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13장 본문
13장
머리 위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짙푸른 빛을 내며 맑았으며, 수 백 만 개가 넘는 별들이 하늘이라는 판 위에 돋아 있는 듯 반짝이며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산과 계곡은 겨울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해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그토록 매혹적이며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산들이 짙푸른 아침 하늘을 배경으로 도드라져 있는 모습이 눈에 띠었으며,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파수꾼과도 같았다. 산들이 너무나도 가까이 있는 듯 보였으며 내 손을 뻗으면 거기에 닿을 수 있을 듯 했다. 눈을 이불로 삼아 덮고 있던 계곡과 빙하 전체가 잔잔한 햇빛을 받아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거기 서서, 해가 떠오르면서 내보내는 첫 햇살들이 니불룽 리충 산 봉오리에 부딪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점점 더 많은 햇빛이, 몇 주 전에 내가 올라가 뿌듯했던 그 산봉우리에 점점 와 닿을수록 별들은 희미해져갔다. 산들 뒤편으로 해가 점점 솟아오르더니 이내 햇빛은 우리 안식처의 현관까지 들어왔다. 나는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는데, 내 마음은 여기서 일어났던 아름다운 모든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에 서 있으면서, 태양의 짙붉은 광선이 시나브로 오렌지 빛으로 색깔을 바꾸는 그 놀라운 광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있던 모든 산봉우리들은 햇빛을 반사하기 시작하였는데 마치 불에 타고 있는 듯하였다. 해에게서 나온 첫 햇살이 우리의 안식처로 들어오자 나는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conscious of). 내 스승님이 거기 서 있었다.
그는 내 어깨에 그의 팔을 두르고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우리의 여행이 이와 같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단다. 오늘 아침처럼 말이야.”
나는 말했다:
“그 말씀을 언제나 기억하겠습니다. 지금 저로서는 스승님(you)을 떠날 수밖에 없고 저에게 그토록 소중한 그 모든 것들을 두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가슴 저립니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히말라야를 넘어서, 지금은 너무나도 멀리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당신께서는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실 거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친숙한 징(gong)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그것은 노르부가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우리를 부르는 신호였다. 그 소리는 계곡 위 아래로 울려 퍼졌고 곧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는데 마치 산들이 웅웅거리며 “가지 마라, 가지 마라” 말하는 듯 했다.
잠시 후 노르부는 우리가 서 있는 곳으로 왔다. 그녀는 환하게 빛났다. 다소 차가운 공기를 쐬어서 그런지 그녀의 볼은 장밋빛(rose-pink)으로 붉어졌는데, 그녀에게 딱 들어맞는 빨간색 모직 조끼(jersey)와 잘 어울려 그녀에게 이를 말해주었다.
나는 말했다:
“오늘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거 봤어요?”
“그럼요.”
그녀는 말했다.
“당신 뒤편에 서 있었는걸요. 그런데 워낙 깊은 생각에 빠져 계신 것 같아서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랬군요. 노르부. 하지만 당신도 제가 보고 있는 이 아름다운 경치의 한 부분인 걸요. 당신은 이곳과 정말로 잘 어우러지고 있어요. 산들이며, 계곡들이며, 은빛 달이며, 별이며 그리고 당신(Norbu). 나는 이 추억 가운데 당신을 담아놓았어요. 그리고 내 가슴 안에서 당신을 언제까지나 기억할게요.”
사랑스러운 그녀의 큰 파란 두 눈에서 눈물이 넘쳐흘렀으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녀의 얼굴은 행복에 가득 차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가 가슴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마을의 지도자인 다스 체링(Das Tsering)이 조랑말들과 내가 검은 왕자(Black Prince)라고 이름을 지어준 검은 숫말을 끌고 우리 안식처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 말을 본래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하리라. 그리고 노르부의 아버지께서도 그녀가 라사를 갈 때 타고 갔던 아름다운 밤색 암말을 데리고 올라왔다.
그 말은 혈기 왕성했으며 노르부를 보자 반갑다는 듯이 고삐를 자기 쪽으로 잡아 끌었다(it was full of spirit and tugged at the rein when it saw her). 내 스승님은 그의 친근한 하얀색 조랑말을 택했으며, 페데 드종(Pede Dzong)에서 짐을 나르는 용도로 고른 비상용 조랑말(spare pony)을 그 뒤로 끌고 갔다. 다스 체링은 커다란 갈색 조랑말을 탔으며, 그 뒤로 짐을 나르는 노새를 끌고 갔다.
그는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지 도와 드리려고 함께 따라 갑니다.”
나는 그에게 티베트 말로 물었다:
“산모와 아이의 건강은 좀 어떻습니까?”
“둘 다 건강합니다.”
그는 감사를 표시하는 듯 내 스승님을 쳐다보며, 티베트 말로 대답을 했다. 산모의 애를 받아준 것은 바로 내 스승님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여행을 출발하게 되었다. 내 스승님이 앞장섰으며, 그 뒤로 노르부, 그 뒤로 내가 뒤따랐고, 마지막으로 다스 체링이 맨 뒤를 맡았다. 출발할 때에는 날씨가 추웠는데 해가 높이 솟자 매우 더워졌다. 지표면에 쌓인 눈에서 반사된 햇빛으로 눈을 따금거리게 만들기 때문에,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선글라스를 썼다.
노르부가 말 위에 걸터앉은 모습은 참으로 사랑스러웠으며, 말을 꽤 잘 탔다(Norbu rode astride and a lovely rider she was). 캬추 강을 따라 나있는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내릴 때 그녀는 포니의 한 부분이 된 듯 했다. 여름이 되면 산에 쌓여 있던 얼음과 눈이 녹아내리면서 물이 불어 이 강은 매우 빠른 속도로 흐르게 된다. 그러나 겨울에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물결이 잔잔한 곳이나 강물의 폭이 좁은 곳에서는 표면이 얼어붙게 된다.
우리는 그 날 오후 4시 경에 데첸 드종(Dechen Dzong)에 도착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의 거의 대부분이 눈으로 뒤덮여 있었던 것에 비하면 우리는 상당히 이른 시간에 도착한 셈이다.
겨울에 눈보라가 휘몰아칠 때 그 사이로 여행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리고 봄과 여름에는 눈과 얼음이 녹아내려 불어난 강물 때문에 위험하다. 서양에서 자동차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티베트 사람들도 지형과 기후와 관련된 사고로 목숨을 잃곤 한다. 그러나 목숨을 잃은 사람의 친척들을 제외하고는 그 일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우리는 그날 밤 데첸 드종에 있는 이장의 집에서 묶었는데, 내 스승님이 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거기서 우리는 황송한 대접을 받았다.
데첸 드종은 딩아 레(Dinga Lhe) 강이 캬 추 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딩아 레 강을 건널 수 있는 대나무 다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 다리를 건너지는 않았다. 강물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고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 위로 쉽게 건너갈 수 있었다.
다음 날 우리는 젠쉬(Zenshi)라 불리는 곳에 도착했다. 그 지역에서 그 당시 우리가 여행하던 지점에는 굉장히 비옥하며 거대한 계곡이 있었다. (3장에서 묘사한 바 있다). 그곳에는 노르부의 친척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있었는데, 그들은 그 지역 내에서 무역을 주도하였다.
그들에게는 대여섯 개 가량 되는 야크와 당나귀 행렬이 있었으며, 그 동물들은 다 하면 2000마리 가량 되었다. 이렇게 티베트 상인들 가운데 상당히 부유한 사람들도 있었다. 상품들을 멀리 나르는(transport) 대가로 그들은 그것들의 일부를 운임으로 받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런 물건들은 무척 싼 편이다.
트락체 곰파, 즉 게쉬 림포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수도원은 3 마일(4.8km) 가량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나와 내 스승님은 그곳으로 계속해서 갔고 노르부는 그곳에서 친척들과 함께 남아있었다.
수도원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는 게쉬 림포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즐거워졌다. 그와 함께 있으면서(to be in his presence) 귀한 진주와도 같은 지혜의 말씀을 듣는 것은 참으로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수도원이 세워져 있는 산기슭에 이르자 여러 라마승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는데, 그곳 수도원장이 우리의 짐을 나르는 것을 도와주라고 내보낸 것이었다. 우리는 아래쪽에 위치해 있는 마구간에 우리의 조랑말을 데려다 놓은 다음, 바위 표면을 쪼아 만든 가파른 숱한 돌계단을 오르고자 계속해서 걸어갔다.
우리가 중간 정도에 이르렀을 때, 게쉬 림포체와 수도원장이 우리를 마중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게쉬 림포체가 기쁘게 맞아주는 그 모습은 언제까지라도 기억할 것이다. 그는 나를 몹시 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면서 나에게 이를 말해주었다. 나는 그에게 사랑스러운 아들(beloved son)이었으며, 그는 오크 계곡까지 가는 길에 나와 함께 하고자 그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나는 말했다:
“영체가 아니라 몸을 입은 상태에서 당신을 만나 뵙고 당신의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당신을 만나 뵙고 싶어 하는 매우 사랑스러운 여인도 있는데, 나는 그녀에게 당신에 대해 참으로 많이 말해주었답니다.”
그는 대답했다:
“그래. 나도 알고 있지. 그녀의 이름은 노르부이고. (‘귀한 보석’) 너는 그녀를 나에게 데려와야만 할 것이야.”
“그럼 그녀를 알고 계셔요?”
“물론이지, 아들아. 나는 너를 항상 지켜보고 있으며 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단다.”
(나는, 게쉬 림포체가 아스트랄 체로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을 순간 잊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그녀를 게쉬 림포체에게 데려갔다. 그녀는 그를 보자, 그의 외투의 끝자락을 잡고는 그녀의 입술을 거기에 갖다 대었다. 그러자 그는 그녀를 축복하며 이렇게 말했다:
“일어나라, 아이야. 너를 보니 참 즐겁구나. 너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미래가 펼쳐져 있구나. 남자들만 요가 마스터(Yoga Masters)가 되는 것은 아니란다, 노르부.”
노르부에게 이 사실을 알게 해 준 것은 참으로 크나큰 축복이었다. 나는 그녀로 인해 매우 기뻤으며 나도 모르게(spontaneously) 게쉬 림포체와 내 스승님과 수도원장이 있는 앞에서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 모든 행동은 참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다. 게쉬 림포체는 이 자연스러운 행동(spontaneous action)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신께서 너희를 축복하시길, 내 아이들아.”
그러자 내 스승님은 전에 나에게 해주었던 말을 다시 한 번 말하였다:
“그분의 뜻(His Will)대로 하도록 우리 모두를 함께 묶고 있는 것은 바로 신의 사랑이란다.”
그 뒤에 게쉬 림포체는 우리 모두를 그의 안식처(Sanctuary)로 안내했고, 거기서 매우 고무적이며(instructive) 경이로운 그의 강론들 중 하나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몇 시간이고 들을 수 있었고, 그가 말을 마칠 때 아쉬워했다.
그는 이러한 말들로 계속 그의 강론을 이어나갔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란다. 그들이 누구일지라도, 살면서 그들이 어느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부유하든 가난하든, 어떤 직함이 있든 없든 그런 것에 상관없이 말이야.”
“겉으로만 보자면 남자와 여자 사이에, 남자들 사이에, 여자들 사이에 차이와 불평등이 있어 보이지. 그러나 사랑 안에서는, 실재 안에서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지(but in Love, in Reality, there is none).
“우리는 모두 다 똑같이 누구나 고통을 겪고 있고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단다. 그리고 우리는 걱정, 슬픔, 기쁨, 만남과 헤어짐, 아픔과 건강 등의 문제를 등에 지고 살아가고 있지. 이러한 모든 문제들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들이야.
모든 사람들은, 그가 누구라 할지라도, 그가 무엇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자유로워지길 원하지. 그들은 자신의 비참함으로부터 빠져나갈 길을 찾고 있는 거야. 이 점에서 우리는 모두 같으며, 여기에 차이란 존재하지 않단다.”
“자,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슬픔과 고통 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으로부터 회피하고자 한다면, 슬픔과 고통의 무게를 더하게 될 뿐이야. 슬픔과 고통은 회피하려는 태도를 통해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것이거든. 그것은 오로지 사랑(loving)과 이해(understanding)를 통해서만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야.
그대들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라야 그대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란다. 그대들이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대들이 그것을 사랑하고 있을 때란다(you can understand anything when you love it).
그러나 마음이 쉴 새 없이 떠들어대고 가슴에는 사랑이라곤 하나 없어 텅 비어 있을 때에는 ‘사랑’이라는 말장난에 휩쓸려 갈 수 있단다.”
“그대들이 참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그때 그대들 가슴에 민족의 정체성이나 국가의 정체성(nationality)이 하나라도 있던가? 그러나 가슴이 사랑이 없어 텅 비어 있을 때에는, 사람들을 이러저러한 집단들로(types) 나누는 것이 중요하게 된단다. 우리는 사람들을(beings) 계급으로 나누고, 민족이나 국가로 가르고 있단다.
그러나 그대가 정녕 사랑하고 있을 때, 너와 내가 과연 서로 다르던가? 마음이 그 무엇에도 붙들리지 않고 관대할 때, 그때에는 그 무엇도 다르지 않아. 그때 그대들은 자신을 아낌없이 주고 있을 따름이야(you give of yourself). 진실하게 진리를 구하고 있는 자들에게 다름이란 존재하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진리(Truth)란 사랑(Love)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지.
그러나 만약 그대들이 특정한 방법이나 길을 추구하고 있다면, 사랑이란 결코 존재할 수 없단다. 왜냐하면 특정한 방법이나 길에 집중한다는 것은 배제를 의미하고, 진리란 모든 것을 통합하는 것이기 때문이지(for the path means exclusion, and Truth is all-inclusive). 다른 집단에 대항한다며 우리라는 집단 의식에 호소하는 것은 정치가들이나 성숙하지 못한 자들이나 하는 값싼 속임수란다.”
“우리가 어떤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그것을 직면하고, 그것으로부터 회피하는 것을 바라지 않게 될 때란다. 회피하려는 마음이 사라졌을(free) 때 우리는 이해하게 되는 것이지. 행복해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 곧 행복해지는 것이야. 그때에는 분열도(no division) 분리도(no separation) 존재하지 않게 되지.
왜냐하면 사랑은 시간과 공간의 간극도 메우기 때문이란다(because Love bridges time and distance). 사랑하고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이 풍요로워짐을 느끼고 모든 것을 기꺼이 나누려 한단다. 가슴이 사랑으로 가득할 때, 우리를 서로 가르고 있는 마음에 속한 것들은 사라져 버리게 되지.”
“마음은 세계를 바꾸어놓겠다는 계획들로 가득 차 있고, 또한 종교 예식들, 순결(chastity), 갖가지 덕목(virtue) 등에 대한 생각들로 꽉 채워져 있단다. 그러나 거기에 모든 것을 녹여(resolving) 하나로 묶어주는 사랑이라는 핵심 요소가 빠져 있다면, 참된 관계맺음이란 존재할 수 없단다.
그대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다 한다 하더라도,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산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산꼭대기에 홀로 앉아 있거나 외떨어진 곳에서 홀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관계맺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올바른 행동(right action)이란 있을 수 없지. 그러므로 그대들이 직면하고 다루어야 할 문제란 바로 관계맺음에 대한 것이지. 그리고 자기-이해 없이는 참된 관계맺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이러한 관계의 그물(relationship)로부터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어쩌면 그대들은 정글이나 산으로 숨어 들어갈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그대들은 여전히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단다. 관계라는 그물 안에서 그대들은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지. 이러한 관계 안에서 그대들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지를 볼(see) 수 있게 되는 것이야. 생각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단다(Thought must know its own activity, its own action).”
“사랑이 있을 때라야, 참된 종교가 있고, 참된 순결이 있는 것이란다. 참된 사랑이 존재하고 있을 때, 순결은 문제가 되지 않아. 그러나 사랑이 없을 때, 그대들은 순결에 대한 관념들을 추구하게 되지. 그러나 사랑이 가슴에 자리 잡게 될 때, 마음에 속해 있을 따름인 순결에 대한 단순한 관념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순결이란 문제는 해결되어 버린단다.”
“가슴을 풍요롭게(nourishing) 하는 것은 마음의 과정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러나 마음 스스로 자신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면, 그때 사랑이 들어서게 된단다. 사랑은 말이 아니야. ‘사랑(Love)’이라는 말은 사랑(Love)이 아니야. 그대들이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 그것은 그저 마음에 속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야.
말(the word)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그대들이 깨닫게 되면, 마음은 자신의 옳고 그름에 대한 잣대들, 자신의 덕목과 다른 가치들로써 사랑이 나타나는 것을 방해하던 것을 그치게 되지. 그러면 그때 사랑이 있게 되는데, 그것은 마음 안에서 생각들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고, 다만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신선할 따름이지. 이러한 사랑 안에서만 홀로 진정한 의미의 덕(virtue)과 진정한 의미의 순결이 있게 되는 것이란다.”
이 말을 마치자 그는 눈을 뜨고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너는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고 있지, 그렇지?”
나는 말했다:
“네,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신선할 때에는 그 어떤 문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자신의 실재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사랑이란 어떠해야 한다는 것들에 대한 관념들을 마음이 형성하려고 할 때입니다.”
“그렇단다. 아들아. 너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바로 진리란다.”
나는 게쉬 림포체의 위대한 지혜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관념이 아니라, 사랑의 실재(the Reality of Love)를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을 계속해서 억누르고(repression), 억압하며(suppression), 소위 덕이라 부르는 것들과 같은 단순한 관념들로 이루어진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품고 있는 순결이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맺음 대한 이해 없이 성적인 충동을 억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참된 관계맺음을 이해하고 나면, 마음은 생각들을 지어내고 있는 자신을 알아보게 되고, 그리하여 사랑이 나타나 작용하는 것을 방해하기를 멈추게 된다. 그러면 그때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신선하며, 마음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속해 있는 사랑이 들어서게 된다.
우리는 사랑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We do not creat Love).
사랑이란 항상-현존하고 있는 것으로서, 마음 안에서 만들어 진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게 될 때, 사랑은 들어서게 된다. 마음 스스로, 자신은 사랑을 창조하지 못하며 다만 사랑은 어떠해야 한다는 등의 관념만을 창조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그때 마음은 고요해지며 사랑이 그저 존재하게 된다. 그때 어떤 문제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데, 모든 문제는 사랑 안에서 해결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사랑이 곧 신이며, 신이 곧 사랑이기 때문이며, 이것 말고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밖에 다른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마음이 지어낸 환상일 따름이며, 이것이 마음에 이해되고 나면, 환상은 떨어져 나간다. 그러면 그때 사랑이 들어와 자신의 완벽함을 이루어내며 일을 하게 된다. 사랑은 그 자체로 영원하기 때문이다(then Love worketh Its own perfection, for It is Its own Eternity).
게쉬 림포체가 말하는 내용에는 언제나 보기 드문(rare) 무엇인가 있었다. 그는 문제의 중심으로 곧장 들어갔으며(He went straight to the heart of the problem),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만 있는 보기 드문 무엇인가란 바로, 말이 본래 전하고자 하는 보다 깊은 의미에서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작용이며, 그 순간에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It was the transforming action, in the deeper meaning of the word, that was taking place).
전에도 비슷한 말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했던 말들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진리의 아름다움으로서, 그것은 언제나 새롭다.
수도원장의 방 안에 우리의 식사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우리는 모두 같은 식탁에 앉았다. 그곳의 주인인 수도원장이 식탁의 정중앙에 앉았으며, 그 오른쪽에는 게쉬 림포체가, 그 왼쪽으로는 내 스승님이 앉았다. 그리고 노르부와 나는 수도원장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날의 식사는 마치 가족들의 행복한 모임 같았다. 게쉬 림포체가 노르부에게 티베트말로 물었다:
“우리와 며칠 더 남아 있지 않겠니?”
그는 이에 대한 허가를 구하고자 수도원장을 쳐다보았다. 나는 수도원장이 동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사실 수도원 내에 여자를 들이지 않는 것이 그 당시 관습이었다. 티베트의 가장 위대한 현자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에 대해 노르부는 기뻐 뛰었다. 이는 참으로 큰 영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노르부는, 내 스승님과 함께 잠사르로 되돌아가기 전에, 우리와 함께 4일을 같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게쉬 림포체는 최고의 상태에 있었다. 나는 그가 그토록 영적으로 고양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내 친구와 노르부가 떠나야 하는 날이 왔다. 게쉬 림포체와 나는 각자의 조랑말을 타고 젠쉬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날 아침 노르부는 나를 안아주었는데, 지금 이 순간도 잘 기억할 수 있다. 나는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밝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자 게쉬 림포체는 그의 손을 내 어깨에 올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베인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 그리고 나 역시 그와 몸을 입은 상태로는 헤어져야 할 것이고. 그리고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란다, 노르부(This is my beloved son and I will have to part with him too in the flesh, and you are my beloved daughter, Norbu).”
그러고 나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더니 내 손에 쥐어 주며 이렇게) 말했다:
“신께서는 그분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bound)주셨단다. 그리고 그분의 생명(His Life)은 우리를 영원한 사랑이라는 하나의 튼튼한 사슬로 결합(unite)하고 계신단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는 어떠한 분리도 존재하지 않지.”
나는 오크 계곡에서 내 친구를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그는 내가 돌아가는 길에 칼림퐁(Kalimpong)까지 바래다 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내 어깨 위로 손을 올리더니 평소에 그이께서 하시던 애정 어린 방식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조만간에 다시 너와 함께 있게 될 것이란다, 아들아.”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잠사르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때 나는, 내가 두고 떠나온 것들 중 무엇인가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아침 이슬처럼 신선한 무엇인가를 말이다. 게쉬 림포체가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랑은 곧 신이며, 신이 곧 사랑이야. 그리고 신께서는 결코 죽거나 사라져 버리지 않으신단다. 그분의 사랑은 언제나 신선하고 새로우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존재하고 있단다.”
우리가 그날 오후 늦게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수도원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역시, 노르부의 얼굴을 통해 바깥으로 빛났던 그녀의 아름다운 영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게쉬 림포체는 말했다:
“노르부보다 더한 아름다움을 아시아 안에서 찾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네.”
노르부의 매력(influence)은 그녀를 만났던 모든 사람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으며, 시간이 흘러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남겨주었다.
노르부와 내 스승님이 떠나고 난 후 그 다음 주 동안 게쉬 림포체와 나는 매일 함께 걸으며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나는 그의 충고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을 사랑했으며, 그분의 현존(a presence)은 그 자체로 나를 고양시키는 것이었으며, 그분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실 때조차 그러했다.
하루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이 모든 사람들을 뒤로 하고 왜 저는 떠나야 하는 건가요?”
그때 그는 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신께서는 이토록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분은 당신의 아들을 세상으로 보내주셨는데, 이는 그 아들의 말씀에 귀 기울일 자들이 거짓된 것을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참된 것(what is True)을 알게 하려는 것이지. 그러면 진리(the Truth)는 그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란다.
너는 세상을 사랑해야 한단다, 아들아.
모든 마스터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이(the greatest of all Masters)께서도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말이지. 육체로 난 것도 아니며, 사람의 의지로도 난 것도 아니며, 다만 항상-현존하고 계시는 신의 영으로부터 난 신께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영원토록 살고 계신단다(God, not born of the flesh or the will of man but born of the Ever-Present Spirit of God which liveth now and forever in Love beyond time and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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