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28절) 내 영혼이 세상을 아파하고 본문

영성수행 비전/도마복음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28절) 내 영혼이 세상을 아파하고

柏道 2019. 1. 2. 22:52

도   마   복   음


The Gospel of Thomas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풀이

또 다른 예수

 

Lambdin Translation

Davies Translation

Patterson and Robinson Translation



28. 내 영혼이 세상을 아파하고

메타노이아 체험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설 곳을 세상으로 정하고, 육신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나는 그들이 취해 있음을 보았지만, 그 누구도 목말라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내 영혼은 이런 사람의 아들들로 인해 아파합니다. 이는 이들이 마음의 눈이 멀어 스스로 빈손으로 세상에 왔다가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취해있지만, 술에서 깨면 그들은 그들의 의식을 바꿀 것입니다.”


Jesus said, "I took my place in the midst of the world, and I appeared to them in flesh. I found all of them intoxicated; I found none of them thirsty. And my soul became afflicted for the sons of men, because they are blind in their hearts and do not have sight; for empty they came into the world, and empty too they seek to leave the world. But for the moment they are intoxicated. When they shake off their wine, then they will repent."


 Jesus said: I stood in the midst of the world. I came to them in the flesh (sarx). 
I found all of them drunk. I found not one of them to be thirsty. My soul was saddened by the sons of men for they are mentally blind. They do not see that they have come into the world empty and they will go out of the world empty. But now they are drunk.. When they sober up they will repent.


Jesus says:

(1) "I stood in the middle of the world, and in flesh I appeared to them. 
(2) I found all of them drunk. None of them did I find thirsty. 
(3) And my soul ached for the children of humanity, 
because they are blind in their heart, and they cannot see; 
for they came into the world empty, 
(and) they also seek to depart from the world empty. 
(4) But now they are drunk. 
(But) when they shake off their wine, then they will change their mind."

 

도마복음은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고 그저 우리 눈에 그런 모양으로만 나타나 보이기만 했다고 주장하던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을 배격하고 직접 몸을 입고 오셨다는 수육受肉, incamation을 인정하고 있다여기서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의 몸으로 온 목적을 천명한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온 것세상의 죄를 지고 가려는 것이 아니다. 

술 취한 상태, 잠자는 상태에 있는 인간들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인간 실존의 한계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만을 실재인 줄로 알고 있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인간들에게 현상계 너머에 있는, 혹은 그 바탕이 되는 실재, 진여眞如, 여실如實, 자신의 참모습을 보도록 깨우쳐주기 위한 지혜의 화신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상태는 어떠한가? 취해 있음에도 취해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뭔가 해결책을 찾아 목말라할 줄도 모르고’ 어둠에서 헤매며 고생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렇게 고통당하는 중생들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며’ 그들 가운데서 그들을 이끌기 위해 이 세상에 설 곳을 정하신 것이다. 피를 흘려 그 핏값으로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믿는 이른바  대속적 기독론Substitutionary Christology'과 현격한 대조를 이룬다.

 

도덕경53장에 보면, 노자도 대도大道의 길이 평탄하지만 사람들이 곁길만 좋아하고, ‘비단 옷, 맛있는 음식, 넘치는 재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향해 이것이 도둑이 아니고 무엇이냐?”라고 외친다. 눈앞에 있는 현실적 이익을 추구하느라 참된 실재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이런 비극적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 것이다. 앞의 제16절 풀이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노자를 비롯하여 종교적 선각자들은 무지몽매한 인간들을 가엾게 여기고 그들을 일깨우려 노력하는 이들이다.

 

부처님도 사람들에게 자기가 깨친 진리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고집멸도苦集滅道라고 하는 이른바 네 가지 거룩한 진리’ 혹은 사성제四聖諦를 설파했는데, 그중 첫째가 모든 것이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괴로움[]’에 관한 진리[]’였다. 일단 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병의 원인[]도 알고, 그것을 없애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일정한 방법[]에 따라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괴로움 자체보다 괴로움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진정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마음의 눈이 멀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예수님이 가르쳐주는 지혜와 깨달음이 바로 우리 앞에 있는데, 그것을 잡지 못하고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절망만은 아니다. 지금은 우리가 취해 있지만 우리의 취한 상태, 잠자는 상태를 깨우기 위해 일부러 육신을 쓰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술 취한 상태, 잠자는 상태에서 깨어나면, 그리하여 심안心眼의 개안開眼이 있기만 하면, 완전한 의식의 변화를 맛보게 된다고 했다.

 

마지막 구절은 종교사적으로 너무나도 중요한 발언이다. 여기에서 술에서 깨면 그들은 그들의 의식을 바꿀 것이라고 할 때 의식을 바꿀 것이다.’라고 번역한 이 말의 원문은 콥트어판에서도 그리스말을 그대로 사용하여 메타노이아metanoia'로 되어 있다. 이것은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을 때 그 회개에 해당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본 해설자가 그동안 여기저기 책이나 논문에서 계속해서 강조한 것처럼, ‘메타노이아는 어원적으로 의식noia의 변화meta'를 의미한다. 그러나 단순히 옛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한다는 식의 회개라는 뜻 그 이상이다. 우리의 이분법적 의식을 변화시켜 초이분법적transdualistic의 의식을 갖게 된다고 하는 뜻이다. 말하자면 공관복음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는 에수님의 천국 복음이란 결국 우리의 이분법적 의식을 변화시키고, 그로 인해 하느님의 주권이 내 가까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 풀이해도 무리가 없다. ‘의식의 변화혹은 변혁을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이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갖게 되기를 바라던 최대의 소원이었던 셈이다.

 

이것은 사실 우리 주위에 있는 불교나 유교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불교에서 붓다’, ‘부처’, 이란 깨달음을 얻은 이the Awakened, the Enlightened'라는 뜻이고, ‘불교라는 말 자체가 깨달음을 위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성불하라는 말은깨달음을 얻어라.”는 뜻이다.

유교에서도 신유학은 자기들의 가르침을 성학聖學이라고 했는데, ‘성인들의 가르침이라는 뜻보다는 성인이 되기 위한 가르침Learning for Sagehood'이라는 뜻이 더 강하고, 성인이란 한문의 이라는 글자에 나타나듯 특수 인식 능력의 활성화를 이룬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모두 의식의 변화를 가리키는 말이라 해도 무방하다.

 

문제는 메타노이아다. 여기 이 절은 메타노이아의 체험이 우리에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장하는 말로 끝을 맺는다. 기가 막힌 복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여기 나오는 사람의 아들혹은 인자人子라는 말은 히브리어 표현으로 그냥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출처] 도마복음 제28절|작성자 byuns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