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Ch 48 물과 피 본문
Ch 48 물과 피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요한복음 3:3
그 병사들 중 하나가 창으로 주의 옆구리를 찌르니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
- 요한복음 19:34
이 분은 물과 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시니,
물로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니라.
- 요한1서: 5:6
.......................................................................
[요한복음]과 [요한의 서(書)]에 따른다면,
인간은 [다시 태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물]과 [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과 피로 다시 태어나는 [내적 *경험]은
세례와 성찬식이라는 두 가지의 [외적인 의식]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물로 태어나는 것을 상징하는 [세례]와,
구세주를 받아들이는 것을 상징하는 [성찬식]의 포도주라는 외적인 의식이,
인간에게 약속되었던 진정한 태어남과 개개인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지는 못합니다.
물과 포도주를 [외적으로] [사용]한다고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물과 피의 상징 안에 [숨겨진 *의미]로 시선을 돌려야만 합니다.
성경은 진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여러 가지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이때 사용되는 이미지를 [다양한 의미의 수준에 있는 진리]를 상징합니다.
낮은 계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돌입니다. 예를 들면,
... 거대한 돌이 우물의 입구를 덮고 있더라.
그리고 양떼들이 그곳에 모이면 그들이 우물의 입구에서
그 돌을 굴려 내려 양들에게 물을 먹이고 나서
그 돌을 제자리로 가져와 우물의 입구를 덮더라.
- 창세기 29:2,3
... 그들이 돌처럼 바닥에 가라앉았도다.
- 풀애굽기 15:5
돌이 우물의 입구를 막았다는 의미는
상징적으로 드러난 위대한 진리를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 돌을 치운다는 것은
비유와 우화 밑에 깔린 마음에 관한 생명의 정수, 즉
마음에 관한 의미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 아래에 숨겨진 [마음의 진리]가
[물로 상징]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관한 진리]를 [발견한 자]는 사람들에게
물을 떠주게 됩니다.
내 목장의 양떼는 사람들이더라.
- 에스겔 34:31
문자에 얽매여서
마음에 관한 진리인 [물잔]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돌처럼] 바닥에 가라앉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 모든 것들을, [내면의 관계]를 무시한 채
전적으로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만 판단하고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돌에 새겨진 모든 율법들은
문자 그대로 지켜내면서도
정작 그것이 나타내는 [마음의 진리]에 관해서는
하루 종일 어기고 있습니다.
그는 어쩌면, 예를 들어보자면,
문자 그대로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결핍된 모습]으로 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다른 이를 [결핍된 모습]으로 바라본다면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받게 되는 정당한 [상속의 권리]를
다른 이에게서 [빼앗는 것]입니다.
자녀라면 또한 상속자들일 것이니,
하느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들이더라.
- 로마서 8:17
불행해 보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안다면,
여러분은 [그 상황]을 구제해줄 수 있는 [물잔] - 마음에 관한 진리 -을 가진 것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돌로 된 통을 물로 채울] 뿐 아니라, 다시 말해
보이는 사실 이면에 있는 마음에 관한 진리를 *발견해야 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물]을 - 마음에 관한 진리 - [포도주]로 *변화시켜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발견한 진리)에 맞춰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리를 그렇게 사용할 때에만,
그는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볼...” (요한복음 2:9) 수 있습니다.
인간의 [타고난 권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그들의 죄로부터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마태복음 1:21) 위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한 인간의 [구원]은 “물로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자신이나 다른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반드시 *실천]해야만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물]을 말하고,
그것을 행하는 것은 [피]를 말합니다.
“이 분은 물로만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로 오셨더라.”
이 모든 신비는
여러분 또는 다른 이들을 [현재의 한계]로부터 [구원]해 줄
[특정한 의식의 상태]를 가지기 위해서
[상상력]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있습니다.
외적인 의식들은 이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물 주전자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라.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곳으로 가서 그 집 주인에게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제자들과 함께 이번 유월절에 제물로 바쳐진
양을 먹을 객실이 어디냐고 하시더이다’ 하라.
그러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마련한 잘 갖추어지고 준비된
큰 윗방을 보여주리라.
- 마가복음 14:13,14,15
여러분이 [소망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이미 [갖추어져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상상력]은
[소망하는 의식의 상태]와 [내적으로 접촉]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원하는 모습이 된 것]을 *[상상]한다면
여러분은 [물주전자를 가지고 가는 사람]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 안에 머문다면
여러분은 객실 - 유월절 - 안으로 들어가
여러분의 영을 하느님의 손 - 여러분의 의식 - 안에 맡기는 것입니다.
한 인간의 [의식 상태]는
하느님의 무한한 창고에다가
자신이 필요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경제논리처럼 수요는 공급을 만들어냅니다.
여러분은 수요를 - 여러분의 의식 상태 - 바꿔서 공급을 바꾸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이미 원하는 모습이 된 것]을 느껴야만 합니다.
여러분을 [둘러싼 환경]이 의식 상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의식 상태]가 삶을 둘러싼 환경을 만들어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안다면 여러분은 [생명의 물]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구원자] - 문제가 해결된 상태 - 는
단순히 [그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오직 그 [앎]이 삶속에서 [적용]될 때에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소망이 성취된 [느낌]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살 때에만
여러분의 옆구리는 창으로 찔려져,
그곳에서 피와 물이 나오게 됩니다.
오직 이 방법을 통해야만
예수님이 여러분의 문제를 풀어줄 [구세주]가 됩니다.
즉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대 마음의 정부에서는
그대가 그대 자신의 주이고 주인이기에,
그대의 몸과 정신의 영역이나 환경 모두는,
그대가 그것을 스스로 일으키기 전에는
어떤 불씨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더라.
- 야곱 보헴
하느님은 여러분의 [의식]입니다.
그의 약속은 조건부로 주어집니다.
[수요]가 - 여러분의 의식상태 - 바뀌지 않는 한,
[공급]은 - 현재 여러분의 삶을 둘러싼 환경 -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우리가 [용서]할 때” -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때 - 그 법칙은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의식 상태]는 행동의 근원이자 지도하는 힘이며 공급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말했던 그 민족이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들에게 행하리라고 생각했던 그 재앙에서 돌이키리라.
내가 한 민족과 왕국에 관하여
그것을 세우고 심으리라고 말할 경우에,
만일 그것이 내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내 음성에 복종하지 아니하면
그때는 내가 그들에게 유익을 주리라고 말했던 그 복에서 돌이키리라.
- 예레미야 18:8,9,10
예레미야의 위 구절은,
개인이나 민족이 마음의 태도를 확고하게 만들었는지에 따라
그 목적이 실현되는지 여부가 달려있다고 말합니다.
소망이 성취된 느낌은
인간이 목적을 추구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입니다.
제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모습]은
관찰자가 그 안에서 무엇을 보는 지가 [결정]하기 때문에,
[그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 지는]
관찰자의 의식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피를 흘리게끔] - 우리의 상상력을 다른 이를 위해 사용하게끔 -
우리 모두를 자극해 줍니다.
흘러가는 많은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항상 [우리의 피를 흘려버림]으로써
삶을 바꿀 기회를 가집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
- 히브리서 9:22
어느 날 밤 뉴욕에서 [물과 피]의 수수께끼를
어떤 교사에게 설명해 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히브리서 9장 22절을 인용해서
우리 [자아]를 제외하고는 [어떤 희망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바로 [하느님은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깨달음과 같고,
이런 인식은
우리를 지상 위에서 안전하게 인도해 줄 [빛]이라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 깨달음은 두개골의 어두운 동굴을 광휘가 빛나게 만들고,
그리고 우리는 “인간의 영(정신)은 주의 촛불이더라.”(잠언 20:27)
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의 촛불이 내 머리 위에 비쳤고,
그의 빛으로 내가 어둠 속을 헤쳐 걸었더라.
- 욥기 29:3
하지만
우리는 머리 안에서 빛나고 있는 광휘를 하느님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바로 하느님의 형상]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모습을 드러내니,
어둠 속에 거하는 가난한 영혼들에게 그 모습이 빛의 형상이더라.
그러나 밝은 낮의 세계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인간의 형체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더라.
- 블레이크
하지만 이것은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길은 없고, 그리고 다른 그 누구의 경험도
여러분의 경험을 대체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강의에서
어떤 선생님이 한 학생에 대한 마음의 태도를 바꿨더니
학생이 그렇게 변했다는 것에 대해 말하면서,
마음의 태도를 바꾸면 현실이 바뀐다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야말로
[요한1 서 5장 6절]에서 [물]이라고 언급한 것의 [진정한 뜻]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지식만으로는
원하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에 부족하고,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 [피], 즉 이 진리를 현실에 [적용]시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생명의 [물]이고
* 행동을 직접 하는 것은 구세주의 [피]입니다.
말로 바꿔보자면
아주 사소한 지식 하나라도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진다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은 아주 많은 지식들보다 훨씬 유익한 결과가 많습니다.
한 교사의 마음속에서 학생 하나가 계속 떠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녀에게 말했던,
[다시 태어나는 신비]에 관한 [진리]를 테스트해보기에는,
지금 교사가 처한 상황은 굉장히 어려운 사건이라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과 학생들 모두,
그 학생의 태도는 교정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건은 이랬습니다.
바로 며칠 전, 교장 성생님과 상담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선생님들이
그 학생에 대해 어떤 처분을 내릴지 상의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학교의 명예를 위해 그 학생이 열여섯 살 생일을 맞이할 때
퇴학을 시켜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학생은 무례했고 버릇이 없었으며,
윤리에 맞지 않은 행동을 했고, 아주 혐오스러운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퇴학을 하기로 결정한 날짜는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여선생님은 그날 밤 타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만약 자신이 그 학생에 대한 마음을 바꾼다면,
학생 역시 행동이 정말 바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한번 도전해보는 방법밖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도전은
그 학생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는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진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하느님과 같은 권능, 그렇게 위대한 권능을 감히 자신이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만약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그를 사랑할 것이다”는
인간의 평범한 삶에 대한 태도를,
“내가 그를 사랑했기에, 그는 나를 사랑한다.”는 태도로
완벽하게 뒤집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마치 [하느님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했기에, 우리는 그를 사랑합니다.
- 요한1서 4:19
하지만 이런 생각을 거부해보려고 해도
[물과 피]로 거듭나는 것에 대해
제가 설명했던 것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그 여선생님은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가 한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고,
아이가 웃는 것을 봤습니다.
소녀가 “좋은 아침이에요”라고 그녀에게 말하는 것을 그녀는 들었고,
그것을 상상했습니다.
그 아이는 학교에 입학한 후로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의 최고의 모습을 상상했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그녀가 듣고 보았을 모든 것들을
보고 듣는 것처럼 마음의 귀를 기울이고 마음의 눈을 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계속 *반복]해서,
스스로에게 이 일이 사실이라는 인상을 심어 준 후에 잠에 빠졌습니다.
바로 다음 날,
그 학생이 교실로 들어왔고 웃으면서 “좋은 아침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너무 놀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혼란 속에서 하루 종일 그 학생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징조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변화된 모습으로] 계속 행동했습니다.
그 주가 끝날 때쯤 사람들은 모두 [소녀의 변화]를 눈치 채게 되었습니다.
다시 그 학생에 대한 회의가 열렸고
이전에 내렸던 처분은 취소되었습니다.
아이는 지금까지도 친절하고 상냥하기에,
선생님은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본래 말썽부리던 아이는 어디에 있는 거지?”
자비, 동정, 평화 그리고 사랑은 우리가 사랑하는 하느님이니,
자비, 동정, 평화 그리고 사랑은 하느님이 돌보는 자녀인 인간이더라.
- 블레이크 (신의 형상)
변화된 존재는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는 언제든지 가능하며,
남아 있는 유일한 문제는
우리가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물과 피]의 신비를 알기 위해서
학생의 이런 변화된 모습을 체험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경험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고,
다른 이의 경험이란 것도
자신의 경험으로 인한 깨달음을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의 피를 통해서 회복되었더라.
- 에베소서 1:7
만약 아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바꾸려는 결심을 하지 않고
상상의 힘을 실제로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은 결코 그 학생의 죄를 씻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의 피를 흘리지] 않고 [경험의 잔]을 맛보지 아니한 자는
그 누구라도 상상이 가진 속죄의 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대 자신의 가슴을 한 번 제대로 읽어라.
그러면 그대는 두려움을 끝낸 것이다!
이것 외의 다른 빛을 인간은 얻지 못하고, 천년을 헤매게 된다.
- 매튜 아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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