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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48 절): 음양의 법칙! 본문

영성수행 비전/도마복음

도마복음(48 절): 음양의 법칙!

柏道 2019. 1. 2. 11:11


도마복음(48 절): 음양의 법칙!


 
Jesus said, "If two make peace with each other in this one house, they will say to the mountain, 'Move Away,' and it will move away."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두 사람이 한 집안에서 서로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면 그들이 산더러 '여기서 움직여라' 하면 산이 움직이리라."  
 
  
해석  
 
한 집안에서 두 사람이 평화롭게 지내는 일이 산을 움직일 만큼 위대한 기적을 가져다주는일인가? 물론 다른 의미가 숨어있다.  
 
    
여기서 두 사람은 음과 양의 에너지(속성)를 말하고 한 집안에서 평화롭게 지낸다는 것은  사람이 음과 양의  균형 속에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가 음과 양의 균형 속에 있다면 신과 동조(同調)할 수 있고 신의 힘이 우리에게 흐르게 된다. 이러할 때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된다.  
   

우주법칙 중에 음양의 법칙이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있다. 전기의 + -극, 남과여,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와 양자, 등은 대표적 예이다. 또한 우리 몸은 성별에 관계없이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있다. 상체는 양, 하체는 음, 앞부분은 양, 뒷부분은 음, 우측은 양, 좌측은 음, 오른 코는 양의 에너지 왼 코는 음의 에너지가 흐른다.  
     

인도 요가에 쿤달리니 요가라는 것이 있다. 이 요가는 척추 가장 아래 부위(미절골)에 잠자고 있는 에너지를 끌어 올려 머리 중심으로 가지고 오면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한다. 이 에너지가 각성되기 위해서는 양코를 통하여 동일한 음과 양의 에너지가 들어와 미저골에서 합쳐져야 하며 이 음양이 하나가 된 에너지가 머리 중심 송과선에 도달하면 깨달음에 이른다 한다.   
 

사람들은 음과 양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 살고 있다. 질병은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져서 일어나는 일이며 영적 각성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도 이 균형이 무너져 있기 때문이다.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바른 호흡이다. 바른 호흡이란 느리고 깊은 호흡을 말한다.  
   

마음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바른 생각이다. 부정적 생각은 우리 마음을 즉시 불균형 상태로 빠뜨린다. 육체를 기준 한다면 드러나지 않은 마음은 음이고 육체는 양에 해당한다. 마음과 육체가 균형 속에 있을 때 깨달음이 일어난다.     
   

우리 우주도 균형 속에 존재한다. 우주 “Cosmos”가 의미하는 뜻도 조화이고 조화가 없다면 이 우주는 존재할 수 없다. 카발라 창조론에 보면 이 우주도 음과 양의  두 힘이 만나서 이루어졌다. 두 힘의 협력으로 우주는 창조되었듯이 우리도 두 극성의 힘으로 존재한다 

[출처] 도마복음(48 절): 음양의 법칙! |작성자 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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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한 집에서 두 사람이 서로 화목하고

하나 됨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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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집에서 두 사람이 서로 화목하고, 그들이 산을 향해 여기에서 옮겨 가라! 라고 하면 그것이 옮겨 갈 것입니다.”


Jesus said, "If two make peace with each other in this one house, they will say to the mountain, 'Move Away,' and it will move away."


Jesus said: If two can make peace between themselves in a single house they can say to a mountain "Move!" and it will move.


Jesus says:

"If two make peace with one another in one and the same house, 
(then) they will say to the mountain: ‘Move away,’ and it will move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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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에서는 이 우리 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71, 98, 103절 등). 따라서 이 절은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원리의 화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선 내 영혼과 하늘의 영이 서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화해reconciliation, 하나 됨at-one-ment, 재결합re-union을 통해 양쪽이 어우러질 때 얼마나 큰 힘이 나올 수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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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약간 다른 차원에서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내 속에 있는 이기적 자아참 자아’, 혹은 소문자 자아self와 대문자 자아Self가 충돌하는 것을 경험한다. 바울은 이런 경험을 두고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함”(7:18), 혹은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이런 두 가지 자아, 두 가지 가 충돌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바울과 마찬가지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18-24)하고 절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가 우리의 일상적 실존의 상태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변화를 받아 이기적 나’, ‘비본래적인 나혹은 제나신적인 존재로서의 나’, ‘본래적인 나’, ‘얼나에 귀속함으로써 둘 사이 충돌이 없어지고 조화롭게 움직여서 무한한 힘과 활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산을 움직이는 것이 무슨 문제일까 하는 식으로 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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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을 좀 다른 시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두 사람이 집에서 왜 싸우는가? 두 사람이 서로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의견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 틀린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두 의견은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싸울 이유가 없어진다. 커피 컵이 위에서 보면 동그랗지만 정면에서 보면 직사각형이다. 동그랗다고 보는 사람과 직사각형으로 보는 사람은 싸울 것이 아니라 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서로에게서 배움으로써 자신의 안목을 넓혀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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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상사에서 가장 뛰어난 사상가 중 한 분으로 7세기 신라 중대 시대의 원효元曉를 들 수 있다. 그가 중국으로 가다가 밤에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셨다는 이야기도 유명하지만, 학문적으로는 그의 화쟁론和諍論이 더욱 중요하다. 이 화쟁론이라는 것이 바로 두 가지 상반되는 견해 사이에서 모순이 아니라 상보적 관계를 찾게 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현대적 개념으로 보면 다원주의적 입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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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열반종요涅槃宗要라는 책에서 법신法身이 유색有色이냐, 무색無色이냐 하는 대립된 두 가지 견해를 놓고 어느 견해가 맞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일방적으로 한 면만 고집[定取一邊]하면 두 견해가 모두 틀린다고 했다. 그 이외에도 이와 비슷한 여러 가지 상반되는 것 같은 견해들을 놓고, 원효는 언제나 어느 한 가지 입장만을 절대화하거나 독단화하면 결국 오류를 범하는 것이고, 여러 가지 입장을 보완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이 모든 상반된 견해들이 실상實相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 데 기여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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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맹무상群盲撫象이라는 코끼리 이야기에서, 어느 장님이 코끼리가 구렁이처럼 생겼다고 하는 말은 코끼리의 실상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를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님이 자신의 일방적이고 단편적인 견해를 절대화하여 자신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장님들을 모두 이단시하고 박멸할 대상으로 본다면 심각한 오류에 빠져들고 만다. 따라서 코끼리가 구렁이처럼 생겼다, 혹은 바람벽처럼 생겼다 하는 대립적인 생각은 둘 다 맞을 수도 있고, 둘 다 틀릴 수도 있는데, 맞고 틀리고를 결정하는 잣대는 결국 다원주의적 태도에서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느냐, 혹은 획일주의적 입장에서 자기의 독단적 주장만을 유일한 진리로 절대화하느냐 하는 데 달렸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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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가 구렁이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세상이라고 상상해보라. 코끼리에 다른 면이 동시에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알 길이 없다. 따라서 우리 주위에 코끼리의 다른 면이 동시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뿐 아니라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결코 서로 정죄하지 말고 같이 앉아 각자 서로가 발견한 코끼리의 일면들을 분명하고 확실한 말로 이야기하고 나누어 가짐으로써 코끼리의 실상에 더욱 가깝게 접근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진지성만이 요구될 뿐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식으로 성숙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산을 보고 움직이라 하면 산인들 안 움직이고 버틸 수 있겠는가?

[출처] 도마복음 제48절|작성자 byuns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