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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3 사 尊奉(존봉)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3 사 尊奉(존봉)

柏道 2019. 2. 12. 22:31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10 
 
치밀한 구성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구성이 마치 군대조직 같다.
1중대(誠/강령) 1소대(敬神/체)
1분대(尊奉/用) 이런식이다.
이를 366사 순서대로 나열하면
誠 (1事), 敬神 (2事), 尊奉 (3事)이 된다.
그리고 4事는 敬神 아래 9用중
2번째 用인 崇德(숭덕)이다.
그러니까 誠이나 敬神이 단순한
명목상 제목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실제 내용을 가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좀 헷갈렸는데 알고보니
지혜가 듬뿍 배여 있다. 
 
그럼, 1 강령(誠)의 1체(敬神) 아래 1용(尊奉),
즉 제3事로 가보자. 
 
誠 一體一用  (성 일체 일용)
제 3 사 尊奉(존봉) 
 
尊(존)은 崇拜也(숭배야)요
奉(봉)은 誠佩也(성패야)라
人而 尊奉天神(인이 존봉천신)이면
天神이 亦絳精于人(천신 역강정우인)하여
如乳於赤喘(여유어적천)하며
衣於凍體(의어동체)하고
若無誠而尊之(약무성이존지)이면
且聾하고 且盲(차농 차맹)하여
聽之無聞(청지무문)하고
視之無見(시지무견)하느니라 
 
'존대한다는 것은
높이 경배(숭배)하는 것이요,
(奉) 받든다는 것은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라
사람이 하나님을 높이 받들어 모시면
하나님 또한 사람에게
생명의 정기를 내려주시니
갓난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처럼
언 몸에 옷을 입히는 것같이 하시느니라
만일 정성없이 하나님을 그저 높이기만 한다면
귀머거리나 소경과 같아서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느니라' 
 
캬~ 절묘하다.
마음이 즐겁기 한량없다.
특히 운율과 비유, 댓구 등
멋진 수사법으로 표현된 진리는
내 귀에 음악같고 내 입에 꿀과 같다.
이제야 이런 아름다운 말씀을 대하게
되었다니 한편으로는 아쉽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감사하다.
열어 주시니 열린 것이요,
보여 주시니 보게 된 것이다.
사람이 모름지기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게 되면 하나님도 그런 자를
기뻐하셔서 온갖 좋은 것들을 다 주신다.
이것은 조건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해 준다는 뜻도,
복을 받고 싶으면 하나님을 잘 섬기라는
그런 식의 흥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삿된 마음을 가지게 되면
영적 귀머거리외 소경이 되어
진리를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된다.

성령의 계시와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극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게 되어 있으며
당연히 사랑의 원리를 따라
그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된다.
안타깝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된 성품, 즉 본성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않고,
인간적 계산으로 세상의 복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찾으니 비록 높이 받드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어리석은 태도이다.

눈을 들어 오늘날 종교집단을 자세히 보라.
하나같이 하나님 자신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구하는 자들로
가득차 있다.
그들은 입맛대로 신을 바꾸고,
종교를 옮겨 다니다가 결국은 자신의
어리석은 욕심에 치여 패망하게 된다.
어려서, 무지와 두려움에서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찾은 것은 일시 용인될 수 있다.
그러나 속히 진리와 성령의 계시를 듣고
본성을 찾아 그런 삿된 마음을 버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존봉(尊奉)하는
마음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은
오히려 잔꾀를 더하여 감히 하나님을
이용해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한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런 마음이
미혹된 마음이요, 미련하고 악한 생각임을
알 수 있을텐데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막아 버린지 오래다.

예수가 당시 만연한 이런 현상을 보고
심히 개탄하며 본성회복을 촉구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한복음 4:23)
이 말씀의 핵심이 어디에 있어 보이는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아니다.
키 워드는 '아버지'에 있다.
하나님을 그저 큰 신으로,
잘하면 복주는 존재로 여기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없다.
두려움과 욕심이 이를 가로 막기 때문이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가능케 하는
열쇠는 하나님을 나를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로 깨닫는데 있다.
성령께서 이를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은 두렵고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나를 낳으시고, 나를 존재케 하신
사랑하는 아버지로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여 그 품에 깊이 안기고자
하는 마음이 다른 것 다 제쳐내고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이 예배 하는 자체가
행복이요, 생명이며, 기쁨이다.
푸른 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