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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22절) 젖 먹는 아이를 보시고 본문
도 마 복 음
The Gospel of Thomas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풀이
또 다른 예수
Patterson and Robinson Translation
22. 젖 먹는 아이를 보시고
양극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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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젖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젖 먹는 아이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이들과 같습니다.”
제자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이들처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둘을 하나로 하고, 안을 바깥처럼, 바깥을 안처럼 하고, 높은 것을 낮은 것처럼 하고, 암수를 하나로 하여 수컷은 수컷 같지 않고, 암컷은 암컷 같지 않게 하고, 새로운 눈을 가지고, 새로운 손을 가지고, 새로운 발을 가지고, 새로운 모양을 가지게 되면, 그러면 여러분은 그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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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saw infants being suckled. He said to his disciples, "These infants being suckled are like those who enter the kingdom."
They said to him, "Shall we then, as children, enter the kingdom?"
Jesus said to them, "When you make the two one, and when you make the inside like the outside and the outside like the inside, and the above like the below, and when you make the male and the female one and the same, so that the male not be male nor the female female; and when you fashion eyes in the place of an eye, and a hand in place of a hand, and a foot in place of a foot, and a likeness in place of a likeness; then will you enter the kingdom."
Jesus saw children being suckled. He said to his disciples: These infants taking milk are like those who enter the Kingdom. His disciples asked him: We are infants; will we enter the kingdom? Jesus responded: When you make the two into one, and when you make the inside like the outside and the outside like the inside, and the upper like the lower and the lower like the upper and thus make the male and the female the same, so that the male isn't male and the female isn't female. When you make an eye to replace an eye, and a hand to replace a hand, and a foot to replace a foot, and an image to replace an image then you will enter the Kingdom.
(1) Jesus saw infants being suckled.
(2) He said to his disciples:
"These little ones being suckled are like those who enter the kingdom."
(3) They said to him: "Then will we enter the kingdom as little ones?"
(4) Jesus said to them: "When you make the two into one,
and when you make the inside like the outside and the outside like the inside
and the above like the below –
(5) that is, to make the male and the female into a single one,
so that the male will not be male and the female will not be female –
(6) and when you make eyes instead of an eye
and a hand instead of a hand and a foot instead of a foot,
an image instead of an image, (7) then you will enter [the kingdom]."
『도마복음』의 핵심과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제4절에서 늙은이라도 갓난아기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그 젖먹이 갓난아기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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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공관복음서에 보면,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께 나올 때 제자들이 이를 꾸짖자 예수님이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느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10:14, 마19:14, 눅18:16) 하고 말씀하셨다. 『도마복음』과 다른 점은, 여기 공관복음서에는 어린아이들이 갓난아기라는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그림으로나 혹은 듣는 이야기로 예수님의 무릎에 앉은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다니는 정도의 어린이들로 생각하기 일쑤다. 그러나 『도마복음』은 그것이 젖을 먹고 있는 갓난아기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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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공관복음서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천국에 가는 이유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다. 『마태복음』에 보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마18:4) 라는 말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도마복음』에서는 자기를 낮춤이 그 낮춤이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나 천국에서 큰 자로 인정받는 것과 직접 관계가 있다는 말이 없다. 그와는 달리 『도마복음』은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요건으로서 ‘젖먹이 갓난아기같이 됨’이라고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그 이유를 밝히며, 이 젖먹이 갓난아기들이야말로 ‘둘을 하나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둘을 하나로 만든다는 생각은 제4절에 나왔고, 23, 48, 106절에도 계속 나온다.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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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물리적으로 갓난아기는 남성의 아버지와 여성의 어머니 ‘둘이 하나가’되어 생긴 결과다. 그 아이도 나중에는 대부분 남성이나 여성이 되겠지만, 아직 할례를 받기 전의 갓난아기는 남녀로 분화되지 않은 하나의 상태, 합일의 상태라 할 수 있다. 반대같이 보이는 것을 한 몸에 합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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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식론적으로 아이는 아직 나와 대상을 분간하는 이분법적 의식이 없는 상태다. 즉, 주객主客이 분화되지 않았다. 이런 의식 상태에서는 ‘내외內外, 상하上下, 고저高低, 자웅雌雄’등 일견 반대되고 대립되는 것 같은 것을 반대나 대립으로 보지 않고 조화와 상보의 관계로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갓난아기의 특성으로서, 이런 특성을 가져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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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가운데 붉은색(양)과 파란색(음)으로 된 태극의 음양陰陽에서 음과 양의 관계를 말할 때, 음이냐 양이냐 하는 양자택일兩者擇一이나 이항대립二項對立식 ‘냐냐주의either/or’의 시각으로는 실재의 진면목을 볼 수 없고, 음이기도 하고 양이기도 하며 동시에 음도 아니고 양도 아니라는 ‘도도주의both/and, neither/nor'적 태도를 가질 때 사물의 전체를 본다고 한다. 음과 양을 독립된 두 개의 개별적 실체로 보지 않고 한 가지 사물의 양면으로 파악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요즘 말로 고치면, ‘초이분법적超二分法的 의식trans-dualistic consciousness'을 갖는다는 것이고, 좀 더 고전적인 말로 하면 중세 신비주의 사상가 니콜라우스 쿠자누스Nicolaus Cusanus'가 말하는 ‘양극兩極의 조화調和coincidentia oppositorum'을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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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28장을 보면 “남성다움을 알면서 여성다움을 유지하십시오. 세상의 협곡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협곡이 되면 영원한 덕에서 떠나지 않고 갓난아기의 상태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갓난아기’됨의 중요성을 알기에 노자는 『도덕경』 20장에서 “나 홀로 어머니의 젖 먹음을 귀히 여긴다.”라고도 했다. 또 2장에는 선악, 미추, 고저, 장단이 모두 상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상대적 개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절대시하지 말라고 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분별의 세계를 초월하여 불이不二의 경지에 이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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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세계의 여러 종교에서 ‘양극兩極의 조화調和’처럼 중요한 개념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양의 조화를 말하는 태극(☯)의 표시는 말할 것도 없고, 위로 향한 삼각형과 아래로 향한 삼각형을 포개놓은 유대교의 ‘다윗의 별(✡)’이라던가, 수직선과 수평선을 교차시킨 그리스도교의 십자가(十)나, 두 원을 아래위로 반반씩 겹쳐놓고 그중 겹쳐진 부분을 잘라 만든 초기 그리스도교의 물고기 상징, 불교 사찰에서 보는 만(卍)자 등이 모두 이런 양극의 조화를 이상으로 삼고 있다는 역사적 증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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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카를 융도 ‘양극의 조화’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심리적 성숙성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하고, 그의 영향을 받은 조셉 캠벨Joseph Campbell도 세계 모든 영웅 신화에 나오는 정신적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이 영웅들이 도달하는 최종의 경지는 ‘반대의 일치’를 자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의 핵심도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잃어버린 여성성을 되찾아 양극의 조화를 회복하려는 노력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중세 기사騎士들이 찾아다니던 성배聖杯나, 다빈치가 그린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중앙에 앉은 예수와 그 옆 사람(댄 브라운은 그를 막달라 마리아라고 본다) 사이에 만들어 놓은 공간이나 모두가 V형으로 되었는데, 이것은 모두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잃어버린 여성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기사들이나 다빈치는 다 같이 이를 회복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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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초인격 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의 선두주자 켄 윌버Ken Wilber는 인간 의식의 발달 과정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주객미분pre-subject/object consciousness의 단계,
주객이분subject/object consciousness의 단계,
그리고 주객초월trans-subject/object consciousness의 단계가 있다고 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의 이분법적 의식을 갖기 이전,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할 줄 모르던’ 의식은 주객미분의 단계로서,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가 그 단계로 가려는 것은 전진이 아니라 퇴보라는 것이다. 주객이분의 의식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가능하게 하고 우리에게 자의식自意識self-consciousness을 갖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주객 ‘이분’의식은 우리에게 고통을 줄 수밖에 없는데, 이런 일상적 의식에서 해방되기 위해 술이나 약물 등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의식 상태는 주객 ‘미분’의 단계일 뿐이다. 이와는 달리 종교에서 가르치고 목표로 하는 의식 상태는 주객미분과 주객이분의 단계를 모두 넘어서는 주객 ‘초월’의 단계라는 것이다. 미분과 초월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윌버는 ‘전초오류pre/trans fallacy'라 했다. 갓난아기의 의식을 말할 때 우리는 육체적으로 다시 갓난아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서 영적인 갓난아기가 됨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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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3:3)라고 했을 때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었는데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예수님이 우리가 주객이분의 단계를 ‘초월’해야 함을 말하고 있을 때, 니고데모는 주객미분의 단계로 ‘퇴행’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니고데모는 ‘미분과 초월’를 혼동하는 ‘전초오류’를 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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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에서는 둘을 하나로 만드는 사람이 그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했지만, 사실 그런 사람은 벌써 그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새로운 눈, 새로운 손, 새로운 발, 새로운 모습을 가지고 새로운 존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제106절을 보면 둘을 하나로 보는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이미 ‘사람의 아들’이 되고, 산을 보고 ‘움직이라고 하면 산이 움직일’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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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도덕경』 20장에 “나 홀로 뭇 사람들과 다른 것은 결국 홀로 어머니 젖 먹음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라는 말은 어린아이처럼 이분의 세계를 벗어났다는 뜻과 함께, 어린아이가 어머니 젖을 찾는 것처럼 ‘도’를 사모한다는 의미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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