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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대의 35 - 삼중영 본문

영성수행 비전/신지학

신지학 대의 35 - 삼중영

柏道 2025. 1. 24. 12:53

신지학 대의 35 - 삼중영

 
 
 
 
 

삼중영(三重靈)

 

모나드들은 분명 모두 로고스 안의 힘 센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모나드는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서 모나드는 자아나 인성(이것들은 모나드의 하위 표현이다)과 거의 접촉하고 있지 못 하다.

 

모나드는 처음부터 진화의 목적과 일반 추세를 알고 있다. 그러나 자아 속에서 표현된 그 자신의 일부분이 아주 고도의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모나드는 이곳 지상의 삶의 세부 사항에 대해 거의 의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모나드는 다른 모나드들을 알지 못 하고 주변에 대한 어떤 실제적인 의식 없이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축복 속에서 쉬고 있다.

 

그러나 진화가 계속돼나감에 따라 저급계의 일들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그것들을 자기가 완전히 담당한다. 이 단계에서 그는 자신과 다른 모나드들을 모두 알며, 우리 안에 있는 모나드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침묵의 소리가 된다.

 

우리에게 있어 침묵의 소리는 각 단계마다 다르다. 지금 이렇게 저급 의식 상태에 있는 우리들에게 그것은 자아의 소리이다. 우리가 자아와의 일체성을 인식하게 될 때 그것은 영(靈, 아트마)의 소리이다. 우리가 영에 도달할 때 그것은 모나드의 목소리이다.

 

그리고 아득한 미래에 우리가 모나드와의 일체성을 깨달을 때 그것은 로고스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우리는 저급한 것을 복종시켜 그 위로 넘어서 일어서야 하며 그때야 비로소 보다 고급한 계(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모나드는 자연의 제2 단계, 즉 모나드계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 모나드가 제3 계인 니르바나계(아트마계)로 하강하면 그것은 삼중영(Triple Spirit)으로 현현하게 된다. 이 삼중영은 로고스가 존재의 제계(諸界)에 자신을 현현시킬 때 그의 반영(더 정확히 말하면 로고스의 표현)이다.

 

로고스가 최고급계(아디계)에 최초로 시현될 때 그것 역시 삼중(*주2)이다. 로고스의 제1 면은 최고급계에만 현현하고 하위계에는 현현하지 않는다. 로고스의 제2 면은 제2 계(모나드계)에 내려오고 그 곳의 질료로 외피를 둘러 자신을 완전히 분리, 표현한다. 로고스의 제3 면은 제3 계(아트마계)의 상부에 내려와 그곳의 질료로 감싼다.

 

이 셋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 안의 삼자(三者)이다. 아타나시우스 교의는 우리에게 삼자를 혼동하지도 실체를 나누지도 않은 상태에서 삼위 안의 유일 신, 유일 신 안의 삼위, 즉 삼위일체 신을 예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마음 속에서 각 계(界)에 분리 표현된 삼자의 활동과 기능을 혼동하지 말고 실체의 궁극적 통일성또한 잊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 실체는 이 삼자가 하나로 있는 차원인 최고급계에서 모든 것의 배후에 살고 있다.

 

이제 이 과정의 반복이 정확히 인간의 경우에도 일어난다. 진실로 인간은 신의 상(像)을 좇아 만들어진 것이다. 제3 계인 아트마계에 있는 영(靈)은 삼중이다. 그 세 가지 현현 중 최초의 것(아트마)은 아트마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두 번째 현현은 한 단계 하강하여 제4 계인 붓디계에서 그 곳의 질료로 옷을 입는다. 그것이 바로 이른바 ‘붓디’라는 것이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세 번째 현현은 두 단계 하강, 멘탈계의 최고급 차원의 질료로 외피를 두른다. 그것을 우리는 ‘마나스’라고 부른다.

 

아트마-붓디-마나스, 이 삼자는 코잘체 안에 현현하며 우리가 일컫는 자아가 된다. 자아는 마나스만이 아니라 영적인 삼위일체임을 잊지 말라. 우리의 현 진화 단계에서 자아는 멘탈계의 고급 차원에 있는 코잘체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자아가 상향으로 나아감에 따라 그의 의식은 붓디계에 중심을 두게 될 것이며 후에 아데프트의 경지에 오르면 그것은 니르바나계(아트마계)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고급한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마나스가 상실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아가 붓디계까지 상승했을 때 그는 멘탈계의 마나스를, 이제까지 완전히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붓디계에 항상 존재해 온 마나스의 표현 속으로 당겨온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자아가 니르바나계로 상승할 때도 마나스와 붓디는 그 안에 언제나처럼 완전히 존재하며, 그리하여 이제 삼중영이 그의 계(界)에서 삼면(三面) 모두 표현되게 된다. 따라서 영(아트마)은 실제로 칠중(七重)이다. 왜냐하면 그의 계인 아트마계에서 세 겹, 붓디계에서 두 겹, 멘탈계에서 한 겹 그리고 종합된 통일체(Unity)까지 하여 일곱 겹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자아가 보다 상향으로 진화해 간다 해도 하위의 특성(본질, definiteness)은 유지하고 있다. 블라바츠키 여사가 오라 알(auric egg)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아마 이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 개념을 신비로 감싸 버렸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공개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 상태에 있었던 것같다.

 

그녀는 삼중영에 대해 분명한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확실히 그런 개념에 대한 암시를 주려고 애썼다. 그녀는 아스트랄계가 붓디계의 반영이라고 말할 수 있듯이 물질계는 니르바나계의 반영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척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 그녀는 물질계의 인간에게는 세 개의 체, 즉 탈것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분명 개념을 일치시키기 위해 궤도를 이탈한 것이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 그녀는 인간의 물질체를 육체와 에텔체, 둘로 나누고 거기에다 제3의 원리로서 그것들을 통해 흐르는 생명력(vitality)을 추가해 넣었다. 그러나 생명력은 모든 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물질계상에서처럼 아스트랄계와 멘탈계상에도 이 추가 원리를 만들어 넣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녀가 이런 다소 독특한 배열을 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 이유는 실제로 언급은 않았지만 암암리에 삼중영을 가리키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에 있지 않나 한다. 베산트 여사의 말에 따르면 블라바츠키 여사가 신성한 오라 알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니르바나계 질료의 외피 안에 있는 4개의 영구 원자를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