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티벳의성자를 찾아서 제5장 본문
제 5장
해발 5천미터나 되는 큐러 고개를 간신히 넘어 한숨 돌리려다가 고개 기슭에서 ‘고상한 사업가들’(마적떼)을 만나 생각지도 않았던 기상천외의 연극까지 벌이는 통에 해발 4천미터인 담탄이라는 지점에 있는 산막에 도착한 것은 해질 무렵이었다.
티벳은 바닥이 평균 해발 3~4천미터의 고원이고 그 둘레를 만년설을 인 준령들이 꽉 에워싸고 있어 대개 해발 5천에서 7천미터에 이르는 고개를 넘어서야 들어갈 수 있는데 그나마도 겨울에는 대부분의 통로가 막히고 만다. 티벳의 총 면적은 약 1백 60만 평방킬로미터이고 그 속에 2백만의 인구가 흩어져 살고 있다. 그 인구 가운데에는 연명하기도 어려울 만큼 가난한 자가 있는가 하면 엄청난 부자도 있어 빈부의 차가 매우 두드러진 것이 하나의 특색이다.
아직은 낮이기는 하지만 8킬로미터 앞의 산허리에 숨어있는 텐첸 승원 배후의 산줄기 너머로 해는 곧 가라앉으려는 참이었다. 그 밤은 산막에서 묵고 다음날 아침에 얀탄에 닿기로 했다. 하인은 곧 불을 피우고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로스트 치킨과 지진 감자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날의 길고 험난한 여정을 우리는 거의 먹지 않고 걸었기 때문에 배가 고파 있었다.
배를 불리고 나서 생각지도 않은 음악을 즐겼다. 하인이 조그만 아코디온을 지니고 있었는데 제법 훌륭한 솜씨였다. 나는 그에게 그의 나라 국가를 켜보라고 했다. 그 노래는 아주 낭만적이고 주위의 풍경에 잘 어울리는 선율이었다.
산막 앞은 깊은 계곡이고 뒤가 산이어서 메아리 소리가 아주 또렷했다. 내가 온 세계 곳곳에서 들은 메아리 소리 중에서도 그곳의 메아리가 가장 또렷했다. 그것은 마치 두 사람이 마주서서 한 쪽 사람의 소리를 반대편 사람이 조금 작은 소리로 몇 박자 사이를 두고 그대로 계속 따라 소리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노래를 즐기다가 11시를 훨씬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무척 고단했던 터라 눕자마자 말뚝처럼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다음날 눈을 뜬 것은 방금 해가 솟아오르는 찰나였다. 특히 이 나라에서는 나날의 해돋이와 해넘이는 어떻게든 빠뜨리지 않고 보도록 해온 나였으나 이 아침의 해돋이는 뭔가 또 새로운 것을 보게 예고하는 것 같았다. 매양 경탄을 금할 수 없는 그 색채의 파노라마는 나를 위해 이 신비에 싸인 나라 티벳이 마련해 놓은 숨은 속내를 살며시 엿보게 해주는 듯 했다.
이 나라에서는 가장 미신적인 것과 가장 높고 심오한 것이 뒤엉켜 있다. 참으로 티벳은 역겹도록 캄캄한 미망과 온갖 기적을 숨을 쉬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최고의 예지가 함께 널려 있다는 야릇한 고장이다.
여기에는 또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이 없는 원시 그대로의 땅, 변화무쌍한 자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 산과 골짜기들이 있다. 큰 것이 있고 작은 것이 있고 폭풍이 있고 고요가 있고 낮의 혹독한 더위가 있고 밤의 무서운 추위가 있다.
그것들이 서로 잇달아 오가며 하나가 끝나는가 하면 또 하나가 시작된다. 그리고 또 사람의 가장 더러운 것과 가장 깨끗한 것, 최악과 최선이 공존한다. 극단과 극단이 뚜렷이 보이는 나라이다.
이런 생각이 나의 마음을 스쳐갔을 때 햇살이 텐첸 승원의 정문을 확 비췄다. 저 멀리서 총가 소리가 길게 꼬리를 끌며 징소리와 어울려 라마승들이 일제히 부르는 ‘옴 마니 받매 흠’을 싣고 흘러 왔다. 게곡을 내려다보면 산들의 그림자가 꼬리를 끌고 간다.
뭔가 모르게 신비로운 기운 그것은 그대로 놀라운 느낌이다. 밤의 한기에 공기는 팽팽히 긴장되어 있고 어디서인지 바람은 그윽한 향기를 날라와 이런 정경에 한층 매혹을 더해준다. 해는 산봉우리들 위를 올라서고 강의 세찬 흐름은 골짜기를 누벼, 그 반짝반짝 눈부신 눈보라는 그대로 무지개이다.
신비로운 음악소리, 라마승들이 진언을 외는 은은한 목소리의 다발과 향내음, 이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땅을 찾은 보람은 충분하다.
승원 안에는 입구의 계곡을 향해 거대한 향로가 높이 놓여 있고 거기에는 선향(線香)의 연기가 끊기는 법이 없다. 해가 높아짐에 따라 그 일대의 전체 모습에서 수천년에 걸쳐 비밀히 간직되어온 그 어떤 신빈의 힘이 계시되기를 고대하는 사람에게 찾아드는 그런 느낌이 피어나는 것이었다.
텐첸, 간도쿠, 얀탄의 세 승원들이 서로 몇 킬로미터씩 떨어져 있다. 얀탄 승원은 셋 중에서는 가장 멀고 그곳이 또 내가 가장 먼저 만나야 할 황모파(黃毛派)의 승원이었다.
우리는 도도히 흐르는 강기슭을 따라 뻗어있는 길로 내려갔다. 골짜기를 불어 올라가는 바람에 실려 물보라가 얼굴에까지 닿는다. 겹겹이 에워싼 산들로 골짜기는 마치 하나의 동굴과 같고 그 속을 바람이 세차게 불어가니 조약돌마저 날려서 얼굴을 때린다.
얼마 안가서 대나무를 다발지어 만든 밧줄로 매단 아슬아슬한 다리에 이르렀다. 다리 위로 올라서자마자 양쪽으로 마구 흔들렸다. 다리라고도 할 수 없는 다리는 양쪽의 거대한 다리 사이를 거품을 물고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 위에 매달려 있다. 대나무 밧줄이 뚝 부러지기만 하면 끝장이다. 끊임없이 바위와 부딪쳐 끓어오르는 그 빙하의 엄청난 분류 속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겨우 맞은 편 강가로 건너가 얀탄 승원까지 3킬로미터가 넘는 험준한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갔다.
승원이 서 있는 바위를 깎아낸 가파른 계단을 올라오는 우리들의 모습은 라마승들에게는 아마도 신기한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그런 일은 그들에게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을 터이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나의 스승이 되는 분도 함께 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승원으로 들어가는 절차를 거치기가 불편할 것 같았다. 그저 린포체 대사가 써주신 편지에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다.
승원에 닿자 마중나온 승려에게 통역을 거쳐 린포체 대사의 다추안 대사 앞으로의 편지를 건넸다. 이때는 나도 이미 ‘인내의 덕’을 충분히 익히고 있었다. 이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격절된 신비의 땅에서는 무슨 일이든 빨리 진행되기를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추안 대사를 만나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사이에 승원을 둘러보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안내를 해주게 된 라마승은 매우 지적인 용모의 노인이었다. 그가 나를 보았을 때의 표정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것은 그야말로 놀라고 의아한 표정이었다. 「이건 대체 어떤 사람일까? 어디서 무얼 하러 왔을까? 린포체 대사는 무엇 때문에 이자를 보냈을까?」-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얀탄 승원의 벽은 한 개가 한 아름은 될 것 같은 거치른 바윗돌로 되어 있다. 보기에도 우람한 이 가람(伽藍) 전체의 무게는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벽두께는 2미터가 넘는다. 수도 없는 불규칙한 바윗돌이 참으로 교묘히 짜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 기술과 구조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하나의 신비였다.
지붕은 두께가 5센티미터가 넘는 돌판으로 되어 있고, 표면은 온통 노란색이었다. 이 승원이 황모파의 승원이기 때문이다. 채색은 노랑 안료를 잔뜩 만들어서 지붕 위에 쏟아붓는다는 것이다. 벽은 힌색인데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채색을 했다는 것이다.
승원 한가운데의 넓은 현관으로부터 1층으로 들어갔다. 사면에 여러 가지 물건을 저장하는 방들이 있고 그 위에는 빙 둘러 조그만 예배소가 여러 개 있는데, 그것들이 그대로 여러 신과 부처를 모시는 제단이 되어 있다. 그 안에는 순금이나 은으로 만든 신불의 상들이 수없이 놓여 있다. 값으로 친다면 짐작도 할 수 없는 금액이다.
가운데의 대법당 위에는 갖가지 기구나 제기들을 보관하는 방들이 있었다. 라마승들이 기거하는 숙사는 본당건물 둘레에 따로 지어져 있었다. 대법당의 문은 린마톤 승원의 그것과 비슷한 거대한 문이고 옆에는 금실 술이 달린 현란한 금색 비단 장막이 묵직히 걸려 있다.
대법당 벽에는 굉장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모두가 수호신과 악마의 그림이다. 왼쪽으로는 ‘생명의 바퀴’가 있는데 표면에는 기도문들과 ‘옴 마니 받메 흠’의 진언이 꽉 새겨져 있다. 기도바퀴는 높이가 3미터 지름이 2미터 가량 된다. 기도바퀴에는 손잡이가 달려있고 한 번 돌릴 때마다 종이 울리게 장치되어 있다. 그 소리는 바로 돌리는 사람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표시라고 한다. 법당의 벽 둘레에는 그보다 작은 기도바퀴들이 여기저기 놓여있고 그 앞을 지나가면서 승려들은 손으로 한 바퀴씩 돌리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공덕이 쌓이는 것이라고 한다.
승원 안에는 굉장한 값어치의 각종 보석을 속에 채운 순금의 신불상과 수도 없는 명주 스카프와 비단 깃발들이 즐비했다. 정말로 돈으로 친다면 이루 계산할 수도 없을 금액일 것이다.
본당 둘레는 죽 복도로 둘러져 있고 복도의 천장은 내 몸의 거의 배가 되는 보기에는 육중한 나무 기둥들로 받쳐져 있으며 그 기둥에는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기다란 명주 깃발들이 걸려있다. 그 그림은 모두가 라마승들이 그린 것이고 내용은 부처들, 성자들, 승원의 수호신들이다.
본당 끝에는 제단이 있고 제단 밑에는 수백개의 금 또는 은으로 만든 버터 등잔들이 놓여 있다. 등잔들은 담당승려들이 항상 채워놓는 야크버터가 끊임없이 타고 있다. 등잔의 불을 꺼트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제단에는 가운데에 옥좌가 있고 옥자의 위는 눈부신 황금의 천개(天蓋)로 덮여 있는데 이 옥좌는 달라이 라마만이 앉는 자리이다.
그 바른쪽 한 단 낮게 사제의 자리가 있고 왼쪽에는 승원장이 앉는 자리가 있다. 사제는 의식을 집전하고 승원장은 설법을 한다.
계단 앞은 고승들의 자리이고 그 뒤로 바닥에서 약 15센티미터 높이의 방석들이 줄줄이 마련되어 있다. 물론 서양에서처럼 옆으로 줄지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세로로 늘어놓여 있고 그 위에 승려들은 각기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내가 구경했을 때에는 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고 틈틈이 시중드는 승려들이 차를 돌아가며 따라주곤 했다. 승려들은 각자가 자기의 찻잔을 지니고 다닌다.
차는 온종일 무시로 마신다고 한다. 그을음으로 시커멓게 된 주방에 어떤 것은 높이가 2미터 가깝고 지름은 1.5미터나 되는 무쇠솥이 몇 개씩 걸려 있는데, 그 솥에서 물을 끓이고 거기에 주로 중국에서 수입해오는 전차(?茶)를 부수어 넣고 또한 냄새가 역한 야크 버터를 듬뿍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밤낮없이 달인 것을 무시로 마시는 것이다. 매년 티벳으로 수입되는 차는 수천톤에 이르며 한 사람이 하루에 마시는 양은 평균 20~30잔이라고 한다. 승원에서는 의식이 진행되는 사이에도 차를 계속 마시는 것 같았다.
법당 중앙에는 총가와 정이 놓여있다. 총가는 길이가 3미터도 넘는다. 징도 지름이 2미터 가까웠다. 총가는 금으로 도금한 받침에 걸쳐져 있고, 징도 역시 도금한 두 기둥 사이에 매달려 있다. 총가는 담당하는 라마승들이 조로 편성되어 한 조가 불기를 마치기 전에 다음조가 뒤를 잇는 식으로 계속 불어 그 우렁찬 저음은 끊임업이 이어지고 사이사이에 징을 쳐서 법당이 그 굉음으로 진동한다. 승려들이 일제히 외우는 ‘옴 마니 받메 흠’의 ‘아-음’과 ‘흐-음’ 소리를 낼 무렵에 이 악기들을 소리내며 거기에 승려들이 흔드는 수백개의 요령소리가 찌렁찌렁하고 간간히 섞인다. 소리를 내는 것은 모두 사제의 지휘에 따르는 것 같았다. 법당에서 의식을 지켜보고 있는데 드디어 한 승려가 와서 나를 다추안 대사의 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방안에 들어서며 놀란 것은 그 분이 아주 젊어보이는 것이었다. 그 분은 힌두스턴어(힌두語)로 말을 걸어오셨다. 힌두어는 나도 웬만큼은 자신이 있다. 다추안 대사의 힌두어는 거의 완벽해서 우리의 대화가 매우 원활했다. 통역을 거치지 않고 대화할 수 있음이 기뻤다. 다추안 대사는 나를 무척 반겨주시는 눈치였다. 아마도 린포체 대사의 편지-티벳어로 적었기 때문에 나는 무슨 말이 적혔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로 내게 호감을 가지시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나라에서 이런 높은 도인들을 찾으면 대개 당하는 냉담한 대접을 나도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추안 대사에게 어떻게 힌두어를 배우셨냐고 물었더니 그분의 스승이 인도의 요기였다고 하셨다. 나도 인도의 요기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일이 있었기에 더욱 친근함을 느꼈다.
「승원에서는 대사님보다 훨씬 연로한 분들이 계시던데 대사님은 그렇게 젊으시면서 어떻게 승원장이 되셨나요?」
「허어, 나는 그들 누구보다도 나이가 많다네, 겉보기엔 그렇지 않겠지만-」
「그러시면 대사님은 물론 신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은 믿지 않으시겠지요?」
「그야 그렇지. 그러나 저 사람들은 그런 것밖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라온 것이라네. 투모를 완전히 익힌 나의 제자들은 그런 의식이나 그릇된 믿음이 그저 마음에 감명을 주는 방편일 뿐임을 알고 있지. 그러나 자네도 알다시피 그렇다고 해서 모두에게 그런 것을 말해줄 수도 없고 말해준들 아직은 알아듣지도 못한다네,
만약 그런 것을 자꾸 말한다면 대개의 라마승들은 거의 모두가 나같은 것은 살려둘 필요가 없다고 할걸세. 말만이 아니라 실지 그런 말을 분별없이 하다가는 살아남지를 못해. 이것이 이 나라의 종교의 현상이라네. 그러니 이 곳은 지금도 마치 서양에서의 스페인의 종교재판시대의 상태에 있지.」
그 분이 기독교 성직자들의 잔혹성을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이 내게는 놀라왔다.
「법률이 없다면 서양에서도 아직 미신이 판을 치고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사실 오늘날에도 일부 남아있는 종교적 광신(狂信)이 많은 현대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서양에서는 교회들이 대개 텅텅 비고 있습니다.
인류는 종교, 국적, 인종, 조직집단, 신조, 사상에 의해 갈래갈래 찢겨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망에 찬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 어리석음의 진상을 깨닫기만 하면 선뜻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인간은 모두 하나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 들어있는 생명이 오직 하나의 대 생명이라는 진리로 사람마다 스스로의 해탈을 이룩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 이것을 전해주고 깨닫게 하는 것만이 모든 인류의 해탈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뭉뚱그려 말한다면 그렇게 되지.」
하며 다추안 대사는 말을 이으셨다.
「여러가지 상념(想念)은 먼저 현재의식에서 제시되고, 제시된 어떤 생각이 현재의식에서 받아들여지면 그것은 이번에는 잠재의식으로 전해져서 거기서 그전부터 자리잡고 그 사람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기성 관념, 신앙, 사상에 의해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혹은 배척되기도 하지.
그러나 그런 것은 참으로는 이해도 아니고 어리석음일 뿐이야. 왜 그렇게 되는가 하면, 그들은 한낱 신앙 또는 관념, 사상을 하나의 실재(實在)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지. 사상이라는 것의 알맹이가 혹은 환경에 따라 혹은 남의 흉내를 냄으로써 마음속에 형성되는 과정을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음이야. 여기서부터 세계의 혼란과 대립이 생겨 이윽고 전쟁의 처참한 양상으로 이어져 나가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저는 온갖 종교와 정신운동의 지도자들이 사물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대중이 듣기 좋아하는 말들을 열을 내어 연설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대중은 거기에 호나호하고 열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지한 군중, 남의 말을 새겨보지도 않는 민중들입니다 .이런 일이 지금 온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종교적 광신에 젖은 지도자들과 극단적인 국가주의, 국수주의가 오늘날 문명의 저주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깨우처 그 어리석음을 열어 해독을 없애야 해요.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몽매한 인류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는 원흉이기 때문입니다.」
「자네 말이 옳네. 그런데 그중에서도 더욱 고약한 것은 그들 스스로는 증오 속에 잠겨 있으면서 이른바 ‘사랑의 신’에게 기도를 하는 것이야. 그런 기도야말로 미신이요, 밍신이요, 우상숭배가 아니겠는가.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깨달을 때 비로소 그들은 사랑의 신인 존재에게 올바로 기도하는 방법을 알 것이야.」
「생명의 분리감 속에서, 사람이 모두 따로따로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그들은 스스로 멋대로 지어낸, 들어줄 턱이 없는 신에게 기도를 드립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 도처의 사람들 틈에 기생하고 있는 거짓 예언자들의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서로 헐뜯고 이간을 일삼고 있는 종교단체마다 자기들의 종교만이 진실한 종교라고 내세우며 자기들의 종교를 바아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무서운 벌이 내린다고 협박을 합니다. 그 때문에 대중은 무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당황하고 두려워합니다. 모두가 미망의 장난입니다.」
여기서 나는 뜻을 같이하는 높은 동지를 또 얻은 것이다. 그이와의 사이에 친밀감이 한층 두터워짐을 느꼈다.
「여기에 머무는 동안은 교사(敎師)의 법의를 읻는 것이 좋겠네」
하며 자주색 법의 한 벌을 내어주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기꺼이 몸에 걸쳤다.
「린포체 대사께서는 자네가 프라나야마와 치병에 달통한 사람이라고 편지에 적어 보내 주셨다네」
하긴 나는 세계 곳곳에서 많은 병자들을 도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힘을 넘어선 ‘큰 힘’의 은총이다. 나는 그렇게 대사에게 말했다.
「그렇고말고.」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무(無)임을 알았을 때 비로소 모든 있음의 전체인 ‘한얼(大靈)’이 우리들 속에 또한 우리를 거쳐 밖으로 나타나시는 것이지.」
다추안 대사는 티벳어로 주석을 단 한 권의 책을 꺼내어 펼치더니 적혀있는 말을 읽으셨다. 그것은,
“생명을 얻으려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제 생명을 나를 위해 버리려는 자는 그것을 얻을 것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이었다.
「이 책에는 위대한 인류의 스승들의 말씀이 모두 실려있는데 이 말씀들이 그대로 참임을 나는 알았다네.」
그리고는 대사는 갑자기 화제를 돌리셨다.
「그런데 자네는 투모(Tumo)를 배우려고 여기에 왔지? 그것은 자연의 힘과 열을 통제하는 법이지. 수행기간을 너무 짧게 잡았는데 이것은 신비과학 가운데서도 특히 어려운 것의 하나라네. 이것은 ‘느낌’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야.」
「네. 저의 시간은 아주 제한되어 있습니다만 저는 투모를 바르게 이해만 할 수 있다면 실지로 그 법에 능숙해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이더라도 잘 배우면 조금은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겠군. 곧 시작하지.」
대사는 나를 내실로 데리고 가서 아주 푹신한 의자에 앉혔다.
「자-」하고 대사는 정색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대생명만이 살아있는 것이며 육체가 대생명에서 떨어져 제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대에게는 이미 단순한 하나의 관념이 아닐 것이다. 대생명에만 의식이 있는 것이며 육체에서 나타나는 의식은 참으로는 신경계통 및 혈관계통을 거쳐 스며있는 대생명일 뿐이다.」
인체에 대한 대사의 완벽한 해부학적 지식이 놀라왔다.나는 나의 소감을 솔직히 말했다.
「투모를 수련하는 데는 그 지식이 필요하다.」
「무릇 모든 형태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不可視) 질료(質料)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이 불가시의 원질이 일체의 모양있는 것의 바탕이다. 이것을 떠난 어떤 형태도 없는 것이다. 이 불가시의 질료는 그것에 대한 의식을 바꿈으로서 우리가 마음에 떠올린 모양으로 그것이 엉기어 굳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그 과정을 반대로 뒤집으면 어떤 형태를 이룬 고체를 원질인 불가시의 질료로 분해되게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은 의식의 훈련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감정이 끼어들어 의식의 방향을 빗나가게 하는데에 난점이 있는 것이다.」
나는 주의를 집중해서 대사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대가 환자의 병을 다스릴 때 환자 본인의 감정과 공포가 치유 과정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네, 너무나 잘 압니다. 그것을 넘어서는데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지요.」
「그렇다. 어떤 질병이든, 심인성(心因性)이든 체인성(體因性)이든 그 원인과 치료를 생각함에 있어 우리는 질료가 우리의 상념과 감정을 감응하는 가소성(可塑性)인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투모를 배우는데 있어서 이것은 더욱 중요하다. 마음의 작용을 앎으로써 그대는 그릇된 마음씀의 결과인 어떤 상태라도 해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자 더위 추위-차고 더움이란 ‘실제’에는 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말하자면 하나의 상태이고 그것은 사람의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만물의 바탕인 얼(靈)은 더위 추위에는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 더위와 추위를 동시에 내면 둘 다 없어지고 만다.」
「알겠습니다.」
「그것은 숨쉬기(呼吸法)에 따라 나타낼 수 있는데 숨을 쉬면서 ‘옴’-바르게는 ‘아음’-의 소리의 파동을 쓰는 것이다. 이소리의 진동이 온 몸에 퍼져 울리게 한다. 그러는 사이에 그대는 주관적 상태 곧 깊은 명상의 초월상태에 들어가게 되고, 그 상태 속에서 사대(四大: 地, 水, 火, 風)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열(熱) 그자체도 제어하게 되는 것이다.」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뿐이 아니다. ‘아음’의 창조음을 반복하는 사이에 창조와 파괴 두 힘을 의식하게 된다. 이 둘은 본래 하나이며 따로따로의 힘이 아니다. 일체의 만들어진 것 곧 피조물인 광물, 식물, 동물, 인간계의 모든 모양있는 것 속에서 이 ‘아음’의 소리가 울리고 있음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은 만물의 바탕인 울림이고 서로 다른 것은 다만 파장일 뿐이다.
창조력이 그대 자신의 의식 속에 있음을 뚜렷이 알면서 ‘아음’을 소리내면 에텔의 파동과 소리의 파동이 어울리면서 그대의 상념은 전자파가 되고 그것이 가시(可視), 불가시(不可視)의 질료(質料)를 제어하는 요인이 된다. 음파란 질량이 있는 질료의 파동을 말한다. 따라서 그것으로 저울을 움직여 올라가게도 내려가게도 할 수 있다. 저울이란 곧 불가시의 것에서 가시의 것에 이르기까지의 영역 전체를 말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는 단절과 분리가 없으며 분리는 겉보기에 불과하다. 의식 속의 창조의 힘을 내보내는 상념은 에텔 속에서 보이지 않는 파동을 보내고, 음파가 그것의 파장을 낮추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물질화(物質化)이고 그 반대가 ‘물질의 분해’이다. 알겠는가?」
「네, 종교의 의식(儀式)을 따라 어떤 진언이나 노래나 기원의 말등을 읊은 사람들이 대개 자기가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거의 모르고 있지요. 조화로운 파동이 지니는 치유력이 심신에 미치는 효과를 알았습니다. 육체는 바로 마음이 지어놓은 것이니까요.」
「효과를 내는 것은 소리의 색깔 곧 음색(音色)이다. 색은 육체에 배어있는 유체(幽體)와 영체(靈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잘 이해하고 나서 ‘생명의 호흡’을 하면서 바르게 ‘아음’을 소리내면 육체의 모든 세포는 조화를 이루고 젊음을 유지한다. 모든 인간이 이것을 알게 되면 위대한 문명이 이룩ㄱ될 것이다.
힘은 오직 ‘하나’이며 완전한 ‘온(全)’이요, ‘두루 한결같이 있음’이요,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의 근원인 ‘한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곧 영원이다. ‘한결같이 있는 것’ 속에는 ‘시간’이라는 것이없다. ‘과거’와 ‘미래’는 인간의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다.
그럼 내가 시키는대로 숨을 쉬고 내쉬는 숨과 더불어 ‘아음’을 소리내어보라. 다만 자연스럽게 평상시대로 소리를 내라. 그러면 ‘A조(A調)’가 될 것이다.」
나는 대사가 시키는대로 숨을 쉬었다. 여기서 그 호흡법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이니시에이션(initiation)--"이니시에이션Initiation"이란 무엇인가?
멘탈체mental body는 쉬운 말로 하위 지성체라고 할 수 있고,
아스트랄체는 감정체emotional body 혹은 정서체라고 할 수 있다.
육체라고 말할 때는 살과 뼈로 이루어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육체와 그 육체의 기초를 이루면서
실질적으로 진정한 육체라고 할 수 있는 에텔체etheric body를 포함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차크라(chakra를 말할 때는, 에텔체를 구성하고 있는 기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영적 깨달음, 영적 완성, 혹은 영적 진화라고 할 때,
실질적인 목표는 인성자아personality인 하위 자아lower self를 상위 자아higher self인 영혼soul과 합일시키고,
그 후에 영혼을 모나드Monad, 즉 순수영pure spirit과 합일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
인간의 영적 진화가 가능해서
최종적으로 순수영으로서 신성의 세 가지측면을 반영할 수 있는 완성된 존재,
즉 마스터Master가 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하위 자아 안에 상위 자아의 속성들이 반영되어 있고,
다시 그 상위 자아 안에는 모나드의 속성들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위 자아를 구성하고 있는 육체/에텔체, 아스트랄체, 멘탈체를 구성하고 있는 질료들이
충분히 정화되어 순수한 빛을 방사하기 시작하면서
상위 자아의 에너지가 의식적으로 감지되기 시작한다.
그 전까지는 상위 자아의 에너지는 육체적 차원에 존재하는 하위 자아가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무의식적으로 장구한 세월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이니시에이션은 결국 각각의 체들이 정화되는 정도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고,
세 가지 체들이 온전히 영혼의 에너지와 공명하기 시작할 때가 제 3 이니시에이션인데,
그 때 인성자아는 영혼과 합일하고,
최종적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혼이 되는데,
바로 여기에 동서고금의 모든 영적 가르침의 가장 핵심적 비밀이 숨겨져 있다.
영혼조차 일정한 변형과 진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영혼이야말로 진정으로 모나드,
즉 순수영을 감지할 수 있는 새로운 메카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을 거치지 않은 사람에게는 밝히지 않게 되어 있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차원이 다른 기쁨이 감도는 고요한 의식 상태에 들었다.
「자, 숨을 내쉬면서 ‘아음’을 소리내라. 그 소리가 머리에서 발끝으로 흘러간다. 그 울림을 느끼면 대생명의 흐름을 의식하면서 그것을 온 몸으로 내보내라. 그러면 몸이 타오르는 느낌이 날 것이다. 그 열감(熱疳)이 바탕이 된다. 알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실지로 나의 몸은 불이 붙는 것 같았다.
「그렇군요. ‘느낌’이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여러번 연습을 한 뒤에 나는 정식으로 시도할 기회를 얻었다.
며칠이지나 아침에 승원을 나서 산에 올랐다. 종일을 올라 저녁 늦게 설선(雪線)에 이르렀다. 해가 지자 기온은 단번에 영하로 내려가서 얼어붙기 시작했다. 나는 투모에 숙달해 있는 다추안 대사의 직제자 두 사람 사이에 끼어앉아 배운대로 해나갔다. 굉장한 열이 나의 몸에서 나와 둘레의 눈이 녹으면서 작은 시내가 되어 흘러내려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만의 힘으로 된 것인지 또는 양옆의 선배들의 힘에 의한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아니, 참 잘해냈네. 이 두사람은 다만 자네를 조금 부추기도록 앉힌 것 뿐이야.」하고 다추안 대사는 확인해주었다.
정말 기뻤다. 그러나 투모를 완전히 통달하려면 적어도 몇 년의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오래전부터 염원해온 수련이기에 그 만큼이라도 배울 수 있었음에 나느 만족했다. 그로부터 열흘 이상을 더욱 연습했다.
그러는 사이에 얀탄 승원의 연례 제일이 돌아왔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대사의 열통제의 놀라운 시법을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다추안 대사와 그이의 직제자 둘이 이글거리는 숯불 속에서 백열되어 있는 쇠막대 토막을 집어내어 각각 그것을 입 속에 넣었다. 입 속의 물기가 지글지글 끓는 소리가 뚜렷이 들렸다. 그들이 얼마후에 뱉어낸 것을 보니 쇠막대 토막은 동그랗게 고리처럼 말려있기까지 했다. 상처는 물론 덴 흔적 하나도 없었다. 손을 가까이 가져갈 수도 없이 백열된 쇠토막이었는데 말이다.
그 연례 제전에는 다른 승원의 승려들도 많이 오고 또 근방의 마을 주민들이 모두 떼지어 와서는 여러 가지 의식과 라마승들의 종교무용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뒤에 다추안 대사는 또 다른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이는 두툼한 강철 조각을 하나 집어들더니 마치 노끈을 매듭짓듯이 그 강철 토막을 매어 매듭을 지어놓은 것이었다. 그이는 ‘비물질화(非物質化)’의 원리로 그렇게 한다는 말씀이었다. 대사의 손 안에서 강철토막은 노끈처럼 물렁물렁해지는 것이다.
매듭이 지어진 그 강철조각을 나는 손에 쥐고 힘껏 잡아당겨 보았다. 물론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다추안 대사는 매듭지은 강철조각을 다시 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매듭을 풀어 반듯하게 펴버린 것이다.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차원까지 가려면 몇해의 수련이 있어야 하고 몇해를 수련한다고 해도 성공하는 사람은 그저 몇몇밖에 안된다. 아무튼 이런 사실을 내가 내 눈으로 봄으로서 불가능응로 보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확신을 다질 수가 있었다.
열의 제어는 추위를 다루는 일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통달하는 데는 훨씬 긴 수련이 필요하다. 열을 제어할 수 있게 되는데는 의식상태가 가장 중요하며, 먼저 깊은 주관적 의식상태에 들어 공포와 감정의 동요를 완전히 극복하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제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서양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불가능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현실로 그것을 해내는 광경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지로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증거는 남아 있다. 그러므로 자기가 모른다고 해서 부정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예수가 엄청난 사람의 무리들을 배불리 먹였고, 물위를 걸었으며,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고, 병자를 낫게 했음을 설하면서도 다음 순간에는 그런 일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는 누구보다도 위대한 대사이고 우리가 아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 큰 일을 몇 번씩 해 보여주셨던 것이다. 그 당시 존재했던 힘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대로 존속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힘은 영원히 편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약 물질이 확고부동하다는 생각과 자기에게는 힘이 없다는 생각을 버릴 수만 있다면 우리는 놀라운 일을 할 수가 있다. 예수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않고는 ‘나는 이런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대들은 깨닫기만 하면 나보다 더 큰일을 하리라’고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예수는 믿음만 있으면 산도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가 말씀하신 믿음이란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먼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바이블을 읽게 되었는데 마가복음 11장 23절에서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을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라는 구절을 보았다.
집 앞에 언덕이 있어 바다의 경치를 볼 수 없는 것이 불만이던 그녀는 당장 창가로 가서 언덕을 보고 말했다.-「언덕 너는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언덕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그녀는 화가나서 「그러면 그렇지. 될게 뭐야!」하고 투덜거렸다는 것이다.
세계 도처에서 이른바 신앙에 의한 놀라운 치병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신앙을 매개로 하여 이른바 불치의 병이 낫는 일이 수없이 있다. 나의 능력으로 나았다고 하는 기적적 치유만도 수백건이 된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니며 안에 있는 아버지의 영이 일하시는 것’이라고 한 예수의 말을 잊지 않는다. 이 ‘아버지’인 대생명이 병을 앓는 자의 안에도 그리고 고쳐주려는 자의 안에도 한결같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저 상투적인 생각과 말뿐이어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온갖 관념이나 사상을 초월하고 마음을 초월하여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체험이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 속에 있는 것은 그저 대 생명에 대한 하나의 사상, 하나의 생각 또는 믿음일 뿐이고 그런 것은 대생명 그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이라는 말은 신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해 마음 속에서 만들어낸 것은 하나님 그이는 아닌 것이다. ‘참’을 뒤덮는 온갖 말, 사상, 관념, 신앙 따위의 헛됨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참은 드러난다.
지나가버린 순간을 되찾으려한들 소용이 없다. 지나간 시간은 다만 하나의 기억일 뿐, 그것은 ‘살아있는 지금’은 아니다. ‘지금’이란 ‘생명이 싱싱하게 살아 있음’이요, ‘그것’은 그대로 영원이다. 사람은 ‘그것’을 모양으로 그리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만 ‘그것’이 있음을 알 뿐이다.
‘그것’이 다시 올 것을 상상하고 기다리는 것은 ‘내일’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그것’은 두 번오는 것이 아니다. ‘내일’은 언제나 ‘내일’이지 않은가! ‘되자’고 하는 것은, 한결같이 여기에 지금 이미 있는 것을 어딘가 다른 곳에서 찾아 헤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것’을 몸소 드러내 보일 수 있을 턱이 없다. ‘그것’은 ‘그것’을 사는 것으로 체험될 뿐이다.
‘그것’으로 ‘지금’ 되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한결같이 이미 있는 것 속에서 순간순간을 온전히 살면 되는 것이다. ‘사랑’-이것만이 실제다-을 실지로 나타냄으로써 순간순간 ‘그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 순간순간에는 이미 옳음(正)도 없고 그름도 없으며, 선(善)도 없고, 악(惡)도 없으며,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으며, 오직 영원한 ‘지금’이 있을 뿐이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 그 중간에 끼어들어 장애가 되는 ‘나’는 녹여 없애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참’이 참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생명이요. 사랑이다. 사랑만이 참으로 있는 것’이다.
이웃을 나 스스로처럼 사랑하려면 이웃사람 안에 있는 나의 참 나를 사랑해야 하는 것. 참 있음에는 나와 남의 분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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