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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49 절): 혼자 있어라! 본문

영성수행 비전/도마복음

도마복음(49 절): 혼자 있어라!

柏道 2019. 1. 2. 11:12


도마복음(49 절): 혼자 있어라!

      

Jesus said, "Blessed are the solitary and elect, for you will find the kingdom. For you are from it, and to it you will return."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혼자이며 선택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을 찾을 것이니라. 그대는 거기로부터 왔으며 거기로 돌아갈 것이니라."  
 
 
해석 

사람들은 외로움을 무서워한다. 혼자 남겨지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혼자 있더라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무료함이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며 그 침묵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잊기 위하여 대부분 사람들은 친지나 친구 또는 동료와 어울려 술을 마시고 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중 속에서도 짙은 외로움을 느낀다.  
 
 
사람들은 이 외로움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 왜 우리는 대중 속에서도 외로워하는가? 외로움은 결핍의식 때문이다. 누구도 채워주지 못하는 갈증이 있다. 가족, 친구, 연인, 놀이, 게임, 명예, 재산, 그 무엇도 채워줄 수 없는 그 갈증은 너무 진하여 원초적 외로움이라 할만하다.  
 
  
그 갈증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은 신(우주의식)과 자신이 분리되어 일어나는 일이며 이 분리로 인하여 늘 혼자라는 외로움이 상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은 외부에서 결코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고 내부에서 전체와 합일을 통하여 찾아야 한다.  
  

혼자인 사람이 복이 있는 이유는 혼자 있으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신과 연결되는 순간은 혼자 있을 때이다. 깊은 산속 수도자가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이유는 늘 내면에서는 신과 만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내면의 자아와 만나 합일하고 그리고 더 나아가 우주의식(신 의식)과 합일을 해야 한다. 이 길은 혼자서 가야하는 좁고 긴 길이며 초청받는 사람은 많으나 선택되는 사람은 적은 길이다.  
  

내면의 자아와 만나면 우리는 마침내 천국을 찾게 되며(깨달음을 얻게 되며) 이 천국은 이전에 우리가 살았던 곳이다. 즉 이전에는 깨달음 상태에 있었다는 말이다. 상징적 표현이지만 에덴동산에서 추락 전에는 인간은 신성/불성을 지닌 신성한 존재였다. 이 인간 추락의 이야기는 카발라 우주 창조론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나온 이 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는 천국으로 돌아가는 방법으로 혼자가 되어 내면의 자아와 만나라 한다. 부흥회나 떠들썩한 예배, 보여주는 기도를 통하여서는 천국에 갈 수가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혼자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지켜보면 그곳에 침묵이 있고 그 침묵 속에 빛이 있고 그 빛 너머 형상 지을 수 없는 무한이 있다 

[출처] 도마복음(49 절): 혼자 있어라!   |작성자 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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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홀로이며 택함을 받은 이는

홀로 아니면서 홀로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홀로이며 택함을 받은 이는 행복합니다. 나라를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곳에서 와서 그곳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Jesus said, "Blessed are the solitary and elect, for you will find the kingdom. For you are from it, and to it you will return."


Jesus said: Blessed are the single ones and the chosen ones for you will find the Kingdom. Because you emerged from it you will return to it.


Jesus says:

(1) "Blessed are the solitary ones, the elect. For you will find the kingdom. 
(2) For you come from it (and) will return to it."


도마복음에는 계속 홀로 됨혹은 홀로 섬을 강조하고 있다(6, 23, 48, 75절 참조). 하나 됨, 단독자, 홀로인 자와의 홀로 됨alone with the Alone 등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다. 16절 풀이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홀로라는 그리스어 모나코스monachos’에서 수도사라는 ‘monk’나 수도원이라는 ‘monastery’라는 낱말이 파생되어왔다고 한다. 모두가 수도원에서 수도사가 되어야 행복하고, 그래야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인가?

 

성경에는 사막에서 홀로 지낸다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모세도 광야에서 40년간 홀로 있었다고 하고,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간 홀로 금식 기도를 하고, 바울도 사막에서 2년간 홀로 지냈다고 한다. 사막은 하늘과 모래뿐, 그 외의 아무것에도 매일 필요가 없이 홀로 지내기가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도 이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다. 자신이나 다른 모든 사람이 사막의 교부들처럼 사막으로 가서 홀로 독처하는 것이 참된 종교인으로서 실행해야만 하는 마땅한 도리가 아닌가? 고민 끝에 그의 결론은, ‘사막이란 결국 지리적인 장소이기보다 정신적인 자세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회를 등지고 산이나 사막으로 나가 독신으로 사는 것도 좋겠지만, 세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정신적 사막을 만들어, 그 속에서 수행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어쩌면 더욱 훌륭한 일일 수도 있다고 여긴 것이다. 스님들이 속세를 떠나 사는 출세간의 삶을 강조한 것에 반해, 신유학자들이 세상 속에서 살면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비슷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간디도 여려서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았지만 40대 후반에 이르러 힌두교에서 강조하는 브라마차랴를 실천함으로써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는 금욕적 삶을 살았다. 다석 유영모 선생님도 결혼結婚을 했으니 해혼解婚해야 한다고 하면서 나이가 드신 다음에는 부인과 한 집에서 오누이처럼 살면서 홀로 사는 삶을 실천했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칼릴 지브란이 지은 예언자결혼에 대하여 라는 장이 생각나 여기에 인용한다.

 

두 분은 함께 태어나서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죽음의 흰 날개가 두 분의 사는 날을 흩뜨려버릴 때라도 두 분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두 분은 심지어 하느님의 잠잠한 기억 속에서마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두 분이 그 함께 함속에 공간이 있게 하십시오.

그리고 두 분 사이에서 하늘의 바람이 춤추게 하십시오.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사랑이 속박이 되게 하지는 마십시오.

사랑이 두 분 영혼의 해변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십시오.

서로의 잔을 채워주십시오. 그러나 한쪽 잔에서만 마시지는 마십시오.

서로에게 자기의 빵을 나누어주십시오. 그러나 한쪽의 빵조각만을 먹지는 마십시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기뻐하십시오. 그러나 각각 혼자이게 하십시오.

거문고 줄들이 비록 같은 노래로 함께 울릴지라도 모두 각각 혼자이듯이.

 

서로 마음을 주십시오. 그러나 그 마음을 붙들어놓지는 마십시오.

저 위대한 생명의 손길만이 여러분의 마음을 잡아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함께 서십시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지는 마십시오.

성전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이렇게 하나 됨, 홀로 됨을 실천하는 사람은 나라를 찾는데, 이 나라는 바로 우리가 나온 근원이며 또 우리가 돌아가야 하는 궁극적 목적지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플라톤, 프로티노스나 도덕경에서 모든 것이 근원에서 나와 그 근원으로 다시 돌아감을 강조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출처] 도마복음 제49절|작성자 byuns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