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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대의 37 - 차원계 본문
신지학 대의 37 - 차원계
차원계
여러 계들을 도표로 나타낼 때 우리는 대개 그것들을 마치 책장의 선반들처럼 층층이 놓여 있는 것으로 그린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그림 그대로가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계들은 상호간에 삼투되어 있고 항상 이곳,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말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어떤 면에서 보면 책장의 선반처럼 배열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질계의 상태로부터 비유를 들어보면 이렇다. 우리는 고체를 편의상 우리 발 밑에만 존재하는 물질의 최저층으로 생각하자. 물론 무수한 고체 입자들이 우리 머리 위 공중에 떠돌고 있긴 하지만. 그리고 지상의 액체 질료(주로, 물)는 고체 질료의 표면 위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엄청난 양의 물이 지하에 침투해 있을 뿐만 아니라 구름의 형태로 공중에 떠올라 있기도 하다. 아무튼 방대한 양의 물이 대양, 호수, 강 등의 형태로 고체 위에 놓여 있다. 지구의 기체 질료는 물의 표면이나 딱딱한 지표면 위에 있고 액체나 고체보다 공간상에 훨씬 더 많이 뻗어 있다.
이처럼 물질의 세 가지 상태가 이곳 우리가 사는 지상의 표면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구름의 형태로 있는 물은 일반적인 먼지보다 훨씬 더 높이 지상 위로 뻗어 있다. 그리고 공기는 비록 액체나 고체에 삼투해 있기도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확장돼 있다.
이것은 고급계 질료의 배열을 설명하는데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이른바 아스트랄계는 지구의 아스트랄체라 할 수 있다. 아스트랄계는 우리 주위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발 밑의 고체 흙에 삼투해 있고 또한 머리의 아득히 높은 곳까지 뻗어 있다.
우리는 아스트랄계를 아스트랄 질료로 된 거대한 공으로 생각할 수 있고 지구는 그 가운데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육체가 아스트랄 질료로 가득한 난형체(卵形体, ovid form)안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인간의 경우 아스트랄 질료의 가장 농밀한 집합이 육체의 주위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의 경우에도 물질체의 범위 내에 아스트랄 질료의 대부분이 몰려 있다.
그러나 지구의 아스트랄계는 거의 달 궤도의 중간 거리까지 미치고 있어서 달이 근지점(近地點)에 올 때면 지구와 달의 아스트랄계는 서로 접촉하게 된다. 그러나 원지점(遠地點)에 있을 때는 접촉하지 못한다. 바로 이 때문에 어느 일정한 달에는 달과의 아스트랄 통신이 가능하다가도 또 어떤 때는 불가능하게 된다. 나는 어떤 사자(死者)가 달에 가서 돌아올 수 없게 된 경우를 알고 있다. 그것은 아스트랄 질료의 연속성 문제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주의 조수(潮水)가 지구와 달 사이에 흐르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는 달이 지구에 가까이 접근하여 아스트랄 교합이 다시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지구의 멘탈계는 아스트랄계가 지구에 대해 갖는 크기와 동일한 비례의 크기를 갖고 있다. 멘탈계는 거대한 구(球)로서 지구의 물질계, 아스트랄계와 동심원을 이루고 있으며 이 양자에 삼투되어 있다. 그러나 아스트랄계보다 중심으로부터 훨씬 더 멀리까지 확장돼 있다. 따라서 선반의 형태로 제계(諸界)의 도표를 그린 것도 일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나면 아스트랄 질료와 멘탈 질료로 이루어진 외피(外皮)가 있고 그 외부에는 다시 멘탈 질료로만 이루어진 외피가 있다.
지구의 붓디계가 미치는 범위는 엄청나게 커져서 우리 체인(chain)의 다른 혹성들의 붓디계와 서로 접촉한다. 그러므로 전체 체인에는 하나의 붓디체만이 존재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붓디 차원에서는 이 혹성들 상호간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식으로 니르바나계에 이르면 그 질료는 다른 체인들을 포함시킬 정도로 아주 멀리까지(전체 태양계까지) 확장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진실이지만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진정 정확히 전달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단지 3차원까지만 파악할 수 있는 반면 실제로는 더 많은 차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식을 한 차원, 한 차원 높여 갈 때마다 각 단계는 우리 앞에 또 다른 차원에 대한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이 때문에 물질적인 삶으로부터 다른 계들로 통과한 자들의 위치를 정확히 묘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 사람들 중의 일부는 이승의 친구들 또는 익숙한 장소와의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지상의 집 주위를 배회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대다수의 아스트랄계 거주자들은 비교적 지상의 표면과 가까운 곳에서 삶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 속으로 물러나 의식이 고급한 질료와 접촉하게 되면 지표면으로부터 솟아올라 요란 유동(disturbing currents)이 적은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전보다 쉽고 자연스럽게 됨을 알게 된다.
천계로 간 일반 사람들은 지표면으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부유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우리 차원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아직도 우리들 중에는 천계의 주민들이 지상의 특정 구역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령가들이 말하는 소위 서머랜드(summer-land)는 우리 머리 위로 수마일 가량 뻗어 있다. 거기에는 동일 인종과 동일 종교의 사람들이 생전처럼 사후에도 함께 모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서머랜드들의 네트워크라 할 수 있는 것들의 각각에 동일한 유형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은 바다에 표류하는 물체처럼 아스트랄계에서 자신의 차원에 있게 된다.
이것은 그들이 의지에 따라 부침(浮沈)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어떤 특별한 노력 없이는 자기 차원에 머물러 있게 된다. 아스트랄 질료는 물질처럼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아스트랄 질료와 물질은 동일한 일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아스트랄계의 제6 부분계는 부분적으로 지표면과 일치하며 가장 낮은 제7부분계는 지구 내부를 어느 정도 관통하고 있다.
지구의 내부 상태를 설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광대한 동굴들이 지구 내부에 존재하고 그곳에 종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동일한 진화선상에 있지 않다. 그들 중, 지상의 어떤 인종보다도 저급한 수준의 한 종족에 대해서 <알키온의 생애들> 내용 가운데 알키온의 17번째 인생에 어느 정도 묘사되어 있다. 그들 중 어떤 인종은 우리 수준에 거의 근접하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과도 전혀 같지 않다.
지구의 중심에 다가갈수록 물질은 우리가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로 존재한다. 그곳의 물질은 우리에게 알려진 어떤 금속보다도 훨씬 더 밀도가 높은 상태이면서도 물처럼 빠르게 유동한다. 그러나 심지어 그것의 내부에도 어떤 다른 것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한 질료는 일반적인 생명체가 이용하기에는 너무나 농밀한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독자의 진화 노선을 가진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
지구 중심의 엄청난 압력은 제3 로고스가 새로운 원소들을 만들어 내는데 이용된다. 사실 지구의 중심 부분은 그의 실험실로 여겨질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지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온도와 압력을 거기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그의 인도 아래 특별한 데바와 자연령 무리가 놀라운 이중 나선상(double spiral form)을 따라 작용하며 궁극적인 물질 원자들을 결합, 분리, 조정, 재배열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지점으로부터 지구는 태양의 심장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거기서 만들어진 원소들은 지표를 통과하지 않고 지구의 중심에 나타난다.
그러나 우주의 고차원계들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더 높아지기 전에는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지구의 내부를 조사해 가는 동안 우리는 극과 극을 관통하는 중앙 수갱(竪坑)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다만 동심층(同心層)들을 관통하여 작용하는 어떤 힘들이 있기는 하였다.
물질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스트랄 질료 중 가장 밀도가 높은 것은 일반적인 아스트랄 생명체가 이용하기에 전혀 맞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아스트랄 질료 또한 일반 학인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다.
대기압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명 에텔 압력이 있다. 따라서 사람이 어떤 내(耐)에텔 물질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힘을 활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압력이 아스트랄계에도 존재한다. 이에 대한 가장 평범한 예가 사람이 수면이나 죽음의 과정을 통해 육체를 떠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스트랄체가 육체에서 이탈된다 해도 그 육체가 아스트랄 대응체 없이 남겨진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그때 주변 아스트랄 질료의 압력―이것은 사실상 아스트랄계에 중력의 힘이 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은 즉각적으로 다른 아스트랄 질료를 빈 공간에 밀어 넣는다. 마치 우리가 대류를 만들어 방으로부터 공기를 배출시키고 주변 대기로부터 다른 공기를 동시에 유입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삼투해 온 아스트랄 질료는 그 육체와 정확히 일치한다. 모든 물질은 상응하는 밀도의 아스트랄 질료를 끌어당긴다. 따라서 고체에는 고체 아스트랄 질료(편의상 명명한다면), 즉 최저급 아스트랄 부분계(제7 부분계)의 질료가, 액체에는 아스트랄 액체(제6 부분계의 질료)가, 기체에는 아스트랄 기체(제5 부분계의 질료)가 각각 삼투되어 있다.
물이 들어 있는 유리잔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유리잔(고체)에는 최저급 아스트랄 부분계(제7 부분계)의 질료가, 잔 속의 물(액체)에는 제6 부분계의 질료가, 잔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기체)에는 제5 부분계의 질료가 삼투되어 있다. 우리는 또한 이 모든 것들(컵, 물, 공기)이 에텔 질료에 의해 삼투되어 있는 것처럼 그것들의 아스트랄 대응체도 에텔 질료에 상응하는 다른 종류의 다양한 아스트랄 질료에 의해 삼투되어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육체로부터 아스트랄체가 이탈되었을 때, 모두 세 종류의 아스트랄 질료가 쇄도해 온다. 왜냐하면 인간의 육체는 고체, 액체, 기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육체에는 에텔 질료 또한 내재해 있다. 따라서 그것에 상응하는 고급 부분계의 아스트랄 질료가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진짜 아스트랄체가 빠져나간 동안 일시적으로 형성된 아스트랄 대응체는 그 배열에 관한 한 정확한 복사판이다. 그러나 아스트랄 대응체는 육체와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매체로서 이용될 수는 없다. 그것은 그때그때 편의상, 요구되는 종류의 아스트랄 질료로 구성된 것이다. 즉, 단순히 우연한 원자들의 집합으로, 진짜 아스트랄체가 돌아오면 아스트랄 대응체는 아무런 저항 없이 밀려나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잠을 잘 때 주변 환경에 세심한 주의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만일 주변 환경이 나쁘면 수면 중 아스트랄체가 이탈되었을 때 매우 불쾌한 아스트랄 질료가 우리 육체를 채울 것이고 후에 의식이 돌아오면 부정적인 반작용을 야기하는 영향을 남기기 때문이다. 아무튼 육체를 이탈하여 나왔을 때의 아스트랄 질료의 순간적인 유입은 아스트랄 압력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최후에 죽어서 육체를 떠나면 그 육체는 더 이상 매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며 단지 시체에 불과하게 된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육체가 아니라 단지 육체의 형상을 한, 분해되고 있는 물질의 집합체일 뿐이다. 우리가 시체를 더 이상 진정한 육체로 부르지 않듯이 그것에 삼투해 있는 아스트랄 질료 또한 그 단어가 갖는 일상적 의미의 진정한 대응체라고 부를 수 없다.
불완전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의미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다. 엔진의 실린더에 증기가 가득 찰 때 우리는 그 증기를 엔진을 움직일 수 있는 추진력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엔진을 가동하지 않을 때도 실린더에는 공기가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공기가 증기와 동일한 장소를 차지하고 있다 해도 진정한 엔진의 추진력은 아니다.
아스트랄 고체는 결코 고체가 아니며 단지 상대적으로만 고체일 뿐이다. 알다시피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아스트랄 질료를 물로 상징하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갖는 유동성, 투과성 때문이다. 사실 물질계상의 고체의 대응체는 언제나 최저급 아스트랄 부분계의 질료로 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편의상 아스트랄 고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이 3차원적 고체의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밀도가 높은 아스트랄 질료의 입자라 할지라도 그것은 기체 입자보다 훨씬 더 밀도가 낮다.
따라서 최고 밀도의 아스트랄체 두 개가 서로 관통하는 것이 기체가 공중에 흩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일일 것이다. 아스트랄계에서는 사람이 절벽을 뛰어 넘는다는 식의 관념은 없으며 단지 그 위를 떠간다는 것이 적당한 표현이다. 당신이 지상에 서 있다면 당신의 아스트랄체의 일부분은 발 밑 땅속까지 관통해 있다. 그러나 당신은 아스트랄체를 통해 어떤 딱딱한 느낌이나 움직이는 힘의 어떤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아스트랄계에서는 물질계의 촉감과 같은 감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도 어떤 것의 표면을 건드려서 그 촉감의 딱딱함과 부드러움, 거칠고 매끄러움, 뜨겁고 차가움 따위를 느낄 수 없다. 하지만 대신 그것을 관통하여 어떤 다른 진동 수준을 의식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기쁨, 불쾌감, 흥분, 실망감 등을 느낀다. 아침에 깨어나자마자 우리는 일상적인 촉감과 같은 어떤 감각을 느끼는데 그것은 단지 기억을 상기시킴에 있어 두뇌가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 수단(즉, 촉감)을 채택한 것일 뿐이다.
모든 차원계의 빛은 태양으로부터 오지만 그것이 아스트랄계에 미치는 효과는 물질계에서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아스트랄계의 빛은 산광(散光)으로서 분명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부터 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아스트랄 질료는 그 자체로 발광성을 가진다. 아스트랄체는 채색된 체(體)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불로 된 체(體)이다. 그것은 또한 투명하며 그림자가 없다. 아스트랄계는 결코 어둡지 않다. 구름이 태양을 막고 있어도 아스트랄계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고 밤에도 마찬가지이다.
‘안 보이는 조력자’가 만일 산을 장애물로 인식한다면 그는 그것을 통과할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이 장애물이 아님을 배우는 것이 소위, ‘지상의 테스트’의 한 목표로서 치밀하게 마련되어 있다. 아스트랄계에서는 우리식 개념의 사고(事故)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스트랄체는 유동적이기 때문에 육체와는 달리 파괴되거나 영구적 손상을 입지 않기 때문이다.
아스트랄계상에서의 폭발이 일시적인 파괴를 가져오기는 한다. 마치 물질계에서의 화약의 폭발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스트랄 파편들은 신속하게 재합성된다. 아스트랄계의 사람들은 상호간에 관통하여 지나갈 수 있으며(또 그렇게 지나간다) 아스트랄 고착물들을 통과할 수 있다.
아스트랄계의 질료는 매우 유동적이며 밀도가 매우 희박하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충돌과 같은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일반적인 상황하에서 교착되어 있는 두 아스트랄 물체는 상호간에 눈에 띄는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교착 현상이 얼마 동안 지속되게 되면 사실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은 예를 들어 두 사람이 교회에서 바로 곁에 앉아 예배를 보거나 극장에서 연극을 공연하면 서로 간에 큰 영향력이 생기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세상에는 의지가 약한 사람들, 의지는 갖고 있으나 그것을 이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휩쓰는 많은 유동(currents)들이 있다. 물질계에서의 삶을 사는 동안 우리 아스트랄체의 질료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러나 사후에 그러한 유동을 막기 위해 의지를 행사하지 않으면 조악한 질료로 된 외피에 감싸인 동심원 껍질들 속에 고착되어 버린다.
만일 아스트랄계에서 일하기를 바란다면 그렇게 껍질에 갇혀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아스트랄체가 재배열, 고착화되어 버린 사람들은 하나의 차원에 묶여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이미 이렇게 고착화되었다면 그러한 상태를 깨뜨리고 아스트랄계 전체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아스트랄계에서 안 보이는 조력자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리된 차원은 없으며 그것들은 모두 하나이다.대기나 기후 조건은 아스트랄계나 멘탈계에서의 활동에 아무런 실제적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큰 도시에서 활동할 때는 상황이 크게 달라지는데 그것은 도시에 있는 엄청난 양의 상념체들 때문이다. 어떤 영능자들은 최적의 활동을 위해 화씨 80도의 기온을 필요로 하며 어떤 사람들은 비교적 더 낮은 기온이 아니면 잘 활동하지 못한다.
만일 필요하다면 오컬트 활동은 어디에서도 행해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장소는 다른 장소보다 훨씬 용이한 환경을 제공해 준다. 예를 들어서 캘리포니아의 기후는 매우 건조하고 대기에 전기가 많아 투시력의 계발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곳 아디야르에는 환경으로 인한 상념체의 저항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념이 거의 모두 동일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상념을 보내 주고 있는 사람들 쪽의 저항이 언제나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일생 동안 이기성의 껍질들을 자기 주위에 만들어 왔다. 그래서 심지어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조차 그것을 꿰뚫고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출처] 신지학 대의 37 - 차원계|작성자 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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