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6 事 彰道(창도)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13
정말 귀하고 아름답다.
이런 소중한 진리가 앞으로 361개나 더 있다.
든든하고 푸짐하다.
제 6 事, 그러니까 성 1體 4用으로 간다.
이번에는 彰道(창도)다.
誠 1體 4用 (성 1체 4용)
제 6 事 彰道(창도)
彰 贊也(창 찬야)요
道 天神正道也(도 천신정도야)라
人 以正道卽(인이정도즉)하면
妖怪 不能顯基狀(요괴 불능현기상)하고
邪魔 不能逞基奸(사마불능령기간)하니
夫正道者 中道也(부정도자중도야)
中一基規(중일기규)하면
天道乃彰(천도내창)하느니라
'창(彰)이란 밝히 드러내는 것이요
도(道)는 하나님의 바른 진리라
사람이 하늘의 도를 따르면
요괴가 감히 그 형상을 드러내지 못하며
사악한 마귀가 그 간사함을
능히 발휘하지 못하니
무릇 하나님 아버지의 도는 중도라
그 중도를 한결같이 지켜나가면
마침내 하나님의 도가 밝히 드러나느니라'
참으로 명료하고 시원하다.
재미있는 것이 요괴도 나오고
마귀도 등장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 혹은 하나님 자신의 길을
우리는 도라고 한다.
이를 진리, 법, 로고스, 원리, 이치 등으로
불러도 좋다.
사람이 하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만물 운행이치를 깨닫게 되면
그의 삶에는 요사스런 귀신이나
사악한 마귀가 감히 틈을 타지 못한다.
사실 요괴나 사귀들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무지와 두려움이 만들어 낸
허상의 존재들일 뿐이다.
혹은 어리석음이 일으킨 오해일 수도 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한가지
이치가 밝혀지는데 그것은 바로
중도의 도다.
하나님의 도를 중도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중도는 중간을 말하지 않는다.
죄우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말은 어정쩡한
상태로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중도라는 것은 執基兩短(집기양단),
그러니까 양극단을 알고 때와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운용한다는 의미이다.
양극단을 모르는데 중간이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따라서 하나님의 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선이나 옳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는 빛과 어두움,
선과 악, 의와 불의의 구분이 따로 없다.
다른 말로 이 두 극단이 하나님에게는
따로 나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요, 근원이시다.
우리의 마음이 무지함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둘로 나뉜 생각에서 우왕좌왕한다.
그렇게 보면 중도를 아는 자에게는
요괴나 마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 모두 양단에 속한 존재들이요
한쪽으로 치우친 존재들일 뿐이다.
무지와 두려움에 빠진 인간이
자신보다 다른 먼쪽에 있는 것을 요괴나
마귀로 여기는 것이다.
양 끝을 다 아는 자는 속을 일이 따로 없는데
속이는 요괴는 무엇이며,
생사를 하나로 통합하여 소유한 자에게는
죽음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마귀가 죽음의 두려움으로 위협하고,
욕심으로 미혹할 수가 있겠는가?
욥을 시험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마귀가
한 역할이 사실 무엇인가?
도리어 그들의 복과 영광이 되게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결국 그들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이바지한 일꾼이요,
도우미들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마귀지만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종이나 사자로 불리고 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죽음의 천사도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들이었다.
이 중도의 도를 깨치는 것이 하나님의 도를
아는 것이다.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13
정말 귀하고 아름답다.
이런 소중한 진리가 앞으로 361개나 더 있다.
든든하고 푸짐하다.
제 6 事, 그러니까 성 1體 4用으로 간다.
이번에는 彰道(창도)다.
誠 1體 4用 (성 1체 4용)
제 6 事 彰道(창도)
彰 贊也(창 찬야)요
道 天神正道也(도 천신정도야)라
人 以正道卽(인이정도즉)하면
妖怪 不能顯基狀(요괴 불능현기상)하고
邪魔 不能逞基奸(사마불능령기간)하니
夫正道者 中道也(부정도자중도야)
中一基規(중일기규)하면
天道乃彰(천도내창)하느니라
'창(彰)이란 밝히 드러내는 것이요
도(道)는 하나님의 바른 진리라
사람이 하늘의 도를 따르면
요괴가 감히 그 형상을 드러내지 못하며
사악한 마귀가 그 간사함을
능히 발휘하지 못하니
무릇 하나님 아버지의 도는 중도라
그 중도를 한결같이 지켜나가면
마침내 하나님의 도가 밝히 드러나느니라'
참으로 명료하고 시원하다.
재미있는 것이 요괴도 나오고
마귀도 등장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 혹은 하나님 자신의 길을
우리는 도라고 한다.
이를 진리, 법, 로고스, 원리, 이치 등으로
불러도 좋다.
사람이 하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만물 운행이치를 깨닫게 되면
그의 삶에는 요사스런 귀신이나
사악한 마귀가 감히 틈을 타지 못한다.
사실 요괴나 사귀들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무지와 두려움이 만들어 낸
허상의 존재들일 뿐이다.
혹은 어리석음이 일으킨 오해일 수도 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한가지
이치가 밝혀지는데 그것은 바로
중도의 도다.
하나님의 도를 중도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중도는 중간을 말하지 않는다.
죄우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말은 어정쩡한
상태로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중도라는 것은 執基兩短(집기양단),
그러니까 양극단을 알고 때와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운용한다는 의미이다.
양극단을 모르는데 중간이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따라서 하나님의 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선이나 옳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는 빛과 어두움,
선과 악, 의와 불의의 구분이 따로 없다.
다른 말로 이 두 극단이 하나님에게는
따로 나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요, 근원이시다.
우리의 마음이 무지함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둘로 나뉜 생각에서 우왕좌왕한다.
그렇게 보면 중도를 아는 자에게는
요괴나 마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 모두 양단에 속한 존재들이요
한쪽으로 치우친 존재들일 뿐이다.
무지와 두려움에 빠진 인간이
자신보다 다른 먼쪽에 있는 것을 요괴나
마귀로 여기는 것이다.
양 끝을 다 아는 자는 속을 일이 따로 없는데
속이는 요괴는 무엇이며,
생사를 하나로 통합하여 소유한 자에게는
죽음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마귀가 죽음의 두려움으로 위협하고,
욕심으로 미혹할 수가 있겠는가?
욥을 시험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마귀가
한 역할이 사실 무엇인가?
도리어 그들의 복과 영광이 되게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결국 그들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이바지한 일꾼이요,
도우미들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마귀지만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종이나 사자로 불리고 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죽음의 천사도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들이었다.
이 중도의 도를 깨치는 것이 하나님의 도를
아는 것이다.
도를 그저 선하고 좋은 것 정도로
알다가는 스스로 구덩이에 빠진다.
자기 한계에 매여 만사를 나누고 왜곡시켜
보는 것...그것이 미혹의 뿌리요,
무지와 두려움의 산물이다.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깨달은 자는
양극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양극으로 인해 고통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평안도 짓고 환란도 창조하신다는
말씀의 의미를 밝히 깨달을 때 비로소
먼저 자기 속에서 진리가 밝아질 것이다.
그런 자라야 세상에 진리의 빛을
드러낼 수 있다.
어떻게 말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우주와 세상을 자꾸 둘로 나누려 하나?
근원은 항상 근원이다.
다만 필요에 의하여
둘로 나누기도 하고, 셋, 혹은 다섯이나
만가지로 그 형태만 달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도이다.
만가지를 보면서도 근원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미혹되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문제일 뿐...그 누구도 스스로 만든
구덩이에 빠진 자를 구할 수 없다.
오직 성령의 계시로 하나의 진리,
근본되신 하나님을 깨달아야 할 뿐이다.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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