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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15사 不惑(불혹)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23
중독에 빠진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 중독은 해가 없고
득이 넘치니 빠질만 하다.
다른 이에게도 이런 중독을 권장하고
싶다. 돈 하나 안들고 신나고 풍요로운
삶이 무한 제공된다.
쓰다보니 4000자 제한에 종종 걸린다.
절제하고 함축하라는 소리다.
못채워 문제지 넘치는 거야 복이다.
제 15事, 그러니까 성 2體 3用,
正心(정심)의 세번째 쓰임 不惑(불혹)에
대한 말씀이다
誠 2體 3用 (성 2체 3용)
제 15사 不惑(불혹)
不惑者(불혹자)는
不惑之於物也(불혹지어물야)라
心正則明(심정즉명)하니
物照於明(물조어명)하여
自顯基醜姸精粗(자현기추연정조)하고
不待我別之而(부대아별지이)
物先知於明(물선지어명)하나니
何惑焉(하혹언)이리요
心不明則(심불명즉)이면
如隔重簾(여격중렴)하여
簾外走的飛的(염외주적비적)이
不知是獸是禽(부지시수시금)하여
惑遂生焉(혹수생언)이니라
'불혹(不惑)이란
물질에 미혹되지 아니함이라
마음이 바르면 밝음이 나타나
그 밝음으로 물질을 비추어보니
스스로 추함과 고움,
섬세함과 거침을 드러내어
내가 분별을 하기 전에
물질이 먼저 밝히 알도록 하니
어찌 미혹을 받겠는가?
마음이 밝지 못하면
장막을 겹겹히 친 것 같아서
장막 밖에서 뛰고 나는 것들이
짐승인지 새인지 알지 못하고
미혹에 빠져 살게 되느니라'
모르는 중국어로 '하오 하오'다.
정말 좋고 좋다.
나이 40이 되면 불혹이라고 하는데
50이 넘어 겨우 분별심 얻어 사용하고 있으니
젊은이들에게 부끄럽다.
누구를 탓하는 것 자체가 또 미혹이니
깨우침을 나눔으로 소임을 다해야겠다.
이원론에 빠진 마음은 그 기능이 밝지 못하다.
그래서 혼동을 한다.
자기 이익에 따라 선악을 나누고,
시비를 가리니 자기만의 선이요, 옳음이다.
불혹의 핵심은 이런 마음에
미혹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정심, 즉 본성으로 마음을 바로 세우게 되면
마음의 미혹을 알기에 그 판단을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
본성, 성령께 물어보게 되어있다.
그러면 우리의 본성은 직관이라는 기능을
통해서 사물의 속성을 알게 한다.
혹은 성령의 영감이라고 해도 좋다.
신심명 첫 머리에 이른 것처럼
분별심만 없애면 본성의 소리가 들린다.
분별심은 두려움의 발상이요,
미혹된 마음이 만들어내는 허상이다.
본성에 따라 바른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그것들이 저절로
본 모습을 드러낸다.
일부러 나쁜 것을 좋다고 할 필요도 없고,
좋은 것을 나쁘다고 부정할 필요도 없다.
그냥 사물은 그 자체로 지음받은 대로
존재할 뿐이요, 하늘의 뜻을 따라 사는 자에게
필요에 따라 달리 작용할 뿐이다.
생명과 평안을 위해 좋은 것도 있지만,
훈련과 성장을 위해 아픈 것도 있다.
그것들을 좋다, 나쁘다 할 것이 아니라
그 쓰임이 무엇을 위함인지,
하나님이 왜 그것들을 내게 허락하셨는지를
생각하고 그 교훈을 받아야 한다.
욕심에 마음이 어두워 있으면
이런 지혜가 일어나지 않는다.
당장 좋고 편하며, 달고 짜릿한 것을 따라
쉽게 미혹된다.
들어보니 귀신이 되어서도
그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기가 허한 사람에게
붙어 그 짓을 한다고 한다.
그만큼 미혹이 무섭다는 의미다.
만물을 밝히 알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신성의 빛을
비추면 된다.
두려움과 욕심으로 활동하는
마음을 제어하고, 본성으로 하여금
판단하게 하면 정확한 답을 준다.
모든 사람이 잘못이라고 해도
마음에 옳다는 확신이 들며,
천만인이 옳다고 해도
우리 본성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하며,
성령이 충만한 자라고 한다.
이 본성과 성령은 보편적인 것이다.
자기들만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이미 교만이라는 마음의 미혹에 빠져든 것을 나타낸다.
본성은 그렇지 않다.
성령은 겸손의 영이요, 지혜와 사랑의 영이다.
어찌 제 잘나고 남 틀렸다고 비난하는데
성령께서 함께 하시겠는가?
마음이 미혹으로 어둡게 되면
삶 전체가 어두워진다.
40되면 불혹의 나이라고 한다.
그 전까지는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라는 의미다.
하지만 40이 넘어서도 여전히 미혹에
끌려 다닌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여전히 헛된 물질과 명예, 권력이 주는 고통을
알지 못하고 순간의 달콤함에 빠져 산다면
그 나중에 당할 절망을 누가 보상할 것인가?
슬피울며 이를 가는 고통스러운 후회,
그게 지옥이요, 형벌이다.
잘 생각해보라.
이만하면 충분한 고통을 당하지 않았는가?
경상도 말로,
'고마해라 마이 뭇다 아이가?'
전라도 말로,
'뭐시 그리 중한디?'
깨우치려고 별 짓을 다한다.
남을 깨우치는 말이 아니라 나를 깨우치는 말이다.
나도 아직 멀었으니 함께 가면서
서로 격려하고 권면하며 돕자는 말이다.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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