수이지만 하나로 취급되어, 육률이 현실에 나타날 때에는 오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내용은 뒤의 중심률로서의 위상에서 그려지는 천부역 체계 구조도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이 그림은 삼극의 [1 . 2 . 3]이 상호작용 하면서 <천부경> 수리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그린 그림이다.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말한 [두개의 중성수가 하나로 나타나는 모습을 실제로 보게된다. 즉 이 그림에는 [6]의 자리를 [③]이 차지하므로써 [3]이 두 개가 되었다. 결국 이 그림은 역학의 사상오행 개념이 자의적인 사물분류방식이 아니라, 자연의 수리 자체에 구비되어 있는 원리를 체계화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이 그림에서 또하나 중요한 사실은, 육률오행에서의 중성수는 [5]가 아니라 [3]이라는 점이다. 중성을 가운데에 두는 것이 옳다면, 오행의 순서는 [목 . 화 . 토 . 금 . 수]가 맞다. 이는 오행에서 [土]를 중성으로 두는 것을 고려하여, 세 번째 위치에 [土]를 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木]을 머리로 삼는다. 이 순서가 먼저 정해지고, 이를 음양으로 나눈 것이 오행수이다. 육률이 천부경을 일관하는 수리임은 수체계의 삼단구조 전체에 6수의 형식이 반복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천부경 수체계의 말단인 조직수도 기본체계인 종합수와 마찬가지로 삼극의 자화에 의한 대자의 형식이 반영되어 여섯 수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현대수학의 프랙탈 원리나 물리학의 홀로그래피 이론과도 일치하는데, 천부경은 그 원리들의 수리적 구조까지도 수천년 전에 이미 밝혀놓은 수준높은 진리인 것이다. ㉡ 중심율로서의 위상 천부역의 육률은 삼단 삼원구조를 이루고, 이 중에서 육률은 중심적인 위상을 차지하는데, 이것을 중심율로서의 위상이라고 한다. 이미 몇번 소개된 적이 있는 다음 그림은 <천부경> 수리의 삼단구조를 보여준다. 이 그림의 맨 바깥의 큰 삼각형(△1.2.3)이 "일석삼극"의 모습을 나타내고, 맨 안쪽의 작은 삼각형(△7.8.9)이 "육생칠팔구"의 뜻을 나타내는데 비해, 가운데 삼각형(△③.4.5)은 천부경 해설체계에는 없는 그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삼각형은 육률 . 오행 . 사상을 나타내는 것이니, 천부경 수리해설 중에 "삼사성환 오칠일묘연"을 나타내는 그림이 바로 이것이다. 아무튼 이 그림에 나타나는 세 단계를 역의 세 영역이라는 뜻으로 [삼원구조(三元構造)]로 부르기로 한다. 이 세 영역이 단계를 이루고 있으므로 삼단구조(三段構造)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하겠지만, 삼단구조라는 말을 수체계의 종합수 - 개체수 - 조직수를 나타내는 말로 썼기 때문에 그것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이 삼원구조에서 육률오행은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삼원과 팔괘를 종합하여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육률의 이런 역할을 [중심율로서의 위상]이라고 부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육률이 역리를 종합하여 매개하는 역할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③ 육률과 역리 ㉠ 자연률(自然律) 역리의 탐구대상은 자연이다. 육률은 그 자연이 스스로를 규율하는 기본규율로 이해되며, 이를 자연률이라고 나타낸 것이다. 육률을 자연률로 이해하는 이유는 원의 속성 중에서 6수에 의해 확장되는 원리에서 취한 것이다. 원이 6수에 의해 확장된다는 것은 같은 크기의 원이 여섯 개 있으면 하나의 원을 빈틈없이 에워쌀 수 있으므로, 원의 범위확대는 6수에 의해 달성된다고 본 것이다. 이 6수에 의한 확장원리가 천부경 수리를 거쳐 삼태극도로 나타나고, 그것이 변형되면 오행체를 이룬다. 따라서 자연률의 현실적용은 오행체로 나타나게 되고, 그래서 천부역은 오행체로 팔괘를 종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역도(易圖)를 제시하는 것이다. ㉡ 괘체(卦體)의 구성원리 육률은 오행의 형성원리인 동시에 팔괘의 형상인 괘체를 구성하는 원리가 된다. 육률이 오행을 형성하는 원리는 [3 . 4 . 5 . 6]의 수리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이 그림에서 오른쪽에 그린 것은 왼쪽 그림 중에서 가운데 부분을 따로 떼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림에서 [③]으로 표시된 숫자는 실제로는 [6]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삼생사오륙(三生四五六)]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실질적인 [사상 . 오행 . 육률]인 것이다. 이 과정과 괘체의 형성원리와의 관계는 다음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3획인 건괘를 바탕으로 하여, 4획 . 5획 . 6획에 이르러 완성된다. 이 그림을 보면 육률이 괘체를 구성한다는 뜻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양괘가 5획으로 음괘가 4획으로 나타나는 것은, 건곤이 본질적으로 중성인 [3 . ③]으로 나타나는 것과 함께, 천부경 수체계와 완전히 일치하는 모습이라 하겠다. 3) 오행사상론 ① 간추림 오행은 <주역>에서는 중시하지 않는 개념이다. 그러나 <주역> 이외의 역학에서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니, 구체적으로는 한의학의 원조인 <황제내경>의 기본원리이며, 명리학에서는 팔괘보다도 더 중요한 개념으로 취급된다. 특히 풍류에서는 그 핵심진리 중 하나인 홍범구주에서 구대강목(九大綱目) 중에서 머리에 두어지고 있다. 오행을 설명하려면 그 뜻과 개략적인 내용부터 소개하는 것이 순서이지만, 그 내용들은 서두의 천부역의 기초에서 이미 소개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천부경>이 제시하는 오행론만을 중점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천부역의 오행론은 삼원과 팔괘를 연결하는 육률오행(六律五行)이다. 그리고 육률오행에서 오행은 육률의 실제 내용을 형성한다. 육률은 삼원에 의해 형성되는데 삼원의 최대범위가 [6수]이므로, 오행의 생성원리를 삼원론으로 밝히면 육률이 오행의 규범임을 알 수 있게된다. ② 육률의 내실 오행은 육률의 실질적 내용이다. <천부경> 수리가 대삼합육에 이르러 개체수와 조직수가 유기적 관련을 이루는 종합구조를 완성한 것이 육률이다. 이 육률은 <천부경> 수리의 관점에서 표현하면 [열 개의 개체수 상호간의 유기적 관련구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개체수 자체의 조합 만으로는 열 개의 개체수를 통합하여 육률의 구조로 환원 시켜주는 원리는 도출되지 않는다. 바로 이 때문에 육률이 오행십수(五行十數)의 상위규범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즉 개체수를 조직하는 별개의 원리인 육률이 있어서 그 육률에 의해 개체수들이 관계지어져 오행이라는 작용구조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 작용구조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어진 개체수는 수의 음양에서 설명된 기초수(제곱수를 만들던 자연수)와는 다른 의미가 부가된 수로 이해된다. 그러나 추가된 의미도 기초수 상호간의 관계를 해석하는 방식의 일종이므로, 수체계 자체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가지는 여러 종류의 개체수들을 [자연수]로 총칭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 자연수를 사람이 해석하는 방식은 자유이지만, 자연수의 본질은 그 해석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해석하는 사람의 해석에 상관없이 독자적 의미영역을 유지하는 우주의 본질적 관계형식이 자연수로 표현되어진다. 아무튼 상수(象數)를 기초로 형성되는 오행은 우주의 기본적인 관계양식으로서 팔괘구조의 도출근거가 되고, 팔괘가 우주 관계구조의 한 측면을 본떠 만든 관계원리인 만큼, 오행은 팔괘구조를 운영하는 상위규범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오행은 육률의 내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연수(십수)의 내실이 아홉 영역으로 나뉘어지는 것과 같이, 육률의 여섯 수에 의해 분할된 본체가 다섯 영역으로 이해되는 것이 우리들의 인식경향인 것이다. 이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③ 오행의 생성원리 지금까지 오행의 생성원리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오행의 원리는 자연현상을 관찰하여 체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속에 깊은 철학적 원리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밝힌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더구나 오행과 함께 역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어 온 팔괘가 각광을 받으면서, 오행은 갈수록 관심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는 오행이 팔괘보다 쉽고 간단한데다가, 그 용도가 의술과 점술 등의 분야에 치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분야들은 철학자들이 존경하는 대사상가들의 관심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그러나 한동석 선생이 역리적(易理的) 해석을 전개하고, 최재충 선생이 <천부경> 수리를 밝혀내면서 오행의 철학적 근거가 복원되었으므로, 이제 오행론은 정당한 자리매김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글쓴이는 이 두가지 연구결과를 종합하여, 오행론이 음양론(삼원론)의 하위체계로서 팔괘론을 지도하는 역학원리임을 밝히고자 한다. 그 첫 번째 관문이 오행의 생성원리이니, 오행의 생성원리에 음양론과 팔괘론을 연결시키는 원리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역학에서 오행론이 발붙일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오행은 삼원론에서 설명된 삼원(三元)의 운동에 의해 생겨난다. 여기서 말하는 삼원의 운동이란, 삼원의 상호작용 중에서도 세 개의 원으로 나타낸 음양중의 운동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먼저 세 개의 원이 겹쳐진 상태(B)가 <천부경>의 "인일삼(人一三)"인데, 이것을 <노자>에서는 "삼생만물(三生萬物)"이라고 한다. 이 상태는 음(2) . 양(3) . 중(1)이 겹쳐져 하나로 된 상태로서, 전체면적은 [1 + 2 + 3 = 6]이지만 겹쳐진 부분은 동화된 것으로 취급되어 전체면적은 [3]으로 인식된다. 이것을 천(1) . 지(2) 합덕한 인(1 + 2 = 3)이라 하는 것이다. 결국 이 형태는 [3]인 동시에 [6]으로서 음 . 양 . 중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에 여기서 만물이 나올 수 있고, 이것을 "삼생만물"이라 한 것이다. 이 내용을 통해 오행론이 삼목(三木)인 갑(甲)을 머리로 삼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음양이 마주보고 있는 상태(A)를 살펴보자. 이 상태도 전체 수치는 [6]이지만, 드러나는 부분은 [4]가 된다. 이 상태는 음은 음대로, 양은 양대로 자기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상태이다. 그래서 오행론은 사금(四金)을 만물의 성숙 . 결실이라고 말한다. 나무에 비유하자면, 가을철을 맞아 잎(二火性)은 떨어져 나가고(火는 분열성이다), 줄기(一水性)는 알몸을 드러내며(水는 본체성이다), 열매는 새로운 창조력(三中性)을 갈무리하는 것이다. 고대에 한해(一年)를 춘추(春秋)라고 불렀던 것은 사계(四季)를 인식하는 축이 춘목(春木) 추금(秋金)이었으며, 그런 관점이 바로 이와같은 오행의 인식에서 유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수화(水火)는 이 사금(四金)을 완전상태로 보고, 그 구성요소를 현상계의 가장 기본형태인 천지에 배정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음(2)이 중(1)과 겹쳐진 부분을 빼면 [1]이 남는다. 이것을 음성의 작용체로 보아서 일수(一水)로 둔 것이다. 양(3)도 같은 이치로 중(1)을 뺀 [2]를 양성의 활동력으로 보아 이화(二火)로 둔 것이다. 완전한 상태(四金)의 상대적인 요소인 음양을 <천부경>의 천일 . 지이의 수를 빌어 음양으로 개편하여 오행을 갖춘 것이다. 결국 금목(金木)을 체(體)로 삼고, 수화(水火)를 용(用)으로 삼는 새로운 오행론이 제시되는 것이며, 이런 관점을 지지해 주는 것이 기존의 오행론에서 "음양운동이란 수화(水火)의 운동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 지금까지는 "수화를 본체로 삼아 음양의 운동이 일어난다"고 해석했는데, 여기서 지금까지 설명한 방식으로 이를 재해석하면 "수화는 음양의 운동이요, 금목은 음양운동의 본체가 된다"로 바꾸어질 수 있다. 여기서 금목을 본체로 삼는다는 말은, 오행론에서 금목이 동서에 놓이는 사실과 관련하여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일월(日月)의 길이 바로 동서(東西)이기 때문이다. 해와 달을 나타내는 말이 [밝]이요, 그 길을 [백도(白道)]라고 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오행론이 바로 백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설명을 통해 한겨레의 시조인 환웅천황께서 개천입국하신 날짜가 지금의 달력으로 시월 초사흘(10월 3일)인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완전한 시간대에 온전한 나라를 세운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지금의 개천절이 소위 은정월(殷正月)의 초사흘이며, 이 때를 우리 겨레의 입장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정월 초사흘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밝힌적이 있다. 이제 이 내용을 육률오행론의 입장에서 해설해 보자. 여기서 설명된 삼목사금(三木四金)은 실제로는 [6수]의 작용모습이다. 이것을 <천부경>은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이라고 말한 것이다. <천부경>에서 보는 자연의 운행법칙의 기본은 음양중을 합한 [6수]로 만들어낸 세 개의 고리가 보여주는 [3]과 [4]의 변화모습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형태는 네 가지의 대표적 형태로 구별된다. 위 그림의 B에서 A로 가는 과정에 C의 상태가 있고, 또 A에서 B로 돌아오는 과정의 중간에도 C의 상태가 한 번더 나타난다. 이 두 개의 C를 일수이화(一水二火)의 중간과정으로 보아 춘추(春秋), 즉 일월(日月)의 자리에 배정한 것이 오행론에서 말하는 삼목(三木) 사금(四金)이다. 이렇게하여 천지일월을 일이삼사(一二三四)에 담는 상수론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천부경>이 유실되면서 이런 내용들을 도출할 수가 없었고, 한동석 선생같은 대학자도 오행과 수리를 연결시킬 때 "일수(一水) 이화(二火)가 본체가 되고, 수화의 변화과정에서 삼목(三木)이 나온다"고 설명하게 되어, 사금(四金)과 오토(五土)의 근거가 애매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설명한 음양론은, 본체를 중(1)이 숨은 음(2) . 양(3)이 합쳐진 오토(五土)로 볼수 있으므로서 아무런 문제가 없어지고, 수화를 음양의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일수(一水) 이화(二火)의 운동으로 볼 수 있고, 그것을 태양이 남쪽으로 치우쳐 운행하므로서 북쪽에 그림자가 생기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통해 "삼사성환 오칠일묘연"의 새로운 뜻을 하나 더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삼사(三四)의 고리(環)가 이루어(成) 내는 음양변화가, 실질적으로는 [6]에서 [1]이 빠져서 [5]가 되거나 [1]이 더해져서 [7]이 되는 과정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음 . 양 . 중을 합한 전체가 [6]인데, 중이 드러나는 일은 없으므로 실제로는 전체 수는 [5]를 넘어서지 않는데 이것이 그림의 (A)이다. (A)가 [6]이라면 (C)를 [7]로 보지 못할 것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A)와 (C)가 꼭같이 [6]이므로 [1]은 불어난 것이 아니면서 불어난 것으로 볼수도 있는 묘한 경우가 된다. 그리고 (C)에서 [1]이 밖으로 벗어났으므로 큰 동그라미는 [6 - 1 = 5]가 된다. 이것을 "오칠일묘연"으로 표현하였다면 아주 정확한 표현이다. 그리고 위 그림의 (A) . (B) . (C) . (D)가 각기 수 . 목 . 화 . 금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또다른 중요한 뜻을 감추고 있다. 그것은 사상오행의 변화라는 것이 [1]의 불어나고 줄어드는 현상에 불과하다고 이해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나타낸 것이 아래에 분수와 팔괘로 표시한 선분이다. 이 그림은 팔괘라는 것이 [3]에서 [4]에 이르는 [1]의 꼴바꿈에 부족하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다. 그야말로 "일묘연"이란 표현이 적합하며, 더우기 팔괘가 착종변화하여 만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주역>의 설명이고보면 "일묘연 만왕만래"라는 말이 실감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④ 생수와 성수 지금까지 설명된 내용에서 주의깊은 독자들은 약간의 중복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삼목 사금 이후에 생겨난 음수(陰水) 양화(陽火)를 천일 지이에 배정하여 일수 이화를 만들고, 일수 이화의 작용에 의해 생겨난 중간과정을 다시 삼목 사화에 배정하여 오행론이 갖추어졌다고 한 것이다. 이런 설정은 오해와 혼란을 일으키기 쉬운 논리이다. 이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생수(生數)와 성수(成數)이다. 생수는 천일 지이 일삼(日三) 월사(月四)이다. 여기서 말한 [일삼 월사]는 금목의 뿌리를 일월로 본 것이다. 그리고 그 뿌리인 육률의 작용본체, 즉 음양통일체인 오토(五土)까지를 생수에 포함시킨다. 이 생수들이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성수라고 한다. 성수는 [6 . 7 . 8 . 9]이다. 이는 각기 [수 . 화 . 금 . 목]에 배정되어 육수(六水) . 칠화(七火) . 팔목(八木) . 구금(九金)이라고 불리워진다. 이와같은 배정을 기존의 오행론에서는 하도에서 유래한 자연수로 해석하고 있다. 하도에는 오행의 원리가 담겨있는데, 그 숫자가 모두 열 개이므로 이를 음양으로 구별하고, 다시 그것을 발생과 성장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발생수리를 생수라 하고, 성장수리를 성수라고 한다. 이 생수와 성수의 구별이 바로 천지일월과 수화금목의 단계를 구별하는 생각에서 유래한 것이다. 먼저 육수(六水)는 음양통합의 오토(五土) 위에서 작용하는 음성을 나타낸다. 그것이 앞에서 말한 일수(一水)이며, 이것이 오토 위에서 작용하므로 [5 + 1 = 6]이 되는 것이다. 이화(二火)도 같은 형식으로 [5 + 2 = 7]의 과정을 거쳐 칠화(七火)가 된다. 다음으로 팔목(八木) 구금(九金)은 앞의 삼원이 작용하는 그림 중에서 A와 B 사이에서 나타나는 C의 두 과정이 오토 위에서 일어남을 나타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의 팔목 구금과 생수에서의 삼목 사금은 같은 오행에 속하지만 의미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결국 오행론이 이런 면에서 한계를 보이는 것이고, 그 때문에 이런 점을 보완할 그 다음 단계가 필요한 것이며, <천부경>은 팔괘와 육십사괘를 도입한 "육생칠팔구"와 그 종합원리인 "오칠일묘연"으로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오행이 육률의 규율대상으로서, 삼사성환의 법칙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근거가 십간 십이지이다. 십간은 "삼사성환"의 [3+4 = 7]의 모습이다. 여기의 [3]이 실제로는 [6]이므로 실제로는 [6+4 = 10]으로서 십간의 수가 도출된다. 십이지는 [3×4 = 12]의 수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3]을 [6]으로 보아야 하므로, "삼사성환"은 실제로는 [6×4 = 24]가 되어야 정상이 된다. 그리고 실제로 <천부경>은 이런 수체계로 되어 있다. 따라서 "삼사성환"은 직접적으로는 [삼극사상]으로 풀이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육률사상]이 되어야 한다. 이 또한 <천부경> 수체계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중앙의 [六]이 포함되므로서 사상오행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⑤ 사상과 오행 <천부경>의 오행론에서 또 한가지 설명되어야 할 사실은 오행이 현실에서는 사상(四象)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어떤 역학에서도 다루지 않은 내용인 만큼, 자세히 설명해야 할 내용이다. 전통역학에서는 이 사상(四象)이 팔괘분화 과정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면서, 오행론에서는 빠져나간 개념이다. 그러나 <천부경>에 의해 팔괘가 음양에서 단순분화하여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행의 하위체계로 조직화 되는 것임이 밝혀진 이상, 당연히 사상에 대한 견해도 새로워져야 한다. 즉 팔괘론의 사상이 오행론의 토를 제외한 나머지 네 기운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더라도 기존 역학에 악영향을 끼칠 요소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오행론에서의 네 기운과 팔괘론에서의 사상은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사상도 두 개씩의 효(爻)로 나뉘어져 있고, 오행의 네 기운도 각각 음양으로 나누어진다. 차이점을 든다면 첫째, 오행에는 사물이 배정되어 있으나 사상에는 사물취상이 없다는 점, 둘째 오행 기운은 운행로가 있지만 사상은 운행로가 없다는 점 등이다. 이 중에서 첫째 차이점은 사상에서 분화된 팔괘에 사물이 배정되어 있으니 문제가 안된다. 팔괘의 두 개씩을 묶으면 사상의 사물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운행로이다. 왜냐하면 팔괘론에서는 괘와 괘 사이의 운행에 대한 이론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오행론은 각 기운들 사이의 상생상극이라는 운행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오행론의 운행로는 모두 열 개가 나오는데, 팔괘론에서는 오행을 도입하여 만든 구궁에서까지도 아홉 개의 운행로밖에 만들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어딘가에 해명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 운행순서도 오행의 상생이나 상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연수의 서수(序數)를 따르기 때문에 오행론과 팔괘론 중에서 어느 것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결국 이 둘을 종합하기 위해서는 팔괘론에다 오행론에서 빠져나간 하나를 보충하든지, 아니면 오행론에서 남아도는 하나를 빼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빼거나 더할 경우에 고려해야할 대상은 오행론에서 하나 더 있는 요소인 토이다. 토는 중성을 나타내므로 토가 문제가 된다는 것은 결국 [중]의 문제로 귀착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을 <천부경>은 무리없이 종합하고 있다. 우선 <천부경>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자연현상을 창조하는 현실적인 본체는 "대삼합육"의 수리에 의해 형성된다. 그런데 그 현실본체는 사면체로 나타난다. 이 사면체를 이책에서는 오행체로 불렀던 것이니, 이 그림이 사상의 오행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중앙에 배치된 토는 외부의 어떤 곳에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는 곳은 [수. 화 . 금 . 목]의 네 가지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오행체가 단순히 공간성 입체가 아니라 시공간 통합체를 나타내는 그림이므로, 그렇게 단순히 말하기는 어렵다. 이 그림은 앞에서 말한 적이 있는 클라인 원통과 같은 성질을 가진 태극형체이다. 따라서 안과 밖이 없으면서도 어디가 중앙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고, 그 때문에 중성이 현상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결국 오행은 사상으로 나타나고, 어떤 사물이 변화하는 시간성을 고려한다면 중성을 인정할 수 있게 되므로, 그 운행은 오행(또는 오운)이 되는 것이다. 이 오행체를 사상에 중점을 두어 그리면서 육률을 나타낸 그림이 "삼사성환"에서 그렸던 다음 그림이다. 이 그림에 담긴 육률은 직각삼각형의 세 변이 만들어내는 [3 : 4 : 5]의 비율이다. 즉 [6]이 양쪽으로 나뉘어 [3]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중성이 참여하는 팔괘론은 지금까지의 팔괘론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들을 드러내 보여주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팔괘론으로 미루기로 한다. 4) 간지론 ① 간추림 역학에서 간지(干支)는 역(易)의 성립에 필수적인 기본요소 중의 하나이다. 유교사회에서 역학 연구의 주류가 소위 의리역(義理易) 또는 성리학(性理學)에 치중하면서 역점술(易占術)이 상대적으로 경시된 까닭에, 지금도 역학 연구자들은 <주역>이 점술서가 아니라 철학서요 사상서라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아까운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고 있다. 이와같은 태도들은 역학의 본질을 오해한 데에 그 원인이 있으니 굳이 논의할 것이 없거니와, 역학의 본질이 점술에 있음은 고대사회에서의 종교의 역할로 보거나 아니면 <주역>에 기록된 점사(占辭)들을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점술은 미신이 아니라 고도의 수학과 철학적 기초를 구비한 실용적 시공학(時空學)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어떤 학문도 인간을 위한 시공간학의 측면에서 점술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 통계학이나 미래학은 점술에 비하면 사용하는 개념이나 적중률, 응용범위와 사회적 심리적 파급효과 등 모든 면에서 유치한 수준에서 걸음마하는 정도이다. 그런 점술에서 간지는 시간과 공간은 물론이요, 사물의 속성까지를 나타내는 부호(符號)로 사용되므로서, 역학의 성립토대가 된다. 점술을 공부해보면 간지가 오행이나 팔괘보다 더 기초적인 개념이며, 또 사물에 대한 적용례도 가장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간지가 그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역학에서 간지는 너무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는 개념이면서도, 그 내용이 너무나 많고 또 복잡하여 함부로 다룰 수가 없는 대상이기도 하다. 간지를 제대로 해명하려면 간지만을 연구하기 위한 연구회를 설립하여 장기간에 걸쳐 협동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을 미리 말하는 것은 이 책에서는 이 부분을 깊이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기 위해서이다. 여기서는 간지란 어떤 것이며, 둘 사이의 상호관계는 어떤 것인지를 <천부경>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해설하고자 한다. ② 간지의 뜻 간지란 열 개의 천간(天干)과 열두 개의 지지(地支)를 말한다. 천간과 지지는 고대의 역법과 관계가 있거니와, 그 유래는 분명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이름은 별표와 같다. 이 간지는 둘씩 짝을지어 연월일시를 나타내는 데에 사용된다. 짝을짓는 방식은 갑(甲)과 자(子)를 묶은 갑자(甲子)를 머리로 삼아 을축(乙丑) . 병인(丙寅) ...... 으로 진행하여, 천간이 끝나는 계(癸)에서지지의 열번째인 유(酉)를 만나 계유(癸酉)가 된 후, 갑술(甲戌) . 을해(乙亥) ......로 나아가 계해(系亥)에서 끝나 다시 갑자부터 시작한다. 이 간지에도 표에 소개된 것 처럼 오행의 수와 방위가 배정된다. 그리고 이 오행배정에서 파생된 사물취상이 있으므로, 천간과 지지를 합하면 기본적으로 사물을 60가지 분야로 분류할 수 있는 분류체계로도 활용된다. 그 내용들은 시중에 나와있는 역점술서를 찾아보기 바란다. 여기서는 이 간지를 <천부경>과 관련시켜 역학의 종합체계에 접근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간지의 수리가 <천부경> 수리와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데 주안점을 두기로 한다. ③ 천간과 개체수 간지의 본질, 즉 간지의 수리적 근거와 그 의미는 한마디로 [<천부경> 수리의 문자적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사실은 무슨 대단한 논리적 추론을 거칠 것도 없으며, 다만 간지와 <천부경> 수리를 비교검토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밝혀진다. 우선 그 중에서 천간부터 살펴보자. 천간은 <천부경>의 개체수인 열 개의 수이며, 그 십수는 또한 음양수를 생성시키는 자연수인기도 하다. 이 자연수는 천지인 삼극이 상대성으로 음양분화하여 생겨난 것임은 이미 자세히 설명되었거니와, 그 자연수의 내실(內實)은 육률에 반영된 삼극수와 삼원수의 상호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 그림에서 자연수가 삼극과 삼원의 두 측면을 연결시키고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이 천간의 의미는 우주존재에 반영된 [인간과 우주의 동일근원인 심령체의 작용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십간은 우리들의 마음이 우주를 겪으면서 만들어내는 종합적인 의미체계인 것이다. 그것을 다른 학문과 관계시킨다면 동이의 통치구조에서는 열 개의 태양으로 상징되는 부상목(扶桑木)이요, 불교식으로 말한다면 십방세계이다. 그리고 현대식으로 말한다면 태양계에 운행되는 열 개의 행성과, 물리학에서 말하는 "지구로 복사되어 들어오는 열 종류의 우주선(宇宙線)"이다. ④ 십이지와 조직수 십이지의 수리적 근거는 <천부경>의 조직수 중에서 절반인 열다섯 개의 숫자에 있다. 즉 조직수 15개 중에서 중성수가 빠진 12개의 숫자가 십이지의 숫자가 되는 것이다. 이 열두개의 숫자가 체와 용을 모두 구비하기 위해서는 12의 음양인 24개가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천부경>의 조직수에서 중성에 소속된 여섯 개의 수를 빼면 24개가 된다. 그런데 <천부경>의 조직수는 실제로는 중성의 여섯 수가 음양을 모두 갖춘 중성이므로 두 개씩으로 나뉠 수 있고, 따라서 6개가 12개의 작용을 하므로 총 36개가 된다. 이는 십이지의 숫자가 실제로는 삼원을 모두 갖추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 십이지는 형이하학적인 실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객관적 세계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십이지지가 선택되었으며, 그 때문에 십이지는 동물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진 상상의 동물인 타이폰(Typhon)으로 표시되고 있다. 그들을 십이지신장이라 한다. 이를 우주에서 찾으면 황도십이궁의 별자리요, 동이의 통치구조에서는 십이지신장이 다스리던 십이제국이다. 황도십이궁의 별자리는 실제로 지지를 이용하여 표시되고 있고, 순수하게 공간적인 자연물이면서도 시간관념을 성립시키는 토대가 된다. 여기서 꼭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대상이 십이지신장이다. 십이지신장을 마치 사람처럼 말하였는데 그 근거를 밝히지 않으면 반박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십이지신장은 분명히 사람이다. 그들은 동이족 이신(異神)들이 동물의 탈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던 모습이었다는 말이다. 이 사실을 증명해주는 고대사의 한토막을 소개해 보자. 자 그럼, 이제부터 판(Pan)이 반은 염소이고 반은 물고기인 이상한 괴물로 변해 하늘의 별자리가 된 이야기를 해보자. 어느날 판이 다른 신들과 어울려 나일(Nile) 강가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막 연회가 끝나고 판이 그의 풀피리를 불려는 순간 갑자기 무서운 거인족 티폰(Typhon)이 나타나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신들은 화를 모면하기 위해 짐승의 모습으로 변해 달아났다. 판도 주문을 외우면서 물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주문이 섞여버렸다. 그래서 그의 상반신은 뿔과 수염을 가진 염소로,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판이 주문을 바꾸려는 순간, 멀리서 티폰에게 붙잡힌 제우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판은 주문을 바꿀 사이도 없이 급히 풀피리를 입에물고 살을 에이는 듯한 처절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소리를 듣자 우둔한 티폰은 겁을 먹고 제우스를 놓아둔 채 달아나버렸다. 판의 재치있는 도움으로 살아난 대신 제우스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하늘의 별들 속에 반양반어(半羊半魚)인 바다염소를 만들어 판의 도움을 영원히 기억되게 하였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티폰]이 바로 타이폰이다. 그런데 여기서 티폰을 [거인족]이라고 번역하였거니와, 그 거인족이 바로 동이족 천신을 뜻한다는 사실은 풍류대도에서 설명하였다. 변방의 제후국들이 독립을 위한 모임을 갖는 것을 보고 동이족들이 정벌한 것이 바로 이 신화의 주제인 것이다.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의 회합이 가짜신들의 모임임을 보여주는 말이 "짐승으로 변했다"는 말과, "주문이 섞였다"는 말이다. 진짜 신이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 때 하늘의 제왕임을 자처하던 제우스는 동이족 이신에게 잡혀서 죽음을 당할 처지에 이르게 된다. 다른 제후들은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판은 뛰어난 외교술로 동이족에게 애걸복걸하여 제우스를 구해낸다. 따라서 여기의 "우둔한 티폰"은 "인정많은 티폰"으로, "달아나 버렸다"는 돌아가 버렸다"로 고쳐야 제대로 된 신화가 된다. 아무튼 여기서 한 세상을 다스리는 신들이 모두 짐승의 모습과 사람의 모습 사이를 오가고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십이지신장의 정체인 것이다. 더구나 [티폰(Typhon)]은 [타이폰]으로 읽기도 하는데, 여기서 묵음(默音)이 잘되기로 유명한 [ph]를 발음하지 않으면 그냥 [타이안]이 된다. 우리나라 군인들이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베트남 사람들이 그들을 부르던 [따이한]을 여기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티폰]의 본래 말은 [太桓(태환)]일 가능성이 거의 100%이다. ⑤ 간지의 통합구조 간지의 통합구조는 역 전체를 통괄하는 종합체계이다. 삼극의 체용이 형성한 육률오행이 십이지지로 상징되는 현상계를 정신작용의 영역(삼극) 속으로 끌어들여, 십천간으로 구조화된 자연수로 드러낸 것이 간지의 종합구조이다. 그리고 이 자연수를 이용하여 현상계를 이해한 진리체계가 십진법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60진법, 즉 60간지인 것이다. 이 간지 60진법을 이용하여 역(易)을 현상계에 적용시킨 것이 역(曆)이다. 간지란 달력(동양력)에서 보듯이 연월일시의 분별을 위한 표상으로 사용되며, 연월일시란 지구라는 천체가 주위의 다른 천체들인 태양 및 달(태음)과의 관계 속에서 일으키는 상태변화이므로, 역(易)이 곧 역(曆)이 되는 것이다. 간지의 통합구조 중에서 꼭 설명해야 할 것은 지장간(地藏干)이라는 것이다. 점술명리학에서는 천간과 지지의 합(合) . 형(刑) . 충( ) . 파(破) . 해(害) 등의 용어가 사용되는데, 천간 또는 지지 상호간에 서로 도와주거나 해치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개념들은 물론 오행의 상생상극의 개념을 응용하여 만들어낸 개념인데, 상생관계에 있는 지지들 사이에서 형(刑)이나 파(破)의 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지장간의 논리인 것이다. 역술에서는 이 지장간이 아주 중시되고 있는데, 그 유명한 사주(四柱)에서부터 운명감정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주(연월일시의 간지)의 팔자(천간 네 개와 지지 네 개) 중에서 지지에 들어있는 지장간을 모두 찾아내어 운명을 판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장간의 원리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지지란 원래 일년 열두달을 의미하므로, 여기(餘氣)란 지난달의 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요, 중기(中氣)란 본 달의 기운이 들기 전의 기이며, 정기(正氣)는 본 달의 원래 기운을 뜻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있으나, 다음의 도표에서 인(寅)월의 경우, 여기가 전달의 지장간 전체(戊 . 丙 . 甲)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엉뚱한 무(戊)로 되어 있는 점만 보더라도 이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한발 양보하여 戊(무)가 己(기)와 같은 토기(土氣)이므로 용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시 중기(中氣)가 어떤 원리에 의해서 배정되었는지를 해명할 아무런 원리가 없다. 결국 지장간은 별도의 성립원리가 있다는 뜻이며, 그 원리는 <천부경>의 수체계에 의해서만 밝혀진다. 그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지장간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지장간은 다음의 표와 같다. 이 지장간과 <천부경> 수리를 연결시켜 주는 것은, 역술 중에서도 남녀의 궁합을 볼 때 특히 중시하는 지지삼합(地支三合)의 개념이다. 삼합이란 십이지지가 세 개씩 합국(合局)을 이루어 특별히 취급되는 것을 말한다. 즉 인오술이 삼합하여 화국(火局)을 이루고, 사유축이 삼합하여 금국(金局)을 이루며, 신자진이 삼합하여 수국(水局)이 되고, 해묘미가 삼합하여 목국(木局)을 이룬다고 한다. 이때 각 합국에 소속되는 지지는 앞의 지지로부터 네 번째에 있게된다. 지금까지 역학에서는 지장간을 지지 중심으로만 생각하였지, 천간을 중심으로 배열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한 단계만 변형시켜보면 <천부경>의 수체계와 흡사한 모양을 얻을 수 있다. 이 그림은 지장간을 천간 중심으로 재배열한 것으로서, 이 그림을 보면 지장간이 본래는 천간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개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그림에서 동그라미로 표시한 지지들은 역학에서 십간의궁(十干倚宮)이라고 말하는 것으로서, 천간은 지지의 십간의궁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말해진다. 그런데 삼합국의 간지를 배열해 보면, 이 그림에서 보듯이 각 합국이 이 의궁의 지지를 제외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림에서 하나의 천간에 배정되는 세 개의 지지는 바로 <천부경>의 조직수 체계와 일치하고 있다. 무토(戊土)는 진술(辰戌) 양토(陽土)를 통해 인신사해(寅申巳亥)의 사상을 관리하므로서 매개성을 발휘하고 있으며, 기토(己土)는 축미(丑未) 음토(陰土)를 통해 오(午)와 신(申)을 매개하므로서 금화교역(金火交易)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이 지장간을 지지 중심으로 지지의 오행 소속 방위에 따라 다시 배치해 보면 사상오행의 통합구조가 그려지는데, 역술에서 사용하는 간지의 오행 신살(神殺)은 이 표에서 나타난 상호관계를 체계화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관심있는 분은 신살표를 가지고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신살표는 시중에 나와있는 여러 역술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이다).
이 그림들은 역학의 뿌리가 <천부경>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그림이다. 다른 어떤 경전에서도 이 간지를 종합한 역리를 도출할 수 있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역술은 이런 진리들을 숨겨 후세에 전하기 위해 개발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종합체계만 있었더라도 역술이 미신이라는 오해는 받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지를 바탕으로 성립한 역법(曆法)은 미신이라고 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응용한 역술을 미신이라고 매도했던 것은 이런 원리들이 밝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역학 전반에 대한 재검토와 재평가가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