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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 9 장 본문

영성수행 비전/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 9 장

柏道 2021. 11. 15. 14:33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 9 장

 

9

우리는 매일 학습을 계속했고 마침내 나의 마음은 수정처럼 투명해졌다. 나날이 나의 힘은 강해져 갔다. 감도는 분위기와 공기는 그저 맑고 고요하기만 했으며 우리들 사이에는 어떤 조화롭지 못한 생각이나 감정도 없었다. 잇따라 학습에 열중하기 때문에 조금 피로를 느낄 때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과로하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과로는 오직 진보를 늦출 뿐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나는 혼자서도 수련을 할 수 있는 데까지 왔다. 나의 훈련이 끝날때까지는 나 스스로가 자기 훈련을 할 수 있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린포체 대사가 어떤 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린포체 대사는 다추안 대사와 더불어 얀탄 승원으로부터, 머라파 대사는 건사카 승원으로부터, 토운라 대사는 다코우 승원으로부터 오셨으며, 나를 합하여 모두 8명이 모였다. 이만큼의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어떤 일이든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린포체 대사가 뭔가 추안타파 영매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그 날 저녁에는 매우 뜻있는 모임이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그런 예정이 세워져 있었지만 나를 놀라게 해주려고 나에게는 아무말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말로 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몇 달에 걸친 맹렬한 훈련 덕분에 그런 면에서는 이미 능통하다고 할만 했다.

그 날 저녁식사는 특별히 승원장의 거실에 차려졌다. 승원장실은 상당히 큰 방이고 가운데에 기다란 탁자가 있어 그 둘레에 우리와 또한 승원장의 제자들이 함께 앉았다. 정말 훌륭한 식탁이었다.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 사이에서 허물없고 활발한 대화가 오갔다. 티벳말로 하는 대화가 있고, 힌두어의 대화가 있고, 또 영어로 하는 대화도 있었다. 나는 영어와 힌두어는 원래 잘 알고 있었고 티벳말도 기회있을 때마다 이곳 승원장이 알뜰이 가르쳐주어 상당히 능숙해지고 있었다. 승원장은 정말 훌륭한 어학 교사이고 말을 구성하는 쉬운 방법을 전부 알고 있었다.

티벳 사람들은 되도록 많은 말을 요리조리 꾸며서 까다롭게 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 나올 때는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읽기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나라의 말을 배우는데 있어서는 매우 미묘하고 중요한 점이다. 왜냐하면 외국어를 배우는 데는 바로 그 말로 생각을 하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을 배우려면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또한 마음을 읽으려면 상대방의 말을 하나하나 듣고 있어서는 안된다.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이쪽의 수신이 일그러져서 마음을 정확하게 읽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활발한 대화가 오간 끝에 침묵이 찾아들었을 때 나의 스승이 입을 열었다. 그 어조는 상당히 준엄했고, 오늘날의 이른바 종교적 은둔을 가차없이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오늘날 은둔자라는 사람들은 모두가 쓸모없고 미망의 늪에서 헤매는 무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된 것은 석가나 머라레파의 가르침을 라마승들이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겉치례에 불과한 의식으로 길들여져셔 인간 내면의 힘들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다.

전에는 위대한 스승들이 꼭 알맞은 제자만을 골라 어느 기간동안 훈련을 시키고 그것이 끝나면 그들은 마음을 떠나 홀로 독거하면서 큰 깨달음이 철저하기를 추구하고 아울러 티벳 요가의 힘을 개발하기에 힘썼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요가의 참된 지식을 전혀 갖지 못한 무리들 뿐이다.

이런 승려들이 무턱대고 은둔 생활에 들어가, 지금처럼 어리석게도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깎아내리는 데에 그 생명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은둔 따위는 단지 착각에서 오는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요?내가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 라마승의 수행에서는 일생의 한 기간을 유폐된 상태에서 보내야 하게 되어 있다네. 그러나 참된 수련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짓은 전혀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지. 그 유폐 기간은 3일이나 3주간이나 3개월이나 3년간이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

처음에는 3일 동안만 유폐되고 그 뒤는 3개월 또는 3년간 계속된다네. 자네도 보았듯이 산에는 많은 토굴들이 있는데 그 속에 들어갔다가 일생 동안을 그대로 유폐 상태로 마칠 결심을 했을 때는 일생을 유폐되기 전에 한 번만은 밖으로 나오는 것이 허락되지.

그러나 일단 마음먹고 들어가 유폐되고 나면 그 뒤는 완전히 암흑 속에 홀로 앉아 있게 되며 그 마음 또한 암흑이 되고 말지. 토굴 한 구석에는 배설을 위한 홈이 파여 있고 또 한구석에는 밖으로 향하는 구멍이 나 있지만 그것은 돌로 완전히 가려져 있고 돌은 밖에서만 움직이게 되어 있다네. 그 돌을 비껴놓고 매일 차와 참파를 넣어주는데 그것을 받을 때는 반드시 장갑을 끼고 손을 내밀어야 하게 되어 있어. 왜냐하면 안에 들어간 사람은 몸 어디에도 빛이 닿아서는 안되는 계율이 있기 때문이야.

그러나 이렇게 유폐 상태에 든 사람은 대부분 오래지 않아 정신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흔히 있지. 그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완전히 폐인이 되고 마는 것이지. 결국 별다른 수련도 되지 않고 또한 티벳 요가의 술법에 대해서도 무지로 끝나고마니 그 생애는 전혀 낭비이고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네

그렇지만 산 속이나 한적한 곳에 은둔하여 인간 본래의 힘을 바르게 개발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 않습니까?하고 나는 감히 지적했다.

그야 그렇지. 그러나 그런 사람은 먼저 참된 요기인 스승의 훈련을 받는다네. 그런데 겉치례에 불과한 의식에 대하여 얼마간의 지식을 가지고 승원에서 나오는 자들은 하근기(下根氣)인 사람들이어서 은둔 생활에서 비정상적인 것 밖에는 해내지 못한다네. 그들은 진정한 스승들이 해오신 수행을 모독하는 것이야. 따라서 자기 자신의 영적인 힘을 개발할 수는 없지

이 때 린포체 대사가 입을 여셨다. 그이가 얼마 전부터 눈을 감고 명상 상태에 들어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이의 음성은 잔잔하고도 상쾌했다.

여러분, 나는 종교나 진리의 탐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지만 조직된 독단적 교리, 그 꾸며내어진 의식들, 기도와 영창, 만트라(嗔言)를 되풀이 외우기, 바가바드 기타나 성서의 말을 인용하기, 그런 것은 종교가 아니다.

자기를 라마교도라고 하고, 불교도라 하고, 기독교도라 하고, 힌두교도라 하며, 혹은 어떤 의식에 참가하는 것 따위로 진리가 발견되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산산조각으로 분리된 것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은 조직된 신앙의 그물 속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을 둔화시키는 마약이며, 현실 도피의 온상이며, 그로하여 사람의 마음을 멍청하게 하고 약하게 만들어버린다

모두가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었다. 그것은 린포체 대사가 이렇게 말씀하실 때 그 내용이야말로 신의 예지임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사께서는 말씀을 이었다.
여러분은 온갖 권위, 승려, 그리고 이른바 구루()등의 조직 전체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스스로 규명하고 탐구하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종하고 있다. 여러분의 할아버지들이 어떤 의식을 행해 왔으니까라든가, 따라서 여러분도 그대로 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울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따위는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가짜를 꿰뚫어보지도 못하고 그저 두려워하는 것은 여러분이 뭔가 다른 것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짜를 모르는 한 진짜를 알 수 있을 턱이 없다.

신에 대해 말하고, 신의 이름을 천번 만번 불러본들 진리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의 온갖 잡다한 편견이나 공포 속에 갇히어 있는 한, 진리는 여러분에게서 멀리 숨어 있으리라. 동양, 서양을 막론하고 이 조직된 종교의 오류가 판을 치는 원인은 인간 자신의 무지에 있다. 인간이 권위를 찾는 것도 인간이 혼란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린포체 대사는 우리를 뭔가 중요한 것에 눈뜨게 하려 하시는 것 같았다.

대사는 계속하였다.
종교에서든 또는 정치에서든 일단 그와 같이 권위를 만들어내면, 진리가 찾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안고 그 지시에 순종해 나간다. 여러분이 남의 권위에 의지하여 실재에 대하여 배워 알았다고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여전히 무지인 채로 있다. 실재는 말로 알아지고 배워지는 것이 아닌데도 어떻게 한낱 환상인 권위를 통하여 그것을 찾아낼 수가 있겠는가. 권위를 추구하는 한 여러분은 그저 하나의 모방자가 될 뿐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고 만다.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것도 신념을 잃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눈에 뜨이는 모든 경전을 읽고, 그저 모순을 낳기만 하는 온갖 사상과 관념을 추구하며, 그리하여 모방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은 줄고, 자기의 한 평생을 그저 남의 생각과 말을 복사해 놓은 잡기장이 되는 것으로 끝내고 만다.

이것은 승원장에 대한 교훈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또 나에 대한 교훈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아니 사실은 이 자리의 모든 사람이 이 말씀으로부터 문을 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하고 대사는 말씀을 이으셨다.

여러분은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가르쳐지고 길들여져 왔다. 스스로 생각하도록은 가르쳐지지 않았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의 혼란의 원인을 발견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에게 믿음을 가져야 한다. 가짜와 진짜를 분명히 꿰뚫어보고 확실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것을 모른다. 왜 그렇게 되었냐 하면, 자기 자신이 지니고 있는 온갖 잡다한 신앙이나, 관념, 사상을 어떻게 자기가 끌어들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추구하여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혼란하여 허둥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우파니샤드나 바가바다 기타나 성서 따위의 책을 읽는 것으로 진리가 찾아진다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 자신이 혼란되어 있는데 그런 책에서 진리를 읽어낼 수가 있다고 여러분은 생각하는가? 여러분은 자기가 읽은 것을 그저 자기의 혼란이나 취향, 편견, 자기 한정 등에 맞추어 번역하고 있을 뿐이다.

진리는 자기 자신, 자기의 편견, 자신의 사상, 사고 방식, 신앙을 분명히 알았을 때 비로소 열리는 것이다. 진리는 진리쪽에서 찾아오는 것이지 이쪽에서 진리를 향하여 갈 필요가 없다. 진리는 영원히 있는 실재이며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진리를 향하여 나가고 있다고 여러분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자기 한정의 투영에 불과하다. 오래지 않아 그것은 조직된 종교라는 자기 최면의 한 과정이 될 뿐이다. 진리에는 마지막 결론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여러분이 자아의 마음으로 꾸며낸 것에서 자기 자신을 풀어 놓았을 때 비로소 여러분은 마음이 지어낸 것이 아닌 그 무엇을 발견한다. 여러분이 실재를 발견하기 전에 그 마음이 제멋대로 허상을 만들어 내는 것을 그쳐야 한다. 그렇게 하면 조직된 종교에 말려드는 일도 없어지고 남들을 비난하거나 책망하는 일도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무신론자로 타락하는 일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신론도 신앙의 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참 나를 발견한다면 그것에 대한 사상을 만들어 내어서는 안된다. 참 나는 쪼개어 남의 속에 넣어줄 수도 없다. 실재는 쪼개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참을 감추고 있는 (小我)’를 남김없이 규명함으로서만 가짜가 사라진다. 그 때 비로소 신의 영광, 신의 사랑, 신의 예지와 힘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그것은 처음부터 영원 절대의 현재였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사는 눈을 뜨셨다. 그리고 나와 승원장을 지그시 바라보셨다.

권력이나 권위에 의하여 어떤 것이 얻어지든 권위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추구해서는 진실한 것을 잃고 만다. 진실한 것만 가지면 일체만물이 내 것이 된다. 여러분이 참인 것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 참인 것이 여러분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실재이어라!’하고 말하는 것은 여러분이 과거가 아니고 미래가 아니고 지금에 있어서만 참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참인 것이 아니면 미래에도 또한 참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에서 참인 것은 실현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만월이다. 산줄기 배후에서 점점 솟아오르고 있다. 처음에는 불그레한 빛이었다가 높이 오르면서 은빛으로 바뀌고, 흰빛이 되고, 말할 수 없는 밝음이 된다. 산들의 그림자도 이제는 계곡 밑으로 떨어지고, 쵸모리하리의 골짜기가 달의 맑은 은빛을 반사한다. 공기는 고요하면서 맑고 상쾌하다. 전혀 그늘없는 밤의, 이또한 전혀 그늘없는 경관이다. 뭔지 모르게 몸 둘레에 옛 대사들이 와 계시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고양된 기대와도 같았다.

그때 린포체 대사가 침묵을 깨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제 완전한 동지가 되었고 가장 맑고 깨끗한 분위기가 되었다. 이제 우리들의 다정한 벗들이 와주실 조건이 갖추어졌다. 우리는 전에 나의 방에서 모였던 적이 있지만 그때는 여기에 있는 나의 아들(제자를 말함)과 승원장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우리 모두가 한 자리에 있고 오늘밤 물질화 현상을 실현하는데 완벽한 준비가 된 것이다. 우리의 벗들이 오셔서 생생한 목소리로 말씀해 주시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닌가

대사가 나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죽음이 실재 아니라는 것, 그것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이제부터 자네는 체험하게 된다. 죽음의 비실재를 우리가 납득하기 위하여 실증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여러분이 이땅 위에서 우정을 즐기는 것이 자연인 것처럼, 우리가 또 불가시의 세계에 있는 벗들과의 교류를 즐기는 것도 자연이라는 말이다. 육체를 벗어난 분들만이 아니라 아직도 육체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분들도 이자리에 나타나시게 되어 있다.

그이는 다시 나를 응시하시면서
이것은 자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야
그렇지만도 않지요, 전에도 대사님이 제 곁으로 와 계신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하고 나는 말했다.

그렇지, 그랬었지. 그러나 내가 현세의 자네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세계의 벗들과 만나 서로 이야기하는 것은 자네로서는 여태까지 없었던 경험이겠지.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되겠군요.하고 나는 자못 높아진 억양으로 말했다. 어서 그 실험을 시작하기를 바랬다. 승원장실의 문은 밖의 발코니를 거쳐 계곡을 눈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 문을 린포체 대사가 열어 놓았다.

그런데 물질화는 어두운 곳에서만 되는 것이 아닙니까?하고 나는 물어보았다.
오오, 아니야. 우리에게는 어둠 같은 것은 필요없다네. 달빛 속에서도 마치 대낮처럼 분명히 보인다네

서양에서는 물질화 할 때는 어둠 속이 아니면 안 되게 되어 있지요.
그렇지. 그것은 실험을 위한 조건을 갖추기가 불완전하고 또 그 방법도 서툴기 때문이야.

그 이상 나는 아무말도 안했다. 여태까지 보아온 모든 불가사의한 힘은 평범한 마음으로는 이해를 할 수가 없음을 알고 있었고, 또한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나 린포체 대사의 모습에는 경험에 뒷받침된 확신이 엿보였다. 지금도 그이는 이제부터 하는 일을 샅샅이 알고 준비를 시작하신 것이다. 대사는 먼저 탁자를 치우게 했다. 그리고는 우리들을 그의 생각대로 배치했다.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하여는 자력(磁力)의 흐름이 아무것에도 방해되지 않고 엑토플라즘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아직 현재에 있는 사람들이나 혹은 현계에 가까운 사람들은 비교적 쉽게 모습을 나타낼 수 있지만, 현계의 영향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분들은 우리들의 육체적 감각으로도 그 모습과 목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유체의 진동수를 낮추는 매체가 되는 질료가 필요한 것이야하고 말씀하셨다.

그이는 우리들을 이렇게 자리잡게 했다-대사 바른쪽에 나를 앉히고, 왼쪽에 승원장을 앉히고, 대사의 맞은편에 나의 스승, 그 바른쪽에 다추안 대사, 왼쪽에는 머라파 대사, 그리고 토운라 대사와 추안타파를 그 사이에 마주앉혔다. 그리고는 대사는 방바닥에 백묵으로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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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 [린포체 대사] O [승원장]
+
|
|
|
O
|
|
|
+
O [머라파 대사] [나의 스승] O [다추안 대사]

( 그림을 옮기기가 안 되어 이렇게라도 써 봅니다. O[]O[다추안 대사]
중심의 O을 통해 사선으로 잇고, O[머라파 대사]O[승원장]을 중심의 O
통해 또한 사선으로 이은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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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의 네 곳이 양극이 되는 것이다. 여기 +는 양극을 나타내며 는 음극을 나타낸다. 마치 전기의 음극과 양극처럼 어느 한 쪽이 없으면 상대적인 힘이 나오지 않는다. 원래 전기는 대기권과 우리들의 주위에 있는 것이며 그것은 운성(雲星)의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음양의 두 극이 결합하면 연결이 되고 그리하여 상대 세계에서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는 중심에 그린 원을 짚으면서
여기가 말하자면 이제부터의 물질화가 비롯되는 원점이고 이 속에서 엑토플라즘이 형성되어 퍼져나가서 온 방안을 감싸게 된다.

, 이제 우리들이 할 준비가 다 되면 영계의 화학자들이 와서 그들 나름의 독특한 방식으로 물질화가 이루어지기에 알맞게 엑토플라즘의 농도를 조정한다.

이 질료, 거치른 이 질료는 우리들의 자력체에서 나온다. 그것은 매우 거칠고 짙으며 그대로는 쓸 수가 없지만 유계의 화학자들이 알맞게 조성을 하면 그때까지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오고 또한 그 목소리가 들리게 된다.

물론 엑토플라즘은 지금까지 말한 것 이상으로 여러가지 미묘한 성질이 있지만 아무튼 그것은 아직은 이 세계에서는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하나의 화학현상이다. 서양의 화학자들을 물질의 구조를 탐구하고 있으며, 일체의 모양 있는 것, 아니 우주의 모든 전자 구조 배후에는 전자력이 존재한다는 사실까지는 파악하고 있다.

이 전자력이 높아지거나 낮아짐으로써 가장 미묘한 유질(類質)에서 가잘 조잡한 물질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농도의 질료가 생기는 것이며 더구나 그 각각의 질료 사이에는 아무런 분리도 없다. 한 성질의 질료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는 구분이 없는 것이며 전체가 하나의 완전히 어우러진 불가분의 질료인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본다면, 별로 좋은 예는 아니겠지만, 가령 송진에 열을 가하면 그 고체로서의 성질이 차츰 없어지면서 끝내 액체가 된다. 그러나 고체에서 액체의 상태로 변하는 경계를 분명히 볼 수는 없다. 더욱 열을 가해 나가면 기체 상태가 되는데 고체 그리고 액체 상태에서 불가시의 기체 상태로 변하는 경계를 분명히 가려낼 수는 있다.

눈에 보이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아가 그 위의 상태에까지 이르는데는 어떠한 구분도 할 수가 없으며, 또한 보이지 않는 저 너머에서 보이는 것에 이르기까지도 아무런 분리가 없다. 이 변화의 안팎을 통하여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인 불변의 질료이며 그것은 항상 안정되어 있다.

이런 모든 것 저쪽에 있고 또한 그 속에 있는 것이 위대한 상상 작용(想像作用)이며, 그것이 이 근본 질료를 구사하여 무릇 형태 있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모든 형태는 이 근본 질료로 환원되어 안정을 되찾는다. 이것을 우리는 창조라 하고 또한 붕괴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참으로는 하나이며 따로따로의 힘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이 미지의 위대한 창조되지 않은 것만이 실은 창조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위대한 창조되지 않은 것이 여러분 속에 실존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 상대적인 것은 모두 인식할 수가 있지만 그것 자신의 모습은 인식할 수가 없다.

여러분은 의식(意識)이 무엇인지 규명하지는 못한다.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해보라. 그러면 의식은 의식 자신에게 상대하는 것은 항상 식별(識別)하지만, 의식이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에 대해 상대적인 것들을 모두 남김없이 알고 이해했을 때, 그때에야말로 그 알려지지 않은 것을 경험할 수가 있다.

그것은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알아진 것은 실재가 아니며, ‘알아지지 않은 것이야말로 실재인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 둘이 어우러지는 점에까지 도달할 때 거기에서 자기 실현과 창조작용이 나온다. 창조의 힘은 바로 그 점 배후에 있는 것이며, 그 점은 바로 그것알아지지 않은 것’- 실재 곧 신, 창조주 -이 드러나는 자리이다. 그 때 거기에서 참으로 있는 것이 드러난다. 그것이 바로 주(), 큰 스승(大師)이다. ‘알아지지 않은 것’, ‘참으로 있는 것’, ‘완전한 것’, ‘모든 것의 전체적인 것’, ‘영원한 것’, ‘무한한 것’, ‘절대적인 것이 나타나는 초점이다. 그런 까닭에 예수도 그것은 나의 안에 항상 있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인 신이 신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여기까지 말한 린포체 대사는 나에게로 시선을 돌려 지그시 바라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까닭에, 여러분이 온전히 창조의 힘이 나오는 출발점이 되어 버렸을 때 여러분은 그대로 큰 스승이요 ()이다. 점 또는 자리에서 여러분은 상대적인 것이 상대적인 연유를 알게 되고 따라서 그 상대적인 것에는 창조 작용이 없으며, ‘창조하는 것은 실로 우리 모두의 안에 있는 창조되지 않은 것이요, 일체의 창조력은 그 점 또는 자리배후에만 있음을 알게 되리라.

, 우리가 오늘 밤 여기서 보게 되는 것은 하나의 현상(現像)이다. 그것은 흥미롭고 또한 유익하다.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하나의 이며, 신을 아버지로 하여 모든 사람들이 형제 자매임을 납득시키는 종교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인간의 분리 곧 인간의 각 개체가 모두 따로따로의 존재이고 인간과 신과 우주가 모두 별개의 존재라는 생각을 믿는 신앙, 권위에의 순종, 이기주의, 물질적 및 영적 이익에 대한 갈망, 이런 것들은 이 진리가 널리 알려지게 되 때 저절로 소멸되는 것이다.

나는 이 나라가 자유를 방해하고 있는 어리석은 미신에서 해방되기를 고대한다. 미신에서 해방되고, 우리가 가진 이 비밀된 가르침의 지식을 가지고 임한다면, 인간은 신을 아버지로 하는 형제 자매라는 영원한 진리의 광명 속으로 이 세계를 이끌어 들이는 일도 가능하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영교(靈交)의 모임을 가짐에 있어 우리는 서양에서 일부의 사람들이 이런 모임을 열 때 하는 것처럼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올리고 또는 음악을 연주하는 따위로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지만 아들아, -그이는 직접 내게 대해 말씀하셨던 것이다. - 우리는 이미 엑토플라즘의 형성에 필요한 조화를 만들어 놓았고, 또한 여러분은 이미 나의 말을 들음으로써 마음이 열려 있다.

중심점에 마음을 모으라 그러면 엑토플라즘이 차츰 거므스레한 구름이 되어간다

달빛이 그 상태로 또렷이 떠올라 주었다. 차츰 그 구름이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빙빙 돌기 시작하면서 이윽고 우리는 그 속에 감싸인 느낌이 들었고, 마침내 그것은 온 방안에 흰 뭉게구름처럼 가득 차고 말았다. 실제로 마치 구름속에 파묻혀 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땅 위에서 구름 속으로 옮겨진 듯한 느낌-이것이 그때의 나의 실감이었다. 이제 아득한 옛 대사들과 또한 직접 혈연이 닿아있는 고인들과도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직 육체를 가지고 이 세계에 있는 몇 분도 여기에 나타나 말해 준다는 것이다. 그 놀라운 실험의 전모를 묘사하기는 어떤 언어로도 불가능하다.

먼저 저 머라레파 대성자가 첫번째로 나타나 티벳어, 힌두어, 영어의 세 가지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러분의 눈을 더 크게 열어주기 위해 왔다. 여러분이 얻기를 갈망하는 초능력은 참된 것이 아니다. 참된 것은 그 너머에 실재하는 것이며, 그것은 너무도 위대하기 때문에 내가 말로 설명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하나의 또 다른 관념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불과하다. 그것은 마음이 그것에 대하여 만들어내는 모든 생각을 훨씬 초월해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여태까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들을 너무나 많이 배워 왔고 가르쳐져 왔기 때문에 참에 대하여 소경이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믿는 윤회 전생(輪回轉生)따위는 조금도 진리에 가까운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지금의 달라이 라마가 그 전의 달라이 라마의 환생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만약 위대한 불타가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 여러분이 신봉하는 의식이나 교리 따위의 무의미한 것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이며, 그 예지는 말로가 아니라 행위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이 현실에서 보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지혜다, 이해다 하고 내세워 본들 그것은 그저 어린 아이의 장난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여러분이 신봉하는 종교의 이른바 윤회 전생이란 하나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언제까지나 공포와 무지라는 미신에 얽어매는 구실을 할 뿐이다.

알겠는가? 진리란 결코 여러분이 지금까지 가르쳐져 온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 가르쳐지고 있는 것은 전혀 허구에 불과하다.

여러분이 믿고 있는 것처럼 현재의 달라이 라마의 육체 속에 있는 것이 과거의 달라이 라마는 아니다. 그것은 다만 하나의 맹목적인 신앙일 뿐 사실이 아니다. 더구나 결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주기 바란다.

다시 태어남(轉生)’이란 분명히 있기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은 아니다. 참으로는 오직 하나의 신령, 한얼 곧 대생명이 대대의 달라이 라마 속에 깃들어 있었듯이 현재의 달라이 라마 속에도 깃들어 있는 것 뿐이다. 그러나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이 진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인간 하나하나 속에 실재하는 것은 한 얼이다. 참 아닌 것, 가짜를 남김없이 모두 앎으로써 비로소 이 알아질 수 없는 한 얼의 예지와 힘은 현현하는 것이다.

여태까지의 지금도 그대로 퍼져 있는, 그 자기 최면을 만들어내기만 하는 어리석은 교설(敎說)에 더 이상 사람들이 사로잡히지 않도록 잘 이끌어주기를 나는 여러분에게 절실히 희망한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렇게 현대의 언어로 내가 이야기하는 까닭이 그것이다

대성자는 직접 린포체 대사와 상당히 긴 시간 여러가지로 대화를 했다. 그 가운데는 이런 말도 들렸다.

이 뒤에 일에 장애가 생기지 않도록 잘 주의해 주시오.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명이 이른바 죽음에 의하여 단절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데까지는 가지 못했으니까요. 오직 하나인 생명만이 실재하는 것이며 그 생명은 곧 영원이지요. 이제 내 뒤에 여러분들이 나와서 말을 하실 것이요. 당신의 벗인 린시라 대사도 지금 여기에 와 있어요

머라레파 대성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의 도사(導師)인 것 같았으며, 이 현계에서는 분명히 린포체 대사가 도사의 한 분이었다.

다른 분들도 조용히 많이 나오셨다. 모두가 방문 앞에서 우리들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고, 참으로 놀라운 체험이었다. 이와 같은 일을 나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

이럭저럭 한 시간은 되었을 것으로 여겨질 무렵에 알렉산드리아의 성 안토니와 사도 바오르가 나에게로 직접 나타나셨다. 성 안토니가 나에게 하신 말씀은 조금 뒤에 기록하겠지만, 아무튼 이 모든 일이 나의 실제 체험이며 결코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님을 독자에게 다시 다짐하는 바이다.

그러는 사이에 나의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그 모습은 생전의 지상에서의 모습과 다름이 없었다. 다만 생전보다도 더 젊었고, 이상한 빛이 감도는 것만이 다른 점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확인을 시키려고 게엘말-스코틀랜드 지방의 사투리-
틀림없는 어미란다. 너의 어미야. 아버지도 옆에 계시지. 네 친구 쟈크 사자란드씨도 옆에 와 있어. 네가 하는 일을 우리는 참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우리들은 모두 너를 돕고 있어요. 네가 그런 일을 해 주니 정말 우리는 기쁘단다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감격으로 커다란 기쁨에 젖어있는 듯 밝고 아름답게 빛났다.

이런 일들이 여섯시간이나 계속되면서 수많은 인물과 현상들이 번갈아 나타났다가는 다시 사라져갔다. 그 모두를 하나하나 자세하게 기록하려면 한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전에도 린포체 대사가 이미 나에게 말해주신 적이 있는 위대한 은자(隱者) 린시라 대사를 비롯하여 아직 육체를 가지고 있는 분들도 많이 나타났다.

린시라 은자님은,
자네는 나의 암자로 와서 잠시 함께 있게 될거야.하고 말해주셨다. 그런 일에 대해서는 아직 나는 린포체 대사에게서 아무 말씀도 듣지 못하고 있었지만 결국 뒤에 정말로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린시라 은자님에게로 찾아간 일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말하기로 한다.

이 영교의 모임이 끝날 무렵에, 그때까지 보지 못한 참으로 눈부신 빛이 나타나 온 방안 구석구석까지 빛났다. 마치 태양 그것이 나타난 듯 너무도 강한 빛이어서 처음에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 강렬한 광휘 속에 예수 대성자께서 나타나신 것이다. 그이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기 위하여 나오셨다.

나의 다른 책 주는 말씀하신다를 읽은 사람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히말라야에서 내가 받은 수련 전체의 절정이었다. 그것은 또 내가 그때까지 목격한 것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일이었으며 아마도 그런 일을 나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비로소 나는 물질과 영 사이에는 어떠한 단절도 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를 떼어놓고 있는 것은 다만 무지라는 허망한 장막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제 깨달음의 빛이 이 세계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정신의 암흑은 오래지 않아 남김없이 걷힐 것이며 영적인 천분을 지닌 사람들이 박해당하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하나의 종교가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교파적인 종교가 아니며, 독단적 교리도 아니며, 단순한 신조도 아니며, 죽음이란 영원하고 절대인 하나의 대생명이라는 보다 높은 상태로의 문턱에 불과하고, 살아있는 우리들과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 사이에는 아무런 단절도 없다는 것을 열어보이는 종교이다.

옛 성자들이나 예수까지도 이미 예수 스스로가 말씀하셨듯이 세상의 끝까지 우리와 하나인 채로인 것이다.

이렇게 놀라운 계시의 아름다움과 영광은 어떤 말을 가지고도 묘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 안토니는 특히 치병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그이는 고대 이집트의 위대한 치병가였다. 그 때문에 그이는 그이 자신보다도 높은 존재들의 지시를 받아 여태까지 불가시의 세계로부터 나를 도와줬으며, 내가 다시 세계로 돌아가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도와 주도록 되어 있다고 말씀하신다.

성 안토니의 치병에 관한 말은 특별히 나를 위해 하신 말이었다. 그 영교의 모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참으로 완벽한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열 명 이상의 스승들이 그 방안에 나타나셨는데 한 분이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있는 동안은 어떤 사람도 그 이야기 속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안토니 성자가 나에게 준 말은 나로서는 최대의 관심사였다. 전에도 나는 이 성자에게 이야기를 한 일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완전한 방법으로 대화한 적은 없었다.

안토니 성자는 말씀하신다.
신은 사람의 아들을 거쳐 영광을 받으신다

이 말의 뜻을 나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전에도 이와 같은 말을 해 주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안토니 성자는 마치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곧바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시간이 시작된 이래, 인간은 병을 고치는 힘과 진리를 전해주는 힘을 누구나가 타고난다. 신유(神癒) 가운데에는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인간의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할만도 하다. 그 때문에 회의가 생기고, 신유 같은 것이 있을 턱이 없다는 생각에서 그러한 놀라운 치유의 본질을 부정하려는 온갖 시도가 있어 왔던 것이다.

신유는 어떠한 물질적 방법을 써보아도 낫지 않는 질병에 놀라운 효과를 눈으로 보게 해 주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거대한 영의 힘에 아직도 눈뜨지 못했다. 그 까닭은 마음이라는 것은 마음을 넘어선 세계에까지 미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마음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나, 이론을 알지 못하는 것이나, 이론을 넘어선 것은 규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유가 일어나는 것은 실로 그와 같은 영역에서이다

그렇습니다. 말씀대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체 신유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떻게 그다지도 완전하게, 더구나 순간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가 있는지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 이 신유를 진리가 아니라 단지 관념밖에 주지 못하는 한낱 술어(述語)로서 써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하고 나는 대답했다.

안토니 성자는 다시 말씀을 이었다.
어떤 종류의 현상이든 모두가 스스로 지혜 있는 법칙에 의하여 나오는 것이며 그렇지 않고는 현상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가령 자네가 어떤 일을 두려워하거나 또는 무엇인가를 믿고 있으면, 거기에 어떤 크나큰 지혜가 작용하여 자네가 두려워하거나 또는 믿고 있는 그것을 바로 만들어내고 만다.

이것이 상념의 법칙 내지 전자작용(電磁作用)의 법칙이다. 육체는 에너지의 원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짜임새의 운동은 모두가 전기적인 것이다.

진리는 수학과 같으며 어김이 없다. 잘못을 깨닫고 바로잡으면 그 잘못은 사라지고 만다. 2+2가 왜 4이고 5가 아닌가? 그 이유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진리를 따지거나 시험할 수 없다. 수리 자체를 따지거나 시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다만 잘못을 따지고 조사할 수 있을 뿐이다. 진리는 수학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옳고 항상 절대이며 변화하지 않고 따라서 잘못이 생길 수 없다. 바로 신유가 항상 완전한 이유이다.

인간은 자신의 둘레에서 작용하고 있는 여러가지 법칙을 탐구할 수 는 있다. 그러나 그런 법칙들까지도 인간의 정신 너머에 있는 탐구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자네를 둘러싸고 있는 혼란의 원인은 그 밑바닥에 있는 생명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는 데에 있다. 그러한 어리석음 때문에 훌륭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까지도 인간, 그것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생명의 법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수학의 법칙이 존재함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진리와 진리의 법칙이 존재함을 부정하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진리의 법칙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진리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다. 오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만을 알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진리는 수학을 다루고 이용하듯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이다. 조화된 음악에는 참된 음계가 있지만 거기에는 그릇된 음계라는 것은 없다. 그릇된 음계라는 것은 다만 잡음일 뿐이며 그런 것은 조화가 아닌 것이다.

부정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람도 없다. 그릇된 것, 가짜를 부정하는 것은 바로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며 본래 있지도 않은 실재성을 부여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그러나 그런 가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알아버리면 그것이 가짜인 까닭을 아는 것이요, 사람은 그 때 비로소 가짜가 진짜, (實相)’ 속에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 자아(自我), 곧 미망이 만들어낸 것임을 깨닫는다.

가짜는 오직 미망 속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진짜 곧 의 조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가짜는 자아에 달라붙으려 한다. 왜냐하면 가짜가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자아뿐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의 힘 같은 것은 결코 내세운 적이 없었고, “언제나 내 안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했다. 그이는 자기 자신을 위대한 존재로 내세우지 않았다. 그이는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하셨다.

자네가 힐러(治癒家)라는 간판을 내걸고 나는 신유로 병을 고쳐준다.’고 하거나 나는 예언자이다.’하고 광고한다면, 자네는 자기 자신을 하나의 현상적 존재로 한정하고 말 뿐이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수많은 실패자가 속출하게 된 원인이다.
자아는 신성(神性)인 것을 뒤덮어 감추어버린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아를 벗겨내고 떨쳐버려야 한다. 자아는 아무 힘도 없는 허상이요, (). 이 깨달음이 빨리 오면 올수록 자네 자신과 자네에게로 찾아오는 사람들 모두에게이익이 커질 것이다.

인간은 신과 단절된 존재이고 자기는 남과 떨어져 있는 별개의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는 한낱 외부의 중재자로 여겨져 왔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진정한 아버지인 신을 몰랐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예수의 아버지인 신이 동시에 자기들의 아버지인 신임을 알았다면 그들은 해탈하여 무애 자재가 되었으리라. 예수는 자신의 힘은 아무 것도 없으나 아버지인 신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했다.

예수는 자네와 나의 것이기도 한 대생명에서 떨어져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우주 대생명을 통하여 일하고, 그 우주 대생명은 우리 인간들 하나하나를 통해 일하는 것이다. 자네도 그렇게 일하기를 배워야 한다.

순종과 분리관(分離觀)에 사로잡힌 사람은 신의 힘을 모르며 쓰지도 못하지만, 신의 힘을 스스로 체험한 사람들은 그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있다.

내가 자네에게 신의 편재(遍在)에 대해 말할 때, 나의 말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내가 뭔가 나 자신과는 별개의 존재에 대하여 말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그렇지 않다. 말은 상대적인 것, 그러므로 나는 그저 자네의 안에 있는 을 자네가 발견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자네는 이미 상대적 존재에 대하여는 많이 배워 왔으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잘 알것이다. 위대한 스승 예수는 그대들은 내가 아버지인 하나님 안에 있고, 아버지 하나님은 나의 안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라고 했다. 이 말은 신의 의식 속에서 신과 인간은 하나이며, 신이 모든 인간에게 신의 아들로서의 힘을 이미 주었음을 깨달은 사람들 속에서 신의 의식은 창조력을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말이었다.

, 질병이 모두 어떤 원인들의 결과이고 자연의 법칙을 어기거나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자네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무지, 공포, 사랑의 결여 곧 사랑을 주는 힘의 결여, 끊임없이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자아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생겨난다.

병은 육체와 마음이 그 본래의 리듬을 잃었음을 나타내는 현상이며, 동시에 그것은 본래의 리듬을 되찾으려는 처절한 싸움이다. 바꾸어 말하면, 만약 사람이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마음의 평안을 잃어 허둥댄다면, 마음의 주의(主意)는 나타나는 증상에 쏠리게 된다.

왜냐하면 육체가 신경을 통해 그 증상을 마음에게 알리면 마음은 육체가 느끼는 것의 포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육체를 그 증상에서 구해내려고 애쓰게 된다. 그리하여 육체의 원자(原子)들을 휘저어 놓고 결국은 고통이나 불쾌감이 오게 하는 것은 마음이 육체를 구해 내려는 그 싸움이다. 이런 이치를 알 때 싸움은 멎는다.

마음은 육체의 느낌을 의식하고, 그 느낌이 어떤 으로서 마음에 기록되며, 거기에 어떤 병명(病名)이 붙으면 마음은 그 병명에 사로잡히고, 더구나 그것이 어떤 불치의 병이라 하게 되면 마음은 그대로 그것을 받아들여 부담은 더더욱 커진다.

그러나, 실은 병의 원인이 자신의 참모습(實相, 神我)에 대해 무지와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데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때는 그 무거운 부담이 사라지며, 대생명인 한얼이 마음을 변성(變性)시켜 육체는 자연의 완전한 작용에 순응하게 된다.

인간은 육체에 이상이 있으면 병으로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데요하고 나는 물어보았다.

그렇지, 육체의 세포 사이에 어떤 분리가 생기면 그것은 뇌의 중추에 전달된다. 그러면 마음의 현재 의식이 그것을 불건강으로 인식한다.

근본적으로, 한 얼 곧 인간의 참모습인 완전한 힘을 꺠닫지 못한데서 공포와 불안이 생겨났다. 그러나 마음이 진리를 받아들이면 그것이 뇌중추에 전해지고, 그리하여 육체세포의 재건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음이 육체를 어떻게 해보려는 싸움에 사로잡혀 버리면, 첫번째의 방위선인 이성(理性)의 벽이 무너져 결국 육체 세포의 부조화라는 정보를 최후의 선고로 받아들이고 만다. 그러나 자기 존재의 진리를 깨달으면 치유 작용이 일어난다. 말하자면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마음이 강하게 충전되어 완전하고도 순간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이 바로 신유이다

나는 성자가 말해주는 것에 몰두해 있어 주변의 일에는 전혀 주의를 돌리지 못했다. 성자는 말을 이으셨다.

병이 시작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자기 존재의진리 곧 참 나는 완전, 무한, 절대라는 자각이 마음에서 사라지고 불건강이라는 의식이 마음을 지배하여 쾌활함과 생동감을 잃는 것이다. 그때까지 육체를 지탱해오던 마음이 병이 실제로 있다.’는 미망의 마력에 굴복하여 진리가 한 때 사라지는 것이다. 마음이 지닌 한 얼(大靈)의 종주권(宗主權)에 관한 식을 부조화, 혼란이라는 세력에 내어 주고 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마음이 그 엄연한 주권을 포기하는 꼴을 줄곧 생생하게 보아온 사람으로서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어떻게든 회복하려고 약재(藥材)에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반대로 어쩌다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나 회복의 기미가 보이면 결과적으로 약재의 힘을 완전히 미신(迷信)하게 된다. 그러다가 병의 상태가 다시 나빠지기라도 하면 완전히 미신하고 있었던 만큼 혼란은 더욱 커지고, 끝내 믿을 수 없음을 깨달으면 그대로 절망과 공포의 늪으로 빠져버린다.

육체는 화학 작용의 구성물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깊이 알아야 한다. 육체에는 지혜와 기능과 육체의 영위를 유지하는 놀라운 짜임새가 갖추어져 있으며, 그것이 곧 대생명의 활력이고, 그 대생명의 활력이 육체의 운동과 변화를 일으키는 바탕이다.

약초나 생약, 호메오파디(同種療法), 수치료법(水治療法)등의 자연요법은 대개의 경우 세포에 작용하여 생화학 반응을 일으키고, 그것이 강력한 암시가 되어 그 암시에 따라 마음이 작용하게 된다. 마음에 미치는 이런 작용이 결국 건강 의식과 몸 속의 균형, 조화를 회복시키고 재생시키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내재(內在)의 영력(靈力)의 법칙을 깨닫지 않은 상태에 머문채로이면, 다음에 오는 2차적 상태는 처음의 그것보다 더 나빠지기 일쑤이다.

병인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자아 뿐인 것이다. 얼은 병이라는 것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다. 이기심, 빼앗고 받기만 하는 마음, 탐욕, 미움, 적의, 인색, 완고, 난폭은 자아의 것이며, 이것들이 거의 모든 병의 원인이다.

비인격적이며 치우침 없는 한 얼은 그런 부덕(不德)에 대하여는 아는 바 없다. 따라서 치우침 없고 비인격적인 것이 신유이다. 비인격적으로 되면 될수록 사랑이 깊어지고 친절해진다. 왜냐하면 사랑은 비인격적인 것이며, 사랑은 용서요 치유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신이며, 사랑은 무릇 반작용이 따르지 않는 완전한 작용의 바탕이다.

개체의 자아가 끊임없이 외적인 것, 충돌과 갈등, 내면 및 외면에서의 투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면, 그것이 바로 [괴로움의 원인을 깨달았음]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비인격적 내재 진아(非人格的 內在 眞我)가 해방되어 대생명의 모든 힘이 방사되며, 그 자연의 힘의 전자파가 마음과 육체를 변질시키기 시작한다.

이 안에서의 원자 작용이 잠재 의식층에 대해 암시를 준다. 그러면 잠재 의식은 순간적으로 온 몸에서 반응이 일어나게 하여 강력한 체에너지의 흐름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 놓아 그 흐름이 향하는 곳에서 불순한 것을 밖으로 쓸어내고 혼란을 가라앉힌다.

이 혼란이 가라앉는 것에 호응하여 이라는 관념을 떨쳐내야만 한다. 그럼으로서만 참된 평안이 확립되며, 그리하여 육체의 호소와 반란이 멎고 조화가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배우고 이렇게 앎으로서 다시 조화가 회복되면, 마음과 육체는 병의 성질이나 증상의 계속 기간 여하에 관계없이 변화한다.

진리에 따라 이끌어줌으로써 병자는 고통이 한 때의 것이고 스스로 지어낸 것임을 깨닫기 시작한다. 무릇 나타나는 현상은 한 때의 것이며, 한 때의 것은 그저 끊임없이 유동하고 그 자체의 근거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밖의 무엇인가에 사로잡히는 것은 무지한 자아 뿐이다. 실재는 이 무지한 자아와는 전혀 다른 것. 실재야말로 완전하고 비인격적인 참 나이다. 만약 병이 실재라면 그것은 고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실재는 불변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공포를 품고 있기 때문에 남들이 뿜어내는 암시를 받아 공포 속으로 더욱 깊이 빠진다. 죽음에의 공포는 인류라는 한 가족에 스며있는 여러가지 괴로움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이 공포를 떨치는 것이 가장 중대한 일인 것이다

성자는 더욱 강조하여 말한다.
이 살아있는 우주에는 단 한분자라도 죽은 것은 없음을 분명히 깨달아주기 바란다. 대생명에게 죽은 부분 같은 것은 한 구석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어떤 차이도 없다. 지금 자네가 보듯이 생과 사는 하나이며 둘이 아니다. 죽음이란 영원한 생명 속에서의 한 국면에서 다른 국면으로 옮겨감에 불과하다.

생명은 보다 완전한 ’- 곧 영체(靈體)같은 보다 정밀한 몸-속에서 존재를 계속하면서 개체 생명의 의식이 차츰 확대 심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가 마음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리고 영원한 생명이라는 의식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몸과 마음의 치유에 있어 최대의 힘이 된다. 왜냐하면 공포의 의식은 심신의 기능을 파괴하지만 , 생명의 의식은 심신의 알맞은 기능을 살려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땅위의 어떤 인간도 그대의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까닭은 영원한 이야말로 그대의 참 아버지이기 때문이다고 하지 않았던가?

심신의 완전한 치유는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소멸됐을 때에만 이루어진다. 자네가 남을 도울 때는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가장 우둔한 마음일지라도 진리의 빛을 받은 의식을 그 속으로 침투할 수가 있는 법이다

한 순간의 침묵을 사이에 두고 그이의 말씀은 다시 흘러나왔다.

만트라(嗔言)는 공포에 찬 마음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괴로움이라는 관념을 도리어 강화하가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사람들은 대립을 만들어나갈 뿐이다. 건강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불건강이라는 관념과 싸우고, 생명이란 관념을 가지고 죽음이라는 관념과 싸우며, 선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악이라는 관념과 싸우는 것이다. 이 싸움은 끝이 없다.

그러나 참으로 깨달은 의식의 슬기로운 말의 방편을 쓰면 환자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기꺼이 협력하게 되며, 그리하여 변화가 순간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실재(實在), 실상(實相)의 진리가 전자력의 파동을 발생시키고, 그 파동이 환자의 마음에 도달하면 그때까지 그를 얽어매고 있던 소극적인 정신 상태가 타파되고 만다.

이런 방법으로 가까운 곳에서든 먼 곳에서든 환자의 마음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순간에 마음은 치유되었던 것이다. (신약성서의 이야기) ‘딸아 마음을 밝게 가져라. 너의 믿음이 너를 낮게 했느니라는 말 또한 그것을 보여준다. 자네들은 이런 말들을 늘 듣고 있지 않은가. 이제야말로 그 참 뜻을 깨달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참 모습에 대한 진리를 알 때 오오라가 맑아지며 상념이 강력해진다. 그 때 대자연 속의 그 어떤 것도 그를 해치지 않게 되며, 그 또한 자연 속의 어떤 것에도 해를 미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네가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을 때 자네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지배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자네는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힘과 주권(主權)을 이미 부여받고 있기 떄문이다.

본래 자아란 무()임을 꿰뚫어보고 깨달으라. 그 때 자네는 겸허해지고, 그대로 우주의 한 얼이 일하시는 경로(經路)가 되리라. 자아라는 사슬을 끊어버려라. 그러면 나머지 일은 신이 섭리하신다.

깨달음의 반대 관념인 공포를 거쳐서가 아니라, 깨달음 곧 속속들이 아는 것으로 참 믿음을 세우라. 공포에서 나오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관념일 뿐이다. 그것은 도리어 관념의 대립을 격화시켜 사람을 더더욱 대립속에 갇히게 할 뿐이다.

기꺼이 귀기울여 잘 듣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어야 한다. 마음에 스스로 지워놓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는 것은 병자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한 얼곧 모든 사람의 참 나가 병이나 죽음, 선이나 악, 실패나 성공으로 어떤 영향도 받는 것임을 알고, 인격적 내지 인간적인 것을 넘어, 있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고요히 봄으로써 비인격적, 초인간적 자네가 되어야 한다.

자네는 병자의 치유를 경험해주기 전에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치유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말하자면, 자네 자신의 마음에서 일체의 걸림 곧 방해물을 제거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거룩한 힘이 거침없이 작용하는 것이다. 사랑과 슬기의 가없는 힘으로써,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는 그 힘으로써, 있는 모든 것을 안으로부터 바뀌게 하라.

지금 방해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가 도둑과 같은 것들이어서, 마음 한 구석에 숨어 제 패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조금씩 제 패거리가 늘어나면 마침내 꿈에도 의심치 않던 주인에게 달려들어 단숨에 주인의 목숨을 끊어 버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부류의 것은 오직 무지(無知)’속에서만 번식하며, 그것을 다스리는 길은 오직 참 깨달음 뿐이다. 그러므로 자네의 참된 깨달음의 강한 빛으로 병자의 의식을 맑아지게 하라. 그 때 그의 가려져 있던 불빛이 비쳐나온다. 먼저 어두운 구석에서부터 맑아지고, 그리하여 영원히 스러지지 않는 그 빛으로 온 몸과 마음이 빛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 한 사람인 ’, 그것이 병들기 때문에 온 세계가 또한 병들어 앓는다. 혼란과 무지가 그 원인이다. 이 두 놈의 사기꾼을 처치할 때 인간은 창조주 그이와 닮은 꼴로 창조된 그대로의 모든 영광에 빛나는 신인(神人)으로 모습이 바뀌고 말 것이다.

자네 앞에 놓인 임무는 얼핏 보면 너무 거대하기도 하겠지만 우리의 사랑의 파동은 자네가 가는 곳마다 언제나 자네와 함께 있으리라. 자네는 한가로이 쉴 틈이 없다. 여기서 닦아야 할 것을 닦는대로 자네는 자네가 여태까지 잘 알아온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신인 그리스도의 전능 오오라가 자네를 남김없이 감싸주기를 기원한다.

말을 마치면서 성자는 그대로 사라지셨다. 그이의 알뜰한 가르침에 잠겨 나는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을 뿐이다. 성자의 말씀은 시간으로 한다면 30분도 넘었을 터이지만, 나에게는 그저 한순간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 한순간마저 아득히 시간 없음속으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미 영원속에 있음을 뚜렷이 느꼈다.

여기에 이 모임이 독자들에게 더욱 생생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나의 사생활에 연관된 사실 하나를 적어두고자 한다.

어머니가 나타나 나에게 말을 한 다음, 1915년 제 1차 대전에서 전사한 나의 친구며 전우인 쟈크 사자란드가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나를 스코틀랜드 사투리로 머드라고 불렀었다. 그와 나는 같은 고장에서 태어나 같이 자랐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 밤에 글라스고에서 쟈크와 나는 위스키를 조금 마셨다. 쟈크는 위스키를 좋아하긴 했지만 많이 마시지는 못했다.

그날 밤 그는 이상하게도 조금 마신 술이 올라와 몹시 토했다. 구토가 멎지않아 거듭 토하다가 드디어 턱이 빠지고 말았다. 급해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병원이 붐벼 쟈크는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상태가 아주 나빠지고 말도 못하게 되었다. 급한 김에 나는 소리쳤다. 빌어먹을, 입을 벌려, 내가 고쳐 줄께!

나는 그의 양쪽 어금니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힘껏 아래로 내려 눌렀다. 그러자 덜컥하고 턱뼈가 제자리에 들어가 맞았던 것이다.

그가 이 이야기를 내게 했을 때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원래 그는 이마가 많이 튀어나온 얼굴이었는데 어머니 다음으로 나타난 그의 모습도 그것이 분명히 나타나 있었다. 우리 둘만이 아는 그 옛날 이야기를 말해 자기를 확인시키고 나서 그 -그의 영-는 나에게 뭔가 충고를 하려는 것 같았던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의 말을 제지해버려 더는 대화를 못했다.

영교의 모임이 끝난 다음 우리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가 전과는 다른 생기에 넘쳐 있었다.

차가 나오고, 나는 아직 조금 남아 있던 영국제 비스킷을 내놓아, 그대로 동이 틀 때까지 담소했다.

이윽고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아름다운 쵸모리하리 산 등 뒤로부터 해가 솟아오르는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늘 있는 일이지만, 그 날 새벽은 나에게는 정말 놀랍게 찬란한 경관이었다.

나의 스승이 다가와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자네는 거룩한 안토니 성자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군.
그렇습니다. 정말 저는 많은 스승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비롯해서 여러분들이 얼마나 저를 사랑해 주시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나의 스승은 두 팔로 내 어깨를 껴안으면서 말했다.
우리 모두를 감싸 서로 맺어지게 하고 있는 것은 신의 사랑이라네. 신이 뜻하시는 바를 역사하시기 위해서라네.

[출처] 제 9 장|작성자 사랑