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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아, 내가 너에게 가마” 제논 본문
홈사람人이동희ㅣ철학여행카페
“죽음아, 내가 너에게 가마”
이동희
현대에 복원된 아고라에 있는 아딸로스 주랑. 이 기둥들이 떠 받치고 있는 지붕 밑에서 스토아 학파가 시작되었다.
철학사에 보면 항상 대립되는 학파가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립되는 학파는 스토아 학파였다. 스토아 학파의 몇몇 사람들이 에피쿠로스 학파 사람들을 비난하고, 심지어 중상모략을 했다는 이야기는 지난번에 언급한 적이 있었다. 에피쿠로스 학파가 ‘쾌락’을 강조했다면 스토아 철학은 ‘쾌락 없는 의무’를 강조했다.
스토아 학파의 제논
엄격한 윤리와 의무만 강조해 별로 재미없을 것 같은 이 철학 학파는 오히려 서양철학사에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다. 스토아 철학은 헬레니즘 시대부터 시작해 로마시대에까지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 학파에 속하는 철학자들로는 노예 에픽테토스와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황제에 이르기 까지 다양했다.
초기 스토아 철학자들로는 제논, 클레안테스, 크리시포스를 들 수 있다. 중기 스토아 철학자들로는 파나이티오스, 포세이도니오스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신 스토아 학파 또는 로마 시대의 철학자들로는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이 있다.
스토아 학파는 그 시대마다 특징이 다르다. 그러나 무엇보다 원조를 알아야 그 학파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는 법이니, 여러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 중에서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인 제논을 소개하고자 한다.
철학사에 보면 제논이라는 이름을 가진 철학자는 두 명이 있다. 그 한명은 엘레아 출신의 제논이고, 오늘 소개하는 제논은 키프로섬의 남쪽 연안에 있는 키티온이라는 도시 출신의 제논이다. 그의 아버지 므나세아스는 소아시아와 그리스를 드나드는 무역상이었는데, 아들의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어린 아들을 위해 철학책을 사다 주곤 하였다.
이동희
키티온의 제논 모습
제논은 ‘이집트의 포도넝쿨’이라는 별명대로 피부도 거무스름해서 그리스인이라기보다는 페니키아인으로 추정된다. 거무스름한 피부를 가진 그는 구부정한 키와 빼빼 마른 몸 때문에 별로 볼품이 없는 외모를 지닌 것으로 생각된다.
제논이 아테네로 오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는 보라색 염료를 싣고 아테네로 오던 중 아테네의 외항인 페레이라스 근처에서 난파를 당하게 된다. 그는 험한 바다에서 침몰해 가던 배에서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바다를 항해하는 일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는 아버지의 직업에 회의를 품고 다른 길을 찾다가 우연히 책방에 들어가서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의 회상’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을 읽던 그는 그만 책 속의 나오는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에 매료되고 말았다. 책에 감복한 그는 책방 주인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자 책방 주인은 때 마침 책방 앞을 지나가던 키니코스 학파의 크라테스를 보았다.
“저기 저 영감을 따라 가시오”
그렇게 해서 그는 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후안무치한 견유학파의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스승인 크라테스가 그의 내성적 성격을 고치려고 발 벗고 나섰을까.
크라테스는 제자가 좀더 뻔뻔해 지길 바랬다. 그래서 그는 제자에게 콩 수프를 담은 항아리를 들고 케라마이코스 거리를 돌아다니게 했다. 제논은 창피해서 그 항아리를 숨기려고 했다. 그러자 크라테스는 그것을 지팡이로 내리쳐 깨버렸다. 그러자 콩 수프가 줄줄 새 제논의 옷을 적시면서 정강이 사이로 흘러 내렸다. 제논이 창피해서 도망치려 하자, 크라테스가 야단을 쳤다.
“왜 도망가느냐? 뭐 그게 창피한 일인가?”
욕망 아닌 덕에 따른 삶
제논은 성격상 후안무치한 견유학파와는 별로 맞지 않았다. 그는 크라테스를 떠나 메가라학파의 스틸폰 문하로 갔다. 그러나 크라테스는 제논을 놓치기 싫었던지 스틸폰 문하에 있던 제논의 옷자락을 붙잡아 끄집어 내려고 했다. 그러자 제논은 이렇게 옛 스승에게 대꾸했다.
“철학자가 붙잡을 곳은 귀입니다. 저를 설복시키고 나서 귀를 끌고 가십시오 그러나 당신이 억지로 저를 데리고 가도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은 제 몸뚱이 뿐이고, 내 마음은 스틸폰에게 있을 겁니다.”
제논은 메가라 학파에서 잠시 배웠다가 그곳에서도 만족을 못했다. 그는 아카데미아의 3대 원장인 크세노크라테스에게로 가서 배우다가 그가 죽자 다시 메가라 학파의 디오도로스에게 가 배웠다. 그러다가 다시 아카데미아로 돌아가 4대 원장인 폴레먼의 가르침을 받았다.
제논은 인생에서 철학을 선택한 것이 가장 잘 한 일로 여겼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에서 난파했던 사건을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동희
제논이 근처에서 난파 당한 것으로 알려 진 페레이라스 항구
제논은 여러 선생들에게 배운 뒤 이제 독립해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그가 가르친 곳은 아테네의 아고라에 있던 폴리그노토스의 포이킬레였다. 다시 말해 폴리그노토스의 채색 주랑이었다.
폴리그노토스의 주랑에는 채색된 여러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을 그린 화가가 폴리그노토스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사람들은 폴리그노토스란 이름으로 불렀다. 주랑은 공회당의 넓은 처마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가 그곳을 학교로 이용했던 것은 아마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아테네에 땅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난해서 다른 곳을 선택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스토아, 즉 주랑에서 제자들을 가르쳐 ‘스토아 학파’ 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아테네 폴리스가 붕괴하고 난 뒤, 그의 가르침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있던 아테네인들의 마음을 매우 강하게 사로잡았다. 스토아에는 그의 가르침을 들으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교단을 옮길 정도였으니까. 청강생 중에는마케도니아 왕 안티고노스 2세도 있었다고 한다.
제논은 자연과 개인의 삶의 조화를 강조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은 자연이라고 불리는 체계의 한 부분일 뿐이며, 개인의 삶도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가장 행복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에게 목적은 욕망이 아니라 덕에 따른 삶을 사는 것이다. 모든 덕은 이성에 기초한다. 덕은 우리가 무엇을 참고,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일러 준다. 덕에 따른 삶은 우리를 ‘정념의 부재’라고 하는 ‘아파테이아’(무심 무욕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상태)로 이끌어 간다.
다시 말해 고통과 쾌락에 무관심해질 때 우리는 그러한 상태에 가장 잘 도달할 수 있다. 제논에 따르면, 인간은 이렇게 감정과 욕망을 잘 다스림으로써 아파테이아뿐만 아니라 지혜에도 도달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떤 것에도 지배를 받지 않고 스스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동희
필자와 함께 그리스 여행을 떠났던 일행이 아딸로스 주랑 앞에 늘어 서 있다.
제논은 이러한 가르침을 몸소 실천해 아테네인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맡았다고 한다. 아테네인들은 제논에게 성문의 열쇠를 맡길 정도였으니까.
제논은 70세 때쯤 스토아에서 돌아오던 중 스스로 호흡을 끊어 자살을 했다고 하기도 하고 단식을 해서 죽었다고 하기도 한다. 그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죽음마저 자신의 의지로
“죽음아, 무엇 때문에 나를 부르느냐, 내가 갈 테다.”
죽음마저도 자신의 의지로 하겠다는 제논의 생각은 뒤에 스토아주의자들에게서 그대로 나타난다. 스토아주의자들에게 자살은 금기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처럼, 죽음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제논이 죽었을 때 아테네 의회는 그의 철학이 아테네에 끼친 공적을 칭송하며 황금관을 증정하고 국비로써 묘비를 세울 것을 결의했다. 그를 기리는 시비는 쉽게 잊혀졌지만 그가 남긴 덕론은 스토아적 삶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기억되었다.
“괴로움을 참고 견디고, 쾌락을 버려라!”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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