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20절) 그 나라는 겨자씨와 같으니 본문
도 마 복 음
The Gospel of Thomas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풀이
또 다른 예수
Patterson and Robinson Translation
20. 그 나라는 겨자씨와 같으니
작은 것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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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하늘나라가 어떠할지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겨자씨와 같아서, 모든 씨들 중 지극히 작지만, 준비된 땅에 떨어지면 나무가 되어 하늘을 나는 새들의 쉼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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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sciples said to Jesus, "Tell us wha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He said to them, "It is like a mustard seed. It is the smallest of all seeds. But when it falls on tilled soil, it produces a great plant and becomes a shelter for birds of the sky."
The disciples said to Jesus: Tell us wha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He replied: It is like a mustard seed, the smallest of all. However, when it falls into worked ground it sends out a large stem and it becomes a shelter for the birds of heaven.
(1) The disciples said to Jesus: "Tell us whom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2) He said to them: "It is like a mustard seed.
(3) <It> is the smallest of all seeds.
(4) But when it falls on cultivated soil, it produces a large branch
(and) becomes shelter for the birds of the sky."
우리 속에 잠재적 상태로 있는 변화의 씨앗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것이 ‘적절한 때kairos'를 맞거나 인연因緣을 얻으면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준다. 이런 변화의 엄청남을 시각적 크기로 표현한 것이 겨자씨가 큰 숲이 된다는 비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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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도가道家의 고전 『장자』 첫 장 첫머리에 보면 ‘붕鵬새’이야기가 나온다. 북쪽 깊은 바다에 작은 물고기 알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이 물고기가 되고 크기가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는 큰 물고기로 변하고, 또 다시 등 길이가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붕새로 바뀌어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라 남쪽 ‘하늘 못’으로 가는 붕정鵬程에 오른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속에 있는 조그마한 가능성의 씨알이 엄청난 현실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결국에는 대붕의 비상飛翔이 상징하는 초월과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비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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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러 종교 전통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이런 ‘변혁transformation'의 체험이다. 그래서 비교종교학자 프레데릭 스트렝Frederick J. Streng 같은 사람은 ‘종교’를 두고 “궁극적 변혁을 위한 수단 a means to ultimate transformation"으로까지 정의했다. 그리스도교에서 새 사람이 된다, 거듭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하는 말이나, 불교에서 성불한다, 부처님이 된다는 말이나, 유교에서 소인이 군자나 성인이 된다고 하는 것이 모두 이런 변화나 변혁을 각각의 전통에 따라 다른 각도, 다른 표현으로 말한 것이다. 물론 궁극적 변혁은 궁극 실재를 봄, 깨달음으로 가능하게 된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깥세상을 보면 이전의 개구리가 아니라 다른 개구리로 변할 수밖에 없는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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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면(생물학적으로 겨자는 1년생 풀로서 나무가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여기선 크게 되었다는 의미이리라.) 그런 변화를 경험하게 된 당사자에게만 훌륭한 일일 뿐 아니라, “하늘을 나는 새들의 쉼터”를 제공해주어 주위에도 좋은 것이 된다고 하는 사실이다. 유교 경전 『대학大學』에도 ‘큰 배움[大學]’은 여덟 가지 단계로 구성되었는데, 그것은 사물을 궁구하고[格物], 깨달음을 극대화하고[致知],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誠意], 마음을 바르게 하고[正心], 인격을 도야하고[修身], 가정을 살피고[齊家], 나라를 다스리고[治國], 궁극적으로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는[平天下]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배움의 단계 중 처음 다섯 단계는 자신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지만 나머지 세 단계는 가족과 이웃과 세계를 위해 도움을 주는 단계이다. 앞에 나온 제16절 풀이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선불교에서 말하는「십우도十牛圖」에서도 깨달음을 찾아 집을 떠나는 첫째 그림부터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변화를 얻은 다음 마지막으로 오는 열 번째 그림은 남을 돕기 위해 저잣거리로 나가는 그림이다. 신비적 경험을 통해 변화된 사람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임을 말해주는 몇 가지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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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깨친 사람들이 사회에 무슨 도움을 주게 된다고 하여 반드시 직접 나서서 부산을 떨고 설쳐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깨친 사람들 중에는 사회에 나서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사실 때문에 그들을 보고 사회에서 분리되어 고고하게 스스로의 평화만을 즐기는 도피주의자들이라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설령 깨친 사람들이 사회에 직접 뛰어들어 우리 눈에 띌 마큼 큰일을 이루어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그들의 공헌을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모두가 쓸데없이 부산을 떨며 흙탕물을 일으키는 이 혼탁한 세상에서 깨친 사람들만이라도 우선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만큼 사회가 덜 혼탁해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둘째, 『장자』에 나오는 요 임금이 고야산에 사는 네 명의 신인神人들을 찾아가 뵙고 돌아오는 길에 분汾 강 북쪽 기슭에 이르자 ‘망연자실茫然自失’했다는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깨친 사람들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요 임금같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나라를 그만큼 좋게 만드는 데 공헌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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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더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깨친 사람들은 모든 것과 하나 된 상태에서 만물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려 물 흐르듯 흐르기 때문에 구태여 뭔가 한다고 나서서 설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위無爲의 상태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살면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알프스 산이 나서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쏘다니지 않고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동네 정자나무가 사람들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 그늘에서 쉼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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