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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티벳의성자를 찾아서 제 6 장 본문
티벳의성자를 찾아서
얀탄 승원의 제전 때에 나는 건사카 승원의 머라파 대사와 다코우 승원의 토운라 대사를 만났는데, 두분이 다 매력있는 인품이고 각기의 전문분야에 정통한 분들이었다. 또 두 분이 다 힌두어가 능숙했다. 내게는 그것이 특히 기뻤다. 그분들의 가르침을 받는데 있어 통역없이 직접 대화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추안 대사에게 청하여 함께 두 승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함께 가 주기를 청한 것을 다추안 대사는 오히려 더 좋아했다. 까닭은 다추안 대사와 머라파 대사 그리고 토운라 대사는 서로 절친한 사이이고 깊은 유대가 있으며, 각자의 제자들이 얼마나 진보하고 있는지를 서로 정답게 지켜보고 돕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추안 대사와 더불어 나는 건사카 승원으로 갔다. 그곳 승원장 전용실 가운데 하나가 나의 숙소로 주어졌다. 승원장은 그 때 간덴 승원에 가서 새로운 의학 강의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티벳의 승원에서의 의학 교과에는 생리학, 물리학, 식물학, 정신과학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나 서양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내용이 전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곳의 학문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유치한 것 같고,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면에서는 깜짝 놀랄만큼 앞서 있기도 하다.
머라파 대사는 자신의 법명을 머라레파 성자(聖者)의 이름에서 땃다고 한다. 머라레파 성자는 굉장히 오래 살면서 10만편 이상의 시를 써서 그 속에 비밀된 가르침을 담았고 엄청난 기적을 행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것은 그의 깨달음과 능력이 당시 티벳의 어떤 파의 승려들보다 훨씬 뛰어났음을 보여주기 위해 몸을 떠올리는 법을 써서 가이러스 산 꼭대기까지 날아갔던 일화이다. 그로부터 그런 초능력의 개발과 습득을 위한 학교들이 여러 개 세워지고, 꾸준히 성자의 지도를 받은 라마승들은 대단한 초능력을 개발하여 여러가지 기적을 해냈다고 한다. 머라파 대사의 말로는 건사카 승원도 그런 학교의 하나였던 것이 승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머라레파를 줄여 머라파라는 이름을 갖기로 했다오.」
머라레파가 겨울에는 내낸 깊은 적설과 에베레스트의 빙하로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 있어야 했지만 전혀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 기적적인 초능력 때문이었다.
「먼저 첫째로 나의 제자들이 해야 하는 것은 특수한 호흡법을 익힘으로써 몸이 떠오르게 하는 수련이라오. 호흡의 수련으로 몸이 가벼워지지요. 때로는 너무 가벼워져서 떠돌아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추를 달아야 할 때도 있지.」
몸을 공중에 띄우는 것은 인도에서 본 일이 있다고 내가 말했더니 머라파 대사는 그런 것은 어린아이 장난 같은 것이라고 한다.
「제자로는 14세 이상 18세 이하의 어린 행자를 골라야 하지요. 룽곰파-깊은 삼매경에 든 채로 장거리를 고속으로 달리는 축지법-는 오랜 수련이 필요하고 여러 번의 시험기간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요.
호흡을 정밀하게 다듬고 몸과 마음을 완전히 통제하여 육체가 완전히 단련되어 흔들림이 없게 되어야 하니까. 또한 깊은 삼매에 들어 거기에 머물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이오. 그럼으로써 안의 온갖 힘을 일깨워서 마침내 음양의 극성(極性)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야.」
「요가를 배워서 짐작을 하게 된 일입니다만, 특수한 호흡법으로 공중의 자유 에너지를 몸으로 끌어들여 몸을 가벼워지게 하고 그렇게되면 몸을 마음대로 원하는 속도,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맞아요. 하늘을 나는 라마승, 이른바 룽곰파는 인간으로서 놀라운 존재이지. 그가 삼매에 들면 일반 사람들은 그의 몸에 다른 영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에요. 오랜 수련을 쌓으면 말하자면 가벼운 공기 그것이 온 몸에 스며들어 몸이 가벼워지고 극성이 거꾸로 바뀌지. 그래서 인력이 극복되는 것이에요. 이렇게 해서 룽곰파는 산과 들을 넘어 장거리를 아무런 피로도 느끼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간다오. 원래 피로란 육체가 땅으로 끌리기 때문에 그것을 이기고 몸을 놀리기에 힘이 소모되기 때문이지. 즉, 인력 때문에 피로하게 되는 것이지요.
룽곰파는 목적지점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리는데, 속력은 평지에서나 산을 넘을 때나 골짜기를 건널 때나 변함이 없어요. 하루에 2백 50킬로미터 이상을 갈 수 있다오. 어떤 룽곰파는 그 보다 훨씬 더 멀리가요.
그러나 이렇게 되는 사람은 참으로 희소하니, 그것은 바로 이 축지법에 통달하는데 무엇보다도 장기간의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요. 시작하는 자는 많아도 끝까지 해내는 사람은 드물지요. 이것은 모든 밀교과학(密敎科學)중에서도 가장 어렵기 때문이요.」
「그 놀라운 술법을 실지로 볼 수 있다면 정말 신기하겠군요.」
「그것을 볼 수 있게 된 당신은 행운아야. 우리가 섬기는 린포체 대사께서 당신에게 그 기회를 주도록 부탁을 하셨기 때문이요.」
「저 자신은 그 술법을 실지로 익힐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없으니까요. 제가 하는 것은 치병(治病)입니다. 그러나 견학을 시켜주신다면 저에게 큰 공부가 될 것이고, 제가 하는 일에도 반드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내일 아침에 수련장으로 가 보도록 합시다. 수련장은 언제나 격리되어 있지요.」
다음날 아침 우리는 승원이 있는 산허리를 돌아 배후의 골짜기로 내려갔다. 사방이 산으로 에워싸인 계곡 바닥의 길고 평탄한 마당이 수련장이었다. 머라파 대사의 제자는 셋이었다. 거의 평생을 가르쳐야 하는 이 수련에는 셋이면 족하다는 말이었으며, 그 세 제자는 벌써 10년 이상 수련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수련이 시작됬다. 제자들은 각기 흙을 모아 커다란 삿갓 모양으로 쌓고 그 앞에 결가부좌하고 명상에 드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들의 몸이 가부좌한 채로 땅에서 떨어지면서 흙더미 보다 높이 떠오르더니 차츰 내려와 흙더미 꼭대기에 닿았다가는 다시 올라갔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고는 흙더미 꼭대기에 내려앉은 위치에서 그대로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때가 가장 어려운 대목이라는 설명이었다. 한 발을 내디디고 떠오른다. 다시 한발을 내딛고 떠오른다. 그러다가 눈은 멀리 하늘을 응시하면서 마치 훌쩍훌쩍 튀기듯이 한번에 7~8미터의 폭으로 몸을 이동시켜 나갔다. 발은 거의 땅에 닿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 광경은 정말 꿈속의 장면 같았다. 이런 수련 장면은 거의 공개되는 일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도 기초적인 가르침을 받았는데 나의 몸도 무게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예정된 체제기간이 자꾸만 흘러가는 아쉬움을 안고 다추안 대사와 함께 다음 방문처인 다코우 승원으로 갔다.
토운라 대사는 정말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텔레파시이다. 전부터 나는 텔레파시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나 자신의 일인 치병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토운라 대사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단시간에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힘을 크게 개발할 수가 있었다. 아마도 토운라 대사와 나의 파장이 잘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텔레파시의 숙련은 내게 아주 재미있어서 나는 자연히 열중하게 되었다. 서로 상념이 거침없이 분명히 형성될 수 있게 하려고 대사는 티벳어로 생각을 하고 나는 힌두어로 생각을 했다. 얼마간 연습을 하고보니 상념전달은 사실상 매우 간단하고 유별난 노력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었다.
대사가 내게 설명해준 원리는 이렇다.-
상념은 에텔 속에 전파와 같은 파도를 일군다. 공중에는 무수한 전자파가 동시에 존재하면서도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상념의 파동도 그와 마찬가지이며 전파를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있으면 원하는 전파를 받아 그것을 귀에 들리게 할 수 있듯이 상념의 파동도 마찬가지 원리와 과정으로 송수신한다는 것이다.
토운라 대사는 설명했다.-「그런데 인간에게는 발신장치와 수신장치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바로 뇌하수체가 발신장치인 셈이고 송과선이 수신기이다. 한 사람으로부터 상념이 방사되고 거기에 동조되어 있는 상대방은 그것을 수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전혀 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수신을 할 때 그 내용을 의식적으로 해석하려 해서는 안된다. 마음 속으로 느낌이 흘러드는대로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흘러드는 느낌이 상념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내용이 알아지는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느낌 그것이고, 결코 사고(思考)가 아니다. 수신자가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상념은 뇌하수체를 작동시켜 그것이 송과선의 수신작용을 혼란시키는 것이다.」
실지로 해보니 과연 그대로였다. 대사가 티벳어로 생각하는 것-즉 말하는 것이다-을 생각해보려고 하면 완전히 감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힘(自力)’으로서의 시도를 멈추게 되면 대사의 생각은 그대로 다 받아지는 것이었다.
토운라 대사는 나에게 「당신은 타고난 ‘수신자(受信者)이군. 원래가 당신은 영능자여서 영감으로 말을 하고 있어. 생각하지 않으며 말을 하고 있는 것이야.」하고 말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뭘 말할까 하고 생각을 하면 반드시 말이 막힌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저 생각없이 느껴지는대로 말을 하고 말을 하면서 그대로 느끼면 그 결과는 완전합니다.」
「그렇지. 당신은 구태여 텔레파시의 기법을 배울 필요도 없겠어. 타고는 영능자이니까. 실은 당신 같은 소질의 사람은 많이 있는데 그것을 스스로 깨닫는 사람이 드물지요.」
나의 영능의 소질을 대사가 확인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때까지 나는 뚜렷이 깨닫지는 못한 채로 남들의 마음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며, 나 또한 그들의 말을 할 줄 모른다. 그들이 말을 할 때는 나는 말로써 알아듣지 못하니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말하는 뜻은 분명히 알아지는 것이다. 그것을 직관이라고 부르든 뭐라 하든 그들의 심중의 뜻을 내가 알아차린다는 사실은 그들의 상념과 감정을 내가 읽을 수 있다는 증명이 될 것이다. 그들의 생각이나 감정이 내게로 흘러들어 나는 그 상념과 감정을 그대로 느껴왔던 것이다.
그들이 진지한 마음으로 내게 왔는지, 그저 호기심이나 반신반의의 심정인지 또는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또 두려움에 쌓여 있는지 그대로 알아지는 것이다. 정말로 그들의 생각과 감정의 뉘앙스까지도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알 수 있었다.
토운라 대사의 제자들 20명 이상이 서로 통신을 하는 수련 현장을 견학했다. 그들은 여러 번의 시험을 거쳐 서로 잘 맞는 상대를 골라 짝을 지었다. 그들의 송신과 수신은 놀라왔다.
먼저 첫 송신자가 판에 글자나 숫자 하나를 쓰면 돌아앉아 있는 수신자는 자기의 판에 느끼는대로를 쓴다. 다음에는 하나의 낱말, 그리고는 하나의 문장을 쓴다. 그 다음 송신자는 책을 펴서 한 구절을 소리없이 묵독한다. 판에 글자나 낱말 그리고 문장을 쓸 때는 수신자도 판 위에 그대로를 받아쓰고 책의 구절을 묵독하면 수신자는 받은 대로를 소리내어 말하며 보조자가 그것을 기록한다.
틀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참으로 놀라운 정확성이었다. 그리고는 송신자와 수신자의 거리를 차츰 늘려나가면서 연습을 거듭하고 드디어는 산맥을 격해서 송수신을 한다. 그리하여 공간이란 본래 없는 것이며 인간은 본래 분리가 없다는 것을 체증(體證)하는 것이었다.
「빛과 소리가 에텔의 파동으로 전해지듯 상념과 감정도 마찬가지이다.」하고 대사는 설명했다.
다코우 승원에 머문 열흘 사이에 대사와 나 사이에는 뜨거운 우정이 솟아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연습의 뜻도 겸하여 보통의 대화까지도 대사는 티벳어로 나는 힌두어로 말했다.
티벳을 다녀온 몇 년 뒤에, 런던에서의 한 심령실험의 모임에서 토운라 대사가 나타나 내게 말을 한 일이 있다. 내용은 대사가 아직도 육체를 지닌 채로 있고 나와 만난 얼마 후에 리시라 은자(隱者)-이 분에 대하여는 뒤에 이야기 하게 된다-로부터 유체이탈을 배웠으며 그리하여 대사는 유체로서 나의 일을 돕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의 나의 감격은 정말 말할 수 없었다. 지구를 포함하여 이 우주에는 인간이 그야말로 상상도 못할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었다.
그 일에 대해 그 자리의 어느 누구도 의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심령실험에 참가한 사람 가운데는 나 말고는 토운라 대사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스승인 대사와 린포체 대사를 비롯하여 나를 도와주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영향을 자주 느끼며 또한 헤어진 후에도 토운라 대사의 텔레파시를 여러 번 받았지만 그가 육체를 이탈하여 유체로서도 일한다는 것은 그 심령실험 모임에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다. 그 때 나는 저절로 티벳에서 토운라 대사가 헤어질 때 한 말이 생각났다. 그 때 대사는 말하기를,
「사랑이야말로 온누리의 가장 강력한 힘이요, 그것은 강철을 자화(磁化)할 때 쓰는 강력한 전자석보다 더 강한 전자석입니다. 강철을 자화하면 분자가 모두 남극과 북극을 향해 가지런히 배열되고 원자 자체가 조화되면서 그 강철덩이는 하나의 자석으로 바뀝니다. 그와같이 사랑은 영원과 육체의 에텔론(etheron)과 원자를 자화하여 우주선들을 강력하게 끌어당겨 신의 사랑을 표현하게 되지요.」라고 했다.
「그렇습니다. 예수도 “나는 너희가 생명을 얻도록 더욱 큰 생명을 얻도록 하려고 왔다.”고 하셨지요.」하고 나도 맞장구를 쳤었다.
대사는 잠시 침묵속에 잠기더니
「예수님을 말하는군. 이 땅에는 예수의 기록이 있다오. 그이는 지금도 우리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로서 한결같이 살아계심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운라 대사의 생각은 내게 깊이 새겨져 있어 지워지지 않는다. 그가 내게 준 깊은 사랑과 우정을 나는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여기서 잠시 내가 참이라 믿는 바를 이야기 해 보련다.
사람은 서로 파장이 맞을 때는 전혀 소리없이 대화를 할 수가 있다. 누구든 기회있을 때 이것을 시도해 본다면 스스로도 놀랄만큼 깨닫는 바가 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의 이해가 보다 깊어지고 사랑의 느낌도 더욱 깊어질 것이다. 흔히 말하듯이 ‘만나지 않으면 더욱 그리워진다’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끼리 상념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원자와 원자 사이의 조화는 생명의 기본적 기능인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 그것이 바로 모든 피조물의 바탕에 있는 전자력(電磁力)이요 그 원리와 법칙이다. 사랑의 원리 그것이 온 누리 일체에 있음을 창조해낸 기본력이다. 그것은 ‘궁극자(窮極者)’ 자체는 아니지만 우주에 있어서의 궁극자의 운동이다. 이 운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질료(質料)의 원자들을 변화시켜 눈에 보이는 온갖 형태로 나타나게 한다. 그때의 미묘한 매체(媒體)가 에텔이다.
에텔 속에서 창조의 청사진이 만들어지고 운동이 전자와 원자를 바꾸고 맞추어 모양을 띠게 한다. 전자력이 작용 하고 있는 사이에는 항상 이 에텔이 모든 모양있는 것들의 바탕이 된다. 이 원리와 법칙은 온 우주에 걸쳐 한결같다. 왜냐하면 창조주는 하나이고 따라서 피조물도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창조자와 피조물이 그대로 하나이며 결코 따로따로가 아니다.
에텔은 창조자의 상념의 매체이고 가장 강하게 작용한다. 왜냐하면 우주는 그것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는 ‘프라나야마’의 호흡법의 교사과정을 거칠 때 터득했다. 프라나를 제어하는 것은 모든 현상과 존재 속에 있는 활력들을 제어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사랑을 주는 사람은 신의 사랑을 받으며, 미움을 주는 사람은 자신이 씨 뿌린 것을 거둔다.
다코우 승원을 떠날 때 토운라 대사가 조그만 ‘기도바퀴’ 하나를 기념으로 주었다. 나는 그것을 17년이 된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티벳을 다녀와서 줄곧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세계를 돌아다니는 바쁜 나날을 보내는 사이에 이 책을 써야 겠다는 뜻을 남들에게 말한지도 벌써 15년이 흘렀다. 최근의 9년은 남아프리카에서 보내고 있고, 지금 나는 휴가를 얻어 고국 스코틀랜드로 가기 위해 배를 타고 있다. 공교롭게도 여기서 이 책을 쓰라는 구체적인 권고를 받게 되어 이렇게 집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을 낸 뒤에 다시 한 권을 쓰게 될 것이다.
자기 개인의 소양을 넘는 보다 큰 힘에 이끌리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사람은 만사가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가장 적절한 때에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 말은 대개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 숙명론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를 낳고 운영하는 신의 지혜와 힘과의 가장 알맞은 시기에서의 어울림이다. 그 힘이 인간 각자 안에도 현존함을 꺠달음이요, 신은 본성에 있어 무한이니 인간은 신이 자신의 뜻에 따라 삼라만상을 낳고 운영하는 그 의식과 지혜의 표현체임을 분명히 앎이다. ‘오오 신이시여, 나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다시 이야기를 줄거리로 돌린다.
우리는 다코우 승원을 떠나 귀로에 올랐다. 얀탄에서 다추안 대사와도 작별하고 때를 재촉하여 챰비 계곡으로 돌아왔다. 꼭 24일 만이었다.
곧바로 린포체 대사를 찾아뵙고 경과를 낱낱이 보고했다. 린포체 대사의 첫 물음이 「토운라 대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그 분은 선생님 다음으로 저에게 정다운 스승이고 벗입니다.」
「그에게서 벌써 소식이 왔다네. 그의 말로는 자네는 텔레파시의 명인이라는 것이다. 자네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더군.」
「저도 그렇습니다.」
「나도 기쁘네」
「그런데 어떻게 그리 빨리 아셨나요?」
「아아, 우리들 사이에는 소식이 빠르지. 지금 자네가 하는 일도 아주 짧은 시간에 멀고먼 곳까지 알려진다네.」
「하긴 저도 그러리라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밤늦도록 그간의 일들과 내가 배운 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사께서는 나의 여행이 보람이 있었음에 만족해 하시면서
「이번 여행이 성공적이어서 나도 기쁘네. 그러나 그런 것은 ‘참’ 그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지. 밀교 과학의 기법을 아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진리는 그런 것과는 별개의 있음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해」
「네, 알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것이 분명히 깨달아집니다. 그런데 산속에 숨어있는 은둔자들은 어떤가요, 그들은 진리를 찾은 분들인가요?」
「이사람아, 그렇지 않아. 산속이나 바닷가에서 칩거하고 인삼을 먹거나 온종일 배꼽에 정신을 집중한다고 해서 ‘참’이 깨달아지는 것은 아니야. 또 세상에서 떨어져 있다고 해서 알아지는 것도 아니야.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세상이니까. 홀로 있음이란 없는 것이야. 그것은 그저 마음 속에서 지어낸 것, 커다란 환영일 뿐이라네. 그런 허위를 깨닫게 하려고 자네를 예까지 오게 한 것이야.
그래야 비로소 ‘참인 것’을 알지. 누구나 자기 스스로 허위를 알게 되지 않고는 남이 알게 해줄 수는 결코 없지. 나도 못해. 자네는 오랫동안 틈틈이 밀교 공부를 해왔지. 그러니까 더욱 나는 자네가 ‘참인 것’을 철저하게 깨닫고 해탈해 주기를 바란다네」
대사는 차츰 깊은 고요속으로 드시면서 말씀을 이으셨다.
「깨달음은 단순한 명상이나 암시에 의한 신앙이나 어떤 신비한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미래나 과거에서 얻어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과거는 기억이고 미래는 공포가 섞인 희망에 불과하니까. 그런 것은 모조리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야. 진리는 마음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럼 어찌하면 진리에 이를 수 있을까요?」
「나로서는 진리에 이르는데 방해가 되는 미로(迷路)를 알려줄 수 있을 뿐이다. 그것들을 샅샅이 알았을 때 진리는 너에게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리가 정말로 내것이 되며 남의 것이 되지 않는다. 남의 것을 따라가본들 그것은 흉내에 불과하다」
「또한 단순한 분석으로 진리가 깨달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과거를 들추어보는 것 뿐이다. 단순한 분석의 과정이 거짓의 과정임을 알면 너는 그것을 놓아버리게 되고, 그러면 그것은 다른 거짓 과정들 모두처럼 너의 마음 속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너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모두 죽은 것 뿐이다. 그것은 살아있질 않아. 진리는 모든 순간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야. 진리는 발견되어질 것이지 단순히 믿어야 할 것이 아니며 인용할 것도 아니며 마음에서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싱싱하게 살아서 행동하는 것, 싱싱하게 지금 살아 있는 것, 그것이 진리이다. ‘나’의 생명 그것, 생명의 모든 순간순간을 사는 것, 그것이 진리이다. 이것을 알려면 모든 거짓에서 벗어나 마음으로 사랑을 가득 채우면서 스스로 경계하고 스스로 깨있어야 해.
대개의 사람들이 생생하게 살고 있으려고는 안하고 누워서 세상을 피하고 문제에 부딪치려고 하지 않는다. 어린아이처럼 어머니 치마폭에 싸여 비바람을 피하려고만 해. 대체 비바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인간관계가 아닌가? 우리는 순간순간마다 그 관계를 의식해야 해.
만약 내가 그대를 물건을 다루듯 한다면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그러나 서로 이해할 때 비로소 참된 관계가 생긴다. 그때 비로소 자유가 있을 수 있고 자유 안에서만 진리는 계시된다.
만약 네가 나를 사랑하지만 다른 사람은 싫어한다 할 때 너는 진리를 안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내게는 친절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불친절하다면 너를 친절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모순이 아닌가?」
「이런 말은 지금까지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못했겠지. 그것은 네가 자기 자신과 자기의 상념, 동기, 감정, 소원과 그것들이 생기는 원인과 방식을 잘 모르기 때문이야. ‘작은 나’(小我)에서 나오는 것을 모두 제거해야 비로소 진리가 참으로 알아지는 법, 진리가 자기 안에서 꽃피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그런 거짓된 것이다. 너의 행위가 진리와 모순될 때 어찌 진리를 말할 수 있겠는가」
대사는 더더욱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만약 자기의 체험이라는 것이나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으로 지배된다면 그대는 ‘나’의 마음을 넘어서 있는 것을 나타낼 수 없다. 다만 ‘나’의 마음 속에 있는 것밖에는 표현하지 못한다. ‘나’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본래 참이 아니다. 그러나 너의 행위가 이웃을 자기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나온다면 너는 진리를 나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잠시 말을 끊으시더니 아주 인자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 아들아, 내가 너를 꾸짖는다고 생각하는가? 아니야,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나 자신에 대한 사랑보다 크다. 네가 알고 있는 진리라는 것이 네가 본 것, 네가 들은 것, 네가 읽은 것으로 조립된 것이라면 그것은 그저 빈 껍질임을 너는 이제 깨달았다. ‘참인 것’을 발견하려면 제 마음속을 뒤져 거짓인 것을 끌어내야 해. 네가 ‘나’라는 그것의 마음 속에서 쥐고 있는 것은 모두 참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한낱 축음기로써 레코드를 이것저것 바꾸어 틀고 있는 것 뿐이다. 너 자신이 그저 남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스스로 음악가이면서 동시에 음악인이어야 해.
내 아들아, 자아의 마음이 남이 생각하는 것과 밖에 있는 그 무엇들이 반응하여 만들어낸 것을 똑똑히 가려내야 한다. 그것은 송장이야. 부술 수도 구부릴 수도 없는 살아있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야. 살아 있는 ‘참인 것’은 자아의 마음으로는 끌어모을 수는 없는 것……」
거기까지 말을 이으시고는 대사는 완전한 침묵 속으로 드셨다. 나도 말없이 고요 속에 빠져들었다.
그렇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나는 하나의 변화를 거쳤다. 그때까지 내가 배워온 것은 뒤로 물러나고 참으로 있는 것이 앞으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뭔가 야릇한 정감(情感)이었다. 전에 느꼈던 것과 비슷하기도 하나 더 강렬했다. 그보다도 그것은 그대로 깊디깊은 고요 그것이었다.
내가 그때까지 진리라고 생각하고 배워왔던 것, 들어왔던 것이 한순간에 녹아버렸던 것이다. 그 깊은 고요 속에서, 그 아련한 기쁨 속에서 나는 내가 참을 전혀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 이것이 진리임을, 나 자신이 이제 살아있는 ‘참’임을, 어떤 것도 이것을 부술 수 없고, 어떤 힘도 이 [있음]을 깰 수 없으며, 어떤 것도 진리를 구부릴 수 없음을,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느꼈다. 그것은 나의 진리이고 남의 진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정말 그 순간부터 나는 아무런 애씀없이 아무런 두려움없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까지 내게 있어서 진리는 한낱 정신적 관념이었을 뿐이었으며, 더구나 나는 그 사실을 직시하지를 못했었다. 까닭은 내가 스스로의 자아로 진리라고 생각해온 것을 놓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좋건 나쁘건 또는 아무래도 되는 것이건 어떤 사실에도 정면으로 대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런 이른바 ‘사실’이 진리를, 살아 있는 진리를 결코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안 것이다. 나 이것이 이대로 ‘참 있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를 있게 한, 곧 나를 창조한 ‘사랑’이 또한 일체를 만든 것이다. 이 ‘앎’이 천상 천하의 인간에게 주어진 신의 힘이었던 것이다.
나의 사고는 크나큰 침묵 속에 그대로 녹아들고 그 속에서 창조적 상념이 솟아나왔다. 나의 혼란된 자아의 생각들이 무(無)속으로 녹아 내림과 아울러 나는 단순한 정신적 관념이 아닌 것이 깨달아졌다. 인간적인 사랑의 관념을 넘은 완전한 사랑이 넘실대는 가없는 고요에 나는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남의 손으로 잠재워졌을 때와 같은 죽은 고요가 아니었다. 내가 내 뜻으로 지어낸 고요도 아니었다. 일체의 혼란된 상념이나 어지러운 사고작용마저도 휩싸여들어 멈추어버리는 고요, 그 고요 속에서 어떠한 외적인 것에도 이미 묶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끝없이 한결같이 있는 창조의 근원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과 ‘하나’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것과 나를 떼어놓을 수 없다. 그 무엇도 그것을 나에게서 빼앗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랑은 일체의 창조된 것 속에 있는 창조의 힘 그것이었다.
왜냐하면, 신은 사랑이며, 일체는 사랑인 신과 하나이며 신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침묵을 깨트린 것은 린포체 대사였다.
「이 사람아, 밖에 나가 해짐을 보기로 하세」
바라는 바였다. 몸이 떨릴 만큼의 감격을 맛보지 않고 이곳의 해짐을 본 일이 없었다.
「저녁마다 해짐의 모습이 한 번도 같은 법이 없군요」
「그럴수밖에. 나는 오랜 동안 여기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아왔지만 한 번도 같은 일이 없었지. 안그렇겠는가? 이 사람아, 그것은 하나의 ‘한 생명’의 변화가 아닌가. 그대와 나도 같은 생명이지. 다만 다른 것은 ‘변화’ 그것일 뿐이야. 이 변화만 알면 모든 것의 뒤에, 안에, ‘한’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야」
대사님의 말씀처럼 나에게 속속들이 스며드는 울림은 없다. 그 울림은 그대로 나를 밀어 올리는 그런 울림이었다. 그 울림에는 나의 성질을 송두리째 흔들고 바꾸어놓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하여 내게서 일어나는 것은 어설픈 지적 이해가 아니라 보다 깊은 깨달음이고 변성(變性)이었다. 나는 이제 근원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만족했다. 만족하여 이제 다시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더는 이것저것 찾아다닐 것도 애쓸 것도 없다. 진리란 과연 무엇이냐고 자꾸만 두리번거리던 나의 탐구도 고투도 끝난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전진이다. 이제부터야말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그대로 나에게 다시 없는 배움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에는 이것이야말로 ‘참’이라고 여겼던 것이 허상(虛像)이었음을 깨달았고 그리하여 모든 거짓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들어지지 않은 것, 창조되지 않은 것’만이 ‘참 있음’이고 창조하는 자이다.
그로부터 나의 신변에서 일어난 일들은 하나하나가 놀라운 일들이었고 그 까닭을 분명히 모른다 해도 그것에 미혹되는 일은 없었다. 어떤 일이든 그 배후의 근본원인은 하나이며 [나] 이것이 그것과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타나는 것은 나타나는 것이고 그밖에는 아무것도 나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신은 곧 무한이니 무한한 것에서 떨어져 따로 유한한 ‘참있음’은 없다. 그런 것은 그저 보는 눈의 망상일 뿐이다.
린포체 대사님과 해짐의 현란한 모습을 즐기고 나서 우리는 밖에서 저녁식사를 들었다. 그것은 나의 기호에 맞도록 특별히 마련된 식사-구운 감자와 닭고기-였다. 배가 고팠을 때에 더구나 시원한 마당에서의 식사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육체적 만족을 주었다.
「티벳인들의 풍습을 선생님에게서 듣고 싶습니다. 제가 머물 기간은 짧고 이렇게 광막한 나라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도 없으니까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는 것은 모두 저에게 큰 공부가 되겠습니다」
「그렇겠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느꼈군 그래. 이제부터 그대가 앞으로 나가면서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지식을 얻을 마음가짐이 더 잘되도록 티벳 사람들이나 그 관습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네. 그런데 고단하지 않은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다면 몇 시간이라도 좋습니다.」
「티벳 사람들은 대체로 밝은 편이지. 그건 자네도 이미 느꼈을 터 인데」
「네. 그들은 늘 웃고 있지요. 제가 만났던 부인들은 특히 그렇던데요.」
「정말 잘 웃지. 그러나 그건 아마 자네를 그들이 남편으로 삼고 싶어서일 것이고, 또 그대가 동족들과 다르기 때문일 거야」
「그런가요. 하긴 얀탄으로 들어올 때 아가씨들 십여명을 만났는데 저를 보자마자 서로 떠들면서 웃는 것입니다. 통역에게 물었더니 ‘좋은 서방님’이라고 한다는 거에요. 하나가 ‘내것’하니까 다른 아가씨도 ‘내것이야’하고는 웃어대는 거에요」
「그렇다네. 여기에는 일처다부(一妻多夫)인 집도 얼마간 있는데 이 풍습은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지. 여자가 여러 남편을 거느리는 풍습인데 장남을 남편으로 맞으면 그 동생들도 다 받아들이니 아이들의 아버지가 누군지를 모르지. 그런데 막내아들과 혼인을 하면 그 사람만이 남편이고 위 형제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네」
「그런가요? 이 나라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것 같던데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도 일처다부의 풍습은 그치지를 않아. 또 한편으로는 일부다처의 풍습도 있어서 부자들은 아내를 여럿 두는 사람도 있는데 이 풍습도 근래에는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다네. 이 나라에서는 어린이의 사망률이 대단히 높다네. 독감으로 죽는 어머니와 아기가 많아서이지. 외딴 시골에서 라마승의 의사가 가까이 없을 때는 남편이나 이웃사람들이 해산을 돌보고 태어난 아기를 목욕시키는 일도 드물다네. 갓난아기는 보통 온 몸에 야크버터를 발라주는 것이 풍습이야.」
「선생님도 많이 해산을 돌보아주셨겠군요?」
「음, 많이 했지. 실지로 나는 내가 담당했던 지역에서는 상당한 숙련자였다네. 해산때 어머니들이 겪는 아픔은 그대도 알겠지. 물을 끓이는데 드는 땔감도 그렇거니와 여기서는 밥을 짓는데 쓸 땔감도 아주 얻기가 힘드니 말이야. 숲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는 나무를 해올 수가 있어서 다행인 편이지. 또 아기를 낳고 어머니가 하루 이틀 누워있는 일도 드물다네」
「승원 근처를 아가씨들이 많이 돌아다니던데요?」
「그래. 라마승들은 일단 독신을 지킨다는 서약은 하지만 개중에는 계율을 지키지 않는 자도 있어. 자네가 보는 아이들 중에 많은 아이들이 제 아비를 모른다네. 티벳 사람들은 아이를 참 좋아해서 처녀가 아기를 데리고 시집을 와도 남편은 그 아이를 자기 자식으로 받아들이니 아이는 그집 성을 받고 자란다네」
「그것 참 관대하군요」
「이곳 사람들은 서양의 자네들처럼 성 문제에 까다롭지를 않다네. 결과적으로 서양인들보다 명랑하지」
「이혼 같은 것은 없나요?」
「거의 없어. 그런 것은 모두 라마승들이 처리하지. 이 나라에서는 아들을 참 좋아하지. 내가 아는 어떤 사내는 한 집안의 세 자매와 결혼을 해서 겨우 아들 하나를 얻었다네.」
「그래 지금도 그 셋을 아내로 거느리고 있나요?」
「그럼. 그것이 법도니까」
「여자들끼리 다투지는 않나요?」
「아니, 인간은 그렇게 키워지면 그걸 당연한 것으로 알게 된다네」
「서양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군요」
「그렇겠지. 여기서는 자기들의 풍습을 알고 있을 뿐이고 서양의 풍습은 모르니까. 그런데서도 여러가지 차이가 나오지」
「그렇겠군요」
「아들이 있는데 그 어머니가 자기를 낳은 친어머니가 아닐 때는 아들과 아버지가 다 그여자와 사는 일까지 있다네」
「허어, 정말 묘한 일도 있군요」
「그래, 하긴 아주 드문 예이기는 하지만」
「일처다부일 경우에는 여자가 살림의 실권을 잡고 있다네. 티벳에서는 여자가 가정 뿐만 아니라 장사를 하는데도 주인 노릇을 하는일이 허다하다네. 이곳 여자들은 모두 아주 활달하다네. 아시아에서도 다른 나라들과 달라. 내외가 거의 없고 그러면서도 남편을 잘 보살피지. 여기는 여자들이 유능하고 자유롭다네」
「서양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요」
「농사를 짓는데도 여자가 일을 잘 한다네. 사실 여자들은 모든 점에서 남자와 다른데가 없지. 남자들도 자기의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보여도 별로 질투를 하는 일이 없다네. 처녀가 혼전에 아이를 낳아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 일처다부의 생활을 어떻게 말썽없이 해 나가나요?」
「한 남편이 아내와 함께 방에 들 때는 제 신발을 문 밖에 벗어 놓는 거야」
나는 웃음이 나왔다. 대사님도 따라 웃으셨다.
「과연 아주 멋진 꾀로군요. 서양이라면 어림도 없지요. 일부다처든 일처다부든 사회가 용납을 안할 거에요. 아내 둘을 갖는 것은 우선 법률 위반이니까요」
「나도 알고 있다네. 나는 젊었을 때 여러나라들을 다녀보았지. 나는 한 지역의 족장(族長) 아들로 태어났지. 그래서 인도에 있는 영국 학교에 보내진 거야. 그 때 요기 한 분을 만나게 됐고, 그 스승이 나에게 생명의 신비를 가르쳐 주셨다네. 그렇게 해서 승원장이 되었고 투모를 비롯한 밀교과학도 대개 다 배웠다네」
「선생님이 투모술에 통달하셨다는 것은 저도 들었습니다」
「인간의 힘은 빛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숨겨져 있지. 터득한 사람만이 그것을 쓸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은 창조주의 지혜야」
대사가 그렇게 말씀하실 때 나를 보는 눈길은 사랑하는 자식을 보는 아버지의 그것이었다.
어느덧 한밤중이 되어 있었다.
「자, 이젠 좀 쉬어야지. 내일 또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그대는 오크 계곡으로 가면서 직접 그런 풍습들을 많이 보게 될 것이야. 거기에서 그대의 스승이 기다리고 있다네. 그러니까 자네는 린마톤을 빨리 떠나야 한다네」
「저는 린마톤이 좋아졌습니다. 여기가 저의 고향같아요」
「그럴테지. 자네가 오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오게나. 린마톤은 자네의 고향으로서 언제나 문을 열어줄 것이야」
그 말씀은 끝없는 정을 담고 있었다. 린포체 대사 같은 대성자에게서 그런 말씀을 듣는 것은 나의 더없는 영광이었다. 나는 엄청난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