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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7장-제8장 본문

영성수행 비전/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7장-제8장

柏道 2021. 11. 15. 14:31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7장 - 제8장

 

다음날 아침 잠을 깨어서도 나는 아직 전날의 린포체 대사님의 이야기에 매료된 상태 그대로였다. 대사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창문으로 다가가보니 대사꼐서 발코니에 서 계시는 것이 보였다. 곧 해가 떠오를 동녘을 바라보고 계셨다.

주변은 아직도 어둡고 시커먼 담요 같은 검은 구름이 골짜기를 뒤덮고 있었으며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티벳에서 이런 모습은 여태껏 본적이 없었으며 대체 이제부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을 하는 찰나에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면서 요란한 소리가 골짜기 속에서 전후상하로 메아리 치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겹겹이 둘러싼 산들에 부딪쳐 마치 거대한 포탄이 차례차례 터지는 것처럼 울려퍼졌다. 비는 아직 내리지 않는다. 나는 대사가 계시는 발코니로 나가 보았다. 대사는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나는 자연이 자아내는 여러가지 느낌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네. 어젯밤은 푸른 하늘에 구름 한점없이 별이 빛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골짜기와 언덕이 어두워 큰 비가 쏟아질 것 같은 구름이 가득차 있고 금시라도 호우가 쏟아져 강을 범람시키고 사나운 물결이 소용돌이칠 것처럼 보이는군.
그렇군요, 오늘 아침은 정말 날씨가 사납군요.

그 찰나에 앞서보다 더 큰 번개가 터지면서 백 미터쯤 떨어져 있는 큰 바위에 벼락이 떨어졌다. 몇 십억 볼트는 될 것 같은 엄청난 굉음이 귀를 찢으며 섬광이 순간적으로 사방에 퍼져나갔다.

승원에 맞지 않아서 다행이군요하고 나는 말했다.
하고 대사는 일단 동의를 하고 나서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역사에는 승원에 벼락이 떨어진 일은 없었다네하고 말을 받으셨다.

바로 그 때 구름들이 쫙 갈라졌다. 나는 아직껏 그런 광경은 본적이 없다. 그것은 비가 온다는 따위의 말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 마치 엄청난 그릇을 뒤집어 폭포처럼 물을 내리 퍼붓는 것과 같았다. 골짜기 밑의 강에서는 갑자기 솟구친 분류가 벼락소리에 못지 않은 요란한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얼른 그쳤으면 좋겠는데요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연은 토라지기도 잘하지만 또 풀리기도 잘하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름이 물러가면서 우리를 둘러싼 히말라야 산맥 등 뒤로부터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폭풍이 그치자마자 벌써 주변은 정적 그것이었다.
이렇게 어지러운 변화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극단적인 대조로군요
하고 나는 탄성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후에 아침식사로 나는 삶은 달걀 두개에 토스트와 홍차를, 린포체 대사는 참파-보리를 볶아 가루로 만든 것, 티벳의 주식-를 조금하고 차 한 잔을 드시고 나서 다시 발코니로 나와 앉았다.

이 나라 사람들의 풍습을 좀 더 알고 싶습니다
대사는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셨다.

복장은 어떤가요, 자주 변화가 있나요?
아니, 아니. 여기서는 복장의 변천이라는 것은 없다네. 지금도 몇백년 전의 남녀와 똑 같은 모양의 옷을 입고 있으며 전혀 변화가 없다네

서양사람들의 변하기 쉬운 기분에는 잘 맞지 않겠군요
그렇겠지

대사는 내가 생각하는 바에 대답하시는 것처럼 말했다.
티벳인의 의복양식은 몇 세기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하층계급과 상층계급 사람들의 의복 사이에는 그 모양과 헝겊의 질에 있어 커다란 차이가 있지. 이것은 이 나라의 법률이 정하고 있다네. 이 나라의 법률은 각 계층마다 의복의 질과 색을 규정하고 있다네
입는 것까지 일일이 지시를 받는 것에 사람들은 반발하지 않나요?

아니, 이런 일은 모두 몇 세기에 걸친 습관이라네. 상층계급 부인의 복장 같은 것은 대단히 매력적이지. 집안일을 할 때에도 결코 몸단장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네. 부인들은 모두 보석이나 그 밖에 많은 장신구를 몸에 달기를 좋아하고, 몸에 부적이 든 갑이 달려 있는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을 자네도 보았겠지
, 노약자나 빈부의 차별없이 거의 모두가 목걸이를 하고 있더군요

그 목걸이의 조그만 갑 속에는 말하자면 기도문이 들어 있다네. 그것이 재난으로부터 몸을 지켜준다고 그들은 믿고 있는 것이야. 상층 계급이 하는 목걸이는 금으로 만들고 보석을 잔뜩 채워넣지. 만약 그 부적이 든 갑을 매달고 있는 보석 구슬에 어떤 자국이 나 있으면 행운이 들어온다고 여긴다네. 그래서 아주 비싸지. 또 옷에 아주 품질이 좋은 비취를 단다네. 개중에는 옷 등에 보석을 수 놓기도 하는데 어떤 것은 수백만원짜리도 있다네. 그리고 온통 화려한 수를 놓은 옷을 입지.

손가락에는 보석이나 또는 자기가 좋아하는 귀한 돌을 박은 금반지를 낀다네. 비취 귀걸이는 언제나 달고 있고, 그러면서도 이 나라처럼 오물에 대해 무관심한 곳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야. 부인들은 정말 현란한 의상을 입고 있으면서 우리들이라면 자기가 탄 말까지도 밟지 않게 할 오물속을 그 의상을 질질 끌면서도 걷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수가 흔히 있지. 오늘 아침에는 자네도 그 부인들의 의상을 직접 보게 될 것이야

대사는 날 이 지방의 한 명문가의 굉장한 결혼식에 주례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네도 함께 가면 좋을 것이야. 자네를 귀빈석에 앉히도록 신랑 양친에게 말해두었으니까. 귀빈석에서는 전부 똑똑히 볼 수 있다네

이런 경위로 우리는 마을로 가게 되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신부가 화려하게 장식된 조랑말을 타고 신랑집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신부는 머리에 화려한 색깔의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저 스카프는 무엇 때문에 하는 건가요?
, 저것은 신부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라네

결혼 식장에서는 세 군데에서의 다과 접대가 베풀어지고 있었다. 세 군데가 다 서로 가깝게 붙어 있었으며 결혼식장 바로 곁이었다. 여러가지 과자들을 세 군데에서 직접 만들고 신부와 그 일행이 먼저 그것을 시식했다. 신부가 신랑집 문에 도착하자 누군가가 신부 얼굴에 톨마를 던졌다. 톨마라는 것은 보리가루를 반죽하여 그것을 빚어서 조그만 칼모양으로 만들어 삶아가지고 빨갛게 칠을 한 것이다.

왜 저런 짓을 할까요?
, 저것은 만약 악령이 신부에게붙어 오면 그것을 쫓으려는 예방이라네
별난 풍습이군요
하고 나는 웃었다.

신랑과 그의 모친이 대문까지 나가 신부를 맞아들였다. 신랑의 어머니가 신부 머리 위에 거룩한 오색리본이 달린 화살을 하나 얹었다.

그이유를 대사에게 물었더니
그것은 어머니가 신부를 받아들인다는 뜻이고 말하자면 신부의 대한 결혼 승낙서 같은 것이야. 사실 결혼을 증거하는 것으로는 저 형식 밖에는 이 고장에는 없다네

참석자 모두가 집안으로 들어가 신랑은 신부 바른편에 앉았다. 친구와 친척들이 두 사람 발 밑에 선물을 갖다 놓았다.

린포체 대사는 두 사람의 목에 명주스카프를 걸어주고 그것으로서 두 사람은 떳떳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했다. 신랑 어머니가 앞으로나와 신랑 신부 목에 다시 한 장의 스카프를 각각 걸어주었다. 그 것으로 결혼식은 끝난 것이며 모두는 연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회는 밤늦게까지 계속된다는 것이었다.

나도 조금 잔치 음식을 먹었지만 온갖 종류의 설탕과자라든가 굉장한 양의 보리로 담근 맥주 같은 술을 포함하여 열 여섯번이나 다른 요리들이 나왔다. 오래지않아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도 없게 된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린포체 대사는 다른 볼일도 있어서 우리는 잠시후에 그 자리를 떠났다. 다른 볼일이란 어떤 아가씨를 방문하는 일이었다.

한 여자가 형제 두 사람 가운데 형쪽과 결혼을 했는데 실은 그 아가씨는 그렇게 함으로서 자기가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동생과도 함께 살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가씨의 예상과는 달리 동생은 형과 함께 그 아가씨와 살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아가씨는 비탄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대사의 용무란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이었다.

저는 그 동생의 심정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두고보게나

그 집에 가보니 아가씨는 현관에 앉아서 꿈이라도 꾸고 있는 양 먼 하늘을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들이 온 것을 알고 그녀는 정신을 차리며 린포체 대사 앞으로 달려와 대사의 옷자락에 입술을 댔다.

대사는 여자 머리 위에 한 손을 얹고 그녀를 축복해주고나서 티벳말로
딸아, 일어서라.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
하고 다독거려 주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나는 놀랐다. 정말로 반듯하고 입 언저리의 선이 단정하여 입술 모양도 곱다. 웃을 때는 반듯한 치열이 빛난다. 이름은 놀부라고 하며, 이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이라는 뜻이고 그녀에게 꼭 맞는 이름이었다.

대사의 말씀으로는 티벳 사람들의 이름은 아름다운 산, 아름다운 계곡, , 보석 따위 어떤 장소나 귀한 물건의 이름이 대부분이고 각자 말 뜻에 따라 이름을 고른다는 것이다.

놀부는 결혼을 했지만 아이가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그것은 큰 타격이었다. 티벳여성이 이 세상에서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를 갖는 일이다. 아이가 없는 결혼은 그들에게는 결혼이 아니며, 스스로 그 결혼을 취소해도 되는 것이 이 나라의 풍습이다.

그녀는 탄리-평탄한 고개라는 뜻-의 소식을 린포체 대사로부터 들으면서 차츰 흥분했다. 탄리란 바로 남편의 동생이다. 그에 대해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왜 돌아오지 않는지 모르겠어요하고 말하면서고 그 큼직한 푸른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너를 사랑하고 있단다. 그러니까 너를 형과 함께 가질 마음이 되지 못하는 거야
저는 그 사람에게로 가겠어요

좋지. 가보아라. 그는 저 산너머 다즐링에 있단다. 히말라야가 너희들 둘 사이를 갈라놓고 있지만 어디 산을 넘어갈 수 있겠느냐?
있고 말고요
하면서 그녀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 그녀는 히말라야를 넘어서 다즐링으로 가 그곳의 불교 승려의 주례로 다시 결혼했다는 소문을 나는 들었다. 몇 달 뒤에 그녀의 소식을 린포체 대사에게 물어보았다.

티벳에서는 희귀한 사랑이야기였기에 그녀의 일은 내게 큰 감명을 주었던 것이다. 대사의 말씀으로는 둘이 다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이미 임신을 했고 지금은 매우 명랑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둘의 사랑은 잘 되어갈 걸세. 참된 사랑의 유대는 언제나 잘 되는 법이니까
형쪽은 어떻게 되었나요?

아하 그쪽도 잘됐다. 형도 재혼했다네
정말 이상한 나라도 다 있군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튼 그 여자의 집을 나와 다시 다른 집으로 갔는데 그 집에서는 한 남자가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친척들이 린포체 대사를 모셔온 것이다. 우리가 도착하고 얼마 안있어 그 남자는 숨을 거두었지만 대사가 거기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의 슬픔은 훨씬 누그러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하나의 인간이 죽었는데도 마치 새 생명이 탄생한 듯이 각자 퍽 명랑하게 자기 할 일을 해나가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아아, 내일이나 모레 시체는 처리장으로 보내지지

그럼 거기서 화장을 하는가요?
아니, 서양에서는 하는 식과는 다르다네. 저기 저 앞 언덕 중턱에 독수리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이지?


저 독수리들은 살을 뜯어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야. 저 언덕에 보이는 사람들은 라갸파라고 불리우는 시체 처리인들이고. 그들은 시체를 잘게 토막내어 독수리에게 주는 일을 한다네. 그러고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지. 그렇게 하는 것이 보통사람의 시체를 장사지내는 방식이라네

나는 그 현장을 보고 싶다고 했다.
정말 보고 싶은가? 기분이 나쁠텐데
실지로 보아두지 않으면 어떻게 하든지 그저 상상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좋아, 그럼 가보지. 거기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시체가 있어서 동물들이 뜯어먹고 있다네

그렇게하여 우리는 언덕 중턱으로 올라가 이 고장 사람들이 해골이라고 부르는 장소에 가서 정말 무서운 장면을 보았다. 그들은 먼저 큰 바위 위에 시체를 눕히고 날카로운 연장으로 뼈만을 남기고 고기를 말끔히 갈라내어 살을 떼어내는대로 독수리에게 던져주었다.

그러면 무리지어 기다리며 날고 있던 육식조(肉食鳥)들이 소리치며 내려와서 라갸파들의 손을 쪼을듯이 살을 물고 날아가 먹어치우는 것이었다.

살을 다 떼어낸 뼈는 잘게 부숴서 개에게 준다. 시체에서 잘라낸 머리가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라갸파들은 두개골을 깨고 눈알과 골을 손으로 끄집어내어 독수리에게 준다. 두개골은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 죽은 사람의 친척이 희망하면 넘겨주고 그렇지 않으면 개에게 준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광경이기는 했습니다만 보아두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대는 무엇이든 피하지 말고 있는대로를 보아야 한다네. 그렇지 않으면 해탈이 되지 않는 것이야

말씀하신 대로 입니다. 저에게는 아직도 많이 해탈해야 할 것이 있지요
, 그건 그렇고. 다시 죽은 사람의 집으로 가서 그 자리를 정화하는 의식을 해주는 것이 라마승으로서의 일반적인 계율이라네

그것도 보아 두어야 할 것 같은데요
그것도 보고 싶은가?

, 전부 봐도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집니다. 결혼, 죽음, 장례 지내는 것을 차례로 보아왔으니까 이젠 정화의 의식도 보아야지요. 앞으로 탄생하는 것까지 보게 되면 사람의 일생을 다 보게 되는 것이 되고 티벳 사람들의 생활 전체-탄생, 생활, 죽음-를 본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젠 라마승들이 와 있을 거야

그리하여 우리는 죽은 사람의 집으로 다시 돌아갔는데 과연 라마승이 와 있었다. 정화의 의식은 아직도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라마승들은 그 의식을 집정하는 역할을 린포체 대사에게 양보하려 했지만 대사는 손을 들어 그들에게 그대로 집전을 하게 했다

그 의식에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과정들이 있었다. 라마승은 먼저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사자(死者)의 인형(人形)을 만들고는 그것을 불에 던져 태우면서 다 탈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종이인형이 환하게 타오르면 사자의 혼이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간 것이고, 붉게 타면서 퍼지면 혼이 집에서 나간 표시라는 것이다. 활활 타오르지 않고 있으면 혼은 아직 집안에 떠돌고 있는 것이며, 그러면 라마승이 그 영혼에게 집에서 나가 가족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좋은 안식처를 찾아 다시 태어날 때까지 기다리도록 타이르는 것이다.

제 마음에 드는 것이 한 가지 있군요. 그것은 이땅의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것이 없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종이를 태우는 것은 한낱 미신이 아닐까요?
그야 그렇지. 그러나 유족들은 그것으로 위안을 받는다네. 그들은 그것을 굳게 믿고 있으니까. 그들은 우리들처럼 진리를 아는 데까지는 와 있지 못하는 것이야

그렇겠군요.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는 데까지 진화하기 전에는 무엇인가 종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거짓된 것을 알 때 비로소 참된 것도 알 수 있는 것이군요
, 그러면 여태까지 보통사람들의 사망, 장례, 사자의 집을 정화하는 의식도 보아왔는데, 도승이 죽었을 때는 전혀 방식이 다르다네. 그 시체는 안치소에 보존을 하고 그 위에 무덤이 세워지지. 무덤은 금으로 씌우고 속에 보석을 채워 넣으며 그 속에는 값을 매길 수도 없을만큼 엄청난 금불상이나 비단을 함께 넣는다네. 보통 사람들의 경우와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다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라네. 그대도 그런 무덤을 승원에서 많이 보았을 터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을 보려면 달라이라마의 무덤을 보아야 한다네

, 귀국할 때까지는 꼭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얼마되진 않지만 티벳에 입국이 허용된 고관들은 어찌하여 아무 것도 아닌 표면적인 것 말고 생명의 진실한 이치를 탐구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그대 자신이 가지고 있을 터인데 내게 미룰 것까지도 없지 않은가?

나는 아무 말도 안했지만 정말 대사가 말씀하시는 대로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그런 것은 묻는 것이 덧없는 일이었다. 그 까닭은 나에게는 자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가짜에 젖어 있어 참 실재(實在)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겉에서 살고 있는 자는 겉에 있는 사물밖에는 보지를 못한다. 삶의 진실을 파악하지 못한 그들이 가는 곳은 바로 인류의 비극뿐이다.

우리는 잠시 침묵에 잠겨 있었다. 나는 나대로, 대사는 또 대사대로의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생각이 같은 차원에 있었다고 여겨지는 것은 대사가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아들아 그대는 모레는 출발하여야 한다. 내일 차비를 하고 어려운 여행을 대비하여 쉬어야 해. 그대의 친구인 대사가 그대를 부르고 있는 것을 난 느낀다
그건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제가 지금 이곳에서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아들아, 그런 헤어짐도 또한 우리들이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대는 자기가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곳에 머물고 싶다고 바라는 때가 간혹 있겠지만, 그러나 그대를 다른 곳에서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대는 그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그대의 기쁨이었을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그대로 머물고 싶은 곳도 많이 있었지만 영의 힘은 육보다 강하여 그 때문에 저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차례차례 옮겨 갔었지요

* * *

이 책을 왜 조금 더 일찍 집필하지 않았을까 하고 스스로 의아해 하는 일이 가끔있다. 나는 처음 당신이 쓸 수 있는 보다 높은 힘을 서술한 뒤로 계속하여 나는 생명이다” “스스로 고쳐라” “영유(靈癒)와 심유(心癒)” “나의 것은 그대의 것(2部作)” “이완법과 부활법” “심신의 신유-주는 다시 말씀하신다” “생명은 나날이 새롭다의 순으로 썼으며, 이제 이 책 히말라야를 넘어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쓴 책들에는 모두 일관된 무엇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책들은 나로서는 별다르게 어떤 계획을 세우지 않았는데 나오게 된 것이며, 그러면서도 책마다가 서로 연관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직도 더 말해야 할 것이 있고, 그것이 이 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이 나오면 나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고 또 신이 바라는 일이라면 이 책과 같은 것을 다시 쓸 작정이다. 린포체 대사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그렇다. 아들아, 그대는 이 물질계에서 살아 있는 한 책 쓰기를 계속하게 되리라

출발의 아침이 왔다. 린포체 대사에게 잠시의 이별을 고했다. 대사의 표정으로 그의 나에 대한 사랑을 눈으로 보는 듯 했다. 대사도 또 나의 모습에서 같은 느낌을 받으셨을 것임이 틀림이 없다.

이제 대사에게서 떨어져 승원의 계단을 내려가 나는 계곡으로 향했다. 자주 뒤돌아 보면 대사는 여전히 서 있던 자리에 서 계셨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스승이시여! 모두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벗으로서의 상대방에게 구하는 것-사랑, 동정, 이해, 친절, 용서-을 당신은 모두 갖추고 계십니다

언젠가 나는 대사에게 저 떄문에 곤란을 당하신 일이 분명히 여러 번 있었을 터인데요하고 말씀 드린 일이 있다. 그 때 대사는 이렇게 대답하셨다.아니, 그런 일은 없어. ()은 약하지만 영()은 강한것이야.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운 것은 그대 자신의 그런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힐러(심령치료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야. 그대는 남을 탓하거나 책망하거나 심판해서는 안되네. 우리가 남들 속에 발견하는 것은 자기 자신속에도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들이라네

대사의 말씀을 나는 잊은 적이 없다. 이 말씀으로 나는 이분의 위대함을 알았던 것이다.

계곡에 내려섰을 때는 승원이 거의 시계에서 사라져 있었다. 외로운 정감이 사무쳐왔다. 나는 오크 계곡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다정한 나의 벗이요 스응인 그의 생각을 떠올렸다. 그도 틀림없이 흥미 있는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린마톤을 뒤로 하여 소로를 더듬어 고츠아라는 곳에 닿았다. 린파톤에서 약 30킬로미터 되는 곳이고 거기에 산막이 있어 하룻밤을 보냈다. 길은 형편없고 산의 눈이 녹아내려 강이 범람하고 있었으며, 마치 미친듯이 소용돌이치며 계곡을 흘러간다. 우리는 강가로 나가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산 허리는 가파르기 이를데 없고 깎아세운 듯이 내리치는 벼랑도 여러군데 있었으며 전체의 행정(行程)이 험하기 짝이 없었다.

홍수로 불어오른 강줄기를 따라 겨우 돌멩이 투성이의 소로에 이르렀다. 그러나 군데군데 강물이 덮치고 있어 위험하다. 강 위에는 여기저기 야생의 장미와 그 밖의 꽃들이 한창 피어나고 있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여러 번 스냅사진을 찍어왔지만 사진 찍기에도 이젠 지쳐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가 너무 많고 또 날이 가면서 여러모로 촬영 대상을 딱히 결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이 앞에는 더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 것이야하고 혼잣말을 하게 됐다. 사람은 수확이 너무 많이 되는 때는 그렇게 되는 법이다. 산 허리에 라마승의 암자가 몇 채 보였다. 나는 린포체 대사가 말씀하신 것을 상기했다.
은둔 하는 것으로 진리가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암자들에는 아랑곳 없이 앞으로 앞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따금 잠시 발길을 돌려 그 암자들을 한번 들여다 보고 싶은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전진했다. 얼마 안있어 다시 오르막의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줄곧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길이어서 지루한 여행이 되고 말았다.

이윽고 전망이 확 트인 곳으로 나왔다. 수목 사이에서 평원이 바라보였다. 평원은 우거진 풀로 뒤덮여 푸르르고 수백 마리의 야크가 무리를 지어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야생의 꽃들이 현란하게 피어나 평원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을 필름에 담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은 불가능이었다. 물론 몇 장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필름에 담긴 것으로는 도저히 그 풍경의 맛이 나오지 않으며, 다만 지금도 나는 마음 속에서만 생생하게 그 한없는 아름다움을 되새길 수 있을 뿐이다.

잠시 지나 우리는 다시 삭막한 풍경 속으로 들어섰다. 참으로 삭막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풍경, 조금 전과는 너무나 대조가 심해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길이라는 것부터가 그랬다. 폭이 겨우 1미터도 못되며 그것이 산허리를 누비면서 끝없는 계곡의 윤곽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 계곡 속에서는 강이 울부짖고 있다. 때때로 한적한 들판이 나오고 들판에는 어김없이 야생의 꽃들이 피어 또 많은 야크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삭막하기 짝이 없는 풍경과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경관이 엇바뀌면서 이윽고 우리가 하룻밤을 보내게 되어 있는 산막이 강 건너에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저 산막에서라면 색색가지의 야생꽃들이 융단처럼 깔린 아름다운 골짜기의 들판이 좀 더 또렷이 보일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강에 걸린 외나무 다리에 이르렀다. 조심조심 그 외나무 다리를 건넜다. 그 날 걸은 길은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오르막길이어서 산막에 닿았을 때는 상당한 피로를 느끼는 상태였다.

즐거운 저녁식사-하루의 여정을 마친 뒤에는 언제나 식사가 가장 큰 즐거움을 준다-뒤에 이제는 아예 버릇이 된 듯 하인이 아코디온으로 몇 곡의 노래를 켜주었다.

잠자리에 들자 이 짧은 여행 중에 나에게 닥쳐온 여러가지 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삼스럽게 나는 꿈이 아닐까하고 몸을 꼬집어 보고 싶을 정도였다. 대체 그 모든 일들이 정말로 내 눈 앞에서 일어났을까?

그 몇주 동안에 내가 보고 들은 일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한권의 책이 될 만하다. 그러나 나의 저서에서 무엇인가 진리를 공부해보려는 독자들에게는 별로 큰 가치가 없을 것이다. 내가 보고 들은 견문기 이상의 것을 찾아내려는 독자들은 생명과 그것이 의미하는 것에 대하여 보다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티벳 여행을 통하여 나는 많은 기도 깃발을 보았다. 위험한 지점에는 반드시 기도 깃발이 세워져 있다. 여행자가 그 위험한 길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여행자에게 산사태가 덮치지 않게 기도하는 깃발이었다. 정말 이 땅의 사람들은 착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기도 깃발을 무시하거나 심지어는 비웃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그 위험한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하나하나 담겨져 있음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날은 프하리존까지 갔다. 계곡을 나서자 우리는 전날 얼핏 엿볼 수 있었던 광막한 몇 개의 목초지들을 거쳤다.

아름답고 비옥한 계곡이다. 수많은 야크 떼가 야생꽃 무리속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거기에는 또 산들을 넘어 인도까지 양모를 운반하는 다른 야크의 대열도 있었다.

인도라고 하면 그 지점에서는 마치 수만리나 떨어진 완전한 딴 세상처럼 여겨질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아득히 저멀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그리고 또 가장 더럽다고 소문난 프하리가 보였다.

프하리는 해발 5천미터가 넘는다. 우리는 겨우 골짜기 끝에 있는 프하리의 변두리에서 오두막집을 하나 찾아내어 거기서 다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하인은 아코디온을 켰다. 다음날 아침 별 일 없이 아침식사를 일찍 마치고 출발했다.

이제 우리는 프하리에 들어서는 것이다. 이 거리를 대체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푸른 목장이고 야생꽃들이 그 푸른 화폭을 채색하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챰비 계곡보다 더 곱기까지 했다. 야크, 티벳양, 산양을 비롯하여 온갖 동물들이 풀을 뜯고 온갖 종류의 새가 날아다니며 우리들을 환영하는 것처럼 지저귄다. 여태까지 본 적도 없는 동물들이 몇가지 있었다. 그것들은 대개가 들토끼류이고 땅 밑에 굴을 파고 산다.

그런데 이 아름답고 드넓은 경관 속에 자리한 프하리라는 거리는 더러움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얼룩이 져있다. 오랜 세월 먼지 한 번 치워진 일이 없고 사람들은 그저 쓰레기나 먼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집 밖으로 내던지고 만다. 그것이 해마다 서리나 눈을 맞아 쌓이고 또 쌓여 이제는 사람들이 사는 집들 지붕 꼭대기까지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높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청결이나 정돈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 듯하다.

사람들은 모두가 그저 행길 위에서 쭈그리고 앉아 남자도 여자도 아이들도 아무 스스럼없이 배설을 한다. 설마, 저렇게까지…… 내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저옫이다. 또 그 곳 사람들은 결코 몸을 씻는 일이 없다. 씻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 가지 썩은 야크 버터로 몸을 문지르는 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름기는 그대로 그들이 입은 옷에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내가 프하리의 거리를 기꺼이 떠나간 것은 누구에게도 이해가 갈 것이다. 프하리를 나서자 길은 다시 오크 계곡으로 향하게 되었다. 나는 다시 신선한 흥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카린퐁에서 나를 맞아줄 그이, 나 자신보다도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그 대사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정말 놀라운 스승과 벗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스승이나 벗이 아니라 자연의 스승이요 벗이었다.

린포체 대사 말씀처럼 초자연적인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초자연적인 인물이란, 사람에는 자연 초자연 두 가지가 있다고 믿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초자연이라 보이는 것도 속속들이 이해하면 완전히 자연인 것이다. 이것을 나는 이미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벗과 스승을 만날 수 있었던 이 땅을 떠나기 싫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되며 또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보다 할일이 있는 세계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스승들도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나는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대사들의 깊고 깊은 예지는 그야말로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다. 예수의 말씀이 생각난다.나와 우리들을 창조하신 이를 믿어라

모래나 흙 정도가 아니라 돌멩이가 날려서 얼굴에 정면으로 부딪힐 정도로 사나운 바람, 티벳에서도 가장 바람이 사나운 고개를 몇 개씩 넘으면서 우리는 오크 계곡으로 넘어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정말 바람은 무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참으로 평온한 날씨가 홀연히 일렁이면서 무서운 소용돌이 바람이 되고 그리고는 다시 홀연히 그 소용돌이 속에서 말할 수 없는 정적이 나타난다. 이 얼마나 놀라운 대조일까?

쵸모리하리의 얼어붙은 대기로부터 얼음 같은 돌풍이 닥쳐왔다. 얼굴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손가락은 차츰 감각을 잃어간다.

이래도 한 여름이란 말이지나는 하인에게 말했다.
해가 뜨면 또 따뜻해진다구요하인의 대답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얼어죽겠지. 아니면 투모라도 해야 하겠군

이날의 쵸모리하리는 그야말로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원래가 아름답기 그지없는 쵸모리하리, 그것이 이날은 더더욱 놀라왔다. 까마귀들이 이리저리 날으는 하늘 저쪽, 20 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져 있는데도 방금이라도 머리 위로 덮쳐들 것 같은 봉우리이다.

우리는 길을 바른쪽으로 꺾었다. 오크 계곡으로 빠지는 고개 정점은 겨우 수십킬로미터 아래에 있다. 이 길은 어느 조그만 호수를 지나간다. 호수에는 백설을 인 쵸모리하리가 뚜렷이 모습일 비추고 있다. 그 앞에는 우리들이 건너기를 기다리고 있는 강이 있다. 강 저편에 조그만 산맥이 쵸모리하리의 허리 아래를 감추고 있다. 올려다보면 쵸모리하리의 장엄한 정상은 만년설이 덮여 있다. 이날의 쵸모리하리는 그야말로 그 장엄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다 보여주고 있었다.

해는 떠올랐지만 주황색은 아직 떠나지 않고 눈에 반사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쵸모리하리가 방금이라도 우리들 머리로 덮쳐버릴 것 같은 착각을 낳는다. 외계로부터 완전히 감추어져 있는 이 유래없는 경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우두커니 서서 송두리째 빨려들 듯 바라보고 있었다.

해발 5천미터가 넘는 산길치고는 걷기가 수월했다. 얼마 안가서 눈에 익은 아름다운 경치가 저쪽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파른 산허리에 숨바꼭질하듯 오크 계곡의 승원이 서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해서 저런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아무튼 승원의 승려들은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쵸모리하리의 경관을 볼 수 있으니…… 저기에 서면 자연의 온갖 모습을 다 볼 수 있을 것이야
이런 말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뒤따른 하인에게 말을 흘리며 문득 머리를 드니 저 앞에 나의 그 다정한 대사가 서 있지 않은가!

대사가 나를 보고 한 첫 말은 따뜻한 사랑 그것이었다. 어떤 벗이 이런 우정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
나는 얀탄, 건사카 그리고 다코우까지 줄곧 자네를 따라 갔었다네. 자네는 다추안 대사, 머라파 대사, 특히 토운라 대사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지.
그런 것을 어떻게 아시지요?

이 사람아, 나느 그 현장에 있었다네
대사는 아스트랄체로 움직인다는 것을, 마치 내가 숨쉬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을 잊고 있는 것처럼 깜빡했던 것이다.

여기는 아름다운 곳이야. 우린 여기서라면 많은 일을 할 수가 있지. 이곳의 추위도 자네가 볼 수 있는 해가 뜨고 질 산의 경치가 다 보상해 줄 것이야. 그렇지, 내가 잊었군. 자네는 벌써 투모를 얼마간 배웠으니 추운 것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겠지
미소를 머금으며 대사는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주 멋진 실험 조건이 될테니까요
하고 대답했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자네에게 영감(靈感), 특히 가장 높은 차원의 영인(靈人)들로부터 보내지는 영감을 자네가 더 잘 받을 수 있게 되도록 숙달시키는 일이라네. 그러는데는 완전히 격리된, 높고 한적한 여기가 가장 알맞아
텔라파시는 전보다 더 숙련됐다고 생각합니다

그야 그렇겠지. 그러나 이쪽은 좀 더 어려워. 이것은 영통(靈通)이니까. 이 가르침을 받는 것은 텔레파시보다 완전하고 더 확실한 방법이지. 까닭은 이것이 보다 직접 접촉하는 길이니까 자네는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고정된 상념을 모조리 떨어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가르쳐지는 것들은 자아(自我)의 마음으로 물들이고 말게 되지.

그렇다고해서 자네의 두뇌를 완전히 지배할 수는 없는 일이야. 자네의 뇌를 쓰려면 자네를 자네의 육체에서 내보내야 되겠지. 그러려면 굉장한 영력을 써야 하니 그것은 온당치 못해. 그런 일은 우리가 자네에게 하는 것은 옳지가 않아. 자네의 마음과 몸과 조직은 우리에게도 아주 귀중한 것이어서 그것을 손상시키면 안되기 때문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니 뭔가 좀 거북하군요
나는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아니 그렇지 않아, 자네는 아주 희귀한 일종의 영매 능력을 지니고 있어. 자네는 그런 별 밑에서 태어났고 바로 이 일을 위해 자네는 태어난 것이야
전에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겠지. 앞으로도 들을 것일세
대사는 진지한 어조로 다시 덧붙였다.
자네가 얼마만큼 영력을 감당할 수 있는지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이야. 만약 자네가 성공하면 자네는 주님(그리스도) 스스로 쓰시게 될 것이야

아니, 그런 일이…… 내게는 그런 값어치는 없어요
없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자네는 선택된 것이야

그게 정말이라면 저는 어떤 시련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우리는 벌써 승원에 닿아 있었다.

이런 일들을 모두 기록하여 책으로 발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황당무계하다고 누구도 믿어주는 사람도 없겠지요.
무지한 자는 믿지 않겠지. 광신자들도 믿지 않겠지. 그러나 그것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소용이 없다네. 그것은 형이하인 물질계를 초월한 자. 그것을 보고 듣도록 이 땅위에서 선택된 자들만을 위한 것이지. 앞으로 위에서 가르쳐지는 것들은 모두 기록하고 한마디도 흘려서는 안되지

대사의 이 중대한 뜻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대사의 이 말이 없었다면 심신의 신유-주는 다시 말씀하신다”(저자의 또다른 저서)는 쓰여질 수 없었을 것이다.

알고보니 우리는 승원으로의 가파를 경사 길을 어느 틈엔가 다 올라가 있었다. 뒤돌아보니 굉장한 거리여서 나는 놀라버렸다.

아니, 벌써 이렇게 높은 곳까지 왔군요
나의 말을 듣고 대사는 소리없이 웃음을 지여보였다.


8

오크의 승원은 모든 점에서 만토운과 비슷했다. 나는 나의 스승 바로 옆에 방이 주어졌다. 그것은 원래 승원장의 예비실이고 침실에 조그만 거실이 딸려 있는 아주 아늑한 방이었다. 바닥에는 티벳 융단이 깔려 있었다. 먼저 몸을 씻었다.

물론 이 승원이 서 있는 산 꼭대기에 쌓인 만년설이 녹아 승원 옆을 흐르는 강에서 얼마든지 퍼올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몸을 씻고나자 한 사람의 티벳 청년을 소개받았다. 나이는 25세쯤 되어 보였고 이름은 추안타파라고 한다. 매우 지적인 얼굴이고 이 승원의 영매(靈媒)이다. 린포체 대사가 이 청년을 처음 발견하여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를 대사 자신이 내게 들려주신 일이 있었다. 린포체 대사는 그야말로 옛날 이야기 같은 경위로 그를 만났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전에 린포체 대사가 에베레스트 산맥 일대를 방황하고 있을 때 한 번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여 며칠을 굶어가며 헤매고 있는데, 에베레스트 산의 후미진 뒷편 어떤 계곡에서 홀연 추안타파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지고 대사 앞에 나타났다.

그때 추안타파는 겨우 15세의 소년이었다. 소년은 먹을 것을 대사에게 바치고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황홀상태로 들었다. 소년의 입을 통하여 바로 머라레파 대성자(밀라레빠)가 말씀을 하시면서 소년이 지닌 여러가지 초능력을 실연해 보였다.

추안타파를 거쳐 말하는 이가 틀림없는 머라레파 대성자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윽고 황홀 상태에서 깨어난 추안타파는 린포체 대사에게 대사님이 여기로 오시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가져다 드리라고 하여 제가 왔습니다고 하며 대사를 비밀 통로를 따라 안내했따. 따라가보니 야크가 무리지어 풀을 뜯고 있는 아늑한 골짜기가 나타났따. 야크의 임자가 누구인지 대사가 물으니 저의 것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이상한 일이어서 부모님은 어디 계시는가?하고 묻자,
, 여기서 아주 먼 곳에 계십니다고 한다. 대사는 더더욱 신기해서 어떻게 이런 먼 곳 까지 오느냐?고 물었다.
, 저는 이렇게 옵니다하면서 소년은 룽곰파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 보였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 어린 소년이 어떻게 룬곰파를 할 수 있게 되었을까? 누구에게 배웠는가?하고 대사는 물어보았다.

그이가 가르쳐 주셨어요
그이라니 누구 말인가?
그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소년은 마치 누군가가 옆에 같이 있는 것 같은 말투였다.

대사는 추안타파가 여태까지 만났던 어떤 사람보다도 뛰어난, 태어날 때부터의 영매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린포체 대사는 추안타파를 카린퐁의 어떤 높은 요기에게로 데리고 가서 맡겼다는 것이다.

소년은 그 요기 밑에서 7년을 공부했고 그로부터 3년동안 오크 승원의 영매로 있는데, 그의 지위는 승원장보다 높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린포체 대사에게서 이미 들은 나는 그 청년에게 굉장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힌두어로 말을 걸었더니 유창한 영어로 대답을 하여 나는 또 놀랐다. 카린퐁의 수련을 할 때 인도 사람인 요기가 그를 카린퐁의 영국학교에 입학시켰고 그 학교에서 추안타파는 동급생들이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속도로 영어를 익혔다고 한다. 뒤에 확인해 보았지만 사실 추안타파는 그 학교에서는 아주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의 영매로서의 능력은 참으로 놀랍도록 정확했다. 우리는 곧 친해졌다. 그의 영매능력 덕분에 이 물질 세계를 이미 떠난 많은 분들과 교령할 수가 있었는데, 그 교령은 모두가 정확하고 그를 통해 말하는 영들의 신원을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오크 승원의 우두머리인 승원장도 만났다. 그도 또 영어를 할 줄 알아 우리는 대화하는데 통역을 둘 필요가 없었다. 승원장은 명랑한 성격이어서 우리를 많이 웃겼다. 그의 웃음은 정말 전염성이 강하여 그의 옆에 있으면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가지고 있던 영국제 비스킷을 선물로 내놓았다. 나의 스승이나 승원장 그리고 추안타파 모두가 아주 좋아해 함께 차를 마시면서 비스킷을 아끼고 아끼면서 먹곤 했다.

승원의 식사는 고기, 보리가루, 참파, 감자, 야크버터, 야크젖과 치즈…… 아주 풍성했다. 로스트 치킨도 며칠에 한번씩은 나왔다.

저녁이 되어 나는 쵸모리하리로 가라앉는 해를 보고 싶었다. 그렇게 말했더니 모두가 함께 나서서 승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승원의 평평한 옥상에서는 계곡이 눈 앞에 내려다 보이고 그 너머에 쵸모리하리의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었다.

언제 보아도 도무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밖에는 나지 않는 이 경관을 말로 나타낼 수 있을 턱이 없지만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아름답기 그지 없기 때문에 자꾸만 말로 어떻게든 나타내보려는 충동이 감히 일어나는 것이다.

해는 이미 쵸모리하리의 등 뒤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 연분홍에 가까운 색감을 뭐라 표현할까? 이런 미()를 세계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핑크가 붉음으로 옮겨감에 따라 골짜기에서 보라빛 안개가 솟아오르고, 그 안개의 색도 차츰 짙어지면서 마침내 구름이 되어 산을 기어오르며 차례차례 산들을 뒤덮고, 이윽고 태양이 타오르는 빨강을 반사하는 것은 산꼭대기 뿐, 그 꼭대기도 차츰 엷어져 가고 눈 앞에는 보라에서 빨강까지의 스펙트럼의 모든 색깔이 반짝이는 융단이 나타나 계곡도 산도 모조이 감싸버렸다. 참으로 말은 힘이 모자라고 묘사는 초라한 것이 될 뿐이다.

해가 돋아날 때도 마찬가지의 현란한 변화이지만 일몰때와는 색깔의 배열이 반대였다.

참으로 그것은, 전율할 만큼 잊지 못할 체험이었다.

해야 할 일은 잔뜩 있다. 모두가 날이 새기 전에 이미 일어나 있었다. 나는 처음이라 건물 구조도 서툴고 생활방식도 익숙치 않았지만 만사 잘 될 수밖에 없다는 안심과 만족이 저절로 솟아났다.

이 날 아침 나의 스승은 정식으로 스승으로서의 법의(法衣)를 입고 있었다. 그이의 예지와 그리고 현실적 지식은 깊고 깊어 린포체 대사와 같은 깨달음의 차원에 있다.

맑은 목소리로 스승이 말씀을 시작했다. 뭔가 깊은 말씀이 나온다고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가만히 귀를 귀울였다.
진리는 마음 속에서 만들어 내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지배하는 종교, 인간, 그것이 먹이가 되어버리는 문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지금의 이 세계 일반 사람들이 하고 있는 짓이다. 그들은 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뭔가 의지할 것, 이끌어 주는 것을 바라낟. 그리하여 결국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의 노예가 된다

나는 이 때 추안타파가 자신이 속한 교단의 종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나서 그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나의 이런 마음의 생각을 읽은 듯 스승은 말했다.
추안을 염려할 것은 없다. 그는 벌써 오래 전에 노예의 사슬을 풀어 던져버렸어

스승은 말씀을 이었다.
사람들은 하나 됨이라는 이상(理想)을 일단 내걸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가 어떤 분별이나 구별에 매달려 있다. 현실로 갖가지 신조(信條)나 국적, 종교상의 믿음, 정치적 이념의 차이를 버리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렇게 되는 것은 그런 것들에 꽉 얽매어 있기 때문이다. 또 그 때문에 그런 것들 모두가 가짜임을 깨닫지 못한다.

참으로 있는 것(實在)에는 구별이 없다. 따라서 종교든, 국가든, 이상이든, 신앙이든, 인간과 인간을 갈라놓는 것은 모두 가짜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안을 찾아내고 해탈을 얻으려면 기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평안이나 해탈을 명상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더더욱 묶이게 되는 것이다.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에 어떻게 얽매여 있고 그 마음속의 생각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알지 못하면 명상이든, 기도든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떻게 해서 갈라짐이 생겼는지를 모르면 이른바 하나됨이든 평안이든 해탈이든 그밖의 어떤 이름으로 불러본들 그것은 그저 머리 속에서 만들어 낸 한낱 관념에 불과하다

린포체 대사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하고 내가 무심코 말하자,

아들아, 해탈에의 길은 단 하나 뿐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얽매여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그대를 풀어 놓아줄 수는 없다. 그대가 그대 스스로를 풀어 놓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그대는 일체의 만들어진 것뒤에 있는 거대한 창조력, 그대의 마음 저 너머에 있는 가장 높은 사랑과 예지를 볼 수가 있다. 그대 자신의 마음은 다만 그 지고의 사랑과 슬기가 스스로 나타나는 도구요, 수단이다.

그 지혜와 사랑과 슬기가 어떻게 가짜로 가득찬 마음을 거쳐 스스로를 나타낼 수 있겠는가? 그런 마음의 상태는 그리스도인 영의 슬기와 사랑이 아니라 그저 자기한정(自己限定)으로 만들어낸 것만을 나타낼 뿐이다.

그대를 여기에 데리고 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대의 마음은 주()의 통로가 되기에 알맞게, ‘신이 들리기(over shadowing)에 알맞게 깨끗하고 맑아져야 한다. 그러지 않는한 그대 스스로 자기한정한 것을 비춰내는데 그치고 말 것이다. 그대가 이 땅을 나간 뒤에도 그대의 마음은 우리가 그대에게 기대하는 봉사’-신이 들리기위해 마음과 몸을 바치는 일-의 준비는 완전히 되지 않은 채로일 것이다. 세상 사람들 틈에 끼어 아직도 여러 해를 더 후보(候補)’의 일을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그대에게 마음 속에서 만들어내어진 것은 이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그대를 신이 들리기에 맞는 사람이 되게하는 것이다. 그대 자신의 일상생활과 일 가운데서 이것을 터득하는 체험을 갖는 것이 여기에 오래오래 머무는 것보다 훨씬 더 그대의 마음을 청소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대가 속세에서 일을 할 때 우리는 그대를 원조해 주겠다. 그대 뿐이 아니라 그대가 도와주려는 사람들까지도 도와줄 것이다.

세상에는 저보다 더 존경받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데요
아들아, 이 일을 위해 그대는 태어난 것이야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운명을 알고 그렇게 결정적으로 운명지워진다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한마리 새까지도 그것이 땅에 떨어질 것을 아버지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고 주 예수는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나의 질문마다가 한 마디로 잘리우곤 했지만 어떻게든 마지막 한방을 쏘지 않을 수 없는심정이었다.

아무튼 저는 아직 뜻대로 행동할 수 있을 만큼 해탈한 경지에는 이르고 있지 못합니다
아니, 도달해 있어. 그대는 그 무엇도 외부에서 강제되고 있는 것이 아니야. 그대 자신의 내부로부터 촉구되고 있는 것이야. 그것이 그대의 가장 깊은 속의 소망이 되는 것이야

그렇다면 저야 어찌되든 끝까지 이 일을 해보겠습니다
자 좀더 이야기해보지. 그대의 마음 속 청소가 전보다 조금 더 잘 되어 있으면 우리는 현실적인 일에 착수할 수 있다네. 그것을 나는 되도록 빨리 하고 싶은 것이야. 그대가 자기 자신을 따로 떨어진 독자적 존재라고 여기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한, 온갖 상호관계에 있어서의 갈등에서 해방될 수는 절대로 없다. 그러므로 참된 명상 또는 참된 기도란 바로 가짜를 발견해 내가는 과정이며, 자기자신의 마음이나 자기의 환경을 모르는 채로 그저 어떤 생각에 모으는 일은 아닌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른바 만트라(眞言)라는 어떤 말이나 문구를 되풀이하여 외우면서 그것을 가지고 명상이나 기도를 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자기 최면에 불과하다. 명상이란 어떤 생각에 젖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우러러 섬기는 것은 우상 숭배이고 어리석은 미신이다. 어떤 생각 또는 어떤 이미지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명상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일 뿐이다. 그것은 어쩌면 쾌적한 도피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어리석은 도피이다. 세계란 바로 사람이며 사람은 곧 세계이다. 그러므로 곧 그대는 세계요. 나는 곧 세계이다.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세계란 분명히 우리가 의식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 문명을 만들어내고서도 그것에 지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바로 그대로야. 사람들은 노예가 되어 있다. 왜냐하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노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와 국가의 온갖 전통, 신앙, 차별에 의하여 생각과 감정이 사로잡히고 남의 엉덩이에 달라붙어 흉내를 내고 온갖 권위라는 것을 세우고 있어. 한 사람 한 사람이 그저 순응하고만 있을 뿐이며 자기 자신의 행위로 세계에서 획득한 안심이라는 것도 가짜다.

그것은 잘 알겠습니다. 이 상대적인 세계에서는 이제 이것이면 안심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그런 것은 다만 환상일 뿐입니다.
그렇다. 사람들은 훌륭한 인물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 도중의 과정이 깨달음을 방해하며 그 자신을 포로로 만드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는 따위는 실은 불필요한 것이다. 그런 것을 노력하면 오히려 공포와 한정을 가져올 뿐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스스로가 두려워하는 내외의 영향에서 도피하려는 생각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뭔가 좋지않은 생각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일어나지? 그 영향에서 도피하기 위해 그것을 물리치료하려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그 정체가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영향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자기자신의 상념의 정체를 잘 파악하여 대처하지 않으면 몸부림치고 규탄하고 비난하고 결국은 그 그림자의 반대되는 생각에 억지로 자기자신의 주의를 돌리려하기 때문에 도리어 한층 더 심한 갈등을 만들어내고 만다. 이렇게 사물에 대한 사고방식이 조금도 창조적이지 않은 쓸데없는 투쟁에 휩쓸려 버린다는 것을 알지못하겠는가?

인간 생활의 참 모습이 차츰 눈에 보여왔다. 추안타파가
스승님, 그 끝 말씀만으로도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어떤 생각이 자신의 마음을 지배할 때는 그 정체를 꿰뚫어 보아야 할 일이지. 그것과 싸워서는 안된다. 생각이라는 것은 모두가 무언가 다른 사물의 결과이며 그 사물의 값어치를 알아야 한다. 그렇게하면 어떠한 투쟁도, 공포도, 한정도, 혼란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대의 마음에 어떤 갈등도, 긴장도, 투쟁도 없어졌을 때 비로소 그대의 마음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없어졌을 때 비로소 평안이 생겨난다. 우리들의 일을 위해서는 이런 마음을 꼭 그대가 지니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고 스승은 나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대는 순간순간 제 마음의 상태를 경계해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을 일상생활 속에서 길러야 한다. 자기 자신의 어떤 마음을 정신분석 할 때만이 아니라 항상 현재속에서 감시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알 수 있게 되며 자아(自我)가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아를 아는 것이 바로 슬기와 참 도리에의 관문이다
그리고나서 스승은 승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영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여 선악의 갈등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남의 흉내를 내고 옳고 그르고의 상극속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마음속에서 승원장님, 이것은 당신을 향한 설교라오하고 뇌었다. 그러나 스승의 말은 거기서 멈추어지지 않았다.

승원장은 선악의 균형이 잡힌 좋은 둥지를 찾아낼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또한 신이 이 균형을 실현시켜 준다고 여기고 있으며 그렇게 기도하고 영창하고 모방하고 순응하며 자신의 미신 속에 갇히어 있다. 그가 가짜를 분별하기만 한다면 진짜를 깨달을 것이다. 영적인 사람이 되려는 갈망은 결국 좌절과 비탄과 모순만을 의미할 뿐이다
나는 승원장 쪽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무말도 없었다.

스승은 계속했다.
선악은 한 나무에 열리는 열매이며 뿌리는 하나이다. 그 뿌리는 인간의 마음 속에만 있으며 거기서 만들어내어지는 것이요. 그것은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추안타파가 내 귀에 속삭였다
승원장이 지금 설교를 듣고 있군요

스승은 그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어쩌면 추안의 마음을 읽었을 것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다.
추안타파 너도 마찬가지야
진리 그것은 선악, 과거,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진리란 순간에서 순간으로 지금 생명의 생생한 포현이다. 그 속에는 어떤 갈라짐도, 죽음도 없으며 영원히 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이 법열 속에서만 무한한 사랑과 슬기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과거로 도피하지 않고 미래를 헛되이 꿈꾸지 않으며 항상 지금에 살기 때문에 그대가 하는 모든 일은 거기에 걸맞는 것이 되고 그 보수 또한 놀라운 것이 된다.

, 아들아
하고 이번에는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마음이 평온하면 삶의 기쁨이 솟으며 마음을 통제하거나 분석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스스로의 마음의 상태를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어찌해야 한다든가 안된다든가 하는 스스로의 자아로 생각하여 긴장이나 공포를 자아내던 원인인 온갖 미덕이나 부덕에서 해방된다. 갖가지 미덕의 응어리에서 해방되면 공포가 사라지고 대립하는 것도 없으며 오직 사랑과 슬기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실제 속에서는 다만 사랑과 슬기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 때 비로소 그대는 참으로 창조하는 자가 되며 주()가 다시 말씀하실 때의 그릇이 된다.

만약 그대가 무엇인가가 되려고 끊임없이 자아와 씨름을 한다면 그 괴로운 투쟁은 끝이 없다. 그러나 자기자신-참 나, 신아(神我)-이 참으로는 이미 지금 그것이다고 알았을 때, 그 때 비로소 무애자재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기가 언젠가 알지 못할 먼 미래에서가 아니라 실은 지금 이미 완전한 실상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의 여태까지의 생각과 행위가 모두 한정되어 왔던 것이다. 끝없고 조건 없는 거을 이해하려면 마음이 자아의 생각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본래 ()’인 자아는 녹아 없어져야 한다. 그럼으로써만 비로소 실재 곧 참 나는 지금속에서 실재 곧 신 스스로를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이다.

나 스스로는 무()이다
나는 자신 속에서 깊은 변성(變性, transformation)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여태까지 나를 가르쳐오던 사물은 이제 나의 안에서 사라져 간다. 나는 나의 느낌을 스승에게 말했다.

아들아,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기쁘다
하고 스승은 대답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대의 마음이 윤리의 모순을 짊어지고 있는 동안은 그대는 자기의 실상(實相)이라는 진리를 꺠달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대의 마음이 온갖 윤리, 도덕, 차별, 분리, 구별 따위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으니 그대는 일체의 반동, 시간, 단절, 대립에 시달리지 않는 이른바 자연법이(自然法爾)’의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터득할 것이다.

이제는 생명의 흐름이 생명 본래의 일을 한다. ‘아버지 신만이 역사하신다
그대가 입으로 내보낸 말이 헛되이 그대에게 돌아오는 법 없고 그 목적을 다하리라

그리고나서 스승은 승원장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승원장을 보라. 다른 고승들도 마찬가지지만 마치 자기들이 앉아 있는 방석처럼 힘없는 말을 토해내고 있을 뿐이다

이 말에 승원장은 놀라면서
스승이시여, 저는 제가 이 주위의 형식이나 교리 전부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고 말했다.

그럼 왜 거기서 나와 인류를 정말 돕는 사람이 되지 않는가?
승원장은 고개를 숙였다. 스승은 말씀하신다.
부름을 받는 자는 많으나 선택받는 자는 적다

스승은 승원장을 향하여 말했다.
실재에는 지금이 있을 뿐이다. 과거도 미래도 없다. 이 깨달음을 허무하게 미루면서 후일을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대는 자기자신을 가짜 미덕에서 풀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대는 여태까지의 어리석음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위하여는 자기 자신의 온갖 상념이나 동기나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하는 바에 대한 그대 자신의 반응까지를 잘 꿰뚫어 보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무지란 학습의 결여가 아니라 가치의 혼란과 갈등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승원장 그대는 지금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결정하기 어려운가? 그렇다면 그대의 마음 속에서는 여러가지 생각이 뒤얽혀 있고 그 속에 그대는 휘말려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대는 모방자에 불과하다. 그대는 이미 무()가 만들어 놓은 어떤 틀에 자기자신을 맞추려 하고 실재란 이러이러해야 할 것이라고 스스로 마지막 이미지를 만들어 내어 딱하게도 거기에 자기자신을 맞추어 나가면서 결국 곧 신인 자기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대는 그렇게 남의 흉내를 냄으로써 어찌 항상 실재하는 대생명의 끝없는 기쁨을 실현할 수가 있겠는가? 생명은 그저 항상 있으며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란 얽매이지 않는 하나이다.

그대의 마음이 형식이나 의식, 차별, 구별에 사로잡혀 있는 한 그대에게는 이해되지 않는다. 가짜를 지금 꿰뚫어 봄으로써만 승원장이여 그대는 참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권위를 세우고 그것을 높이는 것은 그대의 알맹이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자기에게는 일을 해낼 만한 역량이 없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 다른 무엇인가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대는 참 있음 곧 실상아닌 어떤 생각을 위안으로 삼고 그 속으로 도피하려 하는 것이다. 그대의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대 자신이 손발이 꽁꽁 묶여 있는 것처럼 그대는 여기 이 많은 라마승들을 얽어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스승은 나를 항하여 이렇게 말했다.
생명은 참으로 있는 것이요 그 스스로 이미 완전이며, 자아가 사라졌을 때 무애자재롭게 생명 그것이 나타난다. 개아(個我)는 분리 속에 있는 것이요, 자기를 남과 별개의 존재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의 대생명이 있을 뿐이며 그 속에는 어떠한 분리도 단절도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분리, 단절이란 마음의 환상임을 알게 된다.

그대는 이제 여러가지 미덕의 숭배나 죄의 두려움에 마음이 흔들리는 일은 없으리라. 또한 깨달음을 방해하는 윤리라는 좁은 길을 더듬어 갈 필요도 없다.

여기에 있는 승원장은 여태까지 어떤 틀에 자기를 맞추어 왔기 때문에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공포를 없애려면 자기의 심상이 지금완전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혼갖 허영이 질투, 부러움이나 소망, 희망, 회한이나 공포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모든 것은 다 그대가 시간-과거, 현재, 미래-이라는 미망에서 해방되고 참된 깨달음을 찾을 때 사라져 버린다.

마음이 가짜로 가득차 있으면 그것이 가짜임을 꿰뚫어 봄으로써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러면 마음에서 가짜가 없어지고, 항상 있는 생명이 의식과 더불어 점점 확대되어 가면서 필경은 실재로 마음이 가득하게 된다. 한편 실재 그것 밖에 있는 것은 슬기와 사랑과 이해로써 그 정체와 원인을 분간할 수 있게 된다.

스승은 나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유일무한의 생명은 사랑과 슬기 속에서 스스로를 나타낸다. 그대가 편협 완고한 신앙으로 그 나타남을 한정할 때에는 대생명의 지금 여기 그대의 삶에서의 그 본래 무애자재한 작용을 그대 스스로가 방해하는 것이다. 인간을 모두 따로따로라는 헛된 저주에서 해방하고 대생명 그것의 위대한 본원으로부터 태양계의 대천사들을 거쳐 흘러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참혹한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특수한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간을 거쳐 분명히 밝히는 일을 돋는 것이 그대의 일이 될 것이다. 이 생명은 슬기와 사랑과 자비로 가득차 있으며 인간, 곧 아버지인 신이 이 땅위에 모습으로 나타난 신의 아들인 거룩한 인간을 참으로 이해하는 새 시대로 이끌어들이는 선구자가 된다

여기서 스승은 그 아침의 설법을 마쳤다. 우리는 모두 자리를 떠서 특별히 마련된 큰방으로 가 넷이 함께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다.

먼저 승원장이 입을 열었다.
스승님, 당신께서 분부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이제부터 기꺼이 하겠습니다

스승은 대답하셨다.
신이 그대에게 맡긴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라. 그렇게하면 그대는 이 나라를 무지와 노예와 빈곤 속에 얽어 매어온 미신들을 이 나라에서 제거하는 최초의 공로자가 되리라

그 말을 듣고 승원장은 일어나 스승이 앉은 자리 옆으로 가서,
저에게 주어진 이 일을 제가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몇 해 뒤에 나는 그 오크 계곡의 승원이 티벳에서 가장 활발한 교화를 펴는 승원이 되고 간덴에 있는 라마교학의 중심마저도 어깨를 겨눌 수가 없다는 소문을 들었다. 오크의 승원장이 하는 설법과 그가 해 보이는 놀라운 초능력의 사실을 보려고 온 나라에서 라마승들이 운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날은 나머지 시간을 라마승들의 활쏘기 연습을 보며 보냈다. 매년 한 번 궁술대회가 열리어 온 나라의 승원에서 선출된 궁수들이 수도 라사에 모인다. 이것은 큰 행사이며 오크 승원의 라마승들도 그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과녁을 맞히는 솜씨는 대단했다.

그들의 활쏘기에서 중요한 것은 짐작이다. 커다란 과녁이 높은 곳에 들어 올려지면 궁수들은 한참 과녁을 응시하고 나서 과녁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뒤로 물러간다. 그리고는 짐작으로 활을 쏘는 것이다. 그런데도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이렇게 많은 선수들이 날마다 연습을 하여 그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팀을 골라낸다. 백명 이상의 선수가 연습 결과를 점수로 종합하기 때문에 라사에서 열리는 경기에는 문자 그대로 가장 우수한 자들만이 참가하게 된다.

나는 어릴 때 집의 농장에서 활을 만들어 토끼사냥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그 후에는 활을 쏘아본 일이 없지만 막상 라마승들이 연습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한 번 쏘아보고 싶어져서 부탁을 해 보았다. 라마승들은 모두 환영해 주었다. 과녁이 보이는 거리에서는 사실 나도 매우 좋은 성적을 올렸지만 시계 밖 표적에서는 별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짐작으로 쏘는 연습을 충분히 하기만 한다면 숙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연습에 참가하면서 흥이 돋구어졌다. 요행인지 모르겠지만 그 날 오후는 내가 속하게 된 팀이 이겼고 더구나 나 자신도 평균 이상의 성적을 올려서 조금 영웅이 된 기분이었다. 승원장도 좋아해 주었다. 승원장은 사실 명랑한 인물이었고 우리들이 그렇게 교류하게 된 것을 고맙게 여기고 있었다.

다음 이틀 동안은 여태까지 마음 속에 쌓아온 잡다한 관념이나 믿음을 마음 속에서 털어내기 위하여 나는 홀로 있게 되었다. 그런 시간을 가진 결과 나의 마음 속에는 다만 사실만이 남았고, 사실 그것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믿음이라는 관념적인 것은 하나도 없어지게 되었다. 스승은 그만큼 철저하게 나의 마음을 청소해 주신 것이다.

나의 마음은 이제 첫 번째 시험을 치를 준비가 되었다.

나에게 한 장의 종이가 주어졌다. 거기에는 아주 뜻이 깊은 몇 마디의 말이 쓰여져 있었다. 내가 할 일은 그 말을 읽고 거기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전기가 몸 속을 꿰뚫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순간 나의 마음은 완전한 공백이 되었다. 그리고는 나는 여태까지 체험해보지 못한 어떤 강한 신념 같은 것을 느꼈다. 슬기의 원천에 나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는 딴 사람처럼 스스로 말하는 것을 스스로 듣고, 말이 입에서 차례차례 나오는 것을 들으면서 생각하는 것이었다.

마치 나라는 인간이 둘로 나뉘어져 한 쪽은 사랑과 슬기와 힘의 원천에 연결되고 다른 쪽은 동시에 그것을 느끼면서 그것을 공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게는 그것은 정말 새롭고 싱그러운 체험이었다.

스승은 매우 기뻐해주었다.
이제 오래지않아 그대는 좀 더 잘하게 될 것이다. 차츰 숙달하여 마침내 위대한 영적 존재가 그대와 어울릴 수 있게 되고, 그 때에는 그대 둘레에 영적인 빛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완성되을 때, 그대는 몇 달 후에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대를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대는 전과 같은 모습이요 형상이지만 어딘가 설명할 수 없는 차이점이 느껴질 것이다.

그대가 세상으로 돌아가서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는 동안도 계속 그대의 안에서 변화가 진행되고 그리하여 더더욱 많은 양의 힘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세간의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이 일을 훌륭히 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인 것이다.

그 이후 언제나 나는 홀로가 아니라 어떤 영적 존재가 나와 함께 있으면 그것이 어떤 존재인지를 나는 알 수가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안토니는 여러 영매를 거쳐 내가 여러 번 대화를 나눈 분이다. 그러나 어떤 영매도 추안타파만은 못했다. 이런 영적 존재들은 말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나라의 말 말고도 예컨데, 프랑스어, 이태리어, 중국어, 힌두어, 영어, 티벳어…… 모든 말을 완전히 할 수 있었다.

어떤 영혼이든 그 국적 여하에 불구하고 어떤 나라의 말이든 거침없이 바꾸어가면서 쓸 수 있는 일종의 메커니즘, 곧 영매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크 승원에 머무는 동안 순간 순간을 즐겼다. 우리는 모두 부지런히 일했고 잘 웃었다. 나의 진보는 빨랐다. 승원장 쪽은 생명과 종교에 관한 새로운 전망을 다듬는데 시간이 걸렸으며 처음에는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처음부터 너무 잘 해냈다면, 마치 어떤 교회의 지도자가 대중들을 공포 속에 얽어매놓는 죄나 지옥 또는 악마의 힘을 설하는 종래의 교설을 부숴버리려고 일어서는 교역자들을 추방하는 것처럼 그도 또한 라사의 고승들에 의하여 추방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민중이 공포의 포로가 되어 있는 한 민중을 교묘히 조종하여 속일 수가 있는 것이다. 교회는 위에서 번영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포의 원인이 제거되어 버리면 그 때는 더 이상 조종할 수도 속일 수도 없게 되어버린다. 온 세계에서 나는 일을 해오고 있지만 광신에서 비롯되는 공포로 가득차 있는 환자를 만나곤 한다.

그런 환자에게는 나는 언제나 가볍게 질문을 해 본다.
신의 성질은 무한이겠지요?
그야 물론 하나님의 성질은 무한이겠지요!-이것이 최초의 발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벗어나서 무엇인가 외부에 존재할 수가 없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무한이라고 할 수가 없지 않겠어요
그야 그렇지요하고 대개 대답은 정해져 있다.

무한이라면 하나님은 모든 곳에 다 계셔야 하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신은 무한이라고 할 수 없을 터이니까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악마이고 지옥도 하나님 속에 틀림없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만이 존재한다면 악마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래 존재하지 않는 악마를 인간은 멋대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은 그 성질상 무한이고 신과 악마가 함께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마치 계산을 잘못한 것과 같아 계산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는 그것은 없어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악마도 그것이 본래 없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에는 그저 없어지고 맙니다.

이것이 충격 요법 제 1호인데 그러나 그 힘은 좀처럼 발휘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성서 속에서는 지옥과 악마가 있다고 합니다대개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언제나 일정한 말을 한다.그렇습니다. 그러나 에수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너희들은 성서를 읽고 영원한 생명을 찾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지요. ‘악에 항거하지 말라. 악에는 본래 힘이 없습니다. 그 없는 힘을 악에게 주지 말아야 합니다.

악마란 곧 자아를 말하는 것이며 지옥이란 그 자아가 만들어내는 혼란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니고 있는 것은 마음 속에서 만들어낸 한조각 신조나 관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신조나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되새겨 보고 잘 생각하여 그것을 버리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 조각의 신조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알 때까지는 그것이 가짜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의 말씀은 어떻게 되나요?하고 환자는 묻는다.
예수는 진리에 대하여는 한마디도 남기거나 기록해 두지 않았습니다. 기록해 둘 수가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빌라도에게 물었죠. ‘진리란 무엇인가?’하고.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는 어떤 말도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말로 진리가 계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다만 진리에 대한 어떤 생각을 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것은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이것을 예수는 아셨던 것입니다.

성서를 기록한 것은 인간입니다. 더구나 그 후에 그 성서는 인간의 손으로 열 두번씩이나 고쳐졌습니다. 당신은 말 그것이 진리가 아닌데도 그것을 진리라고 받아들입니다. 진리는 어떤 책 속에서도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의 정체를 알고 비로소 말이 진리가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소리치셨지요
예수가 황야에서 발견한 것을 보았을 때 나도 역시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의 정체를 전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자아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자아야말로 실재를 감추는 악마였던 것입니다. 자아는 언제나 얼굴을 앞으로 내밉니다. 그것이 자아가 하는 버릇입니다. 그러나 본래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다만 우리가 스스로의 실재에 무지할 때에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아야말로 곧 신의 나타남을 방해하는 악마이며, 나도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사기꾼이다. 너는 신의 아들로서의 내가 태어난 권리를 나에게서 속여 빼앗으려는 자이다하고 외쳤지요. 신만이 유일한 존재이며, 신밖에 존재하는 것은 없음을 알았을 때 나는 나 자신이 육체나 육체의 생각이나 사람의 생각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실재인 신으로부터 태어난 신의 아들임을 알았습니다. 나는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 때 아버지 하나님은 하나님 스스로의 역사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신은 실존하는 것이기에 나 또한 실존함을 나는 알았습니다. 그러나 신이 무엇이라는 것은 모르지만 다만 우리는 하나이고 따로 떨어질 수는 없습니다. 자아란 떨어져 있음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분리라는 생각은 하나의 미망입니다. 이것이 바로 악마이고 지옥이며 또는 자아가 만들어내는 혼란입니다. 왜냐하면 자아는 분리만을 알고 자아의 이득만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놓칠세라 소중히 붙들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받아들여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어떤 생각, 어떤 관념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마음의 환상인 어떤 관념 사상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신이 아닙니다. 신은 관념이나 사상도 아니거니와 어떤 이미지도 아닙니다. 망상도 아니거니와 믿는 마음도 아닙니다.

당신은 온갖 종류의 공포나 망상을 지닌 당신 스스로의 자아를 모르기 때문에 남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가짜를 모르기 때문에 진짜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소경이 소경을 이끌어 둘이 다 수렁 속으로 빠져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 만약 당신이 가짜를 찾아냈다면 그 다음은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진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에요. 당신에게 무엇이 진리인가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 자신이 무엇이 가짜인가를 알기만 하면 그 때 비로소 당신만의 당신의 을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이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자기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리를 스스로 직접 체험할 수 없습니다.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따위로 말하는 사람은 가짜 예언자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아직 그것을 몰라요. 그것은 당신 스스로의 신앙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자기 마음속을 샅샅이 뒤져 그 속에 있는 것들의 정체를 알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한낱 생각이나 관념 또는 사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나 있음(I AM)’이 진리입니다. 그것이 바로 입니다 사람은 그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요 그 밖에 실존하는 것은 없으며 그 속에는 어떠한 갈라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망상은 자아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며 그것은 자아가 만들어낸 환상이며 만들어 내어진 것은 이 아닙니다. 만들어지지 않은 것만이입니다.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 가짜들을 모두 없애버리면 있음(I AM)’이 깨달아지겠지요.

그러므로 이른바 도덕이라는 것은 어리석음의 으뜸이며 도덕적인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스스로의 참모습을 가리고 감추는 일입니다. 스스로의 실상이 아닌 것에 대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어떤 관념이나 사상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그것은 도덕은 아닙니다. 도덕이란 스스로의 실상을 속속들이 알고 깨닫는 일인 것입니다. 이른바 도덕은 망상이요 속박입니다. 스스로의 실상을 모르면 도덕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한다 해도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미덕은 스스로의 실상을 아는 데서만 찾아내어질 수 있습니다. 미덕이란 곧 해탈이며 스스로의 실상을 남김없이 앎으로써 이루어지는 해방입니다. 미덕이란 실재의 나타남을 방해하고 있는 것을 꽤뚫어 보는 일입니다.

친절, 애정, 자비, 관대, 용서…… 이런 것들은 모두 실재의 나타남입니다. 이것이 미덕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의 잡다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이른바 도덕적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도덕적인 사람이 되려하는 것 속에는 미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덕은 지금 시간과 관계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실상을 모르면 미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식으로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해준다. 그러면 환자들은 어김없이 더더욱 이야기를 듣고 지도를 받으려고 찾아온다. 말하자면 나의 이야기가 커다란 보람을 낳는 셈이다. 왜 그런가 하면, 내가 하는 말이 여태까지 진리와는 반대의 생활방식을 따라왔기 때문에 좌절과 실망만을 맛보았던 환자들을 무엇이 되려는 애씀의 긴장에서 풀어 놓아주었기 때문이다.

[출처] 제 7장|작성자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