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도마복음(51 절): 깨어나면 이 자리가 천국이니라! 본문
도마복음(51 절): 깨어나면 이 자리가 천국이니라!
His disciples said to him, "When will the repose of the dead come about, and when will the new world come?"
He said to them, "What you look forward to has already come, but you do not recognize it."
제자들이 예수에게 말하길, “죽은 자의 휴식은 언제 오며 언제 새로운 세계가 오나이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하길, “그대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이미 왔으나 그대들이 단지 알아보지 못할 뿐이니라.”
해석
여기서 죽은 자는 깨닫지 못한 사람을 상징할 수도 있고 성경에서 처럼 죽은 후 최후 심판을 기다리는 영혼을 의미할 수 있다. 최후 심판이 있은 후 새로운 하늘이 열린다는 것을 들은 제자들이 언제 그날이 오느냐며 질문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새로운 세계에서 하느님 옆에 자리를 마련하여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편안한 휴식을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세계, 즉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도마복음에서 이미 예수는 하늘나라는 우리 내부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제자들이라 눈앞의 천국을 모르고 있음이다.
이들 제자들을 보면서 오늘날 예수 재림을 바라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예수가 지금 이 세상에 오신다면 몇 명이나 그 분을 알아보고 맞이할 것인가? 예수가 살아가던 1세기에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유대인들이나 지금 사람들 사이에 무슨 차이점이 있을까? 예수의 말씀에 역행하는 교회와 신도들이 예수를 자신들의 구세주로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예수의 참 가르침이 지금 교회에 얼마나 전해졌는지 의문이다. 예수님이 신랄하게 비난하였던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위선적 모습이 오늘날 교회와 다를 것이 무엇일까? 과거 종교전쟁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 여전히 계속되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분쟁과 폭력, 타 종교를 용납 못하는 폭력적 행동 등은 예수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하여 교회는 예수 이름으로 전쟁과 폭력을 행하여 왔다.
원래 오컬트 차원에서 예수 재림이란 특정 시기에 예수가 육체를 가지고 모두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의식 속에 나타나는 사건을 말한다. 각자 내면이 성숙하여 참된 자아가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예수가 재림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깨닫게 되면 신/전체와 합일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예수와 만나게 되는 것이며 예수 재림인 셈이다.
아버지 나라 도래는 개인의 영적 발달에 달려 있지 예수나 하느님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님을 제자들이 잊고 있음이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천국은 이미 왔으나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할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그 순간에도 천국은 있었고 지금 이 순간도 천국은 눈앞에 있음이라. (taucross)
[출처] 도마복음(59 절): 살아 있는 동안 살아있는 분을 모셔라! |작성자 우타
51. 언제 쉼이 있겠으며 언제 새 세상이
실현된 종말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언제 죽은 사람들의 쉼이 있겠으며, 언제 새 세상이 이르겠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기다리는 것이 이미 와 있지만, 여러분이 이를 알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His disciples said to him, "When will the repose of the dead come about, and when will the new world come?"
He said to them, "What you look forward to has already come, but you do not recognize it."
His disciples asked him: "When will the dead rest? When will the new world arrive?" He replied: "That which you are waiting for has come but you don't recognize it."
(1) His disciples said to him: When will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ake place, and when will the new world come?"
(2) He said to them: "That (resurrection) which you are awaiting has (already) come, but you do not recognize it."
여기서 ‘쉼’이란 구원과 같은 말이다. 앞 절에서 본 것과 같이 우리의 본래적인 근거인 궁극 실재로 되돌아가 그것과 다시 하나가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평화와 조화와 안식의 상태를 가리킨다. 영적으로 깨치지 못한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아서 부평초처럼 떠다니며 불안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의 『고백록』첫 부분에서 한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오, 주님. 주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저희를 지으셨으니, 저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쉼을 얻기까지 쉼이 없사옵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이런 개인적 구원과 함께 신천지가 도래할 우주적 ‘종말’이 언제 올 것인가 물어보고 있다. 학자들 중에는 공관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예수님의 선포를 놓고, 예수님이 세상의 종말을 어떻게 보았을까 하는 문제를 가지고 격론했다.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 대조적인 입장으로 나뉜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예수님이 자기 당대에 종말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 주장하고, C. H. 다드 교수는 예수님이 미래에 올 종말을 기다리지 않고, 종말이 이미 실현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보았다. 그런데 여기 이 절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제자들이나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종말이 이미 이르렀으니 별도의 종말을 기다리지 말라고 한다. 종말이 이르렀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도마복음』의 예수님은 천지개벽天地開闢 같은 우주적 대사건으로서의 종말이 아니라, 깨침을 경험함으로써 가능한 내적 변화 같은 것을 통해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부활하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개벽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내적 개벽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어느 면에서 이런 독특한 종말관 때문에 『도마복음』이 정경으로 채택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영성수행 비전 > 도마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마복음(53 절): 영의 할례! (0) | 2019.01.02 |
---|---|
도마복음(52 절): 이 순간 살아있는 자를 보라! (0) | 2019.01.02 |
도마복음(50 절): 그대들은 빛이노라! (0) | 2019.01.02 |
도마복음(49 절): 혼자 있어라! (0) | 2019.01.02 |
도마복음(48 절): 음양의 법칙! (0) | 2019.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