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14사 立身(입신)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22
어김없이 좋은 꿈 꾸고
5시경 일어나 목욕재개 후
새 한복 정갈하게 입고
명상과 요가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복된 하루를 시작한다.
커피와 에그 크로이상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병아리들
잠시 돌아 본 후 설레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한다.
오늘 주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열어보니 제 14事, 그러니까 성 2體 2用,
正心(정심)의 두번째 쓰임 立身(입신)에
대한 말씀이다
誠 2體 2用 (성 2체 2용)
제 14사 立身(입신)
立直也(입직야)요
身躬也(신궁야)라
無所愧於心然後(무소괴어심연후)에
乃直躬(내직궁)하여
立於世矣(입어세의)요
不正心則(부정심즉)
隱微之間(은미지간)에
惱懣交至(뇌만교지)하여
精散而氣衰(정산이기쇠)하나니
是故哲人粹潤(시고철인수윤)하고
衆人傴僂(중인구루)하느니라
'입(立)은 곧게 세움이요
신(身)은 몸이라
마음에 부끄러움을 없이한 후에야
비로소 몸을 곧게 세우고
세상에서도 당당하게 설 수 있느니라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작은 것도 숨기려고 하는 중에
괴로움과 번민이 번갈아 일어나
정기는 흩어지고 기운은 쇠약해지느니라
이런고로 지혜로 밝은 사람은
순수함과 윤택함을 누리나
어리석은 자는 구차하고 비굴하게 사느니라'
아름답고 멋지다.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성령께서 이끄시니 해석이 바로 뒤따른다.
입신, 몸을 곧게 세운다는 것은
일어선다는 말이다.
사람이 일어선다는 것은 당당하다는 말이요,
이제 동작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음에 켕기는 것이나 수치심이 있으면
못 일어난다.
몸을 숙이고 숨어야 한다.
그래서 마음에 부끄러움을 없이 한 후에야
비로소 일어서고 세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당연한 말씀에
다들 걸려 넘어진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 마음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누가 있는가?
윤동주 시인이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했는데
그런 마음 자세는 아름답지만
사실 불가능한 도전을 시도한 것이다.
마음 자체가 이원론에 흔들리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 거리낌이나 부끄러움을 없게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치 율법이 선함을 알아 온전히 지키려
노력하지만 그럴 수록 그릇됨이
더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키려는 마음이야 아름답고 고상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괴로움과 절망을 더하게 한다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래서 진리로 답을 찾지 못하면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인간이다.
고민과 괴로움이 평안과 기쁨으로
인도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율법이 인간을 모두 죄인과 부끄러운 존재로
몰아간 이유는 그 다음에 올 복음을 위해서다.
율법 자체만 있다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고
모르는 것이 낫다.
율법과 양심이 우리를 그처럼 지독하게
괴롭힌다면 그를 넘어서게 되면
그보다 더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음을 눈치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때가 있다.
마음만 급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숙성되는 단계, 그러니까 율법과 양심의
정죄로 인해 죽을 정도로 괴로운 과정을
지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윤동주 시인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와했다'는
고백은 참으로 소중하고 귀하다.
동시에 애틋하고 눈물겹다.
그가 답을 찾았을까?
아닌 것 같다. 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때가 차지 않아서 주어지지 않은 것 뿐이다.
이제는 답이 나왔다.
때가 되어 하늘이 그 답을 내려 주셨고,
깨달음으로 기쁨과 영광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무수하게 발생하고 있다.
물론 자동적으로, 아무나 다 그리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죽고 싶은 지경까지 간 사람들이라야
그 답이 진짜 답이 된다.
그래서 진리는 던져 준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가 되고 준비가 되어야 빛을 발한다.
이 말씀에서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몸도 세우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는데
마음에 부끄러움을 없애는 비결은 딱 한가지다.
그 마음을 부정하고 버리는 것이다.
마음을 붙들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와 해도 소용 없다.
숲에서 물고기를 찾는 꼴이다.
원숭이가 손에서 바나나를 못 놓기 때문에
잡히는 것과 같다.
미련없이 버려야 하는데 그게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못 버리고, 부정 못한다.
마음을 버리면 다 잃는 줄로 알고
죽어도 그 마음을 붙드니 아무리 일깨워도 소용없다.
손을 놓으라고 했더니 그러면 죽는다고 한다.
받아 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절대 손을 놓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마음을 버리면 성(본성, 신성)이
작동한다는 것을 모르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마음을 계속 붙들고 있게 된다.
마음에 부끄러움을 없이 한 연후에
몸을 세우라는 말은 나보고 부끄럽지 않고
살고, 마음을 닦으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기왓장 간다고 거울 안된다.
마음의 이면, 그러니까 우리 속 깊은 곳에는
마음이 가리고 있어 보지 못한
깨끗하고 때묻지 않은, 그래서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본성이 있다.
마음을 버릴 때 드러나는데
이것이 있음을 믿는 자는 마음을 부정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를 견성이라고 하여
깨닫고 발견하라고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심으로
이 일을 이루셨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율법 차원에 머물고 있는
불자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이 말의 의미를 모르고
열심히 노력하고, 착하게 살아야
마음이 깨끗해지는 줄로 알고 생고생을 하고 있다.
절망에 이를 때 비로소 빛이 보인다.
자기 마음에 대해 철저히 절망한 자는
이이상 마음에서 답을 찾지 않는다.
그럴 때 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알려 주신다.
이미 네게 신성이 있다고...
그러니 네 마음을 의지하지 말고
그 신성, 성령 안에 있는 영을 의지하라고..
이 깨달음이 일어날 때 그는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이요
가장 중요한 인생의 문을 연 것이다.
바로 본문의 '마음의 부끄러움을 없이한 연후에'라는
말씀이 이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허락하신
본성을 발견하고, 그 본성을 딛고 서라는 것이다.
그럴 때 마음도 따라 바르게 서고, 몸도 설 수 있다.
만일 마음과 씨름하면 부패하고 어리석은 자아는
끊임없는 정죄와 비난으로 수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도무지 그들은 서지도 못하고,
세상을 향해 나가지도 못한다.
오늘날 교인들을 보면 거의 이지경이다.
마음의 정죄에 매여 늘 죄인이고, 부족하며,
연약하다고 징징댄다. 그러면서 딴에는 지혜롭다고
하나님 아니면 안된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한다고
기도를 하는데 안타깝게도 하나님이 이미 주셨다,
성령이 역사하신다 해도 안 믿는다.
그러니까 오랜 병에 걸린 자가 치유받기를
두려워하는 꼴이다.
병원에 계속 누워있으면 아무것도 안해도
변명이 되니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치유를 받게 되면 무언가 일을 해야 하고
생명의 증거를 내야 하니 그게 자신없다.
그러다 보니 정작 말은 치유받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는 계속 누워있고 싶어한다.
교인들이 말로는 하나님 도와주세요,
힘 주시면 하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럴까봐 겁을 낸다.
놀랍게도 은혜 받을까봐, 성령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자들이 많다.
왜냐하면 그랬다가 다 팔고 선교가라,
세상 좋은 것 다 버리고 주를 따르라 할까봐
솔직히 싫은 것이다.
그래서 모여서 말로만 '도와 주시옵소서'하고 있다.
무서운 병, 만성병의 심한 부작용이다.
지혜로 밝게 깨우친 자는 진리를 안다.
그 진리는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이미 다 하셨다. 너희는 이미 깨끗하고
거룩하다. 그러니 두려워말고 당당히 서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 빛을 발하라'
지금 우리 한국민족의 모습이 너무 구차하고 비굴하다.
어른들이 죽을까 두려워 비굴함을 택하여
젊은이들의 기상까지 잠식하고 있다.
'뭐가 그리 중하건디?'
비굴한 삶 유지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하다고
주권도, 민족적 자존심도 다 버렸다.
아직 제 몸도 세우지 못하는 수준이니 답답하다.
진리의 깨우침을 통해 민족정기를 바로 잡고
민족혼을 세워야 한다.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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