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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서 소개 영지주의 성서 본문
도마복음서 소개 영지주의 성서
도마복음서 소개
도마복음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 이집트의 옥시링쿠스(Oxyrhynchus, 그리스어 본)에서 파피루스 형태로 발견되었고 1945년에 이집트의 나그함마디(Nag Hammadi, 콥트어본) 에서 옥시링쿠스 파피루스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파피루스가 다시 발견되었다. 이 도마복음서는 대략 A. D 2세기경에 희랍어로 기록되어 보존되다가 이집트에서 발견된 것이다.
나그함마디 파피루스의 영지주의 문헌들 가운데서 가장 주목을 끄는 책은 도마복음서이다. 모두 114편의 어록으로 구성된 도마복음서는 예수의 어록인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오고 갔던 말씀들을 나열하고 있으나 상황이나 배경 등과 같은 역사적 정황이 없다. 예수의 가르침, 예언, 격언, 우화를 모은 구절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독립적인 문장으로 구성된다. 도마복음서와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는 공통되는 내용도 많으나 4복음서에 없는 도마복음에만 독특한 소중한 구절이 이 복음서의 영지주의 성격을 대변한다.
도마복음을 포함한 나그함마디의 영지주의 문서는 정경에 비하여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로마 교회의 검열과 가위질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의 신약은 로마 교회의 검열과 첨삭, 의도적 교정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이들 복음서는 로마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로마인의 비위에 맞게 왜곡되거나 편집되지 않았다. 로마인들의 사상이나 문화(미트라 숭배나 여러 의식)를 반영하지 않았고 로마황제의 정치적 목적에 맞게 취사선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마복음서에는 어느 특정 영지주의 종파의 작품으로 돌리기에는 무리지만 영지주의 사상이 확연히 드러난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기독교는 도마복음이 기존 복음서와는 많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도마복음에서 예수는 동양의 스승의 모습으로 나오지 신의 대변인, 신의 아들로 나오지는 않는다. 예수는 자신을 통하여서 아니라 제자들 각자의 내면 자각을 통하여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정통기독교도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답하는 것과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는 도마복음 원본에는 숫자 구분이 없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편의상 도마복음서를 114 절로 구분한다. 도마복음 해설서는 서양에서는 상당히 많이 나왔으나 국내에서는 아직 없는 실정이다. 이 책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나 영지주의 이해 없이는 해석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참고(1): 옥시링쿠스[Oxyrhynchus]
고대 상(上)이집트의 19번째 노모스[州]의 주도. 나일 강 유역 서쪽 끝에 있었다. 처음에는 B.P. 그렌펠과 A.S. 헌트(1897~1907), 그리고 나중에는 20세기 초 이탈리아 학자들이 많은 양의 파피루스를 발견한 곳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BC 250~AD 70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파피루스들은 주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비롯해 민중들이 사용하는 이집트어·콥트어·히브리어·시리아어·아랍어 등으로 쓰였으며 사라피스의 기적, 신약성서〉의 초기 사본, 토마 복음서 같은 여러 외경(外經) 같은 종교적인 교본들뿐 아니라 그리스 고전 문학의 걸작들을 담고 있다.(다음 백과사전)
참고(2): 공관복음서 [共觀福音書, Synoptic Gospels]
신약성서의 4대 복음서 중 《요한복음서》를 제외한 《마태복음서》 《마가복음서》 누가의 복음서》의 세 복음서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이 세 복음서는 그 기술 내용에서 일치하는 관점이 많아, 같은 통관(通觀)을 보여준다는 데서 이 같은 명칭이 붙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3) 나그함마디 사본
1945년 북부 이집트의 한 마을인 나그함마디(Nag Hammadi)에서 여러 파피루스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들 문서는 콥트어로 된 3세기 혹은 4세기경의 영지주의 문서였다. 이 13권의 파피루스 뭉치 속에는 모두 52편의 글이 들어가 있었는데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52종류의 문서 중에 중요한 것으로는 “진리 복음, The Gospel of Truth”, “도마복음, The Gospel of Thomas”, “야고보외경, The Apocryphon of James”, “요한외경, The Apocryphon of John”, “빌립 복음, The gospel of Philip”, 등이 있다. 이들 문서는 영지주의의 기원과 사상 그리고 영지주의와 초기 기독교와의 관계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4): 토마스 램딘(Thomas O. Lambdin)의 영어 본을 사용하여 번역 및 해석하였으며
“The Other Bible(편집자: Willis Barnstone, 출판사: HarperSanFrancisco)" 에 실려 있는 것을 가지고 왔다. “The Other Bible”은 영지주의 문서, 사해문서, 카발라, 기독교 외경, 유대 위경 등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살아있는 예수의 말씀 영지주의 성서
"These are the secret sayings which the living Jesus spoke and which Didymos Judas Thomas wrote down.
이 가르침은 살아있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밀의 말씀이며 디디모스 유다 도마가 기록한 것이다."
해석
여기에 살아있는 예수라는 말이 나온다. 도마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살아있는”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도마가 뜻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를 "깨달은 자", "완성 자"로 표현하고자 함이었다. 영이 깨어있지 못하다며 그것은 죽은 삶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마에게 주변의 일반인들은 죽은 사람이었다.
성경에 "죽은 자가 죽은 자를 묻게 하라"는 구절도 예수가 내면의 자신의 본성을 모르고 살아가는 무지한 사람들을 죽은 자로 표현한 예이다.
도마는 예수님 말씀을 비밀 가르침으로 표현하였다. 자신이 기록하는 이 복음서는 다른 복음과는 다른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위대한 스승들에 의하면 가르침은 늘 일반인을 위한 공개된 가르침과 준비된 사람을 위한 비밀가르침으로 구분되어 왔으며 석가나 예수의 가르침도 그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하여 스승들은 진리를 조심스럽게 소수의 준비된 자를 통하여 보존되어 전해지도록 하였다. 이를 일컬어 고대 비밀 가르침이라고 한다. 예수의 비밀가르침은 영지주의였고 도마복음은 영지주의 사상을 반영한 복음서였다.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로마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4대 복음서와 함께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이었다. 기독교 교리의 중심이 되는 신약 복음서가 예수님 가르침의 전부라고 생각하거나 현재의 성경 가르침이 순수한 형태로 왜곡 없이 전해져 왔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현재의 성경에 실려 있는 여러 복음서를 정경으로 정한 것은 예수가 아니라 초기 교회 교부들이었다. 구전으로 전승되던 수많은 복음서 중에 어떤 복음서는 정경으로 채택되고 영지주의 같은 복음서는 이단으로 사라졌다. 왜 현재의 복음서만이 정통으로 인정되었느냐는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 사후에 예수 가르침을 두고 정통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간의 논쟁이 있었고 그리스도교 교부들은 영지주의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박해하면서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경전 목록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오랜 시간 여러 논쟁과 투쟁을 거쳐 나온 것이 정경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정경은 종파와 시대에 따라 달랐으며 지금도 천주교와 기독교가 인정하는 정경의 숫자가 다르다.
2세기에 활발하였던 영지주의 활동은 정통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박해 속에서 점차 세력이 약해졌으나 그래도 4세기까지는 어느 정도 존속하였다. 그러나 로마 황제가 정치적 도구로 가톨릭을 공인하고 나서 예수의 비밀가르침인 영지는 거의 대중 앞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교회 교부나 로마 황제는 일반 대중의 통제를 위해서 대중의 이성을 자극하는 가르침 대신 감정적, 맹목적 신앙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정치적 목적이나 지배에 가장 적합한 내용을 지닌 복음서는 살리고 신비주의적이고 이성을 강조하는 복음서는 이단으로 파괴하였다. 결국 수많은 영지주의 복음서가 파괴되고 사라져 갔다. 영지주의 복음서에는 윤회도 나오고 동양의 사상과 일치하는 내용이 많다.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 영지 즉 이성을 동반한 지식을 통한 신과의 합일을 주장했으니 이 세계의 유일한 대변자로서의 황제의 위치가 이런 가르침으로 도전 받게 되니 없애 버린 것이다. 오늘날 서양의 성경연구가들은 최근에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에서 영지주의 내용을 담고 있는 사본들을 찾아내었다.
예수나 석가는 무지 속에 있는 우리에게 진리를 즉 신에게 돌아가는 길을 보여주기 위하여 가르침을 주신 분이다. 어원을 보더라도 그리스도나 붓다는 다 ‘깨달은 자’를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고유명사가 아니므로 누구나 깨달으면 붓다가 되고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영지주의는 믿음이나 신앙심보다는 영지 즉 앎을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으며 구원은 무덤과 같은 육체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혼이 되어 신에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영지주의는 감옥과도 같은 육체 속에 갇힌 신성 불꽃이 다른 육체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가르쳤으며 그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태도를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고 반 유대적인 경향을 띠었다. 반면에 기독교는 유대인들의 신관을 승계하고 영지주의를 반대하였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신의 나라로 돌아가는 방법으로 그들이 내세운 것이 영지 즉 지식이었다.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해석, 이해, 탐구, 자아인식, 지배력 획득이 구원을 위한 처방이었다. 믿음에 대한 어떤 권고도 없었다.
교회 초창기 가톨릭과 영지주의 단체와의 싸움이 있었고 박해, 순교가 일어났다. 역사 속에 영지주의 단체로는 마르시온 학파, 바실리데스 학파, 카인주의와 카르포크라테스 학파, 만디안 종교, 마니교가 있었으며 박해 속에서도 영지주의 문학으로 살아남은 것이 진주성가, 도마 이야기, 요한 행장, 아스큐 사본, 헤르메스 등이다.
1940년대에 발견된 나그함마디 장서에서 영지주의 문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영지주의 유산이 살아남아 근대에 문학이나 철학에 영향을 미쳤는데 영국의 신비주의 작가 윌리엄 블레이크, 파우스트의 괴테, 백경의 멕빌, 실존주의 철학, 그리고 심리학자 칼 융에게 까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영지주의 내용을 담고 있는 나그함마디 장서의 도마(토마스)복음서는 매우 흥미로운 영지주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taucross)
참고: 영지주의 정보는 '스투아트 홀로이드'의 "Gnosticism, 영지주의 "에서 참조.
도마복음(1~2 절): 죽음을 경험하지 않으리라! 영지주의 성서
1 And he said, "Whoever finds the interpretation of these sayings will not experience death."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누구든지 이 비밀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되는 자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으리라."
해석: 우리가 마지막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 죽음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여 우리에게 죽음은 극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비밀말씀(진리)을 체득한 자, 깨달은 자에게 죽음은 없다. 비록 육체가 죽어보일지라도 내면의 혼은 깨어있어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들은 더 이상 윤회의 수레바퀴에 묶이지 않는다. 이것은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며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한다.
윤회란 이 세상에 극복해야 할 것이 남은 혼이 이것을 극복하기위하여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현상이다. 극복할 것은 물질에 대한 집착이다. 집착은 지혜가 없음이요 무지 때문이다. 무지는 바른 가르침을 통하여 제거된다. 영원히 사는 방법은 이 비밀 가르침의 뜻을 아는 것이라고 예수는 말하고 있다. 깨닫지 못하면 육체가 살아있어도 혼은 죽은 것이다.
예수의 비밀 말씀은 유대 신비 사상인 카발라이다.
2 Jesus said, "Let him who seeks continue seeking until he finds. When he finds, he will become troubled. When he becomes troubled, he will be astonished, and will rule over the All."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멈추지 말라. 그가 찾게 될 때 불안하게 될 것이요, 그 불안은 놀라움으로 바뀔 것이며 마침내 그는 모든 것을 지배하리라. "
해석: 진리를 얻을 때 까지 멈추지 말라는 말이다. 진리를 찾아 나서는 사람은 많이 있으나 끝까지 남아 진리를 발견하는 사람은 드물다. 쉬운 길을 찾아 이곳저곳 헤매다 흥미를 잃고 그만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속적인 박사학위도 초등학교에서 시작하면 20년 이상이 걸리는데 사람들은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자신의 본질을 찾는 일에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우리는 중요한 일에 시간과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99%의 노력을 투자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살아간다면 그 삶이 어떠하든 아무런 의미없는 일이 된다. 왜 존재하는지, 신과 나와의 관계는 무엇인지, 우주와 인간의 신비 등 너무나 궁금해야할 일이 많이 있다. 진리를 구하는데 정해진 시한은 없다. 삶이 구도여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구절은 진리를 찾게 되면 불안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리가 마음을 편안케 하지 않고 불안하게 한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참된 가르침에서는 하나 같이 그대는 신의 일부분이며 이 세상은 환영이니 물질집착을 버리라는 것을 가르친다.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사랑하는 가족과 천년만년 이 세상에 살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들 마음인데 모든 것은 꿈이니 집착하지 말고 버리라니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신의 속성을 지닌 존재라니 이것은 절대자에 대한 불경(不敬)을 저지르는 것 같아 두려움에 마음은 더욱 불안할 것이다. 이런 예가 있다. 유일신을 믿다가 다른 종교로 개종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개종 후 한 1년간 끊임없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운전을 하다가도 혹시 신의 노여움에 사고나 당하지 않을까, 또는 불치의 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한동안 힘들어 하였다.
누구나 신에 대한 경외감과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여러 종교에서 신은 인간의 형상을 한 심판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오직 신의 말만 따라야 하고 이를 어기면 벌을 주는 사랑보다는 심판자의 모습으로 존재 한다. 특히 구약에 나타나는 신은 분노하고 질투하고 징벌하는 파괴적인 모습이 많이 드러난다. 이런 문화적 배경을 지닌 유대사회에서 우리가 신이 일부분이라는 주장은 확실히 불안한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신이라는 불경스러운 말에 불안해 하다가 마침내 자신 내부에 모든 잠재성이 숨어있고, 성경말씀(요한복음 14: 18, 20~21)처럼 '하느님 안에 자신이 있고 자신 안에 하느님이 있음'을 알게 되자 놀라게 된다. 외부가 아니라 자신 내부에 신이 있고 자신이 종이 아니라 주인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삶의 주인으로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TAUCROSS)
도마복음(3 절): 천국은 너희 안에 있나니! 영지주의 성서
도마복음 해설 (3절)
Jesus said, "If those who lead you say to you, 'See, the Kingdom is in the sky,' then the birds of the sky will precede you. If they say to you, 'It is in the sea,' then the fish will precede you. Rather, the kingdom is inside of you and it is outside of you.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너희 인도자들이 너희에게, '보라 천국이 하늘에 있노라'고 말한다면 공중의 새들이 너희를 앞설 것이요, 만일 그들이 '천국이 바다에 있노라'고 한다면 물고기들이 너희를 앞설 것이니라. 오히려 천국은 너희 안에도 있으며 너희 바깥에도 있느니라."
해석: 옛날부터 사람들은 천국을 우리 사는 세계와는 멀리 떨어진 곳을 상정하여 왔다. 심지어 하느님이 사는 천국을 하늘 높은 곳에 있다고 보고 그곳에서 왕관을 쓰고 옥좌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며 통치하는 신을 상정하기도 하였다. 예수 당시 많은 종교인들은 사람들에게 천국을 외부에서 찾도록 가르쳤다. 예수는 이런 고정관념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천국이 하늘에 있다면 하늘을 나는 새들이 우리 보다 먼저 천국에 갈 것이며 천국이 바다에 있다면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이 우리 인간보다 앞서 천국에 가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다. 이들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비유를 통하여 말하고 있다.
예수의 비밀 가르침은 영지주의인데 이 영지주의 내용은 유대신비 가르침인 카발라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카발라(동서양 사상의 근원으로 알려짐)에 따르면 신은 무한이며 모든 곳에 편재한다. 아울러 우리는 신의 속성을 띤 신의 일부분이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다면 우리는 신이 거주하는 성스러운 사원 즉 성전(聖殿)인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우리 안에도 있고 바깥에도 있음이다.
When you come to know yourselves, then you will become known, and you will realize that it is you who are the sons of the living Father. But if you will not know yourselves, you dwell in poverty, and it is you who are that poverty."
"너희가 네 자신을 알게 되면 너희는 알려질 것이요 살아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자신임을 깨닫게 되리라. 그러나 자신을 모른다면 빈곤 가운데 사는 것이며 빈곤 그 자체이니라."
해석: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은 너무도 유명한 말이다.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 하였고, 붓다도 내면에 존재하는 불성을 찾아 세상의 주인이 되라고 말하였다. 그리스 델피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는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 너 자신을 알라)”이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한다. 성인들의 말씀은 하나같이 “자신을 알면 우주의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손병희의 인내천(人乃天) 사상도 같은 맥락이다.
예수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의 출발점은 자신이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면 남을 사랑할 수 없듯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면 아무 것도 바로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면서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하늘을 향하여 큰소리로 기도를 하였다. 이렇게 하면 기도가 하늘에 닿으리라 생각하였고 아울러 남에게 자신의 신앙심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성경에 기도에 대하여 예수가 한 말이 있다.
"기도를 할 때 위선자처럼 하지 말라.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분명히 말하노라.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에게 기도 하여라. 그러면 몰래 보고 계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장 5절)”
예수님이 여기서 말하는 위선자는 바리새인으로, 당시 그들은 하루 세 번 아침, 점심, 저녁에 긴 로브(법복)를 입고 사람들로 붐비는 길가에서 큰소리로 신에게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일이 바리새인의 관습이었다.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영어로 골방(closet, chamber)등으로 번역되었으나 그리스 원본에는 내부 신전(Inner Sanctuary), 내부 성소 (inner Holy)로 되어있다. 예수가 한 말은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말이 아니라 내부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라는 말이다. 오컬트 가르침에 따르면 혼이 육체에 현시하는 장소가 머리의 송과선(松科腺)이며 머릿속의 공동(空洞)인 제3뇌실(腦室, 송과선과 뇌하수체, 시신경교차가 있는 뇌의 작은 동굴)이 내부 성소이다. 예로부터 신비단체에서는 내부 성소에 있는 송과선을 사람 속에 존재하는 신의 사원, 신성한 제단으로 간주하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될 때 모든 것이 드러나며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 즉 신의 일부분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세상의 주인이 되어 영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게 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등불 없이 어두운 산속 길을 걷는 것과 같으며 무지로 일어나는 온갖 고난에 시달리며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자신를 몰라서 일아나는 빈곤 그 자체인 셈이다.
도마복음(5 절): 천국은 눈앞에 있나니! 영지주의 성서
도마복음 5 절
Jesus said, "Recognize what is in your sight, and that which is hidden from you will become plain to you. For there is nothing hidden which will not become manifest. “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 눈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라. 그리하면 네게서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리라. 감추어진 것은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니라. “
해석: 사람들은 눈앞에 놓여있는 진리를 외면하고 먼 곳에서 찾고 있다. 평생 보물을 찾아 세상을 헤매다 늙어 집으로 돌아와 앞마당을 파보니 그곳에 보물이 묻혀있더라는 우화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천국이나 구원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미래에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예수는 이것을 말하고 있다. 천국은 우리 앞에 있음이다. 이런 말이 있다. ‘풀잎 하나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 ‘극대는 극소와 같고 극소는 극대와 같다.’ ‘인간은 소우주이다.’ ’신은 모든 곳에 계시다. ‘ 즉 진리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에 존재하니 바로 그것을 알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또한 외부에서 찾지 말고 바로 앞에 있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면 진리가 드러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사람들은 진리를 이 순간이 아니라 미래에 성취할 수 있는 어떤 일로 생각한다. 천국이나 구원을 미래의 일로 생각하는 한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온전히 머물지 못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이 자리가 영원이며 하나인 자리 즉 구원이며 천국의 자리임을 알라는 의미도 이 글에 내포되어 있다.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진리가 모두 드러난다는 말이다.
과거도 미래도 없으며 단지 이 순간만이 영원하다. 순간순간 충실하게 깨어 살아간다면 매 순간은 영원한 현재가 된다. 위대한 스승들은 하나 같이 현재에 깨어있으라 한다. 행복과 지혜는 이 순간에 존재한다.
그러면 왜 우리는 현재에 머물지 못할까?
사실 근심이나 걱정은 현재에 깨어있지 않아 일어나는 일이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회한,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괴로워하고 긴장하고 불행하다. 이 순간 현재에 머물 수 있다면, 깨어있을 수 있다면 순간순간이 축복이고 행복이다.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려면 생각에 휘둘림이 없어야한다. 집중을 해보면 단 1분도 무념무상으로 있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생각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생각은 무엇인가? 생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사람도 있다. 생각, 개념, 감정, 욕망, 이것은 우리의 참된 자아가 아니다. 우리의 참된 자아를 방해하는 흙탕물 같은 존재이다. 이것에 영향 받아 흔들리는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 생각의 노예로 살아가는 셈이다.
생각 다스리기는 명상에 필수적이다. 종교마다 나름의 수련법이 있다. 그 중 지켜보기 수련을 보자. 이것은 일어나는 생각이나 감정을 판단함이 없이, 개입함이 없이 무심하게 지켜보는 수련이다. 한마디로 깨어있는 상태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는 과정이다. 이것을 통하여 습관적 반응에서 벗어나 삼법인(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을 이해하게 되고 지혜가 개발된다.
생각에서 벗어나 내면으로 들어가면 영원한 평화가 있고 무한한 잠재성이 있다. 이 무한한 내면의 힘이 생각이나 욕망에 왜곡됨이 없이 드러날 때 우리는 신성한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가 되고 종교에서 말하는 신과의 합일,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출처] 도마복음서 해설 1절-5절|작성자 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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