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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9~10 절): 세상에 불을 던졌노라! 영지주의 성서 본문
도마복음(9~10 절): 세상에 불을 던졌노라!
영지주의 성서
도마복음 9~10절 해석
9절
Jesus said, "Now the sower went out, took a handful (of seeds), and scattered them. Some fell on the road; the birds came and gathered them up. Others fell on the rock, did not take root in the soil, and did not produce ears. And others fell on thorns; they choked the seed(s) and worms ate them. And others fell on the good soil and it produced good fruit: it bore sixty per measure and a hundred and twenty per measure."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씨 뿌리는 자가 한 주먹의 씨를 가지고 나가 뿌리니 어떤 것은 길 위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씨들을 모았고 어떤 것은 돌 위에 덜어져 흙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여 이삭을 내지 못하였느니라. 어떤 것은 가시가 있는 관목 위에 떨어져 자라지 못하고 말라버려 벌레가 먹어버렸고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좋은 곡식을 내어 육십 배 또 백이십 배의 결실을 맺었느니라."
해석: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가르침이다.
마태복음(13장 3~9절), 마가복음(4장 3~8절), 누가복음(8장 5~8절)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이들 공관복음서에는 이 비유에 대한 예수의 구체적 설명이 나온다.
"이제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내포한 뜻을 들어보아라.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간다.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곧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마음속에 뿌리가 내리지 않아 오래 가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사람은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닥쳐오면 곧 넘어지고 만다.
또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억눌러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잘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사람은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마태복음 13장 18~23절)"
예수는 씨가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 즉 진리를 의미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우화가 의미하는 다른 뜻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씨를 우리 자신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 난 것은 세상이란 토양에 뿌리내려 좋은 결실(참된 자아가 드러나는 것을 방해하는 부정적 감정, 집착, 무지 등을 극복하는 것)을 맺기 위함이다. 개인(씨)의 업에 따라 태어나는 환경이 달라 어떤 사람은 뿌리 내리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고 어떤 사람은 책임을 다하기도 하는 것이다.
10절
Jesus said, "I have cast fire upon the world, and see, I am guarding it until it blazes."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이 세상에 불을 던졌노라. 보라, 이것이 타오를 때까지 내가 지키고 있노라."
해석: 예수는 사랑과 평화가 아니라 세상을 파괴하러 왔다고 말한다.
비슷한 구절을 누가복음과 마태복음(19: 34~36)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누가 12: 49),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줄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왔다(누가 12:51-52).”
예수가 보았을 때
사람들은 자신 내면의 신성과 하늘나라를 잊어버리고
물질세계에 취하여 살아가는 어리석은 중생이다
. 사람들이 그토록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가족제도, 사회 제도
, 사회가치관이나 문화, 종교는
물질에 취한 사람들의 어리석은 의식의 반영일 뿐이다.
이들에게 하느님 말씀
즉 깨달음을 전하는 일은
기존 틀을 흔드는 파괴적 힘이어야 한다.
구습, 고정관념, 그릇된 가치를 태워 없애야
그 자리에 새로운 가치관, 진리가 들어설 수 있는 법이다.
새 포도주는 새 포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우주적 차원에서 이런 예수 행동은
사랑이겠지만
물질계에 집착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파괴자로 비칠 것이다.
예수는 곧 사라질 재산이나 명예, 육체에 집착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존재하는
내면의 신성한 혼에
대하여 알려주려 하는 것이다.
9절
Jesus said, "Now the sower went out, took a handful (of seeds), and scattered them. Some fell on the road; the birds came and gathered them up. Others fell on the rock, did not take root in the soil, and did not produce ears. And others fell on thorns; they choked the seed(s) and worms ate them. And others fell on the good soil and it produced good fruit: it bore sixty per measure and a hundred and twenty per measure."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씨 뿌리는 자가 한 주먹의 씨를 가지고 나가 뿌리니 어떤 것은 길 위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씨들을 모았고 어떤 것은 돌 위에 덜어져 흙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여 이삭을 내지 못하였느니라. 어떤 것은 가시가 있는 관목 위에 떨어져 자라지 못하고 말라버려 벌레가 먹어버렸고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좋은 곡식을 내어 육십 배 또 백이십 배의 결실을 맺었느니라."
해석: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가르침이다.
마태복음(13장 3~9절), 마가복음(4장 3~8절), 누가복음(8장 5~8절)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이들 공관복음서에는 이 비유에 대한 예수의 구체적 설명이 나온다.
"이제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내포한 뜻을 들어보아라.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간다.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곧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마음속에 뿌리가 내리지 않아 오래 가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사람은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닥쳐오면 곧 넘어지고 만다.
또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억눌러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잘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사람은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마태복음 13장 18~23절)"
예수는 씨가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 즉 진리를 의미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우화가 의미하는 다른 뜻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씨를 우리 자신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 난 것은 세상이란 토양에 뿌리내려 좋은 결실(참된 자아가 드러나는 것을 방해하는 부정적 감정, 집착, 무지 등을 극복하는 것)을 맺기 위함이다. 개인(씨)의 업에 따라 태어나는 환경이 달라 어떤 사람은 뿌리 내리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고 어떤 사람은 책임을 다하기도 하는 것이다.
10절
Jesus said, "I have cast fire upon the world, and see, I am guarding it until it blazes."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이 세상에 불을 던졌노라. 보라, 이것이 타오를 때까지 내가 지키고 있노라."
해석: 예수는 사랑과 평화가 아니라 세상을 파괴하러 왔다고 말한다.
비슷한 구절을 누가복음과 마태복음(19: 34~36)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누가 12: 49),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줄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왔다(누가 12:51-52).”
예수가 보았을 때
사람들은 자신 내면의 신성과 하늘나라를 잊어버리고
물질세계에 취하여 살아가는 어리석은 중생이다
. 사람들이 그토록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가족제도, 사회 제도
, 사회가치관이나 문화, 종교는
물질에 취한 사람들의 어리석은 의식의 반영일 뿐이다.
이들에게 하느님 말씀
즉 깨달음을 전하는 일은
기존 틀을 흔드는 파괴적 힘이어야 한다.
구습, 고정관념, 그릇된 가치를 태워 없애야
그 자리에 새로운 가치관, 진리가 들어설 수 있는 법이다.
새 포도주는 새 포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우주적 차원에서 이런 예수 행동은
사랑이겠지만
물질계에 집착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파괴자로 비칠 것이다.
예수는 곧 사라질 재산이나 명예, 육체에 집착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존재하는
내면의 신성한 혼에
대하여 알려주려 하는 것이다.
예수는 사람들의 기존 가치관을 흔드는 진리의 불꽃을
던져놓고 이것이 타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출처] 도마복음(9~10 절): 세상에 불을 던졌노라! 영지주의 성서 |작성자 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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