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끝없는 사랑_ 글렌다 그린 - 제1장 빛이 있으라 본문
제1장 빛이 있으라
그것은 강렬한 광휘였다.
방안을 꽉 채우는 바람에 모든 그림자가 자취를 감출 정도로
위를 쳐다본 나는 샹드리에가 꺼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휘감고 있는 그 부드러운 하얀 광체에는
인공적인 구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구름과도 같았다.
이제 막 눈이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집안 전체가
고요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 고요하고 경건한 허공 속을 은빛 광성의 힘찬 물결과
마치 불길에 의해 번져나가듯이 퍼져가는 공기의 맥박이 흐르고 있었다
모든 방향으로 넘쳐흐르는 그 물결의 진원은
거의 눈이 멀 것 같은 초발광체의 한점이었다.
그 광채는 태양과 흡사했지만, 뜨겁지는 않았다.
특별한 아름다움은 눈이 멀 정도의 광도와 은빛 금빛 무늬 속에
있었는데 그 유백색의 테두리에서는
엷은 자주색과 푸른색, 장미색의 빛알갱이들이 반짝였다.
내가 그 중심을 쳐다볼 수 있었던 건 겨우 1초 정도였다.
빛 때문에 순식간에 눈물이 흥건해진 나는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려야 했는데
그 순간, 언어의 패널과 운율을 이루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언어였다.
그 '말'이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의미를 형성했을 때,
그 메시지는 "글렌다. 잘 있었소?"였다
이 현존에는
말로 이루 다 할수 없는 성스러움이 있었다.
그 빛이 노래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천상의 노래를 불렀을 것이고,
그 빛에 향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높은 산공기의
신선함을 뽐어냈을 것이다. 다시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그 압도적인 광채는 여전했다.
그 광채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렇게 내 안으로 달아나려는 순간,
그 존재가
내 미간 사이의 한 점에 에너지 광선을 쏘았다.
미간 사이에 압박감을 느낀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보게 된 것은 쏟아져들어오는 에너지 흐름이었다.
한 그림이 내 기억 속에 깊이 세겨지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그림이 완성되기까지는 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마치 하드웨어처럼 내 뇌의 시신경 부분에 이식되어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꺼내 볼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영상이었다.
나는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체
예수 그리스도의 영상을 응시했다. 그 영상은
완벽한 3차원 홀로그래피였다.
그분은 푸르른 강기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꼭대기에 서 계셨는데,
발 밑에는 풀을 뜯는 양들이 있고,
지평선 위로는 사자 모양의 구름이 피어올라 있었다.
내가 뉴멕시코 사막을 지날 때 보았던 몽환 속 풍경이 틀림없었다.
이제 그 풍경은 목자이신 예수의 등장으로 완벽해졌다.
그림을 그리는데 이보다 더 생생하고 실감나는 모델을
요구할 수는 없을 정도로 그분을 실제로 모델로 앞에 앉혀 놓는 것을 제외하고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침내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빛을 발하던 그 현존이 사라지고,
객관 현실이 다시 그 자리에 들어서는 것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한 부분이 다시는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직관은 맞았다.
왜냐하면
내 삶의 모든 것이 그 성스런 순간 이후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찬란한 광채는
내 영혼에 영원히 새겨졌거나 아니면
적어도 특별한 하나의 맥박으로 내 심장과 영원히
연결되어 있을 거야. 이제 내 안에서 자각과 삶의 비약을
가져다줄 불꽃이 깨어난 거야' 나는 당시에도 이렇게 느꼈다.
하지만 이 만남의 참된 의미를 확실히 깨달아
실제로 그리기에 착수하기까지 40일 정도는 걸리리라고 본 나는
매일 아침, 경건한 감사기도와 명상을 통해
그 영상을 의식적으로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 영상의 온갖 뉘앙스들을 연구했으며,
그것이 생명의 숨결이라도 되는 양 내 존재 깊이 들이마셨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상은 더 완벽해졌고,
예수의 현존 또한 생생해져갔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것은 내가 예전에 보았던 몽환이나 꿈 따위와는 달랐다.
그도 그럴것이 꿈이나 영감 같은 것은
자꾸 떠올릴수록 점점 더 흐려지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투명 유리창을 통해 밖에서 보고 있는 친구에게
인사를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를 헌신케 만든 그 아름다운 눈은
결국 우리 사이의 '유리'장벽을 녹여버렸고,
나를 그분의 세계로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그러고 나자
그분의 현존 또한 그만큼 더 실제적이고 역동적이 되었다
마치 장엄한 꿈처럼
생생하고 완벽하며 풍요로운 감각의 세계로 들어선 듯했다.
다만 지금까지의 그 어떤 경우보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진행된 '꿈'이란 사실만 빼고 알기 쉽게 비교하면 우리가 잠자면서
꾸는 꿈은 어둠을 통해서 들어가는 반면,
나는 눈부신 방사광의 작은 구멍 속으로들어가 예수를 만났다.
11월 23일부터 1월1일까지 나는 창조를 준비하고
내 현실을 활용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숙고하면서 보냈다.
덕분에 나는 무한한 가능성의 거시세계로 일대 도약을 할 수 있었는데,
이 기간 동안 내 대학원 시절을 자주 떠올렸던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중세 기독교 미술이 전공이었던 나는
기록으로 남은 여러 자료들, 특히나 그림으로 그려진
예수와 마리아의 초상적 영상에 접할 기회가 많았다.
처음에는 그런 성스런 방문에 동반되기 마련인 고난과 핍박의 금욕적인 삶을 떠올리면서,
나 자신의 안녕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불안감은 청춘의 활력에 밀려 곧바로 추방당했고,
점점 커져가는 호기심과 열정을 가눌 수 없었던 나는
내 학문 배경의 또다른 스펙트럼인 빛과 물리학 분야로 뛰어들었다.
이런 편력을 거치면서 마침내 나는 '통상적'인 것과
'초상적'인 것을 결합할 통찰력과 교량을 제공해줄 수 있는
우주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존재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너무나도 생생한 신비 체험을 하는 드문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프리브램이라는 이름이
인간 뇌의 홀로그래픽 작용에 관한 그의 중요한 연구와 함게
머리에 떠올랐다 그 연구는 이미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도 입증되었는데
사물을 볼 때 인간의 시각중추는 빛이나 어둠이나 색깔의 패턴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파도의 주파수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감각기관에 받아들여진 파동은
시각중추에 의해 홀로그래피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식별 가능한 이미지로 바꾼다.
프리브램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 물질과 구조와 상황이라는
객관 현실은 기실 우리가 인식하는 식이 아닐 수 있다는
논리적 결론을 끌어냈다.
"그렇다고 현상 세계가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그건 단지 여러분이 홀로그래픽 체계를 가지고
세상을 꿰뚫어본다면, 여러분은 다른 시각, 다른 현실에
도달하리란 이야기다. 그리고
그 다른 현실이 지금까지 과학이 설명할 수 없었던 상황,
즉 초상현실과 공시성 그리고 명백한 우연의 일치 같은 것들을
설명해줄 수 있다"
홀로그래픽 뇌 이론을 완성시킨 것은 데이빗 봄인데
그는 모든 구체 현실은 일종의 홀로그램이라는 놀라운 주장을 폈다.
다시 말해 전체의 어떤 부분이라도 현실의 기초 단계에서
찾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그것으로부터 무한하게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경외심을 느끼게 만드는 이 이론들의 타당성은 아직 입증되고 있지 않다.
그러니 만일 나의 예술적 노력이 진실로 성공할 경우, 내가 세상에 내놓게 될 그 성스런 제재(題材)에 대해
나로서는 말없는 불안과 끈질긴 의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만일' 이라는 그 단어는 끊임없이 내 의식을 떠돌다가 이따금
머리를 내밀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나누는 대화들이나
외부세계와의 접점에서 확증을 찾고자 했다.
나는 그 당시 남편이었던 브라이언에게
내가 본 영상과 초원과 양의 모습을 자세히 얘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확신도 가질 겸 어차피 '기초'자료로도 필요하니,
나더라 살아 있는 양을 직접만나보길 권했다. 어린 양을 스케치하거나
사진을 찍어두면 그림그리데 크게 도움이 될 것라고 하면서,
3개 군에 있는 양 목장들을 둘러본 우리는 11월 말을
새깨양이 태어날 계절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무척 실망했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이에 굴하지 않고 토요일에 우리 고향의
축협시장을 방문해보자고 제안했다.
새벽 일찍, 카메라를 끼고 우리는 새끼양 찾기에 나섰다
최소한 내가 새끼양 사진을 찍을 수만 있어도 얼마간의 진전은
이루어지는 셈이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가축 시장으로 달려갔지만,
또 다시 실망만을 맛보고 말았다
어린 양이 두 마리 있었지만,
그날 아침 8시 반경에 이미 팔려나간 뒤였던 것이다.
나는 운도 안 따르고 하늘의 도움도 못 받았다고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했다. 그때, 가축시장에 서 있는
양떼들의 마지막 줄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백발이 성성한 계절 노동자가 끌고 온 발육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양들이었다.
지저분하고 땅딸막하고 굼뜬 잡종 양들이어서 전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이렇게 다시 한번 실망한 내가 몸을 돌리려던 바로 그때,
그 줄의 양떼들 뒤쪽에서 갑자기 나타난 암양 한 마리가 내쪽으로 걸어오는데 놀랍게도
반짝이는 하얀 털을 가진 놈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양을 본 적이 없었다.
짧고 청결한 털과 긴 목, 당당한 얼굴, 명백히 임신 중이었음에도
암양의 품위 있는 모습은 오히려 그로 인해 더욱 돋보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동요에서 이름을 따서 그 양을 '매리'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암양의 털이 그야말로 '눈처럼 희었기'때문이다.
그양에게서 왠지 모를 인연을 느낀 나는 그 양을 사기로 마음먹고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구실을 찾았다.
메리는 금세 새끼양을 낳을 거니까 매리를 사면 두마리
다 그림 소재로 쓸 수 있잖아 라고 그보다더 더 멋진 우연의 일치는
우리 집에 딸린 재건축 농가가 비록 도시안에 있기는 했지만
농업지구로 분류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해서 도시 출신의 신참 양치기인 우리 부부는
매리를 캐딜락 뒷좌석에 태웠다. 그 인공적인 환경에서도 매리는 여전히 눈부셨다.
그것을 보고 매리의 품종이 궁금해진 내가 중개업자에게 묻자 되돌아온 대답이
'무풀론(코르시카 태생의 야생 양)종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양의 품종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던 내게 그것은 별 의미 없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가타부타하지 않고 우리는
차를 몰고 그곳을 떠났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 뒷좌석의 승객을 보고 낄낄거리고 웃으면
약간 창피스럽기도 했지만, 어치피 그 사람들이야 뭘 알겠는가?
곤혼 스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매리를 얼르기도 하고,
매리의 집을 마련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플론이란게 어떤 품종이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쩐지 익숙한 품종명이긴 했지만,
그 순간 나는 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어쩌면 매리는 예수가 이 땅에 살던 시절에는 이 지구상에 없던
새로운 교배종일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소녀 시절에 삼촌네 양목장에 여러번 놀러갔지만,
매리와 같은 양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생각할수록 그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현대적인 요소가 첨가되면 그림의 통합성을 해칠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매리를 우리 안에 넣고 나서 나는 그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 곧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내가 찾으려던 것은 백과사전의 한 페이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놀랍기도 하고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는지라 다른 책을 두 권이나 더 찾아보았다. 그래도 결론은 대동소이했다. 무플론 종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순종 품종으로 모든 순종 양의 선조격으로 여겨지는 데다 약 2천년 전에 주로 중동에서 무리를 이루어 살던 품종이라는 것이었다.
기억에 확실히 새겨질 때까지 그 구절들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고 난 나는 흥분과 뿌듯함을 느끼면서 수많은 퍼즐 조각들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가 놓인 그 기적 같은 사건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중동으로 찾아가 베두인족과 흥정하지 않는 다음에야 내가 무슨 수로 그림모델에 가장 적합한 양을 손에 넣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매리를 내 고향 마을에서 발견할 가능성은 통계상으로 보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적지 않은가 말이다. 매리를 발견한 그곳은 내가 어릴 때 뛰어놀곤 했던 곳이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오래 전부터 이 그림을 그리도록 운명지워져 있었던 걸까?
매리를 찾아낸 데에는 아이러니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더 큰 확실성의 징표로 받아들였지만,
사실 그것은 훨씬 더 위대한 기적의 전주곡에 지나지 않았다.
유명한 양자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언젠가 '물질은 얼어붙은 빛'이라고 말햇다. 그의 말은 우리 우주의 마지막역설 즉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세상이 예전에는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디자인과 광채로 감싸여 있었던 게 틀림없다는 역설을 요약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크리스마스 휴가가 다가오는 것을 감안해 1월 초부터 그림 작업에 착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게다가 약간의 예비적인 준비와 캔버스를 마련할 시간도 필요했다.
가장 먼저 확정해야 할 것은 그림의 크기였다. 그래서 나는영상에 주의를 집중한 채 예수의 지시를 구했다. 영상을 채화 통로로 삼자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무슨 말이 오간 건 아니었지만 탤레파시 형태로 캔버스의 크기는 122센티미터가 좋겠다는 대답이 주어졌다.
12월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나는 출발선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경주마 같은 기분을 느끼며,
자주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나 자신을 안심시키곤 했다.
그 영상은 여전히 수정처럼 또렷이 남아 있으면서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탄생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이 보였다.
명백히 살아 숨쉬는 그 양상을 나는 경외심에 가득차서 우러러보곤 했다.
워낙 그분의 생명력이 돋보이는 영상이었던지라 처음에는 일개 시각 이미지에 불과했던 것이 어느 새 '그분의 현존'을
말해주는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갈수록 시간이 느려지면서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비록 우리 사이의 영적인 교류는 내 기대 공간을 가득 채운 흥분과 침묵으로 풍성했지만 말이다.
1월 2일, 나는 평온한 심정으로 화실 안에 들어섰다.
내 육체만이 촉박한 운명의 현존을 인지할 수 있는 평온심을 가지고...... 비록 화실에서는 성스런 향기 대신 그림 물감과
테레빈유 냄새가 났지만, 그럼에도 뭔가 성정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아마도 내 기대가 그런 느낌을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나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한 거룩한 한 영혼이 다가올 창조의 '개막'을 준비한 것일 수도 있고
어느쪽이 되었든, 내 감각은 마치 세상에 갓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투명하고 정갈했다.
창틀의 먼지에서 비스듬히 꽂힌 북과 내 앞에 우뚝 선 이젤까지 모든 것이 영원히 잊지 못할 소품들처럼 그 순간을
장식하고 있었다. 화실은 자연광으로 환했지만, 그 안에는 내가 예전에 경험한 성스런 빛의 느낌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 햇빛 속을 걸어가노라니, 한없이 늘어지다 마침내 정지하고 말 시간들에 내 몸의 움직임이 맞춰지기라도 할 것처럼 느려졌다.
모든 것이 시공간 속에 그대로 정지한 듯한 그 순간의 엄청한 필연성이 나를 앞도했다. 마치 몇천 개의 눈이
나에게 집중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감시인'을 찾아서 내면과 외부의 공간을 더듬었다.
간신히 그 침묵을 깨뜨린 건 화실 밖에 있던 고양이 울음소리였다.
아름다운 히말라야 종 내 고양이 구나는 화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작정 참여하고 싶은 눈치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으로 다가가 마지 못해 문을 열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구나가 아닌 다른 존재를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자그만 푸른눈'만이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는 걸
알고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양이는 그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잽싸게 뛰어들어왔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일이 이제 곧 벌어지기라도 할 듯이 그러고는 내가 명상과 기도를 위해 쓰고 있는
두 개의 흰 방석 가운데 하나에 달려가 앉았다.
나는 이젤 위에 올려옪은 대형 캔버스로 얼굴을 돌렸지만,
아직 시작할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방석 위에 앉은 구나 옆으로
가 늘상하던 대로 주님의 현존을 인지하기 위해 영상이 나타날 때까지내면의 빛 중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오늘은 세세한 부분까지 가능한 자세히 관찰해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내가 외부의 캔버스 쪽으로 초점을 돌리고 나면, 내 모든 주의는 그림 그리는 작업에 쏠리고 말테니 말이다.
돌연 또 다시 구나의 울음소리가 나를 명상의 무아상태에서 끌어 내는가 싶더니, 부드러운 한 줄기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면서 화실안을 지나갔다. 게다가 내 마음 속의 영상을 비춰주던 '내면'의 빛이 지금은 내 눈꺼풀을 통해 외부로부터 비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유례없는 확신에 가득차서 눈을 뜬 나는 그분의 발치에 앉은 자세로 내앞에 우뚝 서 있는 그리스도를 올려다 보았다.
가만히 경의를 표하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나는 캔버스 앞의 의자로 가 자리잡고 앉은 다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로써 눈을 감고 영상을 바라고는 동시에 그림도 그리는 게 과연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전능함이나 신비가 어떤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현존을 새하얀 캔버스 위에
옮겨놓기 시작하면서 내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이젤 앞에서서 작업을 할 때마다 그분은
내 앞에 3차원의 현실 존재로서 모습을 나타내셨다.
그 모습은 이미 영상이 아니었다. 그분은 거기에 계셨으며,
우리는 한 팀이 되어 그림을 창조해내고 있었다.
스케치를 완성하는 데만 2.3일이 걸리는 바람에 색을 칠하기
시작한 것은 그 다음 주에 들어서였다.
나는 초벌 물감을 칠해놓고 나면 잠시 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유화를 그릴 때는 언제나 그랬다. 아무튼 물감이 말라줘야
그 위에 덧칠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 유화를 그릴 때 낭비되는 요소 중 하나다.
다행히 어떤 색은 다른 색들보다 좀더 빨리 마르기 때문에
약간의 부분 작업은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하루는
기다려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튼날 아침, 캔버스의 마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화실로 들어가보니, 모두가 다 말라있는 게 아닌가!
완전히 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물감의 수명에 지장을 가져올 수 있는 건조제나
시너 같은 건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나에게는 수수께끼였지만, 사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계속해서
몇 시간(며칠이 아니라) 안에 물감이 말라버렸다.
이것은 그림의 완성 예정일을 훨씬 앞당길 수 있는 요소였다.
그림 그리는 작업은 일요일을 빼고는 중단 없이 이어졌다.
티이밍은 거의 언제나 완벽했으며,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충족되곤 했다.
창조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요소의 하나가 화가들이 '정글타임'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본능과 직관과 창의력으로 '해답'을 찾기 위해
온갖 선택사항들과 문제들 속에서 길을 잃는 과정을 말한다.
정글 타임은 창조적인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매력이다. 왜냐하면 그 헤맴 속에서 나름의 독창성을 찾아낸 예술가는 단호한 결의로 그 미로에서 벗어나는 비약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생 처음으로 나는 그 과정에 아무런 매력이나 타당성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상황이나 기대를 갖지 않은 채 작업을 진행시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예술성의 포기에도
불구하고 삽화가가 된 것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더 높은 유형의 창조가 그 자체의 역동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나를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절차의 와중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기적들을 경험한 덕분에 마침내 나는 인생의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형태의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인생에서 부딪히는 저항이나 문제나
복잡성이 내가 물질이나 에너지, 시간, 상황속에서 곤란도는
밀도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믿는가와 직접 관계되며,
인류가 필요 이상으로 사움과 저항으로 가득찬 밀도 높은
세계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믿음이나 조건부여, 동조 따위가 그렇게 기대하도록
우리를 이끌기때문이다.
또한 나는 현실이 더 큰 가능성으로 팽창하거나 상승할 경우,
가능한 빛의 자이 그 이동에 동반하며,
그 너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광원이 있다는 것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빛을 의식의 확장과 관련시키고,
어둡을 곤란과 관련시키는 게 우연이 아닌 셈이다.
그 영상의 완벽성에 대해 의시미을 품은 적이 꼭 한 번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어렴풋한 예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림의 중앙 오른쪽으로 오크나무(떡갈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런데 영상에서는 그 나무의 몸통이 가라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예수에게 물어보았다.
"오크나무는 강인함의 상징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도 당신은 나무가 갈라진 채로 있기를 원하세요?"
예수는 내 논거는 인정했지만, 동의하지는 않았다. 침묵의 권위로서 그분은 내게 반문했다.
"영상 속에 어떻게 되어 있소?"
"갈라져 있어요"
"그렇다면 갈라져 있는게 정상일 거요"
내가 이 대답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이해하기까지는
몇 개월이 걸렸다.
그 이후 작업은 아무 장애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런데
그림이 완성되기 2주일 전쯤에 놀라운 계시가 있었다.
오후에 거피타임이 되어 화실 밖으로 나가려고 모을 일으켰을 때 나는 언제나처럼 그림을 점검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랬더니
그림이 마치 나를 점검하려는 듯이 내쪽을 돌아보는게 아닌가!
호로그래픽 투영으로 그림 전체가 내쪽으로 몸을 돌릴 것이다.
헉- 하고 숨을 들이키며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던 내가
그림의 뒷쪽으로 뛰어갔더니, 이번에도 그림이
계속 각도를 바꿔가면서 내쪽으로 몸을 돌리는 게 아닌가
!(3차원적 연출은 사실주의 회화 기법의 우수성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그러나 홀로그래픽 투영과 3차원 연출은 다르다.
옛 거장들의 그림은 모든 방향에서 투영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 초상화들에서는 눈이 보는 사람을 따라 다니는 듯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인물 전체가 완벽한 입체감을 갖고 갠버스 앞으로 뛰쳐나오는 건 아니다
. 반면에 홀로그래픽 투영에서는 보는 각도가 변하는 데따라 영상이 재편성되어 다시 투영되곤 한다)그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다니 참으로 충격이었다 구나는 대관절 이 법석이 뭔가하는 놀란 얼굴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찌 보면 매일처럼 기적을 기대하던 그 상황에서 기적이 하나
더 일어낫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 기적의 충격적인 측면을 빼고 나면, 그 또한 빛의 기적적 성격을
말해주거나, 빛은 '기적다발 영역'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통 빛을 태양이 주는 빛으로여긴다.
그러나 물리학자들과 신비가들은 물질실체가 연소될 때 나오는 광자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현상이 존재함을 강조한다.
가시광선은 어네지 스펙트럼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고,
광자는 그 스펙트럼 전체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적 측정을 통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방사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예를 들면, 통신 전파는 멀리 떨어진 은하에서도 포착할 수 있꼬 우주 전체에 걸친 우주배경 방사는 '빅뱅'에서 기인한 화석화된 빛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기적의 발생과 더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광자 미립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빛의 '파동작용'이다.
엘버트 아인슈타인은 빛은 파동이자 입자라는,
놀라운 특성을 밝혀냈다. 이런 구별이 필요한 이유는,
파동작용은 확률 분포로 공간으로 퍼져나갈 수 있지만,
그것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그것이 있는 장소를
알아낼 수 있는 건 그것이 행동할 때뿐이다.
행동하는 순간, 확률 분포 전체가 특정 지점으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빛의 이런 이중적 성격은 우주의 고동 자체가 점에서 확률로, 입자에서 파동으로 바뀌는 빛의 리듬이란 걸 시사하고 있다.
모든 시간과 운동은 다른 어떤 물질 형태나 에너지가 '빛의 속도'에 접근하거나 '빛의 속도'와 같아지는 지점에서 정지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모든 저항의 한계도 제거된다. 또한 중력의 에너지 형성에 중요한 인력장(위상 공간에서 흐름을 끌어들이는 영역)을 제공해주는 것이 빛이라는 상수로 추정되고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빛의 속도로 창조하고 개조하고 다시 방향을 바꾸거나 정지시킬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빛은 생명이 시공간과 물질의 온갖 기적적인 변화를 촉진하는 도구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그런 변화의 원인이 신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생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동적이다.
공간은 주어진 목적의 필요에 적응하고,
시간은 삶의 사건들이 접근하거나 사라질 때마다 연결과 차원의 실을 짜내는 베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모두 경험으로 알 듯이
아무리 좋은 일도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어린 양과 사자)도 적어도 그것이 그림 프로젝트의 하나인 한, 결국은 끝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것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만 이 경험이 삶의 다른 차원들로 옮겨가 그 은총과 권능으로
그것들으 변형시키리란 점만 배고 나는 생전 처음으로
예수가 오래전에 한 약속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하리라"
는 약속을 믿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런 일을 가능케 하는 나눌 수 없는 온전한 우주의 결합력을
목격하는 특권까지 누릴 수 있었다.
그림이 완성된 것은 1992년 3월 12일이었다.
그날은 할 일이 거의 안 남아서 나는 자질구래한 마무리 손질을 하고 있었다 예수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더 추가하기 위해 두세 번 붓질을 했다. 머리칼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나는 지나가는 바람의 가벼움을 나타내기 위해 머리카락을 분리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한가닥 한가닥을 제자리에 그려넣은 다음,
고개를 들어 다시 영상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영상이 반짝이는 빛 구름 속으로 사라져가는 게 아닌가!
당황한 나는 서둘러 그 영상이 내의식과 연결되어 있던 내면
지점을 들여다보았지만, 그 연결고리 또한 끊어져 있었다.
우리의 두 세계를 이어주던 빛의 불꽃이 이제 빛의 장 속으로
스러져들어가 내 주위의 빛과 뒤섞이고 있었다.
나는 붓을 내려놓고 가만히 웃었다.
그러다 솟구쳐오르는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어
더 활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영상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새로운 시작임을 자각했다.
시각 이미지는 사라졌지만, 그것의 본질인 사랑과 에너지는
캔버스 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림은 완성되었지만,
그림의 생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축복에 대한 나의 이해는
미지의 길을 따라 이어진 첫번째의 주목할 만한 도전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한편에서는 만족감과 충족감을 안겨주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더 큰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밀어넣었다. 그림을 끝내고 나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는 그분과 함께 했던 기쁨을 떠올리면서 그림 앞에 앉아 있었다. 내 얼굴은 눈물과 미소로 뒤범벅되어 있었지만, 내가 주로 느낀 감정은 혼란과 불안이었다. 그것은 예수가 방문하기 이전에 느끼곤 하던 오래된 낯익은 감정이었다.
'왜지?" 뭣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 그림을 그리게 된 거지?"
나는 그분이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비록 그분의 사랑이 많은 산향기처럼 집안 곳곳을 떠돌고는 있었지만, 그런데 내 가슴이 또 다시 부드러운 울림으로 가득참으로써 내가 그분의 현존을 깨닫게 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였다. 더 깊은 새로운 교감수단을 가지고 우리 관계의 새로운 차원이 시작된 것이다. 비록 아무 말씀도 없었지만, 이제 내 의문은 대답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분이 더할 수 없이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씀하는 것을 느꼈다.
" 이 그림은 내 백성들에게 보여주시오"
그분은 나의 의문에 응답해주었지만, 어떻게 행하라는 단서는 전혀 없었다.게다가 그분의 요구는 말하기보다 행하기가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분의 백성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의 피부색과 민족과 유산의 다종다양함이란! 기독교계 안에만 해도 수많은 교리가 있고 몇백 개의 종파가 있으며, 신심 깊은 기독교도이면서도 일체의 종교의식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그분의 가르침은 우리가 기독교 신앙이라 부르는 테두리를 훨씬 뛰어넘어 전세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죠?"
'아무데서나'가 그 대답임이 확실했다.
소박하지만 강한 전파력으로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안 가 전국 가지의 낮선 사람들이 예고도 없이
우리집을 찾아와 예수상을 보여주길 부탁하는게 아닌가!
이런 일이 일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장벽이 허물어져야 했고, 얼마나 많은 금기가 해제되어야 했을지 상상해보라.
사람들이 이 그림을 통해 그분의 현존을 보고 체험했을 때.
그들 자체가 살아 있는 기적이 되었던 것이다.
방문객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흥분에 찬 보고를 했다.
그리고 내게 자기 고장에서 전시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요청이 쇄도했다.
그로부터 2년 동안 그 그림은 5개 주를 가로질러 여행하면서,
80여 개의 교회와 대부분의 종파에서 전시되었다.
물론 아무런 신앙도 표명하지 않는 여러 단체들에서도 전시했다! 교회라는 울타리에 관계 없이 우리는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다양한 연령대와 종교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와
그분의 초상을 보고 기도하고 명상하거나,
초상화를 통해 소리 없이 주님의 축복을 받았다.
그 그림의 상징적인 측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의식의 발명품도, 내 의도의 결과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그림의 요소들을 개인적인 메시지와 치유를 위한 촉매로 삼은 건 사실이다. 그분의 얼굴 모습에도 비슷한 유동성이 있었다. 그것은 만화경처럼 수많은 표정과 얼굴 윤곽,사사로운 성격을 포함하는 듯이 보였다. 나는 그 초상화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과 적응력을 지닌, 보편성의 청사진 위에 세워진게 아닐까란 생각을 즐겨했다.
이런 현상과 가장 관련 있는 설명은 어쩌면 기적의 해부학 속에 들어 있을지 모른다 나는 기적이란 사랑과 삶이 자신들을 붙잡아두고 있던 환상의 베일을 뜷고 들어갈 때의 성장력에 다름아니한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사랑의 권능을 부여받아 성장을 향해 줄달음치는 삶. 이것이 바로 창조력이다. 그것은 저 막강한 대양의 힘보다 더 강한 힘으로 속박을 거부한다.
만약 우리가 사랑의 영향력과기적을 불러오는 사랑의 능력에 초첨을 맞춘다면, 이제 기적은 삶의 예상 가능한 일부가 된다. 반면에 우리가 사랑과 삶의 위대한 권능을 부정하는 구조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때는 잠재해 있던 기적이 자주 씁쓸한 뒷맛까지 남기면서 갑작스럽게 우리를 급습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기적의 면전에서 미소짓는 것에만 워낙 익숙한 탓에, 위험요소나 충격요소가 그것에 선행하여
나타나날 수 있다는 측면을 자주 간과한다.
그 사랑에 대한 더 깊은 이해는 우리가 삶의 온전성을 충분히 수긍할 때만 얻어질 수 있다는 점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사랑과 생명의 권능이나 그것을 지위하는 그분의 능력에 대해 생각할 때 내 마음에 떠오르는 단어는 만족이나 유보, 보존 따위가 아니다! 그림이 완성되고 나서의 발견과 성장의 나날 동안, 나와그분과의 관계 -그리고 삶과의 관계 - 를 꽃피우고 있었던 건 변화라는 은총이었다.
튤립이 봄에 땅을 뚫고 밀고 울라오듯이
나는 매일매일 삶과 더 충분히 통합되고, 효율적인 진리에
더 많이 다가서곤 했다.
아마도 우리 인생을 황금실로 수놓아주는 특수영역인
기적만큼 모호한 주제는 찾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바꿔버리는 기적을 거의 예상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기적은 내개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나로서도 이제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 예수가 그림을 통해서
남긴 기적의 자욱들을 되돌아보고 그런 추억들이 가져다주는 정갈한 기쁨을 맛보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지나온 기적이 아니라 깆거의 탄생이라면 그건 갓난아기의 출산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새 생명이 자신의 존재를 천명하려면,
기존 구조의 베일을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1992년 여름, 내게는 또 한번의 가르침이 주어졌다 하지만
더 높은 이해를 위해 7월 20일 아침에 내가 내놓아야 했던 것이란!
어쩌면 내 인식이 더 높았더라면 몸이 얼어붙는 경악 속에서
도무지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 절망에 망연자실하는 대신,
차분한 기대감을 가지고 아침식사를 즐길 수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당시의 내 믿음은 그리 깊지 않았던지,
기적을 낳는 출산의 고통을 경험하는 중이란걸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주님이 내 인생에 들어온 이래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나의 시련은 그 전날 시작되었다.
1992년 7월 19일의 시작은 여느 일요일과 다를 게 없었다.
그림 전시와 나의 간증이 계획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번에는 텍사스 주의 윌로우 파크에 있는 '아씨시의 성 프란테스코'성당에 있었다. (어린양과 사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허만 신부가 자기네 신자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여달라고 부탁해 왔던 것이다.
허만 신부와 신도 몇몇이 우리의 도착을 기다렸다가
신자 회관에 그림을 설치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비극은 그림 설치가 끝난 직후에 찾아왔다.
높다란 삼각대에 매달려 있던 투광 조명기가 떨어지면서
갠버스와 부딪힌 것이다! 조명기가 마루 바닥으로 떨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망연자실 바라보고만 있었다.
주디 허버라는 부인이 그 무거운 조명기를 다른 데로 떨어지게 하려고 마룻바닥으로 몸을 날렸지만, 이미 그때는 그림에 부딪히고 난 뒤였다. 조명기는 그림의 왼쪽 부분에 떨어졌는데. 바로 오래된
오크나무의 갈라진 몸통 위였다.
내가 그림을 집어서 이젤 위에 다시 올려놓자,
거기에 있던 사람들 모두 몰려와서 그림의 손상 정도를 살펴보았다.
캔버스가 10센티미터 가량 함몰되고,
그 중앙이 2.5센티미터 정도 찢겨져 있었다.
나는 찢어진 틈새로 손가락을 끝까지 찔러넣어보았다!
미술사가로 미술관에서 일해본 경력이 있는 나는 그 정도 손상이면
어떤 수리방법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함몰된 것은 얼마든지 밀어낼 수 있다.
하지만 찢어진 부위는 조각을 붙히고 칠을 다시 해도 알 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볼 수가 있다. 불행하게도 찢어진 캔버스는 험프티 덤프티(동화에 나오는 인물, 달걀이 의인화한 것으로 담 위에서 떨어져 아무리 해도 일어나지 못함)와 비슷했다. 조각들을 모아서 붙일 수는 있지만,
다시 완전무결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내면의 모든 것이 '그만둬!'라고 말할 때,
계속할 힘은 어디에서 솟아나는 것일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통상 사용하는 힘 이상의 차원이 있다.
그리고 그 일요일에 나는 이 여분의 비축분을 발견했다.
그림은 교구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 누구하고도 이 비극을 의논할 수가 없었다.
떨리는 손과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한 채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사가 열리기 전에 간증을 하고, 오후에는 신자들과
개토론을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럭저럭 나는 그날의 일정을 끝냈다. 감사하게도 충격의 축복 중 하나인 자각의 마비상태 속에서
그 날의 행사가 모두 끝나고
우리는 더 이상의 손상을 피하기 위해 안전하게 포장된 그림을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도를 하고 싶었지만, 내가 느끼는 것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일찍, 깊은 절망감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난
나는 여전히 문제 상황을 직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불가피한 작업을 뒤로 미루는 동안에도 내 신경은 여전히 긴장되어 있었다. 그날 아침에는 커피를 포트에 하나 가득 끓여야 했다.
혼자 방에 앉아서, 거실 벽에 개놓은 그림 케이스를 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 아침에 이르기까지 일어낫던 온갖 사건과 기적들이 주마등 처럼 의식을 흝고 지나갔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어째서 이런 일이?"라고 물었다.
그런데 그 대답은 너무나 빨라 찾아왔다.
어느 정도 기운을 되찾은 나는 그림을 검사하고 그 손상도를 평가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리 스튜디오를 찾아가 의논하려면 필용한 일이었다. 무슨 수를 써도 캔버스를 완벽하게 복원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손 보는 건 가능할 터였다. 게다가 그 찢어진 곳이 더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문가의 복원이
필요했다.
조심스럽게 그림을 상자에서 끄집어내면서도
여전히 눈을 똑바로 뜨고 확인하지는 못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 그 찢어진 자국이 사라진 게 아닌가!
나는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캔버스를 더듬으면서 어제의
그 찢어진 부위를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그런데 완벽했다! 들어간 곳도, 찢어진 곳도,
물감이 벗겨져나간 곳도 없었다. 그림을 뒤집어서 뒷면을
살펴보았지만, 캔버스는 처음 걸던 날처럼 팽팽하고
탱탱하게 당겨져 있었다.
그림을 창가로 가지고 가서 비춰보았지만,
빛이 새어나오는 구멍은 물론이고 물감이 떠어져나간 부분도
전혀 없었다. 다시 고배율 확대경으로 뒤쪽을 검사해보았지만,
찢어진 섬유조직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림이 찢겨졌을 때만큼이나 당혹스러웠다.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마치 구조가 그 환상적 속성을
드러낼 때처럼 나는 존재의 뿌리까지 흔들렸다.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하고 외경스런 심정으로,
나는 그 오크나무의 갈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봤다.
예수에게 그 갈라진 곳을 그대로 둬야 하느냐고 물었던 걸
떠올리면서.
충격은 곧바로 흥분으로 바뀌었고,
나는 이 경험을 다른 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즉각 성당에 있는 친구 주디에게 전화를 걸어 서로 알고 있는 사실을
비교해보았다. 우리는 지난 이틀간의 사건들을 되짚어보면서
우리의 기억이 분명한 '사실'임을 확인했다.
찬미와 탄성의 합창으로 전화를 끝낸 친구는 그 소식을 허만
신부에게 전했다. 그러자 차분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허만
신부가 말했다. "나는 놀라지 않습니다. 밤새 그것을 위해
기도했으니까요"
약 일주일 뒤, 그 사건을 목격한 모든 사람이 그림을 살펴보고
그 완치를 축하하기 위해 성당에 모였다.
각자가 자신이 본 그림 손상 사건에 대한 진술서를 지참하고서
덕분에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7월19일에 일어난 사건에대한
증언서를 보관해둘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증언서들이
존재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림 자제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으니 말이다. 아무리 확대경으로 들여다봐도
움푹 들어간 자국이나 찢겨진 흔적, 혹은 복원한 흔적 따위는
찾아낼 수가 없다! 그 다음 몇 개월 동안,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 사건의 경위를 철저히 해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사건에 대한 문의가 쉴새 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라도 그 기적 같은 사건은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해석할 수가 없다. 우리가 현실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는
논리는 예측가능한 끝없는 인과로 조건지워져 있다.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기적을 이해하는 건 물론이고,
기적을 정당화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내가 그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한 가지 이상한 측면이 있다.
그건 그 두 체험이 마치 아주 얇은 베일로 미묘하게 분리된
서로 다른 현실 차원에서 대칭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물질 인식이 지탱해주는 베일의 한쪽면에서 보면,
나는 그 충격적인 일요일 사건의 모든 순간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이 면의 내 기억이 다른 증인들의 증언과 거의 일치하리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베일의 다른 쪽에서는 그런 사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림의 온전성을 인식하는 확장된 의식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수평으로 펼쳐진 통상적인 내 현실 인식이
고귀한 진리와 권능이라는 수직면과 교차되는 듯한 형국이다.
그런 느낌은 어쩌면 보편 현실 전체는 수평적 현실성이 의식의
상승이나 하강을 일으키는 수직적 가능성과 완벽한 조화 속에서
만나는, 무시간 순간들의 교차점을 중심으로 끝없는 창조를
계속하고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홀로그래피와 빛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또 다른 흥미로운 설명을 내놓고 있다. 그것은 홀로그램의
특성 중 하나인데. 모든 부분은 자신의 전체 이미지를
무한히 완벽하게 다시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전체를 다시 탄생시키는 것 외에 빛을 부분으로
절단하거나 나눌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애초 그 그림 전체가 다뉠 수 없는 온전한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활을 영위해가는 이원성이란,
구조의 밀도를 통해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지상에서 예수의 유일한 사명은 갈라진 오크나무처럼
이원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단순한 환상으로
만들어버리는 더 큰 온전함이 존재함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삶에는 최고의 순간들도 존재하지만 또한 견딜 수 없는 고난도 존재한다. 우리는 고통이 뭔지 너무나 잘알지만,
고통과 함께 완벽이 있다.
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더라도 이런 류의 복합성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과 온전함 또한 존재한다.
그렇다면 지금 지배적인 불완전성을 우리가 마침내 허용하지
않기로 작정하는 순간이 과연 찾아올까?
혹은 우리가 일단 기꺼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오직 온전함만이 넘쳐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아마도 이것이 그분의 메시지와.... 불가사의를 풀 열쇠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내면의 진실이 불가사의의 속박에서 벗어나길 요구할 대까지 탐구를 계속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가능성은 T.S엘리엇의 불멸의 싯구 속에 통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모색하길 그만두지 않으리라
그러면 모든 탐구의 끝은 우리가 출발했던 그곳에 도달하리니
그때야 비로소 그 곳을 알게 되리라.
기억 속 미지의 문을 지나 들어설
마지막 신대륙은 모든 것이 시작된 바로 그곳.
깊고 긴 강의 발원지임을
그곳에 몰래 숨겨진 폭포소리나
사과나무 아래 아이들 떠드는 소리는
찾거나 알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들린다. 희미하게 들린다.
밀물과 썰물 사이의 고요 속에서
자아 어서, 지금 이자리에서, 그리고 언제나....
완벽하게 단순해지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모든 것이 잘 되리니
모든 일이 잘 풀리리니
날름거리는 불꽃들이 모아져
영광스런 불의 매듭이 되고
불과 장미가 하나가 될 때
[출처] 끝없는 사랑 51쪽 1992년 여름, (행복한 뜨개방) | 작성자 꿈짜는행복한부자
[출처] 제1장 빛이 있으라|작성자 사랑
'마스터와 가르침 > 고대 비밀 가르침(密敎)'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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