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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지나라자다사] 신지학 비교(秘敎) 첫걸음 본문

영성수행 비전/신지학

[C. 지나라자다사] 신지학 비교(秘敎) 첫걸음

柏道 2018. 10. 7. 23:36

신지학

[C. 지나라자다사] 신지학 비교(秘敎) 첫걸음



신지학 비교(秘敎) 첫걸음


C. 지나라자다사 / 田中 惠美子 일역, 임길영 한


목 차 


1. 기적(奇跡)을 얻는 길

2. 하나에 지배되는 우주(宇宙)

3. 대립 없는 원(圓)

4. 초의식(超意識)

5. 의지력(意志力)

6. 가상(假想)의 부정(否定)

7. 상념(想念)

8. 의식(意識)

9. 언어(言語) 

10. 최면(催眠)적 에너지

11. 실상(實像)의 세계(世界)

12. 건강과 병은 상대적 망상(妄想)

13. 상념(想念)의 힘

14. 심령과학(心靈科學)

15. 부정법(否定法)

16. 유전(遺傳)의 법칙

17. 유전(遺傳)

18. 영적(靈的) 깨달음

19. 죄(罪)의 역전(逆轉)

20. 최면(催眠)

21. 수면(睡眠) 세계(世界)

22. 육신과 생각의 관리(管理)

 


1. 기적(奇跡)을 얻는 길

오늘 내가 말하는 것은, 신지학을 배우겠다는 신지학도(神智學徒)에게 큰 참고가 될 것으로 믿고, 설명에 순서가 뒤섞인 것같이 생각되는 점이 있으나 그것은 통일된 순서로 설명하는 것보다, 중요한 부분을 말하여 깨달음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을 간결(簡潔)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들을 공부하겠다는 사람에게는, 기본이 되는 관계가 되는 것이오니 깊이 있게 느끼고 실천하는 사람은, 영(靈)으로부터 지혜를 얻어내고 신지학도로서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으며, 세상 사람들이 기적이니 초능력이니 하는 것을 몸소 느끼고 큰 감명을 받을 것이다. 기적의 원리를 설명하자면, 기적(奇跡)이란 것은 4차원세계(四次元世界: 幽體이상의 몸을 가진 생명체)에서 생활하는 생명체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일들인데, 육체로 되어있는 인간이 살고있는 물질의 세계에서는 기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공부를 한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계속 있었으며, 죽은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명(命)을 받아 인류를 진화시키는 여러 가지 큰 역할을 하여 왔으며, 지금도 지구의 어디에선가 이러한 사람(超人)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초인(超人)이 되면 생(生)과 사(死)에서 초월하여 인간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인간이상의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이러한 길(道)에 대한 연구를 사람들은 신지학이라 말하며, 신의 지혜를 전하는 공부라고도 말한다. 초인을 신지학에서는 대사(大師)라고 말하며, 인간생명과 형태진화 등에 관하여 우주의 주인(신지학에서는 logos라고 한다)을 돕고,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미지(未知)의 것을 발견하도록 영감(靈感)을 주거나, 계시(啓示)를 주어 간접적으로 도와주기도 한다.

 

신지학에서는 지금 이 지구(세상)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지구에서 인간이 생긴 이후 다섯 번째가 되는 제 5근본종(根本種)에 속하고, 제 4아종(亞種)과 제 5아종(亞種)의 중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태어난 시기이며, 먼 장래에 제 6아종과 제 7아종의 뒤를 이어 제 6근본종과 제 7근본종까지 인간진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하고있다. 앞에서 설명한 대사들은 이러한 인간진화를 돕는 것이다. 진정한 기적은 언제나 조용한 침묵(沈黙)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알아차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기적을 얻고자한다면 즉 자신의 이익을 얻고자하는 가장 가까운 방법은, 만인에게 공통된 이익을 추구하는 길이 자신의 이익을 가장 큰 것으로 가져다주는 것이 된다. 선(善)을 행하고자함은, 스스로 실천하고 선(善)과 사랑을 만인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길을 찾아보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또 이와 같은 행위는, 여러 학도(學徒)가 미지(未知)의 (육신이 없는)세계에서 반드시 경유해야할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또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에, 많은 것을 미리 축적(蓄積)해 두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학도여러분 각자의 상상에게 맡길 수밖에 없겠다. 모든 것은 자신부터 시작해야하며 열심히 자신의 생명(혼)을 생각하여, 참된 자신의 혼(魂)의 본질을 알아내는 사람은 자신의 본성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고, 그 본성이 발전되었을 때 자신에게 많은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느낌이 확실하여지면 변혁(變革)은 제일 먼저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일어나며, 즉 사람들이 말하는 초능력(超能力)같은 것이 표출하여온다. 우주 안에서 일한다는 것은 곧 인간육신 안에서 일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매우 간단한 것을 알게되는 것이, 위대한 영지(靈智)를 얻게되는 것이며 모든 것을 알게되는 길목인 것이다.

 


2. 하나에 지배되는 우주(宇宙)

옛날부터 누군가가 ‘인체(人體)는 소우주(小宇宙)’라고 말해왔다. 이것은 고대의 어른들이 영지(靈智)를 얻어 나온 말이다. 사람의 육체내부를 보면, 그 구조의 신비하고 복잡하며 정밀(精密)한 것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조직의 어느 부분을 보아도 그 기능은 완전한 조화가 되어있고, 그 힘과 기능이 한 곳에 모여 하나의 힘으로 나온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만약 두 곳에서 나온다고 가정해보면, 그 사람은 혼란을 일으켜 불안전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생명을 보존할 수 없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신 속의 한 곳에서 나오는 힘을 알았다면, 학도여러분은 이것을 자신의 의식 속에 확고히 정리하여, 그 힘의 원천에 순종하여야 자신의 생명을 보존한다는 이치를 알았을 것이며, 또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고 자신의 모든 것, 즉 행복을 얻는 길이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 안에서 힘이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 밖에 있는 속세(俗世)의 환경이나 주위사람들이나 물질에서 힘을 얻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런 자각은 그러한 것들의 지배에 이끌려 들어가서 힘이 근원(根源)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생명을 욕되게 하는 일을 축적(蓄積)하여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을 육신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범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신(神),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지배를 받고 있으며, 또 힘의 원천이 그것이라는 것을 알고 육신은 그(생명: 신)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며, 그를 돕기 위하여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어야 하며, 또한 그에 대한 신념(信念)이 필요하다.

 

우주의 중심에서 내려오는 지배력은, 자신 안에 있는 생명(혼)에게 힘이 전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우주의 원리(原理) 또는 우주(宇宙)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우주의 원리 안에는 인간이 강대한 지배적인 존재에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에도 유념해두어야 할 것이다. 즉 사람은 만물의 영장(靈長)임을 말한다. 우주에서의 사람은 하나의 지배자이며 하나의 지령자이고 하나의 권능자인 우주주인(로고스)에게, 자신 안에 있는 힘(생명)을 통하여 상념(想念)을 집중적으로 보냄으로서, 한 순간에 자신이 전능자가 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학도여러분은 알아야한다.

 

나는 우주주인과 똑같으며 나는 그의 것이라고 주저함이 없이 선언해야하며, 그러한 의식을 확고히 가지고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주의 주인을 자신 속에 실현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우주주인은 그렇게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우주주인은 우리들 인간으로 하여금, 수없이 윤회(輪回)시키면서 진화발전을 도모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루라도 빨리 신아(神我: ‘신은 자신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어 고귀한 진보가 이루어진 생명체)가 되어야한다. 신(神)은 영(靈)이며 표현이 다른 것뿐이다. 영(靈)은 성스러운 것이며 영(靈)의 모습이 되는 신(神)을 닮아 태어난 인간은, 영의 진정한 자식(子息)이며 그의 본질은 우주주인을 닮은 진정한 영(靈)의 성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인간은 앞에서 말한 신아(神我), 그것이며 영의 자식인 인간은 모든 면에 신성(神性)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발전소에서 전기가 몇 단계를 거쳐 개인의 집 안방까지 전하여지는 전기의 성질을 비유할 수가 있다. 신이 가지고있는 자유스러운 의지는, 사람의 자유스러운 상념으로 되어 표현하도록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순수하고 깨끗한 동기에서 상념을 보낸 것이라면, 그 상념에서 오는 결과가 학도여러분에게 신아(神我)임을 증명하여줄 것이다. 끝까지 이러한 것을 알고자하는 노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그렇게 마음먹은 사람은 시종일관(始終一貫)하여 선행(善行)을 생활의 목표로 삼고, 굴(屈)하지 않는 의지가 있다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진정한 신아(神我)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빛과 사랑 그리고 선(善)을 가져다주는 것이 된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우리들에게 영구불변(永久不變)의 생명과 형제 그리고 동포관계를 내리시고 계시는, 우주의 주인과 인간들의 관계는 부자(父子)로 맺어져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우주의 주인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깨달음은 진리이다. 사람은 왕이나 왕자라고 하는 것이 따로 없으며 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왕이며 왕관(王冠)을 쓴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를 지배하는 일을 하고 계시는, 우주 및 여러 세계의 영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올바른 깨달음은 넓어, 전 우주의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자신 안에 있는 신(神)께서 내려주시는 창조력을 십분 발휘하여, 우주의 주인께서 하시는 일을 도와 드리고 열심히 일을 하여 창조주가 되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영(靈)의 자식의 본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큰 도시(都市) 하나가 자기의 재물이 되어 그 도시의 지배자가 되는 것보다, 영구불멸인 자신의 혼(魂)이 우주를 지배하고 계시는 우주의 주인과, 연결되어 같이 일하는 것이 얼마나 좋다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우주의 질서 속에서 태어났으며, 우주 안에 존재하고있는 모든 것들을 활용하면서 삶을 계속하도록 해주신, 근원적(根源的) 우주주인의 창조 인과(因果)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것들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전지전능(全知全能)한 것이 인간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육신을 인간의 본성으로 착각하고 신으로부터 떨어지면서 이기심(利己心)이 강렬해져, 인간의 몸 속에 흐르고있는 동물적 습성에 사로잡히게되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고립된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생각은, 위험하여 악(惡)에 대해서도 크게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습성이 생기게되면, ‘악의 온상에서 놀고있는 것이 된다’할 것이다. 그리하여 무신론(無神論)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에게 ‘나에게로 돌아오십시오, 그렇게 하면 나도 당신 곁으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말이, 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여 준 것이다. 시종일관 마음을 하나로 정하고 불변의 목적으로 되어있는, 앞에서 설명한 신아(神我)가 되겠다고 생각하며 한발한발 나가면 만물동근(萬物同根) 만물일체(萬物一體)이며, 유일(唯一)의 목적과 유일의 원리(原理)를 체득하여, 대각(大覺)이라고 말하는 곳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인 간이 완전한 진화를 이루어 놓겠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어려운 역경에 부딪쳐도 마음을 조용하고 정숙하게 유지하도록 힘쓰고, 노(怒)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비결(秘訣)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사람이 처음 생겨났을 때, 천성(天性)이 영원한 선(善)에서 기초가 되었으므로 처음부터 선과 같이 동조하고있으며, 그 이유는 신(神)은 선(善) 그것이기 때문이다. 선이 생겨나는 심연(深淵)한 곳을 찾아 들어가야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가 있다. 그 곳에는 신아(神我)가 학도여러분을 기다리는 곳이 될 것이다.


선배대사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길을 걸어오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많은 진리를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당연히 발견에 이르는 방법을 알고 계신다. 대사 아닌 학도여러분은 새삼스럽게 길을 찾을 필요가 없으며, 대사들이 받은 계시를 그대로 받아 자신이 수용하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선배들의 불과(佛果)를 솔직하게 받아들여 행하기만 하면 삼매지경(三昧地境)에 이르게된다. 이 경지에 도달하는 사람은 도(道)의 길잡이다. 그러나 대사들이 겪은 고행이나 기타 방법을 그대로 모방할 필요는 없으나, 경지를 자신들도 완전한 것으로 실현하여야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것은 누구에게도 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깨닫고 보면, 인간의 참모습을 더욱 깊이 있게 알게되고 지금까지 설명한 이야기에 이해가 깊어져갈 것이다.

 

또한 이 길은 넓게 열려 있으며, 이 길은 길고 먼 길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이 같은 길을 한 사람이 찾아와서 알게 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면, 그 힘에서 나오는 빛 또한 더욱 많고 밝은 빛이 될 것이다. 그것이 수천(數千) 수만(數萬)의 빛으로 합하여졌을 때, 그 힘은 크고 우리들이 이제까지 발견하지 못한 많은 진리를 알아내고, 빛은 온 세상을 밝은 광명으로 비춰줄 것이다.

 


3. 대립(對立) 없는 원(圓)

한 개의 점(點)이 늘어 하나의 선(線)이 되고 하나의 선(線)은 양끝에 서로 대립(對立)하고있으나, 끝을 합하여 맺으면 원(圓)이 되어, 대립은 없어진다. 원(圓)을 넓게 확장하면 구(球) 즉 공이 된다. 공이란 것은 모든 요소가 완전한 조화를 이룬 관계인 동시에, 공은 우주적인 조화 그것이다. 구(球) 즉 공은 완전일체가 성립되고 실현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무(無)에서 시작하여 점(點)이 되고, 점(點)이 성장하여 선(線)이 되었으며 선(線)이 합하여 원이 되고 원이 확장하여 구(球: 宇宙)가 된 것이다. 반대로 구(球)에서 원(圓) 선(線) 점(點) 무(無)로 없어진다. 이것은 우주의 원리이며 또한 창조의 원리이다. 또한 이것은 여러 가지 상념에 적응(適應)하는 기본이 되는 중요한 원리이니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어떤 면(面)에서보면 사람, 물질, 일(작업) 등은 각기 별개의 집합이라 할 것이나, 사람에게 필요한 것으로 하나의 조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원리에서 모든 것이 궁극(窮極)에 이르러서는, 하나로 귀일(歸一)하여 조화가 성립되는 것임으로 관련 없는 것이 없으니, 관련시키는 과정(過程)을 끊임없이 연상하여 마지막에 모든 것이 일체(一體) 즉 한 사람, 한 개. 하나, 한 점으로 모이게 된다. 이와 같이 생각을 신념으로, 신념을 의지로 의지를 의식화로 변화시켜 상념을 내보내어 상념을 의식화해야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일점집중(一點集中)이다. 일점집중이라는 것은 일심(一心)집중 그것이며, 이런 원리대로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나간다면 삼매(三昧)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삼매(三昧)의 경지(境地)란 성도(聖徒)가 시작되는 기점(起點)이며 즉 완성화가 시작된다.

 

일심집중으로 일점(一點)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 마음의 축소가 아니고 마음의 확대인 것이며 모든 것을 배제(排除)하고, 한 점에 이르게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며 모든 것을 관련시킴으로서 원리가 실현되는 것이다. 삼매의 경지에서는 사람이 전체란 것이다. 즉 어떤 것인가를 볼 수 있다. 즉 알 수 있다. 진리에서 원리까지 얻을 수가 있으며, 하나의 마음에 도달할 수가 있을 것이다.

 


4. 초의식(超意識)

하나의 마음(唯一心)은, 초의식(超意識)이라 한다. 초의식(超意識)은 하나의 마음(唯一心)이며 우주주인의 마음 그것이다. 현재의식(現在意識)과 잠재의식(潛在)이 합해진 경지야말로 초의식이며 자각하는 것이 되고 전체(全體)이다. 그러므로 완전의식(完全意識)이다. 완전의식은 하나의 마음이며 초의식이고 우주주인의 마음을 말한다. 그것에 분열 같은 것은 없으며 분열이 없다면, 그 마음은 완전한 대조화(大調和)를 이루었으며 이것이 바로 자각이며 바로 정각(正覺)인 것이다. 현재의식과 잠재의식으로 구분한 것은 설명하기에 편리해서 사용한 말이다. 하나의 마음 즉 초의식은 완전의식이며, 신아(神我)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또한 행동하는 것이 신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며, 알 수 있고 또 의식에 의한 영의 실상(實像)의 모습을 나타나게 하는데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해하는 태도를 가지고 신(神)에 가까워진다면, 그 사람은 신아가 되는 것이며 그 곳에서 성도(成道)가 시작하여 완전화(完全化)가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우주의 체제는 하나의 단일체이다. 인간은 우주단일체(宇宙單一體) 안에 뺄 수 없는 구성원이다. 인간은 어떠한 의미에서나 전체에서 결코 떨어져 나올 수 없다. 인간은 전체 안에 있어야하고 적당한 위치나 권위를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완전함을 못 가지는 사람은, 자기 마음 되로 독자적 생각에서 오게되는 이기심(利己心)이 강해지게 된다.

 

신지학도(神智學徒)는 이기심이 금기(禁忌)되어있다. 비유하여 설명한다면 군인은 군대 내에서 규율을 지키면서 군대 생활을 해야 하는데, 탈영하여 마음대로 방황하는 도망병과 같은 것으로 전체에서 빠져나와 있는 것은 잘못이며, 전체를 구성하는 어느 한 부분을 만든 요소(要素)가 되어있어야 당연하지 않겠는가?

 


5. 의지력(意志力)

깨달음이란 의지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며, 의지력은 자신을 지배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의지의 힘으로 자신을 지배하겠다는 생각은 할 수 있으나, 의지자체는 지배하는 힘을 가져다주는 원동력이 아니므로, 지배의 힘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말하자면 현재의식이 되는 외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자신의 상념을 한 점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이다. 내적(內的)에서 나오는 깨끗하고 정확하게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정신적 행위를 가지고, 상념이나 감정을 포함한 행위를 중심으로 가져가는 일점집중(一點集中)이 되도록 하는 의식이야말로, 지배하는 원동력을 얻어내고 모든 것을 영적실상(靈的實像)의 상태를 나타나게 하는 원리가 되고, 신에 접근하는 방법이며 수단이고 길목이며 자기 생각을 신에게로 합하게 할 수 있고, 합하여졌을 때 생기는 힘(지배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의지(意志)라는 것은 수학적 원리에 따르는 자신의 마음을 같은 것으로 한 개의 부분적 힘인 것을 분명하나, 의지의 힘만으로 원리자체를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의 힘으로 수학의 원리를 풀 수 있는 선(線)까지 끌고 갈 수는 있으나, 그 이상에 있는 진리의 원리에는 미치지 못하며 자신의 의지를 수학적 원리에 따르게 하므로 서, 자기가 수학적인 소질 또는 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렇게 느낀 그것이 바로 의식(意識)인 것이다. 자신의 그와 같은 의식을 더 높은 권위에 따르게 하여 권위를 나타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자신을 올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와 같은 것에 대하여 노력하지 않고 실제에 있어서는, 아무런 힘도 없는 물욕이나 이기심에 이끌려 가는 약점이 있는 것이며, 이러한 마음을 자제하고 통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유일(唯一)의 원리인 신아(神我)만이 힘의 원천이고 다른 어떤 것이라도, 이 세상에 지배력을 가지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있어야 한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의 원리, 하나의 마음에 연결되어 하루하루 생명이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면에서 관찰한다면, 많은 면에서 하나의 원리에서 오는 것을 느끼고 알게 될 것이다. 가령 자신이 어떤 완전한 상태인 것을 목표(目標)로 삼고 이상(理想)을 마음속에 그린다면, 그린(畵)것과 때를 맞추어 신의 힘을 움직이는 순간, 앞에서 그린 그림(畵) 이상은 실상의 세계(영계의 모습)에서 모든 것이 완성되어버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때 실상의 세계에서 실현되었지만, 인간의 눈이나 체험에서 보이거나 느낄 수가 없었을 뿐, 이미 영계의 실상에서 사실의 변화가 있었는데도 우리의 물질세계(육신의 세계)에서는, 서서히 조금씩 구체적으로 현상(現像)되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린 사람(畵家)의 능력 즉 받고(受)있는 힘의 차이에서 정확한 시간을 말할 수 없으나, 때로는 많은 시간이 경과하여 현상화(現像化)하기도 하고 때로는 빠른 시간에 현상화(現像化)하는 경우도 있다.

 

이상(理想)을 그린 사람은, 실현되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불만이나 의심(疑心)이나 단념(斷念) 등의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주의 할 것은, 이와 같은 의심 등은 이미 영계실상세계에서, 앞서 그린 것으로 만들어놓은 이상의 원형을 깨뜨려 버리는 결과를 가져와, 끝내 그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니 조용히 끈기 있게, 물질세계(육신의 세계)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야한다. 의심(疑心)한다는 것은 신념(信念)이 신아(神我)에 대하여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가지 면 밖에 이룰 수 없었으나 다음으로 성취되어 간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한다. 우리들은 영적인 모습만이 생각하고 그 속에서 살고있다고 믿고 행동하면, 반드시 충실하게 학도여러분 앞에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현상(現像)으로서 나타난 사실을, 영의 입장(立場)에서 본다면 가재(假在)이며 가상(假想)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믿음이 부족한 실수가 있어서는 안되며 영적(靈的) 사실은, 언제나 영의 실상의 세계가 원형(圓形)이 되며 그것은 영계의 실상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물질세계의 모든 것이 영적인 원형까지 높아져야 합리적인 것이다. 이것은 마음의 집념이 강해야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하여 현상인 가상(假想) 가재(假在)가 영적인 원형까지 올라갔을 때, 형상은 현실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때 학도여러분은 ‘우주주인께서 저의 염원(念願)을 들어주셨으면, 또 언제나 들어주신 것에 감사합니다’라는 보답의 마음을 가지고 감사의 표시를 하여야 한다.

 


6. 가상(假想)의 부정(否定)

가상(假想)을 부정(否定)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가상(假想)이란 부조화에서 생긴 것을 말하며, 영계에서 내려보낸 것에 물질세계의 여러 가지 물질이 붙어 변형된 모습을 말한다. 부정(否定)한다는 것은 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 되므로, 그렇게 되면 그런 존재로서 가지고있을 수 없는 어떤 힘을 넣어주는 결과가 오므로 특히 주의해야할 필요가 있다. 완전하고 원만한 영적 상태가 되어있는 실상의 모습 외는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고, 나는 늘 영(靈)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이다.

 

영(靈)이란 말은 마음(생명 또는 혼)을 의미하며 파동(波動)의 영향을 받는 것도 같으며, 틀린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상념을 지시하는 마음의 부분만이 받(受)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란 것은 의식이다. 왜냐하면 의식은 서로가 떨어져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식의 요소는 상념이므로, 우리들이 영에게서 사실의 모습을 의식하였을 때 마음과 영은 조금도 차이가 없으며, 그 때 우리들은 영적인 의식상태에 들어가게 되며 실상의 모습을 생각하게되는 것이다. 의식이 일하고 있을 때는, 모습 즉 상(像)을 마음으로 생각하거나 그리는(畵) 것이 좋고, 이때 똑 같은 의식으로 일하는 것이 영(靈)이다. 둘은 똑 같은 뜻(目的)을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자신이 의식하지 않고 있을 때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으나, 의식은 사람의 육신 안에 존재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영에게 사실의 모습 즉 실상(實相)을 의식하도록 사람이 상념을 보내려고 하면, 의식이란 존재는 그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의식에게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보다 마음에게 의식을 보내는 것이 된다고 생각해야한다. 그리하여 의식이란 요소가 영적사실(완전한 실상)에 충실하게 일을 계속하고 있으면, 마음에서 방사성(放射性) 에너지가 나오며 그 에너지를 원형의 상태까지 채워주어야, 실상의 모습인 완전한 원형의 모습과 똑같은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의식이란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한다.

 

현재의 과학자들은 만물이 생기게 된 원인에 대하여, 우리들과 같은 결론에 접근해오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질량(質量)을 만들어내는 원소를 전부 분해(分解)하여 방사(放射) 에너지화(化)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영(靈)으로 돌아가게 하는 결과가 된다. 영은 모든 것에 들어가 있으며, 모든 것에서 나타난다. 라티륨을 비롯하여 모든 원소가 단 한 개의 뿌리원소에서 나왔으며 그것들이 방사(放射) 에너지로 되어버리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들이 방사(放射) 에너지를 분석(分析)한 결과, 단순한 맹목적인 힘이 아니고 지혜(智慧: 신아)를 가지고있으며, 에너지가 자신의 힘의 행위를 알고 있다. 과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면, 에너지는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알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을 한 전기가 존재한다고, 우리들 주장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학도(學徒)여러분은, 모든 것들의 안(우주)에 있으면서 모든 것에 들어가 있는 창조에너지는, 자신을 명백히 자각하고있음을 알아야한다. 우리들은 이것을 영(靈) 또는 신(神)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치(理致)에서 육체라는 것은, 그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 본질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계시고, 그것이 인간의 실상(실제의 모습)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중심이 되는 생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의식 속에서 나는 무엇이다(나는 신이다)라고 말했을 때, 자신의 잠재능력이란 것이 놀고 있다가 활동을 시작한다. 이 활동이란 것은 상념이 집중하는 것을 말하며, 이때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힘(生命, 靈, 魂)의 도움을 받아 그 사람은 자신이 행하고자하는 실상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활동기능이며, 모든 세계(우주의 여러 세계)에서 만물을 초월한 현상화(現像化)가 이루어지는 원리인 것이다. 이제까지 공부한 신지학도(神智學徒) 여러분은 ‘우주의 주인이 되는 신(神: 로고스)과 나는 같으며, 나 역시 신이다’하는 것을 실감나게 느낄 것으로 생각하며, ‘이것이야말로 사실(事實)이고 절대로 틀린 말이 아니다’하는 신념을 가질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앞에서 수없이 설명한 것 외는 길이 없으며 사람은 누구나 이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마음(唯一心)은 새로운 이념(理念)을 계속적으로 창조하여가는 것이 아니고, 태초(太初)에 창조한 이념을 나타내 보여줌으로서 알게 하는 것이다. 완전하다는 것은 하나밖에 없고 완전한 이념은 우주를 창조하신 시초(始初)에 만들어져 있었든 하나(唯一) 그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한 것이다. 우주주인은 그 위에 없고 그 아래도 그 이상의 것이 없으며 영구(永久)한 그것이다.

 


7. 상념(想念)

상념(想念)은 어떤 방사물(放射物)보다 강력한 것이다. 왜냐, 전파라디오 파동의 장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전기라디오의 파동과 상념의 파동이 공간에서 충돌하면 전기라디오의 파동은 퉁겨져 돌아가게 된다. 라디오는 어떤 도체(導體)일지라도 공간에서 행로를 맞추어 방향을 향하여 공간으로 흘러가며 움직인다. 상념은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이동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념은 우주공간에 편재(遍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의 어느 지점을 잡아보겠다고 생각하면 상념은 벌써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 상념이 이동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은 상념이 전자충격을 하기 때문이다. 마음과 동시에 상념이 움직여 질량에너지가 움직이며 돌아다니고, 상념이 가진 모형(母型)으로 질량에너지가 뭉쳐지게 함으로서 창념(創念)을 현상 화하여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념의 결과에서 오는 원리가 우주에 있다는 것을, 대과학자 아인슈타인 박사가 알아내고 양자론(量子論)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우리들이 공간이라 말하는 것이, 사실(事實)은 신(神)의 마음 즉 유일심(唯一心)이 확장되어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원리(原理)이다. 이와 같은 원리에 의해 복사(複寫)되어 나와있는 인간의 마음(생명)은 시간과 공간을 극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주의 주인에게는 시간과 공간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완전하며 완전한 것에는, 시간과 공간 같은 이원상대(二元相對)의 것이 없고 하나일 뿐이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 자기는 신과 다른 존재이며 물질적 존재가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길을 잃은 미아(迷兒) 같은 것으로, 미아가 부모 곁을 떠나서 불행한 일들을 자초(自招)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을 신지학에서는 의식의 최면상태(催眠狀態)에 있는 것이라 지칭(指稱)한다. 인간은 우주주인(로고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생활하며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본질로 되어있다. 인간들이 하나의 마음의 지배력을 감지(感知)하였을 때, 마음은 균형(均衡)을 유지하고 행복함과 인간으로서 가야하는 길을 알게되고,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만사가 잘되어 평안한 것이 오게된다.

 


8. 의식(意識)

의식(意識)이란 것은 인간이 무엇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마음(생명)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 되고, 이런 능력은 여러 면(面)에서 그 사람의 능력을 결정할 수가 있다. 자신의 지금 상태가 진짜(본질)이냐 가짜(미아)이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각(自覺)이나 의식으로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의식상태는, 존재하고 있는 의식의 속성 중에서도 가장 높은 속성에 연결되어 그것을 나타내는(現像化) 것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물질세계 즉 속세(俗世)가 되는 인간사회에서 만들어진 생각(思考)에서 가지게 된 관념(觀念)을 깨끗이 벗어버리고 참(眞實)되고 영적(靈的)인 완전한 실상의 모습과 바뀌어져야 하는 것이다.

 

영적의식(實相)은 감각(感覺)의 활동을 없앤 것이 아니며 진정한 감각활동이란, 언제나 최고의 의식 속에 있으며 감각활동이 정확한 것이라야 말로 진짜(本質)에 의한 영적 활동일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영적인 실상(本質)의 모습(狀態)에 의하여 지휘를 받고있는 정확한 감각활동을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말하기를 오관(五器)이 열렸다고 말한다. 삼매(三昧)의 깊은 의식상태라는 것은 감각활동을 부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삼매경지보다 자기의식을 언제나 진짜(本質의 實相)의 감각활동이 되어, 완전한 것으로 가져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이와 같은 완전한 것이 가능하다면 삼매에 들어갈 필요가 없으며, 의식의 최면(催眠)상태 같은 것도 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의식을 일반적으로 세분하여 여러 가지 표현상태로 설명하고 있는데, 잠재의식(潛在意識)과 현재의식(現在意識) 그리고 삼매의식(三昧意識)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이 구분할 것 없이 하나의 마음 유일(唯一)심의 전체전일(全體全一) 즉, 하나의 생각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세분화하여 생각한다면, 세분된 구별에서 오는 속성(屬性)에 사로잡히는 경우(현재의식의 물질속성)가 생겨날 뿐 아니라, 소극적 의식상태로 인한 감각활동이 떨어지기 쉽다. 다시 더 설명하면 세분하는 것은 상징(象徵)같은 것이 되어, 그 성질에서 나오는 힘을 받게되고 상징정도의 힘에서 나오는 것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영역(領域)에 힘이 못 미치는 경우가 된다.

 

그러므로 전체전일의 의식이라야 한다. 육체는 혼(魂)의 소유물이며, 다시 말해 육체 안에 살고있는 혼(魂) 즉 생명 되는 영(靈), 그것이 실상의 사람이며 사람의 상징(象徵)이 우리들의 육체이다. 또한 육체는 의식활동의 상징인 것이다(신지학도 여러분은 육체의 설명에 대하여 의식 속에 확실히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의식의 전 과정은 육체라는 단일조직 속에서 자율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의식 잠재의식 등 구별이란 있을 수 없고, 존재한다는 근원은 안에 있는 하나에서 나오고, 안에 살고있는 영광된 전일전체의 그것뿐이다.

 


9. 언어(言語)

언어(言語) 즉 말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말(言語)에 앞서 의식에서 나오는 상념은, 말의 뒤에 있는 동력이며 즉 힘이다. 그 힘은 말(言語)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창조를 하게되는 것이니, 말을 잘 음미(吟味)하여 반드시 상념의 힘이 들어있는 말을 하게되면 목적한 것을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말은 언제나 강제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와 같은 여유에서 나온 말이다. 상념의 힘이 들어있지 않은 막연(漠然)한 말은 아무것도 아니며, 현재의식에 속하는 말이다.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목적을 가진 의식에서 말하는 것은, 자신의 깨달음에서 얻어낸 숨어있는 힘, 방사에너지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나오게된 말은 영(靈)이며 또한 자신의 생명인 영혼(靈魂)이다. 그렇게 하여 나온 말이 있다면 반드시 그 말과 같이 실현이 이루어진다.

 

영(靈)은 우주의 창조인(創造因) 임을 말의 결과에서 증명하는 것이다. 또 말의 결과가, 사람은 창조인에서 생겨난 복사(複寫)물임을 증명하여 주는 것이다. 우리들의 뒤에는 늘 이와 같은 영이 생명력의 형태(形態)로 하여 움직이고 일을 하여 주시기 때문에, 힘은 자신의 행동거동의 여하에 따라 강하게 또는 약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종자(種子)가 성장하는 것은 종자 안에 자연의 힘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왜냐, 종자자신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으며, 종자자체는 자연력의 한 용기(容器)이며 자연력의 수단이다. 말(언어)을 종자라고 가정한다면, 자연력이 종자를 활동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원리와 같이, 영(생명)은 자연력이며 종자가 되는 말을 활동케 하는 이치(理致)가 된다.

 

말에 힘이 생겨날 수 있느냐? 없느냐? 의 판가름은 우리들 의식의 척도(尺度)에 있고, 의식에서 나오는 상념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런 힘은 자기 자신이 창조인(創造因)의 줄기가 틀림없다는 자각(自覺)에 있다. 막연한 말은 어느 의미에서 최면상태를 증가시키고 아주 무력한 것이 된다. 말은 지휘능력을 가진 영(혼)의 의지(意志)에서 출발하고 있으나, 말이 힘이 되는 것은 의지가 아니다. 의지라는 것은 그 때의 상념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상념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의지가 참여하는 것이다. 말에는 알맞은 선택력 즉 음향(音響)에 힘이 들어있는 상념이라야 한다.

 

말을 하려고 할 때는 말의 용도와 의미를 잘 상념(想念)하여 말을 발성(發聲)하면, 영의 힘이 확대되는 역할(役割)을 하는 의식에 의하여 신비성 있는 것이 인정되어 힘을 발휘하는 것이며, 말은 사용하는 사람의 적정한 조정에 의한다면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意圖)하는 되로 상응(相應)하는 것이다. 동시에 말은 지혜(智慧)를 움직이고 선택하여 선(善)한 일에 목적을 두는 좋은 일들에 써야하는 것이다. 신(神)을 모방하여 신께서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똑 같이 생각한다고 의식하면서 말을 사용한다면 영의 힘의 진수(眞髓)가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말의 뒤에는 실로 천지창조(天地創造)의 힘이 엄존(儼存)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말은 언제나 자신의 근본이 되는 영적인 진성(眞性)에서 나오고 있으며, 영적 진성으로 본다면 외피에 해당하는 마음 육체 환경 등은, 영의 힘을 나타내도록 하는 수단으로 쓰여지도록 가꾸어져 있어야 한다. 지고(至高) 지대(至大)의 전설적 이상(理想)에 파장(波長)을 맞추어 말하는 것이, 제대로 힘을 나타내는 말이 될 것이며, 이렇게 완전한 것으로 된 말을 사용하였을 때 진정 있을 수 없는 것이, 정말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상념을 이해하는 방법을 설명하자면, 의식이라는 것은 산에 가깝고 닮은 점이 많은 의식일수록 안에서 생겨 나오는 힘은 큰 것이 되어 나오게 된다. 인간은 말을 창조하였으므로 말의 선택주이며 말의 주권자이다. 실현하여 보고싶은 사물의 모양을 확실하게 념(念)하는 것이, 창조를 가능케 하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며 현상(現像)을 나타내게 하는 것이다.

  

지고(至高) 지대(至大)의 높은 이상(理想)으로 신(神)의 파장(波長)에 맞추는 말을 예(例)로 들자면,

 

신(神)은 생명이므로, 나 역시 생명이다.

신(神)은 지혜이므로, 나 역시 지혜이다.

신(神)은 힘이므로, 나 역시 힘이다.

신(神)은 본질 그것이므로, 나는 그의 복사물이다.

신(神)은 대영(大靈)이므로, 나 역시 영이다.

신(神)은 유일(唯一)심이므로, 나 역시 유일심 이다.

신(神)은 창조주이므로, 나 역시 창조주이다.

신(神)은 전일전체이므로, 나 역시 전일전체이다.

신(神)은 완전한 것이므로, 나 역시 완전하다.

신(神)은 선(善)하므로, 나 역시 선하다.

신(神)은 조물주이므로, 나 역시 조물주이다.

신(神)은 지배자이므로, 나 역시 지배자이다.

신(神)은 권능자이므로, 나 역시 권능자이다.

신(神)은 전지전능하므로, 나 역시 전지전능하다.

신(神)은 진리이므로, 나 역시 진리이다.

 

무엇이든지 신(神)에게 접근할 수 있는 것. 신(神)이 하는 것은 모두 모방하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성취(成就)하겠다는 생각을 어느 때이고 의식 속에 넣어 정착(定着)하도록 해야한다. 신의 전체 것이, 자신의 모든 의식으로 되어 상념으로 내 보낼 수 있고, 또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 원동(源動)에너지로서 움직이며 활용할 수 있도록, 의식구조(意識構造)가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10. 최면(催眠)적 에너지

설명을 좀더 세분하여 자세히 말한다면, 병이 들었다거나 불행하여진다거나 죄(罪)를 받았다는 등의 말을 듣고 공포심을 가지게 되면, 최면(催眠)적 에너지가 급속히 증가하게되는데 그런 에너지의 영향을 더 받게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또 무지(無智) 때문에 막연한 상태에서 말하는 경우, 사람들의 마음을 최면상태로 떨어뜨리는 힘은 있어도, 창조인에서 내려온 자체를 바꿔놓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우주 속에 흘러 내려오고 있는 구극(究極)의 선(線)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어느 세계 어느 곳에도 없으며, 대항하는 힘이 있는 것같이 보이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가재(假在)일 뿐이며, 이 마음은 간혹 신의 뜻에 배반하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말한 것이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무효라는 증거는 없다. 말의 뒤에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믿고 보는 것이다.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기다리는 방법은,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며 감사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결과에 대한 의심스러운 생각에서 완전히 마음을 벗어나도록 할 수 있고, 의심하면 의심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반영(反映)되어 나온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또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면 의심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으나, 감사하고 있으면 그러한 기분이 되어가고 결과는 말대로 나타나서 확신(確信)을 더하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실상의 세계에서 이미 실현되었음을 깨닫고, 그것에 감사함으로서 결과를 얻어내고 큰 조화의 세계를 알게되어 들어갈 수 있다.

 


11. 실상(實像)의 세계(世界)

지금까지 없었든 것을 나타내어(現像) 보이는 것이 아니고, 실상의 세계 안에서는 처음부터 있었든 것을 지금에 와서야 처음으로 실재하게 하는 것일 뿐이며, 마음의 눈을 뜨게 하여 보이도록 한 것이며 또는 섭취(攝取)하여 받아보게 된 것이다.

 

영의 세계에서는 이미 완결하였든 것을 드디어 실존하게 하므로 써, ‘나(我)의 것이 되었다’하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여 간다면,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으며 그 사람의 힘은 아주 강해지고 날로 신에게로 가까워져 가는 것이다. 완전한 것을 구(救)한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완전한 것이다’하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야 한다.

 


12. 건강과 병은 상대적 망상(妄想)

건강과 병은 서로 상반하는 것이니 서로의 관계가 전혀 없으며, 절대적으로 처음부터 완전한 것만이 실존하여 왔다. 왜냐 인간 자신이 허구(虛構)에서 만들어진 미상(迷想)이기 때문이다. 건강이란 자기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상대적 관념에서 오는 것이다. 실재(實在)에는 상대적인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완전무결(完全無缺)한 것이며 모든 것이 완성완료(完成完了)된 것이다. 진정한 치료사(治療師)는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실재를 보는 것이고, 환자가 무슨 병이라고 말하거나 미망(迷妄)에 빠져있는 것을   어떤 조치를 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는다.

 

상대적인 것이 되는 병(炳) 불행 슬픔 어두움 일들을 생각하지 않으며, 오직 그 사람의 건강 행복 기쁨 좋은 일 등을 연상하면서 좋은 징조가 나타나도록 힘을 다하는 것이 옳다. 완전한 것만을 생각하는 습관이 생기면 엄연(嚴然)하게 완전한 것들만이 나타난다. 완전한 것 안에 들어갔을 때, 우리들의 의식 또한 완전한 것이 된다. 말은 최면술이 아니며 참조행위의 모든 본질의 핵심이 된다는 것을 앞에서 설명하였으므로, 병든 그런 사람들에게 이미 실존하여있는 완전한 실상을 불어서, 그 사람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완전한 곳으로 인도(引導)하여 그 사람들이 그렇다고 인정하도록 말해주는 것이다. 약품이라는 것은 환자의 마음을 확대시켜 우주의 창조적 권능을 인정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렇게 했을 때 신(神)은 의사 또는 환자의 약속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진리의 말은 치료약이다. 최고의 이념이야말로 신의 원리 속에 있는 힘을 가장 많이 응용하는 것이다. 왜냐 용기(容器)가 큰 것이면 수용(收容) 또한 많이 할 것이다.

 


13. 상념(想念)의 힘

원격치료(遠隔治療) 같이 먼 곳에 있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상념(想念)으로 행하는 것이다. 상념의 힘은 이와 같이 대단한 것이며 말보다 빠르고 강력하다. 말은 목적지에 도달하는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상념은 시간과 공간이 필요 없다. 태양(太陽)까지이거나 지구의 중심이거나 어떤 곳이라도 우리들의 상념은 순간적으로 그 곳에 이르게 되는데, 앞에서 설명한바 있는 이유로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상념이 시간과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고 상념의 순간에 이미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성스러운 우주주인 안에서, 영계(靈界)의 속성으로서 이미 그 곳에 실재하고있는 사실에, 우리들 인간이 놀라고 위대함에 감복(感服)할 따름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았다는 것은, 소아(小兒) 자신의 본성(本姓)이 높아진 것이며 이런 것들을 신아(神我)의 여러 면을 설명하는 것이다. 자신의 실상(魂)이 높아져 그런 것들에서 얻어내는 감수력(感受力)도 높아진다면, 선(善)에 속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로 모이게 되는 것이다.

 

“당신들이 나의 말속에서 살고 있으며, 또한 나의 말이 당신들 속에 살고 있다면, 내가 당신들 속에 있는 것과 같이 당신들은 나 속에 있다”

 

이 말은 신의 속성을 잘 표현한 것이며 지금까지 거듭 되풀이하여 설명하여온 진리를 잘 표현하였다.

 


14. 심령과학(心靈科學)

요즈음 세상에서 많은 물의(物議)를 일으키고 있는 심령과학(心靈科學)의 심령감각 또는 심령현상이란 것은, 아주 낮은 저급의식에 있는 신들을 이용하여 신의 세계를 엿보고자하는 흥미 호기심만을 앞세우고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인데, 깨달음이 없어 자신의 본성을 찾지 않고 유계(幽界)에서 방황(彷徨)하는 미완성 영들에 의해 놀아나, 모처럼의 생애를 바쳤는데도 진정한 자기의식을 못 찾아 죽어서도 미완성 분류(分類)에 들어가는 과오(過誤)를 범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루빨리 자아(自我)를 찾아 신아(神我)가 되는 길로 돌아오도록 인도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함께 전일전체가 되는 의식에 접근하도록 해야한다.

 

영시(靈視) 영청(靈聽) 기타 의식오관 중에, 어느 것을 거쳐 어떤 상대적 현상이 나온다하여도 이것은 전체에 들어올 수 없으며, 또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에 가령 우리들의 전체가 도와준다고 하여도 소극(消極)인 것과 위선(僞善)이란 것을 없앨 도리가 없으므로 그런 사람들이 자각(自覺)하여 나와주어야 한다. 하루속히 전일의식을 찾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 된다. 전일의식(全一意識)에는 영매(靈媒)나 최면(催眠) 항령(降靈) 기타 등의 현상은 없으며, 이와 같은 행위는 진정한 실상의 세계에 해(害)로 운 것들이다. 모든 감각은 하나에 이르고 전 세포 또한 하나에 이른다.

 

감각(感覺)과 세포(細胞)는 조화를 이루어 가면서 파동을 내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한곳에 틀린 다른 파동이 부착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부조화를 가져오는 꼴이 생기는 것이다. 건전한 의식이란 전체가 조화를 이루고 건전하게 움직이고 활동하여야 한다는 것은 필수(必須)적이다.

 

   

15. 부정법(否定法)

 

병이나 나쁜 일 죄 받은 것 괴로운 것 불안전한 일들이 생겼을 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부정법(否定法)을 써서 소정의 효과가 나올 수만 있다면 과연 다행한 것이나,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배후(背後)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조사하여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일단 부정하는 상태에 집중하였을 때, 더욱 더 그러한 상태를 강조하는 것이 되어 상태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그 점에 유의하여 일을 잘 처리해야한다.

 

마음은 그 성질상으로 마음이 가는 곳에 더 확대되어 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급적 부정의 상태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반대가 되는 정상적인 상황을 생각하면서 밀고 나가는 것이 좋은 것이다.

 


16. 유전(遺傳)의 법칙

 

실 제에 있어서 유전(遺傳)의 법칙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가상(假像)에 불과한 것이며 실재하지 않는 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부정법(否定法)은 보통 부정하는 상태(완전한 것의 반대)가 거꾸로(逆) 더 강하게 당사자에게 접근하는 꼴을 말하는 것이니, 부정에 개의(介意)하지 않고 정상인 완전함을 완전무결하게 실현하려고 노력하는데서 빠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눈앞에 보이는 상태가 부정의 것이라도, 또 어떠한 것이 되어 보인다 할지라도 실재에 있어서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17. 유전(遺傳)

가족의 유전(遺傳)이나 인종의 유전은 없으며, 유전은 상념의 영향을 받는 것이므로 진화과정의 경험과 환경에서 닮은 염색체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되나, 상념을 거꾸로 움직여서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주 좋은 대안이다.

 

외형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마음의 상태에서 오는 것이다. 한 집단(集團)내의 외형이 닮은 것은, 개개의 마음과 감정이 경험을 같이 쌓아가면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例)로서 남녀(男女)가 서로 같은 감정으로 공감을 가지고 몇 년 동안같이 살아오면서 시간을 보내면, 그 모습이 조금씩 닮아가게 된다. 이것은 같은 정신상태가 계속하여 재생을 하기 때문이다.

 


18. 영적(靈的) 깨달음

 

영적(靈的)으로 깨달음을 이루면, 가루마의 법칙이나 가루마의 상태라든가 여타(餘他)에서 오는, 불안전한 상태 같은 것은 문제를 삼을 필요가 없다. 수학의 법칙을 알고 있다면 수학에서 틀린 것이 없다. 일단(一旦) 법칙을 알고 그대로 따른다면, 틀린 결과 같은 것은 나올 수가 없다. 식물에서 유전이 나올 수는 있다. 그 식물의 주위(周圍) 사람들 생각으로 식물의 유전을 교정(矯正)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전부가 불변(不變)하고 부동(不同)하며, 신(神)의 유산(遺産)을 받고 있다는 생각,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유전에 대한 효과적인 부정이다. 허망(虛妄)한 것들의 사고(思考)에서 완전히 배제하여 버리는 것이다. 일절(一切)을 창조하신 기원(起源)은, 우주주인에게 있으며 그 본성을 가지고 나온 인간과 기원의 사이에, 어떤 틀린 상념을 개재(介在)시킨 것이 아니며 어떤 유전계통이란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언제나 상념의 결정요인이 되는 것들은, 자신(인간)의 뿌리가 되시는 우주주인에게 돌아가서 회수(回收)되는 것이며, 이미 실재하고 있는 완전함을 이어 받는 것이 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19. 죄(罪)의 역전(逆轉)

 

죄 (罪)를 받는 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긴 세월을 내려오는 도중의 과정에서 생긴 일들이다. 죄가 유전이 된다는 것은 잘못 알고있는 것이며, 죄라는 것이 본성을 뒤집어 바꾸어 놓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죄 자체가 역전(逆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이다. 틀린 사실에 대하여 바로잡아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면 되는 것이다.

 

마음의 법칙은 가존재(假存在)가 된다. 우주 속에 있는 모든 지배 법칙이 이것을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마음의 법칙은 틀린 것이기 때문에 유전법칙이란 것이 인간의 상념에 생긴 가현상(假現像)이므로, 이것은 어느 때인가 벗어 던져 없앨 수가 있는 것이다.

 


20. 최면(催眠)

최면(催眠)상태에는, 의식의 제한상태(制限狀態) 또 하나는 틀린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 등 두 가지가 있다.

 

의식의 제한된 상태란, 능력의 한계를 생각하게되고 자기는 이 정도 이상은 도저히 바라볼 수 없다, 또 되지 않는다 등의 생각으로 스스로 제한이 오도록 부분적 최면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은 어떤 구속(拘束)이나 제한을 받는 일이 없는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틀린 의식을 가진 상태란, 아주 틀린 것을 진실인 것으로 믿으면서 진실이 아닌 사실들을 진실로 굳게 믿고 나가는 가짜 진실 신봉자(信奉者)들이다. 이것은 실재에 대하여 너무나 무지(無知)한 결과로 일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주 틀린 것들을 우연한 동기에서 알고 난 후에, 그러한 것에 깊이 인상을 받아 조립되어 가버린 정신상태이다. 이러한 자는 빠른 시일에 바로잡는 것이 매우 어려운 처지가 된 사람들이다.

 

지구는 처음부터 구(球)로서 공같이 생긴 것이었으나, AD 1250년대(年代)까지의 사람들은 지구를 평면이라고 진실인양 믿고있었든 사실과, 똑 같은 예가 되겠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실제에 있어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여야한다. 지구에는 끝이 없고, 초인(超人)에게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끝이 없는 평면(平面)의 지구가 망상인 것처럼, 시간과 공간이란 것이 망상이 되어버린 것을 일깨워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제한된 것이 있다면 ‘뒤로 물러가거라’ 선언하고 보면 실지로 ‘제한이란 것이 없구나!’하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21. 수면(睡眠) 세계(世界)

수면(睡眠)의 세계는 의식이 충만(充滿)되어 활발히 활동하는 것이다. 의식의 속성에서, 외적의 것들(현재의식)은 대기상태가 되어 알고있는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으로 되어있으며, 내적의식(잠재의식)은 활발하게 움직이며 우리들의 육체가 도저히 하지 못하는 일들을, 수면 중에는 얼마든지 척척해내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들의 의식은, 수면 중에 자기 자신이 모르고 느끼지 못한 것을 모두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외적의식에서는 자각(自覺)을 못하게 된다. 이와 같은 수면 중에 있는 각성상태(覺醒狀態)와 같은 자각이 있어 주어야하나, 육신을 가진 인간이 알므로 서 오는 혼란(混亂)을 염두에 두고 계산하신 신(神)의 경륜(徑輪)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인간에게 자각을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진화를 위하여 수면동안에 완전의식을 주어 활동하도록 해 준 것이다.

 

꿈은 아주 저급에서 오는 영시(靈視)효과이며, 높은 의식 속에서 꾸는 꿈을 정몽(正夢)이라고 한다. 자신의 영적 실재 같은 것을 꿈에 볼 수가 있었다면, 자신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까?’하는 것을, 꿈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자문하여보면서 생각하는 것은 신지학도 여러분의 공부에 좋은 연구방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인간은 태초(太初)부터 모든 것에 대한 힘과 지배권이 주어져 있었으며 자유스럽고 전능한 존재였다. 이것을 한정(限定)하여 버린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의식이다. 그러므로 의식을 해방하는 것은 인간해방이 되는 것이다. 신지학도 여러분이 목표로 하고있는 것은, 해탈(解脫)일 것이며 그것은 의식에 있음을 알아야하고 기적이란 것은 자신의 힘에 의하여 찾아야 된다는 원칙을 알아야한다.

 

지금까지 설명을 거듭해온 신(神) 전체(全體) 하나(唯一) 의식(意識) 상념(想念) 등 많은 것들은, 온통 신(神)으로 메어져있었고 되풀이 또 거듭하여 설명하였으므로, 의식구조에서 변화가 생겨났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직 신의 정체(正體)를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바르게 알지 못한 학도가 있다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먼 것이니 몇 번이고 더 읽고 의문(疑問)을 스스로 풀어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거듭 설명한다면 신은 전체 즉 하나의 속성으로 온 세상(우주)에 실재하신다. 점령(占領)하고 있다고 표현해야 옳을까?

 

이것이 바로 우주주인(로고스)의 실상(實相)이고 모습이다. 사람은 신을 반드시 조상(彫像)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미신(迷信)을 가지고 있다. 인간 자신이 바로 신의 유형이 되고 앞에서 설명한 우주의 넓은 모든 곳(조직)에 자리잡고 계시며, 편재(遍在)하시는 우주주인과 신지학도 여러분이 개인의 안에 계시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며, 그 속의 한 부분이고 우주의 하나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전체 속에 있는 본성을 가지고 나와있는 본성(本姓) 그것이며, 또한 전체본질 바로 그것이다. 거듭하여 신은 인간의 육체 안에 혼체(魂體)로 계시며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진리의 빛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어떤 사람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정직한 말(言語)을 하나만 골라 말하라면, 신지학도 여러분은 주저 없이 “나(我)는 신(神)이다”라고 해야, 가장 훌륭한 답이 될 것이다. 지금 이렇게 설명한 것은 신지학도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명백한 사실을 확인시키려고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몸 속에 신이 실재하고 계신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끝끝내 진정한 신을 알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진정한 진리를 알 수도 없을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존재의 비의(秘儀)를 알아야하는 것이 모든 것을 아는 첫걸음이 된다. 원래 인간은 육체기관으로 된 것이 아니고, 유체기관을 통하여 살고있는 그 안에 있는 자신이다. 신아(神我)임을 자신이 알게 되는 것은, 인간이 안에 있는 것으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며, 우주주인을 도와 일하는 사람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즉 창조의 일 안에 하는 것이다. 신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합한 총합계이며, 가령 우주에서 신을 뽑아버린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우주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무한자(無限者)가 되시는 신의 모습에는 모든 시간과 공간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시간과 공간이 망상이라 하는 이치가 되는 것이다. 그러함으로 우주주인께서 인간을, 신(神) 자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실 때에 최선을 다하였을 것이며, 자신의 가능한 전 범위를 넣어 만들어낸 것이 확실한 것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의 상념이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게되고 그것을 불가결(不可缺)한 것으로 한 이상, 인간은 신의 모습 속에서 살고있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신의 본질에서 창조된 것이다. 원인(原因)이 신(神)이었다면, 결과에 있어서도 신의 표현(子)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음이 없는 상념이나 상념이 없는 마음은 또한 있을 수가 없으며, 마음에 앞서 의식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부언(附言)하여둔다.

 

그러므로 우리들 인간의 생각은 언제나 살아있는 것이다. 사람의 육신이 죽었어도 생각은 살아남으며, 즉 마음은 생명이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신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또 말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안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에 각별한 조심성이 필요하게 된다. 그 자리에서 현실로 나타날 정도의 힘과 능력이 생겼을 때, 말하는 것에 대한 결과에 책임이 따르게 되는 것이니 조심성이 생활화되어 있어야 한다. 모든 조건(되돌아가는 길)이 갖추어졌을 때, 인간은 원래의 왔든 길을 따라 돌아가는 것이며 가지고 있든 육체는 버리는 것이 된다

 


22. 육신과 생각의 관리(管理)

사람이 육신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생각을 잘못하여 길을 잘못 들어가 욕심꾸러기가 되고, 이기심에 사로잡혀 부조화를 생기게 하며 병이나 죄를 받아 많은 불행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일반적으로 건강 면에서 많은 비중(比重)으로 나타나는 것이 통례(通例)이다. 그러나 우주의 원리인 신의 실상을 찾아 완전한 것이 지배하는 통일된 모습을 찾아내었을 때, 객관적 입장으로 된 본질을 떠나 외부에서의 작용이 원인으로 발생한 여러 가지 일들 이였으므로, 그것에서 벗어날 수가 있으며 몸 안에 있는 자신의 한 줄기 빛은, 전체의 빛 안에 하나로 되어 자신의 의지를 찾아 빛은 광택을 더하고, 더욱 빛나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에 들어서게 된다면, 인간과 신은 일체이므로 기본 진리 그대로 육체에 조화가 찾아들고, 병(炳) 같은 것은 치료 없이 정상으로 건강을 회복하게되며 모든 일들이 잘 되어 가는 것이다. 육체의 본성은 신의 빛이고 육체 안에 신이 살아 계시는 궁전(宮殿)이 되는 것이다. 육체 안의 빛은 태초(太初)에 우주만상(宇宙萬象)을 만들어낸 근원(根源)의 빛 그것이다. 그 빛의 모습을 못 가진다면, 그것은 자신을 대표하고있는 마음의 탓이다. 신의 궁전이 되어 있어야할 육체가 미완성(未完成) 영(靈)들이 찾아들어 도적(不調和)의 소굴이 되어 있다면, 원래의 신은 류(留) 할 곳을 잃은 꼴이 되었으니 어떤 결과가 자신에게 오겠는가?

 

진정한 천국이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며, 그것은 자신 속에 천국이 존재하는 것이며 인간이 자신을 알아야 무엇이든지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의 시초(始初)가 되는 삼위일체(三位一體) 그것이며, 로고스의 세계가 일체가 된 완전한 단일체(單一體) 즉 전체(全體) 그것이다. 인간은 신과 똑 같은 모양을 한 자기의식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누구라도 가능한 일이다.

 

옛날에는 ‘왕은 신이 내려보낸 사람이다’하는 사상이 있었는데, 이것은 인간이 신의 모양이 될 수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진정 자기가 신성한 지배자가 되는 것은 왕에 한(限)한 것이 아니고, 전 인류 모두가 신성(神聖)한 지배자이며 왕이어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왕은 늘 사랑과 봉사를 하는 것이며, 왕 자신은 누구보다도 높다고 생각할 수 없으며 자기 본위로 생각하는 이기적 마음은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이므로, 자기 본위의 것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현상(現像)으로 나와있는 인간들은 각기 서로 다른 육체와 각기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그 안에 있는 실상(實相)은 모두 신(神) 그것으로 하나의 이름 즉 “나는 신이다”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혼(魂)을 통하여 나오는 신의 마음을 알게되어야 한다. 이 점을 유의(留意)하여 공부하면 대각(大覺)의 길을 찾아내어 얻을 것이다. 구체(球體)의 둘레, 원주(圓周)의 중심이 잘 구별되지 않는 것처럼 육체를 자신이라 믿는 것과, 육체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자신이 잘 구별되지 않아 부조화가 많이 생기는 원인이 된다. 신과 인간은 구분할 수 없고 구별되지 않는 하나 그것이다. 둘을 어떤 종류로 분류하여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하나이고 일체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사람의 육신 안에 있는 인간이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하여보자. 안과 밖이 합하여졌으나 마음은 안의 신 그것이니 선(善)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으나, 욕심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고 분열이 없을 것이니 그것은 바로 완전의식이며, 전체가 아니겠는가? 이것은 우주주인이 바라는 것, 바로 전일(全一) 성도(成道)  초인(超人)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