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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11장 - 맥도널드 베인 본문

영성수행 비전/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11장 - 맥도널드 베인

柏道 2021. 11. 15. 15:02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11장 - 맥도널드 베인

 

11

모닥불 둘레에 앉아 잠시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 받노라니 서로 완전히 조화되어 있는 느낌이 아련히 솟아났다. 막상 육체로는 처음 만나는 자리이지만 전혀 아무런 어색함이나 긴장됨이 없었다. 어느 때보다도 크고 깊은 계시가 내릴 것만 같았다.
우리는 엿새씩 걸려-그래도 보통 소요되는 시간의 반도 못된다고 한다-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피로는 없었다.
그만큼 말할 수 없는 평화의 분위기가 우리를 감싸주었던 것이다. 오히려 나는 새로운 기운이 솟는 느낌이었다. 이런 때 목욕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상쾌할까……. 은자님은 나의 이런 생각을 느끼신 듯 호수로 나가는 소로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저 길을 따라가면 호수로 나가니 거기서 목욕을 하게나. 물이 따뜻하지. 섬 끝에 온천이 있다네. 호수 가장자리에 목욕할 곳을 만들어서 거기로 온천물을 끌어놓았다네. 그러나 온천이 솟는 쪽은 물이 펄펄 끓고 있으니 너무 가까이 가면 안되지. 자네들이 목욕을 하는 사이에 저녁 식사를 준비해 놓겠네하시는 것이었다.
나의 스승과 둘이서 그 소로를 따라 나갔다. 길 양쪽은 온통 야생의 꽃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유난히 크고 화려한 양귀비 꽃이 눈길을 끌었다. 호수에 닿아보니 한 옆에 거품을 품으면서 끓어오르는 온천이 있고 그 뜨거운 물이 호수 속으로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옷을 벗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 널찍한 간격을 두고 벽이 쳐져 있어 그 벽 사이의 물은 온천의 뜨거운 물이 흘러들어 그대로 목욕탕이었다. 온천에 가까운 물은 뜨거웠지만 호수쪽으로 나감에 따라 점점 온도가 내려가고 끝내는 호수의 찬물 그대로였따. 물은 아주 투명하게 맑아 속에서 물고기들이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것이 또렷이 보였다.
더운물, 찬물을 마음대로 언제나 쓸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곳입니까. 은자님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다 가지시는군요. 정말 놀라운 곳이에요. 이런 곳이 영국이나 미국에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들을 주체하지 못하겠지요하고 나는 나의 스승에게 말했다.
우리는 그 목욕탕겸 수영장에서 기분좋게 헤엄을 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는데, 은자님이 저녁을 먹자!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 식사는 무엇이 나올까요?
그야 놀라운 것이 나오겠지
정말 그랬다.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것은 구운 물고기, 신선한 버터와 그릇에 가득한 우유, 그리고 은자님이 손수 구운 빵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빵을 만드시나요?하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물어보았다.
응 나의 옥수수밭과 보리밭, 그리고 거두어들인 것을 빻는 방앗간을 나중에 보여주지하고 은자님은 웃으며 대답하셨다.
물고기의 맛은 참으로 담백하고 감칠맛이 있었다. 빵은 보리와 옥수수를 거칠게 빻은 가루로 만들어져 있따. 마치 호두껍질 같은 색깔이었다. 그렇게 맛있는 빵은 처음이었다. 버터는 방금 천에서 꺼낸 것처럼 신선했다.
나는 나의 스승을 향해 이렇게 맛있는 것을 드셔본 적이 있나요?하고 물었을 만큼 정말 놀라운 식사였다. 더구나 이른 아침 이후 우리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던 것이다.
저녁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모닥불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까지의 우리들의 행동과 경위를 말씀드렸더니 은자님은 기뻐하시면서,
자네들 두 사람은 나의 이 암자로 들어온 첫 인간들이라네하시면서 눈길을 나에게로 못박고,
자네는 외부세계에서 들어와 위대한 대사들에게 밀교과학 전반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는 특권을 얻은 최초의 인간이기도 하지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 정말 큰 특권입니다. 더구나 은자님까지 이런 놀라운 곳에 저를 불러주셔서 뭐라 고마움을 나타낼 길이 없습니다.
무엇하나 우연히 되는 일이 없지. 부름을 받는 자는 많지만 막상 맞아들여지는 자는 적은 법이야. 자네는 자네 자신이 태어난 목적에 따라 예까지 오게 되었지. 그러나 꾸준히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네. 모두가 세속에 휘말려 버리고 말지
나는 속으로 정말 그렇다. 나도 자칫하면 휘말려 버릴 찰나였으니까하고 혼잣말을 했다.
자네가 이곳까지 온 것도 그 목적을 위해 필요했기 때문이야. 자네가 하는 일은 세상의 평범한 일이 아니고 세계는 자네의 일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또한 자네는 앞으로 해야 할 보다 큰 일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자네는 아직껏 세상에 나오지 않은 종류의 책을 몇 권인가 쓰게 될 것이야. 물론 세상에는 좋은 책들도 많이 있지. 그러나 그 모두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아는데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들이야
저에게 그런 일을 할 만한 값어치가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데요
우리는 자네의 값어치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야. 자네는 좋은 그릇이야. 이제부터 더더욱 좋은 그릇이 될 것이 틀림없어
잠시 침묵 후에,
자네가 이곳에 머물 기간은 한정되어 있어. 그러므로 시간을 낭비하게 하지 않을 작정이야. 곧 공부를 시작한다. 그런데, 공부에 들어가기 전에 이제부터 하는 일에 대해 자네가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을 오늘 저녁에 말해 주겠네
명석한 의식에 필요한 것은 일체의 그릇된 것, 허위인 것, 미망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마음만이 아니라 창조하는 의식이다. 마음은 연장이고 창조작용을 하는 힘은 의식이다. 그대의 의식은 배후의 모든 창조성 전체를 함유하는 ()과 같은 것이니, 표현된 그대의 상념은 그대의 의식상태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만약 그대의 의식이 온갖 이미지나 신앙 및 그런 종류의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면 그대의 창조성은 움츠러들어 숨어버린다.왜냐하면 그대가 멋대로 만들어낸 온갖 믿음이나 생각, 이미지, 권위, 그리고 또한 여러가지 형식에 의식이 사로잡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에는 창조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대의 의식은 공간을 원하는대로 이동할 수가 있는 것이며, 자기가 원하는대로 공간의 어떤 점에서도 창조성을 발휘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일체의 창조성 전체가 그 배후에 있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그대로 여기서 온전히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대는 아직 의식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창조성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러나 그대의 의식은 우주에 편만하는 전체 창조성에서 떨어져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에는 오직 하나의 의식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둘의 의식이란 있을 수가 없으며 나아가 둘의 창조주라는 것 또한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대의 의식은 바로 그대로 위대한 창조성이 그 역사를 펼치는 수단인 이며, 동시에 또 그대 자신이 그 크나큰 창조성을 실현하는 수단인 이다. 자 만약 그대의 의식이 온갖 잡다한 생각으로 뒤얽혀 있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다면 의식은 그저 그 혼란 상태를 실현시킬 뿐이며, 그러다보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는 끝내 알지 못하고 만다.
자아의 마음 속에 있는 것에는 창조성은 없다. 창조성은 마음을 넘어선 곳에 있으며 혼란된 온갖 생각에서 해탈한 의식 속에만 있는 것이다


, 더욱 뚜렷해집니다
나의 스승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이 또한 은자님의 예지에 휩싸여 있는 듯 했다.
따라서 그대의 의식은 마치 그대의 의식을 매개체로 하여 창조주가 외부 세계의 모든 방향으로 그 완전한 파동을 내보내는 방송국과 같은 것이다. 그 파동들은 그대의 마음과 두뇌와 신경계통을 통하여 흐르며 심장, 분비선, 혈관, 운동신경, 그밖에 모든 육체기관에 영향을 주고 그리하여 그것들에서 어떤 결과를 나타내 보이며 그리고나서 다시 그대의 육체를 넘어 에텔계로 나간다. 그 에텔계를 알고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대를 늙게 하는 것은 연령이라는 관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대는 스스로 연령이라는 관념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 뿐이며, 영원, 절대상주(絶對常住)의 창조성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나의 마음 속에서 오가는 생각에 대한 대답이었다. 나는 바로 그 때 은자님은 나이가 몇이나 되셨을까?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은자님의 말씀은 계속된다.
창조의 파동은 창조의 사명을 띠고 공간 속으로 퍼져나가 모든 것을 조화시킨다.
그대의 의식이 그대 스스로의 온갖 관념, 치우친 신앙 따위의 포로가 되어 있으면 현상을 나타나는 것은 그대의 그런 생각이나 신앙이고 그것은 창조성이 아니다. 이 창조성만이 참으로 창조를 하는 것이다. 그대 자신의 관념에는 창조의 힘은 없다. 왜냐하면 그 관념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그대 자신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은자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나는 나의 스승을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말을 처음에 내게 해준 것이 그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진리에의 길로 깊이 더 깊이 이끌어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의 몸과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이며 단순한 관념이나 생각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왜냐하면 그 현상에 대하여 어떤 관념도 만들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 자신의 마음 속에서 만들어 낸 것은 아무래도 좋았던 것이다. 나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진리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리란 마음을 넘어선 것이며 진리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나의 참 나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의식 속에서 참을 깨닫고 해탈하였을 때 비로소 나는 창조성을 작용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은자님은 계속하신다.
인간은 단순한 물질적 존재가 아니다. 그는 실재 속에 있으며 모든 의식 전체 속에서의 하나의 중심이다. 그러나 이 또한 단순한 관념으로 만들어 버려서는 안된다. 또는 여기에 대해 어떤 관념이나 사상을 만들어내려 해도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는 순간 그대는 그것을 잃고 말 것이다. 또한 그대는 내가 말하는 바에 대하여 그대 스스로의 마음 속에서 어떤 관념이나 사상을 형성시키려 해서는 안된다. 내가 지금 하려는 것은 자네의 의식을 막히어 참으로 있는 것이 나타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그이가 가리키는 것은 마음을 초월한 존재였다.
거룩한 존재를 추구하는 이성만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것, 두뇌의 마음을 넘어선 것으로 나를 이끌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대의 상념이 일구는 파동이 그대 자신의 자기 한정의 파동일 뿐이라면 그대는 이 세계에 아무 소용도 없다. 그러나 그대의 의식이 해탈한다면, 일체의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성이 그대로 곧바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그저 자연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떤 저항도 혼란도 자기한정도 반항도 없으며 오직 순수한 능동력(能動力)만이 있을 뿐이다. 창조성 속에는 무지나 공포 같은 것은 없다. 무지나 공포는 깨닫지 못한 인간의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마음 속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명석한 의식을 통하여 창조성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육체 속의 무수한 세포를 꿰뚫어 흐르며 창조성 본래의 믿음을 표현한다. 그리하여 창조주와 그 피조자는 하나가 된다
앞에서 말씀하신 것은 전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지금 하신 말씀은 또 새롭군요하고 내가 말하자
그것 보라. 그대는 역시 전에 얻은 관념 외에 또 다른 새로운 관념을 쌓아 올리고 있을 뿐이야. 그것은 그저 새로운 것이 전의 것보다 더 좋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지. 안 그런가? 내 말은 단순한 지적 관념이나 논의가 아니야. 그것은 변성(變性)의 한 과정이야
어떻게 하면 이 버릇을 극복할 수 있을까……」하고 내가 마음 속에서 중얼거렸더니,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일체를 떼어내어 버려야 한다. 의식을 지능에서 풀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생명의 창조성은 지금이다. 지능은 다만 그것에 대해 사색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차옺성은 지금이야. 만약 그것지금이 아니라면 그것은 결코 존재할 수 없으리라. 왜냐하면 인간이 창조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대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을 단순한 관념이나 사상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또한 내가 그대에게 말해주는 것을 단순한 신앙이나 신조로 삼아서도 안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것은 그저 겨우 지금까지 그대가 알아온 것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더 보태진 것 뿐이니까
그렇다! 내가 스스로 지금까지 마음 속에 쌓아온 온갖 관념, 신앙, 신조 그리고 이미지가 뚜렷이 보여 왔다. 그 모두가 그저 하나의 기억에 불과하며 그러므로 그것은 지닐일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을 가지고 진리를 만들어낼 수도 없다는 것을 이제야 가슴 밑바닥에서 안 것이다. 진리란 마음을 초월한, 지금 생생히 살아있는 창조성 그것이었다. 그것은 그 참된 나타남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정도에 따라 그 스스로를 들어내는 것이다.
그대가 나를 하나의 권위자로서 받아들이거나 무엇이든 그대 자신 밖의 것을 권위로서 받아들인다면 그대는 공포를 품기 시작할 것이고 그 결과는 혼란 밖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게되면 그대는 그 혼란을 그대 자신의 몸과 마음에 그리고 그대의 환경에 현상화하고 만다. 그런 것이 진리일 수가 있겠는가?
사랑이란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사랑이란 창조성이 움직일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사랑은 창조행위인 것이다. 관념 사상이나 신앙 신조 따위는 그저 그 나름의 반작용을 만들어낼 수 있을 뿐이며 반작용은 결코 창조 행위가 되지 못한다. 차옺적 해우이는 각 개인의 의식 속에 있는 신의 의식의 나타남이다. 개인 의식이란 곧 신의 의식이 스스로를 나타내는 이기 때문에 개인의 의식이 해탈했을 때 신의 의식은 스스로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이라는 분리적인 존재로 여겨오던 것은 녹아 없어지고 순수한 행위만 있게 된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순수행위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아임을 이제는 알겠는가?
그대의 의식을 통하여 방촐되는 이 거룩한 에너지는 그대 자신의 심신과. 앞에서 말한 깨달음의 순간에 그대가 자신의 의식 속에 품어온 사람들과 그대를 조화시킨다. 그리하여 창조주와 피조자는 하나가 된다. 그 때 거기에 있는 것은 오직 평안과 안심과 기쁨 뿐이다. 소유욕과 공포는 사라져 버린다. 그런 것들은 다만 자아의 욕망에서 생겨난 것들이기 때문이다.



잠시 침묵을 사이에 두고 은자님은 다시 계속하셨다.
해탈한 사람은 분노나 애쓰는 마음의 파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안다. 왜냐하면 그런 것에서는 부조화를 느끼기 때문이다. 분노나 공포의 영향이 해탈한 사람에게 직접 미치는 것은 아니며 다만 해탈한 사람은 그것을 느끼고 깨달으며, 그것이 참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분노하거나 애쓰는 미숙한 마음의 임자에게는 그런 분노나 애씀의 파동이 그대로 강력한 영향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참 아닌 마음의 움직임은 오직 좁고 옹졸하고 눈뜨지 못한 마음에서만 일어날 뿐이다.
인간의 공포, 혐오, 질투…… 따위의 염파는 곧바로 육체에 그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얼굴의 근육에까지 변화를 일으켜 표정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우리는 그런 표정 뒤에 숨어 있는 괴로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모양의 변화 배훙에 숨어 있는 비밀이 바로 그것이다. 의식은 창조 작용을 하기 때문에 의식만이 형태를 창조하는 것이며, 그 창조적 의식의 명령에 따라 질료(質料)-형태-의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의식이 창조작용을 하기 위하여 어떠한 장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아버지인 신이 역사를 하실 수 있는 것이다. 확연히 아는 꺠달음과 분명한 방향의 지시가 따르는 신념을 가지고 의식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아버지인 신이 그대로 성취시켜 주신다. 왜냐하면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분리도 장애도 없기 때문이다.
신의 창조성이 우주에 한결같이 있는 에너지를 바꾸어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하듯이, 일체의 창조성 전체와 하나임을 깨달은 이른바 개인의 의식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나는 그 때 감히 아버지 하나님이 하시듯 나도 또한 일하는 것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을 소리내 말했다.
바로 그대로이다. 광물?식물?동물 또는 인간이든 천사이든, 내재의 의식만이 궁극의 존재이며 으뜸의 존재이다. 이것이 예수가 그 제자들에게 준 비밀된 가르침인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의식 속에만 일체의 권능이 있는 것이며 그 권능에는 한계가 없다. 거룩한 의식이란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인간의 생각이란 스스로 제 마음에 제가 그린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거룩한 의식이란 거룩한 존재 스스로의 나타남인 것이다. “참으로 나와 하느님은 하나이다그대는 이 말을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아직 하나의 말에 불과하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의 마음은 스스로 멋대로 만들어낸 감옥 문에 스스로 무지라는 완강한 자물쇠를 잠그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거룩한 의식이란 곧 창조의 말씀이며 그것은 한결같이 항상 완전한 창조의 말씀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될 때 나타나는 모양은 더더욱 광휘 찬란해지고 거룩한 의식 그것을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사랑의 파동이야말로 완전한 창조의 바탕이며, 또한 원자의 무리를 완전한 리듬에 따라 조합하여 보다 완전한 형태를 보이게 하는 바탕이다. 그러므로 명석한 의식은 온갖 복잡한 인간의 관념 속에 갇히어 있을 수가 없으며, 거룩한 창조성이 움직여 에텔의 원자 무리를 결합하여 거룩한 의식을 형태로 나타나게 하는 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곳이다. 우주에는 지혜와 능력을 갖춘 힘이 있으며 그것이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을 내어 에텔의 원자 무리를 결합시키고, 그것이 물질 차원에서 어떤 물질 원자들의 형태화가 나타나는 바탕이 되며, 그리하여 물질원자 무리가 모여들고 응고하여 어떤 형태의 물질로서 육체의 감각에 인식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 내일부터는 영체이동(靈體移動)을 익히도록 하자. 그대는 그대 스스로의 의식이 해탈하는 정도에 따라 영체이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그때그때 저녁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
이제 해도 졌으니 오늘 저녁은 이만 쉬는 것이 좋겠지. 내일 새벽 해 뜨는 모습을 보고 또 저녁에는 해가 지는 모습을 보도록 하세나. 저 험한 고개 위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눈에 햇빛이 닿는 광경을 보게나.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지.
어저께 제가 본 광경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정말 이곳의 일출이나 일몰을 보는 것이 즐겁습니다.널찍한 거실 둘레에는 몇 개인가 작은 방이 달려 있고, 그 안에는 보기에도 편안할 것 같은 소박한 침상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가운데 한 방에서 자기로 했다. 아주아주 편안히 잠들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다음 날 아침 나의 스승이 흔들어 깨워 나는 눈을 떴다. 꼼짝도 않고 한 밤을 잤던 모양이다. 나의 스승은아침 식사가 다 되어 있다네하며 웃었다.
얼른 일어나 세수를 하고 식사를 마친 다음 해 뜨는 광경을 보려고 밖으로 나갔다. 고개의 배후에서는 태양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응시한다. 눈은 여전히 공중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 배후에 불그레한 백열광이 비치기 시작한다. 마치 거대한 무지개의 일곱 색깔이 그대로투명한 막이 되어 있고 그 뒤에서 눈부신 눈의 백색이 너울거리는 것 같다. 참으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경치이다. 그 격렬하기 그지없으면서도 끝없이 맑은 독특한 자연의 모습 앞에서 나는 이미 없었고 다만 느낌 그것 뿐이었다. 겨우 고개가 그 윤곽을 드러냈다. 그 고개를 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호수의 잔잔하기만 한 표정과, 6천 미터가 훨씬 넘는 높이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광폭한 바람, 그것은 너무도 강한 대조였다.
, 이제부터 영체이동의 공부를 시작하자
은자님을 따라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드러누워 온 몸에 긴장을 완전히 이완시키라는것이 은자님의 첫 지시였다. 얼마 지나지 않는 사이에 나는 점점 황홀상태로 들어갔다. 그러나 안으로는 맑은 의식상태였기 때문에 잠이 든 것이 아니다.
육체를 버리라
은자님의 말씀이 들렸다. 나는 그대로 했다. 그러자 내가 나의 육체 위로 떠오르는 느낌이 저절로 들었다. 나는 아래에 누워 있는 채로인 나의 육체를 내려다보며, 내가 나의 육체에서 풀려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대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두려워하는 순간 그대는 원래의 육체 속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나는 전혀 다른 세계의 정적을 느꼈다. 은자님의 말씀이 그대로 들려온다
지금 그대는 영체로서 있다. 그대가 가고 싶은 곳이나 만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해 보라. 그러면 그 순간에 그대는 이미 거기에 있을 터이니
그대로 해보았다.
정말 나는 그 현장에 있었고, 거기에서의 일들을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 보고 있는 사람들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었다. 참으로 기묘한 느낌이었다. 실지로 나는 육체 속에 있지 않은데도 현실로는 그들과 같이 육체로서 섞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인 것이다. 한참동안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때 은자님의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스스로의 의지로 거기를 떠나 돌아오라
시키는대로 하여 나는 내가 본 것을 기억한 채로 육체 속으로 들어왔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은자님은,
그대의 기억이 그대의 두뇌 일부분이 아니라, 그 육체의 두뇌를 지나 영체의 두뇌까지 이르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사실은 좀 더 정밀하게 서로 융합하는 몸이 있는 것이며 거기에도 또한 기억이 있는 것이다. 머지않아, 그대는 그런 상태에 도달할 것이야
하고 말씀하시더니 이어서,
그대는 태어날 때부터 영체이동의 소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 머지않아 그대는 에텔체 이동도 하게 되리라
이 연습은 며칠간 계속되고, 그 사이는 매일 저녁 내가 해야할 것에 대한 말씀이 있었다.
어느날 은자님이,지금 곧 함께 여행을 하자. 이번에는 에텔계에 가는 것이야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간의 연습을 거쳐 나는 완전히 터득했다.
에텔체로 혹성간의 여행은 이미 실현되었으니, 언젠가는 물질체로도 할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하고 나는 은자님에게 일부러 물어 보았다. 은자님이 육체를 지니고 있으면서 린포체 대사가 열었던 영교의 모임에 나타난 방법을 그 때 나는 이해한 것이다. 은자님에게는 공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뒷날 내가 영체로 방문한 사람들에게 그때의 그들의 상태에 대하여 물어보았더니, 내가 말하는 것이 세밀한 점까지 모두 사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은자님으로부터 결코 호기심에서 영체이동을 해서는 안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만 해야 한다는 경계를 받았다. 그 이후 뭔가 좀 도와 주었으면 할 때에 자기가 있는 곳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는 말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나에게는 영체이동의 사실을 증명하는 증거들이었다.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친구인 W박사 같은 사람은 어느날 저녁 그의 방에 내가 뚜렷이 나타났었다고 놀라고 있었다. 그가 그 이야기를 하였을 때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 때 나는 자네를 매우 강하게 생각했었다네
이것은 자동적인 영체이동 현상이며, 병을 고쳐줄 때에는 매우 큰 도움이 된다. 하긴 나의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기절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것을 알게 되고부터 곧 본인의 몸 가까이로 가기는 하지만 나의 모습만은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로부터 나는 현재의식을 가진 상태에서도 자유롭게 영체이동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거의 모든 경우에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나의 치유력을 느끼곤 했다. 은자님은 내가 진보하는 것을 무척 기뻐하여 주시면서 이렇게 설명해주셨다.
질병이 치유될 때 일어나는 과정은 이러하다. 먼저 마음이 강한 인상을 받으며, 그 인상이 신경 계통을 통하여 잠재의식의 작용을 불러 일으키고, 신진 대사를 하는 세포나 분비선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육체의 세포 전체가 활발해진다. 기적적인 치유는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것이다.
이 영향력을 끊임없이 그 범위를 넓혀 나가면서 드디어는 온 인류에 미친다. 그것은 육체의 원자나 세포 전체를 활성화시켜 활발히 활동하게 하고 그 결과 세포의 변성이 일어난다. 이 반응은 의식 상태에 정확히 대응한다. 왜냐하면 의식과 육체는 따로따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체 속에서의 파동이 변화함에 따라 육체는 그것을 마음에 투영하고 그것이 곧 행복감을 자아낸다.
그런데 공포를 느끼게 되면 그와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공포라는 부자연스런 파동은 본래의 자연스러운 평형을 무너뜨리고, 자기 자신이 그 원인을 알지 못할 때 그 공포는 더더욱 커지며, 자기 자신의 소극적인 상념-행위로 이미 불이 붙은 곳에 더 많은 땔감을 보태는 꼴이 되고 만다.



잠시 침묵을 사이에 두고 다시 계속하셨다.
인간이 자기 한정에 사로잡히거나 환경의 영향에 말려들면 그의 마음은 그와 같은 조건에 반응한다. 물론 이것은 그가 자기 한정의 원인이나 그보다도 자기 자신의 존재를 바로 알지 못할 때의일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온 몸과 마음에 그대로 침투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일체의 한계 없는 그리고 스스로 지혜를 갖춘 에너지 전체가 두루 존재하고 있는 초의식적 실재에 돋아나 있는 가지라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만들어 놓은 공포 속에서 몸부림치고 괴로와할 뿐이다.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본성을 미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의식은 해탈할 때 참으로 육체의 테두리를 초월하게 되는 것인가요?
그렇고 말고. , 인간의 의식은 먼저 마음을 통하여 육체에 그 영향이 나타난다. 1의 신경총(神經叢)이 심장, , 분비선 등의 기관을 지배한다. 외계에서 들어오는 빛이나 소리, 느낌의 파동은 두뇌신경이 받아들여 처리하는데, 그런 외부러부터의 자극들은 그 본질을 잘 이해하여 공포없이 해석해야 한다.
의식은 또한 아래로 내려가 태양총(太陽叢)을 거쳐 감정생활을 지배하며, 또 육체의 하부기관인 생식기관 및 소화 배설기관을 지배한다. 인간의 의식은 그대로 동물, 식물, 광물이 여기에 속하며 인간에 있어서는 이것이 잠재의식이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하부 의식의 작용 속에 광물, 식물, 동물의 모든 영위가 포함되며 인간의 경우는 이것을 잠재의식이라 부르는 것이다.
의식이 눈뜨면 이런 작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겼던 공포에서 스스로를 풀어놓아 해탈을 이룬다. 인간은 온 누리 모든 것에 대한 주권(主權)이 주어져 있는데도 이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모든 생명의 영위는 오직 하나인데, 인간의 마음이 그것을 쪼개어 놓고는 스스로를 두려워하고 결국은 그 공포대로의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로군요하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다. 동물의 성질 전반을 통하여 나타나는 동물계 특유의 어떤 완전한 정신적 영위가 있다. 식물, 광물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동물, 식물, 광물계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인간의 의식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알고, 인간의 상념이나 반응의 짜임새를 이해한다면, 그리고 또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 신앙이나 사상의 양상과 그런 것들이 자신의 마음 속에서 만들어내어진 경위를 분명히 꿰뚫어본다면, 야생동물 전체가 인간의 의식에 의하여 통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면 악한 힘선한 힘을 갈라 놓거나 또는 인간보다 큰 힘을 인정하거나 하는 미망에 빠지고 그리하여 자연을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그는 선한 힘과 악한 힘이라는 대립적인 힘을 인정하며 그리하여 이른바 선악의 지식이라는 나무 열매를 따 먹게 되고 마침내 자기의 죄 가운데서 죽게 된다. 자기의 죄란 곧 자기의 무지이다
정말 말씀대로입니다. 우리들의 감정이나 공포, 미움, 노여움, 질투따위는 모두 이 하부의식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것이고, 그것을 모를 때 온 몸의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우리는 오관을 통하여 온갖 대립하는 관념들을 만들어내고는 그것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로군요. 그래서 마음이 혼미하게 되는 군요
이제는 분명히 알았겠지. 자기 자신의 온갖 공포나 신앙이나 정신적 갈등이 몸 전체의 짜임새에 영향을 주는 것이야. 그리하여 사람마다의 내면인 하부의식 전체가 혼란을 일으키고 그 결과 육체에 고장이 나타나며, 그 고장을 이번에는 거꾸로 육체가 마음에 보고하게 된다. 그러면 마음은 그 고장의 참된 원인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육체의 그 부자연스런 상태에 지고 만다. 신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속은 것은 이브라고 바울은 말했지
과연 그렇습니다. 이브는 영혼의 상징이고 아담은 육체의 상징이로군요. 이브가 속았기 때문에 그 결과 육체인 아담이 병들고 고생을 해야 된다는 이치로군요
그렇다. 이제 바로 깨달았군
은자님의 말씀은 잔잔히 계속되었다.
내 아들아, 인간 내재의 신령 곧 의식은 무애 자재이다. 육체 속에 들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대로 무애?자재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해탈이라는 것을 이룰 수 없다. 그대는 몸소 해 봄으로써 그것을 깨달았다. 무애 자재가 그대 본래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것은 그저 자기 한정이며, 그것은 모두가 그대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간 본래의 모습인 무애 자재를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쉽게 발견하는 길은 사랑과 깨달음이다. 하부의식 자체는 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성장하는 수단인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것에 온갖 나쁜 생각을 가져다 붙이고 그 결과 스스로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대체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름아니라 그 자신의 관념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의 한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사실에 있어 자기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의 관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그는 자기가 만들어낸 온갖 허구에서 자기 자신을 해방하고 그리하여 해탈을 자각하게 되며, 그렇게 된 다음의 그의 생각은 모두 순수할 뿐이다. 그 때 영원히 지금 두루 있는 거룩한 신령 곧 의식이 그의 마음과 육체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창조주 모습 그대로이다. 그리고 그 밖에는 어떤 것도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신은 무릇 참으로 있는 것 전체이며, 우리는 신에게서 떨어져 나와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 아들아, 창조는 알려지지 않은 것의 힘이며, ‘알려진 것은 결코 창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창조자는 항상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모두가 상대적인 것이요 외계에 속하는 것이며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창조를 하지 못한다.



진리에 대하여 무지한 자는 다만 사람들에게 한낱 관념을 줄 수 있을 뿐이며, 그런 것은 모두가 상대적인 것들이고,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저 그 무지를 모방할 뿐이다. 그대가 이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이 거짓임을 분명히 깨달았을 때 그때야말로 창조자알려지지 않은 것이 그대에게 계시되리라. 계시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것일 뿐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결코 자기 자신의 외부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만 그 알려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리라. 알려지지 않은 것그것이 무엇인지를 그대의 마음은 밝혀낼 수가 없다. 어떤 사람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어떤 관념을 그대에게 줄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창조자는 아니다. ‘창조자는 그대 자신의 생생하게 약동하는 삶 그것인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거대한 느낌이 나를 에워싸는 것 같았다. 나는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다시 마음 속에서 중얼거렸다.
참으로 이분이야말로 온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현자이시다하고.



<저자의 후기>
이 책은 오직 계몽을 위해 쓴 것이며, 흔히 있듯이 이른바 진리에 대해 뭔가를 말하려고 쓴 것이 아니다. 진리는 독자들 스스로가 자기 자신 안에서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며, 다른 누구도 진리를 줄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 높은 권위자나 스승을 따르면, 또는 어떤 종교나 철학의 단체나 가르침에 따르면 생명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진리 곧 실재를 알려면 그런 모든 것에서 완전히 떠나 자유로와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그와 같은 해방 곧 해탈은 남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신앙이라는 한계의 영향과, 온갖 기억이 축적된 과정을 샅샅이 그리고 분명히 볼 때 자연의 침묵이 찾아들며, 그 고요 속에서만 을 깨달을 수 있다. 마음이 무엇에든 메여 있고 흩어져 있으면, 그런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온갖 이미지화된 생각의 반동이 일어나고, 그리하여 이것이 참이다. 이것이 참이 아니다하는 헛된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러나 에는 반동은 없고 행동만이 있으며, 그것은 바로 사랑과 지혜의 힘의 자연적 행동이다.
그러므로 사랑과 지혜의 힘의 왕국 곧 천국은 당신의 안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