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7 事 克禮(극례)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14
점입가경이다.
갈수록 놀랍고 깊다.
신나게 나간다
제 7事, 그러니까 성 1體 5用,
이번에는 克禮(극례)이다.
誠 1體 5用 (성 1체 5용)
제 7 事 克禮(극례)
克 極也(극극야)요
禮 敬天神之禮也(예경천신지예야)라
無禮則不恭(무례즉불공)하고
不恭則無誠(불공즉무성)하나니
若盡禮盡敬(약진예진경)이면
天神穆臨于上(천신목임우상)하시니라
'극(克) 이란 지극한 것이요
예(禮)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예의라
예의가 없으면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공경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정성이 없다는 것이니
만일 힘을 다하여 예로써 공경함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라'
지성이면 감천이요
간절히 사모하여 부르짖고 찾으면
친히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이를 오해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잘 안 만나주시려 한다든지,
큰 희생을 바쳐야 응답하신다든지,
하나님 뵙기는 정말 어렵다든지 하는 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마치 최선을 다해 공경하고
극진히 예의를 갖추어야만
만나주시는 아주 까다롭고 엄한 하나님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유대교를 비롯한 각 종교와
원시신앙에서는 신을 감복시키기 위한
노력이 행해졌다.
심지어는 자식을 불태워 바침으로
그 정성을 보이려한 종교들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오늘날까지 여전한데
아름다운 금과 은으로 치장한
성당이나 사원의 건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신의 마음을 감복시켜
두려운 화를 면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복을 받겠다는 것이다.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14
점입가경이다.
갈수록 놀랍고 깊다.
신나게 나간다
제 7事, 그러니까 성 1體 5用,
이번에는 克禮(극례)이다.
誠 1體 5用 (성 1체 5용)
제 7 事 克禮(극례)
克 極也(극극야)요
禮 敬天神之禮也(예경천신지예야)라
無禮則不恭(무례즉불공)하고
不恭則無誠(불공즉무성)하나니
若盡禮盡敬(약진예진경)이면
天神穆臨于上(천신목임우상)하시니라
'극(克) 이란 지극한 것이요
예(禮)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예의라
예의가 없으면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공경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정성이 없다는 것이니
만일 힘을 다하여 예로써 공경함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라'
지성이면 감천이요
간절히 사모하여 부르짖고 찾으면
친히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이를 오해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잘 안 만나주시려 한다든지,
큰 희생을 바쳐야 응답하신다든지,
하나님 뵙기는 정말 어렵다든지 하는 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마치 최선을 다해 공경하고
극진히 예의를 갖추어야만
만나주시는 아주 까다롭고 엄한 하나님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유대교를 비롯한 각 종교와
원시신앙에서는 신을 감복시키기 위한
노력이 행해졌다.
심지어는 자식을 불태워 바침으로
그 정성을 보이려한 종교들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오늘날까지 여전한데
아름다운 금과 은으로 치장한
성당이나 사원의 건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신의 마음을 감복시켜
두려운 화를 면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복을 받겠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런 신은 인간이 만든 신이요,
헛된 우상일 따름이다.
예수가 강렬하게 이 오류를 비판하고
일깨우고자 애를 썼다.
안식일 규례나 정결례 의식 등의
목적이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위함이라고
몸소 행함을 통해 깨우치려 했다.
그러나 무지와 두려움에 굳어버린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마음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도리어 이런 깨우침을
하나님에 대한 거역과 불경으로 여겨
죽이기까지 해 버렸으니 무지의 댓가가
얼마나 큰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克禮,
하나님을 지극한 정성과 예의를 갖추어야
만나주신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그 본질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지극한 예의와 공경, 그리고 정성은
사실은 하나님 자신이 아닌 우리를 위함이다.
하나님께 지극한 정성과 예의를 표하게
하신 것은 우리로 어렵게 하시려는 뜻이 아니라
우리로 유일한 최고의 복,
즉 하나님 자신을 얻게 하시기 위함인 것이다.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
우리에게 있어서 가치는 상대적이다.
객관적인 가치는 형식은 가능하나
실제로는 존재 불가능하다.
물 한잔의 가치, 내 자식의 가치를 누가
객관적인 잣대로 정할 수 있겠는가?
때에 따라 물 한잔이 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귀하며, 관계에 따라 내 자식이 세상 모든
사람보다 더 소중한 것 아닌가?
따라서 나에게 있어서 가치는
내가 귀하게 여겨 지불하는 것을 통해 결정된다.
내가 싸게 물건을 사게 되면
그 물건의 가치는 내게 싸구려가 되지만
내가 많은 것을 드리게 되면
그 대상의 가치는 올라간다.
특히 인격과 관련해서는 더욱 분명하다.
내가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대상을 위해서 고통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희생을 통해 그 대상의
가치를 자신과 세상에 공표하는 것이다.
삼백 데나리온의 귀한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은 여인은 그것으로
예수에 대한 사랑과 가치를 증거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극례를 요구하시는
이유는 우리로 그만한 분이심을 알리시기
위함이다.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귀하고, 무엇보다 우선되며,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아까울 것이 없는
분이심을 증거하심으로
우리로 그 최고의 가치를 얻도록
계획하셨다는 것이다.
가치를 아는 자라야 그 댓가를
기꺼이 지불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극례로 공경하고
사랑하는 자에게라야
하나님은 최고의 가치가 되신다.
반대로 무지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소홀하게 대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자들에게는
그 자체로 어리석음과 악함을
드러내도록 하셔서 이미 심판아래 있게 하신다.
정성을 드려서 다른 것을 받는 것이 아니다.
정성과 공경, 예의를 올리는 만큼의
하나님 자신을 받은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지금 하나님께 드리는 정성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지를
드러내어 그 자체로 하나님을 소유한
정도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두려움 때문에 바치고,
다른 것을 얻을 욕심에 정성을 바치니
오히려 그것이 화로 돌아온다.
설명이 길고 복잡하다면
이렇게 한 문장으로 줄여보겠다.
'나를 바치면 하나님을 얻는다'로...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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