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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신과 나눈 이야기 2 (7) 본문

영성수행 비전/신과 나눈이야기

신과 나눈 이야기 2 (7)

柏道 2018. 2. 7. 12:10


신과 나눈 이야기 2 (7)


네가 두려워하는 게 뭔지 살펴보아라.

 

모두들 방에서 나가버릴까봐 겁납니다. 아무도 더 이상 저를 좋아하지 않을까봐서요.

 

알겠다. 너는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구나?

 

정확하게 말하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죠. 그냥 그들에게 몽땅 다 말하지는 않는 거죠.

 

내가 전에 말했던 것을 기억하라. 이것은 모든 사소한 감정과 생각과 발상과 두려움과 기억과 고백 따위를 뱉아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그냥 언제나 진리를 말하고, 너희 자신을 완벽하게 드러내라는 이야기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 너희의 신체를 발가벗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왜 감정은 발가벗을 수 없는가?

 

뒤의 것이 앞의 것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권하는 걸 그만두지는 않겠다. 그만큼 그 대가가 엄청나기에.

 

확실히 당신은 재미있는 발상들을 내놓으셨습니다. 숨겨진 과정이 없게 하라. 투명성에 근거한 사회를 세워라. 누구에게나 모든 걸 항상 진실대로 말하라. 후유!

 

이 몇 안되는 개념에 사회 전체를 근거하여 세워왔다. 계몽된 사회들은.

 

저는 그런 사회를 본 적이 없는데요.

 

나는 너희 행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아하.

 

그렇다고 너희 태양계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같은 신사상체계가 어떤 건지 체험하려고 너희 행성을 떠날 필요는 없다. 아니 너희는 너희 집조차 떠날 필요가 없다. 자기 가정, 자기 집에서 시작하라. 사업체를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회사에서 시작하라. 그 기업의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얼마나 버는지, 자기 기업이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고 있는지, 그리고 직원들 개개인과 그들 전체가 얼마나 버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해줘라. 그들은 충격을 받아 그 지옥에서 벗어날 것이다. 나는 정말 글자 그대로 말하고 있다. 너희는 당장 그 지옥에서 벗어나게 만들 충격을 그들에게 줄 것이다. 만일 사업체를 지닌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한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노동을 살아 있는 지옥으로 느끼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공평함과 정당함, 적절한 보수에 대한 보다 나은 감각이 자연스럽게 그 일터를 지배할 것이기에.

고객들에게 너희가 제공하는 생산품이나 서비스가 얼마만큼의 비용이 드는지 정확하게 알려줘라. 생산비와 가격, 두 가지 금액을 가격표에 함께 적어넣어라. 그렇게 해도 너희는 자신이 요구하는 금액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가? 아니면 고객들이 너희의 생산비 대 가격 비율을 안다면, 너희가 자기들 것을 훔쳐가고있다고 생각할까봐 두려운가? 만일 그렇다면, “챙길 수 있을 때 최대한 챙겨라대신에, 정당성의 기초 영역 속에서 가격을 다시 책정하기 위해, 어떤 식의 조정을 하고 싶은지 자세히 검토해보라.

나는 감히 너희더러 이렇게 해볼 테면 해보라고 말한다. 나는 감히 너희에게 도전한다.

그렇게 하자면 너희 사고방식이 완전히 바뀌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자신을 배려하는 것과 똑같이 너희 고객이나 손님들을 배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너희는 바로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오늘 당장부터, 새로운 사회건설을 시작할 수 있다. 선택은 너희 것이다. 낡은 체제인 지금의 패러다임을 계속 지지할 수도 있고, 표지판을 새로 세워 세상에 새로운 길을 보여줄 수도 있다.

너희 자신이 그런 새로운 길일 수 있다. 모든 것에서, 단지 사업만이 아니고, 단지 너희의 개인 관계들만이 아니고, 단지 정치나 경제나 종교나 전반적인 인생체험의 이런 저런 측면들만이 아니고, 모든 것에서.

새로운 길이 되라. 더 고귀한 길이 되라. 가장 위대한 길이 되라. 그러면 너희는 진실로, 나는 길이요 생명이니, 나를 다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온세상이 너희를 따르고서야, 비로소 기뻐하며 그 길을 받아들이려느냐?

이것을 오늘 너희의 물음으로 삼아라.

 

17

 

저는 당신의 도전을 접수하겠습니다. 그것을 접수할 테니, 제게 이 행성에서의 사회적 삶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주십시오. 어떻게 해야 국가들이 사이좋게 살게 될지, 그래서 더 이상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지 말해주십시오.

 

국가들 사이의 불화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불화란 건 단순히 개성을 드러내는 표식, 바람직한 표식일 뿐이니. 하지만 불화를 폭력으로 해결하는 건 엄청난 미숙성을 드러내는 표식에 지나지 않는다.

폭력적인 해결을 피하려는 국가들의 의지만 있다면, 폭력적인 해결을 피하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 엄청난 사망자와 부상자 명단만으로도 충분히 그런 의지가 생기리라고 생각할 테지만, 너희 같은 미개 문화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자신이 논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너희는 논쟁을 벌일 것이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너희는 전쟁을 벌일 것이다.

 

이 모든 걸 해결할 방법은 무엇입니까?

 

나는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단지-

 

압니다 알아요! 관찰하실 뿐이라는 거죠.

 

그렇다. 나는 전에 관찰했던 것을 지금 관찰하고 있다. 단기간의 해결책은 논쟁을 해결할 국제재판소(지금의 상설 국제 사법 재판소’World Court가 이따금 그런 것처럼 그 판결이 무시되지 않는 재판소)와 아무리 힘세고 영향력 있는 국가라도 다시는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해줄 세계 평화유지군을 보유하는 정부, 몇몇 사람들이 세계 단일정부라고 불렀던 그런 정부를 수립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게 해도 지구에는 여전히 폭력이 존재할 것이니, 누군가가 폭력을 행사하는 걸 중단시키기 위해 평화유지군이 폭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 1권에서 지적했다시피, 독재자임을 그만두게 하지 못하면 독재자에게 권능을 주게 되고, 때로는 전쟁을 치르는 것이 전쟁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너희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계속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원하지 않는 그 일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이 명백한 모순은 신성한 이분법의 일부이다. ‘신성한 이분법은 궁극적으로 어떤 것-이 경우에는 평화로워지는 것”-이 되자면 먼저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때로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자신 아닌 존재로 자신을 체험하는 것이 종종 자신을 자신으로 아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너희 세상의 권력이 더 이상 개별 국가들의 재량에 좌우되지 않고, 이 행성에 존재하는 국가 집단 전체의 수중으로 모아져야 한다는 건 누구나 관찰할 수 있는 진실이다. 오직 이런 방식으로만 세상은 마침내 평화로울 수 있고, 어떤 독재자의 개별국가가 아무리 크고 힘세다 해도, 다시는 다른 나라의 영토를 침범하거나 다른 나라의 자유를 위협하지 못하며, 또 그러지 않으리라는 확신 속에서 세상은 마침내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다.

약소국들도 더 이상 강대국들의 호의에 의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니, 자국의 자원을 헐값으로 팔고, 자국의 노른자위 땅을 외국군대의 기지로 제공해야 하는 일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새로운 체계 하에서 약소국들의 안전은 그들이 등을 긁어주는 강대국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등을 밀어주는 국가들에 의해서 보장될 것이다.

한 나라가 침략당하면, 160개국 전체가 들고 일어날 것이다. 한 나라가 어떤 식으로든 침해당하거나 위협당하면, 160개국 전체가 안돼!라고 말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가들은 더 이상 경제적으로 위협당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보다 더 큰 무역상대국의 공갈을 받아 특정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또 특정 기준들을 충족시켜야 외국원조를 받을 수 있는 상황도 더 이상 없을 것이며, 특정한 방식으로 연기해내야 알량한 박애주의 지원이나마 얻을 수 있는 상황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너희 중에 그같은 국제 제도는 개별 국가들의 독립성과 위대성을 좀먹는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오히려 그것들을 더 키워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법이나 정의가 아니라, 힘으로 자신의 우위를 확보한 강대국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 때에 가서는 강대국들만이 자동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고, 그 때에 가서는 모든 국가들의 견해가 똑같이 존중될 것이기에. 그리고 강대국들은 더 이상 세계 자원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매점매석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강대국들은 좀 더 평등하게 자원을 나누고, 좀 더 쉽게 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하며, 전세계 국민들이 그 혜택을 좀 더 균일하게 누리게 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세계정부는 놀이터를 평평히 고르는 일을 할 것이다. 인간의 기본 존엄에 관한 논쟁의 핵심으로 몰아갈 이 발상은 세상의 가진 자들에게는 저주일 것이다. 남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 무시한채. “없는 사람들이 나름의 운을 찾아가기를 원하는 가진 자들에게는.

 

그런데 지금 말씀하시는 건 부의 재분배에 관한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더 많이 갖길 원하고, 또 그러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들의 동기incentive는 어떻게 유지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그다지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과 나눠가져야 한다는 걸 알 때 말입니다.

 

첫째로, 그것은 단순히 누구는 열심히 일하려하고, 누구는 그러지 않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그 논쟁을 제기하는 가장 유치한 방식이다(그 문제를 이런 식으로 짜는 건 주로 가진 자들이다). 그것은 의지의 문제라기 보다는 대체로 기회의 문제이다. 그래서 사회질서를 재건하려면 개개 국민과 개개 국가들에 대한 동등한 기회 보장을 진짜 일거리이자 첫 번째 일거리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현재 전세계 부와 자원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사람들이 그런 식의 지배방식을 붙잡고 늘어지는 한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제가 멕시코 이야기를 한 겁니다. “국가 깔아뭉개기에 뛰어들고 싶지는 않지만, 제 보기엔 이 나라가 그 면에서 훌륭한 보기가 되는 것 같거든요. 한줌밖에 안되는 부유하고 권력 있는 가문들이 나라 전체의 부와 자원을 지배하고 있죠. 40년 동안이나요. 이 나라에서는 소위 말하는 서구민주주의 선거란 건 어릿광대 놀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수십년 동안 예의 그 가문들이 예의 그 정당을 지배하면서, 사실상 어떤 의미 있는 야당도 존립할 수 없게 해왔으니까요. 결과는 어떤 줄 아십니까?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빈자는 더 가난해지는겁니다.

행여 시간당 임금을 터무니없이 1.75불에서 3.15불로 올려달라는 요구라도 할라치면 부자들은 자신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업과 기회를 제공하여 경제성장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해왔는지 내세우죠. 하지만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건 부자들뿐입니다. 저임금에서 얻는 엄청난 이윤을 남기면서 자기네 상품을 국내와 세계 시장에 파는 산업자본가들과 기업체 소유자들 말입니다.

미국의 부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죠. 이 때문에 미국의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 중 다수가 자신들의 공장과 작업장을 멕시코나, 노예임금이 농민에게 무슨 굉장한 기회라도 되는 듯이 여기는 다른 해외국가들로 옮기는 겁니다. 똑같이 이런 투기사업들로 이윤을 거둬들이는 소수의 부자들이 지배하는 그곳 정부들은 노동자들이 해롭고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고생스럽게 일해도 규제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나라의 공장들에는 유해기준이나 안전기준, 환경 보호 기준 같은 건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고요.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건 사람만이 아닙니다.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개천 옆 판잣집에서 살면서, 그 개천에서 빨래도 하고 종종 용변까지 함께 해결합니다. 실내 상하수도 시설 역시 아직 그들의 기본권이 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대중에 대한 이런 식의 지독한 무시 때문에 자신들이 생산하는 바로 그 물품을 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양산되는 겁니다. 하지만 부유한 공장 소유주들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살 여유가 있는 다른 나라에 수출하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 악순환이 파괴적인 결과를 휘두르며 도로 자신들 머리 위로 떨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멕시코만이 아니라 국민들이 착취당하는 모든 곳에서요.

 

국가 간의 전쟁이 그러하듯이 혁명과 내전도 불가피하다. “가진 자들이 기회를 제공한다는 구실로 계속해서 못가진 자들을 착취하려고 하는 한.

 

부와 자원들을 틀어쥐는 게 워낙 제도화되다 보니, 어느 정도 공정한 정신의 소유자들조차 이젠 별 무리없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히 시장경제의 일환으로 보는 거죠.

 

그럼에도 세상의 부유한 개인들과 국가들이 장악한 권력이 있기에, 그같은 공평함의 환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진실은, 세상의 대다수 국민과 국가들에게는 그것이 전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강자(强者)들이 이뤄낸 것을 이뤄보려는 시도조차 제지당하는 국민과 국가들에게는.

내가 위에서 묘사한 통치제도는 힘의 균형을 자원 많은 자resource-rich에게서 자원 없는 자resource-poor에게로 급격히 변화시켜, 자원 자체가 공정하게 분배되게 할 것이다.

 

그건 정말 끔찍한 공포겠군요.

 

그렇다. 그러기에 새로운 사회구조, 새로운 세계정부가 세상의 그같은 불평등 조장에 대한 단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같은 새로운 세계질서의 시작을 제안할 만큼 충분히 통찰력 있고 충분히 용감한 지도자들이 너희 중에 있어 왔다. 너희의 조지 부시가 그런 지도자였다. 앞으로의 역사는 그를 동시대 사회가 인정하려 했거나 인정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지혜와 전망과 동정심과 용기를 가진 인물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소련 대통령이었고, 공산주의 국가의 원수로는 처음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엄청난 정치적 변화를 제안하여 소위 냉전이란 대립상태를 사실상 종식시킨 미하일 고르바초프 역시 그런 인물이었다. 또 너희 대통령이었던 카터 역시 그러하다. 그는 그 때까지 아무도 꿈도 꾸지 못했던 평화협정을 너희의 베긴씨(전 이스라엘 수상-옮긴이)와 사다트씨(전 이집트 대통령-옮긴이)가 맺도록 만들었으며, 자신의 재임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누구의 관점이나 다른 사람의 관점과 똑같이 귀 담아들을 가치가 있고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단순히 강조하는 방법으로, 세상을 격렬한 대립상태에서 몇 번이나 떼어낸 바 있다.

나름대로 자신의 시기에 세상을 전쟁의 문턱에서 끌어냈고, 나름대로 당시의 지배적인 정치구조에서 벗어난 대중 운동을 지지하고 제안했던 이같이 용기 있는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오직 단임으로만 임기를 마쳤다는 것, 그들을 등용시켰던 바로 그 국민들이 그들을 공직에서 끌어내렸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국외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인기를 모았던 그들이 자신들의 조국에서는 깨끗하게 거부 당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오직 제한되고 편협한 관심사들만을 보고, 이들의 웅대한 전망에서 단지 손실 결과들밖에 떠올리지 않았던 자국 국민들보다 이런 인물들이 훨씬 앞서 있었다는 데 있다.

감히 걸음을 빨리하여 강자에 의한 억압의 종식을 요구한 다른 모든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용기를 잃고 모욕당해온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리하여 정치적이지 않은 장기적인 해결책이 자리잡을 때까지 그런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장기적인 해결책-유일하게 실제적인 해결책-이란 새로운 자각’, ‘새로운 의식을 말한다. ‘하나라는 자각과 사랑의 의식을.

성공하려는 동기, 삶을 의미 있게 만들려는 동기가 경제적이거나 물질적인 보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점에서 그것의 위치는 잘못 놓여 있다. 이 잘못 놓인 우선순위가 우리가 여기서 논의해온 모든 문제들을 만들어낸 원인이다.

위대해지려는 동기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해도, 다시 말해 경제적 안정과 물질적인 기본 욕구들이 모두에게 보장된다 해도, 그럼에도 동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강인함과 결단력을 키우고, 참된 위대성을 낳는 다른 종류의 동기일 것이다. 지금의 동기들이 만들어내는 식의, 평범하고 일시적인 위대성이 아니라.

 

하지만 더 나은 삶, 우리 자식들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창조하는 것도 훌륭한 동기이지 않습니까?

 

더 나은 삶은 당연한 동기이다. 또 너희 자식들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창조하는 건 훌륭한 동기이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이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는가이다.

너희는 더 낫다는 걸 어떤 식으로 정의하는가? 너희는 이라는 걸 어떤 식으로 정의하는가?

너희가 더 크고 더 좋고 더 많은 돈과 권력과 섹스와 가재도구(, 자동차, , CD소장품 따위들)더 나은것으로 정의하는 한....... 너희가 이번의 출생에서 죽음까지의 기간을 으로 정의하는 한, 너희는 너희 행성의 곤경을 창조해낸 덫에서 벗어날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너희가 너희의 웅장한 존재상태를 더 넓게 체험하고 더 위대하게 표현하는 것을 더 나은것으로 정의하고, “존재의 영원히 계속되고 결코 끝나지 않는 과정으로 정의한다면, 너희는 멀지 않아 너희의 길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더 나은 삶은 물질이 쌓여서 창조되는 게 아니다. 너희 대다수가 이 사실을 알고 있고, 너희 모두가 그걸 알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너희의 삶과 너희가 삶을 끌어가면서 내리는 결정들은 다른 무엇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니 대체로 그것들보다 더 많이 물질과 관련이 있다.

너희는 물질을 얻으려고 애쓰고, 물질을 얻기 위해 일한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얻고 나면, 너희는 절대 그것을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는다.

물질을 이뤄내고, 물질을 확보하고, 물질을 획득하는 것이 대다수 인간들의 동기이다. 반면에 물질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쉽게 놓아버린다.

세상 전체가 이런저런 투쟁단계 속에 있는 건 위대해지려는 너희의 현재 동기가 세상이 제공해야 할 모든 것을 쌓아두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인구의 막대한 부분들은 지금도 여전히 단순한 물질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들의 하루 하루는 걱정스런 순간들, 절망적인 조치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마음은 사활과 관련된 기본적인 의문들에 몰두해 있다. 음식은 충분히 먹을 수 있을까? 잠자리는 얻을 수 있을까? 몸을 녹일 수 있을까?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날마다 이런 문제들에 신경을 쓰고 있고, 식량 부족만으로도 매달 몇천명씩이 죽어간다.

이보다 숫자는 적지만 자신들의 삶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생존 토대들에 조리있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투쟁한다. 어느 정도의 안정, 소박하면서도 품위 있는 가정, 더 나은 내일 같은 것들을 더 많이 마련해 두기 위해. 이들은 열심히 일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출세할지”, 또 과연 그렇게 될지 초조해한다. 이들의 마음은 다급하고 걱정스런 의문들에 빠져 있다.

훨씬 더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들의 요구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사실 앞의 두 집단이 지금 요구하고 있는 모든 것을. 하지만 흥미있는 건 이 마지막 집단에 속한 사람들 다수가 여전히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마음은 그들이 손에 넣은 모든 것을 틀어쥐고 그것을 더 늘리는 데 몰두해 있다.

그런데 이 세 집단에 더해서 네 번째 집단이 있다. 이들은 이 전체 집단들 중에서 그 숫자가 가장 적다. 사실 그 수는 아주 적다.

이 집단은 물질에 대한 욕구에서 벗어나 있다. 이 집단이 몰두하는 건 영적 진실과 영적 실체, 영적 체험이다.

이 집단의 사람들은 삶을 영적인 만남, 영혼의 여행으로 본다. 그들은 이런 문맥 안에서 모든 인간사들에 반응하고, 모든 인간체험을 이 패러다임 안에서 파악한다. 그들의 투쟁은 신을 찾고, 자아를 실현하며, 진리를 표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들이 진화하면, 이 투쟁은 더 이상 투쟁이 아니라 과정process이 된다. 그것은 자기 규정’ (자기발견이 아니라)성장’(배움이 아니라)존재’(행위가 아니라)의 과정이 된다.

구하고, 애쓰고, 찾고, 뻗고, 성공하는 이유가 완전히 달라지고, 어떤 일을 하는 까닭이 변하니, 그와 더불어 그 일을 하는 사람 역시 변한다. 과정이 그 이유가 되니, 행위자는 존재be-er가 된다.

예전에는 평생 구하고, 애쓰고,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세속의 것을 마련하는 데 있었지만, 이제는 그 이유가 하늘의 것을 체험하는 데 있다.

예전에는 주요한 관심이 몸에 대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주요한 관심이 영혼에 대한 것이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모든 것이 변한다. 삶의 목적이 바뀌고, 따라서 삶 자체도 바뀐다.

위대해지려는 동기도 변하니, 그와 더불어 세속의 부를 탐내고 확보하고 지키고 늘리려던 욕구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위대성을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쌓아 두는가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고, 세상 자원들은 세상 모든 사람의 소유임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모두의 기본 욕구를 충족하기에 충분할 만큼 풍요로움으로 축복받은 세계이기에, 그 기본욕구는 당연히 충족될 것이다.

누구나 세상이 그런 식으로 존재하길 원할 것이다. 수확이 적은 사람들을 돕는 정책에 쓰도록 너희 모두가 너희 수확과 풍요의 10%를 자발적으로 내놓을 것이니, 더 이상 누구도 내키지 않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모두에게 식량이 돌아가게 만들 간단한 정치체계를 창조하려는 의지가 부족해서, 몇천명의 사람들이 다른 몇천명의 굶주림을 방관하는 일도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위대해지려는 동기와 위대함에 대한 규정을 바꾸는 날, 지금 미개한 너희 사회에서 일상사가 되고 있는 그같은 도덕적 추잡성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너희의 새로운 동기는 내가 창조했던 대로의 너희가 되는 것, 즉 신성(神性) 자체를 물질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될 것이다.

너희가 참된 자신’, 드러난 신이 되기를 선택할 때, 너희는 두 번 다시 신적이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고, 너희는 더 이상 다음과 같은 스티커를 차에 붙이지 않게 될 것이다.

 

나를 번거롭게

하지 마시오

 

18

 

제가 잘 따라가고 있는지 한번 볼께요. 여기서 부각되는 건 모든 국가들이 하나의 세계정부를 따르고, 모든 국민들이 세상의 부를 함께 나누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계관인 것 같군요.

 

우리가 뜻하는 평등은 평등한 기회이지, 실제적인 평등이 아니라는 걸 잊지 마라.

실제적인 평등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오히려 그 점에 감사해야 한다.

 

왜요?

 

평등이란 동일함이기에.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지 않는 게 이 동일함이다.

그러니 아니다, 나는 여기서 맏형 중앙정부에게서 똑같이 자기 몫을 받는 자동장치 같은 세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건 다음 두 가지가 보장되는 세상이다.

1. 기본 욕구의 충족

2. 더 높이 나아갈 기회

너희 세상의 그 모든 자원을 가지고도, 너희의 그 모든 풍요를 가지고도, 너희는 아직도 이 간단한 두 가지 사항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는커녕 너희는 몇백만명의 사람들을 사회경제 등급의 맨 밑바닥에 옭아매고는, 그들을 체계적으로 그곳에 묶어두는 세계관을 고안해냈다. 너희는 해마다 몇천명씩이 극히 간단한 기본 물자가 부족해서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다.

세상의 장대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죽이는 걸 막는 건 물론이고, 사람들이 굶어죽어 가는 걸 막기에 충분할 만큼 장대해질 방안을 너희는 찾아내지 못했다. 실제로 너희는 아이들이 눈 앞에서 굶어죽어 가도록 내버려두며, 실제로 너희는 너희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죽인다.

너희는 미개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대단히 진보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미개 사회의 첫째 가는 특징이 스스로 진보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미개의 의식의 첫째 가는 특징이 스스로 계몽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 요약해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 두 가지 원칙을 보장하는 사다리의 첫단에 올라서는 방법은.......

 

두 가지 바뀜, 두 가지 변화를 통해서-하나는 너희의 정치적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고, 또 하나는 너희의 영성(靈性)을 바꾸는 것으로.

통일된 세계정부로 나아가는 움직임 중에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국가간 분쟁을 해결할 국제재판소와 너희 자신을 통치하기 위해 선택하는 법률들을 힘있게 해줄 평화유지군이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세계 정부에는 각 국에서 파견된 두명씩의 대표자들로 구성되는 국가 의회와 각국의 인구비례에 따라 선출된 대표자들로 구성되는 국민 대표자 회의도 포함될 것이다.

 

양원으로 이루어진 미국정부의 구성방식과 똑같군요. 비례대표제에 따른 하원과 모든 주()에 동등한 표결권을 주는 상원으로 이루어지는 미국 의회 말입니다.

 

그렇다. 너희 미국 의회는 신의 영감을 받은 것이다.

새로운 세계 의회에도 그와 똑같은 힘의 균형점이 잡혀야 한다.

마찬가지로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가 존재하게 될 것이다.

각 국은 치안유지 경찰은 독자적으로 유지하겠지만, 군대는 모두 해체할 것이다. 너희의 개별 주들이 주 집단 전체에 봉사하는 연방 평화유지군을 두는 대신 각자의 군대와 해군들을 해체했듯이.

그리고 너희 주들이 주 의용군을 구성하고 소집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듯이, 개별 국가들도 언제라도 자신들의 의용군을 구성하고 소집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닐 것이다.

그리고, 너희 주들이 지금 그러하듯이, 국가연방에 속한 그 160개국들도 자국민의 투표로 언제라도 연방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것이다(과거의 어는 때보다 그 국민들이 더 안전하고 더 풍족해지리라는 걸 생각하면, 나로서는 그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지만).

 

그리고 이해가 더딘 사람들을 위해 다시 한번 통일된 세계연방이 가져올 결과들을 설명해-?

1.전쟁과 살상에 의한 국가 간의 전쟁을 끝내고,

2.참혹한 빈곤과 기아로 인한 죽음, 권력자들에 의한 민중과 자원의 착취를 끝내며,

3.지구에 대한 체계적인 환경파괴를 끝내고

4.더 크고 더 좋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끝없는 투쟁에서 벗어나며,

5. 모든 사람에게 가장 고귀한 자기 표현에 이를 정도로 성장할 기회, 진실로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6.집이든, 일터든, 정치체제든, 개인의 성관계든, 어디서나 사람들을 끌어내리는 모든 한계와 차별을 끝내게 될 것이다.

 

당신의 새로운 세계질서는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또 완전히 저절로 자원의 재분배를 낳을 것이다.

예컨대 누구에나 적절한 교육이 주어질 것이며, 누구에게나 일터에서 그 교육을 발휘할 공개된 기회,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직업을 택할 공개된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누구든 필요하면 언제 어떤 방식이든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고,

누구든 굶어죽거나, 충분한 옷이나 적절한 잠자리 없이 살지 않게 될 것이다.

누구든 두 번 다시 생존이 문제되지 않도록, 모든 인간 존재들이 소박한 안락과 기본 인간다움을 제공받도록, 누구에게나 기본 생존권이 보장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것을 벌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더라도요?

 

이런 것들을 굳이 벌어야 한다는 너희 사고방식이 빚지지 않고 살아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너희 사고방식의 토대이다. 하지만 너희가 빚지지 않고 산다고 해서 신의 은총을 입을 수는 없다. 그리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너희는 이미 그곳에 있기에. 너희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니, 그것은 너희가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조건 없이 주는(다시 말해 조건 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울 때, 너희는 조건 없이 받는 법을 배우리라.

삶이란 건은 너희에게 그런 상태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운송수단으로 창조되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기본 생존권이 있고, 설사 그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더라도, 설사 그들이 아무 기여도 하지 않더라도, 인간다운 생존은 삶의 기본권 중 하나라는 사고방식으로 자신을 감싸도록 해보라. 나는 너희에게 모든 사람이 충분히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원을 주었다. 너희가 해야 할 일은 나누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사람들이 그냥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고, 빈둥거리며, “자선금이나 모으러 다니는 걸 막을 방도는 뭡니까?

 

첫째로, 어떤 삶이 허비되는 삶인지 심판하는 건 너희 일이 아니다. 70년 동안 시에 관해서 생각하며 빈둥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몇천명의 사람들에게 깨달음과 통찰력의 문을 열어주는 단시(短時) 한 편을 내놓는다면, 그것이 과연 허비되는 삶이냐?

평생 남에게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남을 속이고, 협박하고, 조종하고, 해치기만 하던 사람이, 그래서 그 결과로 자신의 참된 본성 중 뭔가를 기억해낸다면, 아마도 몇 평생을 들여서 기억해내려고 애써왔을 뭔가를 기억해낸다면, 그래서 마침내 다음 단계로 진화한다면, 그것이 과연 허비되는 삶이냐? 그 삶이 과연 쓸모없는것이냐?

다른 사람의 영혼이 밟아가는 여정을 심판하는 건 너희가 할 일이 아니다. 너희 일은 다른 사람이 어떤 존재였고 어떤 존재가 되지 못했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네가 사람들이 그냥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고, 빈둥거리고, “자선금이나 모으러 다니는 걸 막을 방도가 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그럴 방도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진짜로 이것이 들어먹히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도 기여하는 사람들이 기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도 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시죠?

 

아니다. 그들은 화낼 것이다. 그들이 계몽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하지만 계몽된 사람이라면 기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분노가 아니라 큰 자비로 대할 것이다.

 

자비요?

 

그렇다. 기여자들은 비()기여자들이 가장 위대한 기회와 가장 장엄한 영광, 즉 창조할 기회와 참된 자신에 대한 가장 고귀한 관념을 체험하는 영광을 놓치고 있다는 걸 깨달을 터이고, 이것만으로도 그들의 게으름에 대한 벌로 충부하다는 걸 알 터이니.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굳이 그런 벌이 필요하다면 말이다.

 

하지만 진실로 기여하는 사람들은 자기 노동의 과실을 가져가서 게으른 사람들에게 주는 것에 분통을 터트리지 않을까요?

 

너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구나.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생존분이 주어질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더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는 소득의 10%를 기부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소득이 정해지는 방식으로 말하면, 공개된 시장원리에 따라 그 삶의 기여가치가 평가될 것이다. 지금 너희 나라에서 그렇게 되고 있듯이.

 

그렇다면 부자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있겠군요. 지금하고 똑같이! 그건 평등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평등한 기회이다. 모든 사람이 생존을 걱정하지 않고,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이기에.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지식을 획득하고 기술을 발달시키며, ‘즐거운 곳에서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동등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기에.

 

즐거운 곳이라니요?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일터를 그렇게 부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러움은 남지 않겠습니까?

 

부러움이라면, 그렇다. 하지만 질투라면, 아니다. 부러움은 더 나아지도록 너희를 몰아가는 자연스런 감정이다. 두 살짜리 아이도 자기 오빠 손에는 닿는 문 손잡이를 자기도 잡고 싶어서 용을 쓰기 마련이다. 여기에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다. 부러움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부러움은 자극체이며, 순수의 바램이다. 부러움은 위대함을 낳는다.

반면에 질투는 다른 사람을 더 못하게 만들려는, 두려움에 쫓기는 감정이다. 그것은 흔히 원망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그것은 분노에서 시작해서 분노로 끝난다. 그래서 질투는 사람을 말려 죽인다. 질투는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질투로 뒤엉킨 삼각관계 속에 있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사실을 안다.

질투는 죽이지만, 부러움은 태어나게 한다.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는 온갖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누구도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억눌리지 않을 것이니, 인종이나 성별(性別)이나 성적(性的) 성향 때문에 억눌리지 않을 것이며, 출생이나 계급 신분, 나이 때문에 억눌리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이유든 간에 억눌리지 않을 것이다. 그냥 어떤 이유의 차별이든 차별 자체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유한 자가난한 자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굶주리는 자빈곤한 자는 없을 것이다.

보다시피, 이런 동기가 삶에서....... 단순히 절망만을 걸러 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기여자들을 먹여살리기에충분할 만큼의 기여자들이 있을 거란 걸 뭘로 보장합니까?

 

인간 영혼의 위대함으로.

 

호오?

 

명백히 암울한 너희 신념과는 달리, 보통사람들도 그저 생존하는 수준에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덧붙여 두 번째 패러다임이 변화면, 즉 영혼이 바뀌면 위대해지려는 동기 전체가 변할 것이다.

 

무엇이 그런 변화를 일으킬까요? 지금껏 2,000년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20억년의 역사겠지-

 

어쨌든 그 역사를 거치면서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왜 지금 일어나야 하죠?

 

물질 생존에서 벗어나면, 약간의 안정을 얻으려고 악착같이 성공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지면, 이루고 견디고 장대해져야 할 다른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장대함 자체를 체험하는 것말고는!

 

그런데 그걸로 충분한 동기가 될까요?

 

인간의 영혼은 솟아오르기 마련이니, 참된 기회가 눈 앞에 있을 때 가라앉지 않는다. 영혼은 더 낮은 자기 체험이 아니라 더 높은 자기 체험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한 순간이라도 참된 장대함을 체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사실을 안다.

 

권력은 어떻게 됩니까? 이 특별한 재편성에도 과도한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겁니까?

 

금융소득은 제한될 것이다.

 

아하-드디어 여기까지 왔군요. 그게 왜 될 수 없는지 제가 설명드리기 전에, 먼저 당신이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운용될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러지. 수입에 최저 한도가 있듯이, 최고 한도도 설정될 것이다. 첫째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수입의 10%를 십일조로 세계정부에 바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전에 말했던, 자발적인 10% 공제이다.

 

그렇습니다....... 구식 균등 과세안이죠.

 

지금 너희 사회라면, 지금이라면, 그것이 세금 형태를 취할 테지. 모두의 공동선을 위한 자발적 공제가 너희를 가장 이롭게 한다는 걸 알 만큼 너희가 충분히 계몽되지는 못했으니, 하지만 내가 묘사해온 의식 변화가 일어난다면, 너희는 그처럼 열리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내놓은 수확물의 공제를 의문의 여지없이 타당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당신에게 말할 게 있습니다. 당신 말을 좀 가로막아도 괜찮겠습니까?

 

상관없다. 말해보라.

 

제게는 이 대화가 아주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신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신이 정치과정을 추천하기까지 하다니요. 정말입니다. 신이 균등 과세를 주장한다는 사실을 제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겠습니까?

 

, 나는 네가 그것을 계속 세금으로 보는 쪽을 고집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해는 한다. 너희가 가진 것 중 10%를 나누기 위해 그냥 내놓는다는 개념이 너희에게는 무척 낮선 것 같으니. 그렇지만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진다는 게 왜 믿기 힘들단 말이냐?

 

저는 신이 그런 일들을 판단하거나, 그런 일들에 의견을 갖거나, 신경쓰지는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잠깐만, 내가 이해가 가게 해다오. 네가 1권이라고 부르는 지난번 우리 대화에서 나는 온갖 종류의 질문들에 대답했다. 인간관계를 풀어가는 것에서 적절한 생활방식, 심지어는 다이어트에 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그런 것들이 이 문제와 어떻게 다르단 말이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다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 말은, 당신이 정말로 정치적 관점을 가지고 계시냐는 겁니다. 당신은 혹시 당증을 가진 정식 공화당원이 아니십니까? 신은 공화당원이라는 게 결국 이 책이 내놓는 진실입니까?

 

너는 내가 민주당원이길 바랬느냐? 이걸 어쩌지?

 

한방 먹었군요. 아니요, 저는 당신이 비정치적이길 바랬습니다.

 

나는 비정치적이다. 나는 어떤 정치관도 가지고 있지 않다.

 

빌 클리턴처럼요.

 

멋지군! 이번에 네가 한방 먹였어! 나는 유머를 좋아하지. 너는 그렇지 않느냐?

 

저는 신이 우스갯소리를 하거나 정치적이기 기대하지는 않았는데요.

 

혹은 인간적일 거라고도, 그렇지?

좋다. 그 문제에 관해서라면, 너를 위해 다시 한번 이 책과 1권이 문맥 속에 자리잡게 해보자.

나는 너희가 삶을 꾸려가는 방식에 어떤 선호(選好)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내 유일한 바램은 너희가 자신을 창조하는 존재로서 충분히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알 수 있게끔.

 

, 저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충분하고도 확실하게요.

 

내가 여기서 대답해왔던 모든 질문들과 1권에서 응답했던 모든 의문들은 창조하는 존재로서 너희가 되려 하고, 하려 한다고 말하는 것의 문맥 속에서 이야기되고 답해져왔다. 예컨대 1권에서 너는 내게 어떻게 해야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인간관계들을 맺어갈 수 있을지 많은 질문들을 했다. 기억하느냐?

 

그럼요. 기억하고 말고요.

 

너는 내 대답들이 심히 의문스럽다는 것을 알아차렸느냐? 너는 내가 그 문제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졌을 거라고 믿기 힘들다는 걸 알아차렸는가?

 

전 그런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는데요. 그 대답들을 그냥 읽었을 뿐인데요.

 

그럼에도 너도 알다시피, 나는 언제나 내 대답들을 네 질문의 문맥 속에 놓곤 했다. 다시 말해 네가 이러저러하게 되거나 하기를 바란다고 할 때,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맥 속에. 나는 그런 식으로 네게 그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그러셨죠.

 

나는 지금 여기서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신이 그런 걸 말하리라고 믿는 것보다는 이런 걸 말하리라고 믿는 게 더 어렵군요.

 

내가 여기서 이야기한 것들에 동의하기가 더 어렵다는 걸 깨달은 건 아니고?

 

.......

 

네가 그래서 그런 거라면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상관없다고요?

 

당연히.

 

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겁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벌레처럼 짓뭉개기라도 할 것 같으냐?

 

사실 전 아직 그 정도로 멀리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봐라 이 모든 것들이 시작되고 난 이후로 계속해서 세상은 내게 동의하지 않아 왔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신의 방식대로 행동해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건 사실일 겁니다.

 

너는 그게 사실이라고 장담해도 좋다. 몇천년에 걸쳐서 몇백명이나 되는 스승들을 통해 너희에게 남겨준 내 가르침들을 사람들이 따랐다면, 세상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곳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만일 네가 지금 내 의견에 동의하고 싶지 않거든, 계속 그대로 밀고 나가라. 게다가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

 

뭐라고요?

 

게다가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했다. , 이런....... 어차피 네가 이 모두를 복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 않느냐?

 

당신 말씀은 제가 이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 미안. 잠시 그 자리에 멈춰라. 네가 그 중 상당부분을 놓쳐왔다는 뜻이었다. 다시 한 문단 뒤로 돌아가서 이렇게 바꾸자. 어차피 너는 이 모두를 너 나름으로 편집하고 있지 않느냐?

 

, 그거 다행이군요. 사실 저는 한동안 거기에서 어느 정도 실제적인 지침들을 얻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네 감정을 따르라는 것이 네가 얻고 있는 지침이다. 네 영혼에 귀를 기울이고, 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라. 내가 어떤 선택사항이나 견해나 관점을 네게 제시하더라도, 네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전혀 없다. 만일 동의하지 못하겠으면, 동의하지 마라. 바로 이것이 이 훈련의 유일한 목적이다. 다른 것들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네 의존을 통째로 이 책에 대한 의존으로 바꾸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네가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나는 생각하는 너다. 나는 소리내어 생각하는 너다.

 

이 자료가 가장 높은 출처에서 나온 것이 아니란 말씀인가요?

 

물론 그것은 가장 높은 출처에서 왔다. 하지만 네가 아직도 믿지 못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으니, ‘가장 높은 출처는 바로 너라는 점이다. 그리고 네가 아직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으니, 그 모든 걸, 네 삶의 모든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창조하는 것도 너라는 점이다.

네가....... 바로 ....... 그것을 창조하고 있다. ‘내가 아니라 네가’.

그러니....... 순전히 정치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 중에서 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는가? 그렇다면 그 대답을 바꿔라. 지금 당장 그렇게 하라. 네가 그것을 복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며, 어떤 것에 대한 네 지금 생각을 네 다음번 생각보다 더 중요하고 더 타당하고 더 진실되다고 단정하기 전에.

네 현실을 창조하는 것은 언제나 네 새로운 생각임을 잊지 마라. 언제나 그러함을.

, 이제 우리의 이 정치 토론에서 네가 바꾸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냈느냐?

 

, 아닙니다. 늘상 그랬듯이 전 기본적으로는 당신에게 동의합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던 겁니다.

 

네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라. 이해가 안 가느냐? 너희가 삶을 꾸려가는 방식이 본디 이렇다!

 

좋습니다. 그래요....... 이해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계속했으면 하는데요. 그게 어디까지 갈지 보기 위해서라도요.

 

좋다. 그렇게 해보자.

 

당신이 말씀하시려던 전.......

 

내가 말하려던 건 계몽된 사회들에서는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위해 쓰도록 자신이 받는 것(너희가 수입이라 부르는 것)중에서 일정량을 때놓는 게 꽤 흔한 관습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너희 사회를 위해 검토해온 그 새로운 체제 하에서도 사람들은 해마다 벌 수 있다면 얼마든지 벌겠지만, 자신들이 번 것을 지니는 건 일정 한도로 제한될 것이다.

 

어떤 한도요?

 

모두가 동의한 임의적인 한도.

 

그렇다면 그 한도를 넘는 건요?

 

세계 자선신탁에 기부자의 이름으로 기부될 것이다. 그래서 온세상이 기부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기부자는 자신의 기부금 중 60%의 사용처에 대해 직접적인 통제권을 가질 것이기에, 그 돈의 상당부분을 정확히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사용한다는 점에서 만족을 느낄 것이다.

나머지 40%는 세계연방이 입법화하고, 그것이 관장하는 정책에 배당될 것이다.

 

사람들이 일정 수입 한도 이상으로 얻는 것은 모두 그들 손을 떠나리라는 것 알 때, 그 사람들을 계속 일하게 만드는 동기는 어떤 겁니까? 어떻게 해야 그들이 자신의 수입 한도에 일단 도달하더라도, 도중에 멈추지 않게 할 수 있습니까?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냐? 그들이 멈추도록 내버려둬라. 세계 자선 신탁에 기부할, 수입 한도를 넘어서는 강제노동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니까. 군수물자의 대량생산을 청산함으로써 절약되는 돈만으로도 모든 사람의 기본 욕구는 충분히 충족될 테니까. 그같은 절약에다 전세계 소득의 10%인 십일조를 더한다면, 선택된 소수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새로운 존엄과 풍요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리고 합의된 한도를 넘어서는 소득분의 기부는 모두에게 광범한 기회와 만족을 가져다줄 것이기에. 질투라든가 사회적 분노 같은 건 사실상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 일부 사람들은 일하길 그만둘 것이다. 특히 자신의 생명활동을 진짜 노동으로 보는 사람들은. 하지만 자신의 생명활동을 순수한 기쁨으로 보는 사람들은 결코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런 일거리를 가질 순 없죠.

 

아니다. 모두가 그러 수 있다.

일터에서의 기쁨은 직무와 전혀 무관하다. 그것이 관련이 있는 건 오로지 목적뿐이다.

아이의 기저귀를 갈려고 새벽 4시에 잠이 깨는 어머니들은 이 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녀는 아이에게 콧노래를 불러주고 아기를 어른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녀는 전혀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을 진정한 기쁨으로 만드는 것은 하는 일에 대한 그녀의 태도이며, 그 일에 관한 그녀의 의도이며, 그 일을 하는 그녀의 목적이다.

나는 모성에 대한 이같은 예를 예전에도 사용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야말로 이 책과 이 삼부작에서 이야기하는 개념의 일부를 너희에게 이해시켜줄 만큼 그것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한 잠재소득을 없애버릴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게 되면 인간의 가장 위대한 기회 중 하나, 가장 영광스런 모험중 하나를 체험할 기회를 빼앗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너희는 여전히 어리석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 기회와 그런 모험을 가질 것이다. 개인이 지닐 수 있는 소득의 최고 한도는 아주 높을 것이다. 보통사람들........ 열명의 보통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액수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벌 수 있는 소득액에는 제한이 없을 것이다. 단지 개인 소비를 위해 지니는 액수가 제한될 뿐이다. 그 나머지, 예를 들면 연간 2,500만불(이것은 논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사용한 지극히 임의적인 수치이다)이 넘는 나머지 모두는 인류 전체를 이롭게 할 정책과 사회보장에 쓰일 것이다.

그 이유? 왜 그래야 하느냐고.......?

지닐 수 있는 소득의 최고 한도는 이 행성의 의식이 바뀌었음을 말해주리니, 즉 그것은 삶의 가장 고귀한 목적이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하는 데 있지 않고, 가장 많은 선을 행하는 데 있다는 깨달음을 반영할 것이며, 사실 부를 나누지 않고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제일 끈질기고 노골적인 사회 정치적 딜레마들을 이 세상에 만들어낸 가장 큰 단일요소였다는, 그에 연이은 깨달음을 반영할 것이다.

 

, 다시 말해 무제한의 부를 축적할 기회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의 초석인데요. 지금껏 세상이 알아왔던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회를 만들어낸 자유기업과 자유경쟁 체제 말입니다.

 

문제는 너희가 진짜로 그렇다고 믿는다는 데 있다.

 

아니요. 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믿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한 겁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끔찍한 망상에 사로잡혀서 너희 행성의 지금 현실이 어떤지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미국만 해도 상위 1.5%가 하위 90%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부를 지니고 있다. 또 제일 잘사는 834천명의 순소득이 제일 못사는 8,400만명의 순소득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1조달러에 육박한다.

 

그래서요? 그 사람들은 그만큼 열심히 일한 것 아닙니까?

 

너희 미국인들은 계급 지위를 개인이 노력한 결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출세하는사람들도 있긴 하다. 그걸 보고 너희는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가정하지만 그런 식의 관점은 너무나 단순하고 유치하다. 그런 관점은 누구나 동등한 기회를 갖는다는 걸 전제로 하지만, 사실은 멕시코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돈과 권력을 움켜잡고 어떠하든 그것을 더 늘리려고 애쓰고 궁리하는 판이다.

 

그래서요? 그게 뭐 잘못된 겁니까?

 

그들은 경쟁을 체계적을 배제하고, 진정한 기회를 제도적으로 최소화하며, 부의 흐름과 성장을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것으로 그렇게 한다.

그들은 온갖 방안을 짜내 이 일을 해낸다. 전세계의 가난한 대중을 착취하는 불공정 노동행위에서부터, 신참자가 성공 대열에 끼어들 기회를 최소화하는(그리고 거의 없애는) 상류층 인맥이라는 경쟁 관습에 이르기까지. 온갖 방안을 다 짜내서.

그러고 나면 그들은 대중을 규제받고 통제되고 복종하는 상태로 더 확실히 놓아두기 위해 전세계의 공공정책과 정부정책들을 통제하려고 애쓴다.

 

전 부자들이 이렇게 한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그들 대부분은요. 아마 이런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은 소수일 겁니다. 제 생각에는요.......

 

대게의 경우에 그렇게 하는 것은 부자들 개개인이 아니다. 그런 일을 하는 주체는 그들이 그 대표로 있는 사회체제와 제도들이다. 그런 체제와 제도들을 만든 사람들이 부유하고 권력있는 자들이고, 그것들을 계속해서 지탱하는 사람들 또한 그들이다.

부자들 개개인은 그런 체제와 제도들 배후에 서 있기에, 부유하고 권력있는 자들 편에 서서 대중을 억압하는 상황에 대한 모든 개인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의료보장 문제로 다시 돌아가보자, 몇백만에 달하는 가난한 미국인들이 예방 차원의 건강 진료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개인 의사를 가리키며서, “이건 당신이 할 일이다, 이건 당신 잘못이다고 말할 수 없다. 지구상의 가장 부자 나라에 사는 몇백만명의 사람들이 응급실의 음산한 계단을 통하지 않고는 의사를 만나러 들어갈 수조차 없는 것이다.

어떤 개인 의사도 이 때문에 비난받을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모든 의사가 이득을 보는 것이 사실이다. 의료직 전체와 관련 산업 전체가 가난한 노동자층과 실업자들에 대한 차별대우를 제도화한 의료보험제도로 유례가 없는 이윤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체제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고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어내는 방식을 보여주는 단지 한 가지 예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그런 사회구조들을 지탱하고, 그것을 바꾸려는 모든 실제적 노력에 완강하게 저항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이라는 데 있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참된 기회와 진정한 존엄을 제공하려는 모든 정치 사회적인 접근을 가로막는다.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 상당수가 개인으로 놓고 보면, 남들 못지 않은 자비와 동정심을 가진, 확실히 꽤 괜찮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연간 소득한도처럼 그들을 위협하는 견해를 제시해보라(설령 연간 2500만불처럼 황당하게 고액의 한도라 해도). 그러면 그들은 개인 권리의 박탈과 미국방식의 손상과 동기의 사실에 대해 떠들어댈 것이다.

하지만 굶주리지 않을 만큼의 음식과 추위에 떨지 않을 만큼의 의복을 지니고, 최소한이나마 그럴듯한 환경에서 살 모든 사람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가? 사람들이 어디서나 적절한 진료를 받을 권리, 돈 있는 사람이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걸로 쉽게 넘어갈, 사소한 합병증으로 고통받거나 죽지 않을 권리는 어떻게 되는가?

말로 다 못할 만큼 가난한 대중들이 계속해서 체계적으로 착취당하면서 만들어내는 노동의 과실을 포함하여, 너희 행성의 자원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소유이지, 그같은 착취를 해낼 만큼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만의 소유가 아니다.

, 그런 착취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보라. 먼저 너희 부유한 산업 자본가들은 아무 일거리도 없고, 사람들은 궁핍하고, 존재하는 건 적나라한 가난뿐인 국가나 지역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그곳에 공장을 세워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한다. 대게 하루 10시간, 12시간, 심지어 14시간짜리 일거리를, 인간 이하는 아니라도 기준 이하의 임금으로. , 잘 들어라. 이 임금은 그 노동자들을 쥐새끼가 우글대는 자기 마을에서 벗어나게 해줄 만큼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먹을 것도 잠자리도 전혀 갖지 못하는 것과는 대조되는 그런 식으로 살기에는 충분하다.

이런 점을 지적받으면 이 자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봐, 그들은 이전보다 더 잘 살게 되었다구, 안 그래? 우리가 그 사람들 팔자를 바꿔준 거야! 이제 그 사람들에게는 일거리가 있어. 보라구, 우리가 그들에게 기회를 준 거야! 그리고 우리는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있어!”

하지만 한 컬레에 124불씩 받고 팔 운동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시간당 75센트를 지불하는 데, 도대체 얼마나 큰 위험이 있는가?

이런 게 과연 순수한 의미에서 위험 감수이고 개발인가?

이 정도로 추잡한 체제는 오직 탐욕으로 굴러가는 세상, 인간 존엄이 아니라 이윤폭이 가장 중요한 고려대상인 세상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그 농민들은 멋지게 살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일급 위선자들이다. 그들은 물에 빠진 사람에게 밧줄을 던지긴 하지만, 그 사람을 뭍으로 끌어올리려 하진 않는다. 그리고 나서는 돌덩이보다야 밧줄이 나은 거 아니냐고 너스레를 떤다.

가진 자들은 사람들을 참된 존엄으로 끌어올리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의 갖지 못한 자들을 의존상태로 만들기에 딱 좋을 만큼만 준다. 평생 그들을 진실로 힘 있게 만들기에는 충분치 않을 만큼만. 누구나 참된 경제력을 가졌을 때는 그냥 체제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마련이지만, 그 체제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절대 원하지 않는 게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음모는 계속된다. 대다수의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행동하는 음모가 아니라 침묵하는 음모이다.

그러니 이제 가라, 너희 길을 가라. 가서 기업 책임자에게 음료수의 판매 중대에 대한 보너스로 7천만 달러를 지급하더라도, 7천만에 달하는 사람에게는 건강을 유지할 만큼의 음식은 물론이고, 그 음료수를 마셔보는 사치 따위는 허용치 않는 사회경제 체제의 추잡성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어라.

그것의 추잡성을 보지 마라. 세상의 자유시장 경제란 건 이런 거라고 하면서, 너희가 그것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는지 모두에게 말해줘라.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너는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풀이 죽어 떠나갔다.

그는 많은 재산을 가졌기에.([마태오 19:21-22]-옮긴이)

 

19

 

지금껏 당신이 이렇게 화내시는 건 한번도 못봤습니다. 신은 화내지 않죠. 이건 당신이 신이 아니라는 걸 말해줍니다.

 

신은 모든 것이고, 무엇이든 된다. 신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신은 자신에 관해 체험하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서, 너희로서, 너희로 하여 체험한다. 네가 지금 느끼는 건 너 자신의 분노이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전 당신이 말한 것에 전부 동의하니까요.

 

너는 내가 보내는 모든 생각을 너 자신의 체험과, 너 자신의 진실과, 너 자신의 이해와,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에 대한 너 자신의 판단과 선택과 선언이라는 여과장치를 통해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아두어라. 이 외에 네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방식, 네가 받게 되어 있는 다른 방식은 없다.

 

또 이 자리로 돌아왔군요. 당신 말씀은 이 모든 발상과 느낌들이 당신 것이 아니란 뜻인가요? 이 책 전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단신과 내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체험 전체가 단지 어떤 것에 대해 내 생각과 감정을 편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어떤 것에 대한 네 생각과 느낌들을 내가 네게 주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봐라. (너는 이런 것들이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와 함께 네 체험을 공동으로 창조할 가능성, 내가 네 판단과 선택과 선언의 일부일 가능성에 대해. 이 책이 만들어지기 이미 오래 전에 내가 너를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내 사자(使者)로 삼기로 마음먹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봐라.

 

그건 저로서는 믿기 힘들군요.

 

, 그 문제라면 1권에서 모두 훑어보았다. 하지만 네가 그렇다 해도 나는 세상에 대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내가 보낸 스승들과 사자들을 통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 너희 세상의 경제, 정치, 사회, 종교 체제가 미개하다는 걸 너희 세상에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너희가 그것들을 최고로 여기는 집단 오만에 빠져 있음을 관찰한다. 나는 너희 중 상당수가 자신에게서 뭔가를 뺏아갈 모든 변화, 모든 개선에 저항하는 걸 보고 있다. 그게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다시 한번 말하노니, 너희 행성에서 필요한 것은 광범한 의식 변화, 너희의 인식 변화이다. 삶의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존중하고, 만물의 상호연관성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좋습니다. 당신은 신이십니다. 세상이 그런 식이길 원하지 않는다면, 왜 당신은 그걸 바꾸지 않는겁니까?

 

내가 전에 설명했듯이 애초부터 내 결정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는 대로 너희의 삶과, 따라서 너희 자신을 창조할 자유를 주는 것이었다. 만일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창조하고, 어떻게 창조할지 말해주고, 그런 다음 그렇게 하도록 너희에게 강요하거나 요구하거나 시킨다면, 너희는 자신이 창조자임을 알 도리가 없다. 내가 그렇게 한다면, 내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너희 행성에 무엇이 창조되었는지 잠시만 주목해보자. 그리고 그것이 너희를 좀은 화나게 만들지 않는지 살펴보자.

보통 날자의 너희의 주요 일간지 중 하나를 골라 안쪽 네 페이지만 훑어보자.

오늘 신문을 가져와봐라.

 

여기 있습니다. 199449일 토요일자 신문이군요. 신문 이름은 샌프란시스코 일보San francisco Chronicle이구요.

 

잘했다. 아무 페이지나 열어봐라.

 

. 여기 A-7페이지가 있군요.

 

좋다. 거기에 뭐라고 적혀 있는가?

 

제목은 개발도상국들, 노동권 문제 논의이군요.

 

아주 잘했다. 계속하라.

 

기사 내용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에 노동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위 해묵은 대립에 대한 거구요. 몇몇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은 노동권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그들의 저임금 상품들이 선진국 시장에 들어가는 걸 막는 비장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겁낸다고 적혀 있군요.

이어서 이 기사는 브라질과 말레이시아, 인도, 싱가포를 비롯한 여타 개발도상국들의 협상대표들은 노동권에 관한 협약안을 기초할 권한을 지닌 상설적인 국제 무역위원회 설치를 반대했다고 하는군요.

 

그 기사에 말하는 노동권이란 어떤 것이냐?

 

노동자 기본권입니다. 강제노동 금지와 노동현장의 안전기준 설정, 단체협상권 보장 같은 것들요.

 

그렇다면 그런 권리들이 국제협약의 일부가 되는 걸 왜 개발도상국들이 원하지 않은 않는 줄 아느냐? 내가 그 이유를 말해주지. 하지만 그 전에 그런 권리들에 반대하는 건 그 나라의 노동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자. 개발도상국의 협상대표들은 공장을 소유하고 경영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거나, 그 사람들과 긴밀한 동맹을 맺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일어나기 전 시대에 그랬듯이, 그들 역시 지금 이 순간 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착취로 이득을 보고 있다.

너는 그들이 미국을 비롯한 부자 나라들에서 엄청난 돈을 은밀히 지원받고 있다고 확신해도 좋다. 더 이상 자기 나라들에서는 부당하게 노동자들을 착취할 수 없는 이 부자 나라의 산업자본가들은 개발도상국들의 공장 소유주들에게 하청을 주고 있다(혹은 자기 공장을 직접 그 나라에 세워두고 있다). 이미 그 자체로도 추잡한 자신들의 이윤을 더 늘릴 요량으로, 아직도 무방비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악용당하고 있는 외국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 기사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국제 무역협약의 일부로 삼도록 밀어붙이는 쪽이 우리 정부, 지금 행정부라고 말하는데요.

 

너희의 힘 있는 산업자본가들은 그렇지 않지만, 지금 너희 대통령인 빌 클린튼은 노동자의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대자본의 기득권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고 있다. 못가진 사람들 편에 섰던 다른 미국 대통령들과 전세계 지도자들은 살해당했다.

 

클린튼 대통령이 살해될 거란 말씀입니까?

 

그를 공직에서 몰아내려는 엄청난 힘이 존재할 거란 이야기만 해두자. 그들은 그를 제거하는 일에 이미 착수했다. 그들이 30년 전에 존 케네디를 제거했듯이.

앞서 케네디가 그랬던 것처럼 빌 클리튼도 대자본이 싫어하는 온갖 일을 하고 있다. 세계적인 범위에서 노동자의 기본권을 요구할 뿐 아니라, 사실상 모든 사회문제들을 놓고 참호로 에워싸인 기성사회 바깥의 못한 사람들편을 들고 있다.

예컨대 그는 미국 의료기관들이 누리게 된 과도한 진료비와 수수료를 지불할 여유가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에 관계없이, 사람은 누구나 적절한 예방진료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는 또 이 요금들이 낮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그는 미국의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 중에서 또 다른 큰 집단-제약업자에서 보험업자들, 그리고 의료관련 기업들에서 자기 직원들에게 상당한 보험분담금을 제공해야 하는 기업소유자들에 이르기까지-에게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포괄적인 의료보장이 제공된다면 지금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상당수 사람들의 이득은 약간씩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클린튼씨를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 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적어도 금세기에 이미 대통령을 제거할 능력을 가졌음이 판명된 그런 성분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당신 말씀은-?

 

내가 말하려는 건 가진 자못가진 자의 투쟁은 지금껏 쉬지 않고 계속되어왔고, 너희 행성에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박애주의적 이해가 아니라 경제적 이해가 세상을 움직여가는 한,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몸이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고 있는 한,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당신 말이 옳은 것 같군요. 같은 신문 A-14쪽에 이런 제목이 있습니다. ‘독일, 경기후퇴로 대중의 분노 확산부제는 전후 실업률의 높은 증가로 더 벌어져가는 빈부 격차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기사 내용은 어떤 것이냐?

 

해고당한 기술자와 교수, 과학자, 공장 노동자, 목수, 요리사들 사이에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는군요. 독일은 경기 후퇴에 직면해 있는데 이 고난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눠지는 건 아니라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고 합니다.

 

맞는 말이다. 공평하게 나눠지지 않았다. 그 기사는 그같은 대량해고가 일어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말하느냐?

 

여기서 말하는 분노하는 노동자들이란 임금이 더 싼 나라로 고용주가 공장을 옮긴경우들이랍니다.

 

아하. 오늘자 너희 샌프라시스코 일보를 읽은 독자들이 A-7쪽과 A-14쪽 기사의 연관성을 파악해냈는지 궁금하군.

 

그리고 기사에 따르면 일차 해고대상자는 여성이랍니다.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독일 전체로는 실직자의 반 이상이 여성이고, 구동독 지역에서는 그 수가 2/3에 육박한다.”

 

물론 그렇겠지. 너희 대다수가 보거나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내가 몇 번이나 지적했듯이 너희 사회경제 체제는 사람들을 범주에 따라 체계적으로 차별대우한다. 너희가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 순간에도, 실제로는 동등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자신에 대해 좋게 느끼자면, 이런 환상을 믿어야 한다. 이 때문에 행여 누군가가 너희에게 진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면, 너희는 화를 낸다. 설사 그렇다는 증거를 너희 눈 앞에 들이 밀어도, 너희는 그 증거조차 완전히 부정할 것이다.

너희 사회는 눈가리고 아옹하는 자기 기만의 사회다.

그만하고-오늘 신문에 다른 기사로 또 어떤 게 있느냐?

 

A-4쪽에 주택구입과 임대의 편중을 막으려는 연방의 압력, 다시 시작되다란 기사가 있군요. “연방 주택과에서는 주택구입과 임대에서의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노력을....... 강제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너희가 스스로 물어봐야 할 것은, 왜 그같은 노력이 강제되어야 하는가이다.

 

우리는 인종이나 피부색, 종교, (), 출신주(), 신체장애, 가족구성 따위를 이유로 주택구입과 임대를 거부하는 일이 없도록 공정 주택법이란 걸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지방정부들이 그런 편견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지요. 이 나라에는 지금도 여전히 제 재산 가지고 제 마음대로 못할 게 뭐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을 누구에게 임대할 것인가라는 문제까지 포함해서요.

 

하지만 임대재산을 지닌 사람 모두가 그런 선택을 내릴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런 선택들이 특정 부류의 특정 범주의 사람들을 대하는 집단의식과 일상 태도를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면, 그 결과 그 부류의 사람들 전체가 살 만한 집을 찾아낼 모든 기회를 체계적으로 박탈당할 수 있다. 게다가 쓸만한 주택을 빌릴 수 없는 상황이기에, 부동산 귀족들과 빈민가 아파트 주인들은 수리 보수비 따위를 거의 주지 않거나, 일체 주지 않고서도, 그 끔찍한 주거환경을 빌려주는 대가로 엄청난 임대료를 챙길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부자와 권력자들은 다시 한번 대중을 착취한다. 이번에는 사유재산권이라는 가면을 쓰고.

 

하지만 사유재산 소유자들도 어느 정도의 권리는 가져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소수의 권리가 다수의 권리를 침해할 때는?

이것이 바로 문명화된 모든 사회가 직면하고 있고, 지금까지 직면해왔던 문제이다.

전체라는 더 높은 선()이 개인의 권리를 대신할 때가 왔는가? 사회가 자신에게 책임을 질 때가?

공정 주택법은 이 물음에 대해 너희가 그렇다고 말하는 방식이고,

반대로 그런 법들을 따르고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부자와 권력자들이 아니다-중요한 것은 우리 권리뿐이다고 말하는 방식이다.

너희의 지금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는 다시 한번 그 문제를 강행하고 있다. 또 다른 전선에서라고 하더라도, 미국 대통령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기꺼이 부자와 권력자들에 맞섰던 건 아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클린턴 행정부의 주택과 관리들이 그들의 짧은 재임기간 동안에 행한 주택구입과 임대 차별에 관한 조사가 그 앞의 10년 동안에 이루어진 것보다 더 많다고 하는군요. 워싱턴에 있는 국가자문 기구인 공정 주택연맹의 대변인은 공정 주택법이 꼭 지켜지도록 하겠다는 클린튼 행정부의 다짐을 그들이 오랫동안 다른 행정부들에서 받아내려 애써왔던 약속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너희 대통령은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훨씬 더 많은 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자들과 산업자본가들, 제약회사들과 보험회사들, 의사와 의료관계자들, 그리고 투자재산 소유자들 사이에서. 돈과 영향력을 가진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앞서 관찰했듯이 그가 공직에 머물러 있기 곤란한 시기가 올 것이다.

 

이 글을 적고 있는 19944월에도 이미 그를 물러나게 하려는 압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199449일자 신문에서 네게 인간 종족에 대해 뭔가를 말해주는 또 다른 기사들이 있느냐?

 

잠시만요, 앞서 말한 A-14쪽에 주먹을 휘두르는 러시아 정치지도자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그 사진 밑에 지리노브스키, 의회에서 동료의원을 폭행이라는 제목이 있군요. 기사 내용은 블라디미르 지리노브스키가 어제 또 다시 주먹다짐을 일으켜, 반대파 정치인을 때려눕히고”, 그의 면전에다 대고 난 네 놈이 감옥에서 썩도록 만들겠어! 네 놈 수염을 몽땅 다 뽑고 말겠어!”라고 퍼부었다는군요.

 

그런데도 너희는 국가들이 왜 전쟁을 일으키는지 궁금한가? 여기 대중정치 운동의 주요 지도자 한 사람이 있다. 의사당 안에서 자기 반대파를 때려눕히는 것으로 자신의 됨됨이를 과시해야 했던 사람이.

너희는 이해하는 것이라곤 힘뿐인, 대단히 미개한 종족이다. 너희 행성에는 어떤 참된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참된 법이란 자연법이다. 설명할 수도 없지만, 또 설명하거나 가르칠 필요도 없는 법. 관찰하는 것만이 가능한 법.

참된 법이란 누구나 당연히 그 법의 지배를 받게끔 되어 있기에, 모두가 자유롭게 그 법의 지배를 받는데 서로 동의하는 그런 법이다. 따라서 그들의 동의는 동의라기보다는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법들은 강요될 필요가 없다. 부정할 수 없는 결과라는 단순한 방책이 그것을 이미 강요하고 있기에.

네게 예를 하나 들어주마. 고도로 진화한 존재들은 망치로 자기 머리를 내려치는 짓을 하지 않는다. 다치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같은 이유로 다른 사람의 머리도 망치로 내려치지 않는다.

진화된 존재들은 네가 어떤 사람의 머리를 망치로 친다면, 그 사람이 다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네가 계속해서 그렇게 하면 그 사람도 화가 날 것이고, 그런데도 네가 그 사람이 화낼 짓을 계속하면, 그는 결국 자기 망치를 찾아내서 네 등을 내리칠 것이다. 따라서 진화된 존재들은 다른 사람을 망치로 치는 건 자신을 망치로 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네가 가진 망치가 더 크고 그 수가 더 많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얼마 안가 너도 다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누구라도 관찰할 수 있는 결과이다.

진화되지 못한 존재들, 미개한 존재들도 같은 것을 관찰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냥 신경쓰지 않고 넘어간다.

진화된 존재들은 절대 제일 큰 망치를 가진 사람이 이기는놀이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미개한 존재들은 그 놀이밖에 하지 않는다.

덧붙여 둘 것은 이것은 주로 남자들이 하는 놀이라는 점이다. 너희 종족 중에서 망치로 다치게 하기놀이를 하고 싶어하는 여자들은 극히 드물다. 그들은 새로운 놀이를 즐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망치를 가졌다면, 나는 그걸 두드려서 정의를 만들어내고 자유를 만들어내겠네. 나는 그걸 두드려서 이 세상 전체에 내 형제자매의 사랑을 만들어내겠네.”

 

여자가 남자보다 더 진화했다는 말씀입니까?

 

나는 거기에 대해서 이런저런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게 아니다. 단지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너도 알다시피, 진실이란 자연법처럼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연법이 아닌 모든 법은 관찰할 수 없다. 그래서 너희에게 설명해줘야 한다. 너희는 그것이 왜 너희 자신을 위해서 좋은지 설명을 들어야 한다. 그것은 너희에게 보여져야 한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너희 자신을 위해 좋은 것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스스로 명백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명백하지 않은 것, 즉 자명하지 않은 것만이 설명을 필요로 한다.

자명하지 않은 것을 사람들이 믿게 만들려면 대단히 유별나면서도 단호한 사람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너희가 발명해낸 것이 정치가들이다.

또 성직자들 역시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과학자들은 그다지 많이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체로 그다지 수다스럽지 않다.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들이 실험을 해서 성공하면, 그들은 그냥 자신이 한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결과가 스스로 말해준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대개 조용한 편이며, 장황함에 빠지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자신들이 하는 일의 이유가 자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학자들이 뭔가 시도했다가 실패한다면, 그들은 아무것도 할 말이 없다.

정치가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실패했더라도 말한다. 사실 그들은 더 많이 실패할수록 흔히 더 많이 말한다.

종교의 경우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들도 더 많이 실패할수록 더 많이 말한다.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진실과 신은 같은 곳에 있다. 침묵 속에.

너희가 신을 찾아냈을 때, 너희가 진리를 발견했을 때, 너희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자명하기에.

너희가 지금 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마도 너희가 여전히 신을 찾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상관없다. 다만 너희가 어디에 있는지만 깨달아라.

 

하지만 스승들은 항상 신에 대해 말하죠. 사실 우리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전부 그런 거구요.

 

너희가 가르치는 것은 너희가 배우고자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다, 이 책은 삶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점이 이 책을 그 문제에서 아주 좋은 예로 만들어준다. 네가 이 책을 쓰는 데 빠져 있는 건 네가 아직도 신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당연히 그렇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주제는 창조였다. 너는 이 장의 서두에서 지구에서 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왜 내가 그것을 바꾸지 않는지 물었다.

나는 너희가 하는 일에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나는 단지 그것을 관찰할 뿐이며, 때때로 이 책에서 해왔던 것처럼 그것을 묘사할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물어보자. 내 관찰과 내 묘사는 잊어버리고, 너는 네가 관찰한 너희 행성의 창조물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 너는 단 하루치 신문기사들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드러낼 수 있었다.

*노동자들에게 기본권을 주지 않으려는 국가들이 있으며,

*불황에 직면한 독일에서는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고 있고,

*미국 정부는 부동산 소유자들에게 공정 주택법을 따르도록 강요해야 하며,

*러시아에는 국회의사당 안에서 반대파 정치인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면서, “난 네 놈이 감옥에서 썩도록 해주겠어! 네 놈 수염을 몽땅 다 뽑고 말겠어!”라고 퍼붓는 영향력 있는 정치지도자가 있다.

그 외에 이 신문에서 너희 문명화된사회에 대해 내게 보여줄 것이 더 있느냐?

 

, 여기 A-13쪽에 앙골라 내전으로 고통받는 민간인들이란 제목이 있군요. 부제는 반란군 점령지에서는 몇천명의 민간인들이 굶주려도, 반란군 지도자들은 사치스런 생활.”이라고 되어 있군요.

 

그걸로 됐다. 이해가 간다. 그런데 이게 단 하루치 신문의 기사들이냐?

 

하루치 신문의 한 섹션입니다. 전 아직 A섹션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 한번 너희 세계의 경제, 정치, 사회, 종교 제도들이 미개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바꿀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설정한 이유들 때문에. 내가 너희를 위해 설정한 가장 고귀한 목적, 즉 너희 자신이 창조자임을 깨닫는 체험을 하려면, 너희는 반드시 이런 문제들에서 자유선택권과 자유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몇천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너희는 기껏 이 정도 밖에 진화하지 못했고, 기껏 이런 것들밖에 창조하지 못했다.

그것이 너희를 화나게 만들지 않는가?

하지만 너희도 한 가지만은 좋은 일을 했다. 너희는 내게 와서 조언을 구했다.

너희 문명은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신에게 물었다. “우리가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습니까?” “어떻게 해야 저희가 더 잘 할 수 있습니까?” 다른 모든 경우에 너희가 내 조언을 체계적으로 무시해왔다는 사실이 내가 그것을 다시 한번 제안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 나는 자상한 부모가 그러하듯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언제나 도움이 될 관찰을 내놓을 것이고, 또한 설령 너희가 나를 무시하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너희를 사랑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묘사하고 있으며, 너희가 어떻게 해야 더 잘 할 수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나는 너희가 주의를 기울이길 원하기에, 너희가 어느 정도 분노를 느끼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해왔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지금 이 책에서 되풀이해서 말했던 종류의 대중적인 의식 변화가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서서히 깎여나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조각가가 최종 조각품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밝히기 위해 깎아내듯이, 우리는 원치 않는 여분의 인간체험인 화강암 덩어리를 조금씩 벗겨가고 있다.

 

우리라고요?”

 

너와 내가. 이 책을 적는 우리 작업을 통해서. 그리고 다른 아주 많은 사람들, 모든 사자(使者)들이. 작가, 예술가, 텔레비전과 영화 제작자, 음악가, 가수, 배우, 무용수와 선생, 주술사, 정신적 지도자들이. 또 정치가들과 지도자들(그렇다. 이들 중에도 아주 좋은 사람들이 있다. 대단히 진실한 사람들이 있다!), 미국 전역과 전세계의 거실과 부엌과 뒤뜰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너희는 선조들이요, 선발자들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다.

네 덕분에.

 

몇몇 사람들이 예견했듯이 전세계적인 재난, 엄청난 재앙이 일어납니까? 사람들이 채 귀 기울여 듣기 전에, 지구에 떨어진 거대한 운석 때문에 지구의 지축이 바뀌고 대륙들 전체가 바다 속에 잠기는 일은요? 아니면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깨닫기에 충분한 시야를 갖기 전에, 외계 존재가 찾아와 두려움에 떨게 되는 일은요? 혹은 우리가 한 순간의 깨달음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내기 전에, 우리 모두가 죽음의 공포에 직면해야 되는 건 아닙니까?

 

그런 무자비한 사건들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겁니까?

 

너는 제 아무리 신이라도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미래는 창조할 수 있다. 너희가 바라는 대로 미래를 창조하라.

 

하지만 예전에 당신은 시간의 본질상 미래란 건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찰나의 순간’, ‘지금이라는 영원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라구요.

 

그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진과 홍수와 지구를 덮치는 운석들은 지금 이 순간존재하는 겁니까, 아닙니까? 당신은 신이니 모른다고 하진 마십시오.

 

너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길 바라느냐?

 

물론 아니죠.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들 모두가 이미 일어난 일이고, 또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는 영원한 순간은 또한 끝없이 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자이크와 같은 것이다. 언제나 존재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모자이크. 너는 눈을 깜박일 수 없다. 네가 눈을 다시 떴을 때 그것은 달라져 있을 것이기에. 보라! 잘 보라! 알겠느냐? 그것은 거기서 다시 진행된다!

나는 끊임없이 변한다.

 

무엇이 당신을 변하게 만듭니까?

 

나에 대한 네 견해가! 그 모든 것에 대한 네 생각이 나를 변하게 만든다-즉석에서.

생각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다르지만, 때로는 전체All(신을 말한다-옮긴이)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무척 미세하여 사실상 구별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집중된 생각이나 집단적 생각이 있다면, 그때는 거대한 충격,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렇다면-당신이 말하는 종류의 전지구적인 대재난은요? 그런게 일어날 겁니까?

 

나는 모른다. 일어날 거냐고?

네가 결정하라. 잊지 마라. 너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현실을 선택하고 있다.

 

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쪽을 선택하렵니다.

 

그렇다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만 빼고.

 

우린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왔군요.

 

그렇다. 너희는 모순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너희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최고의 진리를 이해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요?

 

그것에 대해서는 3권에서 설명할 것이다.

 

....... 좋습니다. 하지만 전 이런 문제들을 두고 기다리고 싶지 않은데요.

 

이미 여기에도 네가 흡수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가져라. 혼자만의 공간도 좀 가지고.

 

아직 떠나실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이 제 곁을 떠나는 게 느껴집니다. 당신은 떠날 준비를 하실 때면 언제나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죠. 몇가지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은데....... 예를 들면 말이죠. 외계 존재 같은 거요. 그런 게 정말 있나요?

 

그 문제 역시 사실상 3권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제발 제게 힌트라도 주십시오. 약간이라도요.

 

우주의 다른 곳에 지적 생물체가 있는지 알고 싶다고?

물론 있다.

 

그들도 우리처럼 미개합니까?

 

일부 생명체들은 더 미개하지. 일부는 덜한 편이고.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훨씬 더 진보했다.

 

그런 외계 생명체가 우리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 여러번.

 

무슨 목적으로요?

 

조사하러. 때로는 가만히 도와주려.

 

그들이 어떻게 돕는다는 겁니까?

 

, 그들은 이따금 후원해주지. 예를 들면 너희가 지난 75년 동안에 이룬 기술의 진보가 그 이전의 전체 역사 동안에 이룬 것보다 더 크다는 건 너희도 깨닫고 있겠지.

 

. 그런 것 같습니다.

 

너는 CT촬영에서부터 초음속 비행기, 심장 조절을 위해 너희 몸 속에 심는 컴퓨터 칩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전부 인간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느냐?

 

....... 당연히 그렇죠!

 

그렇다면 왜 인간들은 몇천년 전에는 그런 것들을 생각해 내지 못했느냐?

 

모르겠습니다. 기술이 쓸만하지 않았겠지요. 제 말은 하나는 다른 하나를 가져온다는 겁니다. 하지만 맨 처음 기술이 없었던 거지요. 그것이 생기기 전에는요. 진화 과정이란 게 본디 그런 것 아닙니까?

 

너는 이 10억년 동안의 진화 과정 중에서 지금부터 75년 전과 100년 전 어딘가에서 엄청난 이해의 폭발이 일어났다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

너는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에서 레이더와 라디오공학으로 이르는 발달을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보았다는 사실이 이상하다고 여겨지지 않느냐?

이런 일들이 갑작스런 비약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어떤 논리적인 경과로도 문제삼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불균등한 진전을?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내 말은 너희가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우리가 기술에서 도움을 받고있다면, 왜 영적으로는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까? 왜 이 의식변화와 관련한 지원은 받지 못하는 겁니까?

 

너는 받고 있다.

 

제가요?

 

너는 이 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흐음.

 

게다가 새로운 발상과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개념들이 날마다 너희 앞에 놓이고 있다.

지구 전체의 의식을 바꾸고 영적 자각을 키우는 과정은 느린 과정이다. 시간이 걸리고 엄청난 인내가 요구된다. 몇생애, 몇 세대에 걸칠 정도로.

그럼에도 너희는 서서히 돌아오고 있으며 천천히 변하고 있다. 변화는 조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 말씀은 외계 존재들이 그 면에서도 우리를 돕고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 그들은 지금 너희들 중에 있다. 그들 중의 다수가. 그들은 오랫동안 너희를 도와왔다.

 

그럼 왜 그들은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는 겁니까? 자신들을 밝히는 거요.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영향력을 두 배는 더 크게 만들텐데요.

 

그들의 목적은 그들이 보기에 너희들 대다수가 원한다고 여기는 변화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돕는 데 있다.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촉진하는 데 있다.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면, 오로지 그들이 실제한다는 사실이 가진 힘만으로도 너희는 그들에게 크나큰 존경을 부여하고, 그들의 말에 크나큰 무게를 실어주기를 강요받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대중 스스로가 자기 나름의 지혜에 이르는 쪽이 더 낫기 마련이다. 내면에서 오는 지혜는 다른 사람에게서 얻는 지혜처럼 쉽사리 버려지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들은 것보다는 자신이 창조한 것에 훨씬 더 오래 매달리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들을 보게 될까요? 이 외계의 방문자들이 진짜 외계인이라는 걸 알 날이 있을까요?

 

, 물론이지. 너희 의식이 성장하고 너희의 두려움이 진정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너희에게 자신들을 밝힐 것이다.

그들 중의 일부는 이미 그렇게 했다-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요새 와서 점점 더 지지를 받고 있는 견해. 사실 이들은 사악한 존재라는 견해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는 존재들도 있나요?

 

사람들 중에 너희를 해치려는 사람들도 있느냐?

 

그럼요, 물론이죠.

 

이런 존재들 중에서 덜 진화된 일부를 놓고 너희는 그런 식으로 판단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 충고를 잊지 마라. 판단하지 마라. 그 존재의 우주형()에서 보면 누구도 적절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경우는 없다.

기술에서 진보했지만 사고방식에서는 그렇지 않은 존재들도 있다. 너희 종족도 다소 그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 악한 존재들의 기술이 그렇게 진보했다면, 우리를 파멸시킬 수도 있겠군요. 어떻게 해야 그들을 막을 수 있나요?

 

너희는 지금도 보호받고 있다.

 

우리가요?

 

그렇다. 너희에게는 너희 나름의 운명을 살 기회가 주어져 있다. 그 결과를 창조하는 건 너희 자신의 의식이다.

 

그게 무슨 뜻이죠?

 

그건 다른 모든 것들에서처럼 여기서도 너희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을 얻으리란 뜻이다.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에게 끌어당기리라. 너희가 저항하는 건 지속되고,

너희가 살펴보는 건 사라진다-원한다면 그것을 다시 한번 재창조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기도 하고, 아니면 그것을 너희 체험에서 영원히 제거하기도 하면서,

너희는 너희가 선택하는 것을 체험한다.

 

흐음.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런 식으로 될 것 같지 않군요.

 

너희가 그럴 수 있는 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를 믿지 못한다.

 

그다지 쓸모 있는 생각은 아니지요.

 

확실히 아니지.

 

20

 

왜 사람들은 당신을 믿지 못할까요?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

 

왜 자신을 믿지 못하는 거죠?

 

그렇게 들었고,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누구한테서요.

 

나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이해가 안 갑니다. 왜 그렇게 하는 거죠?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한 가지 방식이자 유일한 방식이기에. 너도 알다시피, 너희는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너희의 모든 힘을 되찾을 것이다. 그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너희 것인 권력을 쥐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인간 체험에서 가장 큰 두 가지 문제를 이해하고, 그런 다음 해결하려는 세상의 움직임을 막는 게 그들이 계속해서 권력을 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두 가지 문제의 해결이라뇨?

 

, 나는 이 책에서 그 문제들에 대해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이야기했다. 요약해보면.......

세상 문제들과 갈등들, 개인으로서 너희 각자의 문제와 갈등들의 전부는 아니라 해도, 그 대부분은 하나의 사회로서 너희가 다음과 같이 했을 때 풀리고 해결될 것이다.

1.‘분리의 개념을 포기한다.

2.‘투명성의 개념을 받아들인다.

두 번 다시 너희 자신을 서로 분리된 존재로 보지 말며, 내게서 분리된 존재로 보지 마라. 두 번 다시 누구에게든 완전한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지 말며, 두 번 다시 나에 대한 너희의 가장 위대한 진리보다 못한 것을 받아들이지 마라.

첫 번째 것을 선택하면 두 번째 것은 따라 나올 것이다. 너희가 모두와 하나라는 사실을 느끼고 이해할 때, 너희는 진실 아닌 것을 말하거나, 중요한 자료를 알리지 않거나, 남들에게 완전히 투명하지 않은 어떤 것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너희를 가장 이롭게 하는 것임을 너희가 확신할 것이기에.

하지만 패러다임을 이렇게 바꾸려면, 위대한 지혜와 위대한 용기, 대중의 결단이 필요하다. 두려움이 이 개념들의 심장부를 때릴 것이며, 그 개념들을 틀렸다고 주장할 것이기에. 두려움은 이 장대한 진실들의 핵심을 파먹어들어가, 그것들이 텅 빈 것처럼 보이게 만들 것이다. 두려움은 왜곡하고 멸시하고 파괴할 것이다. 그리하여 두려움이야말로 너희의 가장 큰 적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너희는 궁극의 진리, 즉 너희가 남들에게 한 짓이 자신에게 한 짓이며, 너희가 남들을 위해 하지 못한 것이 자신을 위해 하지 못한 것이고, 남들의 고통이 너희의 고통이고, 남들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어서, 너희가 그 중 일부를 부인한다면 너희는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라는 궁극의 진리를 지혜로서 깨닫고 명백히 하지 않는다면, 또 그렇게 할 때까지는, 여지껏 갈망해왔고 언젠 꿈꿔왔던 사회를 갖지 못할 것이며,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자신을 되찾을 때가 왔다. 이제 자신을 다시 한번 참된 자신으로 고쳐보고, 그리하여 다시 한번 자신을 투명하게 만들 때가 왔다. 너희가 투명해질visible , 너희와 신의 참된 관계가 투명해질 때, 우리는 나눌 수 없게indivisible 되리라. 다시는 어떤 것도 우리를 나눌 수 없으리라.

그리하여 설사 앞으로 너희가 다시 분리의 환상 속에서 살면서 그것을 너희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는 도구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너희는 그 환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계몽된 육화(肉化)를 경험해갈 것이다. 다시 말해 너희를 기쁘게 해줄 우리 자신의 어떤 측면을 체험하기 위해 그것을 즐겁고 기쁘게 사용하겠지만, 그럼에도 더 이상 그것을 실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에서 계몽된 육화(肉化)를 경험해갈 것이다. 이제는 너희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기 위해서 망각이라는 방책을 사용할 필요가 없고, 분리를 의식적으로 사용하여, 단지 특정 목적과 특정 이유를 위해서만 분리됨을 명백히 하는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너희가 완전히 계몽되면, 즉 다시 한번 빛으로 채워지면, 심지어 너희는 다름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해 물질계로 되돌아가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어떤 새로운 측면을 창조하고 체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진리의 빛을 이 환상의 땅에 가져오기 위해서, 이 물질계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빛을 가져오는 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깨달음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미 이렇게 해온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우리가 누구인지알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이곳에 왔나요?

 

그렇다. 그들은 계몽된 영혼, 진화된 영혼들이다. 그들은 더 이상 다음 단계의 더 높은 자기체험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가장 높은 체험을 가졌다. 그들은 이제 오로지 그 체험 소식을 너희에게 가져다주기만을 바란다. 그들은 너희에게 좋은 소식들을 가져다준다. 그들은 너희에게 신의 길과 신의 삶을 보여줄 것이다. 그들은 나는 길이요, 생명이니, 나를 따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들은 너희를 위해 신과의 의식적인 합일(合一), 즉 신적 의식이라는 영원히 계속될 영광 속에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본보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항상 결합되어 있다. 너희와 나는, 그렇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것은 그냥 불가능하다. 너희는 지금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같은 결합을 체험하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육체를 지니고 살면서도 존재 전체와 의식적으로 결합하고, 궁극의 진리를 의식적으로 깨달으며, ‘참된 자신을 의식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너희가 이렇게 할 때, 너희는 다른 모든 사람들, 여전히 망각 속에서 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너희는 살아 있는 깨우치는 자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너희는 다른 사람들이 망각 속에서 영원히 길을 잃지 않도록 구해준다.

망각 속에서 영원히 길을 잃는 것, 이것이 바로 지옥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단 한 마리 양도 길을 잃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니, 목자를 보내리라.......

나는 많은 목자들을 보내리라. 그리고 너 자신도 그들 중 한명이 되길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네가 그들의 선잠에서 영혼들을 깨어나게 할 때, 다시 한번 자신들이 누구인지일깨울 때, 하늘의 모든 천사들이 이 영혼들을 위해 기뻐하리라. 한때 잃어버렸던 그들을 이제 다시 찾았기에.

 

지금 이 순간 우리 지구에도 이같은 사람들, 신성한 존재들이 있다는 거군요. 제 말이 맞지요? 과거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요?

 

그렇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 왔고, 앞으로도 항상 있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스승도 없이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양떼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니, 언제나 그 뒤를 이어 내 목자들을 보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너희 행성에는 많은 목자들이 있다. 그리고 우주의 다른 부분들에서도 마찬가지고. 이 존재들은 우주의 어떤 부분들에서 끊임없이 최고의 진리와 교류하고, 최고의 진리를 표현하면서 함께 살고 있다. 이것들이 내가 말한 계몽된 사회들이다. 그것들은 존재하며 그것들은 실제한다. 그리고 그 사회들은 너희에게 그들의 밀사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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