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12장 본문
12장
계곡 전체가 눈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올라갔다. 그 장소는 빙하 옆에 있었다. 니불룽 리충 산맥으로부터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으나 우리는 추위에 굴하지 않고 거기에 있었다. 거기에 서 있으면서 나는 동시에 조만간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내가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해야 할 것인데, 한겨울에 거기를 넘는다는 것은 결코 소풍처럼 즐거울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기간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서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잘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어떤 자신감을 느꼈는데, 이 자신감은 링-쉬-라 은수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얻은 것이며, 그 이후로 이 자신감은 결코 나를 떠난 적이 없다.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9장을 보라).
게다가 산중턱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시에 게쉬 림포체가 기다리고 있는 트락체 곰파 수도원으로 돌아갈 때에 내 스승님도 동행할 것이기 때문에 여행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게쉬 림포체와 같은 위대한 현인을 다시 뵙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따름이었다.
우리가 집 근처로 돌아왔을 때 나는 노르부가 그녀만의 신비한 주법으로 자신이 가장 아끼는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연주에는 살아 있는 무엇인가 있어 가슴에 곧장 꽂혔다. 기타 소리가 어떠한지에 대해 말할 수는 없고, 연주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경이로운 느낌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그녀는 자신의 영혼이 느끼고 있는 바의 것을 토해내고 있었다.
내 친구는 말했다:
“저것 좀 들어봐라! 나는 이제껏 노르부가 저토록 깊은 느낌으로 연주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단다. 오늘밤 그녀의 영혼은 자신의 느낌을 토해내고 있단다. 그녀가 기타를 독학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을 거야.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음악가인 동시에 음악 자체야(she is the musician and the music all in one). 만약 그녀가 서양에 있었다면, 수 천 명의 사람들이 그녀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으러 모여들었을 거야. 그녀는 참으로 창조적인 예술가야.”
나는 말했다:
“이게 다 스승님 덕분이 아니겠습니까(She has to thank you for that).”
“아니야.”
그는 대답했다.
“네가 여기에 오고 나서야 그녀가 가슴으로부터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란다. 너는 그녀 안에 잠들어 있던 어마어마한 사랑의 힘을 깨어나게 했고, 그 사랑은 어머니이자 연인이자 아이의 사랑이 모두 하나로 어우러져 있는 것이지. 나는 이토록 사람이 완전히 변하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단다. 그녀는 거의 성모 마리아라 할만 해(she could almost be the Madonna).”
“네.”
나는 말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녀는 이제껏 제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으로 그녀를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녀도 너와 함께 기꺼이 가고자 할 테지만, 그럴 수는 없단다. 의심할 여지없이 너희 둘은 쌍둥이 영혼이야. 그리고 곧 그때가 올 것이야. 아마 이번 생에서는 아니겠지만 반드시 올 거야. 너희 쌍둥이 영혼이 보다 가까운 곳에서 가까운 시간대에서 다시 만나게 될 때가 말이지. 그리고 나는 네가 이 사실을 그녀에게 말해주기를 원한단다. 그러면 네가 떠나고 난 후에 그녀가 받을 고통을 덜 수 있을 거야. 이 말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지탱하게 해줄 거야.”
우리가 현관에 도착하자 노르부는 마중을 나왔다. 그녀는 이전보다도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노르부, 나는 당신이 연주하는 것이 그저 사랑스러울 따름이에요. 당신은 참으로 위대한 예술가에요. 당신을 데려가면 좋겠지만, 스승님(the Master)께서 말씀하시기를,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답니다. 노르부, 당신도 알고 있듯이,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고, 이 사실을 당신이 기억해주었으면 해요. 내 사랑은 소유하려는 사랑이 아니라 영혼을 밝혀주는 사랑이랍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빛은 결코 희미해지지 않을 것이에요. 나는 당신이 사랑의 불꽃이 계속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간직하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안에 머물고 계시며 우리를 함께 묶어주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 영(the Christ Spirit)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곳에 없게 될 때 스승님(the Master)께서 말씀하시겠지만, 영 안에서 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저도 이미 알고 있는 걸요.” 그녀는 말했다.
그때 나는 내 스승님이 말했던 내용을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났으며 그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활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알아요! 저는 지금 만족해요! 영 안에서 분리란 결코 있을 수 없어요.”
우리 셋은 모닥불 주위로 둘러앉았으며, 거기서 내 스승님은 이제껏 그가 한 말 중에서 마음을 일깨우는 가장 고무적인(enlightening) 이야기들 중 하나를 하였다.
그는 게쉬 림포체가 하던 것처럼 말을 시작하였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여행에 대해 말해주었다. 사실상 나는, 그가 게쉬 림포체가 되어 몸소 말하는 듯 느껴졌다.
그는 이런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내가 너를 칼림퐁에서 만난 지 이제 21주가 지났고, 네가 이곳 잠사르에 도착한 지는 오늘로써 정확하게 8주가 되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지.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일들을 했었고, 이로 인해 나는 기쁘단다. 네가 칼림퐁에 다시 돌아갈 때 즈음에는 정확히 30주가 될 거야. 이게 바로 우리가 짠 계획이란다.”
“노르부와 나는 트락체 곰파 수도원까지 너와 함께 갈 것이야. 그리고 거기서 너는 게쉬 림포체와 2주 동안 머물게 될 것이고. 그러면 게쉬 림포체가 오크(Ok) 계곡까지 동행할 것이고, 거기 도착하면 게쉬 림포체와 그곳의 수도원장과 함께 3주 동안 있을 것이란다. 게쉬 림포체는 너를 더욱 철저하게 준비시키기 위하여 너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고 있단다.
그리고 네가 이곳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특별한 모임이 준비될 거야. 그 모임에는 퉁 라(Tung La), 창 타파(Tsang Tapa), 말라파(Malapa), 다르 창(Dar Chang), 그리고 나도 역시 있게 될 것이란다. 게쉬 림포체는, 링-쉬-라 은수자께서도 그 모임에 와서 너에게 말할 수 있을 때 모임을 갖고자 열망하고 계신단다. 전에도 링-쉬-라 은수자님께서 나타나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야. 그러고 난 후에 내가 너를 처음 만났던 곳인 칼림퐁까지 돌아가는 것을 배웅할 거란다. 그러고 난 후에는 너 홀로 가게 되겠지. 몸으로는 혼자 가는 것이겠지만 영적으로는 혼자가 아니란다.”
“너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 너와 함께 갈 것이란다.”
그는 노르부를 보면서 말했다.
“예. 참으로,”
그녀는 대답했다.
“당신을 사랑하는 우리의 생각이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할 것이에요.”
“그리고 나도 역시 내 생각에 사랑을 담아 여러분에게 보낼 것입니다.”
나는 말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스트랄체(in the astral)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여러분도 방문할 것입니다. 이곳은 우리가 서로 만나고 사귀었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요. 너무나도 생생하고 사랑스러운 기억을 말이지요. 바로 이곳에서, 참된 사랑(true Love)이 무엇을 뜻하는지 배워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렇단다.”
내 스승님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바로 사랑이란다. 사랑은 그밖에 다른 모든 것들 너머에 있단다. 사랑은 우리에게(you) 완전한 자유를 줄 뿐만 아니라 모든 문을 열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기도 하단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의(your) 가슴과 마음은 둔감하게 된단다. 너는 사회적으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종교 예식이나 그밖에 다른 것들에 자신의 모든 시간을 할애하기도 할 거야. 그러나 너에게 사랑이 없다면, 네가 하고 있는 도덕적 가치(virtue)란 그저 관념에 지나지 않는단다. 그리고 사랑이 없다면 그 어떤 활동을 한다고 해도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는 없는 것이란다.”
“자신이 신을 믿는다고 말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네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Love)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못한단다. 자기가 신을 믿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절반을 파괴하고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수 백 만의 사람들을 불구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던가? 소위 믿는다고 하는 자들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조금이라도 사랑을 품고 있기는 하던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종교적 갈등(intolerance)은 소위 믿는 자들에 의해서 야기되고, 이것이 종교적 분쟁으로 이어지게 된단다. 그들은 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가슴은 사랑이란 전혀 없어 공허하단다. 세상 사람들의 절반은 나머지 절반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소위 무엇인가를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니던가?”
“우리가 관념이나 믿음에 휘둘리지 않고 다만 인간으로서 존재할 때에만, 우리는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란다(We can only live happily together when we are human being). 그때 우리는,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한 음식과 옷과 기타 생필품을 만들어 내기 위한 생산 수단을, 인색한 마음이나 이기심 없이, 공유할 수 있을 거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이 신이라 부르는 초월적 지성(super Intelligence)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단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이 관념에 동일시한단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들의 사고 과정을 투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렇게 하는 것으로는 사랑을 결코 알 수 없단다.”
“한 사람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을 때 너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란다. 그때 자신의(your) 가슴은 사랑으로 가득 차오르고 모든 사람을 향한 애정(affection)으로 따뜻해지게 되지.
너에게 사랑이 없을 때, 너는 말(words)로 먹고 사는 것이고, 말에 의해 삶이 유지되는 것이야. 모든 것의 아버지가 되시는 신을 자신이 경배한다고는 하나, 너는 종교적 편견과 사람들을 여러 부류로 나누려는 마음을 버리려 하지는 않는단다. 왜냐하면 자신의 가슴은 공허하고 마음은 관념과 믿음들로 꽉 차 있기 때문이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너는 반드시 가슴에 사랑(Love)을 품고 있어야 한단다. 그리고 지금 이 말은 어떤 개념에 대한 진술(statement)을 넘어선 불멸의 진리란다. 너 자신이 마음으로써 사랑을 길러내고 키워낼 수는 없는 것이란다(You cannot cultivate Love).
마음이 사랑을 방해하지 않을 때, 사랑은 즉각적으로 머뭇거리지 않고 직접 들어서게 된단다. 너의 가슴이 사랑 없이 텅 비어 있을 때, 자신과 다른 이들 사이에 친교(communion)란 존재할 수 없는 거란다.”
“친교가 없을 때에는 사랑 역시 존재하지 않는단다. 사랑이 있을 때에는 거기에는 가슴에 불을 지피는 따스함(warmth)이 있게 되며, 그때에는 말로만 풍성한 심리학이나 철학이 들어설 필요가 없게 된단다. 사랑은 그 자체로 영원하기 때문이지.”
“사랑은 사람들의 삶에 꼭 필요한 핵심 요소(factor)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의 삶 속에는 이 요소가 빠져 있단다. 사람들은 서로 관계 맺고 살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온화함이, 친절함이, 자비가 결여되어 있단다. 그래서 어떤 문화를 공유하고 세계를 재건한다면서 어떤 단체에 들곤 하지만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단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을 제외하고는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지.
그들의 마음과 가슴은 세계 재건에 대한 계획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들에게는 꼭 필요한 한 가지 요소(one ingredient)는 텅 비어 있단다. 그런데 그것 없이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데 말이지.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지, 제도나 어떤 일에 대한 청사진, 또는 소위 개혁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야.
전에 계속해서 실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you)은 그 실패의 연장선상에서 단체를 만들고 또 만들고 한단다. 그리고 이런 실수는 언제까지고 반복될 것이란다. 왜냐하면 그 시도들 속에는 선의(goodwill)와 사랑이라는 요소가 빠져 있기 때문이란다. 선의와 사랑만이 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도 말이지.”
“관계맺음(relationship)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며, 사랑과 선한 마음(Love and goodwill)이 없다면 관계맺음도 있을 수 없단다. 그래서 이는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 더 큰 혼란으로 끝나버리는 제도나 개혁에 대한 문제가 아닌 거야.
관계에 대한 이해가 존재하지 않는 한 올바른 행동(right action)도 있을 없는 것이란다. 마찬가지로 자아에 속해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는 것이고. 자기-이해(self-knowledge) 없이는 참다운 관계맺음도 존재할 수 없단다. 자신을 진정 이해하고 있을 때라야 지혜가 있게 되고, 지혜가 있는 곳에 사랑도 있게 된단다.”
“사랑이 없으면, 마음이 제 아무리 명석하다 하더라도,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란다. 사람들 서로 간에 참다운 관계맺음이 없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더 큰 혼란을 지어내게 될 따름이란다.”
“너는 이제껏 사랑과 선의에 관한 책들을 읽어왔을 테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그저 말의 잔치로만 풍성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란다. 너는 자신 안에서 실재를 재발견해야(rediscover) 한단다. 신에 대한 믿음 뒤로 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가슴이 공허(empty)하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실재를 재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란다.
세상에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창조적 지성(Creative Intelligence)과 창조적 이해(Creative Understanding)밖에 없단다. 그렇다면 세상이란 무엇인가(and who is the world)? 너와 나, 그리고 우리와 같은 다른 모든 사람들, 이렇게 우리 모두가 세상인 것이란다.”
그러고 나서 그는 말했다:
“내가 지금껏 말을 했는데, 나는 마치 너희 둘에게 직접 말을 하는 것처럼 표현을 사용했단다. 이는 너희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지. 자신이 아니라 제 3자에 관해서만 말을 하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효과가 사라지게 되거든.”
“네. 맞습니다.”
나는 말했다.
“스승님(you)께서 말씀하실 때, 내 자신을 제한하고 있는 조건들에 대해 깊이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그는 말했다.
“자기-이해(self-knowledge)만이 지혜를 가져오게 된단다. 그리고 그 지혜와 더불어 자신에게 사랑(Love)이 있게 되는 것이고, 사랑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란다.”
이렇게 밤에 함께 모여 나누는 대화(talks)는 내 삶의 크나큰 기쁨이었다. 이렇게 나누는 대화는,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단죄하지 않으며 두려움 없이 스스로를 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나는 노르부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토록 완전한 친교 속에서 대화를 하며 보내는 아름다운 밤을 더 이상 당신과 함께 지낼 수 없어 아쉽기도 하고 당신이 부럽기도 해요. 이렇게 스승님과 당신과 대화를 나누면, 그 대화는 나를 놀라울 정도로 변화시키는데 말이죠.”
“나에게 있어서는 말이에요,”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오기 전까지 참된 사랑(true Love)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나는 마치 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꽃봉오리와도 같았지요. 우리는 함께 여기에 앉아서 사랑에 대한 위대한 진리를 들었고, 그 진리는 우리를 흠뻑 적셨어요. 그리고 이제 내 가슴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요. ‘한 사람(one)’을 진정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사랑을 이해하고 있는 지금 나는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고, 내가 이해하고 있듯이 다른 이들도 스스로를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어요.”
이 말을 마치고 그녀는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준비하였다.
서로를 소유하려는 마음 없이 완전한 자유 안에서 우리 모두 참된 사랑(Love)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과, 뭔가를 숨기거나 숨기려 하는 것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부끄러워하지(self-conscious) 않고 서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경험(thing)이었으며, 이에 대해 내 스승님에게 말했다.
“맞는 말이란다.”
내 스승님은 말했다.
“우리는 거짓된 것을 믿고 있고, 그럼으로써 사실상 우리가 그것을 유지시키고 있는 것인데, 이렇게 해서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는데 실패하게 되는 것이지. 우리는 마음이 있다고 믿고 있어 거기에 붙들리고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계속해서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이란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비참한 이 처지를 만들어 낸 원인을 이해하는데 실패하게 되는 것이지. 이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자유가 즉각적으로 들어서게 된단다.”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만의 의견이나 믿음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고, 새로운 지식이 마음에 알려짐에 따라 변하게 되는 것이란다. 그러나 변할 수 있는 것(changeable)은 실재가 아니야. 왜냐하면 실재는 결코 변할 수 없기(unchangeable) 때문이지. 실재-신-사랑은 결코 변할 수 없으며 우리 안에 언제나 현존(ever-present)하고 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변하는 것은 결코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볼(discern) 때라야 이를 깨닫게 될 거란다.
“질병과 죽음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 관념을 건강과 생명에 관한 생각으로 바꿈으로써 자신을 보다 낫게 만든다 할지라도, 이것 역시 마음의 영역에 속해 있는 일이란다. 네가 이 사실을 깨닫고 있을 때, 이러한 관념과 관념과 대립되는 것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실재가, 자아가 애쓰지 않아도(without effort) 들어서게 된단다.”
“실재는 선도 악도 모르며 또한 질병이나 죽음도 모른단다. 사람만이 이러한 믿음들을 만들어 내어 자신을 슬픔과 갈등 속에 묶고 있는 것이란다.”
“자기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진리-실재(Truth-Reality)를 경험할 때, 너는 더 이상 그것(It)에 대해 견해나 생각 등을 갖지 않게 된단다. 그저 알고 있을 따름이지. 그러나 네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다른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해의 근원은 자신 안에(within you) 있기 때문이란다.”
“자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너는 반드시 네가 다른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단다. 또한 자신의(your) 반응, 자신의 두려움, 타인이나 다른 집단을 향한 적개심, 자신의 믿음 등과 같은 것들도 이해해야 하며 방금 말한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지도 알아야(see) 한단다.
자기가 다른 이에게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자신의 생각-느낌-반응(thought-feeling-reaction)의 모든 과정을 알아보게 되고, 이로써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단다. 네가 자신을 이해하게 될 때,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스스로 만든 조건들에 의해 제한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란다. 이런 자신의 조건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계속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란다.
너는 자신의 조건, 자신의 믿음, 자신의 견해, 자신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야. 이 모든 것들은 오직 너의 마음 안에서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지. 그리고 그것들은 네가 그것들에게 부여하는 힘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힘도 갖고 있지 않단다.”
“만약 너의 마음이 고정 관념(fixed ideas)과 믿음들에 의해 통제를 당하고 있다면, 너는 그 어떤 것에 대한 진리도 결코 알 수 없게 된단다. 왜냐하면 너는 거짓된 것(what is false)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너의 마음이 이해를 통해 유연하고 자유롭다면 너는 참된 의미(the True meaning)를 경험하게 될 것이야. 왜냐하면 그때 너는 거짓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란다. 거짓된 것(the false)은 네가 창조하는 것이지만, 참인 것(the True)은 네가 창조하지 못하는 것이란다. 참인 그것은 언제나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란다(for It is Ever-Present).
그때 너는 자신이 어떻게 다른 이들과, 세상과 어떻게 연결(relationship)되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란다. 네 안에 있는 완전한 그것(the Whole)은 다른 모든 이들 안에 있는 완전한 그것과 같기 때문이란다. 너는 완전한 그것 자체로 말미암은 결과인 것이야. 완전한 그것의 한 부분으로서의 결과가 아니란 말이지. 왜냐하면 완전한 하나(Wholeness) 안에서 분리(division)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이것이 바로 실재로서 너는 이에 대해 아무런 생각(opinion)도 할 수 없으며 의심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실재란다. 이 사실에 대한 이해만이 홀로, 자신과 세상에 꼭 필요하면서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란다. 개인에게 먼저 그 변화가 올 것이고 그리고 나서 곧 세상에 그 변화가 나타날 것이란다. 세상이란 개인들이 모여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
만약 네가 이 사실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지금 세상이 있는 모습대로 만든 것은 바로 우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란다. ‘우리가 씨를 뿌린 대로, 우리는 거두게 된다.’ 내면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바깥도 그와 같이 될 것이란다(What the inner is, so will the outer be)”.
“너의 마음을 들여다보아라. 그러면 사회를 지금의 모습대로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생각-느낌-반응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란다. 사회란 우리들 자신이 투사된 것이며, 세상 역시 그러하단다.”
“자신이 잔인하고, 적개심으로 가득하고, 독단적이고, 탐욕스럽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움으로 가득할 때, 너의 몸과 환경 역시 자신의 그런 마음 상태에 따라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란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너는 철저하게 정직해야 한단다(To study oneself requires complete honesty). 너는 반드시 자신의 생각-느낌-반응에 대해 자각해야 해. 특히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유심히 살펴야 한단다. 그러면 자신이 무엇인지 너는 알아보게 될 것이야. 또한 무엇이 실재를 가리고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고. 자아가 얼마나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지 알게 될 것이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내 뒤로 물러서라. 사탄아.’
사탄이란 곧 자아를 뜻하며, 자아는 거짓말쟁이요, 속이는 자이며, 실재를 가리고 있는 것이란다.”
“실재가 직접 일하는 그 장엄함과 비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단다. 그것은 창조적 지혜이며, 사랑이자, 권능(Power)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넘어서 있단다. 거짓된 것이 죽고 나면, 그 자리에 실재가 나타난단다(manifest). 그때가 되면 거기에 참된 관계맺음이 있게 되는 것이며, 이러한 관계란 자유와 행복과 번영과 사랑과 애정을 뜻한단다.”
“마음은 수많은 껍질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마음의 보다 깊은 곳에 있는 껍질들 속에서 숨겨져 있는 자아도 있단다. 그것은 아기 때부터 자신을 가두는 관념의 껍질들을 계속해서 쌓아 왔으며,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때 그 일을 하도록 만드는 동기의 대부분은, 오해의 연속이라는 사슬 뒤편에 숨겨져 있단다(most of our motives are hidden behind a series of misconceptions).
이것이 바로 자신의 내면이 혼란스럽고, 화로 가득 차며, 편견에 사로잡히게 되는 원인이란다. 그리고 서로 충돌하는 욕망들 사이에는 매우 격렬한 다툼이 있게 되는 것이지. 우리는 칭찬하기도 하고, 수긍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고, 단죄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는 이 모든 이유는 바로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조건들 때문이고, 우리는 이 조건들이 실재(real)로 존재한다고 믿어버림으로써 이런 조건들을 영속시키고 있는 것이지.
이것이 얼마나 거짓된 것이며, 어떻게 해서 이런 조건이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거기서 풀려날 수 없단다. 자아가 이 모든 것들이 허구라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자아가 얽매여 있던 조건들이 자아와 다른 것이 아니라 곧 자아 그 자체라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자아는 스스로를 투사하는 것을 멈추게 되어버리지.
왜냐하면 그 순간 자아는 자아 자신이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자아가 곧 악마(the devil)이며, 자아는 반드시 이에 대해 알아야 한단다. 그러면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을 투사하기를 원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활동을 멈추게 된단다.
그때 사람의 생각이나 의지로 만들어 내지 않은 침묵이 존재한단다. 자아가 활동을 멈출 때, 사랑이자 지혜이자 창조성(Creativeness) 자체인 실재가 자아의 노력 없이 들어서게 된단다. 자아가 의식이라는 길 바깥으로 사라지게 될 때 실재는 활동하게 된단다. 이것이 바로 ‘주께서 오실 길을 깨끗하게 하라’는 말이란다(Reality operate when the self gets out of the way. It is ‘clear the way for the Lord’).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가?”
“네.”
나는 말했다.
“지금 말씀하고 계신 내용들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마음의 표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아차리고 있을 때, 저는 제 마음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보게 된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표면을 이해하고 나면 보다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의 층들은 자기 안에 숨겨져 있던 갈등들, 그리고 복잡한 생각-느낌-반응의 사슬들을 내보이게 됩니다.
이것이 이해되고 나면, 마음은 그 어떤 강제(compulsion)도 없이 침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침묵 안에 자유가 있습니다. 실재를 가리고 있던 것은 이제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에는 실재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참으로 맞는 말이야. 내 아들아. 그러나 지금 네가 말한 것은 지적인 앎에 그쳐서는 안 되는 것이야. 반드시 그것은 실제적인 변모로 이어져야 해(it must be active transformation). 생명이란 하나 없는 개념이라는 나무 토막을 마음이 포기하게 되면, 실재 생명(Real Life)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지. 그러나 네가 그저 말만 지어내고 있다면(spin), 이내 너의 마음은 관념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너의 가슴은 사랑이 없어 공허해지게 될 것이란다.”
“네.”
나는 말했다.
“사람은(you) 자신이 무엇인가를 어떠한 방식으로 믿고 있을 때, 어떻게 해서 자신이 그러한 방식으로 믿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내야 합니다. 만약 자신의 믿음과는 다른 종류의 믿음에 대하여 반감(antagonistic)을 갖고 있다면, 왜 그런지를 살펴보아야합니다. 그러면 이런 것은 그저 믿음의 문제일 뿐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고 한다면, 앞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왜 아무 것도 믿지 않는지에 대한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자신이 어떤 편견을 갖고 있을(prejudiced) 때에도 마찬가지로 왜 그런지 반드시 그 이유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단다.”
그는 말했다.
“그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단다. 문제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너는 반드시 그것에 직면해야(face) 하는 것이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관념이라 할지라도 예외 없이 반드시 이해되어야 한단다. 그러면 자신이 스스로의 생각에 의해 어떻게 묶여 있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란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유란 결코 있을 수 없단다. 이는 마음을 완전히 비워내는 과정(thorough cleansing process)으로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란다. 그리고 종종 이 작업은 소위 뭔가를 믿고 있는 자들에게 더 어렵게 느껴진단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말했다.
“내 생각-느낌(thought-feeling)을 그저 통제하려 하고 제동을 걸려고 하거나,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는 식으로 그저 말만 하는 것은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런 조건들에 얽히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제 생각-느낌을 마냥 통제하려고만 든다면, 그것들에 대한 이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조건들에 대한 이해만이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그렇단다. 내 아들아. 참으로 맞는 말이란다. 저항하는 태도 그리고 뭔가를 거부하거나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조건들을 지키려고 분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you) 더욱 더 분별없고(thoughtless) 편협하고 보잘것없게 만든단다. 자신의 무지를 지키겠다고 싸우고(struggle) 있는 셈이지.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진리(the Truth about yourself)를 알게 되는 순간, 이러한 투쟁은 그치게 된단다. 그때 마음은 한없이 고요해지고, 그 고요함 속에 실재가 있게 되는 것이지.”
“지금 말씀하신 그것을 지금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신 말씀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그렇단다. 내 아들아. 자신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그 안을 반드시 들여다보아야 한단다. 그러면 마음은 스스로 속도를 늦추게 된단다. 그러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완력(force)을 사용한다든가 마음을 분석하려든다면, 이에 대립되는 것들을 만들어 내게 된단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혼란만 더욱 가중되는 것이지.
그러나 만약 네가 자신의 생각-느낌을, 통제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으며 알아차린다면(discern), 그리고 이와 동시에 마음을 이루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하릴없이 바라볼 수 있다면, 심지어는 고차원적 생각(이것 역시 자신의 사고-과정에 한 부분일 따름이다)마저도 이렇게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다면, 너는 그것을 자각하게 될 것이야.
통제(restraint)에서 자유롭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판단에서 자유로우며, 비교에서 자유롭고 결코 변하지 않는 그것을 말이야. 그러면 너는 의미심장한(significant) 그것을, 모든 사고 과정을 넘어서 실재이며 영원하고 항상-현존해 있는 그것을 자각하게 될 것이란다.”
“실재를 자신과 독립된 실체로서가 아니라 자신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전체로서 자각하는 가운데, 이 모든 생각의 과정을 끝까지 따라가야 한단다(You must follow this up with awareness of the Real, not as a separate entity but as the whole).
이렇게 할 때, 지적인 혼란과 믿음과 견해와 분리에서 벗어난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게 된단다. 너 역시 그리스도의 요가를 깨닫게 될 것이야. 마스터 예수께서 깨달으셨던 것처럼 말이지(You will know the Yoga of the Christ as the Master himself did).
네 안에 언제나 계시는 아버지께서 몸소 일을 하시게 될 것이며, 이는 자아(your)의 어리석고 보잘것없으며 편협한 조건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직접 당신의 일을 수행하시게 되는 것이란다.”
“종교적으로 된다(Being religious)1)는 말을 그 근원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그리스도의 요가 안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을 뜻한단다. 종교적으로 된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종교 조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 그렇게 한다면 너는 종교적이지 못하게(irreligious) 된단다. 특정 종교 조직에 의존하게 될 때 거기서 네가 갖게 되는 믿음 때문에 다른 이들과 분리되고 다른 이들과 싸우게 되는 것이지.”
1) 종교(Religion)의 어원은, ‘religere’라는 라틴어에서 나왔으며 이는 ‘잇다’ ‘연결하다’는 뜻이다.
“분리 의식은 각종 불화, 경제적 재난, 전쟁, 기아, 탄압을 정당화해온 것에 책임이 있단다. 그리고 사람 자신이 바로 그 원인이지. 사람은 자신의 바깥으로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 마음 안을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며, 자신을 정면에서 똑바로 응시하면서,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인, ‘분리(separation) 의식’을 알아보아야만 한단다.”
“사람은 스스로에게 이런 저런 이름과 소속을 갖다 붙이고 있지만, 하나의 생명(Life)만이 있을 따름이고 그 생명이 모든 이를 살게 하고 지탱하고 있는 것이란다.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을 때, 모든 이에게 자비로우며 연민을 느끼는 인간(the Man)을, 어떤 종교나 교리, 사회 단체에 의해서도 속박당하기를 거부하는 자유로운 인간을 이해하게 될 것이란다(when you understand this you will understand the Man who showed mercy, compassion to all, and refused to be limited by any nation, dogma or society).”
“내 아들아, 참된 종교는 온갖 교의와 민족(nationalities)과 관념 저 너머에 있는 것이란다. 이를 아는 것이, 만물 안에 있는 하나(the One-in-All), 하나 안에 있는 만물(the All-in-one)을 깨닫게 되는 출발점이란다. 그리고 이 앎이 세상의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길이며, 각자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란다.
우리가 본래 말의 의미처럼 참으로 종교적일 때, 그 결과로서 영혼과 세상 안에 평화가 깃들게 될 것이야. 그렇게 되면 분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모든 영혼들 안에서 그리스도-영(Christ-Spirit)은 깨어나게 되고, 내적인 평화와, 그리스도-영의 지혜와 사랑이 반드시 나타나게 될 것이란다.”
“네.”
나는 말했다.
“그저 분리와 교의만을 설교하는 자들이 가르치는 방식을 두고 성인(the Master)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이 위선자들아. 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이사야가 예언한 말은 참으로 너희들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입술로는 나를 공경한다고 하나 그들의 가슴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그들의 예배는 공허하도다.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교리(doctrine)란 사람의 가르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렇단다. 내 아들아.”
그는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전통과 교의와 교리가 사실상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셨단다. 오히려 그것들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지. 사람들은 그것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지한 상태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자신이 그것들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란다.
그들은 화려한 행렬(pomp), 종교 예식, 전통 등을 숭배하고 있지만, 그들이 숭배하고 있는 그것이 그들을 파괴시키는 것이란다. 사랑과 애정이 참혹할 정도로 부족한 곳에서 그들은 입으로만 떠들어 대고 있지만, 분리, 적개심, 다툼, 전쟁, 비참한 이 상태는 여전히 남아 있단다.”
“올바른 생각(right thinking)이란, 네가 거짓된 것을 이해하고 있을 때라야 올 수 있는 것이란다. 거짓된 것들을 이해하고 나면, 거짓된 것들에 관한 진실(the truth)을 알게 된단다. 마음이 이 진실을 스스로 이해하고 나면, 그때 올바른 생각이 가능해진단다. 올바른 생각이란 곧 자유이며, 조건들로 제한된 생각이란 곧 억압이란다.”
“네.”
나는 말했다.
“오직 사랑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들은 우리가 그토록 빠져 있는 심리학이나 철학, 체계나 관념으로도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분리 의식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날마다 목격하고(see)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위험성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정체성(nationalities), 종교적 믿음, 정치적 이상들에 의해 묶여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도살하는 이에게 끌려가는 양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맞는 말이란다. 아들아. 그런데 거기에는 조금 더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단다. 자아와, 자아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aware of) 것을 통해서만 너는 자신의 제한된 생각을 발견(discover)하게 된단다. 너 자신(you)은 그저 다른 사람을 베끼고 있을 뿐이며, 자신은 아직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없고 다만, 너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큰 불행을 초래하는, 적개심을 품고 생각하는 습관에 젖어 있을 뿐이라는 것을 너는 반드시 이해해야 한단다.”
“사물을 볼 때 너는 반드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단다. 그 사물을 보는 본래의 참된 관점에서 말이지(You must see things as they are, in their true perspective). 그러면 마음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참으로 알아차린(discern) 그 마음 안에서 모든 혼란은 없어지게 된단다. 마음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을 마음 저편으로 털어버리고 나면, 지혜이자 사랑이며, 항상 현존해 있는 실재(the Ever-Present Reality)가 온 인류 모든 이의 가슴마다 들어서게 된단다.”
그이께서 눈을 감고, 깊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는 이러한 말들을 하셨을 때,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를 보내신 그분은 언제나 내 옆에 계십니다.”
“그분께서 기뻐하실 일을 내가 항상 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은 결코 나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나는 있는 자 그로다. (I AM THAT I AM)’
“나는, 내 생명의 나무에 달려 있는 수많은 가지 위에서 내 사랑의 노래를 부릅니다.”
“푸른 잎들 사이로 내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고, 내 노래를 들은 자들은 자신들이 나와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내 생명만이 그들의 진정한 양식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모두 흘러간다 할지라도, 나는 시간을 넘어서 변함없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안에서 잠들어 있는 영혼들이 언제라도 내 말을 듣고 깨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노래의 리듬은 ‘나의 무한한 자유로 들어오라’고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들으려 기다리고 있는 모든 영혼들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그래서 나는 잠을 깨고 일어나서 그리로 갔습니다(So I arose and went).”
“나는 일어나, 갔습니다.”
* * * * *
그가 장엄하게 말하고 있을 때 노르부는 내 곁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손으로 노르부의 손을 잡고 그의 얼굴을 응시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얼굴에서 그리스도 그분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and there we could see the face of the Master himself, shining like the sun). 앞으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경험이었다.
그날 저녁은 마치 최후의 만찬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위해 마련된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내가 온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히말라야를 넘어야 하는 긴 여정을 시작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기도는 내가 잠사르에 있는 그분의 암자에서 함께 머물며 경이로움을 체험한 것에 대해 드리는 감사의 기도였다. 그곳에 언제까지라도 머물 수 있기를 나는 얼마나 원했는가.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 스승님은 내 생각을 읽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언제나 머물 수 있기만을 우리 역시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바라고 있단다. 그러나 너도 알고 있듯이, 이 일을 지도하고 있는, 우리보다 높은 존재들이 우리와 함께 있단다. 그 존재들 안에도 우리와 같은 생명이 흐르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 자신의 개인적 욕망보다, 더 높은 것들을 먼저 하는 우리에게 마침내 크나큰 축복이 있게 될 것이란다.”
함께 식사를 들기 위해 우리는 최후의 만찬 식탁에 앉았다. 우리 모두 이것이 마지막 식사라는 것을 알았지만, 우리는 모두 행복했다.
노르부는 그녀의 특별 요리들 중 한 가지인 차가운 닭고기에 소스를 끼얹은 것(cold-jellied chicken)과 삶은 계란과 그녀가 직접 만든 특별한 빵과 교유기2)에서 갓 꺼낸 야크 버터를 마련해 내놓았다.
2) churn,攪乳器. 버터를 만드는 큰 통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지만, 그날만큼은 다른 날보다 더 늦게까지 거실에 남아 있었다. 나는 밤을 샐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내가 생각하기에 내 친구와 노르부도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그녀는 기타를 치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가락을 연주하면서 그녀가 직접 작곡한 그녀만의 사랑 노래를 불렀다. 그때 그녀는 그토록 아름답게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녀는 타고난 창조적 예술가였다. 그녀는 악보 없이 절대 음감으로 연주하고 노래 부를 수 있었으며, 그녀의 음악에는 크나큰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으며 또한 창조적이며 독창적이었다. 그녀의 음악은 음악의 모든 영역의 색깔들을 그 안에 갖고 있었다.
장작은 이제 거의 다 타버려 방 전체를 붉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셋이 가깝게 모여 앉아 있을 때 평화가 이 모든 장면(scene)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면서 나는 노르부가 채웠던, 그러나 이제 그와 똑같이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내 마음의 빈 공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의 생각이 같은 영의 지도하에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을 동안 침묵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 모두 헤어짐(parting)의 순간이 그토록 가까이 왔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모든 영혼 안에 계신 하나(One)이신 그리스도 영 안에서 헤어짐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이 우리를 함께 연결시켜주었으며, 우리의 기억은 아침 이슬처럼 언제나 새로울 것이다.
내 스승님은 먼저 일어나더니 내일 아침 여행을 준비하러 간다고 말하면서 나갔다. 그러자 노르부가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었다. 그녀가 이렇게 한 것은 처음 있었던 일이며, 그때 깊은 만족감과 오랫동안 바래왔던 것을 이뤘다는 성취감이 그녀에게서 느껴졌으며, 나 역시 느꼈다.
그녀는 얼마 안 있어 잠들었으며 나 역시 잠들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 순간이었는지, 한 시간이었는지, 한 세기였는지 말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수 세기 동안 잠들어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으며 노르부 역시 같은 경험을 하였다. 우리 둘 다 동시에 깨어난 듯하였다.
내 친구가 우리 앞에 서 있었으며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아들아, 딸아(My children). 너희 둘은 몸을 벗어나 있는 상태(out-of-the-body state)를 함께 동시에 경험한 것이란다. 이는 참으로 완전한 축복이지. 그 상태는 너희들이 몸을 떠나 있을 때 겪을 수 있는 상태란다. 너희는 보다 높은 상태에서 영혼의 경험 상태로 들어간(embraced) 것이란다. 서로 하나가 되고자 하는 너희 바람의 표현이 영적으로 성취되어 결합하게 된 것이란다. 그러나 그 경험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말로 옮겨낼 수는 없으며 다만 그 향기만 가져올 수 있을 뿐이란다(The expression of your desire has been consummated spiritually but you can bring back with you only a fragment of what it is really like).
나는 너희를 지켜보았는데, 너희 둘 다 동시에 몸을 떠났으며 또한 동시에 몸으로 돌아왔단다. 그리고 너희는 완전하게 동일한 것을 경험한 것이야. 영혼의 상태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서 너희의 바람을 성취한 것이지(the consummation and culmination of your desire in the soul-state).
이것은 몸 안에 있는 생명의 힘(the Life Force)이 자신의 영적 근원(its Spiritual Source)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모두가 경험하게 될 환희의 절정(ecstasy)이라 할 만 하지.
노르부는 이제 자신은 완전히 만족하여 행복하며 결코 그 어디에도 매여 있을(defined) 수 없다고 말을 했다. 더 이상 이별에 대한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생각은 사라져버렸다. 이는 영혼의 포옹(embrace)에 따른 결과였으며, 신체적 접촉을 계속하고 싶다는 욕구는 사라져버렸다.
이 경험은, 가슴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고 소유하려는 욕심이 마음에 텅 비어 있을 때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참된 사랑은 주는 것이자 받는 것으로서, 이에 대해 의식하지 않는 상태이다.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다만 경험될 수 있을 따름이며, 이를 경험할 때 그 결과로 깨달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말을 모두 사용한다 하더라도 결코 설명될 수 없는 그것을 결코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경험은 참으로, 살아계신 현존의 축복이었단다.” 라고 내 스승님은 말했다.
나를 깨우치게 하기 위한 그의 지극한 수고는 크나큰 기쁨으로 보답을 받았다. 이것이 요가를, 그리스도의 요가를 수행해 나가면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것이다(“It was truly a benediction of the Living Presence,” said my friend, and the culmination of his efforts was crowned with exaltation. This is the highest attainment of the Yoga - the Yoga of the Christ)3).
3) 역자 주 : 필자가 경험한 사랑의 상태를 두고 한 말인지, 아니면 자아를 벗어난 이가 다른 이로 하여금 자아를 벗어나게 할 때의 기쁨을 두고 하는 말인지 역자에게는 그 뜻이 분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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