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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Ch 47 뱀처럼 지혜로워라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네빌 고다드

Ch 47 뱀처럼 지혜로워라

柏道 2022. 8. 13. 11:30

Ch 47 뱀처럼 지혜로워라
 
 
.....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라.
- 마태복음 10:16
 
.......................................................................................
 
사람들은 뱀이 자신의 일부분을 단단한 껍데기로 만들고
그것보다 몸집이 커져 껍데기를 던져버리는 행동 때문에,
뱀을 ‘끝없는 성장’과 ‘스스로 다시 태어난 힘’의 상징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뱀처럼 지혜롭게 되어서 자신의 껍데기, 즉
자신의 환경 - 자신의 단단한 자아 -을 던져 버리는 방법을 배우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그를 풀어주어 그가 가게끔 하는” 방법을,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방법을,
“옛 사람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하지만 뱀이
자신의 낡은 껍데기를 벗어버렸을 때 죽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이전의 관념]을 던져버린 자신도 “죽지 아니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벗어나 있는 [외부의 것들] 역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세상]과 [삶의 모든 조건들]은
[의식상태]가 [바깥으로 그려져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직까지 알지 못합니다.

이 [진리]를 알게 되면
더 이상 무익한 자신에 대한 투쟁을 그만 두고,
뱀처럼
[옛것들은] 내보내고 [새로운 *환경을] 자라게 할 것입니다.
 
 
 
인간은 무한하기에, 끊임없이 죽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삶은 하나의 창조적인 생각이어서
삶은 변화하는 모습들 안에서만
삶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타고르
 

고대인들은 뱀을 보물이나 부의 수호자로 생각했습니다.
“뱀처럼 지혜롭게” 되라는 명령은
뱀처럼 지금의 한계를 깨고 더 자라나서, 옛 것에는 죽음을 주지만
자신은 죽지 않고 잠들어 있는 섬세한 체 - 상상력 - 의 힘을
깨우라는 충고입니다.

[낡은 것]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것]을 입는,
오직 그런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만
[꿈을 성취]하고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뱀은 주 하느님이 만드신 들판의 어느 짐승보다도 더 섬세한” 것처럼,
상상력 역시
주 하느님이 만드신 하늘나라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섬세합니다.


헛된 것에 굴복하는 것은 자의가 아니요,
오직 소망 가운데 그것들을 굴복케 하는 그 때문이니라...
이는 우리가 소망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허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더라.
사람이 보는 것을 왜 바라리요?
그러나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란다면
인내로 기다릴지니라.
- 로마서 8:20,24,25


외적인 감각에 의존하는 “현세적인”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고 살게 되지만,
영적인 상상력에 의존하는 사람은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삽니다.
우리 인간이 외부의 환경에 완전하게 결속돼 있는 존재라면,
“뱀처럼 지혜롭게” 되라는 격언은 쓸모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들에 완전히 결속되어 있다면
감각이 내놓는 증거로부터 의식을 철수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상태]가 [새로운 *환경]으로 모습을 굳히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 속에서 소원이 성취된 상태를 느끼지 못합니다.


현세적인 몸이 있고, 또 영적인 몸이 있더라.
- 고린도전서 15:44


상상력이 갖고 있는 [영적인 몸]은 환경들에 묶여있지 않습니다.
[영적인 몸]은 감각과 환경이라는 외적인 인간으로부터 철수해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영적인 몸]이 마음속에서 본 형상에 [믿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상상력은 인간이 [새로 거주하게 될 처소]를 만들 것입니다.


... 나는 그대를 위하여 처소를 준비하러 가노라.
내가 가서 그대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그대를 내게 영접하여
내가 있는 그곳에 그대도 있게 하리라.
- 요한복음 14:2,3


여기서 말하는 [처소]가 꼭 [장소]에 국한될 필요는 없습니다.
[건강]이나 [부] 사람들과의 [관계] 등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준비된 처소를 어떤 모습입니까?

여러분이 실제로 육체를 가지고 그 [처소]에 있다면
보고 들을 만한 것으로 먼저 그 장면을 생생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 몸을 움직이지 말고
여러분이 육신을 지니고 그 자리에 있었다면
보고, 듣고, 행동하였을 만한 모든 것을
그 처소에서 보고 듣고 행동하는 것을 상상해야 합니다.

이것이 현실처럼 느껴질 때까지 [계속 반복]하고 [반복]하십시오.


자연스럽게 이 장면이 느껴졌다면
그 [처소]는 여러분의 외적이고 육체적인 자아를 위해
[새로운 환경]으로 준비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눈을 뜨고 이전의 상태로 돌아옵니다.
상상 속에서 있었던 그 [처소]는 준비되었고,
여러분은 이제 육신을 가지고 그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상상 속에서 머물었던 상태가
어떻게 물질적으로 모습을 드러나게 되는지에 관해서는
현세적이고 외적인 여러분이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영적인 몸은 상상 속에 있다가 현실로 돌아왔지만
이미 상상한 곳과 현실 사이에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건의 다리]를 놓았습니다.
여러분이 이 객관적인 세상에서 눈을 뜨게 될 때
상상 속에서 현실처럼 경험했던 것들이 사라져버렸다고 느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순간
[현세적인 육체가 있고, 영적인 육체가 있다]는 구절처럼
두 개의 자아에 대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 아니 [현세적인 인간]이 이런 경험을 가졌다면
자동적으로 그는 사건의 다리를 건너게 될 것이고,
보이지 않게 준비된 처소는 현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 개념은 인간이 [이중적인 존재]이며,
상상력이라는 내적인 인간이 [미래에 머물렀다가 현재로] 돌아오게 되면
[미래와 현재를 이어주는 사건의 다리]와
[존재와 현상에 대한 넓은 시야]를 가지고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관념]을 크게 흔들어 놓습니다.
또한 [시공간]과 [물질]에 관한 관념에도 큰 혁명이 일어납니다.

[상상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개념이 진실이라면,
단단한 실체라고 여겨졌던 [현실]은 단지 [마음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는 거부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식이 거부했던 많은 가정들이
다시 진리로 판명되었던 수많은 일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처음에 내렸던 판단들이 후에는 계속해서 뒤집히는 것을 보면서,
[화이트헤드] 교수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보였던 것들이 미래에는 진리로 증명될지,
증명되지 않을지는 오직 하늘만이 알고 있다.

창조의 힘은 인간 안에 잠들어 있고, 깨어나야만 한다.

잠자는 자여 깨어나라,
그리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 에베소서 5:14


외부의 세상이 여러분의 삶의 환경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죽은 과거로부터 일어나, [새로운 환경]을 창조하십시

그대가 하느님의 성전인 것과
하느님의 영께서 그대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고린도전서 3:16



여러분 안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영]은 여러분의 [상상력]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여러분과 함께했던 감각의 장벽 위로
여러분을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잠들어 있는 상상력을 깨워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뱀처럼 지혜롭게] 되었을 때,
여러분 앞에 열린 무한한 가능성은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경험하고 싶은 이상적인 조건]과
[살고 싶은 이상적인 환경]을 선택할 것입니다.
[이런 상태]들이 [상상 속에서 생생한 감각]으로 느껴질 때까지 [경험]한다면,
뱀이 자신의 껍데기를 단단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역시 내부의 감각을 단단한 현실이라는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후에
여러분이 그 상태보다 더 성장한다면
뱀들이 자신의 껍데기를 던져버리는 것처럼
여러분도 그 상태들을 쉽게 던져버릴 것입니다.
모든 창조물의 목적인 [보다 풍요로운 삶]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는 얻어질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형체를 원했기에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창조행위를 하고 있는 하느님의 영]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창조된 형체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일]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형체보다 계속해서 보다 더 크게 성장해 나갈지라도
그것이 좋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분은 확장되는 기쁨의 방을 통해서
황홀함이 고동치는 곳까지 인도하시니,
그곳은 영원히 멀어지고 있는 마지막이라.

왜냐하면 그분의 손길은 무한하시고
모든 마지막을 본다면 보다 먼 곳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라.

...

또 내가 땅에서 들려지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올 것이더라.
- 요한복음 12:32


만약 내가 감각의 증거에서
내가 실현하기 원하는 의식의 상태까지 들어 올려져
그 상태가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그 안에 머문다면,
나의 주변에 그 상태를 만들어낼 것이고,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상상 속의 삶이 유일한 삶]이고 [소망이 성취된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더 풍요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지,
도피주의자의 변명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게 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확장되는 기쁨의 방을 통해]
[상상의 세계 안에서 사는 것들]을 보기 위해서,
즉 [세상을 감상하고 즐기기] 위해서
그 사람은

상상 속에서 살아야만 하고,
꿈을 꾸고,
그 꿈을 차지해 나가야만 하고,
그리고 보다 더 성장하여
그 꿈보다 영원히 더 크게 성장해나가야만 합니다.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차지하기 위해서
[현재의 삶]을 과감히 던져버리지 않는
[자기만족]의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아내일 뿐입니다.
또 반대로
[육신을 영적이지 않다고 여기면서 그것을 무시]하는 사람 역시
위대한 신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느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셨으니.

여러분의 삶은 한 가지를 나타냅니다.
오직 한 가지 그것은 여러분의 [의식 상태]입니다.
모든 것들은 여러분의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상상력]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서
하나의 의식상태를 사실로 받아들일 때,
그 상태는 스스로 [형체의 옷]을 입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뱀의 껍데기가 뱀 주변에서 단단하게 되는 것처럼,
여러분 주위에 [단단한 현실]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 상태]에 믿음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옮겨가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원하는 상태가 [형태]를 취하고 [객관적인 현실]이 될 때까지
‘보이지 않는 상태’ 안에서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인내]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낡은 것]들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것]을 자라나게 하는 데에
일단 [성공]하게 되면, 그 후에는 쉽게 [인내]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우리가 이해를 통해 얻은 것에 따라
우리는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는 인내의 *비밀입니다.

자연스러운 기쁨과 솟아나는 즐거움은
세상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블레이크가 말했듯이
눈을 넘어서 보는 것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기 원하는 것]을 상상 속에서 보고,
그렇게 [마음속에서 본 형상]에 믿음을 유지하십시오.
여러분의 [상상력]은 상상하는 것과 일치하는 [형체]를 스스로 만들 것입니다.


모든 것들은 [상상의 힘]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인간의 상상력 바깥에서는 어떤 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안에서부터 바깥으로]는 우주의 *법칙입니다.

“내부에서와 같이 외부에서도.”

인간은 [진리]를 찾는다고 하면서도 [시선]은 외부로 향해 있곤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선을 내부로 돌리는 것]입니다.


진리는 우리자신 안에 있으니, 그것은 그대가 믿고 있는,
외부에 나타난 것으로부터 솟아나지 아니하더라.
모든 이에게는 가장 깊은 곳의 [중심부]가 있고,
그곳에는 [진리]가 [온전한 형태]로 머물러 있으니,
[깨우친다는 것]은 그곳에 갇혀있는 [광채]가 빠져나올 수 있게끔
그 [길]을 열어주는 것이지,
외부에 있다고 여겨지는 빛이 들어가게끔
그 입구를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 브라우닝, [파라켈수스]



한 젊은 여성이 분노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껍데기를 입은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으실 겁니다.

이 여인이 여섯 살이 됐을 때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그 후로 어머니와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를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일 년에 한 번씩
크리스마스 선물로 5달러씩을 보내왔습니다.
그녀가 결혼한 이후로는, 아버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10달러씩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제 강의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강의에서
누군가가 다른 이를 [의심]한다면
그것은 자신 안에 있는 [사기성]만을 보여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이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수년 동안 감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잠
자신이 품고 있던 원망을 보내버리고,
[원망]이 자리했던 자리에 [따뜻한 행동]을 [새롭게 넣기로] 결심했습니다.
상상 속에서 가장 따뜻한 방식으로
그녀의 아버지를 껴안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의 상상 속의 행동이 [진실한 느낌]이 들 때까지
그 행동을 반복하고 반복했습니다.
그런 후에
그녀는 [아주 만족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잠에 들었습니다.

그녀는 다음날, 우연히
캘리포니아에 있는 큰 백화점의 모피 코너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잠시 동안
자신이 모피 목도리 하나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것을 사기에는 너무 비쌌습니다.
이번에는 흰가슴담비 목도리 하나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아,
그것을 집어 들고는 한번 목에 둘러봤습니다.
목도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난 후에 쓸쓸하게 목도리를 벗고는
솔직히 이것을 살만한 여유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돌려놓았습니다.

가게를 벗어나려 할 때, 순간 멈춰 서서 생각했습니다.
“네빌이 말하기에, 내가 이미 가졌다는 느낌을 가진다면
그것이 무엇이라도 가질 수 있다고 했잖아.”
상상 속에서 그녀는 목도리를 다시 두르고는 [실체]라고 느꼈습니다.
상상 속에서 [그것을 착용하고 있다]는 것을 즐기면서 쇼핑을 하러 갔습니다.


이 젊은 여성분은 이 [두 개의 상상]을 하나로 합쳐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했던 상상]에 대해서는 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몇 주 후 어머니날에, 기대하지 않았던 초인종이 울렸고
그곳에 아버지가 서 있었습니다.
그녀가 아버지를 꼭 껴안았을 때 자신이 했던 첫 번째 상상이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가져온 선물을 풀어 보았을 때 -
최근 동안에 받은 첫 선물이었습니다. -
그것은 자신이 했던 두 번째 상상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흰가슴담비 목도리 하나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대들은 신들이며,
그대들 모두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손들이라.
- 시편 82:6


... 그러므로 그대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라.
- 마태복음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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